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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사회 참여계획경제에 대한 주요 논의와 모델

 

진보교육연구소 대안사회연구팀

 

1980년대말 동구 사회주의 몰락 이후 세계 자본주의는 ‘어차피 다른 사회는 불가능하다’고 외치면서 그 야만성을 더해 왔다. 그러나 대안 사회를 향한 인류의 지향은 멈추지 않았으며 2008년 세계경제 위기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다시금 극적으로 드러내면서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경제시스템에 대한 논의들을 다양하게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글에서는 다시금 부상하고 있는 대안사회 논의 중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참여계획경제론’의 여러 유형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참여계획경제론의 역사적, 내용적 기초

‘참여계획경제’는 말 뜻 그대로 노동자, 민중이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계획’ 경제체제를 의미한다. 이들은 새로운 사회주의 형태로서 참여적 계획경제 시스템을 지향한다. 참여계획경제론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주의 경제시스템 건설을 지향하면서 한편으로는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들은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을 사회주의 및 계획 경제 자체의 실패가 아니라 ‘동구 모델’이라는 특정한 유형의 실패로 본다. 즉 ‘동구 사회주의 모델’에서 나타난 중앙집중적 계획방식, 관료적 명령 경제라는 특정한 유형의 오류와 실패라는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중앙집중 방식은 생산과 소비에 대한 결정권이 소수 엘리트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방식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권력집중과 전체주의적 정치, 노동자 민중의 배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노동자 민중의 민주적 참여를 토대로 하는 새로운 유형의 계획 경제를 구상하면서 대안사회에 대한 지향과 건설을 구체화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참여계획경제 논의는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으나 세 가지 지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첫째,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와 생산과정에 대한 생산자(노동자) 자주 관리이다.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는 ‘국가 소유’와 구별되는 것으로 협동조합이나 지역주민 등 집단적 소유를 의미한다. 참여계획경제론에서는 국가 소유가 중앙 집중 계획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노동자, 민중의 집단적 참여가 가능한 ‘사회적 소유’를 중심적으로 추구하고 지향한다. 참여계획경제론에서는 ‘국가 소유’도 인정하지만 ‘사회적 소유’가 주된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둘째, ‘생산자 자주 관리’ 단위 간의 무정부적 시장에 반대한다.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폐지되고 ‘사회적 소유’가 기본적 소유 형태가 되더라도, 다수의 ‘사회적 소유’ 생산단위가 ‘생산자 자주 관리’에 의해 생산량 및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다수의 수요-공급이 만나는 시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이 때 다수의 ‘사회적 소유’ 단위 간의 수요-공급을 무정부적 시장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참여적 계획에 의해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사회적 소유’ 단위 간의 수요-공급을 시장에 맡기는 것을 ‘시장사회주의’라 하는데 구 동구사회주의 국가 중 하나였던 구유고슬라비아에서 시행된 적이 있다. 그런데 노동자 자주관리에 의한 사회적 소유라 하더라도 수요-공급이 시장에 그냥 내맡겨질 경우 생산단위들이 이윤을 중심적으로 추구하고, 사회 전체 경제는 무정부적 상황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구유고슬라비아의 ‘시장사회주의’ 실험은 과열경쟁과 고실업 및 생산성 침체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고 실패로 귀결되었다.

셋째, 직접민주주의 강조와 노동자, 민중의 참여 확대이다. 참여계획경제론은 ‘파리코뮌’이나 ‘소비에트’ 경험을 넘어서는 대중의 직접적 참여, 직접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주장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경제 영역에서 생산과정의 관리, 의사결정이 소수 엘리트, 전문가가 아니라 생산주체 혹은 이해 관계자 모두가 참여해야 하며 정치 영역에서도 선출된 공직자의 소환권, 추첨제 등을 포함하여 최대한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한다고 본다. 이들은 새로운 대안사회에서는 ‘생산과정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반대’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참여계획경제체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통제할 수 있기 위해서, 또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효과적인 결정을 하기 위해서 요청되어지는 사회’라고 주장한다. 참여계획경제는 마르크스가 추구했듯이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로서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과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에 기초한 경제체제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참여계획경제론의 문제의식은 새로운 대안사회 수립을 위한 이론과 실천에서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고 보여 진다.

 

 

2. 참여계획경제론의 주요 모델

1990년대 이후 참여계획경제론은 다양하게 논의되어 오고 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앨버트와 하넬의 ‘파레콘’, 드바인 및 아다만의 ‘협상 조절’ 모델 및 칵샷과 코트렐의 ‘노동시간 계획’ 모델의 3가지이다. 이들은 내용적으로 적지 않은 차이가 있지만, 직접민주주의와 참여에 바탕을 둔 계획경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참여계획경제론의 주요한 세 가지 모델의 특징을 요약, 비교해 보기로 한다.

 

1) ‘파레콘’

 

0 소유 및 기본 경제단위 : 파레콘(parecon)은 ‘Participatory Economics’의 줄임말로 참여경제를 뜻한다. 파레콘에서 생산수단, 생산단위는 노동자평의회가 소유하며 노동자 자주관리에 의해 운영된다. 또한 소비자평의회도 구성되어 경제조절에 참여한다.

 

0 경제 조절 : 대안경제체제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생산과 소비를 어떻게 조절해서 무정부성을 극복하고 사회구성원 전체의 의지에 의해 통제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파레콘에서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경제 조절은 노동자평의회와 소비자평의회의 참여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먼저 ‘계획촉진위원회’라는 조절 기능을 갖는 위원회가 모든 재화, 자원, 노동, 자본스톡의 기회비용(지시가격)에 대한 추정치를 제시한다. 이에 기초하여 소비자 평의회는 품목별 소비 계획서를 제출하고 노동자평의회는 생산 계획서(생산 품목 및 이를 위한 투입 품목)를 제출한다. 이 때 소비 및 생산 계획은 전적으로 임의대로 제출되는 것은 아니다. 소비 계획은 구성원들의 노력 등급에 대한 평가에 기초하며 노동자평의회가 제출하는 생산 계획은 사회적 편익이 사회적 비용보다 높아야 한다. 시장경제에서도 사회적 비용과 편익의 비교가 이루어지는데, 시장 실패(공공재, 외부경제와 외부 불경제 등)를 제대로 고려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 비용과 편익이 정확하게 계산되지 못하는 반면 파레콘에서는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참여 하에 사회적 비용과 편익을 더 정확하게 계산,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계획촉진위원회는 이에 기초하여 품목별 초과수요 혹은 초과공급 정도를 확인하고 초과수요 품목은 지시가격을 올리고 초과공급 품목은 지시가격을 내린다. 소비자 평의회와 노동자평의회는 이 새로운 지시가격을 토대로 다시 소비 계획서와 생산 계획서를 제출하며, 이 과정은 초과수요와 초과공급이 해소될 때까지 반복되면서 조절을 진행한다. 생산량과 소비량이 일치하게 되면 한 사이클의 조절이 완료된다.

 

0 분배 : 자본주의에서는 재산 및 성과에 따라 분배가 이루어지만 ‘파레콘’에서는 재산과 성과에 따른 분배 원리는 모두 폐기되고 노동자의 노력과 희생 정도에 따라 분배가 이루어진다.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재벌의 자식으로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어떤 천부적 재능을 가질 수는 없다.” 따라서 파레콘론자들은 재능의 차이에 의한 성과에 따른 분배도 정의로운 분배가 아니라고 본다. 즉 재산에 따른 분배가 정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능에 따른 분배 역시 정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며 오직 노동, 노력에 따라 분배를 하는 것이 정의의 원칙에 부합된다고 보는 것이다. 노력 등급에 대한 평가는 동료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력 등급 평가위원회’에서 이루어진다. 이에 대해 자본주의 경쟁에 익숙한 견해에서는 성과에 따라 분배를 하지 않으면 성과 극대화의 동기와 유인이 떨어진다고 비판하지만 파레콘론자들은 생산자가 자신이 통제하고 책임질 수 있는 노력을 분배의 기준으로 삼을 때 노력이 고무되고 성과도 더욱 향상된다고 본다.

 

0 분업 폐지를 위한 ‘균형적 직군’의 원리 도입 : ‘파레콘’ 논자들은 ‘균형적 직군’에 의거한 분업의 폐지를 통해서만 참여와 평등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균형적 직군’은 특화된 노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권능과 선호도의 균형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평균 이상의 권능을 부여받는 일을 수행했다면 다음에는 평균 이하의 권능을 지닌 직군에 종사하고, 평균 이상의 선호도를 지닌 직군 다음에는 비선호 직군에 종사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하여 ‘균형적 직군’ 도입이 전문성과 효율성을 저하시킬 것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는데, ‘파레콘’ 논자들은 “효율성 제고를 위해서는 복잡한 결과를 결정하는 데 있어 전문가의 중요한 역할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결과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선호하는 결과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반박한다.

 

 

2) ‘협상 조절’ 모델

 

0 소유 형태 : ‘협상 조절’ 모델에서는 기업은 사회적으로 소유된다. 여기에서 ‘사회적 소유란 사적 소유도 국유도 아니며, 관련된 자산의 사용에 의해 영향 받는 이들에 의한 소유’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기업은 단지 노동자뿐만 아니라 그 기업의 활동에 의해 영향을 받는 모든 집단, 즉 동일한 생산 부문의 다른 기업, 부품 공급업자, 소비자, 지역 주민, 환경운동 단체 등에 의해 소유된다. 이들 사회적 소유자들이 그 기업의 이사회를 구성한다.

 

0 경제 조절 : ‘협상 조절’ 모델에서는 사회적 기업 간에 이루어지는 수요-공급 시장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으며 경제 조절은 ‘참여 계획’과 ‘사회적 시장’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다. 기존 설비를 사용하여 이루어지는 생산물과 재고는 ‘시장 교환’을 통해 조절하고 신규 투자 및 투자 축소는 시장교환이 아니라 참여적인 ‘협상 조절’을 통해서 수행된다. 기존 설비에 의한 생산 및 유통은 이미 이전의 소비과정을 통해 검증된 부분이므로 신규 투자와 축소에 대해서만 조절적 계획을 수행해도 생산의 무정부적 성격을 방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협상 조절’ 모델에서는 모든 경제 행위가 ‘협상 조절’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를 비롯한 주요한 경제 행위는 사회적 시장교환에 맡겨지기 때문에, 계획과 조절 영역이 중앙집중 계획 방식이나 파레콘 모델에 비해 간소화되고 용이해진다.

‘협상 조절’은 그 기업의 활동에 의해 영향 받는 모든 집단의 참여에 기초해 이루어진다. ‘협상 조절’ 모델에서는 양적 정보뿐만 아니라 질적 정보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예컨대 신규 투자나 투자 회수가 이루어질 경우 이것이 노동자나 상이한 지역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질적 정보가 ‘협상 조절’의 테이블에 오른다. ‘협상 조절’ 과정은 참여자가 다른 참여자와 토론하며 상호 설득하는 “민주주의적 숙의 과정”이며, 기존의 선호를 총합하는 절차가 아니다. ‘협상조절’ 논자들은 ‘협상 조절’이 이를 통해 참여자의 인식과 선호가 변화하는 변혁적 과정임을 강조한다.

‘협상 조절’ 모델에서는 기업이 ‘가격’을 설정하기 때문에 동종 산업 내 기업들 간에도 생산성 차이에 따라 가격이 다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기업의 실제 수익률은 자신들의 가격에 포함된 기대 수익률을 초과할 수도 있고 그것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기업들 간 실제 수익률의 차이를 배경으로 하여, 단기적으로는 ‘시장교환’을 통해 가동률 조정에 의거한 생산량 조절이 이루어지고, 중장기적으로는 ‘협상 조절’을 통해 신규투자 혹은 투자 감축이 이루어진다.

 

0 분업 폐지 : ‘협상 조절’ 모델도 ‘파레콘’과 마찬가지로 분업의 폐지를 추구한다. 구체적으로 모든 노동을 ①관리 노동, ②창조 노동, ③돌봄 노동, ④숙련 노동, ⑤미숙련 반복 노동으로 유형화하고, 모든 사람들은 전생애 주기를 통해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노동 형태를 골고루 분담하는 시스템이 제안된다. 즉 ‘협상조절’ 논자들에 따르면 “사회적 분업의 폐지란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애 내내 위 활동 중 어느 한 범주에만 종사할 때 생겨나는 사회적 계층화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지, 기능적 분업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3) 노동시간 계산 모델

 

0 소유 : 노동시간 계산 모델에서는 ‘파레콘’이나 ‘협상 조절’ 모델과는 달리 생산수단은 ‘단일한 공적 소유’ 하에 놓인다.

 

0 노동시간 계산 : 노동시간계산 모델에서 특징적인 것은 ‘노동시간’ 계산을 통해 생산과 분배를 조절한다는 점이다.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사회적 평균노동시간을 계산할 수 있으며 이를 기초로 노동자 개인이 투여한 노동량에 따라 분배하고 ‘등노동량’에 따라 제품을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선 정보기술과 컴퓨터의 발전에 힘입어 오늘날 복잡한 현대경제에서도 균형 있게 노동시간을 계산하는 것이 완전히 가능하다고 본다.

 

0 노동 증서와 분배 및 교환 : 노동시간 계산 모델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지출한 노동시간과 동등한 ‘노동증서’(교육, 의료와 같은 사회적 소비 및 투자, 기술혁신에 필요한 ‘사회적 축적’ 기금 부분은 공제된다)를 보수로 지급 받는다. 노동자들은 이 ‘노동증서’로 이와 동등한 양의 노동시간에 해당되는 생산물을 구매할 수 있다. 노동시간계산 모델에서는 이와 같은 노동시간에 따른 분배를 통해서만 진정한 의미의 평등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 ‘노동증서’는 극장표처럼 사용과 함께 폐기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화폐는 아니며, 교환 역시 진정한 의미의 시장교환이 아니다.

 

0 생산 조절 ; 생산물의 생산량은 이들에 체화된 노동시간과 이들을 구매하기 위해 제출된 노동증서(가격)의 비율에 기초하여 조절된다. 생산물에 체화된 노동가치에 대해 노동증서로 표현된 가격의 비율이 평균 이상일 경우에는 수요가 더 많은 상황이므로 생산을 확대하고, 평균 이하일 경우에는 비율만큼 생산을 감소시킨다. 분업 폐지 문제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지금까지 설명한 참여계획경제론의 세 가지 유형의 주요 특징을 도식화해서 비교하면 다음 과 같다.

<표> 참여계획경제론의 주요 유형과 특징(정성진 정리)

 

 

3. 참여계획경제는 실현 가능한가?

주요한 참여계획경제 논의를 몇 가지 살펴보았지만 ‘현실에서 과연 실현 가능한가?’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동구 사회주의 모델의 실패 경험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설사 중앙집중이 아닌 참여 방식이라 하더라도 사회적 차원의 ‘계획’ 경제가 과연 가능한지 또는 가능하더라도 효율적인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참여계획경제론자들은 이미 역사적 조건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또한 동구 모델의 실패 경험을 반성적으로 극복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대안경제체제 수립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1) 실제적인 계획 수립을 위한 계산 가능성

일부에서는 동구 사회주의의 실패를 ‘중앙집중’에 의한 권력 독점과 경직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적인 ‘계획’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엄청나게 많은 영역과 종류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파악하고 계산하면서 계획을 수립한다는 것이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냥 모든 것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내맡기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것이라고 본다. 그로 인한 불평등, 양극화, 인간성 상실 등의 문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참여계획경제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첫째, 기술적으로는 이미 복잡한 정보를 공유하고 계산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은 상황에 도달해 있다고 주장한다. 21세기 고도로 발전한 정보통신 기술은 지난 20세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정도로 상세한 계획의 입안과 실행을 가능하게 한다. 예컨대 오늘날 모든 상품에 부착된 ‘바코드’(barcode)를 이용하고 물류 시스템을 사회적 계획에 활용한다면, 전국적 및 전세계적 수준에서 대부분의 재화의 생산과 재고 및 물류를 통합 관리하고 소비자 수요를 충분히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둘째, 아직 참여계획방식은 아니지만 ‘현재의 사회현실’에서도 다른 차원의 계획이 다양하게 시행되고 있으므로 계획은 상상이 아니라 이미 현실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자본주의 하에서 개별 기업 수준에서도 ‘계획’은 이미 첨단 수준에서 대규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컨대 많은 기업이 소비와 수요량을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하면서 생산량을 조절하고 있다.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와 같은 계획이 개별 기업 수준에 국한되고 사회 전체에서는 경쟁적 투쟁과 생산의 무정부성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된 사회에서 모든 기업의 재무제표가 공개, 공유되고 상호 협의한다면 전국적 및 전세계적 규모에서 생산과 투자를 계획적으로 조절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자본주의라 하더라고 국가 차원의 계획이 오래전부터 어느 정도 있었으며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금 현재 모든 것을 시장에 내맡기는 나라는 없다. 특히 초급사회주의 모델인 중국, 베트남 등 일부 국가에서는 상당 수준의 계획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실제의 문제는 계획의 실현 가능성 문제가 아니라 계획의 주체가 누구이며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참여계획경제론에서는 소수 자본가와 권력엘리트들이 아니라 생산자와 전체 민중의 참여 속에서 계획과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오늘날 정보화의 핵심인 인터넷에 기반한 네트워크의 발전은 계획, 특히 아래로부터의 계획을 가능하게 한다. 예컨대 온라인 토론과 인터넷 투표만 해도 경제와 정치 영역에 이용되면서 참여와 직접민주주의를 광범위하게 확대할 수 있다.

 

2)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 - 기술혁신의 문제

기술 발전 및 이미 어느 정도의 계획과 시장이 혼재되어 있는 현실 속에서 계획은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보여 진다. 그래서 ‘계획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견해는 점차 축소되고 있거나 축소되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더 강력한 문제제기는 ‘효율적 작동 가능성’에 대한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참여계획 경제에서는 사회적 계획에 의해 정태적인 자원배분의 효율성은 확보될 수 있을지 몰라도, 슘페터 등이 강조하는 ‘기업가 정신’에 기인한 ‘창조적 파괴’를 통한 기술혁신의 동학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비해 동태적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판은 관점을 조금만 달리 하면 전혀 필연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참여계획경제에서는 참여와 분업의 폐지를 통해 노동소외가 극복됨으로써 오히려 노동의욕이 비약적으로 증대되므로 생산성은 획기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생산자들의 아래로부터 참여를 통해 생산 현장의 생생한 ‘경험적’ 지식의 결합이 극대화될 경우, 기술혁신은 자본주의 이상으로 역동적일 수 있다. 또한 비인간적 경쟁 대신에 ‘주체적 책임과 사회적 존경’(파레콘), ‘지식의 대중화와 집단 지성’(협상조절모델), ‘자유시간 확대를 위한 생산성 향상’(노동시간계산모델) 등 다양한 혁신 동인이 발현될 것이라 제기한다.

계획경제에서는 혁신과 생산성 둔화가 불가피하다는 비판에 대해 참여계획경제론에서는 그것이 기존의 구 동구 모델의 중앙집중적, 관료적 명령경제에 해당될 수는 있어도 새로운 대안인 참여계획경제에는 해당될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위계적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서 노동자와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영향 받는 것에 비례한 의사결정권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수동적이 되며, 혁신적 사고와 활동의 유인을 갖지 못하게 된다고 본다. 즉 자본주의의 위계적 경영구조는 사람들로부터 경제생활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기 때문에 사람들의 창조적인 경제적 잠재력을 동원할 수 없고 그만큼 혁신 유인은 감소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본주의에서 기술혁신은 무정부적 방식으로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반인간적․생태 파괴적일 뿐만 아니라 중복되고 낭비적이다.

또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시장실패로 인해 기술혁신을 위한 연구개발과 같은 공공재가 사적 재화에 비해 과소 공급될 수밖에 없는 반면, 참여계획경제에서는 이와 같은 공공재의 과소공급 문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비해 더 많은 자원을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을 위해 배분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도 혁신 중 발명과 개발 단계에서는 국가나 대학과 같은 비영리 기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기술혁신은 지적재산권의 설정에 의거한 독점 메커니즘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술혁신의 확산에 한계가 있다. 반면 참여계획경제에서는 무엇보다 공유와 확산이 자본주의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넓고 빠르다. 어느 한 생산 단위의 혁신이 사회적으로 광범하게 공유될 수 있으며 혁신의 사회적 확산도 신속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연구, 개발이 공적 차원에서 더 효과적으로 전개되고 확산될 수 있다. 더욱이 참여계획경제에서는 이러한 생산성과 기술혁신의 과실이 자본의 이윤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삶의 풍요로 귀결되며 사회적 기술혁신의 토대와 에너지로 선순환된다.

 

3) 철학과 이데올로기의 문제

참여계획경제, 나아가 대안사회의 문제는 한편으로는 현실에서의 실현 가능성, 효과적 작동 가능성 문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철학과 이데올로기의 문제이다. 불가능성을 제기하는 입장에는 ‘경쟁 속에서만 역능이 발휘된다’는 경쟁적 인간관과 잘못된 사회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숙명론적 세계관’이 내재되어 있다. 반면 참여계획경제-대안사회론에서는 스스로의 노동을 참여와 협력 속에서 책임 있게 수행해 나갈 수 있다는 ‘주체적 인간관’과 사회는 인간이 만든 것이고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는 ‘변혁적 세계관’이 내재되어 있다.

한편 참여계획경제론에는 또 다른 차원의 관점과 이데올로기 대립도 내포되어 있다. 참여계획경제 모델들은 모두 아래로부터 참여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정신을 따르고 있다. 이들은 아래로부터 참여계획경제를 통해서만 ‘자주관리(영향 받는 정도에 상응한 의사결정권), 평등(노력에 따른 분배), 효율(희소한 생산자원의 편익 극대화), 연대(타인에 대한 배려) 및 생태 보존’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러한 견해는 동구 사회주의 모델에서 나타나는 위로부터의, 엘리트 중심적인 관점과 대립된다.

 

아직 참여계획경제 모델들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며, 빈부분도 많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아직 실현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상상의 영역이기도 하다. 또한 일반적 모델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적 상황에서의 실현 가능성과 이행 경로에 대한 논의로 발전될 때 비로소 그 실천적 의의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느 모델이 맞느냐 틀리느냐 혹은 참여계획경제론 자체에 대해 동의하거나 부정하는 식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참여계획경제론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지향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려는 과학적 상상력과 실천적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논의의 계기라는 의미를 지닌다. 참여계획경제론을 계기로 거기에 개재되어 있는 여러 차원의 문제와 의제들 – 대안사회의 ‘소유 형태’, ‘참여적 계획 방식’, ‘대안경제의 실현 가능성과 작동 가능성’, ‘직접민주주의 구현 방식’ 그리고 더 나아가 ‘이행 방식과 경로’ 등 – 에 대해 새롭고 구체적인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논의들을 구체화해 나가면서 주객관적 토대들을 하나씩 쌓아나갈 때, 대안사회는 더 이상 상상이나 관념이 아닌 변혁 운동의 현실의 과제로서 다가와 있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