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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교육사회학 훑어보기(1)

2003.05.02 20:56

송경원 조회 수:2013 추천:4

교육사회학 훑어보기 1

교육사회학 훑어보기(1)

송경원 교육이론분과


◎ 쓰는 사람의 앞말

지난 진보교육 14호에 「교육사회학 훑어보기」란 제목으로 1950년대 이후 교육사회학이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에 대한 글을 실었다. 그런데 일종의 노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명에게만 반응을 듣긴 했지만). "그랬구나, 하긴 그럴 만하지. 내공을 연마해야겠군"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에 마침 회보 편집자가 쉽게 풀어서 다시 쓰면 어떨까 라는 제의를 해왔다. 편집자의 눈에도 아니었나 보다. 정도 되면 "지난 회보에도 있었는데,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풀렸으리라 여겨진다.

이번부터는 지난 노트식 글에 대한 평가를 고려하여 가급적 쉽게 작성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아직 수행이 부족한 관계로 학문적인 용어나 버릇 못준다고 이른바 운동권 사투리가 들어갈 수도 있으니, 그런 부분은 너그럽게 넘어가 주었으면 한다(나중에 '좀더 노력해'라며 한잔 사주면 더욱 좋다).

글의 분량이 많은 관계로 나눠담기를 택했다. 현재로서는 4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나, 쓰는 이의 무지와 게으름으로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급적 약속한 4회를 지키려고 노력하겠다. 모쪼록 글들이 교육사회학 이론의 흐름과 한국교육의 현실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지난 회보 글의 마지막 부분인 '교사와 계급'은 연구소 자료실에 있으니 따로 풀어쓰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기 바란다.

1. 구조기능주의

교육사회학이란 '교육의 사회학'으로, 교육(주로 학교교육)이란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바라보는 학문이다. 그리고 학교와 사회와의 관계, 학교 내부의 사회적 관계가 주된 관심분야이다. 이런 분야들을 통틀어 이론적인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구조기능주의이다. 따라서 보통 교육사회학을 공부할 경우 구조기능주의부터 출발한다.

(1) 구조기능주의의 논리

파슨스(Parsons, T.) 머튼(Merton, R.) 등에 의해 정립된 구조기능주의는 195060년대를 풍미한 사조이며, 지금도 영향력이 상당하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논리가 하나의 신화처럼 존재한다. 구조기능주의에 의하면, 사회란 사회의 요구(필요, 생존이나 유지, 통합, 발전 ) 의해 기능적으로 분화된 체제들(또는 하위구조들)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곳이다. 표현을 어렵게 생각할 없다. 아무 신문이나 펴서 구성을 보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것이 기능적으로 분화된 체제이다.

파슨스의 사회체제이론(theory of social system) 따르면, 사회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지 기능(일명 A-G-I-L) 필수적인데, 그것은 목표달성(goal attainment: G), 적응(adaptation: A), 통합(integration: I), 잠재유형유지와 긴장관리(latent pattern maintenance and tension management: L)이며, 이것들의 대표적인 예로 각각 정부, 경제, . 문화적 제도를 들었다. 여기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님을 있다. 가지는 최소한의 것이며, 사회가 발달할수록(복잡해질수록) 기능적으로 분화된 체제(또는 체제의 하위체제)들은 점차 늘어난다. 그리고 체제들은 독자적으로 존재·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면서(유기적으로) 존재·운동하며, 결과 사회는 유지되거나 발전한다.

그렇다면 근저에 깔려 있는 , 기능적으로 분화시키는 힘이나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맺도록 하는 힘은 무엇일까? 구조기능주의는 이것을 사회구성원에 의해 공유되는 공동의 가치나 규범, 합의라고 본다. 그러니까 (합의된) 사회 전체의 가치와 규범이 사회 각각의 하위체제들을 기능적으로(부여된 역할에 맞게) 분화시키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도록(역할하도록, 분수에 맞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갈등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합의의 과정으로 가는 부수적인(비정상적인, 일탈적인) 요인일 ,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 사회는 상호관련성을 갖고 있는 제요소로 구성되어 있는 통합된 체계로서 전체적으로 고찰되어야 한다.

⸂ 따라서 인과관계는 복합적이고 상호적인 것이다.

⸃ 통합된 사회체계는 근본적으로 통적 균형상태에 있다.

⸄ 사회에는 기능장애·긴장·일탈 등이 일정한 기간 지속적으로 존재하지만, 결국 스스로 해소하거나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된다. 물론 완전한 통합 또는 균형을 실현할 수는 없지만, 사회체계는 그러한 방향(완전통합 또는 균형)으로 전진하고 있다.

⸅ 일반적으로 변화는 점진적·적응적인 형태로서 나타나고, 급격한 또는 혁명적인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 그러나 점진적인 변화도 사회의 외형적 구조에 영향을 미칠 뿐이고, 사회적·문화적 구조의 핵심적 제요소에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 변화는 세 가지 이유, 즉 외부적 변화에 의한 사회 체계의 적응, 구조적·기능적 분화를 통한 성장, 그리고 사회내의 성원과 집단에 의한 창의(創意) 또는 쇄신 등에 의해서 촉진된다.

⸇ 사회적 통합의 가장 기본적인 요인은 가치(가치)에 대한 합의이다. 전체적인 사회·문화 구조의 기초에는 사회성원들이 바람직한 것으로서 합의한 목표 또는 원리가 있다. 가치체계는 사회적 통합의 가장 중요한 원천인 동시에 사회·문화체계의 가장 안전한 요소이다.

여기서 학교교육(schooling) 사회화(socialization) 선발·배치의 기능을 담당하는 사회의 체제이다. 사회의 가치와 규범을 개인에게 내면화시키고, 그렇게 형성된 개인이 (가정과학교 밖의) 다른 체제들에 적절히 배치되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사회 전체적인 가치와 규범을 내면화시키는 것을 '보편사회화'(한국인이라면 )라고 하며, 특정 사회체제에 부응하는 가치와 규범, 능력 등을 내면화시키는 것을 '특수사회화'(경제인이 되려면 , 예술인이 되려면 )라고 한다.

그런데 사회화와 선발·배치의 과정이 제대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회의 평등과 업적주의이다. 학교교육이라는 제도가 근대사회 이후 등장한 것이고, 근대사회는 이전의 봉건사회와는 달리 신분에 의한 차별을 용납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인을 사회로 배출하는 학교교육은 원활한 사회이동의 장치('위대한 평등장치')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 기회의 평등과 업적주의이다. 여기서 한국인 대부분이 지니고 있는 "학교는 공정하다", "학교에서는 누구나 열심히 하면 성공할 있다"는 믿음이 탄생하게 된다.

(2) 몇 가지 생각

부분에서 잠깐 생각해보면, 먼저 구조기능주의의 논리들 '합의'(또는 사회의 요구)라는 지점이 눈에 띈다. 사회를 기능적으로 분화시키고 분화된 체제들이 굴러가도록 만드는 근본적인 힘이 사회구성원들에 의해 합의된 사회 전체의 가치와 규범이라고 했는데, 과연 합의가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합의란 무엇인가?', '사회의 가치와 규범이 사회 구성원 개개인 모두의 의견을 종합한 것인가?', 아니면 '개개인을 뛰어넘는 사회가 실재하고 사회가 합의된(나아가야 ) 가치와 규범을 제시하는가?'라는 질문들이 등장할 있는데, 여기에 대한 답은 상당한 철학적 논의(자칫 관념의 바다에서 헤엄칠 있다) 요구됨으로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질문 모두 맞다고 가정했을 때에도 문제가 생김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전자의 질문을 긍정하여 합의란 구성원들의 의견이 종합된 것이라고 본다면, "정말 '모든' 구성원들이 합의했는가?" 라는 다른 물음이 금방 나온다. 그리고 후자의 사회실재론을 긍정하면, 당장 "그럼, 인간은 뭔가? 인간이 사회를 만들어왔고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든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합의'(또는 사회의 요구)라는 것이 누구 또는 무엇의 것이냐 하는 부분이다.

번째 생각해볼 있는 지점은 '통합'이라는 부분이다. 기능적으로 분화된 체제가 상호 유기적으로 통합(또는 연관)되면서 사회 전체를 구성한 까닭에 균형상태 유지가 기본이며 갈등은 부수적인 요인이라는데, 과연 그런가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파슨스가 사회체제이론를 정립하는데 제일 먼저 던진 질문이 "사회는 어떻게 유지·발전하는가?"였음을 알아두자. 그리고 이로 인해 학계는 파슨스나 구조기능주의를 보수적인 이론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한가지 유념해야 부분은 변화에 관한 것이다. 구조기능주의는 변화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전의 균형상태에서 새로운 균형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변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걸 개혁(reformation)이라고 한다. 물론 그러면서도 중심은 언제나 균형상태이다. 이와 관련하여 파슨스는 1951년에 출간한 [사회체제이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있다.

현재의 지식단계에서 사회체제의 변동 과정에 관한 이론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런 이론은 체제의 과정에 관한 완벽한 법칙을 알고 있어야 가능한데 우리는 이 법칙을 가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동에 관한 이론은 사회체제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내부의 부수적인 과정에 관한 것일 수 밖에 없다.

생각이 이르는 번째 관문은 학교교육의 기능에 관한 것이다. 구조기능주의는 기능에 따라 체제를 분화하고, 하나의 체제로서 학교에 부여된 기능은 사회화와 선발·배치이다. 그런데, 이것은 학교교육의 수단적(또는 외부적) 기능이다. 우리가 보통 말하고 고민하는 "교육의 본질은 무엇일까?" 관련된 표현은 찾기 힘들다. 이것은 인간자본론, 발전교육론, 근대화이론 구조기능주의의 사고를 담고 있는 모든 이론들에서 발견된다.

마지막으로는 구조기능주의에서의 학교교육이 역할을 다하기 위한 조건에 관련된 것으로, 한국의 교육이 과연 기회의 평등과 업적주의를 실현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우리의 학교교육이 "누구나 열심히만 하면 학교에서 성공할 있다"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믿음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한국교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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