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8호 [해외는지금] 중국의 오늘과 내일

2007.09.22 17:33

진보교육 조회 수:1571

[해외는 지금]  중국의 오늘과 내일

왕서방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__ 실크로드를 그리며

  7월 말과 8월 중순까지 북경과 서안을 중심으로 중국쪽 실크로드를 다녀왔다. 한국에서는 장마가 끝나고 풍성한 가을걷이를 위해서도 땡볕이 쏟아져야하는 절기에 하늘의 해를 보기가 무척 어려웠고 줄창 비가 왔다고 해서 사막에 갔던 필자로서는 가족과 동지들께 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린다.
  실크로드! 고대 동양과 서양의 중요 교역로로 비단과 차 그리고 말이 거래되고 불교, 이슬람교, 종이 등 문화적 교차로로서 인류사적인 중요성을 가진 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80년대 초반 일본과 중국의 공영방송이 합작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실크로드’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일본의 뉴에이지 음악가 ‘키타로’의 음악이 터지면서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모래 언덕에 낙타들이 열을 지어 걸어가는 화면은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동경을 각인시켰던 것 같다.
__북경, 아아~ 천안문 광장
북경 어언대학에 미리 자리를 잡고 연수를 받고 계신 선생님의 도움으로 여행 시작은 북경에서 여유있게 하였다. 북경 서북쪽에 밀집되어있는 대학가에 있는 어언대학은 방학중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에서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온 외국 학생들로 가득했다. 간간히 들리는 한국말로 많은 수의 한국학생들도 이곳에서 유학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내를 오갈때는 시내 버스를 이용했다. 요금은 1위안으로 한국돈으로 120원 정도였다. 자주 버스가 왔지만 항상 만원버스! 정거장 간의 간격도 짧아서 인지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이 한 시간 동안 차장의 고함과 욕설을 듣고 있자니 중국 승객들의 너그러움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인이 박혀서 인지 아니면 무시하는 것인지........

천안문 광장 남쪽 끝에 있는 치엔먼(前門) 주변의 오래된 거리를 어슬렁 거려 본다. 2008년 북경올림픽 준비로 여기 저기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 곳은 600여년 된 거리로 명나라 영락제가 남경에서 북경으로 수도을 옮기면서 형성된 서민들의 생활근거지로 오래되고 좁은 골목들이 많이 남아있었는데 빠른 속도로 재개발을 하고 있었다. 주말 오후 남성들은 사각 ‘빤쓰’차림으로 삼삼오오 집앞에서 카드 놀이나 마작 등을 하고 있었다. 공동화장실에서 나는 암모니아 냄새와 집집마다 뿜어져 나오는 음식 냄새등으로 북경민중들의 일반적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정겨웠다.

천안문 광장은 늘 사람들로 북적된다. 모주석기념관, 인민영웅기념탑등이 있는 이곳은 중국현대사의 격랑의 한복판이었다. 1949년 내전의 승리로 공화국 성립을 선언했던 곳이자 문화대혁명 당시 수시로 열렸던 군중집회의 장소요, 1989년 민주화운동의 성지였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국은 이런 집회나 대중운동을 잊고자 하는 것 같았다. 광장 주변 임시 화장실로 쓰였던 맨홀도 메워진 것 같았고, 인민영웅탑 주변은 잔디를 깔았으며 철저히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정복 경찰이외에 사복 경찰이 광장 요소요소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멀리 장안대로 건너의 천안문 중앙의 모주석 초상도 나이가 들어 보였으며 ‘세계인민단결만세’라는 글자를 보면서 작금의 중국의 쇼비니즘과 대비되어, 아이러니 같아 헛웃음과 욕지거리가 나온다. 서울시청앞 광장과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89년 민주화의 상징에서 이제는 접근조차 힘들어진 인민영웅탑)

중국에 현재 상주하는 한국인 수가 1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얼마전까지는 북경 서북쪽의 대학가 근처인 우타커우(五大口)가 한국인 거리였었는데 북경수도 공항 근처 북동쪽에 신시가지 왕징(望京)이 만들어지고 한국인촌이 형성되었다. 평양의 옥류관도 몇 년전 분점을 내고 성업중이었다. 단고기와 평양냉면을 화사한 여성 복무원의 접대를 받으며 먹었는데..... 추천할 맛은 아니었다. 너도 나도 나름대로의 희망과 꿈을 갖고 ‘서울을 보면서’ 타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__실크로드 여정의 시작, 우루무치
북경서 비행기를 타고 4시간 정도 날아가 신쟝 위구르자치성(新彊省)의 성도 우루무치에 도착했다. 서쪽끝의 지방으로 청나라 말엽 중국영토로 복속된 말그대로 ‘새로운영토’이다. 여느 중국 도시마냥 높은 빌딩 숲과 널따란 길 사이로 자전거 대신 자동차의 물결이다. 위구르 족은 예전 유목민족으로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한족 다음으로 수를 차지하는 민족으로 이슬람교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우루무치에서는 위구르족보다 한족의 숫자가 더 많았다. 90년대 말부터 시작된 소위 ‘서부대개발’의 기치로 내지의 빈한한 한족들이 기회를 찾아 변경 소수민족이 사는 곳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마치 15,6세기 스페인의 몰락한 기사계들(히달고)들이 칼과 갑옷을 가지고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기회를 잡기 위해 돛단배에 올랐듯이.....









(끝없이 연결된 사막과 황무지 중국의 서부대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성장을 빌미삼아
제국주의정책을 노골화하고 있다)

우루무치에서 실크로드 여정을 시작했다. 일단 투르판으로 끝없이 계속될듯한 사막이 어느새 초록의 나무들로 끝나면 그곳이 바로 오아시스이다. 풀 한포기 못자라는 척박한 땅에 포플러 나무가 쭉쭉 뻗어 있고 포도밭에서 포도가 익어가고 물소리, 새소리를 듣게 된 예전의 캐러반들은 어떠했을까?
나지막한 건물들로 구성된 투르판은 위구르족 천지였다. 숙소 앞의 시장에 가서 양고기로 만든 빵과 만두를 먹고 포도로 입가심을 한다. 애석하게도 이슬람교도인 그들은 식당서 주류를 팔지 않는다. 연평균 강수량 30밀리의 이 사막의 까칠함! 저녁에, 단체로 일본서 온 할아버지 관광부대와 위구르 민속 공연을  보는데.....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회전에 넋을 잃었는지 아니면 여정에 지쳤는지 박수 소리가 유난히 작다. 밤 늦게 비가 쏟아진다. 저 멀리 사막 넘어 시커멓게 보이는 산줄기에서 번개가 치고 불모의 땅에 비가 온다. 현지인들은 ‘운 좋은 날’이라면 한다. 그러나 여행객에게는 숙소에 말리고 미쳐 챙기지 못한 옷가지가 걱정이다.
__돈황
다음은 돈황이다. 기차는 이미 표가 없어서 침대버스를 이용한다. 저녁 8시에 출발 다음날 아침 8시에 도착! 한없이 연결되는 길과 주변의 사막들! 사막 한가운데 덩그라니 기사가 내려놓고는 생리적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다. 한밤중 구름없는 하늘에 별들은 쏟아지고 단조롭게 직선으로 뻗은 길에 거침없이 전진을 한다. 예전에 일본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가 쓴 소설 ‘돈황’의 로맨스와 살륙을 떠올리면서 도시에 접근한다. 여기 저기 옛날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 파괴되었을 성벽유적을 본다. 돈황은 깐수성(甘肅省)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돈황석굴로 20세기 초에는 전세계로부터 도굴꾼들을 끌어모으더니 이제는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400년 북위시대에서 시작해서 19세기 청나라까지 1500여 년 간 지역의 세력가들은 사막 한가운데 산에 굴들을 파고 나름대로의 염원을 담아 불사를 조성했다고 한다.
입장료가 무려 180위안이다! 기차 차장이 월급 2000위안인데.... 많이 비싸다. 중국도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돌아서면서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수 많은 중국인들이 여행을 시작한다. 그래도 좀....
   저녁 해가 지면서 사막의 열기가 누그러지고 시내를 어슬렁거린다. 작은 도시인데도 흥청인다. 건물로 둘러싸인 한가운데에 노천술집이 있다. 여기저기서 중국 졸부와 서양의 관광객이 양꼬치를 안주 삼아 술을 먹는다. 자리 잡고 한잔 하는데 중국 여성이 테이블로 와서 술을 따라 준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변경 지역의 낯설음보다 무안함과 자괴감이 앞선다. 서둘러 맥주 두병을 비우고 조잡한 관광 상품의 행렬을 빠져 나오면서 돈황의 마지막 밤을 마친다. 다음날 아침 11시 깐수서의 성도인 란저우(蘭州)행 침대 버스에 오른다. 다음날 7시까지의 19시간여의 장도이다. 고린내가 난다. 에어컨도 작동하지 않는다. 기사는 연신 독한 중국 담배를 피워 문다. 나도 담배를 피운다. 장시간 버스를 운전하다 보니 두 명의 기사가 번갈아 가면서 밤을 새워 가면서 달린다. 간간히 도로변에서 승객을 태우고 승객을 내린다. 농산물에 옷가지를 잔뜩 들고 타고 내리면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__실크로드 여정의 종점, 시안(西安)으로
  소위‘중원’에 들어섰나 보다. 아침 일찍 비몽사몽간에 란저우에 도착한다. 며칠 만에 도착하는 대도시이다. 매연과 매캐한 도시만의 냄새가 잠을 깨운다. 바로 실크로드 여행의 종점인 시안(西安)행 버스를 탄다. 일반 버스다. 12시간 이동거리! 한국에서 12시간 여정은 없지만 중국에서 12시간은 동네 마실 가는 수준인가 보다. 란저우에서 시안까지의 굽이굽이 산길을 낡은 버스는 힘겹게 매연을 토하며 간다. ‘중원’에 들어서면서 이전의 변경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마을과 마을의 간격이 조밀하다는 것과 산 정상까지 개간을 하여 밭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인구도 조밀해진다. 정거장 간격도 짧고 많은 사람이 타고 내린다. 문명의 이기에 익숙치 못한 사람들을 위한 멀미용 비닐 봉지가 길의 굴곡의 따라 손잡이에 매달려 흔들린다. 갑자기 버스가 선다. 창문 너머 보니 버스와 승용차가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낙석 사고다. 개간으로 인해 약간의 비로도 길은 쉽게 낙석 등으로 끊어진다. 결국 2시간여   도로 한복판에서 뙤약볕에 기다린다. 다시 출발! 두 시간의 길에서의 지체를 만회하려는 듯이 기사는 위험천만한 추월과 과속질주를 한다. 마치 추월과 과속을 하기 위해 태어난 듯이....  깐수성을 넘어 저녁 무렵  샨시(陝西)성에 도착하고 고속도로다운 길에 접어들면서 안도가 된다. 끝없이 이어진 옥수수 밭의 연속 속에 저 멀리 당태종의 거대한 능이 눈에 들어온다. 시안까지는 이제 200여 키로 남았다. 고속도로 상에서의 승객의 타고 내림은 계속되고 본격적인 비가 내린다. 정말 비를 몰고 다니는 것 같다. 서서히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드디어 종착점인 시안 외곽에 도착한다. 대학시절 시안을 가고 15년 만에 다시 가본다. 한창 공사로 여기 저기 혼잡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는 제법 틀을 잡았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세운 시안의 성벽을 돌아 북쪽에 위치한 기차역에서 버스는 정차한다.

일찍이 진나라 시황제가 수도로 삼은 시안은 그 후 한나라와 당나라의 수도로 국제적으로 이름을 높였다. 촉촉이 내리는 비에 우산을 벗삼아 시내를 어슬렁거린다. 대로변을 약간만 벗어나면 중국 한족의 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재 국제관광도시로 이름이 높아서인지 화려하고 거대한 호텔과 백화점이 시 한복판을 점령하고 있고 수 많은 젊은이들이 서양과 한국의 문화 쫒기에 여념이 없는 활기찬 도시이다. 길 여기 저기 구걸하는 이와 장애인들이 관광객들의 값싼 동정심을 유발한다.   거리 곳곳의 호텔은 현관문에 커다랗게 짧은 시간 방을 빌려준다는 간판을 내건다. 개방화와 자유화의 현주소 같아 씁쓸했다.
시안 시내의 종루 근처의 야시장에 갔다. 관광객으로 흥청거렸다. 역시나 주인은 한족이고 일하는 이는 소수 민족이다. 투루판의 야시장이나 그전 우루무치의 야시장 이건 비슷한 모습이다. 자유화와 개방화란 곧 자본주의화를 의미하고 90년대 말이후 중국의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단을 내딛고 있다. 의료와 교육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사라졌다고 한다. 귀족형 사립학교의 광고가 공중파 텔레비전을 타고 화끈하게 그 학교 출신의 북경대 재학 중인 졸업생이 학교 광고를 한다. 시장에서는 단돈 120원짜리 식사를 위해 줄을 서는 서민들이 있는 반면 백화점에는 수백만원 옷과 수천만원 시계가 팔려나가고 있다.
계급 사회의 철폐를 내건 사회주의의 이념은 없고 선전만이 난무한다. 세계인민대단결의 구호만 있고 내부에는 민족간의 착취와 억압의 강화되고 있다.


                         (시안 시내의 백화점과 호텔 자본주의 어느 나라보다 흥청인다)




__다시 북경
마지막 날 밤 북경시내를 산책하면서 조명을 받아 화려하게 빛을 발하는 천안문주변을 보았다. 89년 당시의 수많은 대학생과 민중들로 매워졌던 광장이 이제는 관광객과 사복 공안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휘황찬란한 천안문 주변의 야경과 묘하게 공안의 위압적 태도와 막무가내의 행동에  아무 말 못하는 중국 민중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
               (허망한 구호로 천안문은 장식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북경과 상해의 마천루와 화려한 야경에 혹했던 그리고 유적과 유물에 경탄만 했던 여행객이었음을 반성하게 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8 [뜨거운 감자] “성과급”의 재구성 file 진보교육 2007.09.23 2540
27 [초점] 2007년 대선, 교육 정책의 화두는? file 진보교육 2007.09.23 1411
26 [열공] 사회주의 교육강령을 목표로 - 21C 사회주의 교육 연구모임 file 진보교육 2007.09.22 1758
25 [서평] 『88만원 세대』, 우리 제자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하여 file 진보교육 2007.09.22 1664
24 [블로그에서2] 아줌아의자리 / 줄 file 진보교육 2007.09.22 1437
23 [쓰레기] 이랜드 자본과 조중동 file 진보교육 2007.09.22 1496
22 [해외는지금] 만인을 위한 고등교육: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2) file 진보교육 2007.09.22 1676
» [해외는지금] 중국의 오늘과 내일 file 진보교육 2007.09.22 1571
20 [논단] 대학 구조조정이 가져온 변화 file 진보교육 2007.09.22 1655
19 [현장르뽀] 진리는 없고 돈만 남은 대학 file 진보교육 2007.09.22 1616
18 [현장르뽀] 전국 지자체들의 입시 사교육 시키기 경쟁실태 file 진보교육 2007.09.22 1907
17 [담론과문화] 학벌 사회, 또 하나의 MATRIX? file 진보교육 2007.09.22 1370
16 [담론과문화] 한스 아이슬러에 주목한다. file 진보교육 2007.09.22 1727
15 [담론과문화] ‘여’교사 그리고 미디어 file 진보교육 2007.09.22 1959
14 [담론과문화] 학력 위조 권하는 사회,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file 진보교육 2007.09.22 1512
13 [맞짱칼럼] 땅콩선생, 인권교육 사수기 file 진보교육 2007.09.22 1710
12 [진보칼럼] 자전거 전국일주에 나선 까닭 file 진보교육 2007.09.22 1215
11 [게시판에서] 대학평준화 꿈이 아닙니다. file 진보교육 2007.09.22 1547
10 [현장스케치] 자전거가 간다 - 목포강연회 file 진보교육 2007.09.22 1267
9 [블로그에서1] 2008대학입시 안습 file 진보교육 2007.09.22 1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