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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88만원 세대』, 우리 제자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형빈 (이화여고)

오늘 졸업생 제자를 만났다. 학창 시절 나름 많은 애정을 주고받았고, 의식의 공감도 충분히 이루었던 녀석이다. 아직 대입논술의 광풍이 불기 이전, 토요일 오후마다 진행된 논술반 수업에서 수많은 진보적 의제를 함께 다루기도 했다. 국어교사인 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국어교사가 되겠다고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1년 만이었다. 미국 어학연수를 다녀왔다고 했다. 국문과가 웬 어학연수? 썩 달갑지 않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갖추어야 하겠지 싶은 마음에 그래도 반갑게 술잔을 기울였다.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었다.
대선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 이야기를 꺼냈다. 그 녀석도 좋단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명박을 찍겠단다. 아직 한 번 더 ‘성장’이 필요하단다. 그 다음 대선에서 그 사람을 찍겠단다.
연대를 다니는 그 녀석에게 연대 버전으로 설명했다. 이명박의 성장 비전은 연대 송도 캠퍼스를 두 개 세 개 더 짓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고. 그래 봐야 연대생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연대생들의 삶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무상교육이 필요하고, 비정규직 강사의 정규직 교수화가 필요하다고. 그래도 그 녀석은 쉽게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뿌리는 전두환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였지만 (요즘 20대는 ‘전두환’과 ‘한나라당’을 당연히 연결시키지 못한다. 아니 애써 연결시킬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예상대로 분위기는 그저 뻘쭘할 따름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애써 의식화를 시켜 놓은 녀석도 이 정도다.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 문제이다. 토대가 의식을 규정한다. 지금의 제자들인 10대, 그리고 예전의 제자들인 20대를 둘러싼 정치경제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텍스트 중 하나로 <88만원 세대>를 꼽을 수 있겠다.

대학평준화 운동을 어쭙잖게 시작한 나로서는 우선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1퍼센트의 엘리트가 나머지 99퍼센트의 국민들을 먹여 살린다’는 표현은 바로 이 시절의 프랑스 엘리트 사이에서 많이 사용되던 표현인데, 프랑스 혁명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계급으로서 여전히 실질적으로 존재하던 귀족들은 몇 개의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자신들을 재생산하며 소위 ‘부르주아의 삶’이라는 것을 구현하고 있었다. 그랑제콜이라 불리는 귀족들의 대학교는 애부분의 국민들에게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었고, 나중에 파리 2대학이 된 아사스 법대나 4대학이 된 소르본 대학을 나와야 그래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대학서열화의 병폐가 가장 극대화되던 때가 바로 이 시기이다.”

“이 사건(68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나타난 특이한 현상은 대학의 국유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이미 대학에 진학해 있던 대학생들이 얻어낸 것이 아니고 앞으로 대학에 들어가게 될 중고등학생들이 얻어낸 것이다. 68집회에서 대학생들은 교실 증설과 복리 증가 등을 요구했지만, 당시의 중고등학생들은 대학생들의 이러한 요구를 ‘배신’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직접 내걸고 거리에 나서게 되는데, 그야말로 국가 시스템의 전면적인 붕괴를 눈앞에 둔 프랑스 정치 지도자들은 결국 대학 국유화를 카드로 내밀게 된다.
전국의 대학에 대한 전면적인 국유화가 진행되고, 서열을 없애기 위해 대학의 이름을 없애면서 총장들의 추첨에 의해 각 대학마다 번호를 하나씩 가져가데 되는데, 가장 오래된 소르본은 4번을 받았고, 가장 나중에 생긴 생드니 개방대학은 8번을 가져가게 되었다. 아사스 법대라는, 프랑스 대학 중 가장 보수적인 학교는 2번을 받았고, 68혁명의 계기가 되었던 낭테르대학은 10번을 받게 된다. 이렇게 국립대학으로 전환된 새로운 시스템 하에서 연간 5만원 정도의 저렴한 등록금을 내면서 새롭게 대학에 들어간 세대를 사르트르 세대라고 부른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 제자들에게는 이러한 혁명성이 거세되었는가? 이는 무엇보다도 이들이 ‘사르트르 세대’가 아니라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88만원 세대’이기 때문이리라.
‘88만원 세대’란 우리나라 20대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이 88만 원이라는 계산을 토대로 한 명명법이다. 이들 세대를 규정하는 것은 이른바 ‘386세대’가 지니고 있었던 (혹은 지니고 있다고 잘못 믿었던) 진보성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의 노래 제목처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이 책의 미덕은 20대를 둘러싼 구체적인 경제적 현실에 대한 분석에다가 세대론적 분석을 덧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가혹한 신자유주의의 광풍 이후 ‘괜찮은 일자리’는 급격히 줄었는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이것이 세대내 경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오히려 이후 세대를 착취하는 양상마저 지니는 것이 우리 20대를 둘러싼 현실이다. 10대에 가혹한 입시경쟁을 경험한 20대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토익, 고시, 학점 관리 등으로 각개 약진을 시도하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고작 ‘88만원’이라는 불안한 미래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국의 젠틀맨 세대, 독일의 유겐트, 프랑스의 68세대, 일본의 단카이 세대, 한국의 유신 세대, 386세대, X세대들과 지금의 88만원 세대를 비교하는 대목은 자못 흥미진진하다. 또한 88만원 세대가 앞으로 만나게 될 끔찍한 수탈 구조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 역시 날카롭다.
  하지만 이 책은 단지 현상 분석에 머무르지도 섣부른 비관적 혹은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20대에게는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 것’을, 기성세대에게는 ‘꼰대 근성을 버릴 것’을 주문한다. 세대적 연대다. 흔히 ‘꼰대’라는 조롱을 받는 교사로서 자못 마음이 아프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운동의 대장정에 나서는 우리에게는 반드시 세대적 연대가 필요하다. 프랑스처럼 교사와 대학생, 고등학생이 어깨를 걸고 나서기 위해서는 이들 세대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경제학자는 ‘88만원 세대론’을 제출했다. 우리 교육노동운동진영은 이들 세대를 어떤 교육학적 어법으로 부를 수 있을까? 그 명명법의 실천적 의미는?

* 이 책을 출간한 인터넷 신문 ‘레디앙’의 이광호 편집국장은 이 책을 고등학생들에게 많이 읽혀 그들이 좀 더 불온해지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나에게 전했다. 자신이 없는 부탁이다. 그나마 이 서평으로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고자 한다. 부족한 서평, 책 목차를 나열하는 것으로 보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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