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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로 돌아가자
―초등일제고사 부활의 의미

이윤미 |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


1.
서울시 교육청에서 2005년 1월 “학력신장” 일환으로 8년 전에 폐지된 초등일제고사를 부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학교 여건”을 우선 고려하여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되어 있으나, 이미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주요교과”에 대한 평가를 실시할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초등교육 현장에서 상당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학력신장의 필요는 학력저하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다. 이 때 학력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서울시 교육청의 “서울학생학력신장방안”(2005.1.31.)에 의하면 학력은 “교육을 통하여 학생들이 얻게 되는 지식, 기능, 태도, 가치관 등을 포괄하는 능력과 성향을 일컫는다.”고 되어 있으며, “교과지식 뿐만 아니라 사고력, 문제해결력, 창의력 등의 지적 능력과 성취동기, 호기심, 자기관리 능력 등의 정의적 능력까지를 포함한다.”
이러한 정의는 상당히 포괄적이고 타당하며 그 자체로서는 문제가 없다. 적어도 개개인들에게 교육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로서 큰 손색이 없다. 그러나 상당히 포괄적으로 정의되어 있어 이렇게 정의된 학력이 “저하”되었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학력을 구성하는 하위 요소들에 대한 정밀 분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저하된 학력을 신장하는 방법 또한 쉽게 규정하기는 어렵다.

2.
그런데 여기서 흥미 있는 것은 학력신장을 위하여 도입된 방법이 학업성취도 평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학업성취도평가의 본질은 기초 학력에 대한 정확한 측정의 의미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학생의 “상대적 위치”를 알려주는데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일부 학부모들에게 변화에 대한 “반가움”을 표하게도 한다는 점이다.
초등학교에서 점수에 의해 석차를 매기는 평가가 없어진 이후 나름대로의 교육적 의미 부여도 꾸준히 이루어져 왔지만, 이와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학력저하” 논쟁도 끊임없이 일어난 것이 사실이다. 초등학교에서의 학업성취도 평가의 도입은 이러한 학력저하 논쟁이 초등학교에 대한 정책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제까지의 학력저하에 대한 논의는 실제적 학력저하와 관련이 될 수도 있으나 ‘변화한 학력 개념에 대한 부적응’에 기인하는 측면도 있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즉, 교과지식에 대한 측정과 서열화로 인식되었던 기존의 학력개념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적어도 초등교육 수준에서―창의성이나 활동중심의 교육과 절대평가식의 평가개념이 자리잡게 되자 일종의 “부적응적 반응”이 형성되어왔던 것이다. 이러한 부적응의 결과로 종래의 익숙한 평가방식으로 회귀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우려 섞인 논의가 제기된 셈이다.
“학력” 개념의 변화가 널리 공유되지 못하는 근본 이유의 하나는 대학입시 등 교육현장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제들이 (학력 개념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사한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학교현장의 교육과 시험 대비 교육이 계속 불일치하여 이중적 양상을 띠게 된 것이라고 본다.
학생의 다양한 능력이 다양한 능력대로 인정받고 직업적 전망으로 이어지게끔 “선발 체제”가 발달되지 못하고 여전히 서열화된 형태로 대학 입시가 이루어짐에 따라 창의성 교육 등을 추구하는 새로운 교육 모델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
이러한 현실적이고 어쩌면 교육 구조적인 측면과 더불어 지적할 문제는 특정담론이 현실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특히 “경쟁”에 대한 과신(過信)이 그것이다. 교육에서 경쟁은 매우 자연스럽고 실제로 상당히 “교육적”이기도 하다. 남에 견주어 나의 장점과 한계를 알고 더 나아지고자 하는 노력은 경쟁에서 나오며 이것은 그 자체로서 정당하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경쟁이라는 용어에는 그보다는 특정한 사회적 의미가 부가된 방식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교육개혁의 최종 근거가 되는 “국제경쟁력 제고”라는 목표와 신자유주의적 이념에 의하여 정당화되어온 시장주의적 “경쟁”의 의미는 경쟁이 지니고 있던 종래의 교육적 의미에다 특정한 이념적 가치를 부가했다.
학력저하가 문제라면 학력을 높일 다양한 교육방법들이 개선안으로 제시되어야 하고 학업성취도를 높이기 위한 학력준거의 재고 등이 고려되어야 할 텐데 이를 학생들의 일제고사식 평가를 통하여 접근하려는 발상은 논리적이기보다는 “이념적”이다. 즉, 학교교육의 정상화 혹은 내실화를 진지하게 논의하기보다 일제고사식 방식의 경쟁으로 학력저하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제한된 처방일 뿐 아니라 “교육수요자의 경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최근의 낯익은 해법이기도 한 것이다.

4.
이러한 해법이 지닌 “제한성”은 실제 교육현장에서 쉽게 관찰된다. 학업성취도 평가를 하는 것은 해당 학교가 학생들의 학력을 진단함으로써 기초학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학력에 대한 진단은 현장에서 수업을 담당한 교사라면―적어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일상적으로 이루어져 왔을 활동이라고 여긴다. 만일 그러한 일상적 점검을 하지 않은 채 이루어져온 교육이라면 그것은 교육의 방향을 잡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으므로 오히려 그 점에 대한 연수나 장학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집단적으로 동일한 잣대에 의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평가는 학교교육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학생의 학력실태를 교육적으로 판단하는 진단적 의미를 넘어서는 기능을 하게 된다. 총점화하고 구분 짓고 비교하기 위한 기능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육의 목표가 학생들의 능력을 획일화한 준거에 의해 점검하려는 것에 있지 않다면 이러한 평가 방식은 교육적 순기능보다는 교육외적 역기능을 더 많이 지니게 될 것이라고 본다. 사실상 오래전부터 이미 한 학기에 두 번씩 학년별로 실시하는 일제식 시험을 볼 때면 ‘시험준비를 하는 아이들 때문에 온 동네가 다 조용하다’는 말들도 있어 왔다.
이는 중고등학생들 뿐 아니라 초등학생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받아쓰기”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기 위하여 밤늦도록 준비를 시키고, 선행학습을 위해 영어, 수학 학원으로 저학년부터 다니는 아이들은 이미 서울시교육청의 발표 이전에도 많이 있었다. 초등학교 일제고사 실시를 통해 이러한 아이들에게 가중될 압박도 문제이고, 학교 외에는 별다른 교육의 장이 없는, 학교의존도가 높은 아이들이 경쟁의 강화로 인해 상대적으로 경험하게 될 장단기적 불이익도 예견된다.
더욱 “딱한” 현실은 그렇게 준비해서 치르고, 때때로 좋은 점수를 받기도 하는 일회적 시험들이 학생의 “학력신장”에 궁극적으로 어떤 기여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검증된 바가 없거니와 그것을 경험적으로 자신(自信)하는 교사나 학부모도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강박적 불안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학교교육을 제대로 서게 하고 학부모들의 맹목적 불안을 불식시키는 역할은 교육정책의 몫이기 때문이다. 학교현장을 “교육 실험장”으로 활용하기에 앞서 교육 대계(大計) 안에서 학교급별 교육목표, 학력준거 등을 점검하고 그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교육적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