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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진보적 학교 재구조화 논의의 활성화를 위한 시론

2001.11.08 14:04

교육이론분과 조회 수:1609 추천:5

진보적 학교 재구조화 논의의 활성화를 위한 시론1)

진보적 학교 재구조화 논의의 활성화를 위한 시론1)

이론분과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은 민주적 교육개혁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은 제도교육장면에서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살리는 방향으로의 재구조화가 아닌 도구적 가치에 교육을 종속시키는 방향으로, 민중의 교육권 확장이 아닌 이를 박탈하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번 논의에서는 지금껏 이루어져온 신자유주의 교육 비판을 한 단계 뛰어넘어 대안에 대한 모색을 초보적으로나마 내어놓는다. 진보적, 민중적 교육재구조화 방향이라는 주제에 대해 연구소는 1999년 12월 민노당 교육강령 작성 및 2000년 1월 워크샾을 통해 시론을 제출한 바 있다. 이번 논의에서는 현재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교육과정의 문제와 학교재구조화 방향 그리고 이를 포괄하는 체제 구상격인 학제 개편에 대해 앞서의 논의들을 보다 심화하여 재구조화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목표를 두었다. 이번 논의는 진보적 교육론에 대한 논의룰 촉발시키는 계기 마련에 의의가 있다.

이번에 제출하는 진보적 '대안'은 교육체계 전반을 다루지 못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진보적 교육론을 명실상부한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위치시키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논의되어야 할 지점은 인간상과 사회상에 대한 지향을 포함하는 "교육이념"을 제시하는 데 있다. 교육이념은 매우 추상성이 높은 영역이다. 이에 대해 진보교육연구소에서는 "총체적 인간 발달과 민주공동체 건설"을 슬로건으로 제시한 바 있다. 교육이념을 실천의 맥락으로 옮겨와 현실로 만들려면 교육이념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총론수준의 교육 재구조화 방향을 제시해야 마땅하다. 예컨대, 교육과정, 단위학교 운영체제, 학제개편, 지원시스템, 교사의 양성과 임용, 교사에 대한 지속적인 재교육, 교육노동의 재구조화, 정책결정방식 등이 교육체제를 이루는 요소들로서 존재한다. 이에 대한 논의 없이 이념만을 제시하는 것은 공허할 뿐이다.

이번 논의에서는 공교육의 재구조화와 관련하여 그동안 방향과 관점제시에 머물러왔던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 명명화된 교육과정과 새로운 학교 개념을 시론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본격적 논의의 출발로 삼고자 한다. 제시되는 내용은 아주 새롭고 낯선 것들이 아니다.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내용, 그러나 공교육의 역사에서 번번이 그 실현이 좌절되었던 개념과 원리들을 현시기 자본의 교육재편 전략인 신자유주의 교육개편에 대한 대립물로서 위치시켜보려 한다. 여기에는 "비판 담론"에 치우쳤던 기존의 논의 지형을 극복하는 의미가 있다. 실체로 제시된 진보적 교육론의 내용들은 진보적 교육운동진영에게 있어서 비판위주의 수세적 입장에서 공세적 입장으로 전환하는 무기여야 한다. 여기서의 시론적 논의가 비교육적, 반민중적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으로서 그리고 진보적 교육운동 진영의 교육 재구조화 전략으로서 의미를 가졌으면 한다.

1. 민주공동체 교육과정

앞으로의 교육과정에서 감당해야 할 문제는 조각난 인간, 익명화된 교육관계, 결과의 불평등이다. 신자유주의 교육재편 전략은 이런 문제에 별 관심이 없으며 이를 파행적으로 이끈다. 7차의 중심 원리인 "분할", "선택", "경쟁"은 이런 문제를 심화시키는 구실을 하게 된다. 조각난 인간이 아닌 총체적인 인간, 익명화된 관계가 아닌 대면에 의한 교육적 관계, 결과의 불평등을 내버려둔 채 형식적 평등만을 그럭저럭 보장해주는 식이 아닌 결과의 평등을 진보적 교육론의 교육과정 개념으로 삼는다. 이를 전인적 교양중심을 근간의 원칙으로 하는 '민주공동체' 교육과정으로 개념화하여 제시한다. 이는 늘 그래왔듯 전인교육을 구색맞추기으로 언급하는 행태와 질적으로 다르다. 이제 전인적 교양중심 교육과정은 실제 교육을 조직하는 새로운 교육과정 원리의 위상을 차지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공교육의 지위를 자본이 요구하는 기능적 인간 육성에만 묶어두려 한다. 신자유주의 교육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수월성'이며 '경제적 합리성'만이 유일한 합리성의 잣대이다. 수월성과 경제적 합리성 추구를 위해 교육과정구성에서 채택된 전략은 분할과 선택의 원리이다. 7차 교육과정은 '수준별, 선택중심형 교육과정'이다. 학습집단을 수준에 따라 분할함으로써 학습으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학습으로부터의 소외가 발생하는 근본 지점과 해결방안은 딴 곳에 있다.

수준별 선택형 교육과정의 밑바탕에는 인간은 서로 다르다(다양성과 개성과는 다른 의미에서)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학습자간에 존재하는 "수준" 차이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 긍정하면서 학습자 집단을 끼리끼리 모이도록 쪼개는 것을 해결방식인 양 내세운다. 여기에서는 학습자에 대한 어떠한 배려도 없다. 오로지 점수화된 결과에 의해 일렬로 줄을 세운 후 칼질을 해대는 식이다. 새로운 교육과정은 인간에 대한 천박한 차별적 인식에 근거한 교육과정 구성원리를 극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문화적 결핍자'들에 대한 '시혜적' 교육과정 원리나 학습자의 자발성을 존중하는 척 하는 소비자 선택형 교육과정 원리는 공교육의 교육과정을 불평등을 온상으로 만드는 걸 용인하게 된다.

신자유주의적 교육과정 개편은 논외로 치더라도 그 동안 진행된 여러 차례의 교육과정 개편과정에서 끊임없이 제기된 비판 중 하나는 "왜 교육학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수업이 교실에서 정착하지 못하는가?"였다. 학습자간의 수준차를 고려하는 방안이 부재하다거나 '통합적' 교육과정이 부재하다는 비판 역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에 대해 7차에서는 "수준별, 선택형"을 "해법"인 양 제시한다. 현재 학교가 처한 물리적 조건에 대한 논의 없이 Curriculcum 구성과 시간 편재만을 논의하는 것은 예정된 실패로 이를 수밖에 없다. 분명한 점은 신자유주의적 교육재편에서 '온정적'으로 제시한 "수준별과 선택형"은 이를 푸는 방식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앞서 말한 대로 7차에서 제기하는 방식은 교육기회의 차등적 배분을 제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다른 시각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려고 한다.

 

① "전인적 교양중심 교육과정"

공교육 교육과정 구성의 근본원리는 "전인"을 기르는데 맞추어져야 한다.

새로운 교육과정은 이미 친숙한 개념인 전인교육(인간의 전면적 발달)을 지향하며 동시에 결과의 평등을 교육의 전 과정을 통해 추구한다.

"전인"교육은 자본주의적 인간형성과는 근본적으로 배치된다. 신자유주의적 교육재편전략의 하나인 7차 교육과정은 전인을 기르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공교육의 목적은 이미 '전인'을 만드는 것에 있지 않다. 신자유주의가 전인교육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혐의는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간다" 식의 이데올로기 유포와 수준별, 선택중심형 교육과정을 재편의 전략으로 취했다는 것에서 진실임이 드러난다. 신자유주의는 이윤창출에 필요한 지식만을 선별적으로 습득하여 이를 상품으로 곧바로 연결시킬 줄 아는 "신지식인"을 이념적 인간형으로 삼는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려는 교육시스템에서 만들어지는 대다수의 '실패자'들에게 실패의 원인을 '개인이 못난 탓'으로 돌린다. 이에 반하여 "전인"은 '총체적인 인간'을 표현하는 말이다. "전인교육"은 원래 인류 보편적 이상이었다. 다만 현 시기 극복의 대상과 "전인"의 의미를 살리는 교육의 내용 구성 및 이를 향한 교육원리를 구성하고 실천하는 것이 주된 관심이어야 한다.

이처럼 전인교육은 경쟁원리를 몸에 익히고 이를 삶의 행위지침으로 삼도록 인간을 구조화하는 신자유주의 교육과정의 개념과 원리를 극복하는 개념이다. 전인적 교육과정은 특정기능에 매몰된 이윤추구형의 조각난 인간을 만들어내는 교육과정을 거부하는 동시에 여러 품성을 고루 갖추도록 돕는 교육과정 구성원리이다.2)

"전인"을 지향하는 공교육 교육과정에서 내용의 중심은 "교양"이다.

전인을 지향하는 공교육 교육과정의 내용구성 원리는 "교양중심"이다. 신자유주의적 교육과정은 폭넓은 교양이 아닌 기능 습득을 중심에 두는 교육과정이다. 전인교육은 넓은 교양, 그 가운데서도 문화적 교양을 갖추고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돕는 문화적 교양교육에 가깝다. 공교육의 교육과정의 성격의 핵심은 "교양"이어야 한다. 이때 교양은 폭넓은 내용을 담는다. 여기에서는 지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교과활동을 통한 지식교육과 문화를 체험하고 이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특기 적성 교육이 교양중심 교육과정의 두 축을 이룬다. 이러한 내용적 원리가 교육장면에서 구조화되고 실천될 때 폭넓은 소양을 갖춘 전인의 형성이 가능해진다. 물론 교양의 구체적인 내용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이때 두 가지 사항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 중 어느 하나를 우위에 두는 인간의 발달과 존재에 대한 이분법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특정 계급에 소속된 사람들만이 전인으로서의 가능성을 가진다는 차별적 인식의 지양이 또 하나이다. 한 가지 덧붙이면, 특정 계급의 소유물이 마치 보편적 진리인 양 절대화되어 '교양'의 내용으로 행세해 왔던 것에 반대하며, 교육과정의 근간을 이루는 '교양'의 구체적 내용은 민중적, 진보적 관점에서 민주적인 방식에 따라 구성되어야 한다.

 

② 교과활동과 특기적성3) 교육

앞서 말한 대로 공교육의 교육과정은 교양이 중심이어야 하는데, 교양중심 교육과정에는 "교과 활동"과 "특기적성 활동"의 두 영역을 모두 포함한다. 전인적 교양중심 교육과정에서는 "특기적성"의 영역을 주변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교과 활동"과 동등한 수준으로 배치한다.

교과활동은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과 수준"을 선정하고 이를 학습자 집단이 일정한 목표에 도달하도록 돕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는 "심화"를 배울 학생과 "보충"을 받아야 할 학생을 교육과정 편성의 기본 원리로 삼는 것을 배격하는 교과활동 구성원리이다. "심화"와 "보충"은 보편교육으로서의 공교육 교육과정이 내세울 조직원리일 수 없다. 공교육 교육과정에서 교과활동은 모든 학생이 일정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기본으로 내세워야 한다. 누구나 다 전인이어야 하고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공교육의 교육과정이 안고 있어야 할 기본 관점인 것이다.

교과활동이 공통으로 배워야할 내용의 전달 및 습득을 통한 올바른 지성의 사용을 목표로 한다면, 특기 적성의 영역은 학습자의 다양성과 개성을 보다 존중해주는 영역을 교육과정에 배치함을 의미한다. 예체능 교육은 현재 파행으로 치달아 가고 있다. 인간의 삶을 보다 풍성하게 해주는 것은 다양한 예체능 활동과 문예 활동을 경험함으로써이다. 교과 활동의 영역과 유기적 조화를 이루어 지적이면서도 심미적인 인간을 길러내려면 특기적성 활동의 영역을 강화할 필요가 절실하다. 현재 학교의 예체능 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 가운데 하나는 "가르치지도 않고 평가한다"라는 점이다. 일주일에 기껏 두서너 시간 동안 분절적으로 접하는 예체능 교육은 전인적 교양을 갖춘 인간형성과는 매우 거리가 먼 조건이다. 학교에서의 특기적성 활동은 지역적 한계, 가정적 배경의 차이에 상관없이 학교를 통해 알속있는 문화적 교양을 갖추는 영역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③ "결과의 평등"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추구해야 할 목표이자 가치는 "결과의 평등"이다. 이것은 교육의 전단계에서 고수되어야 할 원칙이다. 새로운 교육과정은 학습자의 수준차를 현실로 긍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새로운 교육과정은 "누구나 다 도달할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신념을 원칙으로 삼지 않는 한, 학습자 집단을 "수준별"로 갈라 가르쳐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분쇄하기 힘들다.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는 상태에서 학습부진아에 대한 배려를 하는 것은 능력차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부진아를 "관리"하는 것과 질적으로 다르다. 새로운 교육과정은 "부진아"를 관리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들도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야 마땅하고 그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교육과정이 구성되어 운영되어야 한다.

 

④ 학습집단의 "소규모화"와 "대면"과 "협력" 학습체제 원리

"대면"과 "협력"의 학습체제

싸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만남과 규모가 지나치게 큰 상황이 가지는 문제인 익명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대면" 학습체제를 교육과정 조직의 기본원리로 제안한다. "익명적 관계"에서는 소통이 제대로 될 수 없다.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행평가과제물에 의해 매개되고, 성적표에 의해 매개되고, 입시원서에 의해 매개되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

교육주체 간의 결합방식은 테크놀러지와 싸이버, 점수매기고 점수따는 관계가 중심이어선 안 된다. 교육의 본질은 대면관계에 기반하는 소통에 있다.

"전인적 교양중심 교육과정"운영에 있어서 주체 간의 만남에 있어서 "대면"을 중심원리로 제안한다. 학습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소통을 통한 파악이 학습자를 배려하는 기초이다. "대면"은 학습자와 교사 간의 매개원리 만은 아니다. 학생과 학생의 매개 원리도 대면이어야 한다. 대면이 기초원리일 때, "협력"의 원리 역시 가능해진다.

"대면"과 "협력"에 기초한 학습체제의 구성원리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집단학습의 원리

둘째, 개별화 학습의 원리

셋째, 협력학습의 원리

교사와 학생간의 교육적 만남에 있어서는 첫째와 둘째가 결합되는 형태여야 하며, 학습자간의 만남은 셋째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학습은 테크놀러지에 의해서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오히려 동료의 모습을 보고 따라하고 그에 비추어 자기모습을 반성할 때 진정한 학습이 이루어진다. 7차나 열린교육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학습원리는 '개별화'에 있다. 이는 개체주의적 인간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는 집단적 원리를 배격한 채 인간을 더불어 사는 존재가 아닌 혼자 살아남아야 할 존재로 규정하는 발상이다. 새로운 교육과정에서는 집단학습이나 개별화 학습을 배타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집단학습이 주가 되고 교사의 관찰에 의한 판단에 따라 개별학습자에 대한 배려를 덧붙이는 학습원리를 지향해야 한다.

지식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재화처럼 배타적이지 않음에도 경쟁적이고 실증주의적(뭐든지 측정하여 수량화하는게 목표)인 학교의 문화는 지식의 성격을 왜곡하고 있다. 지식은 특정인들만이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독점물이 아니다. 학교의 교육과정에 있어서 점수에 따른 학습자 분포곡선을 그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누구나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근본 목적이라면,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경쟁의 원리를 지양하고 지식의 공유와 이의 올바른 사용을 서로 돕는 협력의 원리를 기초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학습집단 규모의 적정화"

학습집단 규모는 '교육환경 개선'이라는 협소한 차원에서가 아니라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교육목적의 실현을 위해 교육과정 안에 포함되어 마땅한 중심의제이다. 새로운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목표인 "결과의 평등"과 "전인"의 양성, "대면"과 "협력"의 학습체제는 학습집단을 구분함으로써가 아니라 소규모화함으로서만 풀릴 수 있는 문제이다. 뿐만 아니라, 소규모화라는 조건의 충족없이 "민주적 공동체"의 구현은 부차화되거나 혹은 "달성할 수 없는 이상"으로 끝나버린다. 물적 조건에 대한 털끝만큼의 고려도 없이 허구적인 위원회만 난무하게 해놓고서 민주주의라고 떠벌이는 게 신자유주의이다. 그나마의 재정투자마저 "정보화 기기"에 집중시킴으로써, 학교를 기업의 재고처리장으로 여기는 의혹마저 생긴다. "요컨대, 학교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의 상당수는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대로 학습집단을 분할하고 개별화함으로써가 아니라 학습집단을 소규모화 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규모의 문제는 미국내 실험학교의 일종인 "민주 학교들"의 구성원들이 매우 중요하게 고려하여 반드시 지켜내려는 원칙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상적 사회상이자 학교재구조화의 기본 원리인 민주적 공동체 실현은 대면에 의한 교육관계의 구성과 이를 가능케 하는 물리적 요건인 "소규모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원천적으로 실현불가능하다.

결국, 학습집단 편성의 문제는 교육환경 개선차원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교육과정 구성의 핵심부를 차지하는 의제이다. 새로운 교육과정에서는 "소규모화"를 "전인적 교양중심" 교육과정 실현의 전제조건이자 핵심원리로 제안한다.

 

⑤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합리적 상시 수시 개편" 체제와 학교 단위에서의 "민주적 운영"

 

국가수준의 교육과정 개편은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는 수시개편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5차, 6차, 7차 식으로 전면적, 주기적 개편(기존의 개편주기는 근거조차 불분명하다.)이 갖는 폐해는 분명하다. 이런 비민주적이고 실제 교육활동에 참여하는 현장교사들을 실행의 주체로만 전락시키는 교육과정 개편 체제를 완전히 뒤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전문가 집단이 모여 자기들끼리 갑론을박하다가 결국은 교과 간, 교과 내의 파워게임으로 종결되고 마는 기형적 교육과정 개편 체제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은 시대적,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되 특정 집단이 아닌 다양한 집단의 이해와 요구가 반영되어야 마땅하다.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은 세세히 학교와 교육활동을 규제하는 억압적 규정이어서는 안 되며, 교과를 실제로 가르치고 배우는 교사와 학생이 언제든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방적인 교육과정의 하달은 학교현장을 숨막히게 만들고 실효성도 없이 지침의 형식적인 이행을 강제할 뿐이다. 이수해야 할 시간 수와 과목을 국가수준에서 선정하고 이의 운영은 지역과 단위학교의 자율사항으로 맡겨야 한다.

교육과정의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지역별, 급별, 학교별 특수성과 필요를 감안하여 단위학교 내에서 탄력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단위수와 과목의 수를 일일이 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장 적절한 운영방식을 단위학교 내 구성원들의 논의를 거쳐 찾고 이를 실천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2. "민주 공동체, 생태·생명 지향"의 학교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학교 재구조화 전략은 세 축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신자유주의자들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새로운 형태의 학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둘째, 교육소비자들에게 학교 선택권을 부여한다. 셋째, 결과적으로 새로운 상품의 등장과 소비자 선택의 원리 적용은 기존의 학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새로운 학교 모델과 경쟁하여야 하므로 기존의 학교들은 새로운 형태의 학교를 흉내내게 된다. 이들은 이 세 가지가 결합되면 학교의 재구조화가 이루어진다고 여긴다. 기존 학교를 직접적 대상으로 하는 공교육 재구조화(방향의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대상의 문제만을 놓고 볼 때) 작업은 이들이 보기에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저항에 부딪히게 되면 그 실효성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립형 사립학교 등 새로운 형태의 도입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① "민주 공동체, 생명"의 학교

여기서는 학교재구조화의 기본방향으로 기존의 학교, 즉 절대 다수의 학생과 교사들이 처해있는 학교들의 물리적 구조와 운영체계를 "민주적 공동체, 생명의 학교"로 재구조화하는 것을 기본원리로 제안한다. 이는 "다양한" 학교를 새롭게 만드는 방식을 재구조화의 중심에 위치시키는 것과는 다르다.

"학교 재구조화"의 필요성은 신자유주의적 학교재편 방향과 원리에 대항해야 한다는 당면 과제에서 제기됨과 동시에, 근본적으로는 절대다수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몸담고 있는 기존의 학교모델은 그 자체로서 극복해야 할 점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인식에서 비롯된다. 파시즘적 교육체제의 모순 위에 신자유주의적 원리까지 밀어닥친 현재의 학교는 새로운 방향으로 재구조화되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교육운동이 풀어내야 할 커다란 과제이다. 이것이 하나의 운동이라면, 분명히 견지해야 할 원칙은 우리의 관점과 원리로서 재구조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학교 재구조화를 아우르는 원리로서 "민주적 공동체, 생명 지향"을 제안한다. 여기에서 학교 재구조화의 원리로서 제시하는 "민주적 공동체, 생명 지향"이라는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민주주의, 공동체 등은 무분별하게 사용되어 그 의미가 상당히 오염된 상태이다.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크게 왜곡시킨다. 자본주의 경제 구조 속에서 학교는 재산권과 인권이 쟁투를 벌이는 공간이다. 대중적 공교육이 확대된 이래로 이 두 가지 권리의 충돌은 계속 있었지만, 어느 정도의 타협은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교육에서의 자본의 이윤추구요구(재산권)와 가진 자들의 권리행사만을 배타적으로 보장하는 가장 치우친 형태의 교육개념을 적용하려고 한다. 이처럼 신자유주의에서는 민주주의의 의미가 사고 파는 과정에서의 권리 행사로 의미가 축소되며 이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에서는 '가진 자의 권리 행사'만을 배타적으로 보장해줄 뿐이다. 학교 재구조화에서는 자본과 특정 소비자들을 위해 민주주의를 도구시하는 오염된 민주주의의 개념을 거부한다.

마찬가지로 학교 재구조화에서는 사회적 모순과 구성원간의 불균형한 힘의 관계를 희석시키는 의미의 "공동체" 개념 역시 거부한다. 공동체 속에도 엄연히 모순과 갈등은 존재하며 이를 민주주의적인 관계 속에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적 경험이다.

또한, 학교 재구조화에서는 자기중심성을 강화하는 구조 속에서 태어나 자라난 아이들의 모습을 학교교육을 통해 극복하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관심을 둔다. 자기중심적인 속성이 전혀 치유되기는커녕, 경쟁을 내면화 시키는 학교체제가 만들어내는 인간을 상상해보라. "생명"의 학교는 "경쟁에서의 승리, 생산성 지향, 이윤추구형 인간형"을 극복하는 학교이다. "나"라는 존재의 소중함뿐만 아니라 "주변"(자연과 인간)의 소중함을 배우고 실천하여 더불어 사는 인간형성의 공간과 문화를 학교 재구조화에서 추구해야 한다.

 

② 학교 내 교육주체들의 민주적 질서 형성

관료, 교사, 학부모, 학생 등 학교 내 구성원들은 일정한 힘의 관계 속에서 행위하며, 통제가 관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상당기간 동안 학교 내 힘의 관계는 교사에 대한 관료의 비민주적, 비합리적 통제, 그리고 학생에 대한 교사의 봉건적 통제 양식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은 구성원간의 관계를 "소비자-공급자"로 재규정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에 따르면 학교와 교사는 소비자 지향적인 자세로 복무해야 하며, 관리자는 경영자적 마인드를 가진 강력한 리더여야 한다. 이런 식의 재편 전략은 본질상 관료적 통제 구도와 한치도 다를 바 없이 비민주적이다.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은 기존의 관료적 통제 질서에 소비자주권론이라는 압력기제를 덧붙여 교육의 전문성과 자율성 그리고 민주적 학교운영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

 

교무회의 의결기구화, 학생자치의 실현, 학운위 재구성

3대 교육주체인 교사, 학생, 학부모는 각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제도적 장치를 가져야 하며 이는 허구화되어서는 안 된다. 교사집단은 교무회의를 민주적으로 재구조화하고, 학생은 학생회라는 이름뿐인 자치구조 대신 모든 학생이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고 이것이 힘을 가지게 재구조화해야 한다. 교육시장화라는 맥락에서 제기됨으로써 민주적 의사결정체가 아닌 다른 방도로 이용되고 있는 학운위를 재구조화해야 한다. 거대한 규모에서의 채택방식인 대의제 민주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교는 훨씬 더 작은 규모로, 그리고 학교가 더 많은 논의 시간을 갖는 방향으로 재구조화 되어야 한다.

 

③ 예체능 교육을 지원하는 학교시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생태적 환경의 조성

현재 학교는 전혀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공간이 아니다. 기껏해야 교과수업만을 간신히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용력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빈곤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사회와 학교의 인프라는 경쟁에 지친 아이들을 PC방, 노래방으로 내몰고 있다. 이들이 자연과 인간으로부터 고립되어 자기 혼자만 몰입해버리는 '방문화'에서 얻는 문화적 소양이 과연 무엇일까? 학교는 사회의 다른 어떤 곳보다도 문화적으로 풍부한 곳이어야 한다.

"전인적 교양중심 교육과정"의 내용구성원리로 제시한 "특기적성 교육"을 위해서는 학교가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아무런 시설도 없이 아무런 사회적 지원체제도 없이 교사에게 온갖 것을 떠맡기는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공간 구조 자체를 개편해야 한다.

현재 학교가 처한 환경은 아이들의 심성을 더욱 거칠고 건조하게 만든다. 악다구니를 써야 하는 물리적 구조 속에서 무슨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더럽운 회색빛 건물에 그 누가 오래 머물고 싶어할까? "생명"지향의 인간을 기르기 위해서는 오로지 통제와 규율의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학교의 물리적 조건을 먼저 "생명" 지향으로 재구조화해야 한다.

 

④ 소규모 학교, 소인수 학급

대면에 기초한 교육관계 구성, 전인적 교양중심 교육과정, 모든 구성원들이 모여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 생태적이고 생명지향적인 학교의 환경 조성.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려면 다시 물리적인 조건 특히 규모의 문제로 귀결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교육여건 개선을 약속-재정이 허락한다면이란 단서를 단-하는 제스츄어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듯, 물적 조건이 운영원리를 얼마나 좌우하는지 우리는 모두 안다. 규모 역시 학교재구조화의 기본 원리이다.

규모의 원리는 간단하다. 민주적 공동체, 전인적 교양중심 교육과정 운영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소규모 학교', '소인수 학급'이다.

 

4. 새로운 교육론을 위한 앞으로의 과제

본 글에서는 논의대상을 교육과정과 학교 재구조화만으로 한정하였다. 서두에서 인정한 대로 교육에 대한 진보적 입장을 담아낸 교육론이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완결성을 갖추려면 교육이념(사회상, 인간상), 학제개편방향, 교사의 양성 및 임용과 교육노동의 재구조화, 교육지원시스템 등에 대한 입장과 내용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론분과에서는 워크샵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의제들을 가지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우선 중요한 교육의 원리로서 '공공성'을 제기하려고 한다. 이는 교육을 사적 소비재로 규정하고(공적영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행위를 사고파는 것에 매몰시키는 신자유주의적 추세에 대한 대항원리로서, 나아가 공교육이 작동하는 기본원리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원리로 논의되었다. 공공성의 원리는 교육이념(교육이 추구하는 목표나 가치)과는 차원을 달리 하지만, 교육 질서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공공성 내지 공교육 강화론을 곱게 바라보지 않는 논의에서는 이에 대한 강조를 두고 '국가주의적'이라거나 '평등주의적'(개인 차원의 자유의 가치를 폄하한다는 의미로 쓰이는)이라는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은 결코 대립적이 아니며 오히려 상호 필요불가결한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자유와 평등은 충분히 함께 추구될 수 있고 그래야 마땅하다.

또한, 공공성은 교육의 여러 영역에서 구체화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를테면, 교육의 공공성은 교육기회(양과 질 모두)의 배분에 있어서는 평등성, 운영원리에 있어서는 민주주의, 개인과 사회의 변증법적 발달 측면에서는 총체성(인간의 전면적 발달)과 공동체성으로 표현된다. 앞으로의 논의에서는 공공성 개념을 교육론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로서 제기하고자 한다. 물론 공공성의 개념확인과 이를 통한 재개념화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한편 '지식'의 문제와 '교양'의 문제가 중요하게 제기되었다. 학교는 어찌되었든 여러 가지 형태의 지식을 다루는 곳이며 이를 다루는 특정의 방법이 널리 퍼져 있는 곳이다. 이는 교육과정에 대한 문제의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학교에서 무엇을, 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한 가지 확인한 점은 "누구나 일정 수준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인간의 보편적 발달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고 이를 학교교육의 전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등 교육 단계까지는 인간의 보편적 발달을 추구가 교육과정 조직의 기본 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다만, '교양'이라는 다소 이데올로기적 단어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일이 과제로 제기되었다. 역사사회적 배경에 따라 달리하는 교양의 내용과 교양있는 인간의 모습을 민중적, 진보적 관점에서 새로이 설정하고 이를 학교교육과정의 내용으로 삼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 글은 조만간 세상에 선보일 진보적 교육론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시작하였다. 아직 턱없이 부족한 논의의 양과 질이지만, 이것을 시작으로 보다 풍부하고 체계적인 교육논의가 들끓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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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2001년 7월 28일에 있었던 워크샾 때 제출한 내용이다. 현재 이론분과는 이른바 '진보적 교육론'을 체계화하고자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2) "전인교육이란, 지·정·의(知·情·意)가 완전히 조화된 인격자를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다. 공리주의와 입신 출세주의를 동기로 하거나, 국가 권력이 요구하는 부국 강별 주의에 지배되어서 인간 생활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 지식·기능이나 극단적인 애국심만을 강조하는 교육에 반대하여 나타났다. …이러한 전인 교육은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교회, 혹은 지역사회 등의 유기적 조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교육학 용어 사전,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편, 1994, 「처음처럼」1997년 제3호에서 재인용)
3) "특기적성" 교육은 이미 신자유주의 교육개혁 과정에서 널리 퍼진 말임을 인정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진보교육연구소의 교육논의가 '저들'의 논의와 도대체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현재는 이를 대신할 만한 다른 언어를 찾지 못한 처지임을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