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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서문_감동의 정치를 일으키리라

2005.06.28 13:08

jinboedu 조회 수:1301

□ 6월 총궐기 투쟁을 앞둔 시절에 회보를 낸다. 공식 언어는 ‘총궐기’를 말하지만 학교현장 곳곳은 아직도 낮잠에 조을 듯 조용하기 그지없는 시절에 교찾사 식구들이 서로 소통할 말을 건넨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언제 어느 때 전교조 집행부가 ‘사실상 수용’의 폭탄선언을 터뜨릴지 모르는데, 그런 사태를 미리 막으려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될 때, 또 우리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까?
길고 호리호리한 백척 바지랑대 끝에 위태로이 발 딛고 서서, 나아갈 길을 내어다 본다. 어디로 한 발을 내딛어야 하는가?

□ 현 전교조 다수파 지도부의 정체가 나날이 분명해지고 있다. 개혁세력이라 불러줄 수는 있으되, 무섭게 늙어버린 개혁세력!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집단의 아늑한 품 안에서 ‘희미한 옛 사랑(=개혁)의 그림자’만 더듬는 공론가(空論家) 집단! 애써 ‘투쟁’을 읊조리기는 하되 알리바이를 위해 나설 뿐이요, 사회적 ‘대세’를 거스르지 않는 일만 골라서 벌이기로 작심한 포스트모더니스트! 교육개방이나 평준화 해체 흐름은 워낙 대세이므로 이따금 ‘비판하는 논평’을 내는 것으로 자족하고, 통일운동도 한미동맹이 선을 그어놓은 범위 안에서 벌인다. 그들은 집권세력에게 부담 주는 것이 어쩐지 죄스럽다. 그들에게는 대중을 일깨우는 ‘본연의 정치’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전교조 결성 무렵 한때 맛보았던 ‘감동의 정치’도 이미 잊은 지 오래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 자춤자춤 ‘관리자 집단’으로 변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부를 대신하여 교원집단의 불만을 다독거리고, 어느 한정된 범위 안에서 표출하게 하여 정부의 통치 부담을 덜어주는 국가기구의 대리인! 노동조합이 대중의 분노를 중간 차단하고 정부 지침을 충실히 수행하는 ‘국가기구’로 편입된 사례는 그동안 세계 역사에 차고도 넘쳤다. 대중의 활력이 솟아오르지 못하는 한, 전교조의 관료화는 또다른 대세로 커나갈지도 모른다.

□ 그래서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87년 대투쟁과 전교조 건설기의 활기찬 변혁적 기풍은 이미 적지않이 노쇠해버렸다. 퇴조기에 가까스로 건설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전교조는 그 ‘존립의 의의’를 섣부르게 부정할 수야 없지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위기의 징후들을 과연 적극적으로 떠맡아 사회의 중심 의제들로 높일 수 있을지 도통 미지수가 아닐 수 없다. ‘87년 체제’가 어느 방향으로 귀결되느냐, 그 향배를 놓고 우리는 마지막 줄다리기에 들어섰다.

□ 그러니 지금 우리가 ‘주체’를 화두로 내세우지 않고 무엇을 말하랴. 우리는 스스로 묻는다. 왜 우리는 여전히 ‘낡은(?)’ 노래를 부르는가? 멀리서 가까이서 ‘생활’은 늘 우리를 솔깃하게 손짓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길에서 비껴 서지 않는가? 엎으러지고 고꾸라진 김에 쉬어 가지 않고 왜 무슨 까닭으로? 우리를 밀어가는 힘은 대관절 어디서 나오는가?

□ 이번 회보는 교원평가를 중심으로 엮어보았다. 전교조 집권파가 손을 놓든 말든 우리는 눈먼 공세가 물러날 때까지 줄기차게 이 싸움을 일으키고 이어가야 한다. 상황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또 길을 찾을 일이다. 어느 옛 선배가 갈파했듯이 우리가 가는 길이 뒷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원래 계획이 삐그러져서 회보 발간이 달포나 늦어졌다. 회보팀을 채찍하는 고마운 다그침의 말을 보내주시면 좋겠다. 다음은 방학중 워크샵 자료로 동지들 곁을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