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10호 공교육 정상화와 교육공공성의 큰길로

2001.07.12 14:33

이순철 조회 수:1445 추천:3

교육공공성에 관한 기고글

공교육 정상화와 교육 공공성의 큰길로
- 교육시장화는 '남미형 신자유주의' 유형의 기초학력 저하로 가는 길-

이순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기획국장)

1. 교실붕괴와 '공교육 위기'

2001년 3월1일,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교실붕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교실붕괴'나 '학교붕괴'는 매우 충격적이고 선정적인 단어이다. 대통령이 이렇듯 선정적인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공교육의 만성적 위기'를 간접적으로 입증한 것과 같다. '공교육의 위기'는 너무도 깊어져 있는 것이다.

공교육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1989년 전교조 결성으로 교사들의 대중적 진출이 시작되었을 때 이미 '위기'였던 것이다. 전교조의 창립은 '공교육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역사적인 목소리'였다. 그러나 당시 노태우 정권은 철저하게 '탄압' 일변도로 나아갔다. 교육개혁을 요구하는 교사들의 자주적인 진출은 철저히 차단하면서도 '교육개혁'은 이미 전두환 5공정권때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교육주체의 핵심인 교사들의 자생적이며 역사적인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한채 진행된 교육개혁의 결과가 어떠한 것인가 2001년 소위 '희망의 새천년'에 분명히 드러난 셈이다. '교실붕괴'-5공정권때부터 추진된 '교육개혁 20년'의 결산이다.

'공교육의 위기'가 '만성화'된 것에 비해, 여전히 정부를 포함한 정치권의 '교육문제'를 보는 시각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 단지 범국민적 관심사라는 이유만으로 정서적,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을 따름이다. 총선이나 대선처럼 국민의 환심을 사야할 시기를 골라 특정의 정치적, 정서적 태도를 불러 일으킬 목적으로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대안을 제시' 한다지만 한낱 공염불이며 떠도는 말로만 남는 일이 반복된 것이다. 지엔피 5-6%의 교육재정 확충 공약이 가장 대표적이다. 물론 유아교육법 제정문제도 그러하다. 사립학교에 '공익이사'를 도입한다는 발상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의 '보고서'에 명시되어 있다.

2. 공교육재정 과소투자의 누적으로 인한 공교육 위기의 만성화

'공교육 위기의 만성화' 원인은 한국사람이면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이다. 사교육이 '산업화' 될 정도로 비대해진 데 비해, 공교육은 끊임없이 부실한 상태에 거의 방치되다 시피 했다. 단지 싼 값으로 산업화에 필요한 인력공급과 독재정권의 합리화의 수단으로만 여겨 왔기에 '교육'에 대한 투자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으며, 여러차례에 걸쳐 '교육환경특별회계'니 '교육세'니 하면서 교육여건 개선을 명분으로 교육재정의 많은 부분을 국민에게 전가해 왔지만, 그렇게 거두어진 재정조차 전용해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랜 세월동안 '공교육'은 늘 '재정투자의 부족' 상태에 시달려 왔다. 경제규모에도 못미치는 과소투자가 수십년간 '누적'된 결과가 공교육 위기의 만성화인 것이다.

엄밀히 말하여 우리나라에는 '公'이라는 한자말에 걸맞는 '공교육'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학교교육'이 어떻게 양적으로 팽창해 왔는가 간단히 개관해 보는 것으로도 쉽사리 드러난다. 1970년 이후 박정희 정부는 '개발독재'를 위해 '학교교육'을 양적으로 확대해왔다. 1960년대에는 초등학교가 확대되었고, 1970년-1985년대는 중학교, 1980-2000년까지는 고등학교가 취학연령대를 100% 포괄하는 양적 확대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교육을 '공공부문'의 개념하에서 세워나가지 않았 않았다. 단순화해서 규정한다면, 국가주의적 발상을 근저에 깔은 '국가부문'의 하나로 여겼던 것이다. 국가부문으로서 교육의 양적 팽창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극도로 억압된 '군사독재'체제에 대한 반대급부의 하나이기도 했다. 경제규모가 확대되면서 그나마 '교육'은 정치적 독재치하에서 계층간의 수직적 이동과 '자기실현'의 국민적 기대를 담아내는 극히 가늘고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의 근대적 교육은 출발부터 '공교육'이 아닌 '국가교육'이 되었던 것이다. 그 대가는 이른바 요즘도 떠도는 '수익자 부담'논리의 원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골탑' 망국론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박정희 시절의 '교육재정'은 가족과 개인의 몫이었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근대적 공교육'은 '국가부문'의 하나로, 국민에게 교육재정의 많은 부분을 전가하는 왜곡된 구조로 출발했던 것이다.

중학교 입시제도 폐지와 고등학교 '평준화'는 박정희 정권이 교육을 어떻게 '국가부문'으로 세워나갔는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이다. 국민적 교육열기를 '개발독재'에 '동원'하기 위하여 그러한 정책을 구사한 것이다. 1974년 서울에서 시작된 고교평준화 정책은 '고등학교'의 급격한 양적 팽창을 앞두고 이루어졌다. 요즘 '자립형 사립고'를 도입하여 '교육을 시장화'해야 경쟁력이 생긴다며 '평준화 정책'을 비판하는 조선이나 중앙도 당시에는 평준화 정책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오히려 전국으로 빨리 확대해야 한다고 재촉할 정도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 '평준화'정책의 직접적인 수혜자는 다름아닌 '급격한 양적확대'로 '인력부족'에 직면한 '기업'들이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편에선 조선과 중앙이 평준화 정책을 예찬하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군사정부에 대한 '충성'의 표시라는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평준화 2년째인 1975년 고등학교의 등록금은 무려 60.2% 인상되었다. 실업계 고교는 더욱 심하여, 1974년 64.7%, 1975년 59.8%로 엄청나게 치솟았다. 이는 '수혜자'는 기업인데 반해, '교육비용'은 '국민'에게 떠넘겼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개발독재를 위해 국가부문으로 출발한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은, 양적팽창과 더불어 교육비의 절반 이상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순의 누적이 1989년에 이르러 '교육재정의 위기론'을 낳았고, 이해에 교사들의 대중운동으로서 전교조 운동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돌이켜본다면, 운동의 역사성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치열한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큰 흐름속에서, 교사들의 대중적 진출은 교육재정을 국민에게 전가시키는 국가부문으로서의 교육이 더 이상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문제제기의 의미도 담겨 있었던 것이다.

3. 국가부문으로 출발한 우리나라 '학교교육' 체제 - 교육재정 위기의 기원

1989년의 전교조 결성과 '학부모 운동'의 촉발은 바로 이러한 상황의 '타개'를 역사적 사명으로 하였던 것이다. 운동의 방향은 교육을 반독재 민주화의 역사적 과제를 실현하는 과제의 하나로 '국가부문에서 공공부문'으로 '교육의 공공성'을 바로 세워나가는 큰 흐름속에 있었던 것이다. 내용면에서는 군사독재의 유산인 획일적 국가주의 교육을 탈피하는 것이 당시의 큰 방향이었다. 교육의 형식측면에서, '19세기의 교실'로 불리워질 정도로 극히 낙후된 교육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였다. 이러한 전교조 운동의 '역사성'은 오늘 떠도는 '교육담론'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교육의 '특성화, 다양화'란 구호가 국민에게 설득력을 갖는 까닭은 바로 '교육내용에서의 국가주의적 획일성' 탈피라는 역사적 과제의 실현이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1992년에 등장한 '문민정부'는 군사독재의 유산을 철폐하는 과제를 짊어지게 되었다. 교육개혁에서도 이러한 '과제'는 동일하였다. 국가주의 교육을 일소하고, 교육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일이 그것이었다. 그리하여 '교육의 민주화'와 함께 '교육여건의 획기적 개선'이 '교육개혁'의 필수적인 과제였다.

이런 흐름속에서 지엔피 5% 교육재정 문제를 전교조가 지속적으로 제기하였고, 1992년 대선시기에 쟁점화된 것이다. 문민정부의 지엔피 5% 교육재정 확보 공약은 수십년간 누적된 공교육의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이 조차 5%에 지방교육재정도 포함하는가 마는가의 '논란'속에서 1998년 달성으로 미루어지고 말았다. 이어 등장한 국민의 정부는 지엔피 6%로 교육재정비율을 높였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물려준 1997년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이 모든 과제의 실현을 위한 '교육개혁'은 왜곡되고 말았다. 국민의 정부는 아이엠에프의 '권고'를 글자그대로 이행하는 가운데, 소위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명분속에서 '교육'도 단지 '재정투입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만 단선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공공부문 축소' 경향의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이 급속도로 학교교육여건을 더욱 악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자립형 사립고'등을 들먹이면서 교육내용의 측면에서 '국가주의적 획일성 탈피'에 공감하는 중상류층을 부추기며, 공교육 예산을 감축했기 때문이었다.

1998년의 지엔피 5% 확충 목표는 1997년의 '경제위기' 탓에 달성되지 못했다 해도, '경제위기'를 벗어났다던 1999년에 교육재정은 1998년보다 더 줄었다. 2000년에 지디피 대비 교육재정은 최저치를 기록하여, 4.17%에 머물렀다. 인건비의 비중의 점점 높아진 점을 감안하면, 결국 교육여건의 획기적 개선을 위해 투입되어야 할 '자본투자'는 더욱 감축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재정감축의 결과는 '학교교육'의 현실을 알리는 '지표'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1997년에는 학교폭력, 1998년에는 왕따, 1999년에는 공교육 문제의 종합지표로서 '학교붕괴' 담론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2001년 3월, 이제 공교육의 위기는 대통령의 '교실붕괴' 공언과 함께 '교육개혁의 실패' 결과로서 여론화되어 있다. 하지만 너무도 명백한 '과소투자'의 문제는 제쳐놓고 '자립형 사립고'와 같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교육시장화'의 경향이 국민적 반대여론을 무릅쓴채 끊임없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전히 '지식기반경제'니 하는 '추상'으로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를 가리고 있어 더욱 '공교육 정상화'로 가는 길이 멀고도 험난한 상태이다. 사회적 의제설정을 독점하고 있는 중앙언론과 특히 '조선,중앙,동아'의 세 신문은 이제 교육개혁의 실패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그들이 예찬했던 '평준화정책'을 물고 늘어지며, '교육의 시장화'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시각은 공교육 위기의 지표를 '교육 정보화' 속도가 느린데서 찾을 뿐이다. 그리고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빚어지는 '학교폭력,왕따,교실붕괴' 사태를 외면한 채, '산업사회'에서 '지식기반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범세계적인 보편적 현상'이라며 문제를 축소하는데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조선,중앙,동아 세 신문은 실체조차 불분명한 '평등주의자'들이 발목을 잡아 '교육 시장화'의 추진속도가 늦어지고 있다며 정부를 질타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부 계층의 문제에 불과한 '조기유학'과 '유학이민' 열풍을 교육위기의 핵심적인 지표로 부풀려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삶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10대들이 1년 10만명씩 학교를 탈출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시야에 없다. 취업률 50%에 머문 20대들이 미래의 '전망'을 상실해가고 있는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똑같은 일을 하지만 '비정규직'으로 전락하여 월급을 반 밖에 못받게 되어 자녀를 제대로 교육시킬 희망조차 잃어가고 있는 30대와 40대들이 취업인구의 57%에 이른다는 사실은 아예 관심권의 밖이다. 공교육에 대한 재정투자의 '과소'문제는 안다 해도 '경제'를 내세우며 덮어버린다. 이렇듯 공교육 위기의 숱한 지표중에서도 극히 표피적인 것만 부풀리고 있는 것이다. 공교육의 만성화된 위기는 '사회적 위기'의 반영에 불과하다는 점을 바로 보지 않는 것이다. 단지 '교육부문'과 '초중고 학교교육'에 한정하여 살피더라도, 공교육 위기의 지표는 '학교를 탈출'하는 학생들의 행렬,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4. 공교육 위기의 기원- 교육재정의 축소투입과 사교육 시장의 방치

2000년 12월, 한국교육개발원은 『교육재정 규모 적정수준 판단 및 교육재원 확보방안 연구』(이하 '연구'로 약칭)라는 연구보고서에서 이러한 문제를 극명하게 지적하였다. 1970년부터 2000년까지 30년간, 양적으로 경제규모가 늘어난데 비해 교육재정은 지속적 '과소투자'의 상태에 있었다는 점을 실증했다. 2000년 현재의 교육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교육재정의 '과소투자'중에서 '자본투자'액만도 약 9조 3500억원으로 추산했다. 향후 2004년까지 추가로 지출되어야 할 액수는 약 47조 6550원이며, 30년간 과소투자 누적분 9조 3500원을 합치면 향후 5년이내(2000년에서 2004년까지) 57조원의 추가지출이 이루어져야 '경제수준'에 맞는 정도의 '교육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이씨디 수준을 목표로 한다면 5년간 368조원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엔피(* 현재는 지디피로 바꿔 부름) 6% 교육재정 확충문제를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교육을 '국가부문'에서 '공공부문'으로 바로 세워나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최소지표'였다고 볼 수 있다. 4년간의 교육재정 분석으로 간단히 입증된다.

<표>국민의 정부 교육재정(1998-2001)

(억원)

구 분

1998

1999

2000

2001(안)

부족액합계

GDP 규모(A)

4,443,665

4,837,778

5,224,800

5,668,908


교육예산규모(B)

193,965

203,156

218,022

256,829


GDP대비 비율(B/A)

4.36

4.20

4.17

4.53


GDP6%대비 부족액

△72,655

△87,111

△95,466

△83,305

338,537

현 정부가 만약 지디피 6% 교육재정을 임기시작인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지속적으로 투자해왔다면, 실제 투자액보다 약 34조원을 더 투자한 것이 된다. 교육개발원의 연구에 따르면, 학급당 인원 1명 감축에 1조 2천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34조원을 학급당 인원 감축에만 투입했다고 단순하게 가정해서 계산하면, 4년동안 넉넉하게 잡아도 무려 28명을 감축할 수 있는 액수인 것이다. 1년 평균 7명이다. 지디피 6% 대비한 지난 4년간의 '과소투자' 34조원의 의미가 이것이다. 지난해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이 말했던 '34조원이면 공교육 문제 모두 해결'의 공언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지디피 6% 교육예산 확보의 문제를 교육개발원의 연구결과와 함께 해석해보면 결론은 단순해진다. 1970년부터 30여년간 '과소투자'된 9조5천억원에 대한 '충당'과 함께, '경제규모'에 맞는 '자본'투자를 위한 최소치였던 것이다.

이를 교육개발원의 연구결과와 연계하여 따져볼 수 있다. 34조원을 더 투자했다면 교육개발원이 추산한 2000년까지의 '과소투자액' 9조3500억을 빼고 약 24조원을 더 투자한 것이 된다. 물론 34조원 전부를 '자본투자' 했다고 가정했을 경우이다. 이렇게 되었을때 향후 2000년에서 2004년까지 교육개발원이 '추가 자본투자액'으로 산출한 액수가 47조원이니, 23조원만 더 투자하면 되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시 말해, 지디피 6% 교육재정을 1998년에서 2001년까지 계속 투입했다면, 2002년에서 2004년까지 3년간 23조원(연평균 8조원)가량만 추가로 자본투자하면, 과거 '저투자'로 빚어진 '심각한 교육환경의 악화'를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렇듯 교육재정 지디피 6%라는 지표는 누적된 과소투자액을 보충하고, 공교육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표였던 것이다. '경제위기'가 없어, 1998년부터 바로 6% 재정투입을 했더라면, 지금쯤 공교육의 '내실화'를 향한 기반이 상당한 정도로 구축되었을 것이다. 학교붕괴로 총칭되는 만성화된 '공교육의 위기'에도 직면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컨데 '민주개혁'의 큰 흐름속에서 '학교교육 내실화'를 위한 '공교육 인프라의 재구축'과정이 되었을 것이며, 교육을 국가부문에서 '공공부문'으로 연착륙시킬수 있었을 것이다.

5. 공교육 위기의 또 다른 기원 -교육관료체제의 구조혁신 지연

누적된 공교육의 과소투자와 '수익자 부담'의 그릇된 적용으로 공교육은 경제규모에도 못미치는 과소투자 상태가 누적되어 왔다. 비대칭적으로 '사교육시장'이 과대하게 팽창되었다. 이제 그것은 '산업화'되어 글자그대로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공교육의 내실화를 끊임없이 차단하는 '걸림돌'이 되어 있는 정도이다. '자립형 사립고'는 이렇듯 '산업화'된 사교육 자본이 '공교육'까지 넘보는 데서 나오는 발상이기도 하다.

'공교육의 만성적 위기'와 대비되는 '사교육의 산업화' 현실은 우리 교육의 문제를 극명하게 지시한다. 교육부 장관을 역임한 사람이 유력한 '교육기업'의 사장으로 취임하는 현실이 오늘 우리 교육이 직면한 위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지디피 6%'의 교육재정 확충과 동시에 무엇이 진행되었어야 했는가에 대한 또 다른 '지표'를 제시한다. 바로, 민주개혁으로서 일관되고 철저하한 교육부문의 '구조혁신'과 '제도개혁'이 병행되어야 했다는 뜻이다. 교육재정은 감축했어도, 구조혁신과 제도개혁이라도 일관되게 진행되었다면, 공교육위기의 해결이 한결 쉬운 조건이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전교조는 창립때부터 19세기의 교실을 벗어나기 위한 '교육여건 개선'과 더불어 법제도 개혁을 주창해 왔다.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국가부문'으로 양적팽창을 이룩한 '교육계'는 다른 어느 부문보다도 '군사독재의 유산'이 깊게 새겨져 있다. 군사정권이 종식 9년째인 2001년에도 이러한 사정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국민의 정부 들어 '교육부의 수장'은 평균 6개월도 못되는 짧은 수명 끝에 물러나고는 했다. 이로 인해 공교육 위기론이 거론될 때마다 '교육부 장관'의 잦은 경질문제가 함께 제기되어 온 것이다. 교육개혁 실패의 책임은 늘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되었고, 아무런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하지 못한 채 정치적인 수사가 마치 대안인양 반복되는 사태가 '교육개혁 20년'의 역사속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교육관료체제였다. 군사정부의 개발독재에 필요한 '인력동원' 정책으로 인하여, 교육관료 체제는 비대하게 팽창하였다. 이는 군사정권 종식 9년째인 오늘에도 여전히 일관된 교육 민주화를 저지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는 이러한 '교육관료체제'의 해체와 개혁을 외면하였다. 구조개혁에 실패한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교육개혁의 실패와 오류가 '교육관료체제'에서 비롯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단지 장관을 바꾸는 일만 되풀이하면서 아무런 손질도 가하지 않았다. 개혁의 명분이 아무리 드높아도 일종의 신성불가침 영역처럼 되어있는 것이다. 취임후 1달이면 교육부 장관은 이미 '관료체제'의 '블랙홀'속에 빨려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런 비대한 교육관료체제는 교육재정의 효율적 사용과 낭비 및 교육정책 입안과 추진의 비전문성을 낳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학교현장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문민정부에서 시작된 교육개혁은 단위학교 책임제의 강화와 함께 '교장의 권한 강화'로 이어져 왔으나, 학교의 혁신은 여전히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다. 한때 명분있게 도입되었던 교장 임기제는 거의 유명무실화되어 있고, 요란스러웠던 초빙교장제는 말로만으로 끝났다.

지금 학교현장은 십여년에 걸친 평교사 중심의 '교육민주화 운동'의 결과, 상당한 정도로 '민주화'가 이룩되었으나, 교장의 권한 강화 추세속에 교육민주화에 역행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는 중이다. 교육관료체제의 '맨 아래'에 위치한 단위학교 교장은, 교육현장의 맨 꼭대기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민주화로 변화된 사회와 문화는 학교의 변화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쪽으로 진전되어 왔다. 그러나 단위학교의 책임자인 학교장은 여전히 군사정부 시절의 '관료적, 파시즘적'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학교 책임제 실시와 학교장의 권한 강화는 이러한 부작용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

뒤늦긴 하나 단위학교 교장의 문제는 '교육관료체제'의 개혁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과도하게 비대해진 상태에서 '교육정책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를 비롯한 각 단위 교육청의 '관료체제'를 개혁해야 한다. 진정 단위학교 책임제의 교육이 가능한 상황은 바로 이렇듯 '관료체제의 슬림화'를 선결문제로 요구하고 있다. 이는 이제 막 학교현장의 구체적인 목소리를 '장내의 테이블'에서 내고 있는 교원노동조합과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관료체제의 개혁으로 교육정책 결정권의 독점구조를 해체하는 과제라는 뜻이다.

단적인 예로, 국민의 정부에서 '교육관료체제의 혁신'이 지체된 결과, 교육사상 처음으로 교육과정의 문제가 시행도 되기전에 여론화되는 문제를 낳고 있다. 7차교육과정은 입안자와 개발자, 시행자, 그리고 현장교원들 모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현장의 적합성을 살려내는 '현직교사'의 참여를 배제하고 교육관료체제에 의해 입안과 추진이 독점된 결과 '비전문성과 비현실성'의 숱한 오류를 파생시키고 있다. 게다가 6차교육과정에 대한 정교하고 과학적인 장기간의 평가를 거치지도 않은 채, '아이디어' 수준에서 시작된 것이 7차교육과정이다. 그리하여 개발과 시행이 거의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엉터리' 교육과정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재정투자의 축소로 군사정부보다 못해진 교육여건과 교실붕괴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학교현장에 누덕누덕 짜깁기한 교육과정이 강제로 들이밀어진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7차교육과정은 소위 원안에 가깝게 시행하는 기준을 정한 지침수준에서 완전히 후퇴하여, '최소수준'으로 단위학교의 실정에 따라 '어떻게 해도 좋은' 정도까지 뒤틀려졌다. 간단히 말해서, 6차교육과정과 동일한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비대한 교육관료체제'가 비효율과 비전문성에 젖어 있으면서도, 교육정책 결정권한을 독점하고 있기에 빚어지는 것이다.

각론에서 문제가 많아도 7차교육과정의 '총론'은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 그들은 피상적 자유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들이 스스로 '자유주의자'라고 여기면서도 사실은 '신자유주의자'이거나 낡은 '국가주의자'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교육관료체제를 혁신하지 않은 상태에서 접목된 미국식 자유주의는 기껏해야 '자유시장주의'로 변질되면서 '관료적 무책임성'과 신자유주의의 야만성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하였다. 열린 교육의 실패는 극명한 사례이다. 속은 온통 '국가주의' 교육관으로 젖어 있는 사람들이 추진한 열린교육은 단지 피상적인 '테크닉'의 수입으로 끝나 버릴 것이 뻔히 예견되었다. 권위주의적으로 '닫혀 있는' 교육관료체제에 의해 '내리먹임식'으로 시행된 '열린교육'은 시행 방식부터가 '열린 교육의 철학'과 배치되었던 것이다. 주체의 '자발성'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를 고민하지 아니하고, 속은 '국가주의', 겉은 '자유주의', 추진은 '국가주의', 형식은 '신자유주의' 철학에 의해 추진된 열린교육은 이제 소위 '수구세력'이 비웃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

지금가지의 논술을 요약해 보자. 교육을 '국가부문'에서 '공공부문'으로 올바르게 세워나가는 작업을 위해서는 두가지가 꼭 필요하였다. 첫째는 지디피 6% 교육재정 확충을 통한 누적된 '과소투자'의 극복과 교육여건의 획기적인 개선이었다. 둘째는 교육을 '국가부문'으로 완강히 독점하고자 하는 교육관료체제의 구조개혁을 통한 첫째 과제 실현의 조건 마련이었다. 그 어느것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20년간의 교육개혁은 실패했고, 이제 국민적인 '교육열기'조차 꺾이기 직전의 상황에 놓여 있다.

6. 전교조의 공교육 정상화 전략 - 국가부문에서 공공부문으로

전교조는 공교육 정상화의 전략을 '교육의 공공성 확립'에서 찾는다. 이는 문민정부와 국민정부에서 '지연된' 국가부문으로서 '교육체제'의 해체와 공공부문으로서 새로운 교육체제의 수립을 향한 길이다. 현 정부는 아이엠에프가 시키는대로 우리나라의 현실에 전혀 정합하지 않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교육에 적용하였다. 그리하여 국가부문으로서의 낡은 잔재들이 고스란히 온존한 상태에서, '공공부문'으로 이행하는 과제를 저버리고 '교육 시장화'로의 조급한 이행을 추진중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공기업 민영화' 전략에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한다면, 우리나라에 '국가부문'으로서의 '국가 관료지배 기업'은 있었지만 '공기업'은 없었다. 국가관료의 지배로 발생하는 '비효율'과 '무능'의 문제를 너무도 쉽게 '민영화'로 대체한 결과가 '무분별한 시장화'와 해외매각인 것이다. 소위 시장화된 기업의 경영구조 조차도 국가관료와 비슷한 '위계적 관료체제'를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조건인데, '민영화'는 하나의 '신화'에 불과한 것이다.

교육부문은 아예 '민영화'도 아닌 '시장화'의 흐름속에 있다. '공교육 정상화'문제가 여론화 될때 마다 그 '대안'으로 거론되는 자립형 사립고가 바로 '시장의 신화'속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방책이다.

교육 시장화를 하지 않아도 교육에 관한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미 '치열한 경쟁'속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이 '입시지옥'에 시달리며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은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에서 시도된 교육개혁의 긍정적인 측면은 바로 이러한 '입시지옥'의 해소를 목표로 삼았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제도개혁과 재정투자가 동반되지 않았기에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전교조의 공교육 정상화 전략은 여기서 시작된다. '공공부문'으로 교육부문을 바로 세우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제도개혁과 재정투자를 이룩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교실붕괴'가 심화된 현재의 공교육 위기상황에 비추어 너무 늦긴했다. 하지만 아직도 희망은 있다.

이제 국민의 정부 임기가 1년 7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따라서 필요한 제도개혁과 재정투자를 할 수 있는 시기도 얼마 안된다. 더 늦기전에 최소한의 조치를 국민의 정부는 취해야 한다.

최우선적으로, 교육인적자원부가 수년동안 '추진'하고는 있으나 너무나도 속도가 느린 '학교시설 현대화' 사업을 가속화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초등학교는 취학율 100% 달성이후 '40여년'이 경과하고 있어 시설을 새롭게 정비하고 재건축해야 하는 긴급성에 직면해 있다. '재건축'이 느리고 부실하게 진행되고 있어, 콘테이너 교실에서 수업하는 어린이들이 너무나 많은 실정이다. 우선, 올해 책정된 교육재정 중에서 자본투자의 상당액을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다음으로, '컴퓨터 들여놓기'를 중단하고 교육인적자원부가 수년간 추진해왔던 교실의 조명도 향상, 화장실 개보수, 냉난방 설비 확충 등 기본학습기반 시설의 마련에 교육재정의 자본투자를 집중하여 그 속도를 높여야 한다. 교육인적자원부의 계획은 늘 2004년까지를 목표로 잡았었고, 그나마 이제는 2005년으로 1년 지연된 계획을 내놓고 있다. 이를 적어도 1-2년 정도 압축해서 늦어도 2003년까지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여름이 본격적으로 오기 전에 '냉방' 설비를 서둘려야 한다. 엘리뇨 현상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여름은 예년보다 일찍 시작되어, 7월초면 이미 '한여름'을 느낄 정도로 덥기 때문이다. 기본 학습기반시설로서 냉방대책을 철저히 수립하여 어른들에 대한 '어린학생'들의 신뢰부터 회복하자.

나아가 급수설비나 학생 휴게실,탈의실,급식과 식당 설비 등 기본적인 학생복지 시설을 확충하여 '오고싶은 학교'를 만들 수 있도록 자본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특히 도서관 확충사업은 '별도회계'를 마련해서라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지식기반경제'의 기본 인프라는 '컴퓨터'가 아니라, 도서관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컴퓨터 들여놓기 사업을 늦추고 기본학습시설, 학생복지시설, 도서관을 충분히 확충하는 일을 선행으로 추진해야 한다. 오히려 학생들이 '컴퓨터와 인터넷 중독 증후군'에 빠질 우려가 높아진 현실을 주목한다면, 컴퓨터 도입과 사용은 오히려 극력 자제해야 한다.

이 모든 사업은 전부 '교육재정의 집중 투입'이 요구된다. 따라서 지디피 6% 교육재정 확충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김대중 정부는 임기 마지막해인 2002년에라도 반드시 지디피 6% 교육재정을 확충해야 한다. 이렇게 확보된 재정의 상당부분을 '자본투자'에 집중하여 '초등학교 재건축 사업의 정상적 추진', 냉난방을 핵심으로 한 '기본학습기반 시설', '학생복지 시설', '도서관 확충'에 우선적으로 투입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업은 국민적으로 합의하고 국가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전교조는 국민적 여론을 불러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전교조와 함께 위와 같은 과제의 실현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7. 전교조의 단체교섭안 -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최소한의 교육정책 요구

가. 3대 요구의 실현 : 공교육 정상화의 출발점

<학급당 인원 25명 이하 감축> 학급당 인원감축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사회문화적 조건속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교실붕괴를 극복하여 학력상향과 교육의 질을 높이는 가장 훌륭한 방책은 '학급당 인원'을 20명 이하로 감축하는 것이다. 20명에서 18명으로 감축했을 때, 특히 하위집단의 성적이 10% 향상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미국에서 나와 있다.

오이씨디 국가들은 이미 90년대초에 25명 이하 감축을 실현하고 있으며, 2000년대의 목표는 20명 이하에서 더 적은 경우, 15명 이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가장 빠른 학력 향상과 공교육 정상화의 길'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기존의 계획서에서 단지 연도만 살짝 바꾸어 '재탕, 삼탕'하여 제출하는 무책임을 벗어 던져야 한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다며 2001년부터 교원 5500명씩을 증원하겠다는 2000년 4월의 약속을 파기했다. '임기내 30명 이하 감축'공약도 공염불이 되었다. 이제 2004년까지 '35명(초중교),40명(고교) 이하 감축'으로 후퇴한 보고서를 내는 지경까지 밀려 있다. 이런 계획을 몽땅 백지화해야 한다. 25명 이하 감축의 '청사진'을 지디피 6%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재정확충 계획과 함께 마련해야 한다.

<사교육 수요 부추기는 7차교육과정 수정고시> '7차교육과정'은 성적으로 인간을 등급화하는 교육과정임이 드러나면서 사회적인 저항에 부닥쳐 있다.

무엇보다도 '경쟁과 수월성'을 강조하여 우리 교육의 고질적 문제인 '입시경쟁체제'를 극단화할 것이 예견되고 있다. 사교육 시장의 팽창은 7차가 적용된 지난해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지난번 교육부가 발표한 과외비 실태에서도 이는 확인된 바 있다.

때문에 전교조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 7차교육과정의 시행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쟁과 수월성'의 원리는 우리나라의 교육열기에 비추어 보건데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다.

7차교육과정은 즉시 수정고시되어야 하며, '교육과정개선위원회'를 구성하여 현직교원의 목소리를 수렴해야 한다. 여기서 교육과정 전체의 틀을 새롭게 짜는 방안을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마련해 가야 할 것이다.

<교장선출보직제는 교육관료체제 혁신의 출발점> 공교육 위기론은 늘 '교육개혁의 실패'와 함께 거론되었다. 문제는 '실패'라고 규정되면서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더욱 이 '무책임성'이 심각하다. 1년도 못채우고 교육부 장관이 교체됨으로서 교육정책은 일관된 방향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흔들리고 혼선을 빚었다.

교육주체를 배제한 교육정책의 관료독점 구조에서 무책임은 필연이다. '비전문성과 비현실성'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교육부는 교사들을 대표하는 교원노조를 일관되게 교육정책의 결정과정에서 배제해왔다. 군사정부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일부 학부모나 시민단체를 형식적인 '위원회'에 참여시키면서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하는 모양새만 갖추어 왔다는 것 정도이다.

그 결과 교육정책의 관료독점 구조와 교육관료체제는 교육부 장관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 있는 것이다. 단위학교 교장은 이러한 거대 관료구조속에 포진하여 있으며 이는 교육재정의 비효율적 사용과 낭비의 원인이며 학교민주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비효율적인 관료구조를 온존시킨 정부의 교육개혁이 장벽에 부닥치는 것은 필연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교사들이 교장선출보직제를 관료독점 교육구조 탈피와 학교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나. 3대 제도개혁과제의 실현 : 진정한 교육 공공성을 향한 디딤돌

<사립학교법 개정은 공교육 정상화의 최우선 과제 > 단지 부패,비리재단의 학교운영 복귀를 막는 수준의 문제의식으로 부족하며, 공교육 정상화의 큰 틀속에서 이 문제를 보아야 한다.

사실, 사립학교법 개정은 문제해결의 시작에 불과하다. 국민의 40%가 반드시 택할 수밖에 없는 사립 중고교의 문제는 결국 '공교육 정상화'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재단의 비리와 부패척결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사립 중고교가 공립보다 훨씬 교육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국회가 이 문제를 더 이상 미루거나 회피하게 되면 공교육 정상화는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국민의 80% 이상이 사립학교법 개정에 찬성하고 있다는 '여론'을 옳게 반영해야 한다. 전교조는 연대운동으로 확인된 국민적 지지와 열망을 모아 사립학교법 개정을 포함하여 사립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제도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시장의 실패'극복을 위한 유아교육의 공교육화> 유아교육의 '현실'은 교육시장화의 '미래'를 축약해서 보여준다. 치열한 경쟁으로 최소한의 기준에 미달하는 유아교육기관이 '난립'되어 있으며, 단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소수'만이 혜택을 입고 있는 '시장의 실패'의 전형이 현재 유아교육의 현실적 양태이다.

공교육 전체를 이러한 모습으로 하겠다는 '교육 시장화'의 발상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다. 유아교육의 '시장화' 결과 1년 7조원 정도의 '사교육비'가 지출되고 있으며 이는 교육부의 '사교육비 통계' 수치에서조차 빠져 있다. 유아교육은 이렇듯 '시장화'가 어떻게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현실'이다. 사회적 비용을 엄청나게 사용하면서도 교육적 효과는 일부에 한정되기에 지속적으로 쟁점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요컨데 유아교육의 '공교육화'는 교육시장화의 필연적인 결과인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는 시금석이다. '국가부문'이 아니기에 오히려 '공공성의 밑그림'을 그려내는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시장화'에서 연유하는 '난립'을 넘어서서, 최소한의 기준 및 요건을 구비한 '유아교육법'에 근거하여 공교육 부문으로 정립하는 과제가 긴급한 것이다.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혀있지만 오히려 그때문에 정부의 '공교육 정상화' 의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유아교육법 제정 문제이다.

문제는 정부가 대통령 공약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이해집단에 얽힌채 추진의지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어정쩡하게 '타협'하여 '바우처 프로그램' 도입 등 형식적인 '공교육화'의 구색맞추기 만으로 마무리할 가능성도 있다. '시장의 실패' 극복을 위해 '공교육'의 기본틀을 마련한다는 관점에서 법제정 사업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교육과정개선위원회를 구성하고 교육과정의 틀을 새롭게 짜야> 7차교육과정은 단지 '수정고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경쟁과 수월성에 기초한 '신자유주의' 교육철학이 폐기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교육개혁이 공교육 정상화에 실패한 결과 전국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보충자율학습이 부활되면서 다시금 입시지옥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다.

인문계 고등학교가 현재 이러한 상태이므로, 2003년도에 시행될 '교과목 선택제'는 껍데기만 남게될 것이다. '입시경쟁'이 온존한 상태에서 도대체 어떤 학생이 '논리학'이나 '심리학'이나 '교육학'을 선택할 것인가. 이러한 사태는 '학생의 선택권 보장'이라는 추상화 수준의 '언명'을 구체적인 조건에 대한 고려 없이 실현해보고자 날림으로 '교과목 선택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교과목 교실 등의 기본학습시설조차 전혀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되는 교과목 선택제는 중학교의 '수준별 수업'회오리에 이어서 고등학교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뜨릴 것이다.

따라서 설사 7차교육과정이 '중단'된다 하더라도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 될 수는 없다. 7차를 시행할 수 있는 시설여건과 교원충원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도 최소한 5년이 필요하지만, 7차교육과정의 근본 문제는 '여건' 불비의 문제를 넘어선 곳에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정글의 질서'를 전제하고 있는 '7차교육과정의 교육철학'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먼저,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경쟁과 수월성'의 교육철학은 인간과 자연을 '극한적인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교육관이다. 현대문명의 위기를 감안하여 21세기의 교육은 '상생'과 '공존'의 철학으로 새롭게 정초해야 한다. 7차교육과정의 '수준별' 개념은 이미 '장애우'나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경향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어, 왕따를 오히려 증폭시키고, 학교폭력과 교실붕괴를 가속화 시킬 것이다.

따라서 보다 장기적인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므로 7차교육과정의 문제는 새로운 교육과정의 마련으로 해결될 수 있다. 수정고시는 부분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제도개혁의 과제로 설정하여 추진해 나가야 한다. 특히 학교현장에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 교육관료적 입안과 추진의 폐해를 반드시 탈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원노조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교육과정개선위원회'를 구성하여 7차교육과정을 수정고시하고 새로운 교육과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8. 맺음말 - 교육의 공공성 확립인가, 교육의 시장화인가

우리나라의 교육은 현재 '기로'에 서 있다. '국가부문'에서 신자유주의적 교육시장화의 길로 가느냐, 아니면 '공공부문'으로 교육을 바로 세우는 쪽으로 가느냐의 기로이다. 전자의 길은 전형적 '남미형 신자유주의'의 길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공교육의 '골간'이 튼튼히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시장화'란 결국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부익부 빈익빈'을 교육에까지 틈입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의 교육에 대한 책무성을 '터는'쪽으로 나아가, 결국 '공교육 정책'이란 것은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등학교는 과학고나, 국제고, 외국어고 처럼 학생 1인당 교육비가 엄청나게 높은 '자립형 사립(공립)고'와 '자립형' 학생 1인당 교육비의 20%-50%에 머무르는 보통의 공립(사립)고로 양분될 것이며 '시장'에 맡긴다는 발상을 명분삼아 공교육은 방치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국민적 기초학력의 저하로 가는 전형적인 '남아메리카형 신자유주의' 교육의 길인 것이다.

올해 교육부문의 '정책'을 둘러싼 쟁점을 살펴보면 너무도 뚜렷하다. 3월부터 조중동 중심의 중앙언론이'교육개혁 실패'에서 시작하여, '영재교육 실패'로 나아갔다가 '기초학력 저하'로 쟁점을 끊임없이 이동시켜온 사실을 상기해 보자. 지금도 '기초학력 저하'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그리하여 사교육 구매의 기회가 낮은 '민중'들은 그 해소 방법을 학교에서 보충 자율학습이라도 해 주었으면 하는 식의 뒤틀린 방향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상류층은 돈을 많이 내도 좋으니 우리애가 다닐만한 학교좀 세웠으면 하는 바람가운데 '자립형 사립고'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기초학력 저하'라는 주장은 과학적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이미 이 시대의 아이들은 '자유'가 무엇인지 알며, 예전과 같이 주어진 교과목 학습을 '순종적으로' 내면화하는 아이들이 아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밤을 새우며 몰두하고, 춤이나 음악이나 영화에 대한 감수성은 '예전' 세대를 훨씬 넘어서서 '매니아'수준에 이르러 있는 것이 요즘의 학생들이다. 이렇듯 현 세대의 학생들은 이미 전통적인 '학습'의 범위를 벗어난 것들을 매니아 수준으로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 대하여 몇가지 교과목의 지식을 묻는 구태의연한 '잣대'를 들이 밀며 '기초학력저하' 운운하는 것은 사실상 어른들이 자신의 '목적' 실현을 위한 '횡포'에 가까운 것이다.

'한가지만 잘하면' 대학갈 수 있다고 떠들어댄 사람들도 어른들이고, 이제와서 '기초학력 저하'라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도 어른들이라, 오히려 10대 학생들은 정말 지치고 짜증날 것이다. '지식기반사회' 라는 구호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컴퓨터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끔하고 있는가 심사숙고 해봐야 한다. 이렇게 선전해 놓고 이제와서 몇가지 한자 '음독'을 못하고, '비례식' 계산을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기초학력 저하'의 지표로 '뻥튀기' 하는 것은 어른들의 잘못으로 빚어진 문제를 '학생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꼴 밖에 안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학교를 탈출하는 학생들의 행렬이 점점 더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오이씨디 국가중 중도 탈락률이 가장 낮은 우리나라의 초중고 교육에 분명한 적신호로 해독되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해답은 교육을 '공공부문'으로 바로 세우는 데 있다. '국가부문'으로서 교육체제를 빠르게 해체하고, 누적된 과소투자를 극복할 수 있도록 교육재정의 자본투자를 집중하여 공교육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왜 오이씨디 국가들이 '교육'만큼은 '공공부문'으로 철저하게 고수하는가 정책당국자들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오이씨디 국가를 따라잡는 교육체제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향후 5년간 368조원의 재정투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너무나도 멀고 아득한 '액수'이긴 하지만, 최소한 '경제규모'에 맞는 투자수준이라도 회복하면, 빠른 시일내에 따라잡을 여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는 '공교육 정상화'의 길이 이쪽으로 열려 있다.

'공공부문'으로 교육을 바르게 세우는 '교육 공공성의 큰 길'로 전진하는 길이다. 지금껏 국민적 '교육열'로 싸구려 교육을 감내해 왔다면, 이제는 이러한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교육 시장화는 결코 대안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교육 시장화'는 남아메리카형으로 전락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남아메리카형 '교육 시장화'의 길은 국민적 기초학력의 저하속에, 그나마 민중들의 피땀으로 이룩한 근대화의 성과들조차 날려 버릴 수 있는 길이다. 현재 '신자유주의' 길로 잘못 들어선 남아메리카의 여러나라들이 그러한 현실속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