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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이제는 교육과정 투쟁이다.

2001.02.08 17:25

천보선 조회 수:1172 추천:1

이제는 교육과정투쟁이다!

이제는 교육과정투쟁이다!
7차교육과정 전면 저지와 진보적 교육과정 수립을 위하여

천 보 선 연구실장. 책임연구원

1. 현단계 한국교육과 교육운동의 중심문제 : 7차교육과정

1) 현 시기는 신자유주의교육의 총체적 공세 국면이다.

지금 현재 한국 공교육은 중대 기로에 서있다. 교육이념에서부터 교원정책,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신자유주의는 공교육에 대한 총공세를 펼치고 있으며 이에 대항하여 교육주체와 전교조, 교육운동이 어떻게 막아내고 올바른 대안을 마련하느냐에 따라 향후 한국교육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위기' 그 자체이다. 교종안, 7차교육과정에서 보이듯 신자유주의의 교육에 대한 공세는 총체적인 제도화 단계에 접어들었는데 이에 대한 조직적 대항은 극히 미미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힘있는 투쟁은 차치하고라도 철저한 문제의식의 공유조차 부족한 상태이다.

신자유주의교육의 공세는 지난 95년 교육개혁안 제출된 이래 지속되어 온 것이지만 2000년 접어들어 다음과 같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첫째, 그 동안의 정지 작업 및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기초로 공교육의 전 분야로 공세를 전면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95년 교육개혁안의 제출, 열린교육, 새물결운동, 정년단축, 신지식인론, 정보화론, BK21 등을 거쳐 교종안, 7차교육과정에 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불거져 나온 과외금지 위헌 판결도 정권이 직접 의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소비자 선택권 등 그 동안의 이데올로기적 공세의 한 결과이다. 둘째, 그 동안의 공세가 이념과 방향, 원리적 측면이 강하고 정년단축, 교육방법론 등의 부분적 변화를 도모해 온 것이라면 2000년 들어서는 드디어 교육과정과 교원정책이라는 공교육의 핵심적 영역에 대한 공세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교육의 공세는 한국의 공교육을 결정적으로 변질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추구하고 있는 교육과정과 교원정책이 관철될 경우 한국교육은 신자유주의교육 그 자체로 변질되고 말 것이다. 셋째, 내용적으로는 신자유주의교육의 공세가 격화, 전면화되고 있는데 주체의 대응은 오히려 소강 상태에 접어든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저들의 신자유주의 교육 재편 공세가 대중과 민중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으며 저들은 그 같은 착각과 자신감 속에서 영어로 하는 영어 수업, 초등 1학년 때부터의 컴퓨터교육 필수화와 같은 극단적인 조치들까지 서슴없이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이점에 있어 우리는 교육주체와 교육운동의 혼란과 방향상실, 국면인식의 불철저함을 인정하고 또한 반성해야 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시급하게 철저한 국면인식과 올바른 방향설정이 요구된다.

2) 7차교육과정이 중심 고리이다.

현재의 신자유주의교육의 총체적 공세 국면에서 중심 고리가 되는 것은 7차교육과정이다. 그것은 우선 교육과정이라는 사안 자체가 지니는 내용적 중심성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교육과정은 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이다. 교육과정은 교육의 역할과 의의, 교육권의 보장, 기본방향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으며 교육내용과 방법, 교사의 전문성과 신분 및 근무조건을 규정하는 기본 틀거리가 된다. 교육과정은 가히 공교육의 거의 모든 것을 규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지금 목전에 닥친 7차교육과정 문제는 그 이상의 절박성과 실천적 중심성을 지닌다. 경쟁과 수월성, 시장논리에 입각한 7차교육과정은 앞으로 한국공교육의 공적 원리와 기본 방향, 교육실천의 전문성과 공공성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려 나갈 것이며 공교육의 여타 영역의 시장논리화까지 규정해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크게 볼 때 교직발전종합안도 7차교육과정 수행을 위한 교원정책이라는 하위 영역에 불과하다. 따라서 만약 이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설사 지금 당장 여타의 영역에서 저지선을 형성하거나 성과를 얻는다 하더라도 공교육의 몰락은 막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지금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교육과정 문제이다.

3) 이제부터라도 전면적 교육과정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현 상황이 신자유주의의교육의 총체적 공세 국면이고 그 중심 고리가 7차교육과정이라고 할 때 전면적 교육과정투쟁의 필요성과 의의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대적인 투쟁은커녕 변변한 대응 한번 한 적이 없다. 그 때문에 7차교육과정은 이미 지난 98년에 공시되었지만 별다른 저항 없이 올해부터 순차적 시행에 들어가 2002년부터 전면 시행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미 부분적 시행에 들어갔고 곧 전면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해서 포기할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7차교육과정으로 인한 공교육의 몰락과 교육노동의 피폐화를 막아야 할 중대한 실천적 절박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7차교육과정의 결정적 조치와 전면적 실시에는 시간이 남아있다. 지금부터라도 과감히 싸워 나가야 한다. 전면적인 교육과정투쟁을 만들어 나가자!

2. 7차교육과정의 기본 골격과 성격, 원리

지금까지 교육과정투쟁을 제대로 해오지 못했던 것은 불철저한 국면인식과 7차교육과정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안이한 판단 때문이다. 심지어 '7차교육과정의 기본 방향은 옳은데 제대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행되는 것이 문제'라는 식의 심각한 혼란마저 적지 않다. 따라서 먼저 도대체 7차교육과정이 왜 문제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교육적 상황들을 야기할 것인지에 대한 올바른 파악이 필요하다.

1) 기본 골격과 주요 지점

7차교육과정의 기본 골격은 다음과 같다.

△ 국민공통기본 교육과정의 편성과 선택중심 교육과정의 도입 : 초등-고교 1학년까지 국민공통기본 교육기간, 고교 2, 3학년은 선택 중심

△ 수준별 교육과정의 도입 : 단계형, 심화보충형, 과목선택형

△ 기타 : 재량 활동의 신설, 확대, 학습량 수준 조정, 정보 능력 배양, 교육과정 평가체제 마련, 외국어 교육의 강화 등

7차교육과정은 상당히 많은 변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사소하거나 주변적인 것, 혹은 말뿐인 것들을 빼면 주요한 사항과 내용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공통교육과정을 축소하면서 고등학교를 선택 중심 교육과정으로 변화시킨다는 점이다. 기본 골격에 있어서의 가장 큰 변화이다. 여기에는 기초교양교육의 축소, 전문교과교육의 도입, 소비자선택권의 도입, 확대 등의 의미가 담겨 있으며 이 모든 것은 학교교육이 견지해야 할 교육공공성에 반할 소지를 강하게 안고 있다. 향후 학교를 시장화하는 기본 조건을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문제를 바라볼 때 우리가 분명히 구분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고교의 선택중심형 과정으로의 변화는 고교 2-3학년 년령의 청소년들을 중등교육의 틀로 묶어두면서도 교육과정은 대학과 유사한 선택형 전문화 과정의 형태를 갖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을 중등교육의 연한을 낮추어야 한다는 일부 문제의식과 결코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선택중심으로 간다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조화된 대입 체제 하의 중등교육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해 고교의 선택중심화는 중등교육의 연한을 낮추는 것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초중등교육 전반을 시장논리로 변질시키는 장치와 구조로 기능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중등교육 연한의 문제는 학제 개편의 문제이며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쳐 유치원에서 대학, 대학원에까지 이르는 전반적 체계 속에서 다루어질 문제이다. 중등교육 연한의 문제와 별개로 우리는 선택중심 교육과정의 문제를 적어도 중등교육까지의 학교교육만큼은 공공적 방향과 원리, 내용이 반드시 견지되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둘째, 우열반 편성으로 나타날 능력별 교육과정의 확대, 전반화이다. 내용적으로는 이 부분이 7차교육과정의 가장 주요한 부분이다. 즉 수월성 추구를 공교육의 중심원리로 삼겠다는 것이다. 단계형 교과 뿐 아니라 심화보충형 교과도 능력별 그룹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과목선택형은 교과 자체가 능력별 선택과 연결될 것이다. 심화보충형도 이후의 과정에서는 단계형으로 전화되어 나갈 것이라 한다. 어쨌든 학교교육 전반이 능력에 따른 교육과정으로 변화되어 나갈 것이다.

셋째, 경쟁력 중심의 교육방향과 교육내용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교육을 총체적인 인간적 가치 형성이 아니라 경쟁력 강화의 도구로 보려는 관점이 도입되어 왔고 신지식인론, 정보와 영어교육의 강조 등이 있어 왔다. 그 같은 이데올로기적 토대위에서 7차교육과정에서는 훨씬 전면적인 방식으로 경쟁력과 생산성 중심의 교육방향과 내용을 추구하고자 한다.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 초등 1학년부터의 컴퓨터교육 필수화, 맞춤식 교육과정 등은 이 같은 교육방향의 대표적 사례이며 여타의 교과 편재 및 교육내용 구성도 그러한 흐름 속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결국 교양교육, 인성교육, 공동체교육의 입지는 갈수록 축소된다.

2) 7차교육과정의 관점과 원리

한마디로 7차교육과정은 경쟁력 향상을 중심으로 하는 수월성 추구의 교육과정으로 요약되며 신자유주의교육 그 자체이다. 여기에는 교육, 특히는 학교교육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원리로 구성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있어 교육의 본질적 방향, 교육공공성과 민중교육권에 반하는 자본 중심의 왜곡된 교육관과 원리가 내포되어 있다.

첫째, 교육 일반 및 공교육을 경제의 하위 영역으로 두는 경제종속적 관점이다. 교육의 의의와 역할을 총체적인 인간 형성이 아니라 경쟁력 향상의 도구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교육이 경제와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경제에 종속된 것으로 바라볼 경우 심각하게 왜곡되고 그 본질마저 훼손될 것임은 명백하다. 이 같은 시각은 인성교육, 기초교양교육, 공동체교육의 경시, 수월성 추구의 엘리트주의적 교육과정, 경쟁과 시장논리의 도입 등의 근간이 된다.

둘째, 엘리트주의 교육관이다. 수월성 추구를 중심으로 하는 것은 엘리트 위주의 교육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요한 목표도 '신지식인'과 같은 엘리트 양성이며 주요한 교육적 배려의 대상도 상위의 그룹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셋째, 경쟁과 소비자 선택권을 중시하는 시장주의이다. 교육을 하나의 상품 시장과 같은 영역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경쟁과 소비자 선택을 통해 공교육마저 수요-공급 원리라는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영역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를 통해 수월성과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고자 하며 교육경쟁력이 상승될 수 있다고 믿는다.

넷째, 개개인의 발전만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개체주의이다. 열린교육, 자기주도적 학습 등 인간 발전을 지나치게 개인 중심으로만 바라보며 집단적 교육과정, 공동체성 등이 경시된다. 집단적 발전과 개개인의 발전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다섯째, 지나친 성장주의, 생산력주의이다. 경제종속적 관점이 교육 이념과 내용에 있어서는 지나친 성장주의, 생산력주의를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뭣이든 한가지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편향된 인간관, 경쟁력의 강조, 조기 교육 확대, 정보교육과 영어교육에 대한 극단적 강조 등이다.

3) 7차교육과정의 현실성에 대한 안이한 판단들

7차교육과정의 도입을 전후로 전교조 연구단위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연구, 문제제기가 있어 왔다. 최근에는 일부 언론에서도 7차교육과정의 무리한 도입에 대한 일정한 비판들이 제기되고도 있다. 지금까지 7차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은 크게 두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는 7차교육과정의 방향과 내용에 대한 것이다. 7차교육과정이 기존 교육과정이 안고 있던 문제들을 그대로 존속시키고 있으며 나아가 새로운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할 것이라는 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여전히 지식 중심, 교과 중심이며 많은 학습량과 교과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증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7차교육과정이 앞으로 교양교육을 약화시키고 학급의 의미와 공동체교육의 약화시키며 교육 과정을 차등화해 나간다는 점, 교육노동의 전문성및 안정성을 저해할 것이라는 점 등이 제기되고 있다. 전교조 참교육연구소는 7차교육과정에 대한 내용적 비판을 다양한 측면에서 지적하면서 7차교육과정 저지의 필요성을 제기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의식의 전파는 전교조 조직 차원에서도 아직 충분히 공유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비판의 또 다른 흐름은 7차교육과정의 비현실성에 대한 것이다. 제대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추진하는 것이 무리라는 지적들이 그것이다. 예컨대, 선택형 교육과정을 시행하기에는 학교시설이나 교사수급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거나 현행 평가체제 하에서 수준별 수업은 사실상 무의미하게 시행될 것이라는 비판들이 제기된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어려운 현실 여건들을 제시한다. 아마도 그나마의 소소한 문제제기 속에서 현재 비판의 주된 흐름은 비현실성에 대한 비판이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서 가해진 일부의 비판들 역시 주로 이같은 '비현실성'에 초점이 두어지고 있다.

그러나 7차교육과정의 비현실성을 주로 비판하는 것에는 다음의 문제가 있다. 우선 비현실성에 대한 비판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난 것이다. 먼저 7차교육과정이 옳으냐 그르냐, 찬성하느냐 반대하는냐를 명확히 해야 한다. 내용에 대한 명확한 태도 없이 단지 비현실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사실상 동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실제로 일부 언론 등 적지 않은 부분은 7차교육과정의 기본 방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 같은 태도는 지난 95년 김영삼정권 때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안이 나왔을 때 '총론은 옳은데, 각론과 시행방식이 문제'라는 식의 비판과 하등 다를 바 없으며 우리는 그 같은 태도들이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의 도입을 막아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음을 충분히 보아 왔다. 다음으로는 7차교육과정에 대한 긴장된 실천적 태도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7차교육과정이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도 판단할 경우 절박한 문제의식 속에서 힘있는 대응을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7차교육과정의 현실성 자체를 잘못 판단한다는 데에 있다. 7차교육과정은 이미 절절한 현실성을 지닌 '현실' 그 자체이다. 정부 정책으로 공시된 적이 오래이며 이미 올해부터 부분 시행에 들어간 우리의 현실이며 곧 전면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능력별 교육과정도 당장 내년부터 현실화된다. 고교의 선택 중심 교육과정이 시설 및 교원수급 등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일부 있지만 그것은 상황을 너무 좁게 보는 것이다. 그를 위해 교원정책의 변화, 자립형 사립학교, 교육개방 등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장치들이 함께 준비되고 있다. 그래도 조건이 미비하다면 구체적인 모습을 변형, 파행화해서라도 관철할 것이다. 우리의 강력한 반대투쟁이 없다면 변형, 지연될 수 있을지언정 7차교육과정은 틀림없이 현실화되어 나간다. 왜냐하면 현실성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은 관점과 원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수행평가와 같은 사례만 하더라도 도입 당시에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수많이 제기되었지만 수정, 왜곡되면서라도 실제적 현실로 관철되었으며 한발 더 나아가 이제는 2002년부터는 수행평가만으로 평가를 하겠다는 방침까지 천명되고 있는 실정이다. 마찬가지로 7차교육과정에 내재된 관점과 원리가 정책방향으로 유지되는 한 7차교육과정은 항상 현실적이다.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 컴퓨터교육의 초등 1학년 때부터의 필수화 등과 같은 방침만 하더라도 7차교육과정의 관점과 원리에서 공시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던 것을 내놓은 것이다. 오히려 제대로의 대응이 없다면 7차교육과정은 공시된 내용보다 한발 더 나간 모습으로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지도 모른다. 더 이상 7차교육과정의 현실성에 대해서 오판하지 말자.

3. 7차교육과정 및 시장논리가 몰고 올 파멸적 결과들

교육은 여러 가지 다기한 교육적 관계와 제도, 구조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내용, 방법 등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복합적 구성물이다. 따라서 어느 한 부분의 변화는 단지 그것만의 변화와 믜미로 그치지 않고 연쇄적 변화와 새로운 의미를 야기해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과정이라는 중심적 틀의 변화는 교육의 기본 성격과 전반적 분야의 변화를 의미한다. 7차교육과정과 거기에 내재된 시장논리와 엘리트주의는 향후 한국공교육을 완전히 왜곡된, 특히나 교육의 본질과 공적 성격이 탈각되어 나가는 것으로 몰고 갈 것이다. 7차교육과정에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거나 필연적으로 결과할 파멸적인 교육적 상황들을 몇 가지 정리해본다.

1) 20을 위한 교육으로 전락

공교육마저도 소위 20대 80사회에서 20만을 위한 교육으로 전락한다. 7차교육과정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능력별 교육과정을 확대하는 것이다. 더욱이 거기에 내재된 관점과 논리에 따른다면 앞으로 능력별 교육과정은 전반적이고 기본적인 틀로서 자리잡게 된다. 능력별 교육과정은 교육실천이 행해지는 과정과 결과에 있어 엘리트 위주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 능력별 교육과정이 상위의 그룹에만 효과가 있을 뿐 중하위의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효과가 떨어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학력 연한이 올라갈수록 학력수준차는 더욱 더 벌어질 것이며 아마도 초반에 하위의 교육과정에 편입된 아이들의 거의 대부분은 고교 졸업 때까지 상위의 교육과정에 편입되지 못할 것이다. 그 같은 교육적 결과 뿐 아니라 교육이 행해지는 과정에서 주요한 관심과 배려 역시 상위의 그룹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7차교육과정에 내재된 교육 방향과 목표가 신지식인 양성이나 경쟁력 강화 따위의 노골적인 엘리트주의라고 할 때 그 같은 양상은 훨씬 더 심각할 것이며 상위의 그룹에 속하지 못하는 다수의 아이들이 갖게될 인간적 열패감은 구조화되어 나갈 것이다. 이처럼 능력별 교육과정을 전반화하는 것은 교육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매우 위험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쟁력 위주의 교육 내용과 개체 중심적 방법론까지 결합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가히 교육은 내용에서부터 과정, 결과에 이르기까지 온통 엘리트 양성만을 위한 것으로 집중된다. 결국 이제 공교육은 다수를 위한 교육이라는 이념적 위상마저도 상실하고 엘리트만을 위한 교육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2) 교육 이념과 내용의 경제종속화

이미 지난 95년 교육개혁안이 제출된 이래로 교육정책은 교육을 생산성 향상의 도구로만 보려하는 경제종속적 관점에 의해 주도되어 오고 있다. 7차교육과정은 이 같은 관점이 교육과정으로까지 구체화된 것이고 이로써 교육은 '경쟁력 강화'라는 교육의 목표, '신지식인'이라는 부가가치형 인간형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적 차원과 교육노동의 유연화 뿐만아니라 구체적인 교육내용과 수행과정에 이르기까지 전일적으로 경제논리가 좌우하게 되었다.

교육의 경제종속화 문제에 있어 이념과 경제적 효율성 추구, 교원정책 문제는 이미 지적되어 왔던 터라 교육내용에 관한 부분만 잠시 살펴보자. 교육내용의 경제종속화란 교과 편제 및 내용, 명시적 또는 잠재적 교육과정에 따른 가치 형성의 과정이 주로 경쟁력 강화와 생산성 향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정보교육과 외국어교육을 강화한다는 미명아래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의 컴퓨터교육 필수화 등의 극단적인 조치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기업이 요구하는 노동력 형성에 부응한다는 '맞춤식 교육'까지도 천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구조적인 문제는 과목 선택 중심과 능력별 교육과정이라는 장치들이다. 이 같은 장치들은 단지 수월성을 추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입시와 취업에 유리한 과목으로의 집중, 그에 대한 가치부여 등의 교육적 결과들을 초래한다. 게다가 대학교육에서 인문사회 분야가 축소되고 자본이 요구하는 교육과정이 심화되는 추세가 입시전형에 주되게 반영되어 나갈 경우 교육내용의 편향 및 경제종속화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결국 기초교양, 인성과 공동체성 등을 추구하는 교육은 더욱 설자리가 없어진다.

또한, 7차교육과정에서 학급이라는 교육단위의 의미가 축소 내지 상실된다는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 능력별 교육과정의 확대는 학급 의미의 약화를 가져오고 고교의 선택중심형 교육과정에서는 사실상 필요가 없어진다. 학급이라는 교육단위는 갈수록 개별화되어가는 조건에서 그나마 인성교육, 사회성과 공동체성,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 등을 해 나갈 수 있는 교육적 단위이다. 학급의 의의는 점점 더 커져야만 한다. 그런데 학급단위마저 상실될 경우 인성교육 및 민주주의와 공동체교육의 공간은 더욱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3) 중등학교 서열구조의 재등장과 전면적 입시체제화

7차교육과정이 초래할 가장 첨예한 모습 중의 하나가 중등학교 서열구조의 재등장과 전급별의 전면적 입시체제화이다. 이미 자율성 부여라는 미명(교육부가 말하는 자율성이란 구성원의 자율성이 아니라 재단의 독자성에 불과하다.)하에 사립재단에 학생선발권을 부여하려는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럴 경우 평준화 이전 시기와 같은 중고교 서열구조가 다시 등장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우선 이에 대한 대항이 있어야 하겠지만 7차교육과정을 저지하지 못할 경우 중등학교 서열화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선택중심형 교육과정과 연관된 교육적 상황 때문이다. 대학과 달리 고교의 규모에서 그야말로 다양한 선택과목을 모두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학교마다 중점적으로 제공하는 과목군이 어느 학교는 외국어군, 어느 학교는 인문사회과목군, 또 어떤 학교는 과학과목군 이라는 식으로 다양하게 차별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학교 선택권을 부여할 수밖에 없다. 결국 평준화는 해제되고 고교입시는 부활된다. 물론, 현재도 고교입시가 일부 지역에 유지되고 있지만 이제는 전면적으로 실시되는 것이다. 중등학교 서열화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특히나 비극적이다. 아마도 일부 사립 명문고와 다수의 똥통학교들로 전국의 고교는 순식간에 서열화될 것이다. 물론 고교 서열은 결국 대입 성적에 의할 것이다. 고교 서열구조가 명백해지면서 중학교도 고교입시 성적에 의해 연쇄적으로 서열화된다. 어쩌면 중학입시마저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될 경우 이제 이 땅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고교졸업 때까지, 아니 심지어 이제 대학원 중심으로 가는 마당에서는 대학 졸업 때까지 전면적인 입시체제에 놓이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서열구조의 강화란 곧 전면적 입시체제화에 다름 아닌 것이다.

학교 서열화는 교육적으로나, 계급적으로나 매우 많은 것을 의미한다. 입시 위주 교육, 수많은 아이들이 받게 될 구조적 열패감, 교육불평등과 계급계층 재생산, 교원신분의 차별화와 안정성 상실, 교육권과 재정에 대한 국가적 책임의 방기 등등이 모두 학교 서열화 속에서 심화될 것이다.

4) 학교의 시장화로 연결

경제논리가 교육을 주도하는 것을 넘어서서 학교 자체가 하나의 상품시장으로 전락된다. 학교와 교사, 강좌들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학교서열구조는 필연적으로 학교시장화와 연결된다. 거기에 7차교육과정의 특성과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학교시장화를 촉진하는 것으로 작용하게 된다. 7차교육과정은 상당히 돈이 많이 드는 교육과정이다. 먼저 새로운 시설투자를 필요로 한다. 강좌 선택과 이동식 수업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대형 강의실과 세미나룸과 같은 새로운 시설과 장비가 필요하고 또한 보다 많은 공간들이 필요하다. 시설 유지비 및 교육활동비도 증대된다. 그런데 이 같은 투자를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펴는 정부가 모두 감당할리는 만무하다. 이 같은 조건에서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학교시장화이다. 우선 사립재단에 학생선발권과 등록금책정권을 부여함으로써 재정투자 의지를 북돋울 것이다. 소위 '장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미 그 같은 조치들이 준비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자본 진출도 적극화할 것이다. 더욱이 교육시장 개방으로 외국 교육자본까지 몰려 올 공산이 크다.

이처럼 학교가 시장화되는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매우 많은 것을 가져다 준다. 재정부담도 줄어들며 교육방향과 내용, 교원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두 시장논리에 의해 해결되고 엘리트 양성도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교육권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점차 줄여 나갈 수 있다. 그러나 학교시장화는 총체적 인간교육, 민중의 교육권과 교육공공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공교육의 종말'이 될 것이다.

5) 교육노동의 피폐화

7차교육과정은 교육노동의 유연화를 전제로 하는 교육과정이다. 교육노동유연화를 추구하는 교직발전종합안이 7차교육과정 시행을 위한 교원정책이라는 것은 바로 그 같은 의미에서이다. 우선 선택중심 교육과정의 경우 그 자체가 수요-공급이라는 시장적 성격을 갖는다. 그리고 수요자중심이라는 개념이 말하듯 학교에서 제공되는 교과와 강좌는 선택적 수요에 따라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어는 과목은 지나치게 집중되고 또 어느 교과는 극히 소수만이 선택한다. 교과와 강좌 자체의 운명도 해마다 혹은 학기마다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정규교사는 특정한 교과나 강좌를 담당하는 소수만이 필요하며 많은 부분은 계약직, 임시직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고교 중심으로 유연화정책이 확대되겠지만 신분조건의 변화는 전 급별로 퍼질 것이다. 결국 교육노동은 전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신분조건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교육노동의 피폐화는 단지 노동유연화에 따른 신분의 불안정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7차교육과정은 교과 및 강좌의 불안정성 속에서 교육노동의 다능화도 요구된다. 이제 한사람의 교사는 소비자선택이 요구하는 여러 교과나 강좌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은 교육노동의 전문성이 그만큼 상실되는 한편 노동강도는 더해감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학교 서열화 및 시장화에 따라 교직사회는 협동적 관계가 아닌 치열한 경쟁 관계로 재편되며 교육노동의 방향과 내용도 경쟁력 향상을 추구하는 것들로 채워진다. 결국 교육노동은 수행하는 내용에서부터 자신의 존재 조건에 이르기까지 시장논리에 휘둘리면서 극도로 피폐화되어 나가는 것이다.

교육노동의 유연화를 전폭적으로 도입하려고 했던 교직발전종합안은 커다란 반발을 우려하여 당장의 구체적이고 확정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애매한 수준으로 제출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저들의 후퇴로 보아서는 결코 안된다. 7차교육과정을 막아내지 못할 경우 교육노동 유연화 정책의 확대는 필연적이다. 이미 학생선발권과 채용방식 등 교원인사권을 재단으로 완전 이양하는 새로운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16대 국회를 맞이하여 준비되고 있음은 이 같은 상황을 잘 말해준다.

6) 주체적 극복의 힘과 조건 상실

무엇보다 7차교육과정이 일정한 수준에서 실현될 경우 주체적인 극복의 조건과 동력을 크게 약화시킨다. 한국교육이 어차피 제대로 자리잡혔던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7차교육과정처럼 결정적으로 시장논리가 도입되고 교육노동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킨 적도 없었다. 만약 소비자적 선택권이 확대되고 학교시장화가 이루어져 나갈 경우 다시 이를 되돌리기는 정말로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시절 평준화시책이 도입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박정희 군사정권과 같은 서슬퍼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구조조정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노동유연화가 관철되어 버릴 경우 주체적 힘을 제대로 모으는 것은 그 이전보다 훨씬 어려워지게 된다. 다수의 대중들은 치열한 경쟁과 불안정한 신분조건에 내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7차교육과정이 아직 자리잡지 않은 지금이 바로 주체적 극복이 가능한 시기인 것이다.

4. 더 이상 안이함과 방향상실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신자유주의교육의 총공세에 맞서 전면적 투쟁을 전개함에 있어 우선적으로 시급한 것이 철저한 국면인식과 문제의식, 그리고 투쟁방향과 결의의 공유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그 동안의 혼란과 불철저한 문제의식, 대응 부재를 가져왔던 우리 자신의 몇 가지 문제점들을 과감히 극복해야 한다.

1) 안이함과 무기력에서 벗어나자

우선, 상황인식과 7차교육과정에 대한 안이한 판단에서 벗어나야 한다. 1학기만 더 지나도 초중등에서의 능력별 교육과정은 당장의 현실이 된다. 그럼에도 많은 조합원들조차 곧 있으면 우리의 처절한 현실이 될 7차교육과정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매우 의아하지만 어쨌든 사실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교육과정'이라는 사안을 우리가 손대기에는 너무 크거나 먼 사안으로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원인은 그 동안 7차교육과정에 대한 충분한 선전과 문제의식의 전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데 있다. 지금부터라도 이 같은 주체의 상태를 시급히 극복해 나가야 한다.

다음으로는 무기력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상황 인식을 공유한다 하더라도 이내 '과연 우리가 7차교육과정 및 공교육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공세를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에 빠질 수 있다. 마치 신자유주의 교육이 대세인 것처럼 보이는 분위기, 경험적으로 느껴온 전교조 투쟁력의 한계 등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 같은 무기력에 빠져서도 안되고 빠질 필요도 없다. 현 상황은 향후 한국의 공교육과 교육운동, 전교조의 운명이 걸려 있는 시기이며 우리는 무기력에 처할 시간도 없다.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결의가 생기는 순간 승리의 희망은 생겨난다. 영어로 하는 영어교육, 과외부활에 대한 여론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고교입시부활과 학교서열화, 시장화, 우열반 편성 등의 제 문제에 있어 적어도 교육에 관한 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우리의 이념적 우위는 명백하며 공교육과 교육노동을 위기에서 건져내야 한다는 절실함과 투쟁의 명분이 상승적으로 결합될 때, 최근 몇 년간 경험한 상황을 한 차원 뛰어넘는 대중투쟁력이 생겨날 것이다. 한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교섭투쟁이 실패할 경우 자칫 대중적 낭패감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극복해야 한다. 어차피 현 단계에서 교섭은 크게 성공할 것도 실패할 것도 없다. 이미 교섭공간은 7차교육과정과 교종안 등 가장 핵심적 문제에서 비껴나 있다. 의외의 성과가 있다면 좋겠지만 별반 얻는 것이 없다 하더라도 상심할 일이 아니다. 교섭과 상관없이 향후 1-2년을 바라보는 전면투쟁을 지금부터 준비하고 전개해 나가야 한다.

2) 교섭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자

한편 방향을 분명히 잡기 위해 극복해야 할 지점의 하나가 '교섭중심적 사고'이다. 전교조의 모든 사업 방향과 계획을 바라봄에 있어 교섭공간을 중심을 두고 사고하는 것이다. 노조가 교섭공간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지만 현 단계의 전교조에 있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에서 교섭공간을 제한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첫째, 모두가 알다시피 단체행동권이 없는 노조로서 지니게 되는 교섭력 자체의 한계이다. 단체행동권을 획득할 때까지 전교조는 기본적으로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서 교섭을 배치하는 것이 그나마 교섭에 대한 강제력을 강화하는 방도가 된다. 객관적 한계를 지닌 교섭과정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되며 대중투쟁이 성과적으로 전개될 때 비로소 교섭을 통해 투쟁 성과가 제도화될 수 있는 과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때로는 교섭공간이 대중투쟁을 강화, 확대하는 명분과 계기로 설정될 수도 있다. 어쨌든 교섭공간은 한계적이며 어디까지나 대중투쟁이 중심이고 먼저이다. 그러나 교섭을 중심으로 사고할 경우 대중투쟁과 교섭공간의 지위와 의의를 거꾸로 바라보게 된다. 교섭공간이 먼저이고 중심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대중투쟁은 단지 교섭력을 받치는 것으로 위치하며 투쟁방향은 교섭안의 내용을 채우는 문제로 전락된다. 그럴 경우 교섭투쟁이 제대로 안되면 전교조는 아무 일도 못한 것이 되고, 교섭내용이 부실하면 성과는 미미한 것이 되고 만다. 지도부와 대중 모두 한계를 지닌 교섭과정에 일희일비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더욱 중요한 것은 현 국면에서 교섭공간이 핵심 대립 지점과 쟁점에서 비껴나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섭공간을 통해서는 결코 교종안과 7차교육과정을 막아낼 수도 신자유주의교육의 총공세를 저지할 수도 없다. 현 국면에서 교섭공간이 지닌 지위의 한계인 것이다. 현 상황에서 교섭공간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부차적이고 작은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교섭과 상관없이 우리는 교종안 및 7차교육과정 저지, 극복하기 위한 투쟁에 총력을 쏟아야 하는 상황인 것이며 다만 교섭공간을 대중투쟁 및 전교조 입지 강화에 활용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거기에 더해 저들의 협상 태도는 지금 현재 유의미한 교섭을 지속할만한 상황이 아님을 반증한다. 예컨대 저들이 한편으로는 교섭을 질질 끌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교사들의 운명이 걸린 교종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만큼 저들이 교섭공간에 별반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며 지금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올 만한 상황인 것이다. 우리 역시 교종안과 7차교육과정 문제를 교섭공간의 핵심 쟁점으로 끌고 들어가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하겠지만 어차피 교섭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그렇지만 향후 대중투쟁의 내용적 명분 축적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전교조 지도부는 '반드시 성과적인 교섭결과를 내어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교섭결과가 미미하다고 해서 지도부가 비난받을 일이 아니며 반대로 몇 가지 따낸다고 해서 자랑할 일도 아니다. 교섭이 실패하거나 결과가 보잘 것 없더라도 그것은 지도부의 잘못이 아니라 어차피 교육부의 태도 때문인 것이며 몇 가지 성과가 있다 하더라도 현 국면에서 크게 유의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결코 교섭결과 여하에 있지 않다. 정작 문제는 전교조 합법화 이후 지속적으로 노정되고 있는 교섭중심적 사고와 불철저한 국면인식에 있는 것이다. 교섭중심적 사고는 지금까지 다음의 오류들을 지녀 왔다. 첫째, 대중투쟁과 교섭공간과의 관계를 잘못 파악하게끔 해왔다. 선차적이고 중심에 서야 할 대중투쟁의 지위를 교섭에 종속시켜 온 것이다. 둘째, 무엇보다 올바른 국면인식과 방향설정을 방해해 왔다. 지금 우리가 힘을 집중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사안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혼란을 야기하고 어차피 한계를 지닌 교섭공간에만 조직의 온 힘을 집중시켜 온 것이다. 셋째, 그나마 우리는 교섭공간을 향후의 대중투쟁을 위한 명분 축적과 전선 형성의 토대로 활용했어야 했다. 그렇지만 교종안과 7차교육과정 등의 중심 문제를 핵심적으로 내걸지 않음으로써 앞으로의 싸움을 위한 토대도 제대로 만들어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교종안에 대해서는 일정한 문제제기와 선전이라도 이루어졌지만 가장 핵심적인 7차교육과정의 문제는 사실상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되고 있다.

교섭중심적 사고는 결코 지도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정하게는 합법화 이후 그 동안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었던 문제이기도 했다. 이제라도 우리는 분명한 상황인식 속에서 한계가 분명한 교섭공간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설사 우리가 지금 당장 작은 몇 가지를 얻는 손치더라도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을 막지 못해 공교육이 몰락의 길로 걷는다면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5. 비상한 각오로 교육과정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현단계 교육국면에서 7차교육과정은 향후 한국교육과 교육운동의 운명을 좌우할 핵심주제이자 고리이다. 7차교육과정에는 교육이념과 방향에서부터 교원정책에 이르기까지 공교육의 모든 부분이 결부되어 있다. 7차교육과정을 저지하지 못할 경우 공교육의 몰락과 교육노동의 피폐화를 결코 막을 수 없다. 따라서 7차교육과정을 중심으로 교종안을 핵심적으로 결합시키고 여타의 사안과 투쟁들을 총체적으로 결합해 나가야 한다. 비록 그 동안 저들의 총공세를 막아낼 힘있는 대중투쟁을 전개해 온 것도 그렇다고 향후의 준비된 투쟁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 시간은 있고 잠재된 힘도 있다. 무엇보다 대중적, 국민적 명분이 있고 우리의 운명이 걸려 있다. 비상한 각오와 결연한 자세로 투쟁해 나가야 한다.

1) 7차교육과정에 대한 대응 방향 :

1. 7차교육과정의 저지와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 전개

2. 7차교육과정의 핵심적 사항들에 대해 분명한 방향을 잡아야 한다.

       △ 고교의 선택중심형 교육과정을 반대해야 한다.

       △ 능력별 반편성과 교육과정을 반대해야 한다.

       △ 영어 원어 수업, 정보교육의 필수화 등을 반대해야 한다.

       △ 자립형 사립학교 반대

3. 다음의 과정이 필요하다.

       △ 인식공유와 전면적 문제제기, 대국민 선전

       △ 대안적 교육과정의 제시 - 교육공공성, 총체적 인간발달의 관점

       △ 시급한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 - 초등, 영어 원어 교육, 우열반 편성 등

2)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1. 기본 방향 : 7차교육과정저지, 교종안반대를 중심으로 근무여건 개선, 재정확보, 사립학교법, 고교등급화, 영어 수업, 컴퓨터 교육 등 여타의 투쟁을 총체적으로 결합

2. 장단기적 계획 속에서 전면적 대중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결정적 시기는 내년까지이다. 이미 올해부터 일부 시행에 들어갔고 내년부터 초, 중학에서 능력별 교육과정이 시행되지만 그래도 이 것 들은 힘써 싸워나간다면 이후에라도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러나, 2002년 고교의 선택중심 교육과정, 교원신분의 변화, 양성체제의 변화, 자립형 사립학교 등은 일단 시행에 들어가면 되돌려 놓기 매우 어려우며 공교육의 시장화와 교육노동의 피폐화는 필연적 길로 내닿게 된다. 우선적으로 지금부터라도 전면적인 문제제기와 선전이 전개되는 가운데 하반기에 최대한의 투쟁전선 형성 및 내년도의 전면투쟁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 끝맺으며

비록 위기감의 발로로 시작되는 교육과정투쟁이지만 다른 한편 우리가 성과적인 투쟁을 전개해나간다면 그것은 한편으로 전교조와 교육운동이 한 차원 발전하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나마 이를 통해 비로소 교육운동은 '교육과정'이라고 하는 교육의 중심 문제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며 그를 통해 보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며 광범위한 교육의 진보로 나아갈 수 있는 주제와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자! 이제부터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한 전면적 투쟁을 시작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