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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정치,시장,학교조직

2002.04.04 11:28

송경원 조회 수:1479 추천:4

정치, 시장, 학교조직

정치, 시장, 학교조직

옮긴이 : 송경원 ∥ 한국교원대, 교육이론분과

교육시장화 논의의 시발, 처브와 모우. 그들의 주장은 대관절?

해제 : 손지희 ∥ 이론실장
 

처브와 모우는 약방의 감초격이다. 공교육을 시장원리에 맡기자는 편에 서 있는 글이건, 반대편의 글이건 간에 90년대 이후 교육관련 논문에서 이들의 이름은 매우 자주 등장한다. 人口에 회자되는 글 자체는 정작 읽을 틈 없이 막연히 '감'으로 거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처브와 모우 역시 그런 부류에 속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진보교육연구소도 대충 이들이 이러이러한 얘기를 했다는 건 알지만, 그들의 글을 세세꼼꼼히 읽고 따지는 일에는 게을렀다(자기반성...). 물론 처브와 모우를 읽었건 안 읽었건 교육시장화에 대한 입장이 크게 달라질 리는 없다. 다만, 한 번 보아둘 필요는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했길래?"라는 궁금증을 가진 분들도 꽤 있어서 좀 오래된 글이기는 하지만, 교육시장화 논의의 기본틀을 제공한 글이라는 점에 무게를 두어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접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에 한국어로 번역 소개가 안 되었다는 점도 있다. 마침, <초짜세미나> 커리 중 '교육사회학의 연구전통 고찰'을 한 꼭지로 택하면서,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공교육패러다임 일대전환에 기여(?)한 바 있는 처브와 모우까지 다루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연구전통 개괄 글은 80년대 후반의 흐름을 알려주지 않아서 다소 갈증이 일던 터에 이후 교육개혁 흐름을 싹쓸이하다 시피한 시장화 논의를 '연구전통' 속에 위치시켜 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신자유주의 교육에 대해 논문을 쓴 경력이 있는 송경원 연구원이 이런 이론실장의 생각을 쾌히 수용하여 긴급히 요약 번역을 해주었다.

처브와 모우의 논의는 「콜만보고서」에서 시작된 '학교효과연구'의 연구전통을 잇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학교효과연구는 애초에 학교에 대한 일종의 '신화'에서 촉발되었다. 자유주의(신자유주의 말고) 교육개혁이 한창일 때, 미국에서는 학교효과(즉, 사회 평등화에 대한 학교교육의 기여)는 과연 있는지, 만일 교육재정을 분배하려면 어느 부분에 투여해야 학교효과가 높아질 것인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정책연구가 매우 활발히 진행되었다. 앞서 언급한 「콜만보고서」의 연구결과는 기존의 학교에 대한 상식을 뒤집는, 즉 학교교육이 사회평등화에 기여하는 '위대한 장치'라는 세간의 믿음을 부숴버리는 것이었다. 즉, 가정배경의 영향을 학교는 별로 줄일 수 없다는 게 그 결론이었다. 물론, 사람들은 이후 「콜만보고서」의 연구방법이라든지, 결과분석상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재차 연구를 시도했다. 그러나 「콜만보고서」의 결과는 뒤집어지지 않았다. 이런 논박이 70년대까지 이어지다가, 80년대 들어서면서 '효과적인 학교연구'로 연구의 방향이 다소 바뀐다. 이른바 "'교육을 잘 시킨다'고 알려진 학교의 특징은 무엇인가?"가 새로운 관심꺼리였다. 이때 효과의 지표로 설정된 것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이며, 즉, 어떤 학교가 성적 올리는데 효과적인가가 연구의 주된 탐구꺼리였다.

말많던 「콜만보고서」를 만든 당사자인 콜만은 20년전 자신의 연구결과를 뒤집으면서 다시 세간을 논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때 콜만이 택한 방법은 공/사립 비교연구였는데, 미국의 경우는 카톨릭계 사립학교가 '좋은 학교'로 대접받는 분위기다. 이에 착안한 콜만은 사립학교가 공립에 비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에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는다. 결국 80년대의 주된 연구흐름은 공립이 낫냐 사립이 낫냐를 판가름하고 더 나은 쪽의 비결이 뭐냐에 관심을 두고 이어졌다. 물론 미국에서.

처브와 모우는 교육사회학의 전통 중 제도교육정책 연구의 흐름을 잇는 것이면서도, 공교육 메커니즘을 완전히 뒤바꾸어야 한다는 과감한 주장을 들이댄 자들이다. 물론 사상적인 면을 따지면 이들은 '자유시장을 神으로 모신' 프리드만의 후예들인 건 분명하다.

물론, 교육사회학의 중요한 연구전통의 다른 갈래는 '재생산논의'이다. 학교효과전통에 서 있던 연구자들은 수많은 경험적 데이터를 정신 없이 분석하는데만 치중했을뿐, 정작 '학교는 평등화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엉뚱한(?) 연구결과가 발생한 사회구조적 이유는 설명하지 못했다. 사실 그들은 이런 문제엔 큰 관심이 없었다. 재생산론자들은 사회구조적 견지에서 이런 현상을 유발하는 심층기제의 작동을 설명하고 이론화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두 갈래의 연구전통은 다른 경로로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재생산 이론에 대해서는 진보교육 9호에 홍은광 연구원이 정리한 글로 대신한다. 그리고 <초짜세미나> 커리 중 "제도교육, 그 신화와 실상 탐구"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신화에 매달린 자들이 시장화 논의 쪽으로 급격하게 이동해 버렸다면 실상을 들추는데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은 지금 별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연구소는 제도교육의 실상에 정직하게 맞서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렇다고 해서 비관의 나락으로 떨어져 공교육의 존립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우를 범하는 것도 경계한다. 공교육의 존립근거와 그 의의를 다시 확인하고, 공교육을 진보적 관점(공공성, 민주주의, 민중교육권 쟁취)에서 재구조화하는 방안을 제출하는 것이 연구소와 이론분과에 맡겨진 몫이라 자임한다.

이후는 처브와 모우가 1988년에 발표한 논문 "Politics, Markets, and the Organization of Schools" 이다. 1997년에 발간된 교육사회학 논문집『Education: Culture, Economy, Society』에 다시 실린 것을 요약 번역하였다. 건조한 직역투 문체를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하였다. 미흡하지만 내용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의역을 시도한 부분이 많다.

이들에게선 '야바위꾼' 냄새가 난다. 학자로서의 정직성과 성실성에서 출발했다기 보다는 주장이 앞에 놓여 있고 연구는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사립이 공립보다 더 낫다'는 예정된 결론을 '연구논문'이라는 형식으로 치장하여 이끌어내고 있다는 의혹이 인다. 잘 모르고 봤다가는 복잡한 수식 테이블에 현혹되기 십상이다. 원문에는 여러 가지 통계자료들이 등장하지만 모두 뺐다. 통계비전문가에게 숫자는 착시현상을 만들어낼 뿐이다. 각주 10에 송경원 연구원이 통계자료의 문제점을 부분적으로 지적했다. 통계 문외한에게 숫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객관적'으로 비추어진다. 어떤 주장을 그럴 듯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물론 판단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그래도 데이터가 궁금하신 분은 연구소에 오셔서 원문을 보시길.

이들은 사립이 (공립보다) 낫다는 '사실'을 제시하는데 머물지 않았다. 이들은 공립학교의 조직자체(관료적 통제구조, 이들은 이를 민주적 통제라고 부른다)를 완전히 (사립처럼, 다시 말해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이도록) 바꾸어야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우리 독자들은 과연 고개 끄덕일까?

연구소가 존중하는 몇 안 되는 교육학자의 한 사람인 애플은 "첫째, 지나친 관료화와 선택과 요구에 대한 무반응 등이 역사적 경향으로서 국가 안에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 둘째, 학교와 같은 공공 제도들과 공적 통제를 싸그리 폐기하는 것. 이 둘은 같은 소리가 아니다. 두 번째의 주장은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 집단적 노력으로 이룩해낸 성과들을 위협하며, 앞으로 일어날 지도 모를 공교육의 해체는 이들에게는 재난이나 다름없다." 1)라고 짚는다. 관료제의 폐해를 지적하고 새로운 민주적인 공적 시스템을 갖추는 노력은 분명히 필요하나 이것이 곧바로 공적통제 자체를 싸그리 폐기하고 시장판으로 만들자는 주장으로 까지 나아가는 건 위험천만하다는 경고이다.

<초짜세미나>에서도 이들의 논의는 '허술하다'라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이들의 주장은 힘을 발휘했다. 아마도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교육에 대한 시스템 개조 주장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 어찌 보면 '허술한' 연구가 교육의 흐름을 뒤바꿀 정도로 강력한 것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따져보는 것도 재미있는, 그러나 중요한 생각꺼리라 여긴다. 나아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장악력을 가진 이유도 다시 한 번 생각해봄직하다.

정치, 시장, 학교조직

미국의 공립학교는 민주적인 제도2)의 지배를 받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당연시되어 왔다. 즉 지역 교육위원회, 중앙정부와 지역정부 등이 공립학교를 민주적인 방식으로 통제하는 것이 옳다고 인정되어 왔다. 이것은 민주적 제도가 최고의 제도(one best system)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저조한 성취도, 느슨한 학업 기준, 엄하지 않은 규율, 평범한 인간의 양산3) 등 공립학교의 질에 대한 불만과 문제제기가 들끓었다. 그리고 각 주에서는 다양한 개혁조치들이 취해졌다. 그러나 '최고의 제도 틀'(=민주적 제도) 안에서 진행되어온 것이기에 한계가 있었다.

교육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일반적으로 제도는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였다. 학교효과연구는 학교에 초점을 맞추면서 학교내의 조직과 여건에 대해 고찰하였다. 그리고 명확한 교육목표, 엄격한 성적향상 요구, 학구적 풍토, 교장의 교육적 리더십, 의사결정 과정에의 교사 참여, 교장과 교사의 협력적 관계, 학부모의 활발한 참여, 학생들에 대한 높은 기대치 등이 학교효과를 유발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연구들은 분명 좋은 학교가 지녀야할 특성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좋은 학교가 가진 특성들을 다른 학교에로 전이시키려면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며, 이 제도적인 장치는 위로부터 부과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실제로 많은 개혁조치들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개혁조치들은 민주적 통제의 원리를 바닥에 깔고 있다. 즉, 민주적 통제의 원리가 학교에 바람직한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효과적인 학교를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들은 실패할 게 뻔하다. 학교는 개방된 체제이자 그것이 처한 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에, 형태가 달라지면 학교의 형태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학교가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학교자체에서가 아니라 환경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직시하고 학교가 처한 환경에서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 학교효과에 관한 연구들은 환경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이들은 학교 내외의 변인4)을 가지고 학교 효과를 설명해왔으며, 변화가 필요할 때에는 민주적 통제 시스템에 의존하고 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문제(바람직하지 못한 학교 특성)를 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환경이다.

우리는 학교가 속해있는 제도적인 통제 구조 내부의 요소에 의해 학교조직이 결정된다고 본다. 이것은 지금(관료적 통제구조, 여기서 말하는 민주적 통제 구조)과 다른 통제구조가 존재할 시에는 특성이나 형태를 달리하는 학교를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의 공립학교 조직이 가진 특성은 민주적인 통제의 위계적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러한 학교조직의 특성이 학교의 질과 개혁에 있어서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이 연구에서는 민주적 통제 제도 안쪽에 있는 공립학교와 이 제도 바깥에 있는 사립학교를 비교하였다.

공립/사립의 비교를 통해 별개의 두 영역(공립/사립)의 제도적인 통제 논리를 고찰하고 각각에 내포된 바를 찾아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민주적 통제는 효과적인 학교의 특성을 가로막는 경향이 있다. 달리 말해, 공립학교는 (효과적이기엔) 매우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

정치, 시장, 통제

공립학교는 민주적 권위와 행정의 통제를 받으며, 그 기본 틀은 전국적으로 동일하다. 반면, 사립학교들끼리는 공통점이 적어 보이지만, 대체로 두 가지의 특징이 사립학교들에게서 발견된다. 하나는 민주적인 정치체제가 사립학교를 통제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간접적이나마 시장의 통제하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교육기관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본다.

 (1) 지역주민(선거구민)과 소비자

대부분의 경우, 지역 주민의 역할과 이들로 구성된 교육위원회를 중시하긴 하나, 실제로 학교는 지역에 의해 통제되지 않으며, 그렇게 되기도 어렵다. (선거를 거쳐 국민들이 선택한) 주정부와 중앙정부가 학교에 재정을 지원하고 기준을 제시하는 등 학교에 대한 합법적인 (통제) 역할을 맡고 있다. 이는 곧 미국 시민들이 학교를 다스릴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선거라는 민주주의 절차)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시민들의 요구는 정치인이나 행정관료 등 공식적으로 그 역할을 위임받은 대리인들을 통해 발현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해당 학교가 위치한 지역에서 따질라치면 (선거구민 전체 중 1차적인 교육소비자인) 학부모나 학생은 일부에 불과하므로, 이들은 학교를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원하는 교육을 제공받기도 어려운 위치에 있다. 즉, 공립학교 교육은 다수의 지역주민이 규정한 보다 큰 사회적 목적에 의해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한편, 사립학교는 목표, 기준, 방법을 스스로 정한다. 학교 소유자나 후원자, (종교) 교구 등에 의해 정해지기도 하나, 대체로 소비자에 해당하는 학생/학부모를 만족시키기 위해 학교는 이들이 지불하는 비용의 댓가로 서비스를 제공하므로 비용-서비스 교환 원리에 따라 사립학교의 목표, 기준, 방법이 정해진다. 시장의 법칙에 따르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사립학교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 수가 공립학교에 비해 훨씬 적으며, 성격 면에서는 동질적이다. 그리고 교육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에서 실질적으로 중심적인 지위를 누린다.

 (2) '탈출구'와 '발언권'

사립학교 영역[시장]에서 교육적 선택은 '빠져나갈 자유(the exit option)'가 떠받쳐주고 있다. 학부모와 학생은 바로-지금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기에서 나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킬만한 다른 학교를 선택하여 옮길 수 있다. 이로써 교육소비자가 요구와 교육공급자가 제공하는 서비스 사이의 조화는 증진될 수 있다. 이런 조화를 보강해주는 건 선택이 낳는 인구 효과[선택이 집중되는 학교는 살아 남고, 선택을 받지 못해 허덕이는 학교는 죽는 현상] 덕분인데, (상품이 그렇듯이) 학부모와 학생을 만족시키지 못한 학교는 (시장에서) 도태되어 사라진다.

선택은 소비자의 만족과 (학교) 조직의 발전을 이끌어낼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을 가능케 해주는 '빠져나갈 자유'는 학교에 자극제가 되어 학교는 다양한 의견수렴장치(voice mechanisms)를 만들어서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공립 영역에서는 '빠져나갈 자유'가 미미하다. 공립학교는 지역 내에서 '독점'을 누린다. 공립학교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지역 내 학생들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공립 영역에서도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아주 선택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립에서의 선택권 행사는 거주지 이동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비용이 매우 많이 든다.

(공립학교 중 질이 떨어지는 학교는) 학부모들로 하여금 사립학교를 고려하게 만든다. 하지만 여기엔 큰 장애 요인이 도사리고 있는데, 공립학교는 돈이 들지 않는 반면 사립학교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비용의 문제 때문에 사립학교는 소비자를 유치하기 위해 공립학교보다 뭔가 더 나은 유인가를 지녀야 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공립학교는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잘 가르치는 듯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학생들을 붙잡아둘 매력이 있다.

공립영역에서는 '빠져나갈 자유'가 사실상 적기 때문에, 학부모와 학생은 학교의 목표, 방법, 인사정책 등에 불만이 있어도 어쩔 수 없이 공립학교를 다니게 된다. 대신 민주적 통제 구조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권리를 갖고 있지만, (사립학교에 비해) 학생·학부모의 요구와 학교 사이의 어긋남을 극복하기에는 미흡한 수준이다. 극복되기는커녕, 공립영역에서는 갈등과 불협화음은 시스템 자체의 특징처럼 굳어져 버릴 뿐이다.

 (3) 자율과 통제

사립영역에서의 '빠져나갈 자유'는 (소비-공급 간의) 조화와 학교의 책무성 뿐 아니라 학교의 자율성도 증진시킨다. 이것은 카톨릭계 학교 같이 위계적인 조직특성을 가진 사립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5) 교육소비자를 만족시키는데 필요한 기술과 자원들은 이런 위계 조직의 가장 말단으로부터 공급된다고 볼 수 있다. 교육서비스는 조직내의 상호작용, 계속적 피드백, 지식, 기능, 교사의 경험에 터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는 이미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다만 문제는 위계적 통제구조나 외부의 압력이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데 있다.

높은 양반들(학교경영자 혹은 수도원장)은 소비자의 요구와 자신들만의 가치6)가 충돌할 때, 적절하게 균형을 취해야 한다. 사립 영역에서 이는 '교환'과 관련을 맺는다. 사립영역에서는, 학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한 고객은 학교를 떠난다. 학교설립자의 입장에서는 이것을 (학교 설립의) 취지와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대가로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다. 재정이 한계상황까지 치달으면 학교로서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문닫아야 할 상황). '빠져나갈 자유'는 공립영역에서는 보다 높은 수준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제거되어 버렸지만, 사립영역에서 '빠져나갈 자유'는 학교의 자율성을 높이기 때문에 중시된다.

공립영역에서는 제도의 힘이 반대 방향-자율성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민주적 통제의 존재이유는 보다 높은 차원의 가치를 추구하는 짐을 학교에 지우는데 있으며, 따라서 이 틀 속에서 학교의 자율성은 제한된다. '빠져나갈 자유'는 통제를 어렵게 만든다. '빠져나갈 자유'는 학부모에게 '발로 투표(voting with their feet, 학교를 옮기는 것)'하도록 해줌으로써 학교 방침에 순순히 따르는 것을 막는다. 당연히 (각종 교육) 정책들은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관료들은 '빠져나가는 것'에 개의치 않아도 된다. 사립학교가 이탈에 대비하여 자율성을 증진시키는 동안, 관료들은 이탈을 규제하는 법률을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학교의 자율성을 규제하는 장치는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선점하고 있는 구조를 강화한다. 정치인들은 다각도로 지역 선거구민들의 지지를 확보하려 하는데, 여기에는 교원 노조, 학교경영자 연합, 소수집단, 장애인집단, 이중언어 집단 등도 포함된다. 이들은 학교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며, 정치인들은 대중적 인기를 얻어내려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관료들은 정부가 쳐준 울타리 속에서 활동한다. 먼저, 이들의 권력은 관료제가 직접적인 민주적 통제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하다는 사실에서 근거를 얻는다. 하긴 고차원적 가치는 학부모·학생의 불만과 교장·교사들의 자율성 요구에 위협당하므로, 통제를 필요로 한다. 통제는 당연히 관료제와 관료를 요구한다. 한편, 관료들은 또 다른 이익집단으로 기능한다. 전통적으로 (막스 베버에 의하면) 관료는 보다 큰 善을 추구하는 비정치적인[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전문가들이지만, 사실상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로비를 벌이는 매우 힘있는 집단이다.

간단히 말해 이런 시스템은 자율성을 파괴한다. 정치인들은 학교형태를 결정하는 공공정책에 대한 권한을 지니고 있는데, 이 권한은 여러 이익집단의 압력을 받는 가운데 사용된다. 관료들도 통제와 관련하여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다. 만약 학교만의 자율적인 세계가 있다면, 관료들은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7)

 (3) 목적과 성과

공립학교는 공공정책의 산물이다. 많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좋은' 정책에 대한 의견차이가 존재하는 건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들이 각자의 의견을 가지고 다투는 현상을 '좋은' 정책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보기는 힘들다.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그 정책은 효과적으로 실행되기 어렵다. 본디 관료제는 힘들면서 돈이 많이 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개혁은 항상 이러했다. 학교에 중요한 문제가 나타나면, 정치인과 관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특정 집단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부여받은 특권을 활용하고, 그에 대한 처방으로 새로운 정책이나 제도를 내놓는다. 이것이 공립학교가 '발전'하는 방식이 가진 특징이다. 그리고 제도 내에서 가치 갈등이나 권력 변동은 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개혁도 쉬지 않고 일어난다.

반면 사립학교는 전혀 다른 시스템 속에서 작동한다. 사립학교에서의 개혁이 일어나는 건 크게 세 가지 경우인데, 학교가 최상의 이익에 필요한 적응 방책을 찾아야 할 때, 신흥 학교가 교육시장에 진입해 들어올 때, 인기 없는 학교가 실패할 때 그렇다. 그리고 사립학교의 개혁은 학부모·학생의 이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과연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보다 나은가? 결론적으로는 그렇다. 이후에서 살펴보겠지만, 우리는 사립학교가 고객의 욕구에 부합하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의 근거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가 수행해야 하는 다른 중요한 역할에 있어서는 어떨까? 종교적·도덕적인 훈련의 측면에서는 대부분의 종교계 학교가 공립학교를 능가한다. 하지만 민주주의 가치의 전수라든가 문화적 다양성의 인정8)이라는 측면에서까지도 사립학교가 반드시 효과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는 민주적 통제가 가진 정당성을 옹호하는 근거가 된다. 즉 사립학교가 특정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훨씬 더 효능이 있고 학부모·학생들을 만족스럽게 한다 할지라도 일률적으로 공립학교보다 사립학교가 더 낫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어떤 평가든 "학교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매우 기본적인 판단으로부터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자료와 연구방법

1980년부터 시작된 HSB(High School and Beyond)는 중등학교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데이터이다. 1000개 이상의 학교와 60,000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는 학생들의 성취도, 태도, 활동, 가정환경에 대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왔다. 이 자료는 1982년의 Coleman, Hoffer, Kilgore의 연구(고등학교의 성취도)에 기초자료가 되었는데, 연구 결과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보다 학업적인 면에서(강조는 번역자)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려 교육계에 파장을 일으켰다.9)

그런데 HSB에는 학교조직과 환경의 측면이 빠져 있다. 따라서 우리는 교육행정가·교사 조사연구(Administrator and Teacher Survey, ATS)를 설계하였다. 이를 통해 학교와 외부와의 관계, 학교내 리더십, 학교의 구조와 목표, 학교의 영향과 상호작용 형태, 교육적인 실천 등을 조사하여 공립학교와 사립학교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사립학교는 다양하기 때문에 HSB의 범주를 활용하여 카톨릭학교, 엘리트학교, 그 외의 사립학교로 나누어 고찰·비교하였다. 10)

이러한 비교는 통계적인 통제 없이 진행되었다. 학교 규모, 학생의 가정 배경 등 많은 요인들을 통제요인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것이 부적절하고 오류의 가능성도 있어 그렇게 하지 않았다.11)

연구결과(발견들)

 (1) 외부의 권위

정치와 시장의 운영원리에 따라 학교에 대한 통제는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공립학교는 보다 크고 복잡한 지배제도에 의해 학교정책, 교육실천, 인사결정 부문에 많은 통제을 받고 있다. 이에 비해 사립학교는 학교의 구조, 목적, 운영 부문에서 보다 많은 자율성을 누린다.

많은 학교들은 교육위원회나 외부의 행정감독자(교육청 등)으로부터 위계적인 통제구조 속에 있다. 표 24.1에서 볼 수 있다시피 300여 개의 공립학교 중 단 2개교만이 예외이다. 하지만 사립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 학교위원회를 두고는 있으나 외부의 행정관리기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엘리트학교는 외부 기구가 거의 없으며, 기타 사립학교는 절반 정도가 그렇다. 카톨릭계 학교의 경우 공립학교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기는 하나, (교구마다) 다양하다.

(외부의) 행정적인 권위가 적기 때문에 사립학교는 관료적 통제망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운영된다. 한편 학교장이 인식하는 학교위원회에 의한 통제(표 24.3)는 교육과정, 교육방법, 교과, 교직원의 고용, 해고의 다섯 가지 차원에서 비교하였는데, 사립학교는 종류에 관계없이 공립학교보다 학교장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2) 그리고 이것은 교육 활동이나 내용보다 인사와 교과 정책에서 두드러진다. 이에 따라 학교위원회에 대해 사립학교장이 공립학교장보다 더 자주적일 수 있다.

(외부의) 행정감독에 대해서도 사립학교장은 자주적이다. 이것은 행정적인 감독을 받고 있는 카톨릭계 학교 역시 (공립학교에 비해 자주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까지의 결과들은 학교자치 형태에 대한 실제적인 검토가 아니라 '어떠냐' 라는 인지적인 결과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예상과도 일치한다. 결국 사립학교가 자신의 운명에 대해 보다 많은 통제권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외부의 구속 : 조직구성원의 선택

대부분의 조직은 조직 운영에 있어서 조직구성원에 대한 통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학교의 경우에는 교사가 이에 해당하는데, 과연 학교는 어느 정도 조직구성원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을까? 당연히 공립학교가 불리할 것이다. 왜냐하면 공립학교는 교사 고용 및 해고에 있어서 사립학교보다 외부 권위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공립학교에는 두 가지의 구속이 추가되는데, 바로 정년과 교원노조가 그것이다.

공립학교의 교원 정년은 모든 공직부분에서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이 제도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지지자들을 공직에 채용해주는 식으로 보상하는 관행을 막기 위해 생겨났다. (국가의) 개혁자들은 공무원에 대한 정치인들의 간섭(낙하산)이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정부상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객관적인 기준에 근거한 시민봉사제도를 도입하면서 자격이 공인된 공직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년을 도입하였다. 다시 말해, 정치로부터의 독자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처음에 정치인들의 반대에 직면했던 교원 노조는 곧 자신들의 단결된 힘을 돈, 인력, 투표 등의 수단으로 정치인들에게 어필하였다. 또한 경제적 이권과 신분보장도 획득하였으며, 지역 학교 정책의 결정과정에도 관여하게 되었다.

사립영역에 정년제도나 노동조합이 도입되느냐 마느냐의 여부는 역시 정치논리보다는 시장논리에 의해 결정된다. 즉, 좋은 교사에 대한 유인가로서 정년제도나 노동조합이 유력한 구실을 한다면 사립영역에서도 이런 기제들은 도입될 것이다. 공립학교들은 좋은 교사를 유인하는 방책으로 정년이나 그 밖의 신분보호에 있어서의 이점을 내세운다. 하지만 사립학교는 교사의 공급이 많을 경우 정년 등 보호장치보다는 우수한 학생, 규율잡힌 학교 풍토, 학교 내 의사결정구조 등을 이점으로 제시한다. 이와 비슷하게 사립학교 내 노동조합은 시장의 법칙에 따라 성공도 실패도 할 수 있지만, 공립학교처럼 자신들의 복지를 위해 외부의 권위와 공생할 수는 없다.

ATS 자료는 이 점을 잘 이야기하고 있다. 공립의 88%가 정년을 보장하지만 사립은 소수이다. 그리고 공립의 약 80%에 노동조합이 있지만, 사립은 적다. 특히 엘리트학교와 그 밖의 학교에서는 전무하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교사의 고용 및 해고에 대한 외부의 압력이나 어려움 등에 대해 교장들에게 물었다. 먼저 고용 면에서 공·사립 교장 모두 교사지원자의 부족, 저임금 등이 장애로 작용하고 있음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지만, 외부의 행정적인 간섭에 대한 불만은 공립학교장의 경우가 훨씬 높았다(표 24.4).

해고 면에서도 공/사립의 반응이 다르게 나타났다. 공립학교장은 해고절차의 복잡함과 까다로운 형식에 대해 큰 불만을 표시했다.

(공립학교장들이 인사부분에 대해 갖는 불만 요인인) 정년과 노동조합에 대한 수술은 쉽지가 않다. 정년은 법으로 보장받고, 노동조합과의 협상은 (학교단위가 아니라) 지역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외부의 간섭, 정년, 노동조합 등의) 제약에 노출되지 않은 사립학교가 조직 구성원을 선택하는데 매우 많은 유연성을 발휘하고 있다.

 (3) 학부모

대부분의 경우 사립학교 학부모들은 이상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교육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지고 학교를 파악한 결과를 토대로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낸 경우에 속한다. 그리고 만일의 경우에는 '탈출구 선택권'을 활용한다. 그 결과 사립학교의 학부모들의 특성은 대개 다음과 같다. 이들은 자녀의 학업과 숙제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사립학교가 추구하는 (학업성취도 향상이라는) 목표 도달을 도우며, 학교의 의사결정과정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등 학교에 매우 협조적이다.

반면 공립학교는 그렇지 못하다. 공립학교의 학생들은 교육에 대한 관심이 낮은 가정배경을 지니고 있으며, 학부모들은 학교의 노력에 무관심하다. 간혹 약간(아마도 꽤 많은) 학부모들은 학교에 대한 불만이 있다해도 '빠져나갈 능력'[탈출구 선택권 = 돈]이 없는 까닭에 학교내의 민주적인 구조를 주로 활용한다. 결과적으로 공립학교는 학부모로부터 협조보다는 갈등과 실망, 무관심을 받는다.

물론 모든 공립학교와 사립학교가 다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공립 - 정치/ 사립 - 시장)의 특성으로 인해 학교 간에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 자명하다.

정치와 시장 각각이 가진 원리는 서로 다르며 이는 공립학교에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학교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공립학교 학부모들은 학교에 덜 협조적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곤 한다. 더구나 공립학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연성이 부족하다. 이에 반해 사립학교는 문제해결을 위한 유연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4) 환경과 조직의 관계 : 학교장

학교장은 경계선에서 학교와 환경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학교장은 학부모, 교원 노조, 행정가들, 학교위원회의 요구와 압력에 대응하고, 예산삭감이나 정책변화 및 학생수 변동 등 외부 요인에 대처해야 한다. 또한 학교장은 학교의 효과를 증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를 위해 학교장들은 학교효과론에서 제시된 바 있는 확실한 교육목표, 학생과 교사에 대한 높은 기대, 교육적 리더십, 환경 및 풍토의 조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학교효과론은 학교장의 노력에 적합한 학교환경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효과적인 리더십이란 전적으로 개인의 능력에 내맡겨진 요소가 아니다. 리더십은 사회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장들이 소속된 학교가 처한 내/외부적 요인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사회화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공립학교장과 사립학교장은 어떻게 다를까. 먼저 자신의 직업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방식을 살펴보자(표 24.6). 사립학교장들은 공립학교장보다 교육경험이 많은데, 이것은 공립학교의 위계적인 구조와 관련이 있다. 공립학교에서 교장이 되려면 교사들이 일찍부터 승진을 의식하면서 (가르치는 일 보다는) 행정업무를 많이 수행하고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반면 사립학교에서는 행정적인 일에 관여하지 않고 오랫동안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다가도 교장이 된다. 따라서 공립학교장이 승진과 행정을 중시하는 반면, 사립학교장은 교육활동에 관계된 것을 강조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장에 대한 평교사들의 인식도 공/사립 간에 차이가 있다. 사립학교의 교사들은 공립학교의 교사들보다 학교장의 리더십에 대해 효율적이라고 평가하였다. 이 역시 공/사립 학교장의 교육경험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공립학교장들은 (교육경험이 적을 뿐만 아니라) 복잡한 갈등 상황 속에서 학교를 운영해야 하는처지에 있는데, 이런 상황은 교장 개인의 능력에 관계없이 교육적 성공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요컨대, 사립학교장들이 공립학교장들보다 지도자로서 낫다.

 (5) 조직: 목적과 정책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환경이 다름을 안다면, 교육을 위해 각기 다른 방향을 설정해야 함도 알게 된다. 누구든 학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공립학교는 단위 학교의 목적과 구조에 적합한 학생들만을 고를 수가 없다. 문제는 이러한 선택이 가능해야 교육의 수월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공립학교에서는 다양한 학생들로 구성된 탓에 다양한 문제와 갈등에 자주 직면하게 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과정이 요청된다. 하지만 이러한 의사결정과정에는 섣부른 화해를 꾀하기 위한 밀어붙이기 관행이 있다. 결국 이런 (다양한 학생들의 요구와 갈등, 의사결정) 과정은 정치소양 훈련으로서는 타당할지 몰라도 (교육의 수월성이나 갈등의) 문제해결에는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에 사립학교는 자율적인 까닭에 공립학교보다 분명하고 동일한 목표를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편 설정된 목표에서도 차이가 나는데, 공립학교는 기본적인 읽기, 쓰기, 시민성 및 바른 학습태도, 특정 직업기술을 강조하지만, 사립학교는 학업에서의 수월성과 개인 발달에 관심을 기울인다(표 24.7). 물론 이런 차이 역시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각각이 가진 구조의 차이에 기인한다.

(생략 : 교과목의 차이 / 과제 부과의 차이 / 교직원들의 목표 인지의 차이)

결국 공/사립 각각의 움직이는 원리인 정치/시장 원리가 갖는 특성의 차이로 인해 공립학교가 사립학교 수준만큼 발전하기란 매우 힘들다.

 (6) 조직 : 구성원들, 의사결정, 운영

조직이론에 의하면, 주위 환경의 복잡함은 조직의 복잡함에 반영된다. 공립학교는 사립학교보다 훨씬 복잡하며, 목표도 동질적이지 못하고, 느슨하게 결합되어 있는 반면, 사립학교는 그 반대이다. 이것은 엄격한 교육과정, 전통적인 교육방법, 강력한 학교장이라는 사립학교에 대한 세간의 평판과도 일치한다.

공립학교가 처한 환경의 복잡함 이외에 정치와 시장의 원리에 의해 공립학교의 어려움을 설명할 수 있는데, 이것은 정책, 구조, 인사문제 등 공립학교 외부에서 부과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즉, 공립학교는 외부의 복잡한 환경에 적응하려 해도 학교의 선택 범위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 반대로 사립학교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환경일 뿐만 아니라 보다 선택의 범위가 넓다.

특히, 교사들을 보자. 공립학교에서 교장은 마음대로 교사를 임용할 수도 해고할 수도 없다. 그래서 구성원간의 이질감과 갈등이 증폭되어도 손수무책이다. 때때로 교장은 교사와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도 있다.

사립학교도 어려움이 있기는 하겠지만, 학교장이 교사의 임용과 해임에 대해 상대적으로 막강한 권한을 발휘할 수 있다. 학교장은 교사들과 대립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장을 위해 교사들이 일하는 것이다.

이것은 연구 결과(표 24.8)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립학교에서 교장과 교사는 서로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있다. 교장은 교사들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이야기하며, 교사들은 교장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교장이 적절하게 격려하고 지원하는 효율적인 조직의 지도자라고 본다.

한편, 사립학교 교사들은 교육활동과 관련된 각종 의사결정 과정에 깊이 관여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적절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본다. 심지어는 교사의 고용과 해임 문제까지도 노조가 없어도 교사들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믿는다.

교사와 교장의 상호 조화는 교사들 간의 상호 조화와도 연결된다. 사립학교에서 교사들은 마치 가족처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서로의 교과활동에 대한 관심과 조언을 아끼지 않고, 많은 시간을 교육과정과 학생에 대한 대화로 보낸다.

사립학교 교사가 공립학교 교사보다 많은 권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사립학교 교사들은 공립학교와는 달리 자신들은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직업에 대한 만족도도 높다. 이들은 보다 많은 시간동안 일하고 보다 적게 돈을 받고 직업보장에서 취약한 자신들의 상황을 보다 나은 근무조건, 전문적인 자치권, 개인적인 성취와 기꺼이 교환한다. 물론 공립학교 교사들은 그 반대이다.

간단히 말해 사립학교는 마치 하나의 <팀> 같다. 교사 간, 교사-교장간의 인간관계가 긴밀하고, 생산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며, 서로를 높게 평가한다. 물론 공립학교에는 이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 차이는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기본적인 특성 차이에서 기인한다. 사립학교장은 교사를 선택할 자유를 누리지만, 공립학교장에게는 없다.

결론

지금까지의 조사결과와 논의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사립학교는 행정가, 학교위원회, 학부모의 요구와 통제가 약간 느슨한 환경에 처해있어서 보다 자주적이다. 또한 분명한 목표와 학생들에 대한 엄격한 요구 및 기대를 가지고 학구적인 수월성을 강조한다. 교장과 교사, 교사 사이의 관계는 보다 조화롭고 상호작용적이며, 교육활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사립학교 교사들은 학교 내 정책 결정에 많이 관여하며, 보다 많은 자율적인 통제권을 가지고 있고, 자신들의 직업에 만족해한다.

공립학교는 민주주의 제도의 산물이다. 이것은 다양한 집단과 관료들이 통제하는 위계적인 제도 안에 놓여 있다. 그래서 자율성이 부족하며, 학교장이 학교를 이끌어가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학교 목표는 이질적이고 불분명하다. 또한 힘없는 학교장과 노동조합의 교사들이 학교 내에서 권력을 놓고 대립한다.

물론 사립학교도 사회에 의해 통제되지만, 그렇다고 정치나 관료주의에 의해 통제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원리의 지배 하에 있으며, 실질적인 자율성을 가졌기 때문에 교장은 매우 힘있는 지도자가 된다. 이렇듯, 서로 다른 환경은 서로 다른 조직의 행동양식을 낳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교육개혁은 민주적인 통제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 토대부터가 잘못되었다. 결국 공립학교의 개혁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제도개혁이 수반되어야 한다. 공립학교는 민주적인 통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물론 모든 공립학교가 민주적인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할 필요는 없다. 사립학교 조직의 특성을 받아들이기 위해 몇 가지 종류의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직접적인 지배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대안이다. 이것은 공립학교를 여전히 공립학교로 둔 상태에서도 보다 효율적인 조직으로 전환시켜 나갈 것이다.

이런 대안이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민주주의 제도는 그 대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제안은 너무 위협적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승산이 희박하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제도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모든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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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보교육연구소, 애플 초청강연회 자료집, 2000년 2월.
2) 이 논문은 시장/정치(국가)의 이분법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민주적인 제도, 최고의 제도, 민주적 통제 시스템, 정치 등이 국가영역을 지칭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동시에 이것은 <선>한 시장에 대비되고 있으며, 따라서 <악>한 것이다. 한편 민주주의(democracy)라는 표현과 위계(hierarchy)라는 표현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시피 민주주의를 관료제와 동일시한다. 이는 처브와 모우가 온통 (경제적)'효율성'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인데, 모든 제도를 '효율성'의 견지에서 바라보는 탓에 이 논문에서 관료제와 동일시되고 있는 민주적인 제도는 비효율과 무능, 거만의 온상에 다름아니다.
3) 'rising tide mediocrity'. ⇒ 교육의 수월성에 대한 불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 나라 식으로 하면, 학교교육이 '다품종 소량생산에 맞는 '박찬호'나 '빌 게이츠'류의 인간자원을 개발하지 못하고, '소품종 다량생산'의 포드시대 인간을 다량생산 하는데 대한 비난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른바 학교가 '신지식인'을 양성하지 못한다는 학교는 매우 비효율적인 곳이라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4) 학교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적 체제들의 관계. 학부모나 지역사회와의 관계까지.
5) 저자들은 계속해서 사립인 카톨릭학교와 공립학교가 모두 위계적인 질서에 놓여 있음을 은근히 강조한다. 즉, 두 종류 모두 일종의 관료적인 조직체에 위치하고 있지만 카톨릭학교와 공립학교가 다른데, 이것은 시장의 지배를 받느냐 국가의 지배를 받느냐와 관련있음을 주장하고 싶어서이다.
6) agenda of their own. 학교 외부에서 부과되는 고차원적인 가치(higher order value). 이를테면 사회적 요구 등.
7) 관료제로 구체화되어 나타나는 민주적인 통제 구조(민주주의에 의한 교육 통제)는 결국 정치인과 관료들의 밥벌이를 위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8)미국내 인종간, 계층간 문화의 공존을 의미한다. 아무래도 사립은 비용의 문제로 중산층 이상이 많으므로 구성 자체가 문화적 다양성을 배제하고 있는 셈이다.
9) 교육에 대한 다른 가치는 이런 계열의 연구에서는 연구방법상이나 연구자들의 관심에서나 포함되기 어렵다. 또한 '위기에 처한 국가'라는 보고서가 발간되면서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며 호들갑을 떠는 분위기 속에서 학업성취도 문제는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면서 주요한 교육의 가치로 추앙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10) 번역과정에서 생략된 단락에서는 분명 변수, 연구공식, 분석법에 대해 말하고 있기는 한데. 통계를 전공하지 않은 관계로 정확하지는 않으나, 더미변수(dummy variable)를 활용한 회귀분석('regress'라는 표현으로 보아)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근데, 공식은 아무리 설명을 읽어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후에 등장하는 표들이다. 표 24.2∼24.8은 카톨릭계 학교, 엘리트 학교, 기타 사립학교(가로축)와 범주들(세로축)의 관계를 회귀계수와 T-점수(표 아래 캡션 참조)로 나타내고 있는데, 회귀계수는 상호 비교 곤란한 것이 아니었던가. 거기다 주 비교대상인 공립학교의 값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내가 아는 한도(당연히 모르는 것이 많겠지만) 내에서는 이 7개의 표를 가지고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를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은데(표 24.1만 가능), 본문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 심각한 오류일 수 있다는 말이다. 한편 표 24.1을 보면, 각 변수에 대한 공립학교, 카톨릭학교, 엘리트학교, 그외 사립학교의 변수값과 퍼센트를 보여주고 있어 학교간의 비교는 가능하지만, 학교수가 각각 289, 29, 7, 17개 교이다. 이것은 공립학교 300여개를 조사하면서 사립학교는 공립학교의 약 1/6에 해당하는 54개를 조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본 추출에서 의구심이 든다. 이상의 의심들이 맞다면, 이 논문은 쓰레기라는 뜻???
11)이렇게 하고 어떻게 조사연구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그럼, 사립이 좋다는데, 그것이 과연 '순수한' 학교의 효과인지 학교외 배경의 효과인지 모른다는 것 아닌가?
12) 앞서도 말했지만, 표를 보면 공립학교가 없다. 그런데 이런 해석을 하는 것은 매우 무리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