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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현장에서_학교폭력의 일상성과 두 얼굴의 폭력

2005.06.28 13:21

jinboedu 조회 수:2385

김종필 | 문화연대 문화교육위원회


1. 무엇이 학교폭력인가?

‘폭력’의 개념은 심리학, 법학 등 각 학문영역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정의되고 있을 뿐 아니라, 폭력이 행사되는 대상이나 폭력의 형태, 강제성 수반 정도 등에 따라 달리 사용되기도 한다. ‘학교’의 개념은 폭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일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데 그것은 물리적 공간의 범주로 해석할 경우에 한해서이다. 실제 ‘학교’를 내용적으로 정의하자면 계급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지며, 교육활동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학교는 교장-교감-교사-학생으로 이어지는 폐쇄된 구조를 넘어 교육이 이루어지는 모든 공간으로 확대된다. 이렇듯 학교와 폭력이 다양한 개념과 범주를 가지고 있지만 본 글에서는 일상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서 가장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전적 의미를 사용하고자 한다.
먼저 ‘학교’와 ‘폭력’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자.

학교(學校)[―꾜][명사]
교육·학습에 필요한 설비를 갖추고 학생을 모아 일정한 교육 목적 아래 교사가 지속적으로 교육을 하는 기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따위.]

폭력(暴力)[퐁녁][명사]
1.난폭한 힘.
2.육체적 손상을 가져오고, 정신적·심리적 압박을 주는 물리적 강제력.

각각의 개념을 통합한 학교폭력의 사전적 정의는 ‘교육-학습에 필요한 설비를 갖추고 학생을 모아 일정한 교육 목적 아래 교사가 지속적으로 교육을 하는 기관에서 발생하는 난폭한 힘이나 육체적 손상을 가져오고, 정신적․심리적 압박을 주는 물리적 강제력’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나름대로 타당해 보이지만 사전적 정의의 조합에 의한 학교폭력의 개념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누락되어 있다. 바로 폭력을 행하는(당하는) 주체와 그 폭력의 내용이다.

(1) 주체

일반적으로 모든 일에 있어서 ‘주체’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학교의 주체라고 하면 교장․교감-교사-학생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평소에는 학교의 주체라고 인식되지 못했던,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저 학습하는 기계에 불과했던 학생들이 ‘학교폭력’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핵심 주체로 떠오른다. 사회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학기 초의 언론보도는 한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을 구타했다는 사실만을 집중 부각시켰다. 이는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정부의 관점도 언론의 그것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는 법률을 통해 ‘학교폭력’을 정의하면서 “학생간에 발생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너무도 명확하게(?) 그 주체를 설정하였다. 그러나 이는 학교폭력의 전부가 아니다. 일부일 뿐이다. 따라서 학교폭력을 제대로 논하기 위해서는 이들 3주체의 관계 및 행위가 정확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2) 폭력의 내용

무엇이 학교의 구성원이자 주체인 교장․교감-교사-학생들로 하여금 육체적 손상을 가하거나 정신적․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하는가? 깊이 생각할 것도 없다. 잠시만 학교라는 공간을 상상해본다면 답이 술술 나온다. 살인적인 입시경쟁, 국․영․수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왜곡된 교육과정, 내 머리길이․모양 하나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억압적 학교문화, 집단 괴롭힘, 승진제도를 중심으로 한 위계적 교사관계, 인권 없는 교실, 교사/친구로부터의 물리적 폭력, 탄압받는 자치활동, 교사의 자유로운 교육활동에 대한 관리자(교장․교감)의 간섭 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이렇게 다양한 폭력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정부는 ‘누가 누구를 때리거나 괴롭힌 것’만을 ‘학교폭력’으로 사고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의 ‘누구’는 학생이다. 주체의 확장과 함께 폭력의 내용에 대한 확대된 고민이 필요하다.

주체와 내용 외에 장소의 문제를 중요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학교폭력을 사고하는데 있어서 장소의 문제는 목적의식적으로 배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물리적 개념으로서 장소를 사고한다면 ‘누가 누구를 어디에서 때렸다’라는 폭력성 외에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형태의 학교폭력에는 접근 자체가 봉쇄되기 때문이다. 즉, 폭력의 주체와 내용의 관계로부터 발생한 모든 폭력은 장소와 무관하게 학교폭력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2. 학교폭력의 발생 배경과 원인

사실 ‘학교폭력’이 왜 발생하는가를 분석하기 이전에 학교(문화)는 왜 폭력적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학교폭력’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학교문화로부터 자연스럽게 잉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왜 폭력적인가? 아래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전시 좌경학생 지도 및 교원. 교직단체 대책 : 순화가 곤란한 학생은 관계기관과 협조하여 격리 조치한다. 배후 조종 교사는 격리 차원에서 교원징계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 학교장은 관련 교사를 ‘전시범죄 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 위반으로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한다.
학생들을 전시대비 학도호국단 체제로 편제하여, 연대와 대대, 중대까지 배치해 군번을 달도록 하며, 학교장을 대대장으로, 교련교사 군복무 경력 교직원을 중대장으로, ‘건전한’ 학생을 소대장급으로 임명한다.

위의 내용은 ‘5공’의 후예들이 벌인 음모가 아니다. 참여정부의 교육부가 “학생과 교사를 ‘좌경’과 ‘건전’으로 구분해 좌경학생을 격리조치하고 좌경교사를 감찰하”라는 내용으로 각 시도교육청에 내려 보낸 공문의 일부이다. 사실 ‘민주화의 상징(!)’인 참여정부가 했다고 믿기 어려운 내용이다. 그러나 학교라는 근대적 교육제도가 이 땅에서 뿌리내린 과정을 살펴보면 그것은 참여정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10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지켜온 가장 본원적인 모습의 학교임을 알게 된다. 원산학사, 육영공원, 배재학당 등 일제 강점기 이전에 이미 근대적 교육기관이 설립되기 시작했지만 대중적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바로 ‘국민’학교가 세워지던 일제 강점기부터이다. 일제는 황국신민을 길러내고 전시동원 체제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병참기지의 성격을 갖는 근대식 학교를 전국으로 확대한다. 이렇듯 처음부터 왜곡된 방식과 내용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학교’는 해방이후에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군사정권으로 이어지는 수십 년 동안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문화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내면화한다. 그것은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군대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고 군대는 ‘폭력’을 자신의 존립 근거로 삼는다. 결국 우리사회에서 학교는 폭력성을 바탕으로, 또는 폭력을 유지하기 위해 설립되고 운영되었던 것이다. 군부독재가 종식된 이후에도 학교는 입시를 매개로 하여 남을 밟지 못하면 내가 죽게 되는 치열한 전쟁터로 변질된다. 학교교육을 성실하게 받을수록 더 큰 폭력성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외에도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요인을 살펴보면 사회구조적인 요인으로는 학벌주의의 만연, 가치판단 및 감성을 철저히 무시한 채 왜곡된 지식교과 위주로만 구성된 교육과정, 머리가 좀 길다는 이유로 ‘고속도로’를 내버리는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학교문화 등이 있으며 주체적인 요인으로는 늘어가는 가정불화 및 가정에서의 폭력, 과잉보호와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주체성의 상실, 대인관계 형성 능력의 부족 등이 있다.

3. 정부의 학교폭력 대책 분석

관료제는 사람들을 관료로 만들면서(마치 그들의 일상생활을 관료적으로 운영하도록 하기 위해 관청이 파견한 대리자인 양 만들면서) 그들을 통합시키는 경향이 있다. 관료제는 자기 방식으로 <개인의> 생활을 합리화한다. 그리해서 마치 관료적 이성이 순수이성과 동일시되고, 관료적 지식이 인식과 동일시되며, 마침내 설득이 강제와 동일시되듯이, 관료적 의식은 사회의식과 동일시된다.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테러의 정의이다. - 앙리 르페브르, 『현대세계의 일상성』


(1) 정부가 바라보는 학교폭력

위에서 인용한 르페브르의 표현을 빌자면 적어도 ‘학교폭력’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부 관료는 테러리스트이다. 테러리스트가 폭력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꼴인 것이다.
정부가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관점은 ‘학교폭력예방및대책에관한법률’(아래 ‘법률’)에 가장 잘 나타나 있는데, 법률은 제 2조에서 “”학교폭력“이라 함은 학교내외에서 학생간에 발생한 폭행․협박․따돌림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행위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학교폭력의 개념을 정립하면서 살펴본바와 같이 여러 주체에 의한 다양한 폭력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학생간에 발생한 폭력만을 정책의 대상으로 삼을 뿐 나머지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나마 협소하게 정의내린 ‘학교폭력’에 대한 접근방식마저도 ‘감시와 처벌’, ‘은폐’라는 왜곡된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스쿨 폴리스, 학교 내 CCTV설치 등은 ‘감시와 처벌’의 대표적인 사례이고, 언론에 보도되었던 경남 교육청의 사례는 ‘은폐’를 대표한다. 특히 심각한 물의를 빚었던 경남 교육청의 『학생 생활지도 길라잡이』중 ‘집단 따돌림이 빚은 교내 자살사건에 대한 대처방안’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만 하다. 총 9개 팀으로 구성하여 해결할 일을 제시하고 있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내용이 알려진 직후 해당 교육청이 공개 사과를 하고, 책자 발간 당시 경남 교육청 부교육감이었던 대통령비서실 사회정책수석실 교육문화비서관이 인사조치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사회의 관료주의, 특히 가장 보수적이라고 하는 교육관료 집단의 관행을 고려한다면 교육부 차원이 공감대 없이 도교육청 담당자가 이정도 파괴력 있는 내용을 자체적으로 수립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경남 교육청의 관점은 교육부, 또는 정부가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관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2) 정책 추진상의 문제점

정부는 ‘학교폭력’을 4대 폭력(조직폭력, 정보지폭력, 사이버폭력, 학교폭력)의 하나에 포함시키고 이를 근절시키기 위해 각종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여기서는 주요 정책의 현황을 짚어보되 개별 정책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정책 추진상의 전체적인 문제점과 연관 지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가장 큰 문제점은 ‘학교폭력’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다. 앞서 정부의 ‘학교폭력’에 대한 관점을 이미 살펴봤기 때문에 재론하지는 않겠지만 잘못된 관점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책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다음으로는 실적위주의 전시행정을 들 수 있다. 학교폭력 자진신고, CCTV 설치, 학교폭력 대처 교사 근무평정 반영(인센티브를 통한 교사의 학생고발 장려) 등의 정책이 대표적이다. 이들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했으나 정부에서는 밀어붙이기로 일관했고 최근 그 결과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물론 발표된 결과들은 대부분이 양적 지표로서 ‘건수 올리기’에만 급급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실제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는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상태이다. 또한 CCTV의 경우 인권침해 등의 문제로 인한 설치 자체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설치 학교 중 절반이 넘는 학교가 단 1대만을 설치했으며, 설치비만 지원할 뿐 유지보수나 인력 등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어 전형적인 생색내기용 정책임이 드러났다. 마지막으로는 관료들에 의한 정책 수립․집행의 독점을 들 수 있다. ‘학교폭력’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이후 정부에 대한 집중적인 비난이 쏟아지자 교육부는 민(民)의 의견을 수렴한답시고 민관 합동으로 이루어진 ‘학교폭력대책단’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이 대책단을 통해 ‘학교폭력’관련 정책을 수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기만이었다. 대책단 구성 이후 첫 회의에서 CCTV의 설치에 대해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자 전국의 학교에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유보하고 일단 몇몇 학교에 대해서만 시범사업을 하기로 결정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CCTV는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이는 여전히 시민사회를 들러리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관료들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진정으로 학교폭력을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다양한 관점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시민사회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4. 학교폭력의 근본적 해결을 위하여

‘학교폭력’은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그 양상도 다양하다. 따라서 해결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근본적인’ 해결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서는 문화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전교조, 평화인권연대,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흥사단 등이 참여하고 있는 ‘학교폭력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아래 ‘네트워크’)의 고민과 활동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 해결책을 대신하고자 한다. 네트워크에서는 ‘학교폭력’을 예방․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논의하기 이전에 기본적인 원칙 다섯 가지를 수립하였다.

○ 청소년들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하고 특히 해결과정에서 청소년이 대상화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
○ 피해자의 보호와 지원을 위한 단기적 대책과 학교폭력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장기적인 대책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함.(단기대책과 장기대책은 관점과 접근 방식의 차이일 뿐 선후의 문제는 아님. 단기대책을 수립하고 나서 장기적인 대책을 추진하는 방식이 아니라 양자는 반드시 동시에 추진되어야 함.)
○ 학교폭력 해결과정은 청소년과 교사를 중심으로 하되 시민사회진영 전체 및 관과 협조체계를 구축.
○ 정책과 제도개혁(구조의 변화)이 수반되어야 함.
○ ‘학교폭력’의 개념을 ‘학교(교육)에서의, 학교(교육)에 의한 폭력’ 전체로 확대해야 함.

이러한 기본적 원칙을 바탕으로 네트워크는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수립하여 정부에 정책제안서를 제출하였다. 네트워크가 제안한 정책은 피해자․가해자에 대한 치유와 교육 중심의 대책 마련, 학교폭력 예방 및 대응을 위한 인프라 구축, 학생 자치활동 및 동아리 활성화, 대학서열 타파 및 입시문제 해소, 교육과정 재구성, 학교문화의 민주성과 공동체성 회복, 교사의 전문성 제고 및 재구성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트워크 외에도 여러 단체 및 기관․정부에서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몇몇 정책들은 ‘더 큰 폭력’을 통해 ‘학교폭력’을 제압하려는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폭력일 뿐이며 폭력은 폭력으로 제압할 수 없다. 식민주의 폭력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프란츠 파농은 누구나 폭력을 의식하고 있지만 문제는 보다 큰 폭력에 의해서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위기의 뇌관을 제거할 수 있는가를 아는 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함으로써 폭력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핵심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정책입안자들, ‘학교폭력’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은 파농의 말을 곰곰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