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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쓰레기] 이랜드 자본과 조중동

2007.09.22 17:36

진보교육 조회 수:1494

[쓰레기] 이랜드 자본과 조중동

                       김 산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주름진 얼굴,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이는 아줌마들의 두 뺨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서로 팔짱을 끼고 투쟁가를 부르며 흐느끼며 최후의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들은 모두 개 끌려 나오듯이 경찰에 의해 끌려 나왔다. 경찰에 의해 끌려나온 그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도 그저 세상을 열심히 착하게 살려고 일한 죄 밖에 없는 아줌마, 아가씨들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잔혹한 자본과 자본의 수호자인 국가는 이 순박한 아줌마, 아가씨들의 작은 소망마저 무참히 짓밟았다. 그들의 작은 소망이 짓밟히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아줌마, 아가씨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투사가 되었으며 자랑스러운 노동자로 태어났다. 이 땅의 노동자로 사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이며 처참한 일인지 체험했으며 다른 모든 노동자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오늘도 투쟁을 한다. 단지 일하게 해달라면서.

순박한 우리의 누이들을 투사로 만드는 사회. 노동전사, 투사들이 넘쳐나고 있다. 단지 일하게 해달라고 호소도 하고, 매달려 보기도 하고, 투쟁도 해보지만 자본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있다. 자본의 충실한 대변인인 수구언론 또한 그들의 피눈물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똑같이’의 환상
최루탄 냄새가 가실 날이 없던 1980년대 중반의 대학 캠퍼스.·······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로 노조의 매장 점거와 경찰의 강제 해산 등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이랜드그룹 유통 계열사.
이 회사 노조와 민주노총은 정규직으로 전환될 비정규직을 정규직과 ‘똑같이’ 대우해 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규직이 될 캐시어(현금 수납원)는 기존 정규직과 하는 일이 다르다.
······· 시장경제 체제가 성숙해 가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근로자가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방법은 하나로 압축된다. 자신의 능력을 키워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조는 회사에 ‘똑같이 달라’가 아니라 역량을 키울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는 게 마땅하다. 이래야 근로자는 자기를 계발해 더 많은 임금을 받고, 기업은 계속 이익을 내 노사가 함께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 뜨거운 가슴만 강조해 온 한국 노동계도 이제 ‘차가운 머리’로 변화를 받아들일 때가 됐다.
(동아일보, 8월 14일 , 광화문에서, 박중현 사회부 차장 )  

‘아줌마 눈물’ 뒤의 민주노총  
····민주노총은 이랜드 사태가 더 오래, 더 복잡하게, 더 치열하게 전개되기를 원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싸움’을 크게 벌이는 최대 목적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 아니라 민주노총 자체의 위기 극복인 것 같다. ........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치고 나오는 또 하나의 속셈은 ‘아줌마의 눈물’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 보려는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총파업은 ‘투쟁을 위한 투쟁’이라는 비난을 받은 터다. 그러니 이랜드 매장의 비정규직 아줌마들을 앞세워 국민 지지를 구걸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
(동아일보, 7월 22일(인터넷), 광화문에서, 홍권희 논설위원)


언제나 그렇듯 위의 칼럼들을 읽는 독자라면 민주노총은 나라를 말아먹을 놈들이고 노동자들은 능력을 키울 생각은 없고 그저 똑같이 대우해달라고 투정부리고 깽판을 치는 집단들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능력도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과 ‘똑같이’ 대우해달라는 것은 ‘환상’일 수밖에 없다.


이 회사 노조와 민주노총은 정규직으로 전환될 비정규직을 정규직과 ‘똑같이’ 대우해 달라고 주장한다. ' 하지만 정규직이 될 캐시어(현금 수납원)는 기존 정규직과 하는 일이 다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다르다?  ‘똑같이’ 대우해달라고 주장한다? 차별주의와 왜곡의 전형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달라야 하나? 같은 일을 하는데, 같은 노동을 하는데 달라야 하나? 누구는 진골, 성골이 돼야 하고 누구는 육두품, 누구는 천민이 돼야 하나. 꼭 그래야 존재감이 생기나.

노동계는 지속적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주장하고 있다. 다른 노동에 대해서 동일임금을 주장하는 수준까지는 가지 못한 상태이다. 따라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을 하는 정규직과 같은 임금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같은 노동을 하는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해 달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 적어도 신분사회가 아니라면 같은 대우를 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누가 캐시어가 기존 정규직과 하는 일이 같다고 하였는가? 수납원은 기껏해야 80-90만원을 받지만 이랜드 그룹의 기존 정규직은 초임이 2500-3000 사이의 연봉을 받는데 수납원들이 이들과 같은 대우를 요구했는가? 그들은 순박하게 그저 해고 걱정 없이 일하게만 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언감생심 ‘기존 정규직’ 과 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자는 비열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캐시어의 업무가 기존 정규직과 다른데도 그들이 마치 기존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 체제가 성숙해 가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근로자가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방법은 하나로 압축된다. 자신의 능력을 키워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조는 회사에 ‘똑같이 달라’가 아니라 역량을 키울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는 게 마땅하다.

능력을 키워라 정말 좋은 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 계발을 해야 하며 그리고 기업은 역량을 키울 기회를 주어야 좋은 기업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말들이 당연하지 않은 게 현실 아닌가? 이 자는 이상주의자인가 아니면 무지한 것인가? 누구는 능력을 키우기 싫어서 안 키우나. 하루 10시간 이상씩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더 이상 키울 자기 능력이 무엇인가? 오랫동안 화장실을 안 갈 수 있는 능력, 오래 서있어도 끄떡없을 체력, 어떠한 멸시와 천대도 견뎌낼 인내력을 키우란 말인가. 아니면 아무리 힘들어도 밤새 영어공부라도 해서 이직을 하라는 말인가?

겨우 생존할 수 있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자식교육에 쏟고 나면 남는 것이 얼마나 있어 자기계발을 하는가? 기업에게 요구하라고? 기업이 자체 교육비용을 줄이고자 각 대학에 기업형 인간을 요구하는 것을 모르는가? 기업은 더 이상 노동자에게 교육비를 투지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당장 써먹을 노동자만을  원한다. 이것이 신자본주의의 특징 중 하나이다. 기업은 더 이상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 이걸 모르는가?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에게 요구운운 이전에 그들은 모두 해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해고를 당하고 해고될 위험이 있는데 기업에게 능력계발을 지원하라고 요구 할 수 있는가?  무지인가 만용인가?


뜨거운 가슴만 강조해 온 한국 노동계도 이제 ‘차가운 머리’로 변화를 받아들일 때가 됐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고 있다. 제발 노동자여 ‘차가운 머리’를 갖자. 오죽하면 수구신문 조차 ‘차가운 머리’를 가지라고 충고하는가. 한국의 노동자들처럼 ‘뜨거운 가슴’을 가진 노동자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뜨거운 가슴’ 대신 ‘차가운 머리’를 가졌었다면 세상은 벌써 변화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의 노동자가 얼마인가? 2005년 정부통계에 따르면 1500만 명이 넘고 그 중 비정규직만 해도 55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이 ‘차가운 머리’를 가졌다면. 한국 자본주의가 천박 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며, 아무리 일해도 자본주의하에서는 착취만을 당한다는 것을 인식 했을 것이며, 세상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차갑게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아니 이미 변화 시켰을 것이다. 지역주의에, 자본가의 달콤한 감언이설에,  뜨거운 민족애·형제애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환상도 갖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 한마디에 ‘뜨거운 가슴’으로 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 도시에서 노동자 대표가 선거에서 떨어지고 대자본가와 수구세력이 노동자를 대표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며 아줌마의 눈물로 구걸을 한다는 따위의 조소를 듣지 않았을 것이다. 자전거로 상품권으로 구독을 애걸해도 수구신문들을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수구꼴통이라도 경청할 건 경청하자. 더 이상 뜨거운 가슴으로만 살지 말자. 이제 눈물을 닦자. 눈물을 닦고 냉철하게 판단하자. 저 더러운 자본주의를 끝장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자. ‘차가운 머리’로 생각하자. 얼마든지 명예혁명은 일어날 수 있다. 피를 흘려야만 혁명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닦고 싸우자. 가슴으로 싸우지 말고 머리로 싸우자. 저들이 그토록 충고 하지 않는가. ‘차가운 머리’를 가지라고. 충고를 받아들이자. 그리고 그 충고에 고맙게 답하자. 우리 노동자들은 ‘뜨거운 가슴’ 대신 ‘차가운 머리’를 선택했다고.

뜨거운 가슴으로 답해온 노동계. 이제는 차가운 머리로 변화하여 자본에 일격을 가할 때가 되었다. 올 대선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차가운 머리’를 지닌 노동자를 기대해본다. 수구신문 기자들이 눈물로 구독을 애걸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1호선 전철 안에서 꼭) 누가 그러지 않았는가! 꿈은 이루어진다고.





[단상] 기독교와 자본주의

이랜드 문제로 촉발된 비정규직 문제는 이랜드 단일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돼서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랜드 관계자는 왜 하필 우리냐 면서 불만을 드러낸다. 다른 많은 기업들도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랜드와 관련돼서 생각해볼 문제는 이 기업이 기독교 기업이라는 것이다. 최고 경영자를 비롯해서 많은 종사자들이 기독교인이다. 따라서 종교 문제와 얽혀서 자본주의를 보는 인식 틀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지본주의는 왜 서구 유럽에서 발달했는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연구를 한 이가 독일의 막스 베버이다. 그는 유명한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정신]에서 서구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한 이유는 기독교 정신이라고 하고 있다. 특히 청교도주의가 근대 서구 자본주의의 근원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공에 대한 욕망이 하느님을 섬기려는 욕망에서 촉발되었으며 물질적 성공은 신의 은총의 표시였다고 주장하면서 동양의 경우에는 종교가 산업자본주의의 발달을 저해하는 장애물이었다고 한다.

반면에 맑스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종교(기독교)가 행복과 보상을 다음 세계로 미루고 현세에서의 기존 조건들을 묵묵히 받아들이라고 가르치며, 현세에서의 불평등과 부당함으로부터의 관심을 돌리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갖고 있으며 종교적 신념과 가치들은 종종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고 있다.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이 타문화의 사람들을 지배하려 할 때 기독교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보라.(영화 ‘미션’을 보라. 기독교가 들어가는 순간 그 지역의 문화는 파괴되며 최후의 경우에는 종족이 몰살당하는 일이 생긴다.) 19세기 까지 많은 기독교 교파들은 노예제를 인정하고 노예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불복종하는 노예는 주인과 하나님에 대해서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기독교 근본주의자인 미국의 부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참히 학살과 고문을 자행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의 기독교 자본주의는 비정규직으로 사는 것도 하나님 뜻이며, 노조를 만들고 불복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종교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철저히 작동하는 예이다.

그러나 종교가 지배이데올로기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베버도 기독교의 혁명성을 주장하고 있다. 즉 종교적 이념이 기성의 사회질서에 대해 전복적, 혁명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종교적 신념이 부당한 권위체계를 전복시키려는 수많은 사회운동을 촉발시켰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기독교를 수동적 종교로만 볼 수없다. 그러나 금욕주의를 상실하고 기득권 지키기에만 여념이 없는 기독교 자본주의는 다르게 봐야 하지 않을까? 종교의 이름으로 착취를 행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독교는 혁명성을 찾을 수 있을까?
종교에 관한 맑스의 견해에 공감을 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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