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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희 | 자유무역협정WTO반대 국민행동 사무처장


5월 양허안 저지 투쟁을 만들어내기까지

지난 3월 30일, 공공서비스 관련 제 단체들이 모여 정책간담회를 진행했다. 주제는 “WTO 서비스협상”과 5월 말 제출예정인 “2차 양허안”이었다. 정책간담회에 모였던 여러 단위들은 WTO 서비스협상이 교육, 의료, 문화, 에너지, 물 등 제 공공서비스를 모두 포괄하고 있는 만큼 광범위한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으며, 이 속에서 양허안을 저지하고 나아가 서비스협상을 중단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을 맺었다. 그리고 이런 공동투쟁을 조율하기 위해 WTO반대 국민행동, 민중연대, 양대 노총과 공공연대, 범국민교육연대, 문화연대, 민중의료연합, 보건의료단체연합, 다함께 등 16개 단체가 ‘WTO 서비스협상 대응 공동투쟁기획단’을 구성하여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4월 28일 공공연대 주최의 “공공서비스 상업화, 사유화 저지를 위한 공공부문 노동자 대토론회”를 통해 서비스협상의 문제점을 짚는 한편, 투쟁 전략을 논의했다. 그리고 5월 12일에는 외교통상부 앞에서 투쟁선포 기자회견을 개최하였으며, 5월 19일에는 정부 측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WTO 서비스협상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란 주제로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5월 23일부터 행동주간 활동에 들어갔다. 23일 범국민교육연대가 주도한 교육계 선언 발표 기자회견을 비롯해 외교통상부 앞 1인 시위와 대시민 선전전을 진행하였고, 2차 양허안 제출이 임박해진 28일에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300여명이 모인 가운데 "WTO 서비스협상 저지, 사회공공성 쟁취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양허안 제출이 임박해진 5월 30일, 다시 외교통상부 앞에 모여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WTO에 대한 놀라운 충성심 - 2차 양허안 끝내 제출

이런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5월 31일 2차 양허안을 WTO 사무국에 발송했다. 한국정부가 WTO에, 신자유주의와 초국적 자본에 보여준 ‘남다른’ 충성심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실제로 지난 1차 양허안 제출 시한은 2003년 3월 31일이었는데, 이 때 정부는 교육계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시일에 맞춰 양허안을 보내고 말았다. 그런데 당시 시일에 맞춰 양허안을 제출한 국가는 148개 회원국 중 10개국에 불과했고,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50여개국이 되었다. 상당수 국가, 특히 개도국들은 서비스협상이 강대국들에게만 유리하기 때문에 서비스를 쉽게 내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번 양허안은 주로 소위 ‘Mode 4’, 즉 자연인 이동을 자유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정부는 양허안이 전문직 자유화와 몇 가지 ‘기술적 수정’ 정도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이번 양허안에 포함된 건축사, 회계사, 기계설치 및 보수 등 10 가지 계약서비스는 그 범위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런 자연인 이동 자유화는 안 그래도 심각한 노동유연화와 불안정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아울러 원래 양허안에서 예외로 분류되었던 에너지와 항공에 대해서 “외국인 투자를 제한할 수 있음을 명시”했다고 한다. 언뜻 보기에 나름대로 해외 민간 자본 진입을 일정 정도 규제하겠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으나, 정부는 에너지와 항공을 양허안에서 언급하고 게다가 “할 수 있음”이라는 모호한 말로 표현함으로서 오히려 사유화의 기틀을 공식적으로 마련한 샘이다. 또한 “공기업 민영화 시 외국인 투자를 제한할 가능성이 있음을 명시”했다고 하는데, 이 역시 공기업 사유화를 기정사실화한 가운데 해외매각의 여지를 오히려 남겨놓고 있는 대목이다.
다행히도 우려했던 의료, 문화, 에너지 등 주요 공공서비스는 2차 양허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광범위한 반대를 의식하고 민감한 부분을 제외했다는 면에서 성과적이긴 하나, 정부는 나름대로의 전략 속에서 주요 공공서비스를 제외시켰다. 즉, 국내법을 통해 공공서비스를 대폭 시장화한 다음 내년 초로 예상되는 차기 양허안에 이를 반영시키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실제로, 외국인교육기관특별법을 이미 통과시켰으며, 의료산업화 등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 등을 내놓고 있으며, 기간산업 사유화도 다시 고개를 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예상컨대, 그러면서 정부는 3차 양허안에 관해 이번에도 그랬듯이 “이미 개방된 수준을 반영하는 정도”라는 기만적인 주장을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양허안에 주요 공공서비스가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들어간 내용에 대해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며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결의를 오히려 해야 하는 상황이다.

양허안 제출을 막지는 못했지만 여러 성과를 남긴 투쟁

비록 양허안 제출을 끝내 막지는 못했고 큰 ‘규모’의 투쟁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5월 한 달 동안 진행된 ‘WTO 서비스협상 대응 투쟁’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먼저, WTO 서비스협상을 여론화시킬 수 있었다. 여러 곳에서 밝혀졌듯이, 서비스협상은 인간의 삶 모든 분야와 직결되는 협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밀실협상을 일삼고 있으며, 농업에 비해 쟁점화가 덜 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번 투쟁으로 미약하게나마 WTO 서비스협상이 무엇인지, 왜 문제인지 그리고 양허안이란 것을 제출한다는 사실을 대중적으로 알려낼 수 있었다.
둘째로, 국내 수준에서 진행되는 공공서비스 자유화․시장화 정책과 WTO 등 국제 무역협정과의 상호관계를 규명함으로써 당면한 현안과 반세계화 투쟁 간 간극을 좁히는 데 기여했다. 사실 ‘반세계화 운동’은 특히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나 기간산업 사유화 등 현안투쟁과 거리가 먼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투쟁은 일국적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국제적으로 협상되고 있는 각종 무역협정이 차원이 다를 뿐 사실 일맥상통하는 문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은 같은 투쟁임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는 광범위한 연대였다. 이번 투쟁에는 교육, 의료, 문화 관련 시민사회단체,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함께 한 투쟁이었다. 서비스협상의 폭이 넓은 만큼 연대도 넓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역협상은 자본의 이해관계에 의거해 산업 간, 분야 간 노동자․민중을 분열시키며, 양허안에 포함되는 서비스가 있고 그렇지 않은 서비스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제 부문 단체들은 자기 분야의 이해관계를 넘어선 투쟁을 전개했으며, 서로를 견인함으로써 서비스협상 자체를 반대하는 투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공공부문도 명실상부한 반세계화 핵심 주체임을 보여주었다.
물론, 남겨진 과제도 많다. WTO 뿐 아니라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여러 개의 FTA에도 모두 서비스 자유화․시장화가 포함되는데, WTO 서비스협상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자유무역 체제 전반을 관통하는 분석과 대응논리가 필요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또한, ‘사회공공성 쟁취’라는 구호가 여전히 추상적이며 구체적인 전략이 나오고 있지 않다는 점도 한계로 작용하였다. 이는 특히 신자유주의가 유무형의 ‘공공재’를 일차적으로 공격한다는 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또한, ‘WTO 서비스협상 대응 공동투쟁기획단’이 느슨한 협의체였던 만큼 보다 긴밀한 대응을 하기가 힘들었는데, 이는 보다 높은 수위의 광범위한 연대의 틀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이번 투쟁은 이후 반세계화 투쟁에 있어서 중요한 기반을 만들었다. 이런 기반을 딛고 6월 말부터 시작되는 양자간 협상과 7월 말 WTO 일반이사회에 대응하고, 11월 APEC 정상회담을 거쳐 12월 WTO 각료회의까지 일관된 투쟁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