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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진보칼럼] 자전거 전국일주에 나선 까닭

2007.09.22 16:35

진보교육 조회 수:1215

[진보칼럼] 자전거 전국일주에 나선 까닭

정진상 (경상대 사회학과)


독자들이 이 글을 접할 무렵이면 아마도 경상도 어디쯤 국도의 갓길을 따라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젓고 있을 터이다. 그 때쯤이면 혼자가 아니라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이 같이 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전거에 ‘대학평준화’라고 새긴 깃발을 하나 꽂고 전국을 돌기로 처음 마음먹었을 때에는 답답해서였다. 입시교육의 모순은 갈수록 더해 가는데 교육운동은 답보상태에 있는 것 같이 갑갑했다.
마침 올해가 안식년이어서 자전거로 무작정 달리고 싶기도 했다. 교육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몇 분께 이런 생각을 전했더니 기대 이상으로 반색을 하면서 사람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마침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가칭)’를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 이 준비위원회의 첫 사업으로 ‘학벌철폐,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자전거 전국 2000km 대장정’이라고 제목을 붙여 거창한 행사로 만들었다. 8월 30일부터 9월 20일까지 22일간 전국 64개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2250km의 여정이다. 졸지에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배우가 된 셈인데 나로서는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이다.
‘학벌철폐,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라고 쓴 깃발에 대해서는 이제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모순이 응결된 지점이 입시교육이라는 사실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학벌사회와 대학서열체제로 인한 입시교육은 한참 자라는 아이들의 몸과 영혼을 망치는 주범이다. 무한 입시경쟁이 지속되는 한 학교현장에서 교사들이 참교육을 실천할 여지는 없다. 학부모들은 자식을 대학서열체제에서 한 등급이라도 높이려고 사교육비를 대느라 등이 휠 지경이다. 현행 대학입시제도를 폐지하고 대학을 평준화하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도 이제 비밀이 아니다. 문제는 교육운동이 이른바 현안투쟁에 발목이 잡혀 대학평준화 의제를 항상 ‘장기적’ 과제로 설정해 왔다는 것이다.
아마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직후, 변화에 대한 기대 속에서 전교조를 비롯한 교육사회단체가 모여 범국민교육연대를 결성하고 대학평준화를 핵심내용으로   <공교육 새판짜기>를 민중적 교육개편의 청사진으로 제출하고 본격적인 투쟁을 벌이려고 했었다. 노무현 정부는 일반의 개혁에 대한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전방위적으로 밀어부쳤고 교육운동 진영은 교원평가, 성과급제, 자립형 사립고, 국립대 법인화 등을 막아내야 했다. 이것뿐이 아니었다. 더 오른쪽에서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여기에 한 술 더 떠 이른바 3불정책(고교등급제, 대학본고사, 기여입학제 금지)을 폐지하라고 ‘떳떳하게’ 주장해 왔다. 논술시험이 쟁점이 되었을 때나 고교등급제가 문제가 되었을 때 교육운동 진영이 3불정책을 고수하라고 정부 편에 서서 싸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3불정책을 철저히 고수한다고 입시교육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내신 반영비율을 높이면 공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을까? 교육운동 주체들이 정말 이러한 투쟁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할까? 아마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계급재생산 구조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또 국민 여론을 등에 없고 그럴듯한 논리를 동원하여 정부가 추진하는 교원평가나 성과급제를 저지투쟁으로 정녕 막아낼 수 있을까? 열심히 싸우면 당분간 연기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수세적 싸움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싸움에서는 전진은커녕 시간이 갈수록 밀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 싸움에서 물러날 수도 없다. 여기서 밀리면 나중에는 다시 추스르기도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갑갑한 일인가.
반격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요즈음 불거져 나온 학력위조 사건에서 보듯 학벌주의는 우리사회의 가장 강력한 지배 이데올로기로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학벌주의의 이면인 무한 입시경쟁이 바로 가장 약한 고리이기도 하다. 학벌주의가 강한 만큼 대학서열체제가 강화되고 입시경쟁이 치열해지며 이로 인한 모순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가장 약한 고리를 잡아야 돌파구를 열 수 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라는 격언이 있지 않은가. 언제까지 ‘장기적’ 과제로 남겨 둘 것인가. 현재의 싸움에서 계속 밀린다면 장기적 과제를 중단기적 과제로, 나아가 당면과제로 설정할 수 있는 그런 때는 결코 오지 않는다. 이것이 ‘대학평준화’를 당장의 과제로 내걸어야 하는 까닭이다.  
학벌사회와 무한 입시경쟁 속에서 학생이든, 교사든, 학부모든 두 마음이 있다. 좋은 대학을 목표로 하루 종일 시험기계가 되어 있는 학생들이 창살없는 감옥 속에 있는 자신을 보지 못할까? 학원 선생을 경쟁상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교사들이 참교육에 대한 꿈을 완전히 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식들을 볼모로 잡혀 사교육비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학부모들이 이 어처구니없는 게임을 정말로 달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 마음은 지금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구조에 굴복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다른 한쪽 가슴은 부글부글 분노로 끓고 있을 터이다. 그러한 분노에 물꼬를 트는 것이 운동의 과제가 아니겠는가. 학벌주의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는 대중 모두가 다른 한쪽 가슴에 품고 있는 분노를 끌어내어 반격의 대열에 세우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과제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준)’가 제기한 문제의식은 그간의 긴 우회로를 거쳐 반격의 핵심 고리를 잡았다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문제제기만으로는 거대한 학벌주의 이데올로기를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경험한 바다. 지난 2004년 총선 때 민주노동당이 ‘서울대폐지,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를 제기하자 서울대와 보수언론 등 학벌 지배권력이 잠깐 놀란 듯하였으나, 이 슬로건이 대중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하자 ‘대학평준화’의 열망이 이내 사그러들지 않았던가. 지배 이데올로기와의 싸움에서 공중전은 지상전을 조직하지 못하면 결코 이길 수 없다. 지역에 있는 학생, 교사, 학부모를 묶어 세워 대중운동으로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이번 범국민운동본부도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없다.
누가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폭발력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있다. 그러나 입시경쟁에 포박되어 있는 학생들이 먼저 나서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최근 민중학부모회를 만들려고 한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지만 이들이 선두에 서기에는 해결해야 할 조직적 과제가 많다. 따라서 시작은 교사운동의 몫일 수밖에 없다. 학생과 학부모를 매개하는 위치에 있는 교사는 전교조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미 가지고 있지 않은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맞서 교사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전교조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역량의 상당 부분을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일에 쏟아야 한다. 계속 밀리고 있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저지투쟁에서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사실 나는 몇 년 전부터 전교조 지부, 지회 강연을 다니면서 ‘입시폐지, 대학평준화’의 깃발 아래 지역의 교육운동 주체들이 결집하여 전국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당면한 교육운동의 핵심 과제이며 교사운동이 그러한 운동의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런데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는 현재의 답답함이 내가 자전거 전국일주에 나서게 된 이유이다. 한 바퀴 돌고 나면 이 답답함이 좀 풀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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