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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자유평등명제에대해

2001.04.26 15:38

백병부 조회 수:1667 추천:3

'평등 vs 자유'인가?, '평등=자유'인가?

'평등 vs 자유'인가?, '평등=자유'인가?
-발리바르(E.Balibar)의 '평등-자유 명제'1)를 중심으로

백병부 (이론분과, 경희중학교 교사)

1. 들어가며

우리는 지금 구호의 시대에 살고 있다. 무거워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T.V나 신문을 볼 때에도, 아무 생각없이 거리를 걸을 때에도 굵은 글씨와 화려한 색상으로 자신들을 한껏 드러내고 있는 이러저러한 구호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다양한 구호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자율', '경쟁', '선택권 보장', '민영화', '효율성' 등등을 그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호들이고, 이들 구호들은 그 양적 우위만큼이나 질적 수준에서도 어느새 일반민중들의 머리 속에 상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처럼 느껴진다. 반면에 '생존권 보장', '공적 영역의 강화', '부의 재분배' 등등의 평등주의적 구호들은 점점 그 실천적 지지자2)들을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구호 차원에서 '평등'에 대한 '자유'의 우위는 이제 일반민중의 상식까지를 잠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려 했던 서구 복지국가의 위기를 계기로 더욱 더 그 격차는 심화되어 갈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2. 몸 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렇게 '자유'가 '평등'에 비해 그 우위를 차지하게 된 원인을 '평등'과 '자유'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생각하는 데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자유'와 '평등'의 관계는 양립할 수 없는 극단적인 대립관계의 측면에서 파악되어 왔다. 즉, '자유'는 무엇보다도 법적-정치적 차원의 개념인데 반하여 '평등'은 본질적으로 사회적-경제적 차원의 개념이고, '평등'의 실현은 본질적으로 재분배의 차원이므로 국가의 개입이 필수적인데 반하여 '자유'는 본질적으로 국가의 개입을 제한하려는 데에 그 목표를 두어 왔으며, '자유'는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측면이지만, '평등'은 전적으로 집단적인 쟁취목표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이런 인식의 밑바탕에는 자유의 확대는 곧바로 평등의 축소로 이어지고, 반대로 평등의 확대는 곧바로 자유의 축소로 이어진다라는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이런 전제를 가지고 진행된 평등에 관한 연구는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의 희생 위에 자유의 확대를 추구해 왔고, 사회주의는 자유의 희생 아래 평등의 확대를 추구해 왔으며, 사회민주주의는 이 양자를 적절하게 조화시키려 노력해 왔지만, 여러 이유로 실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3)

문제는 이런 평등과 자유에 대한 대립적 인식이 한국적 상황에서 평등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는 진보세력에게 결코 이롭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한국사회는 일제 식민통치와 한국전쟁, 군사독재정권을 거치면서 기형적으로 발전해 왔다. 이데올로기 지형의 경우 한국사회는 극단적인 '우경 반쪽 사회'로 발전해 왔으며, 정치적 주체로서의 계급형성4)이 더디게 일어났고, 그 결과 무자비한 자본축적을 통한 자본주의의 발달이 성공할 수 있었다. 또한 국가기구는 그 물적토대에 비해 과대성장되어 억압적 국가기구를 비대화시켰고, 이렇게 비대해진 국가기구는 이념적 스펙트럼을 철저히 반공의 측면에만 치우치게 하는 데 기여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일반민중들의 상식을 장악해 들어갔고, 그 결과 일반민중들은 '자유=자유민주주의의 논리=좋은 것', '평등=사회주의의 논리=나쁜 것'이라는 극단적인 흑백논리에 빠지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고 판단한다면, 현재 한국의 일반민중들이 '진보세력=평등주의=사회주의자=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통념처럼 평등과 자유는 대립하는 개념일까? 발리바르는 맑스주의의 비판적 개조를 위한 작업의 핵심을 '인권의 정치'에 대한 문제설정에 놓고, 1789년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에 대한 선언'을 분석하면서, '평등-자유명제'를 주장한다.5) 그에 의하면 '권리선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평등이 자유와 동일하며, 동등하다는 것, 또한 그 역도 성립한다는 것이다. 즉, 평등=자유이며, 이 등식은 인간과 시민의 등식 안에 그 보편성의 이유 자체로서, 그 전제로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리바르의 이 말은 평등과 자유의 내포적 속성이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발리바르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평등과 자유의 '외연'과 '조건'이다. 즉, 발리바르의 '평등-자유명제'의 핵심은 평등과 자유의 외연은 필연적으로 동일하며, 양자가 현존하거나 부재하는 상황 또한 필연적으로 같다는 것이다.6) 한마디로 그의 주장은 역사적으로 자유가 억압되면 평등도 자유가 억압되는만큼 억압되어 왔으며, 평등이 억압되면 자유도 또 그만큼 억압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논의는 개념적 정의를 위해 '경제'와 '정치'를 한 축으로 하고, '평등'과 '자유'를 또 한 축으로 하는 아래와 같은 메트릭스를 그려보면 잘 이해가 된다.7)


평등

자유

정치

정치적 참여의 평등,
1인 1표제

양심,사상의 자유

경제

부의 재분배

노동력 관리의 자유

이렇게 메트릭스를 그려놓고 생각해 보면 경제적 평등이 확보되지 않는 상태에서 경제적 자유는 억압될 수밖에 없으며, 정치적 평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적 자유 또한 억압될 수밖에 없다. 만약 평등이 확보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자유를 말한다면 그것은 허구적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또한 정치와 경제 각각을 형식적 수준과 실질적 수준으로 다시 나누어 자유와 평등의 문제를 생각해 보아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한마디로 말해 복종 속에 평등은 없으며, 특권들이 제도화된 사회 속에 자유는 없다는 것이다.

3. 나오며

자본주의는 언제나 강자의 편이라는 말은 경험적으로 사실이다. 또한 정의와 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언제나 약자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또한 사실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급속한 산업화와 무조건적인 경제성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의 현실을 정당화하였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 또한 과거의 이런 모습과 별로 다른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범람으로 자유와 평등은 동시에 억압되고 있으며, 자유의 신장이라는 허구적 명목으로 평등적 가치는 가차없이 짓밟히고 있다. 극도로 우편향적인 이념적 스펙트럼 하에서 자유와 평등에 대한 균형적 이해가 자리잡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적 논리는 어느새 절대선이며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 강자는 평등의 위험을 과장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를 상식화하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세력이 자유와 평등을 대립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신자유주의자들의 논리에 속아 넘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대립적 사고는 진보세력의 입지는 좁히고, 신자유주의자들의 입지는 넓혀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발리바르의 '평등-자유명제'는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주--------------------------
1) 이 논의는 주로 발리바르,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 평등과 자유의 근대적 변증법」, 윤소영 편, 『맑스주의의 역사』, (민맥, 1991)과 서관모, 「시민성 개념의 새로운 구축을 위하여」, (경제와 사회, 1996년 가을)을 참고하였다.
2) '실천적 지지자'라는 개념은 이론적 수준에서의 지지가 아니라 현실적 차원에서 그 이론의 정당화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3) 박호성, 『평등론』, 창작과 비평사, 1999
4) 여기서의 '계급'은 단순한 분류체계 속에서의 개념이 아니고, '계급투쟁 속에서 존재하는 계급'을 의미한다.
5) 이 분석에서 발리바르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인간과 시민의 동일화 명제'와 '자유와 평등의 동일화 명제' 두 가지이지만, 이 글에서는 이 글의 논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두 번째 명제에만 초점을 맞추어 소개한다.
6) 그러나 발리바르의 논의를 꼼꼼히 읽다보면 그 또한 평등의 제한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으면서 자유의 제한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그는 '평등-자유명제'가 평등 위에 세워진, 그리고 평등의 운동에 의해 발생한 자유, 그리하여 제한되지 않은, 또는 더 정확히 말해서 자기제한된 자유, 평등의 지배를 존중하기 위해 자기자신에게 부과되는 한계들 말고는 한계를 갖지 않는 자유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7) 이 메트릭스에서 '경제'와 '정치'는 수식하는 개념, '자유'와 '평등'은 피수식개념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경제적 평등, 경제적 자유 등의 용법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 개념은 아주 거친 것으로 엄밀한 개념정의의 과정이 후속작업으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