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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정성스레 기침을 하자

2001.02.08 18:49

정은교 조회 수:1411 추천:1

정성스레 기침을 하자!

정성스레 기침을 하자!

정 은 교 (연구소장)

□새해 만세! 그제도 어제도 무심히 떠올랐지만 고맙게도 오늘 또 솟구쳐 동해바다 가득히 일렁이는 새내기 태양이여! 경복궁 용마루 위든 자갈치시장 뒷골목 쓰레기통 위든, 허위허위 엄부렁덤부렁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닥치는 대로 하늘로 기어올라 우리네 꾀죄죄한 몰골 사정없이 들춰보이는 해여! 새롭게 세상을 보라, 미처 절망할 틈도 주지 않고 화들짝 몰아세우는 해여! 그려, 널 닮아 눈똥자 똥그랗게 뚱그러케 뜨고, 눈알 탱탱탕탕 힘 불어넣어설랑 뚫어져라 쳐다보고 또 보아내서 우리네 머릿속에 세상꼴 제대로 붙잡아 쥐고 싶다. 그래서 이 세상, 속히지 않고 본때있게 살아내고 싶다. 네가 둥두렷이 떠오르는 한, 그래, 우리네 삶은 천세만세만만세다! 회원/독자 여러분께 새삼스레 찾아들 새해여, 무궁하라!

□전교조 합법화 2기 본부/지부가 돛을 올렸다. 부디 제 노릇 잘 하여, 단칸 쪽배로, 그래, 하이얀 단칸 쪽배를 슬기로이 노 저어서 '저 물레 파도를' 꾀스레 헤어넘기 바란다.

□인삿말은 이쯤 접고, 요즘의 교사운동에서 생각해볼 꺼리 몇 가닥 짚는다. 개학 벽두부터 교사운동에는 비상이 걸리는가 싶다. 대학 교단에서는 늘 점잖았다는 이돈희 새앰께서 "무능 교사, 내쫓아 버리잣!" 목울대에 힘준 뒤로, '성과급 와르르 뿌려 교원집단 다그치잣!' 책동이 몰아치지 않나, '교사들한테는 쉬쉬 하고, 스리슬쩍 수준별 수업안 올려 버리잣!' 일선 학교에는 7차 강행의 꼼수가 발호하지 않나...

  이럴 때 우리는 부디 바라옵건대 비옵나니, 전교조 본부/지도부가 좀더 투철하게 이 국면에 맞서기를 꿈꾸듯 고대한다. 군대 '5분 대기조'처럼 늘 신들메 고쳐 매고서! 이를테면 이돈희 새앰께서 거룩갸륵한 말씀 꾸룩끼부룩 까불었을 때, 그저 성명서 한 장 쏘아올리거나, 위원장 한 사람이 저쪽에다가 항의 발언 터뜨리는 것으로 자족하지 말고, 본부지부 상근자들 우르르 비상소집하여 발빠르게 항의집회 하나, 엮어냈어야 저쪽에서 전교조를 우습게 여기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조직에 늘 투쟁의 기풍이 감돌게끔 달구질 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잠깐, 옛날 얘기 한 도막 읊는다. 오래 전부터 전교조에는 <전술의 강조점>을 둘러싸고 두 흐름이 있었다. 거칠게 이름 붙이자면, 투쟁주의와 대중주의! '투쟁의 중요성을 잊지 말라!'는 쪽과 '대중과 함께 해야 한다!'는 쪽! 투쟁주의는 '조급함'으로 흐를 위험이 있는가 하면, 대중주의는 '대중'을 핑계 삼아 '투쟁 회피'의 기조에 주저앉을 위험이 있다. 대중과 함께, 그러나 (꽁무니가 아닌) 대중의 선두에 서서 투쟁하려면 이 두 흐름을 슬기롭게 통일해내야 한다. 그때그때 두 흐름, 어느 쪽이 '더' 옳았는지는 이 자리에서 살필 일이 아니다. 다만, 이 두 (전술의) 흐름은 결코 <서로를 적대적인 대립 진영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어려운 싸움을 헤쳐나갈 때는 우리편의 힘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에, 제 깐에 더 요긴하다 싶은 한 쪽을 저마다 더 강조하는 흐름이 생겨나기 마련이니까. 두 흐름으로 갈라지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세태요, 두 흐름의 통일이야말로 <드물게 성사되는 것>이다. 이 점을 바로 새긴다면 "저쪽이 투쟁주의니까, 아니면 대중주의니까, 저쪽하고는 절대로 상종할 수 없어!"하고 완강하게 적대하는 행태는 활동가로서의 자질을 의심할 만한 수상쩍은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판단에는 하나의 '단서'를 달아야 한다. '투쟁 만세!'만 외치면서 대중사업에 무능하다면 그런 쪽을 신용할 수는 없겠지. 거꾸로, 대중과 함께 하는 일만 흐뭇해 하고, 정작 싸워야 할 일에서 고개 돌린다면 이 쪽도 비판받아야 한다. 여기까지는 비적대적인 대립이다. 그런데 '투쟁 회피'가 혹시 <집권세력에 동조하는 분명한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합법화 이전 시기에는 이 점을 크게 걱정할 까닭은 없었다. 그 시절에 너무 지나친 대립을 벌인 분들이 있다면, 자신의 행태를 곰곰히 되돌아 보실 것을 권한다. 하지만 전교조 주변에, 그리고 내부 한 귀퉁이에 집권/지배세력에 동조하는 흐름이 적지않이 자리잡은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동조하는 쪽에게 키를 내맡길 때와 그들의 영향력을 눌러앉힐 때와 전교조의 앞날은 사뭇 달라진다. 전교조는 지금 갈랫길에 서 있다.

  우리가 '투쟁! 투재앵-!'하고 시끄럽게(?) 외쳐대니까 부담을 느낀 조합원들이 꽤 있었나보다. "저쪽한테 지휘봉 맡겨 놓으면, 조합원들더러 연가/조퇴투쟁 나서라고 툭하면 쪼아대는 것 아녀? 아, 피곤혀!" 물론 그럴 염려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지껏 전교조가 보여준 문제점은 닫는 말에 채찍을 너무 휘두른 것이 아니라, 본부는 <적당히(?), 하는 만큼만> 판을 벌이고 본격적인 싸움은 분회든, 지회 차원에서든 일반조합원들이 알아서 하라고 속편한 계획표를 짜내는 것이었음을 기억하라. 본부가 알게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는 얘기다. 작년을 떠올리라. 나름으로 잘 벌인 싸움은 10월말의 서울역 연가투쟁이었지. 조합원대중이 나서기 전에 무엇이 있었던가? 지부장단이 앞장서 판을 열었고, 전국의 지회장그룹이 한 일주일 고생할 각오로 서울로 모여들어 단호하게 싸움 벌였던 것이 조합원들 마음을 움직인 것 아닌가. 한 가지 더. '교섭안 묵살'이라는 사태가 터지자, 어찌할지 <미적대지 않고 재빠르게> 조합원들의 분노를 묶어내는 항의행동을 벌였기에 또 가능했다. 우리가 투쟁을 강조할 때는 <마구잡이로 조합원들을 다그치자는 게 아니라>, 늘 조직에 투쟁의 기풍을 유지하고 있다가, 때 되면 기민하게 지도부/활동가그룹부터 앞장을 서서 싸움의 물결을 높이자는 얘기올시다.

   '본부는 적당히, 하는 만큼만 판을 벌였다'는 서술에 대해, 섭섭하게 듣는 분도 있겠다. 물론 '하노라'고는 했겠지. 그 마음가짐을 탓하자는 말이 아니다. 지도부는 늘 상황을 날카롭게 주시하면서 언제든 앞장서 싸우고 때로는 '깨질' 각오로 뛰어들어야 무슨 일이든 되는 법이거늘, 늘 이 점에서 한 걸음 모자랐음을 짚는 얘기다.

  전술 계획 짜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싸움의 기운이 무르익지 못했을 때는 누가 기획을 맡건, 골머리 썩게 마련이다. 그렇다 하여, 그 어려움이 탁상 물림의 전술을 변호해줄 수는 없다. 한 가지 교훈을 떠올리자. 우리는 아무리 조급하다 하여, '섣부르게 <개념을 무시하는(=언어를 멋대로 쓰는)> 정치행동'을 벌여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작년 하반기에 나온, '35만 전교사 총투표'라는 행동이 그것이다. '투표'란 누군가/무엇인가를 선택하는 정치적 집단행동이다. 그 선택에 의하여 무엇인가가 결정된다. 35만 전교사가 연가투쟁을 결정했는가? 35만 교사가 하나의 조직 속에 묶여있지 않은데, 결정할 수도 없을뿐더러 설령 그쪽으로 표를 몰아주었다 한들 그 투표 결과는 아무런 구속력이 없지. '총투표 용지'엔 무엇이 적혀 있었던가? "현정부의 정책은 반대행동을 해서라도 고쳐내야 한다고 여기는가?" 일반 교사들의 의견을 물었을 뿐이다. 그것도 꼭 뻔한 결론이 나오게끔. <그저 의견을 묻는 것>은 '설문 조사'라 부른다. '투표'라 일컫지 않는다. 뻔한 답을 요구했으니 '요식적(要式的)'인 것이었다. 뻔한 설문지, 그것도 문항 하나 달랑 돌려놓고, 이를 <한껏 부풀려> '35만 전교사 총투표'라 자화자찬한다면 전교조 주변의 교사들이 다들 수긍해 주리라 여겼던 것일까?

  전교조 올해 사업계획에서 <국민과 함께 하는 단체교섭>이라는 개념이 시빗거리로 올라 있다 한다. '국민과 함께'라! 이 말은 꼭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다. 잘 이뤄지면 큰 힘을 얻을 수 있음을, 그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럴 만한 객관 조건과 주체 역량이 갖춰져 있을 때라야 그 언어는 명실상부한 것이 된다. 정치/사회 운동하는 그룹 중에 이 말을 <버릇처럼> 즐겨 쓰는 쪽이 꽤 많은데 '그 언어에 걸맞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다시 개념을 따져 본다. 교섭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교사/교원노조 아닌 딴 쪽에게 이 일은 '자기 일'이 아니다. 교섭안을 만들 때 도움말을 주고, 싸움이 벌어졌을 때 지지의 박수는 보내줄 수 있겠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교섭은 교원노조가 하는 일>이다.

  '국민과 함께'의 뜻이 단순히 '국민의 지지를 최대한 그러모으자'는 뜻이라면, 그 뜻에 걸맞게끔 주변 사회운동 세력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라면 논란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국민교섭단 어쩌구' 꾸리자는 의견이 제출되었다 한다. 왜 자꾸 쓸데없이 일을 지어낼까? 자기 일 자기가 하는 것이거늘, 저 혼자 교섭하면 정부의 공격에 시달려 초주검이 되거나, 여론의 뭇매 맞아 외토리로 몰리기라도 할까봐 대단히 두렵다는 얘길까?

 '국민'이라면 그 수많은 국민 중에 누구 얘기를 듣겠다는 것인가? 대뜸 떠오르는 단체는 '학부모 단체'인데, 이들은 요즘 <정권과 죽이 잘 맞아서 교원집단 성토에, 신자유주의 수사학 찬양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교조에 대해서 별로 호의를 품고 있지 않음을 다 아시지 않는가? 그 단체 몇몇 간부의 재가를 얻어야 뒤탈이 없을 만큼 우리가 뒤 구린 집단이기주의의 행태를 쬐금이라도 보여 왔노라, 지금 반성하자는 얘긴가? 여러 단체의 서로 다른 얘기를 조율하느라, 세월을 다 허송해도 좋다는 얘긴가? '국민교섭단'을 꾸리자는 발상은 처음부터 국민 각계각층의 동의를 얻고 출발하자는 뜻이다. 국민 각계각층의 의견은 우리 스스로 교섭안 만드는 과정에서 귀기울여 듣고, 우리 생각에 따라 취사선택하여 반영하면 족한 것이다. 우리 자신의 판단력을 그렇게도 못 믿는다는 얘긴가? 우리는 빈약한 교육여건 속에서 제대로 대접도 못 받고, 학교의 주인으로서 제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살아왔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 '대부분'은 교육민주화와 학교 정상화에도 도움되는 것이라 믿고서 우리는 운동해 왔다. 느닷없이 이 모든 것을 재검토에 부쳐야 할 만큼 무언가 심각한 국민적 반대에 맞닥뜨리기라도 했다는 얘긴가?

 '국민교섭안'에 무엇이 들어가야 하는가? 7차 교육과정 전면 재검토와 교직종합발전안 철폐, 사립학교법 개정쯤이라도 국민적 동의를 얻어 국민교섭안에 들어간다면 그 나름으로 뜻있는 일이겠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내걸었을 경우, 교육부에서 순순히 들어줄까? 그것까지는 언감생심이요, 걔네가 '의제'로서 받지도 않는다. 지금 단체교섭에선 이 의제 문제도 아직 해결돼 있지 않다. 그렇다면, '국민--교섭'은 <관철되리라, 기대하지 않고> 일을 벌이는 셈이다.  기획 담당자가 공식석상에서 이 속내를 털어놓았다지? 그런데 이 사실은 '그러려니'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이부영 집행부에서는 첫 교섭이니만치 무언가 열매를 얻어내서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조바심을 냈다. '의제 단축!'의 쟤네들 으름짱에도 '그려, 그것은 나중에 다시 따져도 되것제.' 스스로 뒷걸음질치고, '조합활동 완전 보장!' 요것도 나중 일로... 그래서 천신만고 끝에 교섭안이라고 햇빛을 쬐였다. 결국 우예 됐노? 저노무자슥들이 입 따악 씻고, 그 귀한 도장 찍은 문서를 휴지통에 처박아삤다 아이가. 우리가 기민하게 들고 일어나서 싸웠기에망정이지, 미적대기라도 했다면 그 패배감을 어예 감당할라캤노?

  그런데 단디이(단단히) 보그래이. 이번 집행부는 교섭안이 고로코롬 쪼그라붙는 꼴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말자고 굳게 다짐했는갑다. 그래서 '국민과 함께'- 쎄게 나왔데이. 그 대신에,  성사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단다. 이것, 위태로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성사될 가망성이 아예 없는 교섭안을 들고 나와서, 전교조 신문에는 휘황찬란하게 뻥뻥 떠들어 쌓는다면 일반 조합원들이 어찌 생각할꼬? 일반 조합원들은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교섭이 성사되기를 바라서, 그 기대감을 품고 조합에 들어왔음을 잊지 말그래이. 교섭 타결을 위해 쟤네들 바짓가랭이 붙드는 추태야 물론 가당찮은 일이겠지만, 거꾸로 "우리, 타결 안 바란다! 그 대신에 목청 한껏 높일란다!"하고 홱 돌아서는 태도도 영 미덥지 못하다. 비유하자면, 오른쪽으로 홱 꺾여 있었던 쇠젓가락을 옛꼴 다시 안 밟겠노라고 이번에는 왼쪽으로 홱 꺾어버린 모습 아닌가. 일 그르치는 편향이란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개꼬리에 아무리 스킨로션 바른들 소꼬리 되지 못한다. '교섭 無用論'은 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지로 둘러싸도 또다른 패배주의일 따름이다.  

  신임 집행부의 「2001 사업계획 시안」을 훑는다. '주요 방향'은 <1. 조직 확대  2. 국민단체교섭  3. 제2의 참교육운동>으로 되어 있다. 조직 확대와 참교육운동은 거의 대부분 분회/지회 단위와 연구 단위에 맡겨지는 일들이다. 본부/지부가 정권에 맞서, 요구할 것 요구하고 저항할 것 저항해내는 일은 <2. 국민단체교섭> 뿐이다. 신자유 반대니, 교종안 철회니, 하는 것들을 이 틀에서 해내자는 얘긴가 보다.(그 싸움을 나, 몰라라 하자는 얘기는 아니겠지?)

  그런데 말이다. '교섭'이란 상대방이 있는 것 아닌가베? 이쪽이든 저쪽이든 뻗댈 것은 서로 뻗대되 그중 '얼마쯤'은 들어줄 가망성이 있는 주제들을 놓고, 입씨름 판씨름 벌인다는 말씀이다. 아예 들어줄 리 없는 것들을 들고 나가면 판이 성립하지 않는다. 교종안이니, 사립학교법이니 하는 것들은 교섭 테이블에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교섭이란 '타협'을 바탕에 깐 언어(개념)> 아닌가. 그러니까 당장이든, 다음 번이든 얼마쯤이라도 성사될 것을 염두에 둬야 하지 않는가. <타결은 아예 접고, 선전 마당으로 삼으려고> '국민 교섭'을 제안하는 것이라면 조합원들의 맥이 풀풀 빠져버린다. 전술의 또다른 편향이다!! '국민'을 깃발로 내걸어 아무 얘기나 다 듣겠다는 점에선 답답무쌍한 우편향이요, '개량의 획득'을 아예 포기한다는 점에선 경솔한 좌편향이다. 독살눈 전풍자 얘기든, 참교육학부모회 얘기든 다 듣겠다는 점에선 위험천만이요(....걔네는 우리더러 정권에 순종하라 할 터인데 그럼 순종하자는 얘긴가?), 무슨 격양가의 시절이라고「국민교섭단 어쩌구」, 법에도 제도관행에도 없는 기구를 꾸리느라 허송세월할 것을 떠올리면 한심낙심수심 천만억만이다.

  이보시게들, 세상에는 교섭 테이블에서 씨름 벌일 문제, 따로 있고, 운동장과 거리에서 떠들 문제 따로 있는 벱이네. 테이블에서만 죽치는 꼴도 비판받아 싸지만, 테이블을 아예 걷어치우자는 발상도 일 그르치기는 마찬가지네. 두 갈래의 싸움을 한꺼번에 벌여나가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네 밥상에 무엇인가 올라 오네. 테이블 안과 밖에서 두 싸움을 동시에 벌여낼 능력이 있을 때라야 호박이 굴러온다는 얘기네. 왜 모든 사안을 교섭안에 다 담으려 하는가? 세상일을 '모 아니면 도'로 취급해서 쓰것는가. 7차 반대와 교종안 철회 싸움과 사립학교법 개정싸움은 <'단체교섭' 영역을 훨씬 웃도는> 싸움거리이네. 그에 관한 우리의 요구사항을 교섭안 속에 얼마큼 집어넣는 것이야 가능하지만, <그 싸움 자체는 단체교섭과 별도로> 벌여나가야 한다는 말씀이네. 「국민단체교섭」, 요것 하나 달랑 내걸고, 이것으로 다 때우겠다는 발상은 멧토끼도, 집토끼도 다 놓쳐버리네. 내 말, 혜량하시것는가?

   <사업의 주요 방향>을 다시 살핀다. 조직 확대와 참교육운동, 언제나 해야할 일이지, '지금 이 시기'에 강조할 사업은 아니다. 이것을 '주요 방향'으로 놓는다는 것은 지금의 정치지형을 대단히 <여유롭고 태평스레> 바라본다는 얘기다. '참교육'도 그렇다. '저마다 저혼자(또는 저희끼리) 실천하라!'는 얘기는 전교조 문건에서 굳이 강조할 일이 못된다. 나름으로 뜻있는 교사들이 저마다 알아서 한다. 전교조가 고민할 꺼리는 대다수 교사들이 제대로 교육실천을  해내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어찌 걷어치울까, 이 점 아닌가. 그러니까 전교조 조직 차원에서 벌일, 지금 이 시기의 최대의 참교육운동은 '7차 교육과정 반대 싸움' 아닌가. 굳이 새삼스레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빼고, 지금 이 시기에 '주요 방향'으로 삼아야 할 것은

①정권의 신자유주의 개혁 저지 싸움과 ②단체교섭, 제대로 해내기 아닌가!! ①의 싸움은 행사계획표에 맞춰 벌이는 싸움이 아니라, 개학하고부터 바로 불붙어야  할 싸움이다. 아니, 얼마 전 이돈희가 험담 늘어놓았을 때도 곧바로 반격해줬어야 할 일이다. ②는 '국민 어쩌구'하는 수식어 꾸며대기에 여유로이/한가로이 골몰하기 앞서, 지난해에 물려받은 '교섭안 파기 사태'를 어찌 풀어낼 것인지, 눈앞의 현실을 고민하는 것만 해도 주변머리 속알머리 쑥대머리 빠질 노릇 아닌가.

시(詩) 하나, 떠오른다. 한참 옛날에 초등 5학년 딸아희가 썼지.

『울 엄마 이름은 '걱정'이래요 / 낮에는 쌀 걱정 / 밤에는 연탄 걱정 / 밤낮으로 걱정, 걱정...』

  '울 엄마' 이름은 걱정이고, '울 아빠' 이름은 '주정(酒酊)'이랬던가, 그리고 자기 이름은 '눈물과 한숨'이라고 끝을 맺은 슬프고 슬프고 슬픈 시다.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시, 시 쓰는 솜씨/기량과 무관하게 심금을 울리는 그런 명시(名詩)다.

  각설(却說)하고.....   2기 집행부의 설익은 '사업 시안'을 덜렁 마주할 때 찾아드는 우리네 심사는 이 어린이 엄마만큼의 절절함은 아닐지래도 '밤낮 끊이지 않는 걱정, 그리고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일선학교 교장/감의 철통같은 상명하복(上命下服)에서 학부모단체와 보수언론의 엄호사격에 이르기까지 저쪽의 권력자원은 참으로 막강하고, 또 반동적 구조조정의 마무리를 위하여 정권은 사생결단으로 달겨드는데, <공상(空想)과 무능함과 퇴보 심리로> 뒤덮인 사업계획표 갖고 어찌 맞서려는 것인가. 작년 가을의 '서울역 연가 투쟁'도 어렵게 어렵게 끌어낸 것임을 헤지 못하는가.  

  2기 집행부에는 지난번 '교총과의 통합론'을 내걸었던 활동가들이 큰 몫으로 전진 배치되어 있다. 물론 그 통합 제안이 전교조 조직과 교사운동에 대한 '충정'에서 나온 것임은 200% 인정해 준다. 하지만 선의(善意)는 선의고, 오류는 오류다! 교총쪽 일부 사람들이 진짜로 한 식구 돼도 좋을 만큼 개혁적이었다면 그뒤로도 걔네쪽에 무언가 변신의 움직임이 일었어야 옳다. 현실은 이쪽 몇 분의 짝사랑 가을물결(=추파)로 끝나지 않았는가.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아재! 아재! 배워야제! 아재나 아지매나 머리 싸매고 한-참 배워야제! 자신의 오류로부터 제대로 배워서 전진하는 사람이라면 두 배로 믿음을 보낼 수도 있을 터인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닌갑다. 그들은 "대중(大衆), 대중, ♬가고파라, 꿈에도 그리운 대중의 바다여! 어쩌구"하는 신앙이 워낙 투철하여서 "대중(大中), 대중, 대중 형님의 뒤만 따르라!"는 신도들과도 체질상 무척 가까워졌는갑다. 투쟁파(?)와는 체질상 같이 안 놀아도, 대중(大中)파와는 대중의 바다/풀장/욕탕/거리에서 기꺼이 더불어 노는갑다. 그러다봉께, 사업계획안에도 '투쟁'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고, '국민 대중'에 대한 가슴속 가을물결만 잔뜩 일렁이는갑다. 내 표현이 너무 심했다면 용서해 달라. 나는 그분들의 주관적 선의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쇠도리깨 마구 들이닥치는 현실 앞에서는 아무리 아리따운 선의(善衣)일지라도 무참히 찢겨서 제 연약한 알몸을 쓸쓸히 드러내게 마련임을 유념하라.    

  '교총 통합론'에서 '35만 전교사 총투표'와 '국민과 함께 하는 교섭'에 이르기까지, '오류(誤謬, Fallacy)'는 살아 있다. 만수산 드렁칡마냥 끈질기게 '오류'는 살아 있다. 북풍 한파 몰아쳐온 이번 겨울에도  '오류'는 펄펄 살아나서 전교조의 두뇌를 잔뜩 주름잡고 있다. 정세와 도통 상관없는, 일정 밟기식 사업표, 수위(水位)의 완급도 없이 투철함만 가득 뽐내는 사업안, '모 아니면 도!', 2002 하반기에는 진짜 파업이 예정되어 있으니(?), 올해는 그 전(前)단계에 머물라는 신탁(神託)이라도 받았는지, 예정조화설에 따라 코스를 밟아나가는 귀똥찬 스케쥴! 그리고 '급별'로 따로 놀려는, 그래서 구멍가게 패권을 쥐려는 토호 세력에 대해(---초등의 맹주/盟主 되기를 꿈꾸는 '전국초등위원회' 몇몇 간부들의 무도무쌍한 활약, 임명직인 충남 초등위원장을 저희 멋대로 선거하기---), 바로잡고 다독거리기는커녕 나 몰라라, 내버려두고, 못 이긴 척 악수하고, 오히려 등 두드려 부추기기까지 하는 우라질의 방향 상실증! 드디어 끝끝내 오류는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시인(詩人)이여, 늙고 젊은 활동가들이여, '오류'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오류'더러 똑똑히 똑똑히 보라고 목청껏 정성껏 기침을 터뜨리자! 기운 통하고 맥을 뚫어, 천지(天池)물처럼 맑은 정신을 샘 퍼올리자. 올해에는 제발 전교조가 갈짓자 비틀걸음으로 노닐지 않게끔 정한수 떠놓고 천지신명께 무릎 꿇어 치성을 올리자!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