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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공동체학교

2002.07.24 14:58

이호연 조회 수:1209 추천:3

교사라는

지역 공동체 학교

이 호 연 /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dijon99@hanmail.net

 

우리 나라에는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유난히도 많은 것 같다. 학교, 학원, 가정 방문 학습지 선생님까지, 저마다 다른 목적과 역할로 일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든 교육시장에서든 '선생님'이 많다는 것은 그 자리에 대해 기대하는 정도가 다양하다는 말이고 거기 서 있는 사람의 고민과 부담감도 다 다르다는 뜻이겠다. 아이들에게 '곰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나도 그 중에 하나다. 나는 제도권의 교사 경력이 없지만 아이들을 좋아하고, 이 사회에 조그만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가난한 아이들 「방과후 공부방」교사를 지원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아 깊은 교육론을 펼칠 깜냥은 못 되고, 그동안 아이들과 겪은 일을 느낀 대로 편하게 풀어본다.

집과 학교 사이에서

내 하루 일은 가파른 언덕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는 일에서 시작된다. 12시 반이 되면 먼저 1학년 아이들부터, 학교를 파한 순서대로 이곳에 모인다. 모두 17 명이다. 학교에서 겪은 이야기랑 숙제 걱정에 이르기까지 쉴새없이 입을 놀리는 아이들로 하여 도무지 정신이 없지만 그 왁자하고 시끌시끌함을 빚어내는 아이들의 에너지가 공기를 타고 은연중에 내게도 밀려오는 느낌이다.

이곳은 주로 의류 하청업체들이 몰려 있어서 아이들의 부모도 대부분 관련 업종에서 일한다. 밤늦게까지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부모가 대부분이라 제 눈길 안에 자식을 잡아두지 못한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곧장 이곳 공부방으로 달려왔다가 저녁을 먹고 집에 갈 때가 많다. 우리 프로그램은 토론 벌이는 모둠시간, 특별활동(풍물, 배드민턴 등), 나들이(현장학습), 텃밭 활동 등 아이들이 스스로 나서서 체험하는 내용들이고 거기에 학습지원을 곁들인다.

아이들 대부분이 우리 프로그램을 반기지만 하루종일 오락실에서 시간을 죽이거나 숙제를 거의 팽개쳐서 말썽을 빚는 아이도 더러 있다. 부모는 아이와 씨름할 시간이 없고 아이들은 돈벌이를 위한 놀이 공간에 내맡겨져서 자신을 붙들지 못한다.

아이들 중에는 부모의 폭력이나 알콜 중독 문제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아이도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의 잠재된 분노가 갑자기 폭발하거나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일 때, 아이 내부에 치유되지 않은 아픔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자신의 상처를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속속드리 깨닫는다. 그저 가만히 아이를 안아주고 그 감정의 소용돌이가 가라앉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이의 내면에 도사린 감정의 쓴 뿌리들이 모두 없어지려면 얼마나 걸릴지 생각할수록 답답하다. 그래도 이곳은 그나마 저를 달래주는 곳이니 제 상처를 몸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학교는 그렇지 못한 듯하다.

학교를 빼먹고 오락실에서 죽친 아이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궁금해서 학교 담임을 만나러 갔다. "학기 초에는 거의 엎드려서 잠만 자다가 요즘은 조금 나아진 편이긴 한데, 학교에 친한 친구도 없고, 혼자 지내거나 멍하니 딴 생각을 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아이가 자신감도 너무 없고 자주 우는 편이라서 생활 지도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며 집안 환경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진단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부모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아이에게 무슨 말을 건네줄지 뾰죽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아이들에게 우리가, 「공부방」이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지 늘 되묻는다. 학습 지원도, 정서적인 보살핌도, 문화 체험의 기회도, 급식도 다 긴요한 일이다. 어느 것이건 할 수 있는 일을 하리라. 그래서 집과 학교 사이의 이 어정쩡한 공간이 아이 자신의 공간으로 자리잡기를 소망한다.

공동체로 거듭나기

얼마 전 공부방 교사들의 모임이 있었다. 우리는 '지역 공동체 학교'라는 네크워크 조직으로 이어져 있는데 15 명쯤이 1박 2일로 모여 겪은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모임의 이름처럼 학생과 교사가 함께 삶을 나누고 만드는 공동체 교육을 지향한다. 부모와 교사와 아이 모두가 서로 엮인 관계 속에서 함께 커가고 그 성장을 함께 확인한다. 3년이 넘게 이 일에 투신한 교사들이 보고하는 이야기는 소설에서 나올 법한 감동적인 삶의 체험이다. 자율적인 아이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할 줄 아는 아이로, 아이들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실천하는 공동체로 거듭나면서 교사와 아이들 모두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교사와 아이간에 서로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오가는 그 살듯함에 대해 감동 어린 눈빛으로 고백하는 교사들을 보고 있자면 '아!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다가온다.

아이들 한명 한명이 교사의 마음속에 들어오고, 아이들도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의사소통의 대상으로 교사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일방적인 관심의 관계에서 쌍방향의 상호적인 관계로 바뀌게 된다. 아이들은 점점 '교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주말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즐겨보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교사가 그런 것처럼 아이들 또한 교사의 삶 자체를 알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아이들에게 교사는 한 인간으로 인식되는 것이고, 서로에 대해 나이를 초월한 친구로 여길 수도 있다. 물론 이렇게 수평적이고 안정적인 관계가 되기까지 평탄한 과정을 겪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나 부모들과의 관계 속에서 교사들은 무수한 갈등을 겪고 어려움에 부딪치면서 일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도 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 고생도 한다. 또한 교사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임금만을 받거나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 '지역공동체학교' 교사들이 이 일에 비젼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일하고 있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함께 성장하는 경험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지역공동체학교' 교사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줄 아는 능력과 배움과 성장,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자신만의 내면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소중한 경험은 공동체 교육'이론'이 아니다. 실제로 아이들과 부딪히면서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만든 교육 현장 그 자체이다. 더 나아가 '지역공동체학교'는 각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고 연계하면서 지역에 근거를 둔 교육운동을 벌이려고 애쓰고 있다.

여전히 남는 문제들

나는 교육만으로 저소득층 아이들이 놓인 삶의 현실이 극복될 수 있다는 낭만적인 환상을 품고 있지 않다. 오히려 학원 다니지 않는 아이가 드물어진 교육현실에서 부모의 사교육비 지출은 아이들의 학업 성취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아이들의 성적으로, 더 나아가 대학진학과 직업선택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계층간 불평등 재생산 문제가 제기된다.

저소득층 아이들은 부모의 전적인 통제에서 벗어나 있고 사교육을 받을 형편도 안 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학업 성취 욕구가 적고 성취 정도도 떨어진다. 다른 계층의 부모들과 비교했을 때, 저소득층 부모의 경우 자녀들의 학업성취나 출세에 대한 욕구가 덜 하지 않다. 오히려 학업성취에 있어서는 기대감이 더 강한 것 같다. 다른 자본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학력자본에만 의존하게 되고, 자신들의 고생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자녀들에게 집착하는 경향이 더 높다. 그래서 한달 수입으로 가족이 생활하기에도 빠듯한 저소득층 중에서, 특히 한 부모 가정 중에는 경제적 어려움을 힘겹게 감당하면서까지 아이들을 무리하게 학원에 보내는 경우가 심심치 않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모의 기대나 욕심만큼 아이들은 따라주지 않고 학업에 대한 욕구나 성취가 높아지지도 않는다. '해야만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에 익숙한 아이들은 스스로 욕구가 생기기 전에는 학업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내면의 힘을 개발하면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한편으로 불평등 구조에 매여 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지향하는 교육이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는 될 수 있지만 여전히 남는 문제, 이들이 처한 경제적·문화적 재생산의 문제가 있다. 구조적으로 재생산되는 불평등의 악순환을 고민하고 해결하는 일은 사회적 부모인 우리 어른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어떤 교사가 좋은 교사일까? 이 일을 시작한 뒤로 늘 품는 고민의 하나다. 분명한 윤곽도, 깊게 겪은 일도 없지만 요즘 뚜렷해지는 생각은 내 평소의 생각이 생산성과 경쟁에 얽매여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관계 중심의 공동체적인 생각'을 키워 나가라고 가르칠 수 없다는 점이다. 내 자신이 기존의 가치에 순응하는 삶을 사는 주제에 어찌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해서 행동하라고 일깨울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대안적인 삶을 살려고 애쓸 때라야 좋은 교사로서 아이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야 진정한 삶과 교육의 공동체가 싹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