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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겨울나기 월동채비를 갖추려면?

2001.07.12 14:29

정은교 조회 수:1532 추천:2

6월회보시평

겨울나기 월동 채비를 갖추려면?

정 은 교

□ 얼마 전 여럿이 모인 친목의 자리에서 원혜영씨(현 부천시장)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는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일찍이 한겨레민주당이라는, 양김씨에게서 독립된 작은 정당에 참여한 일도 있고, 그것보다는 크고 지금의 집권여당(=민주당)보다는 작은 민주당(...기성 정당놈들이 걸핏하면 당 팻말을 바꿔 달아서 한국 백성들은 도무지 어지럽다...)에서 '미니 정당'의 설움도 톡톡히 맛보다가 결국엔 대세를 좇아 DJ의 품 안에 들어가긴 간 사람인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솔직했고 자기네의 '한계'를 인정할 줄 알아서 호감이 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민주운동 하다가 보수 정당에 들어가 둥지를 튼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한결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몇 년전 DJ가 저를 불러주니 너무 황홀 무비(無比)하여 중인 환시리에(여럿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마마,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너부죽깝죽 큰 절 올린 허인회 같은 친구나, 얼마전 "DJ선생님! 동교동 친위대의 장막을 걷고 당을 쇄신합시다!" 젊은 의원들이 말 한 마디 꺼냈을 뿐인데도 DJ 눈도장 찍을 욕심에 "느그덜! 99% 잘 했어도, 1%가 잘못 되었으면 정당하지 않은 거야!" 기어이 재티 뿌린 김민석 같은 친구, 학생운동의 호시절에 누린 학생회장(長) 감투를 유감없이 활용하고 매스컴의 각광까지 받으며 별 어려움 없이 출세 가도를 달려온 386친구들과 암울한 시절을 견딘 쪽, 학생때부터 DJ, YS의 그늘의 넓이를 영악하게 계산했던 패와 한때라도 DJ에 맞선 적 있는 사람들은 무엇이 달라도 서로 다르다는 얘기다.

귀동냥한 것 두엇만 옮긴다. 그는 한참이나 뒤늦게 시작했고, 여전히 부실투성이인 현 '지방자치 제도'가 그래도 왜 유익한 것인지, 다음의 비교를 통해 설명했다.

"최악의 무능한 민선 단체장이 최선의 유능한 임명직 단체장보다 낫다!"

부천시가 자랑하는 것이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인데 이 훌륭한 오케스트라는 시민들이 뽑아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임명직 전(前) 시장이 만들어낸 것이란다. 그런데 이것은 임명직 시장이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지, 자기 같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엄두 못낼 일이란다. 이 사실이 '민선이 낫다'는 근거인가? 물론 이 사실 자체는 오히려 '임명직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제. 부천시가 떠돌이들이 모여 사는 수도권 익명의 도시에서 벗어나 문화 도시의 정체성을 키우려면 문화인프라에 획기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 임명직은 시민들이 뭐라고 궁시렁대건 아랑곳없이 제가 쓰고 싶은 곳에 예산을 팍팍 쓸 수 있었다. 그러니 50억 원 뎅겅 떼어다 오케스트라 만들었지. 민선 시장은 의회에서 "왜 함부로 돈 쓰느냐"고 난리를 치기 때문에 큰 사업 함부로 벌이지 못한다. 부천시가 자랑하는 행사로 '영화제'가 있는데 한 해 5억원을 쓴다. 자기는 아엠에푸 때 이것을 깎으러드는 의회를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한다.

지방 의회는 '당장의 앞가림'이 아닌, 길게 내다보는 사업에 제동을 걸게 마련이다. 이 점은 꼭 바람직한 현상만은 아니다. 하지만 도지사/시장이 제멋대로 예산을 낭비하는 일만큼은 막아준다. 질문이 있었다. 여당 일각에서는 지방자치체들이 '엄청난 부실'을 키우고 있어서 이것이 터져 나오면 우리 경제가 큰 파국을 맞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다는데? 원혜영씨는 단호하게 도리질했다. 시장이 빚 하나 내려 해도 도지사부터 의회까지 줄줄이 결제를 받아내야 하는데 무슨!

그는 오히려 '지방자치'를 후퇴시키려는 최근의 움직임들이 더 염려스럽댔다. 여/야를 초월(?)하여, 아니 서로 뱃속 꿍심과 잇속이 잘 맞는 여/야 의원 40명이 배꼽맞춤(=공동 발의)하여, 부단체장(부지사, 부시장)을 중앙 정부가 임명하여 그 관할 아래 두자는 법 개정안을 들이밀려고 한단다. 지역사회에서 민선 시장/군수가 실권을 쥐다 보니, 국회의원들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 버렸고, 이들을 눌러놔야 자기네 끗발이 다시 오르렷다! 이런 발상이 부끄럼없이 나도는 것이, 같은 당에서 얼굴을 맞댔던 사람으로서 부끄럽다 했다.

가만, 그러고보니 '엄청난 부실 어쩌구'하는 이야기는 지방자치의 후퇴를 끌어내려는 맹랑한 수작 아닌가. 우리는 시사점을 얻는다. 하남시가 벌인 '엉터리 환경엑스포' 따위, 지방자치체의 부실 사업이 매스컴의 질타를 받을 때마다 "저런 썩을 놈들!" 손가락 냅다 치켜 드는 것이야 옳은 일이지만, 그렇다 하여 "윗물이 더러운데 아랫물이라고 맑을 리 있겠어?" 몇몇을 들어 그 전체를 싸그리 도맷금으로 부정하는 언사는 삼가야한다는 것을. 현실 파악은 늘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보수 세력은 흔히 "부실! 비효율!"의 호들갑을 떠는 가운데 '반동'을 저지른다는 것을.

민선 단체장을 바지저고리로 만들려는 검은 책동에는 당연히 행정자치부 관료들도 한몫 하고 있다. 수백 개의 감투/자리가 생겨나는 판인데! 문제는 결국 관료집단이다! 이놈들을 어떤 식으로든 손봐야 한다! 술잔을 나누었던 민주당의 한 당료(그도 학생운동을 치렀다)가 "3급 이상의 공무원들은 직업공무원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단언하였다. 민간인을 언제든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신분 보장'을 철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은 신중히 내려야겠지만 아무튼 이 얘기는 원혜영씨가 털어놓은 소감과 맞물려 따져볼 가치가 있다.

"시장이 되어서 뭔가 개혁해 보려고 해도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시장이 자기 권한으로 뽑아 쓸 수 있는 사람은 2000명 직원 중에 비서, 운전기사 따위, 고작 4명 뿐이다. '부시장 임명'도 내 관할 밖이다. 국장 셋, 과장 다섯 쯤만 바깥에서 데려올 수 있어도 근사하게 일할 수 있을 텐데... 우리 부천시 의회에는 민주운동 출신의 젊고 유능한 의원이 몇 된다. 이들이 세 명쯤 국장으로 들어와 나를 받쳐주기만 해도 무슨 일이든 벌일 것이다. 유럽에서는 지방의회가 지방정부(↔우리의 '지방자치단체')를 구성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 당료에게 슬며시 물었다. 교원들도 '신분 보장'을 철회해야 하느냐고. 아니란다! 무슨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우기 위해 철밥통을 뺏자는 것인데, 교원들에게 어디 쥐꼬리만큼도 정책결정권이 있는가. 교원을 비롯해 하위직 공무원들은 당연히 신분 보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양식(良識)이다! 그러나 민주당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은 이들 한줌도 못 되는 양식 있는 개혁파가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대단한 개혁의 원리인 양 설쳐대는 보수적 자유파와 꼴통 보수파들 아닌가.

'당신은 새로 개혁해낸 일이 무엇인가?'

별다른 게 없댔다. 워낙 구조 제약이 심하여서 옴치고 뛸 수 없었다. 굳이 생색내자면 공무원의 교육연수비를 대폭 늘린 것 하나뿐. 부하 공무원들을 개혁몰이하기 위해 제가 취할 수 있었던 일도 교육시키고 훈화말씀 한마디 하는 것뿐. 그런데 기존 공무원사회에서는 이렇듯 '교육연수비' 대폭 늘린 것 하나만 해도 대단한 혁신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몇 년전 아엠에푸 때 부천시에서 뽑았다가 예산 삭감으로 임용을 보류했던 신규 공무원들이 여럿 있었다. 아엠에푸가 풀려 3년뒤 임용했는데, 그냥 발령장만 건네주고 각자 동사무소로 직행하게 하더란다. 요즘 9급에는 알아주는 대학출신도 지망하지 않던가. 그런데 '연수' 하나 없다니 기가 막히더란다. "기계도 써먹으려면 기름칠 한번 하는 법인데 사람을 그렇게 대접할 수 있는가!"하고 잔소리를 던졌다는데, 아무튼 '인감증명 하나 떼주는 허드렛일 하는 사람에게 연수는 무슨 연수!'하고 낮춰 보는 것이 상급관료 사회의 멘탈리티/마인드!

부천시민 중에 대졸 출신이 40%란다. 그런데 부천시 과장급 이상 공무원 중에 대졸 출신은 10%도 안된다. 그러니 어찌 수준높은 행정서비스가 가능하겠냐고 그는 비분강개했다.(그런데 이 통계 비교는 신중해야 한다. 40대 연령층에겐 대졸이 드물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겐 대학교육이 보편화되어 있다. 공무원집단이 안고 있는 문제의 주된 원인을 '낮은 학력'에서 찾는 것은 너무 경솔한 판단이다.)

술판이 무르익었다. 민주당에 몸 담은 사람이 셋쯤 되었는데 다들 '개혁의 총체적 실패'를 시인한다. '김대중이가 신자유주의를 했다'는 것도 인정한다.(관변 교육학자들 중에는 교활하게 부인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대관절 무슨 정당화 논리로 무장하였길래 그들은 여전히 민주당을 제 터전으로 삼는 것인가? 별거 아니라면 아니고, 대단하다면 대단한 논리, 바로 '대안 부재론'이다! "달리 맡길 딴 정치세력이 없잖아!"하고 외치는 것이다. 그려, 참 묵직한 펀치 같은 말씀이제. 하지만 이것이 '새로 자라나는 정치세력'에 대해 기대를 저버려야할 논리가 돼주지는 못한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들은 대통령선거 정국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저희가 야당으로 내려앉을 경우에 대해 미리 마음을 다지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자질구레한 동향을 아무리 들이댄다 해도, '이회창 대세론'은 부인할 수 없다. 셈은 간단하제. 경상도 쪽수는 전라도 쪽수의 2배 아닌가벼? 경상도 사람들은 지금 똘똘 뭉치는 추세이고, 전라도의 지역결속력은 지금 허물어져간다. 김대중이 뽑아 봤더니 달라진 게 없다며 배신감을 점점 내비치는 게 그쪽 민심 아닌가. 원시장은 만고의 진실을 들려주었다. 무릇 지배층, 기득권세력의 결속력은 피지배층의 결속력보다 훨씬 굳세고 질기지 않던가. 피지배층의 결속력이 더 월등해질 때는 온갖 모순이 중첩 누적되고 사회운동이 제때 불 지펴져서 한껏 타오른 예외적인 경우일 뿐 아닌가.

물론 경상도/전라도 지역구분은 지배/피지배층의 구분과 약간만 겹칠 뿐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계급성향은? 한나라당은 지배층의 '주류'이고, 민주당은 '비주류'다. 관료나 자본가들이나 한나라당을 '적자(嫡子)'로, 민주당을 성깔 의심스러운 서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지배층의 권력자원을 동원하는 면에서도 열세요, (김대중이 벌였다는 이른바 '개혁'이 노동자/서민 때려잡는 신자유주의였음이 분명할진대) 구워삶아야할 피지배층의 민심도 애저녁에 떠나가지 않았는가. 집토끼도 산토끼도 다 잃지 않았는가. 그네가 아무리 쫑피리, 엉사미, 김윤화니, 늙수구레한 양아치들 구름처럼 다 그러모아 반이회창 연대전선을 편들, 하이에나와 대머리독수리와 여우의 갈라먹기 연합이 아무런 정당성도 얻어걸칠 수 없는데 힘을 받을 리 없다. 게임의 승패는 뻔하고, 다가오는 선거가 '지역주의 선거의 극치를 이루리라'는 이 예상은 이미 김대중이가 등극했을 바로 그때부터 나돈 것이다.(걔네가 취할 수 있는 비상 수단이라고는 암암리에 박근혜를 후원해 대선 주자로 밀어올려서 경상도 표가 둘로 갈리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설령 그 어부지리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 하더라도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더 생각해야 하는가? 첫째, 'DJ 비판적 지지'의 망령에서 새천년 이제는 제발 벗어나자는 것이다. 머리로뿐 아니라 몸으로도! "에이, 아직도 대중이네 동네에 미련 품는 사람이 어디 있을라구!" 일갈하시는 분들은 사태를 쬐금 낙관하시는 분들이다.1) 내가 오래 전에 듣고 여직 잊지 않는 말이 있다. "한국 백성들은 YS DJ가 무덤에 들어간 뒤에라야 그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날 것이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우리 정치는 점점 그 최악의 시나리오를 밟아가는 게 아니냐는 느낌이 스멀스멀하다. 지금 시절에는 김대중네가 잘나서, 훌륭해보여서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드물다. 요번에 영국 블레어 총리가 재집권한 까닭도 마찬가진데, '딴 대안이 없어서' 그쪽에 볼펜 뚜껑을 누르는 것이다. 딴 대안이 없기는 왜 없는가? 너무너무 약하고 시시해보이고 또는 과격해 보여서 그쪽으로 마음이, 또는 볼펜 뚜껑을 쥔 손/몸이 옮겨가지 않는 것뿐이제. 청년진보당이 과격해? 거기 표 몰아주고 거기 들어가서, 아니면 바깥에서라도 '느그덜, 과격함을 아니면 섣부름을 좀 개선하라!'고 호통치면 될 일이지, 웬 도리질의 구실을 그렇게 궁색하게 대는가? 민주노동당이 너무 시시해? 부르조아정당 스카우터들의 화려한 위세에 맞서고 고집스런 조합주의자들을 설득하며 고난의 행군을 견뎌온 그룹인데, 열성당원들이 스스로 당을 꾸려가는 정당인데 어찌 시시하누? '대안 부재론'이 한 걸음 더 치달으면 '정치 허무주의'와 '케세라 세라, 현실영합주의'의 늪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둘째, 전교조는 '겨울나기'를 서둘러야 한다. 이회창정권은 현정권보다 얼마나 더 오른쪽으로 돌아갈까? 이미 현정권 자체가 노동자 때려잡기에 이골이 났고, 민주주의의 정세가 나빠질 만큼 나빠졌으니 무슨 지각변동이 크게 더 일어나리라고 보는 것은 또다른 억측이다. 하지만 클린턴에서 부시로 후퇴한 정치적 거리보다야 더 물러설 수 있다. 무슨무슨 시민단체들을 '들러리' 세우려고 안달할 것 없이 솔직하게 '보수!'를 떠들고 심지어 '학교운영위원회는 빨갱이 체제다!' 속시원히 내뱉을 자유까지 맘껏 누릴 터이니 꼴볼견이 점입가경을 이루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예견이다.(노태우 말기쯤을 상상하면 대충 비슷하지 않을까? 이회창이가 집권하면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지식인들이 꽤 있지. 어디 갈 데도, 가서 풀칠할 돈도 없으면서... 이 나라엔 지금 '강호(江湖)'도, '무위자연'도, '향토'와 '시골'도 죄다 깡그리 소멸했는데, 전국토의 '유원지'화/아스팔트화/'도시인 탈출욕망의 배설구'화가 진작에 완성되었는데, 그러면 자신의 좁디좁은 내면 속으로 헛되이 망명하려는가?)

솔직한 우익독재 정권 앞에서 흐트러지지 않으려면 단결투쟁력 뿐이다. 거꾸로, 탄탄한 단결투쟁력과 만만찮은 여론 창출능력 / 정치력을 갖추고 있으면 '민주'를 장식품으로라도 달아맬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정권이라 하여 우리를 허투루 대하지 못한다. 우리 하기 나름이란 말이다. 그런데 대차게 싸우기 쉬운 <때가 언제냐>가 문제다. 저들의 학교 재구조화 휘몰이가 대부분 결판나는 지금 시절을 넘기고 그때 가서 목청을 높인다? 한판 회오리가 몰아친 뒤, 대중은 짙은 패배감과 방향상실증에 빠져있고, 그나마 파행의 제도로 말미암아 모순/부작용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뒤늦은 깨달음들이 여기저기 싹트고 그리하여 멈칫멈칫 가까스로 전열(戰列)을 다시 추스르기 시작할 때? 아서라, 민주주의의 다음 버스는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에라야 시동을 걸고 나무늘보처럼 걸음 옮길 것이다.

단체행동을, 다시 말해 '본때있게 파업을' 벌여본 적 없는 노조는 한갓 허수아비 노조일 뿐이다. 언제든지 보수정권의 '거수기'로 전락한다. 교육부 관료들이 전교조 교섭단 대하는 태도가 작년과 올해가 다르다는 소문을 실금실금 듣고 있다. 작년에야 관리놈들 즈그덜도 × 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낯선 노조를 테이블 건너 마주하니 자못 긴장이 서렸겠지. 그런데 일년쯤 겪고보니 '아, 별거 아니네. 종이호랑이일 뿐이네...'하는 깨달음이 생겼을 터.

아시는가? "파업권이 법으로 보장돼 있지 않으니, 파업은 춘삼월 호시절이 돌아왔을 때 벌일란다!" 늑장부릴 여유가 우리에겐 허여돼 있지 아니함을. 파업 벌일 결의를 갖추지 못한 노조에게는 자기 뜻을 펼칠 아무런 능력이 없음을. 파업 한번 본때있게 벌여 그것이 '사실상의 관행'으로 굳어질 때라야 "전교조가 굴러간다!"고 말할 수 있음을. 사실상 전교조는 파업을 첫선 보이는 그때라야 '알속있게 창립된 것'임을. 오호라, 바야흐로 전교조 <제2의 결성 투쟁>이 다가오고 있음을. 이것 잘 해내야 한 겨울 <월동채비> 갖출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원혜영'이라는 낯선 인물을 굳이 소개한 까닭의 하나는 '관변 교육학자들'과 잠깐 견주어 보기 위해서였다. 지난 6월 우리가 주최한 토론회의 발제자 중에는 우리와 관점이 꼭 같지는 않은 한 분이 초청되었는데 그에게 '혹시나' 가졌던 기대가 '역시나' 스러지는 경험을 하였다.('교육과정' 전공 학자들 중에 '관변'이 아닌 사람이 드물다는 사정과 딴 여러 곡절로 하여 영남대 김재춘 교수가 초청되었다. 아무튼 씁쓸하고, 토론회 참석자들에게 송구함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자료집 참조.)

김교수의 발제를 일일이 소개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해, 그의 요지는 "(교육개혁의 딴 여러 프로그램들 가운데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얼마간 들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어쨌든) 7차 교육과정은 신자유주의와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만 따로 떼어 놓고, 또 그것의 추상적인 '취지'만 가지고서 개념을 희롱할라치면야 못 빠져 달아날 리 없것제. 도망가려거든 가려무나! 토론자 김천기 교수(전북대)는 사람이 워낙 선량하다 보니, "까짓거, 수준별 과정이 신자유주의인지 아닌지는 나, 관심 없어요. 그게 '우리 모두'를 위한 과정이냐 아니냐만 따지고 싶습니다."하고 점잖게 한 마디 하고 물러났는데, 사실은 이 대꾸는 그른 대꾸다. 신자유주의를 투박하게 정의하면 '일부만 살리겠다는 주의' 아니런가. 그는 낯 붉히며 목청 높이기 싫어서 고의로 형식논리학을 위배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점잖아서야 어찌 악다구니 같은 신자유주의 논자들 기를 꺾겠누?

그런데 김재춘의 얘기를 몇 마디 듣다보니, 나 역시도 그에게서 '실토'를 받고 싶다는 의욕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 아닌가. 언제냐- 하면, "학생의 '선택'이 <조금이라도> 허용된다면 이를 신자유주의로 보아야 합니까?"하고 그가 절규한 대목에 이르러서다. 대관절 누가 '신자유주의'를 그렇게 유치찬란하게 규정한단 말인가! 저들 논리 구조는 그렇다. "너희, 저항이론 집단은 대단히 유치찬란한 논거에 터하여서 과격한 주장들을 해댄다. 그 유치스런 논거는 유치스런 것이다. 우리는 그 유치스런 논거에 걸려들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잘못되지 않았다.(또는 옳다.)" 그렇게까지 달아나고 싶다면 달아나려무나!

딴 발제자들은 김천기 선생처럼 선량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말씀 지르박아 적진(?)에 용기있게 참석한 김재춘 교수의 입을 다물게 하였다. "그래요, 관변 프로젝트 벌이는 과정에서 당신이 그런대로 신자유주의적인 요소를 덜어내려고 애썼다는 말씀은 인정합니다. 당신이 신자유주의자라고 말하지는 않겠소. 하지만 그렇다 하여 7차 과정이 덩달아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오! 혼동하지 마시오!"

사실은 그가 '교육과정평가원'이라는 관변 연구단체에서 일반 대학으로 물러난 뒤로는 '7차 과정'의 허실에 대해서도 인정하는 말을 하는 듯 싶었다. 그날 발제에서도 '7차'를 깡그리 찬양한 것은 결코 아니다. 허점을 시인하는 기색도 순순히 보인다. 그런데도 끝끝내 기본 가닥에서는 정당화논리를 굽히지 않았다. '여건이 미흡해서 그럴 뿐이지 취지는 좋다'느니, '잘 시행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교사들 의욕이 모자란 탓이라'는 둥, 결국 자기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닐뿐더러 '7차'도 나쁜 것은 아니라며, 돌고 돌아 결국은 '우린 괜찮은 사람들이오!' 하는 타령이다. 정말 실망스러웠던 한 대목이 뭐냐면, "난 가난하게 자랐소. 그래서 키도 작소. 그런 내가 어찌 신자유주의를 좋아하겠소?" 발뺌하는 발언이었다. 그 얘길 들으며 '참 낯익은 얘기다. 이런 상투적인 얘기를 내가 또 어디서 들었더라?' 싶었는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떠오르더라. 내 대학생 시절, 붙들려간 경찰서 안에서 어느 나릿님인가가 베풀어주신 훈화 말씀! "어이, 똑똑한 대학생! 너희만 정의를 추구하는 것 아니여. 어쩌구. 우리도 독재를 싫어해. 저쩌구...." 독재를 싫어한다는 양반이 어째서 독재의 주먹으로 사누? 신자유주의를 미워한다는 분이 왜 거긴 기어들어갔누?

고난을 겪어본 사람만이 그래도 양식(良識)을 붙들고 산다. 민주운동 속에 부대끼며 살았던 원혜영씨를 굳이 들먹인 까닭은 대학제도와 국가권력의 따뜻한 온실 속에 누리며 산 사람과는 같은 민주당을 위해 복무한다손 치더라도,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것을 정말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의심하시고 또 의심하시라. 풍찬노숙 겪어보지 않은 지식인/먹물들을! 권력의 단맛을 빨아본 먹물들은 더더욱! 세상풍파 다 견뎌온 사람도 늙마엔 시들해지기 마련이거늘, 하물며 초고급 온실 속 나비들이야!

□ 잠깐 밝히고 넘어갈 얘기가 있다. 회보 지난호에 내가 쓴 글과 관련해서다. 그 글에서 나는 '대안학교들'에 대해 이것저것 에피소드를 읊는 식으로 서술했는데 '가벼운 서술'이 실수였다. "간디학교에 대해 내가 품은 생각이 복잡하다"는 이야기를 손쉽게 전달하기 위해 이러저런 일상사를 들먹였는데 송순재 교수와의 통화 내용을 언급한 것이 그분에게 (관계면에서) 부담을 주게된 것이다. '현존하는 대안학교들이 꼭 명실상부한 교육을 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토를 단 대목이 그것이다. 이 얘기는 현존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지적한 것이지 '대안학교들의 방향성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려는 뜻은 아니었는데 불쑥 통화 내용만 내비치니 그렇게 오해될 소지가 생긴 것이다. 사실 '충분히 대안학교답지 못하게 된' 가장 큰 까닭을 찾으라면 공적 지원의 결핍 속에 자력갱생할 수 밖에 없는 데서 오는 현실 여건의 미흡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오프 더 레코드'려니 여겨 가볍게 대꾸한 몇 마디 발언이 활자로 나타나다보니 구설수에 오를 가능성을 안게 된 것이다. 송순재 교수의 '사적인' 토막 발언을 혹시 눈여겨본 분들을 위해 이렇게 사과하고 해명한다.

간디학교에 대해 내가 석연치 않게 여긴 점은 두 가지였다. '수준별 과정'을 받아들였다는 점이 (그곳 정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약간의 의구심을 자아냈고, 그네가 현 정권의 '다양성 담론'과 다를 바 없는 생각들을 하지 않느냐는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같은 '수준별'이라 할지라도 학생수 몇 안 되는 소규모 학교에서 주도면밀한 교육적 배려 속에 벌이는 것이라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기는 하다. 실천은 그렇더라도 내세우는 담론이 현정권의 그것과 닮은꼴이라는 점이 거슬린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는데 언론에 전해지는 소식을 살필 때, 그들의 실천이 과연 '다양성 예찬'의 범주에 들어갈 일이냐 하는 의문이 문득 들었다. 건너짚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실천은 '섬머 힐'의 자유주의 사상의 맥락에 속하는 듯 싶다.

"공부하기 싫니? 그래, 니가 스스로 책임질 일이니까 니가 공부하고 싶을 때 교실에 들어오너라!" 아이들의 '자율'을 최대한 믿어주는 것이야말로 이 학교에서 벌이는 '실험'의 가장 중요한 대목 아닐까.

그런데 '다양성 예찬'이란 "나는 너하고 달라.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갖가지 꽃을 피우니 얼마나 보기 좋으냐!"는 이야기 아니던가. 그러나 '아이들의 자율에 과감하게 맡기자!'는 주장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자기 길을 가는 문제가 아니라, 이 주장이 정녕 옳다면

기존 공립학교들이 이 실천을 본뜰 일이요, 이 주장이 다소 섣부른 것이라면 그들이 '현실과의 접점'을 더 모색할 일이렷다. 요컨대 그들의 실험은 ('훈육'이 들어있는) 기존 공립학교 실천과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고, 기존 학교들에 '반성의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는 것이지, 무차별적인 다양성 예찬에 복무한다는 점에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디는 '자율'이 돋보이고, 또 어디는 '학생 선발권'을 누린다는 것이 멋스럽고, 또 어디는 '영어 공부'만 들이파는 학교라는 점이 그럴싸하고, 어디는 비싼 등록금 내는 곳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이것은 언어를 희롱하는 수작 아니런가.

이렇게 본다면 진실로 대안학교다운 고민을 안고 가는 일과 '공교육 강화론'은 서로 대립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 둘이 어떻게 해야 함께 갈 수 있는지, '국론(國論)이 아닌 공론(公論)'을 이끌어내는 일이요, 우리가 불안스럽게 바라보는 것은 '(공립학교들이야 어찌 되든 말든) 새 교육이 꽃필 사립학교들을 어떻게 무제한 풀어놓을 수 있겠는가'하는 바람에만 사로잡혀 사려 얕은 발언들을 쏟아놓는 경향이다. "우리는 선구자 아니니? 우리가 먼저 갖가지 길을 개척해 놓을게. 우리들의 실험 성과는 먼훗날(!!) 너희도 자연스레 향유하게 될 거야!"하는 속내가 그들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 놈의 세상 현실이 그들의 순진한 바램대로 좇아와 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로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욕망'이니, '남을 거꾸러뜨리는 경쟁력'이니, '수월성'이니 하는 것들이 먼저 잽싸게 튀어나올 뿐, '희망과 대안'이 가장 굼뜨게 기지개 켠다는 사실을 떠올리시라.

.....그러나저러나 재정 지원이 끊긴 간디학교가 걸어갈 길이 딱하다. TV에 보니, 그곳 한 교사가 "저들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 일어서자. 봉급 없이도 견디자!"고 동료들에게 다짐하는 광경이 나왔던데 그렇게 하여 어찌 돈세상, 돈- 세상의 긴 세월을 견디겠는가. 전교조가 좀더 다부지다면 자신의 힘을 뽐내며 개입할 일이요, 이 놈의 나라에 생각 제대로 박히고 또 실력도 함께 갖춘 정당이 있다면 그들이 '여론의 권력'을 발휘하여 거들 노릇. 아, 민중의 뜻과 힘이 한데 모여 몇 곱절로 '조직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모래알로 흩어진 '민중 / 노동자계급 분열'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 가지만 기억하자. 저들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르면 '무엄하다' 하여 간디학교의 돈줄을 끊는 그런 어리석은 횡포를 저지를 수 없다. 대안학교야말로 '다양성/사립학교 예찬'에 더없이 훌륭한 소재 아니던가. 이놈의 신자유주의는 '관료의 끗발'과 보수세력들과 끝끝내 어깨 동무하여 나아가는 정치적 동물(짐승)이라는 사실을, 그놈의 야누스의 두 얼굴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 이 사건이다. "시장(市場)이 나서서 국가를(관료집단과 관료체제를) 무찌르자!"는 구호가 얼마나 시덥잖은 빠알간 거짓부렁인지, 50억년 묵은 태양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시장 예찬론자들은 가면을 벗고, × 잡고 반성하라!!!

□그리하여, 그렇더라도, 그러기 때문에-
'교사 운동'과 더불어, 한 세상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런데도, 아닌게 아니라,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가을이 온다. 저들 꿍심 결판내는 가을이, 우리네 인생에 결산표 매겨지는 가을이!
겨울에 앞서 가을이 온다. 오누나. 겨울나기 채비 서둘러야할 가을이, 봄 기지개 장만해야할 가을이!
멈칫멈칫 아닌 듯 아닌 듯, 봄에 앞서 가을이 온다. 아아 오리라. 온누리 찬란하게 불타는 가을이!
그리하여, 그렇더라도, 그러기 때문에.....
주--------------------------
1) 「우리교육」최근호에는 '만나고 싶었습니다' 꼭지의 초대 손님으로 노무현 민주당 의원을 모셨다. "노무현과 같은 개혁세력을 밀어주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셈인데, 나는 「우리교육」에게 한가로운 잠꼬대 인터뷰는 좀 작작 하시고 정세의 엄중함에 비추어 더 전진하는 잡지가 되어 주시기를 간곡히 빈다.

 노무현의 개혁성이 언제적 개혁성이냐? 노태우시절 전교조를 응원했던 그의 발언이 그리워서 '흘러간 레코드'를 다시 틀지는 말자. 인터뷰 기사를 대뜸 보니, 그는 "이해찬의 교육개혁의 원래 취지는 좋았다."고 나지막하게 전제(前提)하고서 썰을 푼다. 대중이 절감하고 있는 바는, 이해찬의 원래 철학(5.31 개혁안) 자체가 반민중적인 방향성을 띠었다는 것 아닌가. 그와 이해찬의 차이는 '양순한 낯빛을 띨 줄 안다 / 저희가 옳다고 악착같이 우긴다' 쯤일 뿐이다. 노무현이가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정면으로 발언한 것에 대하여 인터뷰 대담자는 '정말 시원한 소리를 들었다!'고 감격해 마지 않는데, 우리는 현 정권이 족벌언론에게 딴지걸 힘은 있고, 그래서 '개혁정권의 이미지'를 그 성과로 누릴지는 몰라도, 그이상으로 언론개혁을 밀고갈 추진력은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둘러보라. 김중권이나 이인제나 무슨 학생운동의 대부였다는 김근태나 이해찬이나 이런 시러베아들놈들이 노무현만큼이라도 발언했는가? 언제든 족벌언론과 타협할 마음가짐으로 똘똘 뭉쳐있는 동네가 민주당 아닌가. 결국 가서 말꼬리 내릴 놈의 정당에게, 옛날 자신의 상표 가치를 다시 높이려고 한 마디 거든 사람의 발언 하나에 무슨 미래의 등불을 발견한 양 떠드는 것은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우리교육」은 2-3년 전 현 정부의 개혁을 지지하려고 발벗고 나선 때에 견주어, 찬양의 목소리가 많이 사그러들긴 하였다. 요즘 지면을 보면 교원들 여론을 살펴서 발언을 조심하는 기색도 눈에 띤다. 그만하면 됐다? 「우리교육」이 전교조와 무관하게, 평범한 먹물들에 의해 창간된 잡지라면야, 우리는 그들이 이만큼이라도 '현 지배세력과 민중저항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려고 나름으로 눈치를 봐온 사실을 그런대로 호의적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교육」은 전교조 운동의 음덕으로 탄생한 잡지 아니던가. 끝끝내 현정권의 '2중대' 아니 '5중대'쯤으로 열심히 복무하여 대중에게 '혹시나' 헛되고도 헛된 기대만 불어넣었다가, 쓰디쓴 현실과 마주할 때 그들은 과연 진솔한 변명이라도 내놓을까? 교사대중에겐 정치적 허무감을 잔뜩 안겨주더라도, 그들의 '존립' 자체는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교육잡지다운 월간지가 그것 하나뿐이니까, 교사들은 미우나 고우나 '현장실천'을 위해 정기구독을 계속할 터. 전교조 조합원들의 좌절감은 깊어가도, 「우리교육」은 무궁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