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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특집2_입시체제 변혁투쟁은 현안투쟁이다

2005.06.28 13:18

jinboedu 조회 수:1347

이현 | 경기고


1. (학생들의) 입시 체제에 대한 저항의 불꽃은 타오르고 있으나 (교육운동 진영의) 침묵은 계속되다.

입시 경쟁의 압박감에 못 이겨서 또는 입시기계가 될 것을 강요하는 입시체제의 냉혹함에 저항하여 학생들이 목숨을 끊고 있다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또한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는 친구들에게 노트도 보여주지 않고, 서로 대화도 잘 하지 않으면서 친구를 오로지 경쟁상대로만 여기고 있다는 살풍경한 모습을 전하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하지만 대학들은 이런 학생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학 자율성과 인재의 공정한 선발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우면서 사실상 본고사 부활을 의미하는 논술 등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입시 전형의 확대를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드디어 입시 체제에 대하여 극단적이지만 개별적인 방식으로 저항해왔던 학생들이 집단적인 저항을 시작하고 있다. 언론들은 학생들의 집단적 저항을 내신 등급제 반대라고 하는 부분적이고 부차적인 요구로 제한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입시 체제 전반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와 저항의지가 도도히 흐르고 있다. 아직은 규모도 크지 않고 방향도 모호하지만 입시 체제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의 불꽃은 타오르기 시작하였으며 그 하나하나의 작은 불꽃 속에는 거대한 활화산으로 터져 나올 수 있는 폭발성을 감추고 있다
학생들이 활발하게 저항하고 있는 반면 교육운동 진영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이 문제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율 스님은 천성산의 도롱뇽을 지키기 위해―물론 이때 도롱뇽은 생태 보호의 핵심적인 고리로서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목숨을 건 싸움을 하였다. 그렇다면 죽어가는 아이들의 목숨―마찬가지로 학생의 자살은 해당 학생의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의 죽음은 우리 모든 아이들의 죽음과도 같은 고통과 불안 그리고 비인간화를 상징하고 있다―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닌가? 지율스님과 같은 목숨을 건 싸움은 아니더라도 이런 사태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몸짓과 웅얼거림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교육 운동 진영 내에서의 이러한 이상한 침묵의 바탕에는 다음과 같은 암묵적인 동의가 자리 잡고 있다. ‘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입시 체제는 우리 사회에서 극복될 수 없는 필요악이야. 물론 그것이 나쁜지는 알지만 대안은 존재하지 않아.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이 입시경쟁에 잘 적응하고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뿐이지.’ 즉 입시경쟁은 필연적인 자연 법칙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2. 불안에 의해 순화된 아이들을 보며 학교 붕괴를 그리워하다.

20세기 마지막 해인 1999년은―물론 정확히는 2000년이지만―학교 붕괴가 정점에 달했던 해였다. 그러다가 2000년이 되면서 거짓말처럼 학교 붕괴현상은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학교 붕괴에 대한 어떤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았다는 말인가? 내가 아는 한 절대로 어떤 대책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사라진 것일까?
지금 국무총리인 이해찬은 억울하게도(?) 학교붕괴의 주범으로 과도하게 욕을 얻어먹었다. 지금은 교원평가의 주범으로 욕을 아직 더 많이 먹어야 되지만. 학교붕괴 현상은 이해찬이 교육부 장관시절 발표한 입시제도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었다. 87년 항쟁 이후 정치적으로는 권위적 독재 정치가 점차 해체되면서 자유화 분위기가 확산되었으며 경제 성장과 정보화 사회가 진전됨에 따라 개인주의적이고 감각적 충족을 중시하는 새로운 감성을 지닌 신세대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사회적․문화적 변화는 학생들로 하여금 더 이상 획일적인 입시 교육과 병영적인 학교를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 또한 학생 인원의 감소와 대학정원의 확대에 의한 입시 경쟁의 완화는 이러한 흐름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학교붕괴 현상은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획일적 입시 교육과 병영적 학교 체제에 대한 학생들의 수동적 저항 그 자체였다.  
그런데 학교붕괴 현상을 잠재운 일등공신은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로 표출된 IMF 사태였다. 1997말 당시 아직 사람들은 위기의 정확한 진상을 파악할 수 없었다. 많은 국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경제위기를 벗어나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환상에 한 표를 던졌다. 하지만 서서히 위기의 진상이 드러났다. 민중의 삶의 희생을 통한 자본의 원활한 축적 조건의 마련, 노동에 대한 자본의 일방적인 공격과 지배력 강화 등이 바로 위기의 진상이었다. 여기저기에서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이 단행되었고, 비정규직이 양산되었으며, 청년실업이 폭증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위기극복을 위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자본의 지배 방식의 변화임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이제 생존의 불안이 일상화된 시대가 되었다. 입시교육과 병영적 학교로부터의 이탈은 생존 경쟁에서의 탈락을 의미하기 시작하였다. 뛰쳐나간 아이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양순해져서 입시교육과 병영적 학교에 순응하는 아이들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전에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입시 경쟁이 계층상승, 즉 출세를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생존을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 나아가 안정적인 생존을 위해서는 좋은 대학으로는 부족하게 되었다. 취업이 잘되는 좋은 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이제 입시 경쟁은 내용의 측면에서는 출세에서 생존을 위한 경쟁으로 바뀌면서 학생들에게 더 큰 고통과 불안을 강요하는 것이 되었으며, 강도의 측면에서는 학교 단위에서 과 단위 경쟁으로까지 발전하면서 더욱 격렬한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금 입시 경쟁은 최정점, 즉 임계지점에 도달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모든 아이들이 특정 대학의 특정 학과로 몰려드는 입시경쟁의 최고 단계에 이르렀으며 입시가 교육을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국면이 도래하였다 .

3. 입시 체제에 의한 아이들의 실재적인 죽음을 목격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도 교육은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을 위한 중요하고도 복합적인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과 노동의 결합은 이전 사회와 다르게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자발적인 계약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자본은 노동과 계약을 체결할 때 노동력의 가치를 차별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 계급은 자본으로부터 선택받고 더 높은 노동력 가치를 인정받으려 하며 이를 위해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력을 기르기 위한 자발적인 노력을 경주한다. 이전의 생산 체계에서는 지배 계급이 정치적·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하여 피지배계급을 착취하였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노동계급의 자발성에 기초하여 착취가 진행된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은 자본의 원활한 착취를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으로 현상한다.  
그런데 근대사회에서 노동력의 가치를 차별화하는 핵심적인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 학력이다. 최종학력의 정도, 학위 소지 여부, 그리고 어떤 대학과 학과를 나왔는가 등이 위계적 서열화를 결정하는 중심적 요소이다. 이제 교육은 자본이 필요로 하는 노동능력을 양성하는 기능을 기본으로 하면서 동시에 노동력을 불평등한 서열적 질서 체계로 배치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교육기회의 형식적 평등성이 일정하게 보장되는 사회에서 학력의 차이는 개인의 본원적 능력의 차이와 성실성의 정도를 보여주는 척도로서 기능한다. 학력의 차이는 개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이며, 따라서 학력의 차이에 의한 불평등은 개개인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은 제도교육의 매개를 거치면서 자연 법칙적 필연성과 정당성을 획득한다.
제도교육 내에서 노동력 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한 피어린 경쟁의 중심에 입시가 자리 잡고 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남한 사회에서 학력의 가장 중요한 지표가 대학 간판이기 때문에 대학 입시에 모든 경쟁이 집중된다. 대학 이전의 모든 교육은 대학입시의 관문의 통과라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수렴된다. 결국 대학 입시가 모든 교육 과정(過程)을 지배한다.
하지만 근대적 제도교육의 장에서 노동력의 양성이라는 자본의 일방적 요구만 관철되는 것은 아니다. 그곳은 인간으로서 삶을 향유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키우고자 하는 교육 주체들의 요구들이―전교조는 이런 요구를 실현하는 교육을 참교육이라 부른다―자본의 요구와 항상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역동적인 모순의 장이다. 하지만 입시 경쟁이 강화될수록 주체의 교육적 요구는 자본의 요구에 흡수당한다. 학교의 지식은 직접적으로는 입시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수단으로, 근본적으로는 자본이 필요로 하는 노동 능력 향상을 위한 수단으로 제한된다. 학생이나 교사 등 교육 주체가 지식을 전유하고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규격화된 지식이 학생과 교사를 속박하고 규정한다. 인간적 삶을 향유하기 위해 지성과 감성을 계발하는 과정으로서 활력 넘치는 교육은 학교에서 추방된다. 예전에는 병영적 규율을 특징으로 하는 억압적 문화와 이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이 학교 문화의 중심축을 형성하였다면 이제는 입시 경쟁의 격화에 의해 발생하는 무기력과 고립화(개별화) 그리고 제한적인 일탈을 특징으로 하는 학교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대학입시와 가까운 거리에 있을수록 이러한 경향은 강화된다.
학생들은 입시 실패의 두려움과 입시의 실패가 생존의 위기로 연결되는 항상적인 불안에 시달린다. 입시에 대한 압박감과 불안 그리고 과도한 입시 노동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다양한 미래의 가능성을 꿈꾸고, 풍부한 내면의 세계를 가꾸어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에게 죽음은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적인 것이다. 새로운 꿈꾸기가 불가능한 삶, 자기만의 고유한 내면세계를 결여한 평면적인 삶은 곧 인간으로서의 삶의 죽음을 의미한다.
4. 학생과 교사가 함께 입시체제 변혁을 위한 투쟁의 대오에 동참하는 모습을 꿈꾸다.

입시교육과 입시 경쟁은 한국 제도교육의 병리적 현상이 응집되어 있는 핵심고리이자 현재의 교육체제를 지탱해주는 무게중심이다. 따라서 현재의 입시체제 문제를 회피하는 교육개혁은 또 다시 입시체제의 블랙홀로 흡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의 경험은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입시체제 변혁 투쟁을 꺼리고 있다. 그들이 제기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입시제도 개혁 투쟁이 현실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 현실성의 문제는 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제기된다. 우선은 교사의 절실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기 때문에 교사 동력을 조직하기 힘들다는 사실과 현재의 사회 체제가 유지되는 한 마땅한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힘들다는 점.
입시체제 변혁 문제가 수업시수 경감, 임금 인상, 교원평가 저지 투쟁처럼 교사의 즉자적인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과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입시체제 변혁 투쟁은 비록 급별로 체감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교육노동의 자율성 확대, 교육노동의 소외 극복 등을 위한 핵심적 과제이며,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노동의 특성상 교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높은 관심과 요구를 가지고 있다. 또한 대안의 현실성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관념의 조작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한 역관계의 변화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성의 문제는 진정한 문제일 수 없다.
우리를 억압하고 괴롭히는 존재가 인격적 주체일 경우 사람들은 쉽게 분노하고 저항한다. 하지만 인격적 주체는 은폐되고 마치 제도나 구조가 스스로의 자기 운동을 통해 억압과 고통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 사람들은 저항이나 새로운 변화의 시도를 섣불리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억압과 고통을 재생산하는 메카니즘이 극복 불가능한 필연성의 산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입시체제 개혁 문제도 정확히 이런 관성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제 이런 관성을 떨쳐버릴 때이다. 왜 우리는 입시체제 문제를 주제로 공동수업을 조직하지 못하는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직접적인 현실을 분석하고 자기를 괴롭히고 억압하는 문제에 대하여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시공간으로 분리된 과거나 타자의 문제를 자기 문제화할 수 있겠는가? 왜 우리는 학생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면서도 학생들과 함께 입시체제 개혁을 위한 공동 투쟁을 조직하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왜 우리는 참교육 실천을 강조하면서도 참교육 실천 활동을 가로막고 그나마 어렵게 이루어지는 참실 활동의 성과들을 무화시키고 흡수해버리는 입시체제를 내파시키는 과제에 대하여서는 눈감고 있는가?
입시체제 개혁 투쟁은 당장 학생들의 고통과 불안을 약화시키거나 제거하는 것이며, 교사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교육노동의 소외를 극복하는 것이며, 자본의 일방적 요구를 막아내고 학생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참된 교육활동의 기반과 공간을 확대하는 것이며, 자본이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시키는 메카니즘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또한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학부모, 즉 대다수의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획득해 냄으로써 교육노동운동의 유리한 지평을 확대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이렇듯 입시체제 개혁 투쟁은 학생의 직접적인 인권의 보호라는 측면에서부터 자본주의 사회의의 재생산에 대한 공격까지 다양한 의미를 지닌 복합적인 투쟁이다.
우리가 학생들의 고통에 눈감고 있는 사이에 학생들은 스스로 억압에 대한 저항과 자유를 향한 몸짓을 시작하였다. 이런 학생들의 저항이 찻잔 속의 태풍에 멈추어 버릴지 아니면 세상을 뒤집어엎을 거대한 폭풍우가 될지 이제부터는 우리들의 몫이다. 입시체제 변혁을 위한 논의를 조직하고 투쟁의 전망을 세워나가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해야할 현안의 과제이다.

<보론>입시제도 대안마련을 위해 시급히 고민해야할 지점들  

입시체제 변혁 투쟁은 단기적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싸움은 아니다. 긴 호흡을 가지고 치열하게 싸워야 할 중장기적 과제이다. 입시체제 변혁 투쟁은 입시제도, 교육내용, 교육과정 등 사실상 교육체제 전반의 변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투쟁이다. 그런데 입시체제 변혁 투쟁의 핵심에는 입시제도 개혁투쟁이 자리 잡고 있다. 즉 입시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투쟁은 입시제도 개혁투쟁을 중심축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입시제도 개혁을 위한 담론과 대안들을 풍부히 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입시제도 개혁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기 위한 지속적인 투쟁의 조직이 필요하다. 작년에 불붙었던 고교등급제·본고사 부활 저지 투쟁이 전교조의 지도부 교체 과정에서 그 성과가 확대 발전되지 못하고 오히려 유실되고 말았다. 입시문제는 다시 교육부 관료와 대학의 고유 권한으로 전락하고 교육운동진영은 이에 대해 수수방관하고 있을 때 학생들로부터 저항의 불길이 일어났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저항에 연대하기는커녕 변변한 지원조차 해내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입시 문제를 당면 현안 문제가 아니라는 관성적인 사고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기민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다시 입시 문제에 대한 논의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입시제도 개편과 관련된 몇 가지 고민의 지점을 간추려 보았다.

<단기적 과제 설정에 있어서 고려 지점>

1) 원칙
·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 계층적·지역적 차별을 최대한 지양할 수 있어야 한다.
· 사교육 의존을 최대한 억제하고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방안
①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되 수능의 난이도를 낮추어(교과서내 출제) 사교육 의존을 약화시키고, 내신의 실질 반영률을 높이도록 하는 방안(논술, 구술면접 등 반대)
② 내신 위주 전형 최대한 확대(정원의 2/3 이상, 수능은 느슨한 자격기준으로 활용), 부분적으로 수능 중심의 전형 인정(내신은 수능 동점자의 경우만 활용. 내신 위주의 전형만을 고집할 경우 3년 내내 입시의 부담에 허덕이는 것을 막기 위해 일종의 패자 부활전의 성격. 논술과 구술면접 등 반대)

<중·장기적 과제 설정에 있어서 고려 지점>

1) 원칙
· 초·중등에서 입시 경쟁 폐지 또는 약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 계층별·지역별 차별 해소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 초중등 교육의 입시 교육으로부터의 해방

2) 방안
· 대학 평준화를 통한 입시 경쟁 완화
· 100% 내신 위주의 전형, 수능 폐지 또는 자격고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