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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세계화반대 국제연대 투쟁의 흐름과 쟁점

2001.10.16 11:20

이창근 조회 수:1457 추천:1

:::2000년 진보강좌 강의문입니다. 세계화 반대 국제연대 투쟁의 흐름과 쟁점

세계화 반대 국제연대 투쟁의 흐름과 쟁점
- MAI에서 시애틀, 워싱턴까지

이 창 근(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1. 시애틀 및 워싱턴 행동의 전사(前史)

세기말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1999년 11월 '시애틀 전투'. 그리고 2000년 4월의 워싱턴 행동.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벌어진 '세계화 반대' 운동은 우리에게도 이미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상당히 익숙해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국제적으로 조정된 연대행동이 국제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계기는, 지난 97년∼98년 활발하게 진행된 다자간투자협정(MAI) 반대투쟁과 '쥬빌리(Jubilee) 2000'을 중심으로 한 제3세계 외채탕감운동이었다. 다자간투자협정(MAI)은 지난 95년부터 OECD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국제투자규범인데, 현재 국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일·한미투자협정과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각국 시민·사회단체 및 노동조합은 MAI가, 1) 투자자의 권리를 정부·지역사회·시민·노동자 그리고 환경의 권리보다 훨씬 우위에 놓고 있으며, 2) 해외투자자에 대한 민중들의 민주적 통제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고, 3) 해외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제소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민주주의와 국가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등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강력히 저항하였다. "MAI에 대한 NGO 공동 성명서"가 1998년 2월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었고, 여기에 약 68개국 565개 단체들이 서명했을 정도로, 그 저항은 광범위하고 강력했다. 결국 초국적자본과 제국주의 국가들은 98년 10월 공식적으로 '협상의 중단'을 선언해야만 했다. 한편 제3세계 외채탕감운동은, 영국에 기반을 둔 '쥬빌리(Jubilee) 2000'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외채탕감운동은 "희년(Jubilee)에는 너희들 가운데 가난한 자는 없을 지어다"라는 성경 구절로부터 최초 아이디어를 얻었으나, 그 근저에는 제3세계 '발전'과 '빈곤' 문제는 '외채' 문제의 해결이 필수적이라는 인식 속에서 출발했다. 외채탕감운동은 "1998년 11월 17일 로마에서, 38개국 쥬빌리 2000 단체들과 12개 국제조직이 모여, 상환불가능한 외채, 실질적으로 이미 상환한 외채, 부적절하게 기획된 정책과 프로젝트로 인한 외채, 부정한 외채와 독재정권에 의해 발생한 외채를 2000년까지 탕감할 것을 요구"1)하는 '쥬빌리 2000 캠페인'을 발족시키면서 본격화된다. '쥬빌리 2000'은 1998년 영국과  1999년 독일에서 열린 G7+1 정상회담 때 수만의 시위대를 동원하여 제3세계 외채탕감에 대한 부유한 국가들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러한 시위는 1999년 G7+1 정상회담에서 '중채무빈국(HIPC) 외채탕감 계획'2)이 채택되는데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다. 위의 두가지 투쟁 사례는 '반(反)세계화 투쟁'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즉, '반세계화 국제연대 투쟁'을 '추상의 영역'에서 '현실 투쟁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계기였으며, 가시적인 투쟁 성과물을 쟁취함으로써, 각국 민중들에게 금융세계화에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세계화는 필연적이며 불가피하다'는 이데올로기적 강요를 극복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주었다. 이러한 국제적인 연대행동이 시애틀과 워싱턴으로, WTO와 IMF/세계은행 반대투쟁으로 계승된다.  

2. 1999년 시애틀, 2000년 워싱턴

1999년 11월 31일 시애틀에서의 WTO 반대행동은, 이미 뉴라운드3) 출범이 예상되던 1999년 초부터 체계적으로 준비되었다. 다자간투자협정(MAI) 반대 투쟁 때와 비슷하게, 이번에는 '모라토리엄(Moratorium) 선언문'이 인터넷을 통해 배포되었다. 이 선언문은 "자유무역체제가 민주주의·인권·노동권·환경·문화 등 인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한 포괄적이고 충분한 조사·평가가 선행되기 전까지는 뉴라운드 출범이 유보(Moratorium)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담고 있었다. 즉, '더 많은 자유화·개방화'를 위한 어떠한 추가적인 자유무역 및 투자협상도 거부하며, 이것의 연장선에서 "어떤 새로운 이슈가 WTO에 편입됨으로써, 그것의 영향력 과 권한이 확대되는 것"에도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호소문에 전세계 80개국, 1300여개 이상의 사회운동단체들이 동참했다. 하지만 시애틀 현지 행동은 현상적으로 'WTO 반대, 뉴라운드 출범 반대'라는 포괄적인 슬로건으로 통일되어 있는 듯 했지만,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의 '무역과 노동기준 연계' 주장을 둘러싸고 '반세계화 연합' 내의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났다.4) AFL-CIO의 '무역과 노동기준 연계' 주장은 '모라토리엄 선언문'에서 밝힌 '새로운 이슈 및 영역의 WTO 편입 반대, WTO 권한 확대 반대'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5) 결론적으로 1999년을 장식한 시애틀 투쟁은 WTO 개혁론자와 해체론자들간의 공동 행동 속에서, 국제연대 투쟁의 연속성과 잠재력을 마음껏 보여준 반면, '반(反)세계화 연합' 내의 뿌리깊은 노선 갈등의 극복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임을 또한 확인시켜주었다.

2000년 4월 16일 워싱턴 시위는 IMF/세계은행 춘계회의를 계기로 벌어졌다. 주요한 슬로건은 'IMF/세계은행 폐쇄, 구조조정 강요 반대'였는데, 이는 미국을 비롯한 북반구 민중들보다는 제3세계 민중들에게 보다 밀접한 이해관계를 갖는 이슈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워싱턴 시위는 미국 시민들이 최초로 IMF/세계은행의 만행을 고발하는 장이었으며, IMF/세계은행의 구조조정에 반대하여 격렬히 투쟁해온 제3세계 민중들과의 연대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계기였다는 점에서 크나큰 의의를 지닌다. 또한 AFL-CIO가 이번 워싱턴의 'IMF 해체/구조조정 반대 투쟁'에 참여한 것도, 그들의 과거 모습과 비교해볼 때 상당한 진전이다.  AFL-CIO는 2년 전(前)만 하더라도 클린턴 행정부의 IMF에 대한 180억불 지원 정책을 지지했었다. 그러나 AFL-CIO가 워싱턴 행동에 전면적으로 결합한 것은 아니었다. 시애틀에서와는 다르게 조합원 동원에 소극적이었고, 단지 집회에 대표자를 파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또한 그들은 핵심적으로 클린턴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항구적 정상교역관계(PNTR) 지위 부여 반대 / 중국의 WTO 가입 반대'를 외쳤는데, 이는 'IMF/세계은행 폐쇄, 구조조정 중단'이라는 워싱턴 행동 조직위원회의 요구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주장이었다. 이는 단순히 투쟁의 초점을 WTO에 맞추는가 IMF/세계은행에 맞추는가의 단순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AFL-CIO의 주장의 심각한 문제점은, '시애틀 투쟁'을 통해 본격화된 자유무역 및 투자협정의 본질적 문제점들에 대한 대중적 공분을 '중국의 WTO 가입 반대'라는 협소한 영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4·16 워싱턴 행동은 MAI와 시애틀로 이어지는, 국제적인 연대 행동이 결코 해프닝이 아니었다는 메시지를 초국적자본과 제국주의 국가들에 분명히 전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또한 IMF/세계은행 구조조정 반대를 매개로 한 제1세계와 제3세계 민중들간의 연대 가능성을 확인한 것도 큰 성과이다. 그러나 이번 워싱턴 시위는 IMF/세계은행 구조조정 반대투쟁을 실질적으로 전개해왔으며, 앞으로도 주도해나갈 세력일 수밖에 없는 제3세계 민중들과의 연대가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은 큰 한계로 다가왔다.6)

3. 반(反)세계화 국제연대 투쟁의 특징과 쟁점    

전세계 주식시장의 '동조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국내적인 요인이나 경제적 펀더멘탈이 어떻든 간에 미국 주식시장의 부침은 가감없이 전세계 주식시장에 전달된다. 금융세계화의 진전이 만든 결과이다. 이러한 '동조화' 현상은 세계 각국이 해외직접투자 유치(혹은 이탈방지)를 위한 '밑바닥을 향한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는 각국 민중들의 삶을 근저에서 파괴하고 있다. 해외직접투자 유치를 위한 유리한 조건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초국적자본의 보다 자유로운 착취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또한 초국적자본은 보다 확실한 '안전장치'의 구축을 위해, IMF/세계은행을 강화하고, WTO를 비롯한 각종 지역간·양자간 자유무역협정/투자협정의 체결에 전력하고 있다. 이러한 장치들은 각국 정부의 국내외자본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제거하며, 심지어 사회정책에 대한 간섭도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금융세계화'는 국제적인 부의 불평등, 발전의 불균형, 고용파괴, 삶의 질 하락을 야기시켰고, 이에 각국 민중들은 일국적 시야를 넘어 공동의 적에 맞선 지구적 연대행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하에서 반(反)세계화 국제연대투쟁의 최근 특징과 쟁점들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특정 부문 이슈(여성, 환경, 인권, 소비자, 건강 등)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던 세력들이 '세계화 반대' 동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시애틀과 워싱턴의 수만의 시위대들은, 전통적인 좌파세력(노동운동 및 좌파정당)에서 진보적 교회운동, 인권운동, 평화운동, 도시/농촌공동체 및 원주민운동, 여성운동조직, 청년 및 장년 조직, 에이즈인권활동가, 보건의료운동, 장애인 로비단체, 소비자운동 그리고 환경운동까지 실로 다양했다. 이러한 현상은 '반(反)세계화 동맹'을 매개로 한, "대중운동과 NGO, 프롤레타리아 활동가와 쁘띠 부르주아 지식인, 여성과 남성, 환경주의자와 노동자"7)간의 결합 가능성을 시사한다.  

둘째, 국제금융기구 및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개혁주의적 입장'이 상대적으로 대중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90년대 보수적인 NGO 및 노동조합은 '노동·환경 기준을 무역과 연계시킴으로써', WTO를 비롯한 자유무역 및 투자협정을 '개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주장은 대중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기존 자유무역협정에 포괄되어 있는 노동·환경 기준(부설협약)이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협정 중에 최초로 노동·환경 기준이 포함된 것은 지난 1994년 출범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인데, 그러한 기준들은 노동권 및 환경 보호를 위한 어떠한 감시 혹은 규제의 역할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NAFTA는 자유무역협정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가에 대한 좋은 예로서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WTO 내에도 환경단체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무역환경위원회'가 설치되었지만, 이 위원회는 무역이 환경 파괴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를 연구하기 보다는, 오히려 환경 관련 법률이 어떻게 자유무역을 제한하고 있는가를 연구하고 있을 뿐이다.8) 한편, 이러한 사회적 조항 노선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금융세계화 체제를 강화하고 공고히하고 있는 WTO 및 투자협정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해줌으로써, 현재의 제국주의적 지배·종속관계를 유지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사회적 조항을 WTO(및 자유무역·투자협정)에 편입시킴으로써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일정한 진보성 혹은 잠재적인 가치보다, 그에 의해 잃게 되는 것-국제적인 사회세력 관계에 미치는 손상-이 더욱 크다는 점이다.

셋째, '해체론자'들의 시민권 획득과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대안 모색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은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다. 사실 90년대 국제금융기구 및 WTO 체제에 대한 '해체' 주장은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서, 소수 급진론자들의 관념적 주장으로 치부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금융 세계화 체제의 모순이 심화되고 개혁주의적 입장이 기존 경향을 제어하는데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면서, '해체론'은 국제연대운동 내에서 시민권을 획득하게 된다. 이는 결정적으로 MAI 반대투쟁을 계기로 형성되었다. 극단적으로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MAI 앞에서, 보수적 NGO들은 그 내에 어떠한 사회적조항조차 편입시킬 여지가 없음을 깨달아야만 했다. 결국 그들도 초국적자본 및 제국주의 국가들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사항'들을 제기함으로써, MAI 체결 반대론자들과 함께 했다. 이러한 경향은 시애틀 투쟁과 워싱턴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국제금융기구 해체/모든 추가적인 자유무역 및 투자협정 체결 반대/WTO체제 해체 등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해체론자'들의 부상과 더불어, 당연히 '대안'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된다. 세계 자본주의 질서의 재편에 대한 대안적 전략은 크게 두가지 수준으로 구별지을 수 있다. 하나는 UN(및 그 산하기구들)을 활용한 자본의 국제적 통제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체제로부터의 '이탈' 전략이다. 위의 양자(兩者) 모두, 현존 기구들의 해체(최소한으로 '기존 권력 강화 반대'), 추가적인 무역 및 투자 자유화 협상 중단 등의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해체/반대 이후'에 대한 상은 차별적이다. 전자(前者)의 입장이 명징하게 드러난 것은 지난 2월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UNCTAD NGO 포럼이다. 이 포럼에서, 월덴 벨로를 비롯한 'WTO 해체론자'들의 일부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UNCTAD에 무역관련 협상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후자(候者)의 경향은, 보다 일국(一國)에 기반을 둔 전략이다. 이들은 금융세계화에 따른 각국 정부의 '자본에 대한 통제력'의 완전 상실에 주목한다.9) 이에 일국적 차원의 통제 권한 회복과 급진적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이러한 전략은, '농업'협정을 포함하여, '필수서비스, 문화, 생명특허' 등을 WTO 체제로부터 제외시키고자 하는 흐름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또한 '외채 거부', '자본통제 정책' 등도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넷째, 남반구 NGO 및 사회운동 세력들 간의 연대가 강화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국제적인 연대행동은 북반구 NGO들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최근 남반구 사회운동 및 대중운동 세력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투쟁에 기반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함으로써, 그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예는, 외채탕감운동을 주도해 온 '쥬빌리 2000 캠페인'의 분화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사이의 핵심적인 쟁점은 '외채탕감의 조건(conditionality)'10)과 '탕감 대상 외채의 규모와 범위'11) 등이다. '외채탕감 조건'에 대해 특히 남반구 사회운동세력들이 반발하고 나서는 것은, 그것이 혹독한 긴축재정, 수출주도성장 전략 등 IMF 구제조건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인터넷의 발달에 따른 네트워크 및 자율적 동원체제의 형성과 발전 역시 최근 국제연대운동의 경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시애틀과 워싱턴 투쟁의 경우, 상당히 많은 대중들이 어떠한 NGO나 대중조직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개인들이 참여했고, 풀뿌리 운동이 국제적인 연결망을 갖춤으로써, 자신들의 투쟁을 세계화시켜내고, 곧바로 국제적인 연대행동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4. '반(反)세계화 국제연대투쟁'의 주체로 나서기 위해

'반(反)세계화 국제연대 투쟁'의 한 단계 진전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쟁점들이 풀려야 한다. 광범위한 '반세계화 동맹 세력'의 형성을 위해서는 1) 제1세계 및 제3세계 민중들간의 연대, 2) 개혁론자와 해체론자들간의 연대, 3) 조직된 노동자와 다양한 부문운동들과의 연대 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또한 정치적인 전략에 있어서도, '자본통제', '외채탕감/거부', 'WTO 및 투자협정 반대', 'IMF/세계은행 해체' 등의 쟁점들이 통일적인 맥락 속에서 묶여야만 한다. 이런 면에서 '반세계화 연합' 내에는 아직도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 기반한 '50년이면 충분하다'(50 Years is Enough) 네트워크의 한 활동가는 현재와 같은 시기에서, '국제기구 및 협정에 대한 입장'의 차이(즉 개혁론자와 해체론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12) 그는 최소한 현재와 같은 조건에서는 연대가 가능하다고 한다. 양자(兩者)의 입장 모두가 "극단적인 세계화 과정의 파괴성을 고발하고, 속도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인식이 틀렸다고만 볼 수는 없다. 최소한 각국 민중들이 '세계화가 필연적이고 되돌이킬 수 없는 과정'이라는 선험적인 전제에 대해 한번쯤 의심할 수 있게는 된 것도, '개혁'을 제기했든 '해체'를 제기했든 "세계화에 도전한 운동"들 덕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현재에도 여전히 그러한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다. 탈냉전시대 세계화는 제3세계 국가들이 냉전시대에 그나마 이뤄놓은 부와 천연자원, 심지어 전통적인 지식과 문화까지도 무자비하게 재(再)수탈해가는 구조를 의미한다. 이런 면에서, 세계화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대응 방향의 정립과 연대전선의 구축이 필요한 때이다. WTO/IMF/세계은행 등에 대한 어설픈 '개혁론'은 오히려 그것의 정치적 정당성과 합법성을 강화시켜줄 뿐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세계화의 주요한 행위자들을 해체하고, 그 체제로부터 '이탈'하는 방향으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13) 당장 이 목표가 달성되기는 힘들겠지만, 위의 목표아래 단기적으로 농업·문화·생명특허·필수서비스 등을 WTO 체제에서 '제외'시키고, 제3세계 국가들의 국민경제적·사회적 필요에 따른 정책을 제한하는 IMF/세계은행의 구조조정 강요의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남반구 사회운동 세력들간의 연대 속에서, 외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교육과 모든 외채의 '조건없는' 탕감을 주장해야 한다. 여기에 금융투기반대 및 자본통제운동 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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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하순, '방콕 운크타드 회의 보고서' 중 '외채탕감운동의 현재'에서 재인용
2) 중채무빈국(HIPC)외채탕감계획은 1996년부터 IMF/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를 포함한 국제채권단 내에서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이미 우간다, 볼리비아, 가이아나, 모잠비크에 대한 외채 재조정(외채경감 및 상환기간 연장 등) 과정이 마무리되었다. 이 프로그램이 1999년 6월 쾰른에서 열린 G7+1 정상회담에서 보다 확대된 형태로 제안되어 채택되었다. 구체적으로, 탕감규모는 중채무빈국(HIPC)의 부채 2천300억 달러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며, 41개 중채무국 중 36개국이 수혜대상으로 설정되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같은 해 9월 IMF/세계은행이 동의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대한 입장을 둘러싸고, 외채탕감운동 세력 내에서 격렬한 논쟁이 전개되었고, 결국 '쥬빌리 2000 캠페인'은 남·북반구로 분화되고 만다. 이는 아래에서 다시 설명하도록 한다.
3) '뉴라운드'는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WTO 체제하에서 진행되는 첫 번째 포괄적 다자간자유무역협상을 가르키는 말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쟁점 등은 필자의 다음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WTO 뉴라운드에 대한 우리의 입장'(1999.11), 'WTO 협정의 실체와 쟁점들'(민주노동과 대안, 11월호. 1999)  
4) MAI 반대 투쟁의 과정에서 '봉합'되었던 '개혁론 대(對) 반대론/해체론'의 노선 갈등이  AFL-CIO의 주장을 계기로 다시금 폭발되었다. 사실 '모라토리엄(유보/유예)' 성명서는 위 양자(兩者)의 갈등을 고려하여, 상호 입장을 절묘하게 조율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애틀 현지에서 동원된 3만여명에 달하는 AFL-CIO 조합원의 목소리는, '모리토리엄'이라는 절충된 입장을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한 물리력이었다.
5) 양 주장의 내용과 쟁점 등에 대해서는 후술하겠음.  
6) 이번 4·16 워싱턴 행동에 참가한 제3세계 시위자들은, 대부분 이번 시위를 주도한 '50년이면 충분하다' 네트워크와 연계를 맺고 있는 제3세계 NGO 및 사회단체 활동가들이었다.
7) Patrick Bonds, "Global and National Financial Reforms Southern African Contributions to Global Civic Movement Debates"(대구라운드 발제문)
8) [시민국제무역감시단] 로리 왈라크의 다음 언급은 '사회적 조항' 노선의 본질적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WTO가 처음 수립되었을 당시 많은 환경운동가들은 WTO 내의 환경 연구단을 촉구하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를 얻어냈고, 5년이 지난 후 가장 정력적인 주창자들 대다수는 이 연구단이 무역에 지배되는 존재로 바뀌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환경 관련 법률이 환경 보호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보호장치를 제거하기 위해 연구되고 있다는 거지요. 우리는 상업적인 세계관과 역할에 의해 지배되는 조직의 수중에 환경을 맡기고 싶지 않아요. 이건 마치 멸종위기종 법안을 파산법에 끼워넣는 것과 같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매우 회의적입니다."(인터내셔널 뉴스 83호, http://picis.jinbo.net)
9) WTO는 제3세계의 국민경제적·사회적 필요에 따른 정책들도 '자유'무역 원리를 해치는 "비관세장벽"(Non-tariff barriers)으로 간주한다. 95년 출범한 WTO 체제는 '식량안보'를 위한 정책도, '국내생산품을 일정비율 이상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정책'도, '내국인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도 모두 '불법화'시켜버렸다.
10) 영국 재무장관 고든 브라운은, "IMF와 세계은행은 선택된 모든 나라들이 반드시 서명을 해야 하는 빈곤 축소 전략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시한과 기일이 있다. 빈국들은 부채 탕감에 해당하는 액수를 건강, 교육, 빈곤 구제사업에 쓰겠다는 약속을 했다. 우리는 그 돈이 무기 구입이나 부패한 행위에 쓰이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브라운이 의미한 "빈곤 구제"는 미셸 초수도프스키의 저서「빈곤의 세계화」에 정확히 묘사되어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빈곤의 축소'는 세계은행 부채협약의 '조건'이 되었다. 그것은 선별적이고 명목뿐인 '빈민 우선 원칙'에 근거하여 사회복지 예산을 삭감하고, 예산 지출의 방향을 전환한다."(66∼67쪽) 이것은 기존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폐지, 그리고 자선 사업과 국제적 "구호 프로그램"에 기반한 비정부기구의 활동에 상당부분 의지하는 빈약한 "사회 안전망"에 의해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재배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IMF와 세계 은행은 이미 코트디브와르 공화국과 가이아나가 만일 정부 정책을 이 방향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중채무빈국(HIPC, Heavily Indebted Poor Countries)" 부채 탕감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인터내셔널뉴스 83호] 인용(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발행)
11) UNCTAD NGO 포럼에서, '모든 외채'의 탕감이냐, '불법적인 외채'의 탕감이냐라는 지점이 실제 논란이 되었다. 논란 속에서, 결국 "시민사회의 판단에 의해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이거나 상황불가능한 제3세계의 모든 외채"(all debt of developing countries which in the judgement of civil society is illegitimate, immoral or unpayable)로 '합의'되었다.
12) 이하 내용은 필자의 글, '4·16 워싱턴 시위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인터내셔널뉴스 94호)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13) 남아공의 패트릭 본드(Patrick Bonds)는 반세계화 투쟁을 평가와 향후 방향에 대해,  "주권회복"(restoring sovereignty)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주권은 인민들이 그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신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희생물"이라고 한다. 이에 그는 반세계화 투쟁의 전략적 목표를 "주권회복"으로 설정하고, 이 틀 아래 다음과 같은 전술적 의제들을 채택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자본 통제 (capital controls), 외채 지불 거부 (debt repudiation), 브레튼우즈 기구들에 대한 기금출연거부 (defunding of the Bretton Woods Institutions),  민중중심의 발전 전략(people-centred development processes)" 등이 그것이다. ("Global and National Financial Reforms Southern African Contributions to Global Civic Movement Debates"- 대구라운드 발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