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2호 기획1_지역산별로 가자

2005.10.10 15:12

jinboedu 조회 수:1455

지역산별로 가자*
―계급별 산별노조 전망과 과제

김영수 |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부소장


1. 들어가며

한국의 민주노동운동은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건설된 뒤로 지금까지 기업별 노조를 산별 노조로 개편하거나 건설하는 투쟁을 벌여 왔다. 94년 이후, 과학기술노조, 건설엔지니어링 노조,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등 35개 산별노조가 건설되었으며 민주노총 조합원의 45%가 산별 조합원이다(전교조 9만 명을 빼면 20만 명 남짓).
그러나 세계 각국의 경험으로 보아, ‘산별 노조’라 하여 언제나 민주성과 자주성, 투쟁성과 계급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한 나라에 산별노조를 대표하는 전국 중앙조직이 여럿 있는 곳도 있고, 하나의 산별노조로 뭉쳤지만 계급투쟁을 오히려 약화시키기도 한다.

2. 경과

지금 민주노조진영이 구상하는 진행표는 “산별 연맹을 중심으로 산별노조로 전환한다. 그러고 나서 기업별 노조들이 조직을 전환하거나 小 산별 간에, 또는 小 연맹 간에 조직을 통합한다.”는 것이다. 토론거리는 “건설투쟁을 통한 조직 건설이냐, 조직 통합을 통한 건설이냐”였다. 둘 다 ‘공동투쟁’을 말하지만, 전자가 산별노조 건설투쟁을 하나의 사안으로 상정하는 데 견주어, 후자는 다양한 투쟁 사안들을 통합 산별노조로 대응하자는 주장이다. 어느 쪽이든 노조 운동의 ‘양적 성장’이 ‘질적 성장(계급단결, 계급대립 강화)’를 담보해야 할 것이며, 산별노조를 어떻게 건설할지, 구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조직 통합’이라는 대안은 비정규직 실업자를 포괄하기 어렵고, ‘투쟁을 통한 산별노조 건설’ 주장도 이미 다양한 조직으로 편제된  조합원들에게 ‘자기 조직을 해소하고 새 조직의 주체로 참여할’ 동기를 부여하지 못하는 한, ‘선언’에 머물기 십상이다. 그동안 민주노총은 이에 대한 구상을 진전시키려고 애썼지만 ‘보고서 운동’에 머무른 느낌이 짙다.
최근에 ‘1국가 1노조’를 지향하는 ‘전국 단일노조 건설’ 제안도 나왔다. 그런데 기존 조직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쉽사리 나서지 않을 것이고, 미조직 노동자들이 ‘주체’로 나서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또 전국단일노조가 오히려 ‘관료화’를 낳을 위험도 있다. 그러므로 제조업 산별노조, 서비스업 산별노조 등 몇몇의 대산별노조를 건설하여 이를 토대로 전국산별노조총연합, 또는 전국 산업별단일노조를 만드는 게 더 현실적일 것 같다.

3. 산별노조 건설의 조건

98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전면화’된 뒤로, 자본의 집적과 집중으로 한국 대자본은 이미 ‘초국적자본’으로 발전했다. 노동시장은 결정적으로 ‘분단’되어, 비정규직과 실업자들은 생존의 위기와 노동의 위기라는 이중고를 겪게 되었다. 조직율이 높은 정규직의 경우도 현장권력이 무력화되어 운동의 위기를 낳고 있다.
94년 이후, 산별노조가 모습을 드러내서 산별노조 위원장이 체결권과 파업권을 보유하게 되고, 조합비가 본조로 일괄 집중되었다.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는 산별 중앙교섭체계를 마련해 ‘산별 합의’을 이끌었다. 그러나 계급적 대중조직으로서 충분하게 구실하지는 못했다.
첫째, (小)산별 결성이 직종/업종 단위조차 계급적 단결을 토대로 하지 않았다. 비정규직을 포괄하지 못했으며, 이들을 대표하는 활동도 미약했다.
둘째, ‘계급 대립을 강화한다.’는 전략적 목표도 이뤄지지 못했다. 조직화된 노동자들의 이해만 대변했을 뿐, 계급적 이해에 근거하는 전선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는 투쟁목표가 ‘기본협약 쟁취와 산별 중앙교섭체계 구축’으로 제한된 데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셋째, 기업단위로 묶인 지부, 지회, 분회 체계는 내부 의사소통에는 득이 되었을망정 ‘산별노조의 지도력’을 세우는 데는 걸림돌이 되었다. 한 사업장에 갈등이 생겼을 경우, 노조 중앙의 지원투쟁과 간부 수준의 연대투쟁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넷째, 가입된 사업장들이 적은 지역에서는 소산별 노조의 구실이 매우 미약했다.

4. 계급적 산별노조의 건설 과제

첫째, 계급주체의 단결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모색해야할 대안은 ‘<지역별 산별노조>를 토대로 하는 산별노조 건설운동’이다. 계급적 단결을 가로막는 ‘직종별/업종별’ 체계를 폐기하고, ‘자본의 요구’에 따른 ‘산별 구획’을 폐기하고, 단위사업장마다 묶이는 체계도 폐기하여, 지역의 계급적 공동체성을 북돋는 ‘횡적 연대체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역별 산별노조’는 산업을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나누어, 어느 지역의 노동자들을 두 개의 노조로 묶는 것이다. 이 지역산별 노조들이 모여 전국산별노조연맹을 만들어 ‘지역 노조’가 맡기 어려운 단체협상이나 국가/자본과의 전국적 대립전선을 형성한다(지역에 있는 기업단위 노조는 인정하지 않는다).
지역별 산별노조의 싹은 ‘지역 일반노조’에서 찾을 수 있지만, 최근 공공연맹에 가입한 ‘지역공공서비스 노조’도 또 다른 전형이 되었다. 공공연맹의 광주전남 공공서비스노조, 대구경북 공공서비스노조의 경우,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혹은 업종과 직종이 다른 노동자가 하나로 조직되었다. 복지분야, 문화예술분야, 시민단체활동 분야 등이.
한 간부의 말.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으나 ‘기우’에 불과했다. 다른 사업장 투쟁에 결합하는 것을 ‘연대’가 아니라 ‘내 조직의 문제’로 여기게 되자, 교섭체계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국적 네트워크 사업장에 속해 있는 한 지역 사업장이 공공서비스노조에 가입한다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공공서비스노조를 토대로 하는 전국조직을 만들어, 중앙 차원의 산별교섭을 끌어내면 된다. 지역에 있는 기업별 노조들이 ‘공공서비스노조’에 가입했을 때 일어날 교섭체계 문제를 두려워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공공연맹에 가입한 전국네트워크 사업장은 나중에 가입한다 해도 지역에 있는 지하철 노조나 독자적인 사업장들이 먼저 가입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이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지금 추진되는 업종/직종/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산별노조가 과연 조합원의 이해를 보장해 줄 수 있을까?” 당장에야 구실을 한다 해도 길게 보아, 자본축적 구조의 변화로 생겨나는 문제들을 담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공서비스노조는 사회보험 노조, 전기안전공사, 발전노조, 철도노조 등 전국네트워크 사업장을 조직해야 하는데 이 사업장들이 먼저 스스로 기업별 노조를 해체하고 공공서비스노조로 들어오면 길은 더 빨라질 것이다. 보건의료노조, 전교조, 공무원노조도 ‘직종별 노조’의 한계를 공공서비스 노조로 합류하여 극복하는 게 바람직하다.
제조업 분야도, 울산이나 마산 창원의 노조들이 ‘금속노조의 지부, 분회’가 아니라 ‘지역별 산별노조’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2007년부터 ‘복수 노조’를 건설할 수 있으므로, 전국네트워크 사업장들이 지역산별에 가입하는 데 걸림돌도 없어진다.
전국 산별로 가는 데 과도기로는 민주노총 중앙을 그대로 두되, 거기 조직돼 있는 업종/산별 연맹을 지역 산별로 재편하자는 말이다. 물론 조직화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반발할 수도 있는데, 그러나 지금의 구조로 ‘계급단결’을 이뤄낼 수 있을지, 노조 지도부들의 기득권에 따른 반발이 아닌지, 냉철히 따져야 한다.
물론 ‘헤쳐 모이자’고 해서, 곧바로 산별 건설운동이 힘을 받고 업종 산별연맹이 금세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산별 건설’의 과도기 주체인 만큼, 더 이상 자신의 과업을 늦출 수 없다. ‘업종 산별의 울타리를 넘어 전국 수준의 계급투쟁’을 벌여내야 한다. 전국적 수준의 계급투쟁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또한 지역별 산별노조 건설운동으로 해결할 일이다.

지역산별의 장점이 무엇인가? 첫째, 계급주체들의 ‘단결’에 기초한 산별노조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 그저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에게 ‘가입의 문’만 열어두는 게 아니라, 양쪽이 하나로 단결하여 새 형태의 노조를 결성하는 운동이다. 만일  기업별 노조가 ‘종업원 의식’을 극복하지 못하거나, ‘교섭체계의 상’을 전환할 수 없어 지역산별에 가입하지 않는다면, 직종/업종/기업체계를 고집하는 산별노조 운동만이 지속될 것이다.
둘째, 노동자들뿐 아니라, 지역 사회 구성원을 하나로 단결케 하는 토대가 된다. 가령 울산노동자들이 제조업 산별노조와 서비스업 산별노조로 묶인다면 이들은 지역생활에서 비롯되는 여러 투쟁의제를 계급적 의제로 바꾸어낼 역량을 세울 수 있다. 민주노총과 각 산별연맹의 지역본부로, 혹은 (소)산별노조의 지역지부로 분할돼 있는 조직의 비효율성을 줄인다.
셋째, 노조와 조합원 간의 소통을 높인다. ‘중앙조직 ↔ 단위현장’의 역할 분담론이 보편화될수록 중앙조직은 정부나 국회를 쳐다보는 정책 중심의 활동을 벌이고, 단위현장은 ‘투쟁’만 요구받는다. 서구 산별노조의 관료화 현상이 타산지석이다.
이제까지 산별연맹의 중앙조직들도 자기 산하 조직의 단위현장에 대해 민주노총 중앙이 ‘직접’ 소통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지역산별’이라고 관료화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꽤 덜어낼 수는 있다.
넷째, 조합원 간의 실제적인 연대를 높일 수 있다. 투쟁 사업장을 실제로 도울 수 있는 곳은 그 지역이다. 바깥에서는 투쟁기금의 전달이나 간부들의 방문으로 때우는 ‘깃발 연대’와 ‘웅변 연대’에 머무르기 십상이다. 그 지역의 사업장에서도, 노조 중앙이나 본조가 다른 지역에 있는 경우, ‘노조 내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이유로, 힘 있는 연대가 잘 이뤄지지 못했다.      

5. 계급대립을 강화하는 산별 건설운동

90년대 초반의 현대중공업, 94년의 현대정공과 한라중공업, 98년의 현대자동차, 99년 서울지하철, 2000년 대우자동차, 2002년 발전/철도/가스, 2003년 근로복지공단 등에서 계급 대립전선이 형성되었지만 ‘기업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그 원인으로 첫째, 계급적 주체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 둘째, 노조 활동이 <임금단체협상투쟁 → 하반기 노동자대회>로 관례적인 일정에 따라 진행되었다. 노조 일상활동이 과연 노동자를 계급 주체로 세우는 과정이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를 극복하려는 것이 ‘산별노조’이지만, 단순히 ‘건설’하는 것만으로 “관리하는 노조, 양적 성장 치중, 종업원의식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다. 운동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산별 건설운동은 ‘계급 대립전선 형성 역량’을 실제로 높이는 데에 복무할 일이다. 그러려면 ‘노동현장의 권력’과 노동자 계급의 ‘지역 정치’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금속산별 토론회에서는 ‘현장 조직력 취약’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짚었다. “기업별 노조체계와 달리, 조합원들이 직접 노조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줄어든 점, 상부 방침에 따른 동원식 투쟁, 이로 인한 간부들의 피로 누적과 자신감 결여, 간부 기피 현상, 지회 상집과 대의원들이 의무에 비해 권한이 약해진 점, 수세적 투쟁이 이어지는데도 대안을 제출하지 못하는 현실”.
‘현장권력’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정의해본다. “노동현장에서 생겨나는 모든 대립과 갈등을 현실화할 수 있는 힘, 직접 행동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노동현장을 스스로 통제하는 힘, 현장 대중이 ‘권력 주체’로 서게 하는 힘, 공장생활에서 ‘노동과 상품의 생산’을 통제하는 힘.” 이 힘들은 노조의 관료주의와 대리주의에서 벗어나게 해줄 물적 토대이다.

‘현장 권력’은 제도이든 비제도적 차원에서든 이런 힘을 길러내는 투쟁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강해진다. 그동안 주요 대기업 사업장의 ‘현장 조직’들은 기업단위에서 현장권력을 키우는 활동, 다시 말해 노동현장의 사소한 문제조차 계급적 투쟁의제로 바꿔내는 활동을 벌여왔다. 그러나 이는 기존 노조 권력을 비판하거나 교체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따라서 노동현장에 대한 국가/자본의 통제가 일상화되고, 현장조직의 활동이 멈칫거리는 현실을 타개하려면 현장권력을 높일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 핵심 내용은 다양한 주체들의 ‘현장 권력’과 노동자계급의 ‘지역 정치’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것이다. 현장권력의 문제가 ‘기업 울타리 안’으로 제한되는 게 아니라, 지역산별과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주체가 ‘지역의 계급적 투쟁전선’을 넓혀낼 때라야 ‘현장권력’은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단위 현장에서 일하는 활동가조직들도 이제는 ‘인식의 전환’을 모색했으면 한다. 단위현장의 문제는 ‘지역별 산별노조’에 맡기고, 대신 현장권력과 지역의 노동자계급정치를 높일 ‘지역 네트워크’ 형성 주체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지역의 투쟁을 전국적 계급대립으로 높이는 과제는 ‘전국산별 연맹’이 맡으면 된다. 이러한 돌파는 의회주의/선거주의에 쏠린 ‘정치세력화 흐름’을 돌리는 과제와도 닿아 있다.

6. 결론

언젠가부터 민주노조 진영은 ‘회고와 반성’은 접어두고 ‘자아도취적 운동’을 벌이는 게 아니냐 하는 의심이 일어났다. 올 들어 민주노총은 ‘혁신 과제’를 제출했지만 이를 ‘조직 체계와 운영’ 문제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은 ‘계급적 산별노조’를 만드는 과도적 주체로서 ‘자기 정체성’을 복원해야 한다. ‘계급 단결/강화’를 그저 ‘선언’하는 것은 하릴없는 일이다. “말이나 선언은 좌익적이지만, 행동과 실천은 우익적인 노조운동은 자신과 조합원을, 사회와 역사를 속이는 파렴치한 짓”이라고 아프리카의 한 학자는 말했다.
‘회고와 반성’이 필요한 또 다른 문제는 ‘계급정치를 인정하지 않는 흐름’이다. 김영삼정권 이후, 여지껏 부르주아계급의 ‘정치놀음에 판돈’만 대주면서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잃어버린 본전을 되찾을 것’이라는 허상의 놀음판에 여전히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