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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초짜세미나 평가와 전망

2003.07.14 10:51

연구실 조회 수:1370 추천:4

전남 교육 노동운동의 과제와 전망

초짜세미나 평가와 전망

  - 어느덧 4기도 중반에 접어들다

 

연구실



Ⅰ. 어느덧 4기

 

급기야! 초짜세미나도 '초짜'티를 벗을 때가 오고야 말았다. 2001년 하반기에 첫 시동을 건 이래 매 학기 진행하여 네 번째 초짜들과 함께 하고 있다. 4기? NICE하다. 진지하고도 과묵한 세미나, 이따금의 즐거운 뒤풀이, 연속 세 번 내지 그냥 네 번 빠지면 빼버릴 거라는 공갈 협박... 초짜세미나가 거듭나려면 그간의 활동을 평가하면서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이 의무는 ―매번 파트너를 바꿔가며―1기부터 4기를 맡아온 나의 몫이다. 여기서는 그간의 초짜세미나의 내용과 운영 방식 등을 점검하고 이를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딱딱한 버전으로는―'초짜세미나의 발전방향'이라는 걸 모색해 본다.

일상을 추스릴 여유조차 없이 숨가쁘게 이어진 교육정세. 그 와중에 구성원을 모집하고 커리집을 다시 손보는 등 4기를 위한 준비작업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덕분에 4기 시작이 더뎌졌다. 죄송할 따름이다. 현재진행형인 네이스 폐기 투쟁, 경제자유구역법 싸움으로 이어가야할 교육개방 반대투쟁에 미력이라도 보태느라 연구소 식구들은 발바닥에 땀날 지경이었다. 차마 입밖에 꺼내지 못했지만 힘들고 지치기도 하여 일 하나 덜어볼까하는 얄팍한 속셈으로 '이 시국에 초짜세미나가 문제야!'라는 불순한 생각도 두어 번쯤 품었다...  "4기 세미나는 언제부터 하나여?", "저도 끼워주시면 안되나여?" 등등... 넘치는(!) 관심과 빗발친(!) 문의, 그 기세에 눌려 4기도 꾸역꾸역 시작했다. 내실에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뚝심 좋게 이어만 가는 것―이것도 기특한 일이기는 하다―이 미덕이 아님도, 교육정세가 한가로워질 때까지 학습을 마냥 방기해서는 안 됨도 잘 알고 있다.

4기로 접어든 초짜세미나, 이제 질적 전환을 모색할 때다. 질적 비약의 방도와 방향을 모색하는 일에 게을렀다. 반성할 일이다. 다양한 영역에서 옹골차게 교육운동의 전망을 모색해온 눈빛 초롱한(?) 초짜들을 몇 차례 만나오면서 "더 이상 뭉개면 안되겠구나"하는 다급한 마음도 생겼다. 제 발로 찾아온 의욕 넘치는 초짜들을 어이할 것인가! 더없이 소중한 교육운동의 보배인 그들을! 연구소로서는 초짜세미나의 성과를 연구소는 물론 교육운동의 활동력 배가로 연결할 구조를 마련해야 하는 실정이다. 대민 서비스라는 갸륵한 마음만으로 시작하지는 않았으니까. '남는 장사'를 해야 한다!

 

Ⅱ. 채워온 것, 그리고 채워야 할 것

 

□ 재생산 이론...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초짜세미나의 골간이 되는 것은 '재생산 이론'에 대한 검토이다. 비판적 교육사회학의 줄기를 형성한 재생산이론의 핵심 논문이나 저작을 취사선택하여 읽기자료를 구성했다.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각광받다가 지금은 많이 위축되어버린 '과거의' 이론을 꺼내들어 학습의 칼날을 벼리는 이유가 있다면, 재생산이론이 이론적, 실천적으로 교육운동에서 갖는 의미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또한 연구소 분과원으로서 갖춰야 하는 '기본 소양'의 하나가 재생산이론에 대해 이해이다. 제도교육이 불평등 재생산 메커니즘의 중심고리 구실을 하는 한, 교육운동이 이 현실을 냉정히 분석하고 실천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한, 재생산이론을 버리지 말아야 함은 당연하다. 다만, 재생산이론은 '경전'으로 모실 훈고학의 대상은 아니다. 한국이라는 사회구성체의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 손으로 다듬어야 하는, Something Special이다!

 

□ 너무 이론지향적인 거 아닌가여? 도대체 대안은 뭔가여?

 

매 기, 본격적인 세미나일정에 돌입하기에 앞서 가지는 만남의 자리에서 당부드리는 사항이 있었다. '조급해하지 말 것' 그리고 '충실한 텍스트 읽기에 근거한 이해와 논의가 우선'이란 점. 많은 초짜는 교육부문에서 그리고 교육운동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해온 분들이어서 실천의 든든한 무기가 될 이론적 기반을 쌓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그러다보니 '당장의 실천과의 연관성'을 찾는 눈길로 이론을 대하기 쉽다. 재생산이론의 개념 몇 가지로 현실의 교육문제를 성급하게 재단하지 않을까란 '기우'를 하게 되는 대목이다. 실천적 대안에 대한 갈구가 강한 이들에게 이론지향적으로 흐르는 세미나는 한가롭고 답답하게 느껴지리라. 그래서 아예 초장에 '조급증을 버리라'는 냉정한 말로 충실한 학습을 독려코자 해왔다. 이미 교육운동에 관심이 높거나 실제로 활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답답한 교육현실에 대한 속시원한 방향 제시가 목마를 것이다. 목말라 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운동을 할 생각도, 학습에도 뛰어들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이런 분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조급해하지 말 것'을 되뇌인들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했다.

말이 초짜지, 자본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의 불평등한 분업 구조 위에 서있는 제도교육에 대한 '삐딱한' 시선은 충분히 날이 서 있는 편.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 직격탄을 날리는 경제재생산이론의 급진성에 매력을 느끼고 알뛰세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논의가 갖는 근본성에 금방 공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을 터이다. 하지만 이론학습에 있어서 혹시나 덜 익었을 지 모르는 삐딱한 시선은 각 이론의 기여와 한계를 냉정하게 평가하는데 방해가 될 때도 있다. 그냥 삐딱한 상태 그래도 멈춰버릴지 모른다. 지배구조에 균열을 낼 위력적인 '똥침'을 날리려면 우리는 더 '똑똑해'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텍스트에 충실한 세미나'를 요구하는 맥락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전진할 힘을 키우기 위한 차분한 숨고르기라고나 할까?

사회학 이론이 오랫동안 고심해온 문제는 구조와 행위 사이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어떻게 풀 것인가이다. 재생산이론이 걸어온 길도 이 문제와 연결된다. 구조의 강압이냐 주체의 역동성이냐의 이분법적 논리로 한쪽에 치우친 설명구조를 가진 이론은 실천 전략 모색 단계에서 곤란을 겪게 만든다. 예컨대, 중심이 구조의 강압 쪽에 놓여있는 이론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상태에서 주체의 실천을 논하는 것은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론과 실천이 따로국밥이어선 안 된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각 이론이 양자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개념화하여 재생산 메커니즘을 설명했는지를 파악하도록 애쓴다. 하지만 지금의 내공으로는 역부족임을 지면을 빌어 실토해야겠다. 거만한 당부의 순간마다 내심 찔렸는데, 이론적 넓이나 깊이로 따지자면 초짜나 나나 50보 100보여서다. 초짜들의 신선한 문제제기와 접근방식, 숙고하는 모습을 대면하면서 이론적 훈련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걸 매번 절감한다. 그래서 새로운 초짜들은 늘 나에게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자극을 준다. 이런 의미에서 초짜세미나의 최대 수혜자는 나였다.

 

□ '주입식 강의'와 '토론식 세미나' 사이

 

초짜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조금 답답했던 점은 간사는 말을 너무 많이, 그에 비해 초짜들은 말을 너무 조금 하는 불균형이었다. 커리 수준을 따지자면 초짜세미나는 석사과정쯤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초짜들은 주로 '질문'을 하고 간사는 주로 '설명'을 하고... 이거 참... 초기에는 이런 분위기가 스트레스 요인이었다. 논의를 잘 유도하지 못해서인가? 내가 너무 권위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할 수 없이 텍스트에 그 탓을 먼저 돌려야겠다. 교육사회학 이론적 전통 개괄 -> 경제재생산이론 -> 문화재생산이론 -> 저항이론... 이런 흐름으로 읽기자료를 이 이론가 저 이론가의 글들로 구성하다보니 텍스트 난이도에 비해 어느 하나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고 넘어가게 되곤 한다. 초짜들 입장에서는 논의의 맥락, 심지어는 단어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 생긴다. 간사가 풍부한 배경적 지식을 가진 것도 아니어서 '강의'하듯 쌈박한 설명도 못해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 학부 수준에 맞게 가공된 교육사회학 교재를 이용하는 것도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하는 생각에. 방대한 내용을 읽기자료로 얼기설기 구성하여 12회 정도의 세미나로 속성으로 진도를 빼야 하는 부담에 간사의 부실한 내공이 보태지면서 이런 문제들이 발생했다고 자평해본다. 네 번이나 진행했어도 여전히 어설프다.

 

Ⅲ.무엇을 할 것인가!

 

□ 현실과의 긴장 속에서 엄밀히 검토하면서 재생산이론을 다시 정리해야

 

"한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재생산이론의 재구성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의 잠정적 결론이다.

① 수입이론으로 한국의 교육 현실을 재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면서도(이론으로 현실을 덮어씌우는 오류)

② 설명력 부족을 이유로 성급하게 재생산 이론을 성급하게 폐기하는 대신 그 이론적, 실천적 의의를 살리는 방향으로 재생산이론을 발전시키기 위해

③ 또한 대안적 논의로 옮겨가는 고리를 모색하기 위해

 

재구성 작업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논문 몇 개를 읽었다고 해서 재생산이론의 시각을 체득하여 한국의 교육현실을 논하고 대안을 모색하는데 이를 수는 없을 것이다. 재구성 작업은 교육운동에 이론적, 실천적 기여를 다짐하고 나선 연구소로서는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론분과의 송경원 연구원이 교육사회학 이론을 '읽힐 만한 코드'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외롭게 그러나 훌륭하게 해왔다. 이제, 연구소라는 집단의 힘을 바탕으로 한 발 더 전진하고 공유해야 한다. 재생산이론의 저작들의 의미와 한계를 재평가하고 정리하여 다음 초짜들을 맞이하고 싶다. 욕심이 있다면 '학교'의 수준으로 초짜세미나를 발전시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단지 과거의 논문을 읽는데서 멈추지 않고 재해석하고 실천과의 연결고리를 찾아 새롭게 구성하는 작업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렇듯 교재 속에 박제된 과거의 이론이 아니라 교육운동을 고뇌한 감수성을 가지고 개념적으로도 허술하지 않게 정리하는 일이 과제다. 4기를 시작하면서 두 간사는 꼭 해보자고 약속했다. 일회성의 세미나로 끝내지 말자고. 물론, 주어진 일정을 채우기도 바쁜 처지에 쉽지 않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언제는 시간 남아 세미나하고 여유있어서 글을 끄적였나. 꼭 필요한 일이라면 꼭 이루어지리라.  

 

□ 대안적 논의의 강화로 교육운동의 방향과 실천적 전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재생산이론 학습으로 부족한 것, 즉 재생산이론 학습의 내공을 어떻게 실천적 논의와 연결하느냐? 실천과 이론을 변증법적으로 연결하는 안목과 진보적인 문제의식 속에서 걸맞는 내용과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론과 실천, 이 두 가지는 변증법적 조화 속에서 균형있게 다뤄져야 한다. 문제는 다만 후자에 대한 논의가 아직은 초보적이라는 점이다. 이분법적으로 갈라칠 일은 아니겠다. 이론 학습이 유희와 현학을 위해서가 아닐진대 실천에 대한 문제의식은 늘 함께 가야 마땅하다. 다만 둘 사이의 균형을 아직은 찾지 못했기에 문제의식만 앞세워 거칠게 대안과 실천을 논의하느니 이론 학습만이라도 충실하게 하려는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는 교육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부분적이나마 이를 해소해줄 수 있다. 대안에 대한 논의는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는 지금보다 문제의식을 확장하고 내용적 깊이를 가지면서 사회운동과 만나는 길을 터야 한다. 연구소를 포함한 교육운동진영이 이 문제에 천착하고 성과를 내오는 순간, 지금까지 초짜세미나가 담보하기 어려웠던 부분도 채워지게 되리라 믿는다.

 

□ 초짜세미나의 성과를 연구소 활동력 배가로 잇는 구조를 마련해야

 

마무리할 시점이 다가오면 "어느 분과로 꼬셔볼까?"가 간사의 어쩔 수 없는 고민. 전부는 아니어도 얼마간의 인원이 초짜세미나를 경유하여 연구원으로 결합해 왔다. 초짜세미나 덕분에 연구소 회원도 얼마간 늘었다. 연구원 활동에 결합하기 힘든 분들도 '글을 강제로 받아낸다든가', '술 사달라고 떼를 쓸' 정도는 되는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이 정도면 남는 장사를 한 셈 아닐까? 하지만 앞으로 개인에게나 연구소에게 그리고 교육운동에 더 많은 성과를 남길 판을 짜야 한다.  

현실적으로, 지금과 같이 경직된 분과 체제만 가지고는 힘들다. 주체들의 다양한 고민과 욕구, 거꾸로 역사가 주체에게 요구하는 바 사이의 교량 역할을 연구소가 제대로 하기 어렵다. 분과원이 되는 것말고는 연구소 내에서 자신의 고민을 활동으로 연결시킬 만한 마땅한 장치와 구조가 아직은 없다. 이 땅의 장애인 인권을 고민하는 동지도, 청소년 문화운동을 자기 과제로 삼은 동지도, 진보적인 교사의 삶을 지향하는 동지도 연구소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진보적인 이론에 힘입어 보다 발전시키며 교육운동의 튼실한 주체로 거듭나려면? 아직 계획이 뚜렷이 서 있는 건 아니지만, 건강한 문제의식, 책임지고 끌어갈 주체, 운동의 대상과 목표를 가지고 있을 때 분과 체제는 얼마든 유연해질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때부턴 초짜하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