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리 교육사상의 재창조를 위하여

홍은광(진보교육연구소 프레이리 연구팀)

  1. 여는 말

한국 교육에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는 과연 어떤 의미였는가? 『페다고지』는 79년 천주교평신도 사도직협회에서 발간된 이후, 해방신학자, 선교운동, 야학운동을 시작으로 하여 이후 학생운동, 교사운동, 노동운동에서 광범위하게 읽혀지고 토론되어 왔다. 특히 교사운동의 경우에는 초기 교사운동이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은 YMCA의 중등교사 협의회에 많은 이론적 기반을 가졌으며, 80년대 후반 전교조 활동을 하게 된 많은 교사들이 학생운동 시절에 야학활동을 함께 하면서 『페다고지』를 널리 읽고 토론하였다.

프레이리는 지배교육의 '은행적금식 교육'을 비판하고 '문제제기식 교육'을 통하여 비판적 의식을 성장시킬 수 있는 교육을 제시하였다. 분단체제의 지배이데올로기 주입과 전파를 주요 목적으로 하였던 제도교육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출발하여, 새로운 교육이 나아갈 바에 대해서 한국의 교사운동은 『페다고지』로부터 많은 고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는 중남미와 한국의 사회적 상황의 차이, 비제도권 성인 문해교육이라는 프레이리의 실천영역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교육이라는 교사운동의 영역과의 차이 등으로 인하여 프레이리 사상의 한국적 수용과 변용이 이루어졌다.

한국에 있어서 프레이리 사상은 80년대 중·후반까지 교육운동과 민중운동에 중요한 사상적, 실천적 기반으로 역할을 하다가 90년대를 넘어오면서 그 영향력이 급속히 상실된다. 외국의 경우 프레이리 사상의 재구성과 확장을 위한 시도가 여러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에 비한다면 한국에서의 프레이리 사상의 쇠퇴는 매우 급격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최근 경북대 교육문화 연구회에서 프레이리 관련 서적을 계속해서 출간하고 있으며, 아직은 큰 흐름을 만들고 있진 못하지만 프레이리 사상을 현재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시도가 한국에서도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재구성의 시도에는 교사운동에서도 미약하나마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프레이리 사상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하여 이 글은 "프레이리 사상을 과연 어떻게 이해 할 것이며, 프레이리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단초를 쌓아가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2. 프레이리의 교육사상.

1) 변증법적 인식론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은 인식론, 지식론, 교육관, 사회관에 일관되게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의 사상은 변증법적 인식과 실천, 이러한 인식과 실천의 과정으로서의 교육과 혁명적 실천이라는 일관된 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프레이리에 대한 이해는 그의 인식론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며, 프레이리의 인식론에 대한 이해는 곧 그의 교육사상, 사회사상에 대한 이해에 직결되게 된다.

프레이리 인식론의 핵심은 세계를 인식함에 있어서의 기존의 이원론을 극복하는 변증법적(dialectical)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프레이리는 기존의 객관주의와 주관주의의 인식론 양자를 극복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러한 프레이리는 자신의 인식론이 비이원론적(non-dualistic) 관점에 근거함을 밝히고 있으며(Freire, 1972b), 변증법은 이원적 인식론을 극복해나가는 중심적 개념이다.

물론 프레이리의 이론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개념들은 이론과 실천, 의식과 세계, 주관성과 객관성, 자아와 타자 등의 개념들과 같이 이원쌍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이원쌍의 관계는 근대적 이원인식론과 같이 대립하는 두 쌍의 개념을 통해서 그 중 하나를 우월한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를 열등한 것으로 인식해왔던 이분법적 인식론과는 다르다. 프레이리에게 있어서 대응하는 두 개념들은 서로를 개념적으로 존재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으로 작용하는 '이항 전제'의 관계에 있다. 이론과 실천, 의식과 세계, 주관성과 객관성, 자아와 타자, 제약성 등의 개념쌍들은 모두 상호 전제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프레이리에게 있어서 인간의 언어를 구성하는 사고와 행동(혹은 이론과 실천)의 관계는 서로를 전제로 하는 관계에 있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은 근본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하나가 부분적으로라도 희생되면 곧바로 다른 쪽도 상처를 입는다(Freire, 1972a). 또한 의식과 현실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의식은 그 의식을 형성시키는 현실세계 없이 불가능하며, 현실세계 또한 의식을 형성시킴에 있어 그 의식의 비판적 성찰 대상이 되지 않을 경우 불가능하다(Freire, 1985). 그리고 주관성 없는 객관성도 상상할 수 없다. 이 둘은 서로 상대편 없이는 존재하지도 못하고 이분될 수도 없는 것이다(Freire, 1972a). 자아와 타자의 개념 또한 서로의 개념적 전제조건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Freire, 1972a).

개념들간의 상호 작용 속에서 개념이 성립된다는 것은 개념들의 성립조건으로서의 상호관계성 자체가 개념을 형성하는 근본적 요소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상호전제의 관계성은 개념 형성의 근본적 요소이며, 이러한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변증법적 인식의 첫출발이 된다. 이러한 그의 변증법적 인식은 사고와 행동, 이론과 실천, 의식화 현실, 주관성과 객관성의 설명에서 가장 잘 드러나 있다. 프레이리에게 있어서 행동영역을 상실한 사고는 단순한 잡담으로 표현주의화 되며, 사고를 묵살하고 전적으로 행동만을 강조하면, 이는 물리적인 행동으로 행동주의화 될 뿐이다. 참된 행동과 사고는 상호의 개념을 완성시켜주는 상호 전제적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사고와 행동의 변증법적 통일을 그는 세계를 변혁하는 참된 말, 즉 프락시스(praxis)라고 명명한다(Freire, 1972a). 의식이 그 의식을 형성시키는 현실 세계 없이는 존재 불가능하다면, 현실세계 또한 의식을 형성시킴에 있어 그 의식의 성찰 대상이 되지 않을 경우 또한 존재 불가능하다. 따라서 인간의 의식을 부정하는 기계론적 객관주의나 객관적 세계를 부정하는 유아론적 관념론은 인간과 세계의 변증법적 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객관주의와 유아론에서는 참된 프락시스가 자리할 수 없다. 프락시스란 주객의 변증법이 유지되는 곳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Freire, 1985).

2) 인식과 학습, 실천의 과정

'상호 전제'와 '관계성'은 프레이리 인식론의 핵심을 이룬다. 인식대상사이의, 그리고 인식 대상과 인식주체간의, 인식주체 사이의 '관계성'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거리 두기'와, '분할'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거리 두기'와 '분할하기'는 물리적인 거리 혹은 구분이 아니며, 동시에 서로 아무런 관계를 갖지 않는 거리가 아닌, 관계를 가지기 위한 거리이며, 관계를 탐구하기 위한 분할이다. 거리 두기와 분할의 과정이 없는 인식은 총체적 인식이 아닌 추상화된 관념적 인식일 뿐이다. 관계성은 인식대상과 인식 주체와의 상호 관계성과 인식 대상 요소들간의 상호 관계성으로 구분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인식 주제와 인식 대상의 거리 두기, 그리고 후자의 경우에는 인식 대상들의 상호 관계성의 탐구를 위한 분할하기의 과정이 진행된다. 프레이리는 먼저 인식주체와 인식 대상의 '거리 두기' 즉, 객관화 작업을 통해서만이 세계와 인간의 변증법적 관계에 접근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한다. 세계에 대한 '거리 두기'는 세계와 인식자로서의 인간의 관계를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선행조건이 되며, 지식 습득 대상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된다(Freire, 1985: 89). 세상은 관계들의 복합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을 이 복합적인 관계들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세상에 대해서 객관화 작업과 세상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분할하여 해독함으로써 각각의 요소들간의 관계성을 탐구해야 한다. 분할은 해독과정 속에서 분리된 전체와 부분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을 발견하는데 촉진제 역할을 한다. 분할이 이루어지면, 여태껏 막연하게 이해되던 전체는 의미를 지니기 시작하게 된다(Freire, 1972a: 135). 분할은 관계성에 대한 탐구를 위한 과정이며, 관계성을 통해서 요소들을 다시 재통합시키는 과정은 대상에 대한 총체적, 심층적인 이해에 접근하게 한다. 이를 통해 얻은 총체적 인식은 다시 구체적 상황에 대한 이해의 수준에서 그 총체적 관계성의 상황적 맥락의 이해로, 그 상황적 맥락은 다시 총제적 맥락으로 나선형적 순환을 통해서 심화·확장되어 나간다(Freire, 1985: 92).

프레이리의 교육실천의 제 3세계 성인 문해 학습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프레이리는 이 과정에서 기존의 문해 교육을 극복하는 새로운 문해 학습 과정을 실천한다. 문해 교육을 위한 교재인 '편찬물(codification)'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그 편찬물의 내용 선정과 조직 과정에 문해 교육의 대상자가 하나의 주체적 참여자가 된다는 것이다. 학습자는 교재의 편찬뿐만이 아니라 학습과정 그리고 평가의 과정에까지 '객체'와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어야 하며, 학습내용은 학습자의 생활 경험에 기반해야 한다는 프레이리 교육이론의 원칙을 확인할 수 있다. 제작된 편찬물은 '문화 서클(culture circle)'이라는 기초적인 학습 공동체에서 교사와 학습자간의 대화적인 방식을 통해서 학습자의 구체적인 경험과의 연관을 통해서 토론되어진다. 문해 학습자는 편찬물을 대할 때 편찬물에 제시되어 있는 여서 요소들을 확인하고 그 요소들을 분할하여 학습자간의 토론과 발표를 통하여 각각의 요소간의 관계성에 대한 파악을 하게 된다. 이 관계에는 제시된 편찬물에 나와 있는 각각의 요소들간의 관계와, 편찬물의 요소와 학습자의 실제 삶과의 관계가 있다. 학습자는 편찬물의 각 요소와 실제의 여타 사실간의 제 관계를 인식하는 해독 활동을 통해서, 편찬물의 이면에 놓여 있는 심층구조를 파악해 나가게 된다. 이를 통하여 학습자는 편찬물의 내용과 학습자 자신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얻어나간다. 편찬된 전체상을 분해하고 다시 전체상으로 결합시키는 해독과정은 지식습득의 주체들이 지식을 탐구하는 과정이다(Freire, 1985: 47). 이러한 학습과정을 통해서 얻은 인식 내용은 구체적인 경험세계에서의 실천적 사고를 통해서 다시 적용·해석되며, 이를 통해서 얻게된 인식 내용은 또 이론적 틀을 통하여 깊게 숙고되는 인식론적 심화·확장의 순환과정을 거듭하면서 세상에 대한 총체적 인식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Freire,1972b; 32-36).

우리는 여기서 프레이리의 '편찬물에 대한 학습자의 거리 두기→편찬물에 제시된 요소에 대한 해독→관계성에 대한 인식→인식의 총체성 획득→인식론적 순환을 통한 심화·확장'이라는 학습과정이 그의 인식론과 동일한 과정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프레이리에게 있어서 지식 습득 과정은 점근(漸近)의 과정에 있는 것이지, 결코 고정된 상태로 정지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궁극적으로 완전 무결한 인식은 없으며 인간은 비판적 문제제기를 통하여 끊임없이 진리에의 점근 과정에 있는 것이다(Freire, 1985: 109).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인식 내용에 대해서 끊임없이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실천적 인식과정을 통해서만이 진리에의 점근을 가능하게 한다. 프레이리의 '문제제기'의 과정은 현재 시점에서의 진리성에 대한 판단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면서 계속되는 실천적 진리추구의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3) 문제제기식 교육과 혁명적 실천

프레이리 인식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관계성'에 대한 파악이듯이 어떠한 교육실천도 진공상태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오로지 현실적 맥락 즉 역사적·경제적·정치적이며 또한 다른 어떤 맥락과도 필연적으로 동일하지 않은 맥락 내에서 발생한다(Freire, 1985). 정보의 전달과 축적의 과정인 '은행예금식 교육(banking education)'을 극복하는 '문제제기식 교육(problem-posing education)'은 하나의 참된 인식행위로 이루어진다(Freire, 1972a). 즉, 참된 인식의 기본적 원리와 참된 교육의 기본적 원리는 동일한 것이다. 프레이리에게 '인식'과 '교육'이 차이가 있다면, 인식이 특별한 외부의 촉발자와 인식과정을 돕는 구조화된 매개체를 특별히 상정하지 않는 반면, 교육은 특정 매개체를 통하여 외부의 촉발자(교사)와의 대화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프레이리가 제시하는 '문제제기식 교육'은 교사와 학습자가 지식의 전달자와 무비판적인 지식의 수용자의 관계를 가지는 '은행예금식 교육'이 아닌, 교사와 학습자가 서로 배우며 가르치는 동반자적이면서도 대화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문제제기식 교육자는 학생들의 사고 속에서 본인의 사고를 부단히 변형시켜 나간다. 그리고 학습자의 환경과 무관한 혹은 그 관계성을 은폐하여, 학습자에게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교육 내용이 아닌, 학습자의 사회적 삶과 일상의 경험과 관련성을 갖는 교육내용을 교육자와 학습자의 공동 연구를 통해서 추출해낸 교육내용을 기본적 교육 매개체로 삼는다(Freire, 1972a). 학습자는 문제제기식 교육을 통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관계성에 대해서 총체적 인식을 더해 나간다. 이러한 교사와 학습자, 그리고 학습자와 대상 세계와의 교육적 관계의 핵심을 프레이리는 '대화'라 명명한다.

프레이리의 인식론은 그의 교육관과 혁명관에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다. 즉, 그에게 교육과 혁명은 결코 멈출 수 없는, 멈추게 되는 순간에 그 본질적 생명력을 잃게되는 계속적인 인간과 세계에 대한 실천적 인식의 과정인 것이다.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통한 의식화 과정으로서의 교육은 새로운 현실 창조과정 속에서 중단되지 않으며, 언제 어디서이건 계속되어져야 한다(Freire, 1985). 교육과 혁명은 그의 이론 내에서 같은 원리를 가진 것이다. 인간이 역사적 존재-불완전하고, 불완전하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는 존재-인 까닭에, 교육이 그렇듯이 혁명이란 지속적인 차원인 것이다. 참된 교육과 혁명이기 위해서 그것들은 지속적인 사건이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할 때 그것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닌 교화로, 혁명이 아닌 경직된 관료주의로 될 것이다(Freire, 1985).

결국, 프레이리의 "인간과 세계의 관계성에 대한 끊임없는 실천적 탐구를 통한 총체적 인식과정에의 점근의 과정"으로서의 인식론은 그의 교육관과 혁명관에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으며, 이것이 그의 이론이 억눌린자들을 위한 실천적 활동의 과정에서 얻어졌다는 것과 더불어 강한 힘을 가지게 된 중요한 이유이다.

4) 의식화와 프락시스

참된 인식과 참된 교육의 과정은 '인간과 세계의 관계성에 대한 끊임없는 실천적 탐구를 통한 총체적 인식과정에의 점근의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의식양식을 변화시키게 되며, 동시에 사회적 상황 또한 바꾸어 나가게 된다. 의식화는 인간을 책임 있는 주체로서 역사과정에 개입할 수 있게 해줌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자기확인을 추구하게 하며 광신을 피하게끔 해준다(Freire, 1972a).

프레이리는 인간의 이러한 의식의 단계를 준변화불능적·마술적(semi-intransitive, magic) 의식, 순진한 변화가능적(naive transitive) 의식, 비판적(critical) 의식으로 구분한다. 준변화불능적(마술적) 의식은 일상생활의 사실들과 문제 상황을 객관화할 수 없다. 이렇게 매몰된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사실들과 문제상황들을 이해함에 있어서 구체적 현실로부터 자기 자신을 형성하고 재형성해내는 '구조적 인식'을 결여한 상태로, 초월적 힘에 대한 지향, 자신의 운명에 대한 숙명론적 자세를 가진 문화적 침묵 상태에 놓여 있다. 순진한 변화가능적 의식 단계는 전에는 명확히 알아 볼 수 없었던 것을 구상화하고 분별할 수 있는 민중의식으로 능력이 확대된다. 하지만 준변화불능적 의식양식과 변화가능적 의식 사이에는 확고한 경계선이 없다. 많은 점에서 준변화불능적 의식은 변화가능적 의식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판적 의식은 단순한 의식 파악 이상의 것으로, '허위 의식'의 극복을 내포하는 한편, 더 나아가 의식화된 인간의 탈신비화된 현실 속으로의 비판적 개입을 내포하는 의식 단계이다(Freire, 1972b). 프레이리에게 있어서 의식화는 반드시 행동을 촉진시키고 행동을 동반한다. 만일 의식화가 구체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관념적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사고내용은 실천과 구분될 수 없으며, 행동으로 이어진다.

하여 프락시스는 의식화를 구성하는 전제적 개념이다. 행동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그 행동이 진정한 실천이 되려면 반드시 그 결과들이 비판적인 사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프락시스는 억눌린자들의 새로운 '존재이유'가 된다. 억눌린자들은 억누르는 자를 발견하고 자신의 해방을 위한 조직적 투쟁에 뛰어들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을 믿게 된다. 이러한 발견은 단순히 지적인 것이어서는 안되며, 반드시 행동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행동주의에 국한되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진지한 사고와 결부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것이 하나의 실천, 프락시스가 된다(Freire, 1972b).

 3. 프레이리 사상의 재창조를 위해서

1) '학습자에서 출발하기'와 '학습자에서 머물기'

프레이리 교육사상은 기존의 제도 교육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교육의 원리를 제공해줌으로써 '참교육론'의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참교육론 이후 정부 주도의 '열린교육론'이 등장하였고, '열린교육론'의 부분적 긍정성은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으로 인하여 포섭되는 흐름을 보였다.

프레이리는 신자유주의와 초국적 자본에 의한 세계화의 흐름에 대한 저항과 연대를 마지막까지 주장하고 실천하였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 프레이리 교육사상을 신자유주의적 논의 속에서 포섭하고 기능적 방법론으로 해체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루어져 왔으며(Roberts; 2000), 한국에서의 프레이리 논의도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즉, 프레이리가 학습자의 세계관을 존중하고 그 곳에서부터 출발할 것을 주장한 것을 '수요자 중심 교육'과 같은 것으로 이해 하고자 하는 것이다. 90년대 이후 민중은 '개별화된 학습자'로 현신하게 된다. 그리고 '민중적인 것'은 그저 '학습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강해진다. 민중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자던 초기의 생각은 민중이 가지고 있는 것에 머무르는 것으로 변질되어 왔다. 학습자로부터의 출발을 학습자에서의 머무름으로 속 쉽게 해석하고자 하는 유혹에서 민중교육의 정신은 개별화된 욕구 충족으로 해체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프레이리는 다음과 같이 명확한 입장을 밝힌다.
산경험에서 얻은 지식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내 주장을 마치 내가 기본적으로 교육자는 피교육자의 상식적 지식에 머무르면서 결코 그 상식적 지식을 넘어서서는 안된다고 제안하고 주장한 듯이 말하는 비판들은 나를 적잖이 놀라고 당황스럽게 한다(Freire, 1984).
프레이리가 문제기식 교육을 통해서 주장하고자 하는 '민중성'은 고정됨을 거부한다. 개별화된 주체가 아닌 사회적 구조 속에 있으면서도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는, 동시에 사회적 관계 속에 놓여 있으면서도 그 관계를 해방적 관계로 바꾸어 나갈 수 있는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이 민중성일 것이다. 그곳에서 시작하되, 그곳에서 머무르지 않을 수 있는 끊임없는 변화를 추동하는 해방교육의 복원이 필요하다. 이른바 '수요자 중심 교육'은 고립된 학습자의 상황과 욕구에서 머물고, 그 상황과 욕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은 제기하지 않는다. 이는 또 하나의 은행예금식 교육의 발현태일 뿐이다.

2) '대화'의 '회화'화

프레이리는 그의 문제제기식 교육 방법으로서 '대화식 교육'을 주장한다. 어떤 이는 '대화'라는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온건한 이미지에서부터 프레이리 교육사상의 영향력을 설명한다. 그러나 프레이리의 대화는 단순한 '발화' 혹은 '회화'의 개념이 아닌, 그의 변증법적 인식론으로부터 제출된 '세계에 대한 이름짓기'의 과정이다. 하지만 북미의 교육학은 프레이리의 '대화식 교육'은 철저하게 '대화'라는 것만 분리해서 이를 '회화'와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의 민중교육운동에서도 진정한 '대화식 교육'의 원형은 찾아볼 수 없고, 교육 방법, 공학적 의미에서의 '강의식'이 아닌 '대화식'교육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프레이리 또한 『페다고지』이후의 이러한 흐름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서 비판한다.

대화는 교사와 피교육자간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멋대로 어물쩍 넘겨버리는 모호한 지껄임으로 변질되어선 안된다(Freire, 1984).

프레이리 교육사상이 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 1세계를 중심으로 그의 사상을 기술적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그의 사상에서의 교육의 정치적·사회적 성격에 대한 깊은 이해는 빠지게 된다. 이는 프레이리 이론의 강조점을 희석기키고 표면적으로만 받아들이고자 하는 시도이며, 더 나아가서 그의 사상을 해체, 왜곡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3) '교육 만능주의'

프레이리는 그 자신의 사상에 대한 무비판적 경향에 대해서 비판한다. 프레이리 사상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은 '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읽기'를 중시하였던 프레이리 이론자체에 모순되는 것이다. 특히 사회 변화에 대한 교육의 잠재적 가능성에 대한 과대평가에 대해서 프레이리는 많은 우려를 표한다. 즉, 교육에서 시작해서 교육으로 끝나고 마는, 개인의 인식의 확장으로 끝나버리는 '교육 만능주의'에 대한 우려이다. 개인의 인식 확장에서 머무르는 교육은 진정한 '인식의 확장'이 아니다. 진정한 인식의 확장은 인식 주체들 사이의 자신을 발견하고, 세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4. 시작하는 끝맺음

프레이리는 특정 사회 상황에 맞게 그의 이론을 재창조할 것을 언제나 강조하였다. 구체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무비판적 사상의 수용은 생명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프레이리가 가진 힘은 그의 사상은 언제나 그의 실천을 통해서 구성되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는 그는 선험적 이론틀을 현실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현실의 모습 속에서 모든 억압과 모순에 대해서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서 이론을 구성해 나갔다는 것을 말한다.

어쩌면 한국에서의 비판의 언어에 희망의 언어를 결합한 프레이리 사상의 진정한 실현은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다. 같은 것의 다른 이름인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사이에서, 변화를 향한 끊임없는 실천의 교육학을 주장한 프레이리의 사상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읽히고, 검토되고, 실천되어야할 시기이다.

<참고문헌>

Freire, P. 1972a. Pedagogy of the oppressed. 성찬성 역. 1995. 『페다고지: 억눌린자를 위한 교육』. 서울: 한마당.
        1972b. Cultural action for freedom. Harmondsworth: Penguin.
        1985. The politics of education. 한준상 역. 1986. 『교육과 정치의식』. 서울: 학민사.
        1994. Pedagogy of Hope: Reliving Pedagogy of the Opressed. New York: Continuum. 교육문화연구회 역. 2002. 『희망의 교육학』. 아침이슬
Roberts, P. 2000. Education, literacy, and humanization: exploring the work of Paulo Freire. Bergin & Garvey: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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