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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학교에 대한 탈근대성론과 탈학교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2001.02.08 17:00

김학한 조회 수:1933 추천:3

학교에 대한 탈근대성론과 탈학교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학교에 대한 탈근대성론과 탈학교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김학한(교육이론분과 책임연구원)

 학교위기가 알려지는 순간부터 이 문제는 단순히 교육부문의 논의로만 갇혀있지 않았으며 또한 학교위기의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들이 제출되었다. 그리고 학교붕괴의 원인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현재의 상황은 학교위기의 '해결 방향'에 대한 모색으로 논의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학교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 당장의 실천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론적 논의는 점점 더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학교붕괴의 진단을 둘러싼 논의는 학교를 어떤 구상으로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전투의 전초전에 불과한 것이었다. 따라서 새로운 해는 위기적 상황에 처한 학교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이론적, 실천적 대립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지금까지 교육구조의 개편에 있어서 양대 진영인 신자유주의적 입장과 진보적, 민중적 입장이  주로 교원정책 분야에서 대립하였지만 바야흐로 전선은 교육의 전반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올해는 교육구조의 기본단위인 '학교 구상'에서 정면으로 맞붙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학교의 시장화를 통해 교육 소비자에게 학교선택권의 부여로 방향을 잡고 있으며 진보적, 민중적 입장은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민주적인 교육공동체의 건설로 나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이론적 대립의 기본 구도에 미묘한 변화들이 동반되고 있다. 독재적 교육구조와의 투쟁 시기에 진보적 민중적 입장과 같은 진영에 있었던 '자유주의적 입장'들이 학교붕괴가 공론화된 이후 신자유주의의 시각의 수용으로 돌아서기 시작했으며 사실상 신자유주의교육개편에 투항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에 대한 탈근대성론, 탈학교론이 바로 현 시기 이러한 자유주의적 견해를 대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들이 학교를 진보적으로 혁신하려는  당면의 투쟁에서 핵심적인 지점을 흐리거나 진보적 입장과 반대되는 논의들을 공공연히 선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1.근대적 기획으로서의 학교-탈근대성론

'교실붕괴현상, 학교실패, 학급붕괴상황은 특수한 나라의 실패라기보다는 '근대기획의 전반적 실패에 기인한다. 즉 최근의 학교붕괴사태는 근대적 국민교육을 만드는 훈육의 장이었던 근대학교의 몰락과정이다.'1)

탈근대성론에서 근대학교는 획일적이고 표준화된 교육과정과 감시와 통제의 기구로 특징지워진다. 근대학교는 학급을 단위로 한 일괄수업,교실·복도·운동장·특별교실·직원실 등 기능별 공간배치와 시간표에 따라 틀이 짜인 규칙적인 활동, 시험과 경쟁을 통한 평가와 서열화등을 도입한 규율훈련장치로서 내부를 조직하고 구조화 해왔다. 그 장치를 매개로 하여 학생들의 행동·태도·성향·기능을 훈련하고 감시하며 평가하고 서열을 매김으로써 질서를 유지하며 근대사회의 유능한 일원으로 키우는 장치로서 그 형태를 정비하고 존재를 확립해왔다.2) 그런데 소비자본주의의 발달은 기존의 아이들에 가지고 있던 학교의 헤게모니를 붕괴시키고 있으며,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주체를 형성하고 경제적 주체를 형성하는 근대적 공간으로서의 학교는 몰락하고 있다. 이러한 학교의 붕괴는 여러 가지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는 데, 첫째, 학교-가정-지역사회라는 청소년들의 삶을 분할하고 있던 근대적 공간들의 '통제와 감시'라는 작동방식이 문화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소비공간의 급속한 성장과 더불어 파괴되고 잇다. 둘째, 문화자본은 국민정체성으로 통합하려 하기보다는 욕망을 분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면서 통합된 정체성 형성의 공간으로서의 학교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있다. 셋째, 근대산업구조의 재조정은 여전히 전기 산업사회의 바탕위에 서 있는 학교의 직업훈련 기능마저도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3)

즉 탈근대성론에 의하면 '감시와 통제기구'로서의 학교, 획일적인 교육과정과 교육진행방식은 학교가 근대성의 산물인 본질적 지표이며 이는 낡은 것으로 새로운 사회적 상황, 포스트모던한 상황에 적합하지 않고 근대성의 종언과 함께 몰락한다는 것이다. 근대성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포스트모던한 사회로 이행하고 있기 때문에 근대의 양식으로서의 학교의 몰락은 필연적인 것이며 최근의 사태는 이러한 몰락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탈근대성론의 결론이다.

탈근대성론은 국가적 차원에서 결정되는 보편적인 교육과정과 획일적인 교육방법에 대한 문제제기4)에서 시작하였지만 학교붕괴논의가 진행되자 학교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방향을 급격히 돌리고 있으며 그 해결 방향도 학교를 벗어나자는 탈학교론에 신속하게 가까와지고 있다. 학교의 몰락을 이야기하고 난 이후의 상황은 당연히 탈학교에서 대안을 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탈근대성론의 학교에 대한 구상은 명료하게 제시되고 있지 않지만 첫째, 수요자 중심의 교육과 탈학교를 포함한 상상을 포함하여야 하며 둘째, 학교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즉 교사는 학교 밖 문화자본을 열심히 확보하고, 문화자본을 가지고 있는 학교에 새로운 인력을 끌어들여야 하며 문화자본을 가진 학생과 교사들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해가는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5)

 그러나 기존의 학교를 근대성=합리성의 산물과 동일시하는 것은 특정 시기 자본주의적 학교형태를 모든 학교로 일반화하는 것이며 기존의 학교를 근대성의 산물로 규정하고 포스트모던한 시기에는 생명을 다했다는 결론을 도출하려는 것이다. 마치 산업혁명이후 등장한 공장이 자본주의하에서 환경파괴를 가져오고 노동자들에게 노동으로부터 소외를 가져온다는 이유로 우리의 경제활동이 탈공장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민혁명시기 학교에 대한 이성의 기획은 '지배계급(봉건계급-자본가계급)에게 독점되었던 교육을 해방하는 것이고 자연과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인류의 인식의 성과를 모든 민중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사회적으로 담보하는 것이 학교였다. 이것은 진보적 시기의 부르조아계급,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핵심적 요구였으며 진보적 교육사상가들의 다양한 논의를 통해 구체화 되었다. 이러한 구상이 독점자본주의의 성립과 제국주의국가의 출현과정에서 자본주의국가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자본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의 형성이라는 것에 규정되면서 학교에 대한 이성의 기획은 왜곡되는 과정을 밟게된다.6) 현존하는 학교는 자본의 전지구화가 진행되기 이전 시기, 과학기술혁명과 그에 동반되어 진행되는 정보화 기술의 발달 이전시기에는 학교에 대한 지배적 형태로서 존재해왔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최근 학교의 위기는 1980년대까지 형성되어 온 학교의 위기이며 이는 근대성의 기획으로서의 학교의 사멸을 알리는 신호라기보다는 과거 자본주의 체제에 근거하였던 지배적 형태의 학교가 가지는 위기인 것이다.

자본주의에 근거한 근본적 원인을 도외시하고 근대성론에서 학교를 파악하는 것은 첫째, 독점자본주의에 의한 학교교육의 파탄 책임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하지 않고 학교에 대한 국가독점의 관료적 통제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나아가 학교위기를 필연적인 것으로 수용함으로써 학교혁신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학교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봉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둘째, 최근의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문화적 현실에 굴종할 뿐만 아니라 민중투쟁의 성과인 학교의 해체를 선동하고 학교에 대한 공공성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즉 탈근대성론에 입각할 경우 시효가 지난 학교를 강화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시도일 뿐만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것이 된다. 따라서 학교의 공공성을 높히고 사회적 합의에 입각하여 혁신을 이루려는 시도는 포스트모던한 상황에서 의미 없는 일로 간주된다.

 2. 학교해체와 새로운 교육질서-탈학교론

탈학교론은 일리치(I.Illich)와 라이머(E.Reimer)가 <탈학교 사회>, <학교는 죽었다>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제시되었다. 이러한 탈학교론이 우리나라에서 '탈학교실천연대'의 결성과 활동으로 이론적 영역에서 실천적 영역으로 넘어들어오기 시작했으며 '학교붕괴' 논의를 계기로 해서 주요한 담론으로 등장하였다.

일리치에 의하면 '학교는 금세기 전반에 최고의 권력을 누렸지만 그 명분이 제공해 온 평등주의 신화와 졸업장이 만들어 낸 계층사회에 대한 합리화 사이의 모순을 이제는 더 이상 감출수 없게 되었다. 자격결정 수단으로서, 사회적 가치기준으로서, 그리고 평등의 대행자로서의 역할을 한 학교교육과정이 정당성을 잃었기 때문에 자기 재생산수단으로서  학교에 의지해왔던 모든 정치제도가 위협을 받고 있다.'7)

우리나라의 경우 일리치의 기본적 입장이 그대로 수용되면서 파시즘 교육으로 인한 학교의 폭력성의 문제가 추가되면서 학교는 폐지되어야 할 기관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학교는 학생들의 기본권을 박탈하면서가지 통제 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교사에게 주며 통제와 경쟁을 통해 학생들의 관계를 파괴하며 계층화 작업과정에서 '탈락과 배제' 작업으로 일부 학생들로 하여금 폭력의 문화를 가지게 한다. 학교폭력, 더 넓게는 청소년 폭력의 가장 중요한 근원은 다름 아닌 학교이다.8)

즉 사화계층화 기구로서의 학교는 학생들에게 무용한 학습을 강요하며 등하교시간, 학년제로 학생들을 통제함으로써 학생들이 원하는 학습이나 활동을 할 수 없게 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학생의 인권을 무시하며 불필요한 내용을 학생에게 강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내용을 학습하는 것을 방해한다. 오늘날 제도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이 사회의 모순을 재생산해내는 학교라는 존재 자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따라서 탈학교론에 의하면 학교의 틀을 그대로 두고 그 안에서 몇 가지를 개선하는 것으로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며 학교양식 자체에 대한 부정, 학교의 폐지를 통해서 가능하다. 그리고 권력이 교사에게 집중되어 있는 학교의 교실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린 공동체 모임에서 인격적인 교류를 나누면서 함께 공동의 과제를 풀어나가는 가운데 진정 자유로운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탈학교론은 학습공동체, 학습협동체, 학회를 학교의 대안으로 내세우며 탈학교사회의 교육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하여 사회경제적 대안으로 교육보험제도9), 교육화폐제도의 실시 등을 주장한다. 학습공동체는 서로 쉽게 만날 수 있는 동일지역의 사람들이 모여서 학습하고 생활하는 모임이며 학습협동체는 어떤 주제나 일을 중심으로 일정기간 또는 반영구적으로 활동하는 모임이다. 학회는 어떤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조직으로 훨씬 더 체계화된 영구적인 협동체이다.10)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의 기능과 관련하여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재생산을 담당하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사회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여 왔음은 이미 교육사회학의 많은 연구들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탈학교론은 학교가 사회계층을 재생산하고 있으며 따라서 학교를 개선하는 것으로는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으며 학교를 없에는 것을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탈학교론은 학교의 폐지를 내세움으로써 근본적인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구성체의 관점에서 학교를 바라보지 못함으로써 전혀 근본적이지 않다.

첫째,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계급과 계층의 재생산은 경제적 활동의 과정에서 존재하였고 경제적 활동을 통해 이를 재생산한다. 근본적으로 계급과 계층의 재생산은 학교의 존재로 생겨난 것이 아니고 그 역이다. 계급과 계층이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이의 재생산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서의 학교에 대한 신화가 만들어 진 것이다. 계급과 계층의 재생산은 학교 없이도 이루어 질 수 있으며 학교가 계급, 계층 재생산의 결정적 역할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학교를 현재와 같은 형태로 만든 것이 자본주의 사회이며 따라서 근본적인 관점에 선다면 학교에 대해 분노를 가지기보다는 계급과 계층으로 분열된 불평등한 사회 자체에 대한 분노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일리치가 현대사회를 학교화 된 사회라고 규정한 순간부터 현대사회를 특징지우고 있는 자본주의는 이미 탈학교론자의 시선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둘째, 자본주의사회 특히 파시즘교육구조가 만들어진 사회에서 학생들의 인권, 민주적 권리는 억압되어 왔으며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들에 대한 통제 또한 강화되었다. 탈학교론은 교사-학생의 관계를 화해할 수 없는 관계로 설정하며 그 결과 교사와 학생사이에 대립은 불가피 한 것이 되고 교사와 학생사이에 평화는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학교는 사회와 떨어져서 따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부분으로서의 위치와 역할을 수행한다. 교사-학생의 관계가 교육적 관계로서 정립되지 못하고 통제와 억압의 기구로 되는 현상 또한 학교의 본질적 속성에서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적 사회가 특정한 학교형태를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상황으로부터 학교를 분리하여 폭력의 근원을 학교에서 찾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이나 전혀 근본적이지 않다.  

 셋째, 탈학교론은 학습공동체와 함께 사교육시장에 의해 운영될 것을 전망한다. 탈학교사회에서 사교육시장은 서열이 높은 교육기관에 진학하기 위하여 학습경쟁을 강화하는 곳이 아니라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되는 곳으로 바뀐다. 그러나 사회자체가 경쟁이 심화되고 공동체성이 파괴되는 현실에서 학습공동체, 협동체가 학교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중대한 오산이다. 학교가 없으므로 학교를 가려는 경쟁은 당연히 없어질지라도 그 이후의 상황은 사회에 직접적 경쟁의 벌거벗은 모습이 만연할 것이다. 학교가 경쟁의 통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조건이 유지되는 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사교육시장의 번성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며 탈학교가 자유로운 인간들의 인격적 관계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더욱이 탈학교사회에서 사교육시장의 번영을 전망으로 가짐으로써 교육의 시장화를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교육개편과 연대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 대한 재정투자의 확대는 폐지되어야 할 학교를 강화하기 때문에 공교육의 질을 높히려는 진보적 교육구상에 대해 정면으로 반대하고 있다.   

경제적 재생산론이 학교를 검은 상자로 취급하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도외시하였다면 탈학교론은 검은 안경을 씀으로서 학교의 긍정성과 진보적 측면을 실종시키고 있다. 학교에서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재생산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순과 갈등의 통해 진행된다. 따라서 학교가 안고있는 모순 중에서 긍정적 측면, 새로운 가능성을 보지 못함으로써 탈학교론은 학교개편의 구상을 가지지 못하고 학교에 대한 비관과 심화된 비관에 근거한 강도 높은 폐지로 나아가게 된다.    

 탈근대성론은 학교의 문제를 근대성에서 찾고 근대성의 양식으로서 학교에 대한 공격을 전개하고 있는 데 비해 탈학교론은 학교의 문제를 학교의 본질적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함으로써 더욱 선명하게 학교의 폐지를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입장이 현재의 학교를 비역사적인 산물로 간주하여 자본주의의 지배적 형태로서 학교를 보지 않고 학교와  자본주의를 분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3. 학교에 대한 옹호

생산력의 발달에 따라 사회적 생산활동은 분화되고 다른 한편으로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에 대립하여 생산의 사회화는 진전하여 왔다. 인류의 역사 발전은 사회생활의 엄청난 변화뿐만 아니라 교육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봉건제 사회까지 교육은 생산노동과 결합된 형태로 존재하였으나 생산력의 발달로 자본주의 사회에 돌입하면서 아동과 청소년기는 생산노동으로부터 분리되어 사회생활에 필요한 내용을 준비하고 개인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모라토리움기가 형성되었다. 이는 발달된 생산력을 유지하고 혁신하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것이었으며 아동과 청소년의 인권을 신장시키려는 투쟁의 결과이기도 했다. 또한 생산의 사회화가 진전됨에 따라 가정과 지역을 넘어서는 국가와 민족 등의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며 연대와 공동체의 범위는 날로 넓어지고 있다. 공동체의 형성과 유지에 교육은 필연적으로 요청되며 학교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학습과 생활의 공동체로 출현하였다. 자본주의 사회가 성립된 이후 학교는 대중적으로 확대되었으며 이를 사회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공교육체제이다. 공교육체제는 역사발전의 필연적인 산물이며 현시점에서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한 앞으로도 유지·발전되어야 할 사회적 제도이다.

문제는 현재의 공교육체제, 학교가 교육의 본질을 충분히 실현하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자본주의적 제 관계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사회는 학교를 통해 이 시기의 학생들에게 자연, 사회, 인간에 대한 인류의 이론적, 실천적 성과를 제공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며 학생들의 학습·생활의 공동체를 사회적으로 보장해주어야 하지만 현재의 공교육체제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공교육체제, 학교가 교육적 본질을 실현하는 공간, 기관이 되도록 진보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최근의 학교붕괴 사태의 실천적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학교를 민주화하고 진보적으로 개편하려는 투쟁을 이미 전개해왔으며 세계적 차원에서 축적된 이론적 자산과 실천적 경험을 바탕으로 진보적 교육개편의 길을 개척해 가야할 것이다.
주--------------------------
1) 조한혜정, '학교붕괴를 다시생각한다'. 우리교육2000.01. p.65
2) 후지다 히데노리.'기로에 선 학교-학교상(像)의 재검토' 처음처럼. 1999,11-12. p.85.
3)엄기호.'학교붕괴의 세계사적 맥락'.우리교육.1999.10.35-36
4)포스트모더니즘에서 지식은 결국 상대적인 것이며 지식의 상대성과 다원성을 전제로 하는 교육은 다의적 해석위주의 형태로 전환되어야 한다.(유혜령,'포스트모더니즘과 교육'.허숙,유혜령 편.교육현상의 재개념화,교육과학사1997.p.97)
5)조한혜정, 앞의 글, p67
6)사실 이성이 자본주의적 한계, 부르조아적 한계에 갇히게 되는 현상은 시민혁경 당시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엥겔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정작 프랑스 혁명이 이성사회와 이성국가를 실현하여 놓았을 때, 이 새로운 제도는 비록 종래의 제도에 비하면 매우 합리적이었으나 절대적으로 이성적인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영원한 이성'이란 사실상 그 시기에 부르조아로 발전하고 있었던 중간시민의 이성화된 오성에 불과하였다."
F.ENgels.'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전', 맑스·엥겔스 선집, 석탑.1992 .p240.
7) I.Illich.(김광한역). '탈학교 사회'.탈학교 논쟁.한마당.1984.p32..
8) 이한. 학교를 넘어서. 민들레, 1998.pp.55-76
9) 지금의 의료보험처럼 가입자의 부담비율을 높게하지 말고 저소득층에는 부담비율을 매우낮게,고소득층에는 부담비율을 높게하는 사회(공공)보험. 탈학교사회에서는 학교가 없으므로 교육예산으로 배정되는 공교육비를 사교육비로 돌리게 되며 교육보험제도의 시행을 통해 교육자금의 평등한 분배가 실현된다.
10) 이한. 학교를 넘어서. 민들레.1998 .pp150-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