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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논단_'선언'을 새롭게 새긴다

2005.06.28 13:20

jinboedu 조회 수:1406

송재혁 | 남서울중


올해는 외세에 의하여 분단된 지 60년, 일본 제국주의에서 해방된 지 60년이 되는 해이면서, 6·15 남북공동선언 5주기가 되는 해이다. ‘선언’ 이후 지난 5년간의 사회 변화를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북이라는 적을 상정하고 적대함으로써 수구세력이 획득하였던 기득권이 상당한 타격을 입은 반면, 한반도과 국제 이해관계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풍토 속에 사회 내부에도 새로운 질서가 서서히 성립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선언’은 비록 미국 자본과 남한 자본의 이해가 반영되었고 민중 주체의 성과로 보기에 미약하다는 한계가 있지만, 우리 사회의 특수성으로서 ‘분단’의 문제가 엄연히 존재하여 다른 사회와 달리 자본의 지배 형식이 국가간 종속적 관계에 터하여 더욱 야만적인 양태를 띄고 있고 사회적, 개인적 맨탈리티가 확고하게 자본 친화적, 수구보수적으로 형성되어 여전히 사회 진보의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을 보건대 , ‘선언’과 그 이후의 사회의 변화에서 발견되는 긍정적 흐름은 과소평가되기 힘들다.

‘선언’ 이후 변화되어 온 사회의 흐름은 미국의 북에 대한 이라크 식 처방을 포기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였을 것이다. 6자 회담은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빅딜을 통한 과감한 돌파가 점쳐지고 있다. 북한은 핵개발을 기정사실화 하여 미국을 최대한 압박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전쟁 행정부’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언급하고 있으며, 북미 수교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야말로 한반도 정세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우리 사회에 자주와 평화의 커다란 기운을 일궈내고 과시하는 일은, 긍정적인 흐름이 언제라도 뒤틀리면 원위치 되곤 했던 과거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고 공고히 자리하게 하는데 적잖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동아시아를 자본의 공공연한 영향력 내에 두려는 지배 전략에 크게 수정이 이루어질 리가 없겠으나, 이라크식의 야만적인 무력 개입은 반드시 포기하게 해야 한다. 전쟁을 막아내고 평화를 구축하는 것은 무엇보다 화급한 생존의 문제이다. 평화·공존·통일의 문제가 자본 지배의 근원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일차적으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고 수구세력의 입지를 줄여서 안정된 진보의 토대를 획득한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해마다 6월부터 8월까지는 남북과 해외가 광복을 함께 경축하고, 통일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려는 기운이 높아지는 시기이다. 올해에는 남북의 각계각층이 모여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공동행사준비위원회’를 결성, 남과 북이 더욱 단합된 모습으로 민족 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은 쉽게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남과 북의 교육자(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조선교육문화직업동맹)들이 교육본부를 출범시키고 6.15공동선언을 주제로 6월 13일부터 18일까지 남북공동수업을 실천하기로 한 것은 우리 교사들에게 정세의 관망자를 넘어 실천의 담지자가 되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6·15 선언을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학교에서 더 넓어진 평화·공존·통일 담론의 입지를 활용하여 ‘선언’의 정신을 교직원, 학생들과 나누고 통일사탕 나누기와 통일공동수업을 힘차게 벌여야 한다.

간증 하나 하자면 나는 군대에서 한 때 이념교육 교관으로 있었다. 한 마디로 우리의 주적인 ‘북괴’에 대한 증오심과 환멸감을 일상적으로 최대한 고양시켜 각개 병사의 '정신 전력'을 드높임으로써, 군의 전투력을 제고하는 것이 그 임무였다. 소위 좌경사상의 범주에 드는 것들을 광범하게 다루고 정해진 논리로 비판한 후, 이어서 비난의 총탄을 ‘북괴’라는 과녁에 집중 사격하면 임무는 끝났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 반복되면 되었다. 질의·응답이 이어지지만 토론은 물론 없었다.

성공적인(?) 임무 수행 후 무사히 제대하여 교단에 선 지 이제 13년이 되어간다. 군대나 다름없는 학교에서 살아오던 중 6·15남북공동선언이 있자 통일교육의 기본 방향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어 교무실에 걸려있는 서울교육지표 액자에 '통일교육의 내실화'가 포함되기도 했었다. 희한한 것은 그럼에도 학교에서는 통일교육을 내실화 하려는 어떠한 토론이나 강조도 드물었고, 통일교육은 여전히 과거의 반공교육의 다른 이름으로 기능하는 구태를 크게 벗지 못하였으며, 참된 통일교육은 여전히 각성된 교사 개개인의 의지와 역량에 의존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슬픈 모습이다.

통일교육 뿐일까. ‘위’에서 화려하게 내거는 구호는 소박한 실천조차 담보하지 못한다. ‘아래’에서 가꾸어 온 교사들의 소박한 실천은 ‘위’로부터 끊임없이 방해받아 왔다. 이것이 오늘의 교육 위기의 형상이다. 아래로부터의 실천의 욕구가 위로부터의 힘에 의해 좌절되는 모습이 학교의 일상이다. 교육의 주체로 단 한 번도 서지 못해 온 교사들은 이제 포퓰리즘을 등에 업은 교원평가제라는 야만적인 구조조정에 의해 영원히 교육의 객체로 물러날 운명에 처했다. 따라서 통일교육의 참씨앗도 함께 고사할 위기에 처했다. 교육을 고작 인적자원개발 사업으로 인식하는 천박한 철학이 맨탈리티를 이루는 사회에서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척박해지는 토양에 끊임없이 씨를 뿌리며 희망을 일구는 몸부림은, 시지프스의 허망한 돌 굴리기나 세상의 종말을 예단하고도 사과나무를 심는 개인적 호사에 비할 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이 가히 우리 사회의 폭풍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 부실한 내용 때문에 교사들이 일반적으로 기피하던 통일교육 연수를 자청했다. 신자유주의 교육 재편의 마각이라 할 7차교육과정이 중학교에 적용됨에 따라, 범교과 학습이 가능하다고 하는 소위 '창의적 재량활동'이 신설되어 교사들을 창의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할 때에, 이 시간만큼은 아예 창의적으로 '이용'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창재는 통일교육을 소박한 수준이나마 계획적이고 안정적으로 실천할 조건을 주었다. 영상자료 시청과 퀴즈, 짧은 토론을 통해 통일 문제와 북한 문제, 그리고 한반도 주변 국제 관계 문제에 대해 사회가 맹목적, 피상적으로 심어준 편견을 학생이 스스로 발견하게 하고 새롭게 각성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사회 현상을 폭넓게 인식할 능력이 부족한 중학교 저학년에게는 특히 어려운 내용이어서 수업의 진행이 쉽지 않았지만, 통일이라는 단어 하나라도 가슴에 심어주려고 나름대로 애써왔다. 올해는 창재가 나에게 배당되지 않아, 몇몇 창재 담당 교사들에게 통일교육을 할 것을 제안하고 통일교육 프로그램을 매시간 제공하고 있다.  

지난 5월 31일에 있었던 우리 학교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 나의 주장 발표대회’에서는 제법 진지하고 진보적인 관점과 내용을 볼 수 있었다. 한 순간이기는 해도 가르치는 보람을 맛보았다. 나름대로 동료교사들과 함께 기울인 수년간의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6월 15일에 하려던 교내 ‘통일의 날’ 행사는 학교에서 20일로 연기하였지만, 35분정도를 확보하여 평화·공존·통일을 주제로 학교장 훈화, 학생의 주장 발표, 통일 영상 시청, 북녘사진전, 사탕 나누기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사실 통일교육은 가치롭다. 사회과나 도덕과의 한 부문을 초월하여, 교육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소중한 가치들을 내포한 보다 큰 카테고리일 것이다. 증오가 아닌 화해를, 적대가 아닌 친선을, 전쟁이 아닌 평화를, 힘의 우위가 아닌 공존의 관계를, 종이 아닌 주인의 삶을, 이상 사회에 대해 절망과 체념이 아닌 희망과 가능성을 가르치는 것이 통일교육이라면, 이는 곧 민족교육, 민주교육, 인간화교육이며, 시대가 요구하는 참교육의 중심축의 하나이다.
신자유주의 광풍의 시대에 허리 잘린 땅에서 사느라 이중고를 겪는 이 나라 교사들은 두 개의 과제, 노동교육과 통일교육을 요구받는다. 일제침탈기에 독립을 말하거나 실천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이고, 불평등의 사회를 살면서 평등을 말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이듯이, 사대와 분단의 나라에서 자주와 통일을 말하지 아니하는 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교사는 진실을 가르치는 자유인’이라고 한다. ‘진실’은 무엇이며 ‘가르치는 자유’란 무엇일까? 무거운 질문이다. 전교조가 공동수업 할 때마다 엄청난 비난과 저항이 있어왔다. 그래도 우리는 해야 한다. 아마도 ‘진실을 가르치는 자유인’에게는 진실을 말하는 ‘양심’과 가르치는 자유를 획득할 ‘용기’가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학생들과 통일에 대해 토론해 보면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아직도 반공투사들이 적잖이 발견된다. 대부분의 학생의 가정에서 조중동을 구독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보수적 가치가 강제 내면화되고 있다. 요즈음과 같이 사회 담론 지형이 복잡하고 천박하기 짝이 없는 시대에 학생들을 일차적이고 가십적인 언론과 인터넷에만 내맡겨 두는 것은 그 자체가 위험스러운 것이다. 통일교육 열심히 시킨 학생들을 데리고 지난 여름방학 서울교육청에서 시행하는 군 병영 체험학습에 인솔교사로 참여하였다. 멋있는 반공영화 한 편 시청하고 나보다 훨씬 잘 생긴 소대장의 1시간 강의를 듣고 나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니, 나의 일상적인 통일교육보다 1시간짜리 군대 교육이 학생들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슬프게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의 일상 환경이 제공하는 엄청난 영향력을 넘어서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가진 통일교육과 노동교육을 수행하려면 보다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통일교육이 위선이 되지 않으려면 교사가 먼저 확고한 통일교육관을 가져야 한다. 누구나 통일을 말하는 시대이지만, 저마다 딴 소리하는 부분이 통일 영역이다. 먼저 교사끼리 통일문제를 토론하는 가운데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인식의 일치를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권의 책과 한 곡의 음악을 추천하고 싶다.
상지대 총장 강만길 교수가 쓴 ‘우리 통일 어떻게 할까요(당대)’는 아이들과 통일문제로 토론할 때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다. 올해 통일학연구소 설립 10주년을 기념하여 한호석 소장이 논문집을 냈다(자주적 민주정부와  자주적 통일정부를 향하여, 코리아미디어). 이 책의 관점에 일일이 수긍하기는 힘들겠지만,
통일운동에 영향력 있는 학자의 논문이므로 한 번 읽고 토론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아리랑을 주제로 한 환상곡’은 북녘의 공훈예술가 최성환이 관현악 편곡한 것인데, 편곡이라기보다는 아리랑 주제에 의한 작곡으로 봐야 할 것이다. 북에서 아리랑을 주제로 한 작품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한 작품이라고 한다. 세상이 좋아져서, 인민예술가 김병화가 지휘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립교향악단의 연주가 올해 초 신나라레코드에서 국산 음반으로 나왔다. 이 곡을 잘 들어보면, 아리랑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부분부분 서구고전음악기법도 효과적으로 구사하여 보편성과 세계성을 획득하고 있으며, 특히 몇몇 부분에서 서구 관현악단과 매우 다른, 그리고 우리네 정서를 자극하는 독특한 소리를 목관, 금관 파트에서 들을 수 있다. 우리 악기를 개량한 악기를 서양 악기와 함께 배합편성하여 빚어내는 북한 교향악단의 독창적인 소리이다. 이 곡을 들으면 평화·공존·통일을 갈구하는 마음이 절절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