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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읽을거리_교사의 삶을 이해하는 한걸음

2004.01.09 14:20

jinboedu 조회 수:2259 추천:26

교사의 삶을 이해하는 한 걸음

교사의 삶을 이해하는 한 걸음

- [교직사회](로티, 진동섭 역, 양서원, 1993)를 읽고

송 경 원(이론분과)

 

흥미롭다

교육학 관련 서적이나 논문들을 접하다 보면 교사들의 일상과 관련한 분석이 의외로 적다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대다수의 연구물이 교육 대상인 학생을 고찰하거나 교육 자체의 의미를 탐구하거나 교육제도의 의미와 성격을 논하고 있기에, 그 속에서 교사와 관련된 내용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물론 학생·학부모·교사 등 교육주체들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저작들이나 교사론 등의 분야에서 교사에 대해 말하고 있으나, 교사의 일상이나 문화, 행위양식, 심리보다는 '교사는 ∼ 해야 한다'는 규범적인 내용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교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느끼고 움직이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몇 안되는 연구물들이나 선생님들과의 직·간접적인 만남을 통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만난 [교직사회]는 우선 '아직 이런 서적을 보지 않았던가?'라는 부끄러움과 반성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교사들이 처해있는 상황과 그들의 문화를 파악하는데 의미있는 시선을 제공해주었다. 예를 들어 교사인 지인들이나 다른 선생님들과 교사의 휴식시간 활용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보면, 교사들이 학생들이나 교육에 대한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지 않고, 증권, 자동차, 자기 가족 등 잡담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일종의 푸념섞인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실망하곤 했다. 하지만 [교직사회]에 따르면, 휴식시간을 잡담으로 일관하는 교사 문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 문화를 실망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오히려 규범적일 수 있다.

교사들이 사교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가르치는 일의 억압적인 성격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 교사들은 교실에서 생각없이 행동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스스로를 통제하여 교실에서 지낸 교사들은 편히 쉬기를 원하며, 심멜(Simmel)의 순수한 사교의 개념과 같이, 상호 작용을 목적으로 즐기기를 원한다. 이 때문에 교사들이 휴게실에서 나누는 대화가 사무와 관련이 없는 것이 되는 것 같다. 그것의 많은 부분은 카타르시스적인 것이다.

이처럼 [교직사회]는 교사들의 일상, 문화, 행위양식 등을 파악하는데 여러 모로 도움을 주고 있다. 비록 1970년대 미국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양적·질적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어 2000년대의 한국 교사의 모습에 바로 적용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접근 방법과 내용에서 충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차갑지 않은 시선

하나의 문제나 사안을 바라볼 때, 흔히 행위와 구조의 두 측면을 고려한다. 하지만 여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다. 행위는 금방 보이고 구조는 발견하기 어렵다는 특성으로 인해, 보통은 행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리고 행위자를 비난하면서 도덕성과 규범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예컨대 교사의 차별이라는 문제가 발생하면, 행위자인 교사를 비판하면서 교육과 교사다움이라는 규범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차별을 단순하게 교사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차별은 학생에 대한 교사의 범주, 계급과 능력에 따른 학생의 분류, 대인지각에 있어서의 초두효과(primacy effect), 피그마리온 효과(pygmalion effect) 등이 결합된 것으로, 케디(Keddie)의 지적처럼 학교 밖의 사회적 권력 분배구조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위 이면에 있는 구조를 바라볼 때,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으며 의미있는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입시위주 교육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렇다"
"(교사의 경우) 교육시키는 지금도, (학생의 경우) 공부하는 지금도, 나쁘다고 보는가?"  "그렇다"
"그런데 왜 거부하지 않고, 교육을 시키거나 친구들을 적으로 삼으면서 공부하고 있나? 그럼, 너희는 다 나쁜 사람들인가?"  "…"

 

위의 발문법 사례는 구조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가끔씩 활용하는 것이다. 물론 행위에서 구조로의 시선 전환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조만을 바라보는 극단적인 구조주의나 환원주의는 행위에 면죄부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행위의 실천적 측면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위와 구조, 그리고 그 관계를 동시에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구조 속에서 행위하고, 행위가 모여 구조를 이루는 관계에 입각하여 문제를 살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직사회]에서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교사의 문화와 행위양식을 단순히 행위 측면에서만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교직의 구조와 교사의 삶을 함께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책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교사의 보수주의, 개인주의, 현재주의 문화는 교사의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교직 구조의 문제가 된다.

우리는 특히 임용, 사회화, 그리고 보상체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교사들의 독특한 관점이 형성됨을 알았다. 즉, 되풀이되는 테마는 교사들의 보수주의적 성향, 개인주의적 성향, 그리고 현재 지향성이다. 하나의 주기(週期)는 교사직의 구조가 교사들의 성향을 만들어냄으로써 완결되는데, 이러한 성향은 구조를 강화시킨다.

그래서 만약 교사의 보수주의, 개인주의, 현재주의 문화를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가치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교사의 바람직하지 않은 의식과 문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반이 되는 교직의 구조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러기에 시선이 차갑지 않다. 오히려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호된 비판이 제기되는 와중에서도, 교사의 전문성이 신장되었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인해 전문성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류방란처럼 안타까움 마저 엿보인다.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서문에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인 1장은 전체적인 틀거리로 교직의 역사를 고찰하면서 교직의 특성과 교사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2·3·4장으로 구성된 두 번째 부분은 교직의 구조를 교사의 충원, 사회화, 보상 체계 등으로 구분하여 자세히 다루면서 그 속에서 교사들이 어떻게 행위하는지 살피고 있다. 5·6·7·8장의 세 번째 부분은 가르침과 학교에 대한 교사의 의미부여와 인식들을 중심으로 교직의 구조적인 특성과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지 고찰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의 9장에서는 교직의 구조와 교사의 행위양식 모두에 대한 대안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다.


교직의 구조적 특성과 교사의 행위 양식

책에서는 교직의 구조적 특성으로 쉬운 입문체계, 부실한 사회화, 노력과 무관한 보상 등 크게 세 가지를 들고 있다. 먼저 '쉬운 문'으로 지칭되는 것처럼, 교직에 처음 발을 딛는 교원양성기관의 입문과정이 어렵지 않다.

주정부들은 학비가 싸고 여러 곳에 퍼져있고 그리고 입학이 어렵지 않은 교사양성기관을 설립함으로써 교사직에의 입문을 촉진시키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 교직은 전문적 합의에 의해 표준화되어 있지 않고 그 구성원의 자격도 공유된 기준에 의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교직은 교사 후보자 스스로에 의한 선발의 특성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 두 번째 인용문의 마지막 구절처럼 다양한 동기들, 예컨대 아이들이 좋아서,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 학교가 좋아서, 교직이 여성의 경제적 활동에 도움이 되어서,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안정적이어서, 비용이 적게 들어서, 신분 상승의 교두보라서 등과 같은 이유로 교사가 되려고 한다. 또한 교사가 되기로 결정한 시기와 그 유형도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이런 특성은 특성일 뿐, 그 자체로 가치판단하기 곤란하다. 많은 동기와 결정 유형 및 시기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교직에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다시 배우는 학생들의 다양한 경험과 조응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입문한 사람들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교직과 관련한 핵심적인 사항들이 얼마나 제대로 전달되느냐, 그래서 다양하면서도 동질적인 교사들이 배출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교원양성체계, 즉 사회화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현재의 교원양성체계는 전문직이라는 교직에 미흡하다.

교직에서의 직전교육, 수습교육 그리고 현장교육 등을 개관해 본 결과, 교직의 전체적인 입문 체제는 고도로 발달되어 있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교직은 전통적인 전문직, 기술직, 혹은 다른 기능직 분야와 같이 많은 직전 교육을 요구하지 않는다. 교직의 일반교육에 대한 요구는 비교적 높은데, 전문교육에서는 다소간 낮은 수준이다. 수습교육도 제한되어 있다. … 학교체제 내에서 이루어지는 추가적인 교육의 기회는 제한되어 있다. …

이것은 교육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교육관과 교수법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가운데 교사가 배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동기들이 교원양성기관이라는 양성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동질성을 형성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처음 교직을 결심하는데 영향을 준 누군가를 계속 모델로 설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른바 동일시의 효과가 교육이론과 결합하여 한 차원 높은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책 속의 인터뷰 내용] 6학년 때 선생님이 훌륭하고 재미있으셨어요. 그 분이 수업시간에 하시던 방법 몇 가지를 제가 금년에 썼습니다. # 남교사-24세-5학년 담당.

교직의 사회화는, 구조의 측면에서나 내용의 측면에서나, 교사들이 공유할 수 있고, 경험적으로 만들어진 그리고 기반이 확실하게 다져진 교수법의 실제와 원리를 심어주는 데 적합하도록 되어있지 않다. 옛날 학생 시절의 모델들 그러나 인상이 계속 남아 있는 모델들로부터 받는 교훈들은 우연적인 요소가 강하고 그리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교사 양성과정에서 받는 교수법 훈련은 가르치는 일에 관해 그 이전에 형성된 생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같지 않다. 교사들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스승은 경험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교사들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이들이 계속해서 지적한 대로 교육대, 사범대, 교원대, 교직이수과정, 교육대학원 등 다양한 교원양성기관은 특히 교과교육 면에서 미흡하여 교육학이나 교수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가운데 교사로 배출된다. 그리고 학생에서 교사로 임용되는 순간 지위가 변한 것 뿐만 아니라 갑자기 혼자가 됨을 깨닫는다. 학생 신분일 때는 교수나 선배가 도움을 주었지만, 교사가 된 시점부터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거기다 선배교사들이 신규교사들을 위해 전략적으로 남겨놓은 '시간 많이 뺏기고 힘들고 시끄러운' 업무마저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주변의 도움도 학교조직이 지니고 있는 세포적 특성과 그로 인한 개인주의 문화 때문에 여의치 않다. [교직사회]에서 언급하고 있는 '가라 앉느냐 아니면 헤엄치느냐(sink-or-swim)'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면서 교사들은 교원양성기관에서 배웠던 교수법과 관련 이론이 현장에서는 의미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현장에서 매순간 요구되는 학급경영, 훈육, 사무, 기자재 활용 등에 대한 적절한 판단과 구체적인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도 눈치챈다. 그래서 수업 장면에서는 학교에서 배웠던 교수법을 제쳐둔 채, 자신이 존경하는 교사의 교수법을 하나의 모델로 설정하고 경험에 근거해 수업을 진행해나간다. 물론 한국에 남아있는 공동체 문화의 영향(이 부분이 [교직사회]의 지적과 조금 다르다)으로 동료들과 함께 의견을 교환하고 연구하면서 동료교사를 모델로 선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하나 배우고 적용하고 수정해나가야 한다.

수업 이외의 장면, 특히 학급경영 장면에서는 조금씩 매를 들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체벌을 하게 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신규교사로 발령받을 때에는 다른 건 몰라도 매는 들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하지만 학급을 경영하거나 수업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생각처럼 학생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주로 타이르고 어루는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해 적응을 시도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학생들이 미워지면서 폭발한다. 그리고는 "난 너희를 사랑하는데, 너흰 왜 그러냐. 내 사랑을 이용하지 마라. 학생의 본분을 지켜라" 등의 눈물섞인 말을 하면서 단체로 벌을 주거나 매를 든다. 그러면서 체벌의 효과를 경험적으로 터득한다. 그 때부터는 '요즘 애들은 ∼'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읊조리면서 대화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까지 몽둥이나 기합을 사용한다. 물론 애초에 자신이 학생들의 문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너무 이상적으로만 생각했다고 반성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 모든 과정은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체험하면서 하나하나 터득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다보니 '한 10년은 해야 교육을 조금 안다'는 자조섞인 말들이 오간다. 이 말에는 역으로 '4∼7년 동안 교원양성기관에서 뭘 했던가?'가 내재되어 있다. 그러기에 교사의 전문성 문제가 만약 존재한다면, 이것은 교사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볼 수 없다.

한편, 이렇게 하나하나 터득해가면서 교육의 맛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외적이고 물질적인 보상체계가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노력과는 무관한 경력 위주의 보상이기 때문이다.

교사직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얻는 주요한 혜택(매년의 봉급 인상)은 경력과 현직 연수 학점 취득의 결과로 주어진다. 즉, 보상체제는 교사들의 노력과 능력의 변화에 부응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

… 교직의 현 체제는 교사들이 일단 종신 재직권을 얻고 난 다음부터는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현재의 만족을 희생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

여기에 교직 특유의 불확실성이 결합된다. 교육 대상인 학생이 인간이라는 점, 교육행위가 교사-학생의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으로 인해 구체적인 교육상황에서는 무수한 개별성, 우연성,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그래서 교육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된다. 하지만 역으로 매우 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교육적으로 의미있는 것과 의미없이 대충 한 것을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사의 일은 모방을 위한 구체적 모형의 부재, 영향력의 불명확한 경로들, 다양하면서도 논쟁의 여지가 있는 기준들, 평가 시기의 모호성, 산출물의 불안정성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교수 활동에 대한 통제와 평가를 어렵게 한다.

이 두 요소로 인해 서로 다른 두 가지 경향이 나타난다. 하나는 애들이 좋아서, 가르치는 것이 좋아서 등 교직이 지니고 있는 관계의 매력에 이끌려 나름의 노력을 통해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심리적으로 보상받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대충 하고 주어지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그 월급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여 승진, 부업, 증권, 자동차, 자기 가족 등 다른 경로를 모색하는 것이다. 물론 한 사람의 교사를 어느 한 부류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문제는 교직 특유의 불확실성과 관계적 측면으로 인해 심리적 보상이 최고의 보상이라는 데에 있다. 즉 대다수의 교사들이 교사라는 직업을 수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과 관계하는 학생들 때문이다.

좋은 날 일어나는 일들은 앞에서 이루어진 분석을 재확인시킨다. 이 일들은 교사들이 아끼는 학급 상황 내에서 일어난다. 그것들을 통하여 교사들은 보상을 받고 자신감을 얻는다. 우리는 학생의 성취와 교사의 만족감 간의 관계를 알 수 있고, 교사들은 학생에게서 학습이 일어나게 하는 핵심적인 촉매라는 믿음을 발견했다.

이것은 이미 헤르쯔버그(Herzberg)의 동기-위생 이론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즉 임금이나 보수, 통제관리 유형, 작업환경 등의 요인이 직접적으로 일을 만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감, 책임감, 인정, 성장과 발전 등 일 자체와 관련된 요인들이 일에 대해 만족하게 하고 계속 수행하도록 만드는 힘인 것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숙경이 재구성한 다음의 공고문에서 교사의 보상은 내적인 보상만 언급되어 있다. 즉 외적인 보상은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 데 크게 부족함이 없을 정도면 충분하며, 실제적인 교직의 의미, 일명 '교육의 맛'은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고 찾아야 하는 것이다.

  <사원모집>

(1) 대학졸업자(석사학위 소지자 우대)

(2) 탁월한 의사소통기술과 리더십이 필요함

(3) 날마다 일정 수의 사람을 다루면서 이들의 요구에 대처하며 다양한 산물을 생산하는 해볼만한 일임.

(4) 위드작업, 사무, 규정의 집행 등 근무시간과 일과 후에 다양한 과업을 수행함.

(5) 대인 관계 기술이 필요하고 공문서를 짧은 시간 안에 처리할 수 있어야 함.

(6) 상당한 융통성과 적응성이 필요함(왜냐하면 비품이 제때 공급되지 않을 수 있음)

(7) 실내 및 화장실 청소 요령 등을 잘 알고 있어야 함.

(8) 보통은 주당 44시간 근무.

(9) 횡단보도에서 차량을 통제하여 사람들이 건너올 수 있도록 안내할 수 있어야 함.

(10) 이 일의 특성상 여유로운 점심이나 차 마시는 시간을 낼 수는 없지만 대신 내적인 보상이 많음.

 

따라서 핵심적인 과제는 외적인 동기유발을 위해 교직의 경력 및 보상 체계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가가 아니다. 물론 외적인 동기유발이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만 이것은 필요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일 뿐이다. 그보다는 교육의 내적 보상을 어떻게 극대화시킬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교육행위 자체에 동기부여를 하기 어렵게 만드는 다양한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교육노동의 장애물

교사들은 교원양성기관이 부실하던 아니던 간에 교사가 된 순간부터 나름의 노력을 한다. 그래서 교사의 전문성이 어쩌구 저꺼구 하면서 교사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지극히 무책임하다. 여하튼 교사의 자발적인 노력은 이내 '구상과 실행의 분리'라는 현실 속에서 크게 교육과정과 장학이라는 벽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는 맥닐(McNeil)이 제시하였던 방어적 수업의 형태가 등장한다.

교육행위에 대한 통제나 외부 압력이 강할 경우, 행정가·학생·학부모의 트집이나 불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또는 여러 가지 통제에 따른 심적·육체적 부담을 덜기 위해 교사 개인은 수업과 관련한 지식을 통제한다. 그 유형으로는 단편화(지식 쪼개기), 생략("몰라도 돼. 넘어가자"), 신비화("이건 전문가만 알 수 있어. 그러니 그냥 외워"), 방어적 단순화("어렵지만 깊이 들어가지 않을꺼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등을 들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진도 맞추기와 단편화된 지식의 암기가 각광받아왔으며, 최근에는 Click이 새롭게 대두되었다. 수업 이외의 영역에서 비슷한 경우를 찾아보면, 논란이 예상되는 학급활동 안하기, 서술형 문항 출제의 자제, 교육청 지정 또는 인정 지침(특정 수업방식과 평가방식) 따르기, 시끄럽고 힘든 업무 안 맡고 떠넘기기 등이 있다.

이 과정은 자율성, 특히 구상과 관련한 자율성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나름대로 터득하게 되는 일종의 생존전략이다. 물론 교육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주어지는 교육과정의 존재를 기꺼이(고맙게) 받아들이는 교사가 간혹 가다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수일 뿐이다. 여하튼 방어적 수업과 같은 형태들은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교사는 전문성을 스스로 낮추고 있다는 측면에서 교육행위의 두 축인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이롭지 못하다. 또한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맺음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측면에서 교육의 내적 보상이 감소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사들이 사용하는 교수 전략은, 그들이 피하려고 하는 목표에 의한 교수모형을 실현하고 있다. 교사들은 기술공학적 가치를 신봉하는 행정가들을 존경하지도 않고, 기술공학적 가치 때문에 효율성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비난하면서도, 제도가 가장 중시하는 질서와 효율성에 적응함으로써, 교사 자신이 바로 그 기술공학적 가치를 따르고 있다. 교과 내용을 다루기 쉽고 측정하기 쉬운 단편들로 환원시킴으로써, 교사들은 학습과정을 목표와 수단으로 분리시키며, 외적 보상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다. …

초등학교에서는 어느 교사나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교사와 무관한"(teacher-proof) 교수 자료를 채택하여 교사를 무력하게 함으로써 외적 요인이 교육과정을 보다 직접적으로 좌우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상업적인 출판사들이 발행하고 아동심리학자나 독해 전문가와 같은 전문가들의 지도에 따라 국가나 지방의 학교체제가 채택된 일괄 자료의 목적은 교사의 분별력과 다양성을 줄이려는 것이다. …

우리가 관찰한 중등학교 교사들은 그러한 일괄 자료에 저항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전문가라 생각하며, 그런 만큼 교과 내용과 평가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외부의 전문가나 정치적 압력에 의해 일괄 자료로써 학생을 교사로부터 떼어 놓으려는 시도는 없었다. 그러나 그 교사들은 스스로를 탈기술화시키는데 참여하고 있으며, 그들 중 많은 교사들은 적극적으로 그 일에 가담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일괄 자료 때문에 교사의 생각이 교수 및 평가와 분리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중등학교에서는 자신의 효율성에 대한 평가 혹은 제도 안에서의 생존 때문에 교사의 개인적 지식과 수업 내용이 분리된다. …

그렇다고 해서 행위자인 교사에게만 책임을 지을 수 없다. 교육과정이나 장학과 같은 구조적 요인으로 교사의 자율성과 권리가 침해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보수주의, 개인주의, 현재주의 교사문화의 근원으로 [교직사회]가 지적하고 있는 교직의 구조적 특성인 쉬운 입문, 부실한 사회화, 노력과 무관한 보상 체계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서 잠깐 교사의 교육노동을 간단하고 거칠게 살펴보자. 아래 그림처럼 교사는 노동자, 개인적으로 지니고 있는 지식과 능력은 노동력, 학교건물 및 시설 등은 생산수단, 학생은 원료이자 노동대상, 사회적 지식은 또 다른 원료이자 노동도구이다. 이 때 노동대상인 학생은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노동과 다른데, 주요하게는 그 내면과 변화를 판가름하기 어렵다는 불확실성을 지니고 있으며 '너와 나의 인격적 만남'이라는 관계를 기본으로 한다.

이처럼 불확실하고 관계적인 노동대상에 교사는 자신의 노동력을 투여한다. 그러기에 노동도구인 사회적 지식을 자신의 지식에 근거하여 통제(자기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학생에 대한 진단과 연관된 교육적 처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사회적 지식에 대한 통제권은 교사에게 없거나 적다. 정신노동이라는 교육노동의 특성상 노동통제의 과정에서 사회적 지식은 규칙이나 지침으로 이루어지게 되고, 이것은 대부분 교육과정이나 장학의 형태로 주어진다. 그래서 교사는 주어진 사회적 지식에 대한 재해석에 치중한다. 물론 이 역시 규칙이나 지침과의 충돌 가능성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 전문직이라는 교직은 다른 전문직과 다르다. 교육과정이 정치적 과정이라고 하나, 현실적으로 교사는 이 과정에서 아예 배제되어 있거나 들러리에 불과하다. 장학은 그 역사적 시초가 감독과 통제였고, 조금 변화하고 있다고 하나 크게 바뀐 것은 없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점은 교육과정과 장학의 존재 그 자체이다. 한국사회에서 전문직이라고 통칭되는 법률직이나 의료직 등을 보면 교육과정 및 장학과 흡사한 것이 없다. 또한 똑같은 교직인 교수직에서도 찾을 수 없다. 대신 연수, 개인연구, 동료들 간의 정보 교류 등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그래서 "교육과정이나 장학이 정녕 무엇이며 필요한 것인가", "그 존재 자체와 교육노동의 자기결정권 사이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교육노동에서 구상과 실행의 결합은 어떤 모습을 띠는가" 라는 의문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참고로 근대공교육체제가 학생·학부모·교사·국가 등 네 주체 중의 하나인 교사에게 부여한 권리는 교육내용 및 방법의 선정권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교직사회]에서는 '특수한 그러나 가리워진 지위' 라는 용어로 교사의 현실에 대해 말한 바 있다.

… 교사들은 분명히 자신들의 책임 영역이며 또한 전문가이어야 할 활동 영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일상적인 운영, 교수이론 그리고 실제적인 기술에서 교사들은 다른 사람들의 지배를 받아왔다.

각각의 비교에서 우리는 교사들과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신분상의 권리를 누리고 있음을 알았다. 교사는 연극 연출가보다 쓸 수 있는 자원을 더 적게 가지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통제력도 약하다. 교사는 경영자보다 재량권도 적고 활용할 수 있는 자원도 적다. 그리고 교사는 그의 판단을 지지해주는 공식적인 인정 면에서도 정신과 의사에 비해 열세이다. 그러므로 교사들은 앞서 열거된 과업의 성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위상의 자원이 비교적 취약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노동의 자기결정권을 신장시켜야 하는 국가와 사회의 노력은 교육을 시장화하려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도입으로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한 쪽에서는 자율성을 이야기하긴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시장의 범위 내에서 시장을 절대선으로 전제한 가운데 용인되는 제한된 자율성일 뿐이다. 따라서 자연히 어느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통제는 더욱더 다양하며 강한 형태를 띠게 된다. 그로 인해 교사의 노동강도 강화와 탈숙련화가 나타날 수 있으며, 결국에는 교육의 질이 저하될 수도 있다.

통제의 또 다른 효과는 바로 노동강도 강화로, 몇몇 학자들은 이것이 교육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효율성 추구와 다양한 통제 방식들의 결과, 교사들은 똑같거나 감축된 재원으로, 물론 대부분 감축되지만, 더 많이 일하도록 요구받는다. 노동강도의 강화는 일련의 효과들을 지니는데, 교사들이 자기개발하는 것을 방해하고, 그래서 전문가의 생각과 처치를 어쩔 수 없이 더 많이 신뢰·의존하도록 만들고, 동료교직원 사이의 인간관계를 파괴한다. 즉, "여가와 자발성은 사라져간다. 공동체는 노동과정의 요구에 입각하여 재정의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시간과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이 귀해지고 있기 때문에, 고립의 위험성은 점점 커져만 간다."

물론 노동강도의 강화가 필연적으로 교사의 기술을 저하시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노동강도의 강화가 비용절감과 결합하면, 예컨대 일찍 퇴직하였거나 아직 후임을 구하지 못한 전임 교사의 업무를 맡기 위해 기술을 익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 추가된 기술들은 비용을 필요로 하기에, 교사와 자기 분야를 단절시키는 지적인 탈숙련화가 초래된다. 왜냐하면 교사에게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의 질은 떨어진다.


아쉬움

이상으로 [교직사회]의 시선과 내용에 기반하여 교직의 구조적 특성과 교사의 행위양식들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책에서는 마지막 부분에 하나의 대안으로서 교원양성기관의 개편, 교사간의 협동적 문화 형성, 교사의 기술적 지식 함양 등을 제시하고 있다. 나름의 논리적 흐름에서 당연한 모색이라고 판단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다. 앞서 서두에서 말했다시피, 교직의 구조와 교사의 행위양식들에 대한 연구를 한국에서 접하기란 쉽지 않다. 간혹 가다 찾을 수 있는 것도 거의 대부분 리버만(Lieberman)의 전문직관에 근거한 규범적이고 기능적인 논의이다. 전문직에 대한 직업사회학의 연구 성과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도 못한 것이다. 그러기에 더더욱 아쉬움이 크다.

구조와 행위의 측면에서 알 수 있다시피, 교사의 행위는 교직의 구조와 커다란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교사의 행위를 바라보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직의 구조를 함께 고찰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교사의 행위를 비난할 수는 있어도,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으며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그러기에 한국의 교직 구조에 대한 심도깊은 다양한 논의들이 제기되고, 그것에 기반한 대안 제시들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구조의 힘이 막강하기는 하나, 구조를 고치고 창출하려는 것 또한 행위자이며, 올바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행위자의 노력이 하나 둘 모일 때 보다 나은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단순히 주어진 구조에 적응만 하는 존재가 아니지 않는가.

… '나부터 바꾼다'는 자세로 문제를 보아야 한다. 제 아무리 좋은 분석과 대안이 나오더라도 모든 해결의 실마리를 나 밖에서만 찾으려 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언뜻 보기에 객관적인 구조들조차 우리의 주체적인 동조와 협력 없이는 돌아갈 수 없다. 하다못해 묵인을 하거나 무관심한 것조차 우리가 취하는 행위 중 하나이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순수하게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구조들을 지탱하거나 존속시키는 토대가 된다. 따라서 잘못된 구조의 파악도 중요하지만 그 구조의 유지와 존속, 강화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하는 나의 역할은 무엇인지 찬찬히 찾아내고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 위에서 '나부터' 철저히 변하기 시작한다면 그 도도한 객관적 구조조차 오래 가지 못한다. 물론 현실의 벽은 두껍고도 높다. 하지만 그 벽조차 바로 우리가 만들기도 하고 깨기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