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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새시대를 향한 교육이념 정립을 위하여

2001.02.08 16:27

천보선 조회 수:1115 추천:1

새시대를 향한 교육이념 정립을 위하여 :

새시대를 향한 교육이념 정립을 위하여 :
총체적 인간 발달과 민주공동체 건설

                                              천 보 선(연구실장)

1. 현단계 교육이념 논의의 지형과 방향

1) 신자유주의 교육이념의 체계화와 진보적 교육이념의 부재

 0 신자유주의 교육이념 및 패러다임의 체계화 : 세계화와 정보화, 경쟁과 효율성, 수요자 중심 등을 구호로 내세우면서 밀어닥친 '신자유주의 교육'은 열린교육과 자기주도적 학습, 지식기반사회와 신지식인론 등의 교육방법론과 사회상, 인간상을 제출하여 어느덧 체계적인 교육이념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더 이상 신자유주의교육은 경쟁과 효율성 만을 들먹이는 앙상한 경제논리가 아니며 자본의 논리에 기초한 나름의 체계적인 교육이념이자 패러다임이 된 것이다. 신자유주의교육 패러다임은 '지식기반사회'라는 사회상, '신지식인'이라는 이념적 인간형, 그러한 지식기반사회 건설 및 지식기반사회의 토대가 되는 '신지식인 양성'이라는 교육의 기본 역할 및 방향 규정, 그리고 부가가치 중심의 '지식관', 개체중심적 인식론 및 발달모형에 입각한 '선택형, 개별화 교육과정' 및 '자기주도적 학습' 중심의 교육원리 등으로 그 뼈대를 짜놓고 있다. 그리고 이밖에도 다양성과 창의성, 개성과 자율, 수월성, 수요자중심, 시장과 경쟁, 효율성, 능력위주와 평가 등 서로 연관되는 여러 가치와 방향, 원리를 전체적 맥락 속에서 포섭한다. 신자유주의교육 패러다임을 채워나가는 신자유주의 및 자유주의 사상, 정보사회론, 신지식인론, 공공선택이론, 구성주의와 열린교육론 등은 얼핏 보면 마치 각기 별개의 사상과 이론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본중심적 관점과 원리라는 것으로 통일되며 서로 연결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교육은  일관된 전체적 체계를 이룬다. 이 같은 통일의 중심에 서있는 핵심 방향, 이념, 원리가 '지식기반사회'와 '신지식인'이다. 그것은 또한 정책적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1)신자유주의는 자신의 사회관, 인간관, 지식관을 '지식기반사회'와 '신지식인'으로 틀 잡아 놓았다.     

 0 진보교육 이념의 부재(不在) : 신자유주의가 나름의 사회관과 인간관에 터하여 체계적인 교육이념과 패러다임을 세워 나가는 반면, 진보진영은 사실상 교육이념의 부재 상황에 있다. 기존의 민족, 민주, 인간화교육은 이미 그 실천적 의의를 잃어버렸다. 교육이념으로서의 실천적 지위 상실의 문제는 무엇보다 그 동안 신자유주의(자유주의) 교육이념에 대해 교육운동이 변변히 맞대웅하지 못한 데서 분명히 드러났다. 새로운 교육적 상황이나 정책들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공하지 못해왔으며 신자유주의 교육이념에 대한 대응이념으로서의 지위도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민족, 민주, 인간화교육이념이 7-80년대의 모순구조 속에서 태어난 것으로 사회적, 교육적 모순구조가 크게 달라진 자본의 세계화 시대, 인간과 공동체의 전반적 위기 시대에 맞서기에는 뭔가 벅차기 때문이다. 또한 개념 자체도 당시의 주요 모순에 대한 대항 개념으로 구성된 것으로 궁극적 사회상과 인간발달의 원리에 기초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 원리로서의 개념적 한계도 지닌다. 지식기반사회, 신지식인, 수요자 중심, 열린교육, 자기주도적 학습, 다양성과 창의성 등 신자유주의에 의해 제시된 방향이나 원리들에 대해 거의 혼란스레 허우적댔던 그 동안의 모습들은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한다. 정당한 시대인식과 올바른 인간발달 원리에 기초한 교육이념의 재정립이 화급한 과제로 다가왔다.

 2) 현단계 교육이념 정립의 중심 문제 - 사회상과 인간관, 발달원리

 0 진보적 교육이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의 시작 : 민족민주인간화교육의 실천적 의의 상실과 신자유주의 교육이념에 대한 대항이념의 필요성이라는 형편이 강제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진보적 교육이념 정립의 문제는 한편으로는 그 동안 미루어져 왔던 논의 과제를 이제서야 무대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상 여지껏 교육운동에서 진정한 교육이념은 존재해오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은 추구하는 인간상과 발달원리가 빠진 반쪽짜리 대항이념에 머물렀고 몇몇의 논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공유되어야 할 이념의 문제로 내걸린 적도 없었다. 따라서 어찌보면 교육이념 재정립의 문제는 지금 원점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0 구호성 이념이 아닌 중심원리의 문제 : 현단계 교육이념 정립의 중심문제는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 발전방향, 인간형, 발달원리에 관한 것이다. 그에 대한 방향과 개념, 원리를 정립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교육이념 구성의 가장 핵심이 된다는 내용적 지위 말고도 나름의 원리를 갖추고 있는 신자유주의 교육이념에 대한 실천적 대결의 차원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교육이념의 재정립 문제를 '민족, 민주, 인간화교육'처럼 대중화된 '구호를 새롭게 마련하는 일'로 바라보는 경향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 방향과 원리를 세우고 난 다음에 따질 문제요, 더 풍부한 실천 과정을 겪고서 이뤄낼 일이다. 그 이념은 어쩌면 '민족민주인간화교육'처럼 장단(長短)을 잘 갖춘 구호가 아닐수도 있다. 지금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사회적, 교육적 현실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면서  실천 영역을 통틀어 묶을  중심 방향과 원리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새로운 교육이념이 난데없이 하늘에서 어머낫!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전부터 있어왔던 논의를 토대로 한다. 그 동안  각론 중심, 정책에 대한 대응 중심으로 벌어진 논의와 현실 변동 속에서 자생적으로 제출되어 온 방향들도 '더러' 있다. 최근에는 교육공공성, 공동체성 등이 주요한 개념으로 등장하였으며 신자유주의에 의해 제출되거나 우리가 막연히 써 온 여러 개념이나 방향들에 대한 논의들도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논의가 다 새로운 교육이념 정립의 내용적 토대가 될 것이다.

 3) '총체적 인간' 교육과 '민주공동체' 교육을 제기하며

 * 진보교육이념의 중심적 원리와 방향으로서 '총체적 인간발달'과 '민주공동체'를 교육의 본질적 기능과 실천적 의의의 강화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내놓는다.

 교육의 본질적 기능과 원리로부터

 교육이 개개인의 변화를 꾀하면서도 사회 현실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사회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교육의 방향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사회'라는 두가지 차원에서 통일적으로 설정된다. 즉, 개개인의 인간적 가치와 능력을 총체적으로 개발하고 실현하며 보다 바람직한 사회의 형성으로 연결하는 방향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총체적 인간 교육과 민주공동체 교육은 교육의 기본적 역할이라는 맥락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하겠다. 총체성은 추구해야 할 인간상과 발달원리로서, 민주공동체는 사회발달방향과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서 제기된다. 그렇지만 사실 이 같은 방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예전부터 전면적 인간발달과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에 대한 지향이 있어 왔다. 심지어 기존의 제도교육에서도 전인교육이나 민주시민교육과 같은 비슷한 개념들이 있어 왔다. 그러나 기존 공교육의 그러한 이념은 형식적 구호에 불과한 것이었고 우리 역시 교육원리와 방법으로까지 다지지 못했고, 실천적으로 이념화하지도 못했다. 뿐만아니라 대안적 사회상에 대한 희망마저 상실해 온 것이 이제껏의 형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총체적 인간과 민주공동체 교육은 교육의 본질에 입각한 관점과 기본방향의 '복원'인 동시에 실천적 '심화'를 제기하는 것이다.

사회적, 교육적 현실과 과제로부터

그러나 더욱 중요한 실천적 의의는 우리가 놓인 사회적, 교육적 현실로부터 주어진다. 그 동안 총체적 인간과 민주공동체 이념이 실천적 의미를 지니기 어려웠던 것은 그것을 이념화, 체계화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부족하고 무능했던 탓도 있지만 그처럼 본질적인 방향을 현실적인 주제로 집중할 수 있는 '여유나 절실함'이 적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적 상황은 '총체적 인간 발달'과 '민주적 공동체' 교육이념을 단지 교육의 기본적 역할이라는 본질 차원이 아니라 이제 현실의 문제로서 따라서 매우 실천적인 것으로서 제기하게끔 강제한다. 역사상 총체적 인간성과 공동체적 가치가 지금처럼 위협받고 절실하게 요청된 적은 없었다. 극단화된 자본주의적 경쟁 속에서 갈수록 물신화, 개별화, 파편화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은 그 본질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공동체성의 파괴 정도는 사회와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에 따라 총체적 인간성과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문제의식과 노력 또한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무한경쟁', '인간성의 위기', '생태 위기', '사회 양극화와 빈곤의 세계화', '공동체의 위기' 같은 준엄한 경고들과 이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동의는 이 같은 위기와 그에 대한 문제의식의 확산을 의미한다. 이미 이시대 최대의 화두는 인간적 가치와 공동체의 문제가 되었다.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의 논리로 교육이 재단되고 교육공공성이 위협받고 있으며 신지식인과 같은 물신적, 파편적 인간형이 추앙받는다. 시장원리에 입각한 교육과정은 총체화되어야할 지식도 쪼개고 인간성도 쪼개고 기형화되어 나가고 있다. 교실위기 현상의 등장은 개별화, 물신화, 비공동체화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 잘 보여준다.

 이 모든 상황은 총체적 인간 발달과 민주공동체 지향이라는 교육의 본질적 방향이 이제는 매우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의의를 지니게 되었음을 뜻한다. 뿐만아니라 신자유주의 교육이념의 체계화는 대항이념으로서의 <총체적 인간 발달과 민주공동체 건설>이라는 방향 정립을 더더욱 강제하기도 한다. 신자유주의의 물신적, 파편적, 개별적, 경쟁적 교육이념과 원리에 대해서도 우리는 총체성과 공동체성에 입각한 교육이념과 원리로 맞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대규정과 기본개념

시론으로서의 이 글은 총체적 인간과 민주공동체 교육이념이 현실성과 실천성을 갖게 되는 현대사회에 대한 성격 규정과 교육이념으로서의 총체성과 공동체성의 의의를 개념적으로 확인하는 데 초점을 두고자 한다. 두 개념에 있어서 '총체적 인간발달'은 이미 있어왔던 교육 방향과 원리를 확인, 재정립하면서 실천적으로 적용해 나가는 문제이며 '민주공동체'는 개념화된 대안적 사회상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사회적 가치와 발전방향의 교육적 의의를 확인, 적용해 나가는 문제가 될 것이다. 대안적 사회의 구체적 상과 조직원리는 민주주의와 공동체성이라는 가치와 방향을 실천,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마련될 수 있다.

2. 21세기는 가능성과 위기의 시대

 *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 아니 지금 이시대를 우리는 '발전의 희망'과 '인간과 공동체의 위기'라는 두 측면으로 함께 파악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판단도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한다. 그렇지만 희망과 위기의 두 측면을 함께 바라보자는 것이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긍정 및 낙관과 비판과 위기의식을 같이 인정하자는 뜻은 아니다. 진정한 발전의 의미는 인간적, 공동체적 가치 기준에서 규정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환상적 정보사회론과 미래학들, 세계화 담론 등을 통해 힘든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생명연장, 풍요롭고 여유로운 일상이 새로운 세기에 펼쳐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귀 따갑게 들어 왔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발전 전망이란 생산력과 성장의 발달 전망일뿐이며 인간과 공동체의 발전 전망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경쟁에서 뒤떨어진 자는 생존을 포기하라!'는 협박마저 서슴지 않는다. 사회양극화와 빈곤의 세계화, 생태위기와 자원 고갈, 핵 위협 등의 위기에 대해서는 애써 눈감는다. 적어도 인간적, 공동체적 가치와 기준으로 본다면 21세기는 분명 위기의 시대인 것이다. 그만큼 인간과 사회 자체가 처한 위기의 정도는 무척이나 심각하고 근본적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러한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과 힘이 있다. 위기를 극복한다면 민주주의와 평등, 자유는 확대되고 발달된 생산력은 이제 지배와 생존위협의 도구가 아닌 인간적, 공동체적 가치를 북돋는 토대로 바뀌어 나갈 수 있다. 진정한 발전 전망은 바로 그것 아닐까.

 (1) 인간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위기의 시대

 * 이 시대는 '위기의 시대'이다. 그 위기는 인간과 사회의 본질 자체, 인간과 사회의 지속가능성 자체의 위기를 의미한다. 그동안 인간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경고는 오래전부터 생태와 핵 분야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온 바 있다. 그러나 인간과 사회 자체를 위협하는 분야는 비단 생태와 핵 분야 뿐만이 아니다. 최근 유전 공학의 비약적 발달은 질병 극복과 생명연장의 희망을 주는 동시에 인간복제의 논란 속에서 '도대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어디인가'라는 근본적인 철학적, 생물학적 문제까지 우리에게 던져준다. 정보화의 진전도 마찬가지이다. 기호와 상징, 가상이 더 이상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의 의식과 현실을 지배하는 물질적 힘으로 변질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나아가 이같은 문제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사회양극화 현상과 잘못 결합될 경우 인간사회는 금세기에 이르러 영국BBC방송의 신년사에서 경고한 것처럼 앞으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두 인종2)으로 나뉘게 될 지도 모른다. 이처럼 인간과 사회의 본질 자체를 위협하는 제 현상과 요소들은 인간의 내재적 가치에서부터 사회공동체의 위기와 지구적 규모의 생태 문제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확대심화되고 있다.3)

1) 인간 본질의 위기

내재적 가치에서부터 존재적 위기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인간의 위기를 몇가지 측면으로 정리해 보자.

 ① 인간성 상실의 위기 : 극단화된 물신주의와 상업주의, 경쟁의 심화에 따른 인간적 가치의 하락, 인간관계의 파괴가 나타난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돈, 출세, 성공 등 물신적 가치가 의식과 실천을 지배한다. 사이버 인간의 등장, 호모비디오쿠스와 같은 분절적 인간형의 출현, 인간복제 등의 문제는 인간성 자체의 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이다. 무한 경쟁에서의 승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의 제반 이데올로기와 문화상품은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적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 볼 여유도 없이 경쟁과 부가가치, 욕망의 소비에 몰아 넣는다. 인간적 가치의 위기는 결코 사람들 개개인의 의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무한 경쟁으로 치닫는 생산구조, 경쟁구조, 상품화 기제의 문제이며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문제이다.

 ② 의식과 실천, 노동의 파편화 : 인간의 존재 양식, 의식과 실천이 갈수록 갈수록 분절화, 파편화된다. 일정 정도 분화된 노동 형태는 어쩔 수 없지만 그럴수록 인간의 의식과 제반 실천은 다양화, 총체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 형태 뿐아니라 관심과 지식, 능력의 형성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적 실천도 좁아지고 단절적인 것이 되어 가고 있다.4) 이같은 분절화, 파편화는 '총체적 인간성' 혹은 '인간적 총체성'이라는 인간 본질의 위기이다.

 ③ 유적 존재로서의 위기 : 의식과 실천의 분절화, 파편화는 개개인의 총체적 인간성을 위협할 뿐아니라 타인 및 사회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사회적 존재,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 본질의 위기로 이어진다. 극단적인 개별화와 개인주의, 자기중심주의 등이 그것이다. 많은 부분 타인과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이 개별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고 그것도 적지 않게는 익명적인 방식으로 형성된다. 공동체와 타인보다 '나'를 우선시하는 자기중심적인 의식과 실천 방식이 만연하기 시작한지도 오래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실천하는 인간이 의식과 실천 모두에서 분절화된 채 공동체와 타인을 무시하거나 반하게 되는 것은 결국 인간 스스로의 존재적 위기이며 그것은 공동체 자체의 위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④ 자연적 존재로서의 위기 : 자연과의 접촉면이 좁아지고 자연의 일부라는 존재의식이 잊혀지고 있으며 자연에 대해 적대적인 행위들이 마구 늘어났다. 반자연적 의식과 행위는 결국 자연적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 스스로의 존재적 위기로 귀결된다.

 ⑤ 인간 생존의 위기 : 숨가쁜 생산 경쟁과 타인과 타집단, 자연에 대한 적대적 행위들이 축적되어 온 결과 이제 인간은 스스로의 생존과 관련된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이미 생태적 위기는 완만하지만 명백한 생존 위협의 조건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있으며 핵과 전쟁으로 인한 대량 살상의 위협 역시 항상적인 위험 요소로 내재되어 있다. 이제 인류는 스스로가 보유하고 있는 생산력과 생산과정, 살상 능력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스스로의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2) 공동체의 위기

 - 인간의 위기는 사회에 있어서는 공동체의 위기로 나타난다.

 ① 사회양극화 : 20대 80사회로 표현되듯 사회계급계층구조의 양극화는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사회양극화의 심화는 당연히 빈곤의 심화, 계급모순의 심화를 의미한다. 사회양극화 자체가 반공동체적인 모습이며 반공동체적인 의식과 실천들을 야기하고 확대재생산한다.

 ② 민주주의의 위기 : 시장주의의 전면화 이후 민주주의는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공공영역이 축소되고 사회적 공론과 민주적 절차보다는 자본의 막강한 힘과 논리가 압도하고 있다. 사회양극화가 심화될수록 민중의 저항을 봉쇄하기 위한 자본과 권력의 시도는 강화될 것이다. 일부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이 도래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정보화와 상업적 대중문화의 확대는 자칫하면 인간의 의식과 문화까지 자본과 권력이 장악하는 것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경고는 이미 보편화된 문제제기이다. 20대 80사회가 심화, 고착화될 경우 민주주의가 결정적 위기를 맞을 것임은 명백하다. 아직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한번도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는 한국적 상황속에서 이같은 민주주의 전반의 위기는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진전이 지연, 왜곡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③ 공동체적 문화와 역사, 가치규범의 위기 : 개별화와 경쟁, 물신주의의 심화, 사회양극화와 시장논리의 압도, 초국적자본의 지배 강화, 상업적 대중문화의 왜곡 등의 모든 조건은 사회전반의 공동체성을 위기로 몰아 넣고 있다. 가정과 학교, 직장 등의 각급 사회조직, 지역, 국가적 수준과 지구적 수준에서 보존되어야 할 공동체적 가치와 규범, 문화와 역사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④ 국가와 지역공동체의 위기 : 자본의 세계화는 국가의 기능을 축소하고 공공적 역할을 부정해 나가고 있다. 개별화의 심화와 도시화의 추세, 자본운동의 확대 속에서 지역 단위의 공동체성은 더욱 급격하게 무너진다. 시장주의의 지방화논리는 국가의 해체와 자본의 직접적인 지배 논리에 다름 아니다. 시민과 민중의 지역자치 강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역적 공동체성은 사회전반의 해체적 경향과 자본의 거대한 힘에 의해 한계지워진다. 가장 대표적인 공동체단위로서의 국가와 지역공동체의 위기는 시민과 민중의 공공적 이해와 요구를 담보할 수 있는 공적 장치와 권리의 위기를 의미한다.

 ⑤ 인류공동체의 위기 : 생태와 핵, 전쟁 등의 생존적 위기는 인류공동체의 위기를 의미한다. 거기에 더해 사회양극화 현상의 세계화가 더해진다. 자본의 세계화 추세속에서 현재 계급계층의 양극화 현상은 일국(一國)에서 뿐만이 아니라 지구적 규모에서 전개되고 있다. 세계적 차원의 자본, 기술, 정보 집중이 초국적자본과 중심국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중심 국가와 중심 도시, 중심적 자본으로의 엘리트 집단의 집중도 병행해서 나타난다. 이같은 추세들이 지속될 경우 지구적 규모에서 나타나는 양극화된 계급계층의 격차와 지배 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될 것이며 BBC의 '두 인종' 경고는 현실의 재난으로 닥칠 수도 있다.

  * 인간 본질의 위기와 공동체의 위기는 같은 맥락이다. 총체적 인간은 '공동체적 인간'이며 또한 사회는 '인간적 공동체'여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성은 총체적 인간성의 필수적 일부이다.

(2) 새로운 사회역사의 발전을 이룩할  가능성의 시대

그러나, 위기극복의 희망은 있다. 역사상 인간과 공동체가 이처럼 위기에 내몰린 적도 없었지만 또한 지금처럼 위기의식이 널리 퍼지고 깊어진 적도 없었다. 위기의 원흉인 정글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비판이 봇물을 이루고 있으며 적어도 사상적 지평에서는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는 급격히 쇠퇴하였다. 지난 시애틀라운드에서 보여졌던 NGO의 세계적 연대와 힘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최근의 총선투쟁에서 나타난 범국민적 결집과 정치적 무관심의 일정한 극복 역시 새로운 반전의 기운을 엿보게 한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각계각층의 결집, 세계적 연대가 이루어져 나간다면 위기 극복의 희망은 현실화되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인간과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면 21세기는 이제 위기가 아닌 사회역사를 한단계 발전시킬  가능성의 시대로 다가오기도 한다. 보다 총체적인 인간, 인간적인 사회로의 진전이 가능한 것이다. 오랜 역사의 험난한 과정을 통해 이룩해 온 민주주의의 진전, 과학기술의 발달, 생산력의 증대는 인간의 삶과 사회를 한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위기 극복의 문제는 다른 한편 발달된 과학기술과 생산력이 인간과 공동체적 가치로 어떻게 쓰여지게 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과학기술과 생산력은 주요하게는 발달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지배와 경쟁의 도구로 쓰여져 왔다. 지식이나 창의력도 어떻게 하면 경쟁에서 이길까에 집중되어 왔으며 함께 나누고 잘사는 방법을 마련하는 데는 인색하였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인간의 지식과 과학기술, 생산력이 인간성과 생태의 회복, 평등한 삶의 질 향상, 민주주의와 공동체사회의 실현 등 인간과 사회 스스로의 문제에 집중되어야 한다. 20대 80이라는 개념은 한편으로 80%의 사람들이 주변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회가 아니라 노동 강도와 노동 시간이 20%로 줄어들면서도 더욱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객관적 토대가 이미 마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위기인가 역사의 발전인가는 인간 스스로에 달려 있는 문제이다. 그를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과 행동양식 패러다임을 새롭게 전환해야 한다. 물질보다 인간이, 경쟁보다 협력이, 자본의 자유보다 민중적 공공성이, 개발보다 보존이 우선시되어야 하고 국가는 지배의 도구에서 공동체적 삶의 장치로 바뀌어야 한다. 전반적으로 기존의 '성장과 경쟁' 패러다임에서 '분배와 공유'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그 순간 인류가 그 동안 쌓아 온 높은 생산력과 과학 기술은 인간적, 공동체적 가치를 지키고 함양해 나갈 수 있는 토대로 전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3. 총체적 인간과 민주적 공동체 교육이념의 의의와 출발점

 (1) 왜 총체적 인간과 민주적 공동체 교육인가

1) 이 시대 최대의 사회적, 교육적 주제는 '인간'과 '공동체'

앞서 살펴보았지만 이 시대 최대의 주제는 '인간 자체'와 '공동체'이다. 빈곤과 실업, 물질주의, 인권과 민주주의, 생태, 핵과 평화, 생명복제,  모든 문제에 걸친 중심적인 가치 기준은 바로 인간적 본질과 공동체인 것이다. 이 두 주제가 인류 역사상 한번도 중심적인 가치 기준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겠지만 또한 지금처럼 그 자체로서 전면화된 적도 없었다.5) 그것은 지금까지는 빈곤과 불평등, 인권과 민주주의, 민족적 자주성 등 인간적, 사회적 모순이 집약된 중심적 주제들이 특정하게 있어왔던 반면 이제는 그같은 모순들에 더해 생태와 핵, 생명복제 등에 이르기까지 본질적 차원에서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의 사회적 지향과 교육이념은 이 두가지 주제에 대한 가치 판단 속에서 설정되어야 한다. '총체적 인간 교육'과 '민주적 공동체 교육'은 이같은 시대적 상황과 의의 속에서 설정된다.

지금 벌어지는 사회적 논의의 상황 역시 총체적 인간과 민주적 공동체 교육을 주된 것으로 내세울 것을 강제한다. 이미 인간과 공동체의 문제는 최대의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다. 인간 및 공동체적 가치와 연관된 한 논쟁과 논의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전면적으로 그리고 세계적 범위에서 전개된다. 신자유주의, 자유주의, 정보사회론/민중주의, 공동체주의, 생태주의 간에 형성되고 있는 이념적 대립들과 성장과 분배, 경쟁과 공유, 개발과 생태, 생명복제와 금지, 핵의 이용과 폐기 등과 같은 주제별 논쟁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에서도 이와 같은 상황은 그대로 적용된다. 시장원리/교육공공성, 개별성/공동체성, 특화된 부가가치형 인간형(신지식인)/총체적 인간형, 노동력 형성 과정/인간적 가치 형성 과정6) 등의 대립 지점이 그러하다. 이같은 논의들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인간과 공동체를 바라보는 기본 관점은 결국 크게 서로 다른 두 개의 흐름으로 나타난다. 이중 자유주의, 시장주의, 성장주의, 정보사회론, 신지식인론, 환상적 미래학 등으로 구성되는 흐름이 한 축을 이룬다. 이들은 개별성, 성장과 개발, 경쟁 등을 중시하며 시장원리에 대한 굳건한 믿음 속에서 미래를 낙관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비록 현재와 미래를 낙관하지만은 않지만 개별성을 중시하고 이들의 사회문화적 지평을 넓혀주고 곧잘 상품의 도구로 애용(특히 대중문화 영역에 있어)된다는 점에서 이들의 아류에 불과하다. 이와 대비되는 또 다른 흐름은 민중주의, 공동체주의, 생태주의, 시민사회론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공동체성, 분배와 공유 등을 중시하고 물질주의와 개별화, 파편화를 비판하며 인간 본질과 공동체가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고 경고한다. 이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공공성의 확대와 평등의 진전, 자본에 대한 통제를 추구한다. 우리는 물론 후자의 흐름에 서서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지향을 세워나가야 한다.

 이미 전면화된 이 같은 논의가 어디로 귀결되는 가에 따라 인간과 공동체의 운면도 달라질 것이다. 전자의 흐름이 현재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기는 하지만 논의의 지형이 전적으로 불리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앞서 지적했듯 사상적 차원에서는 시장주의로 대표되는 전자의 흐름은 다방면에 걸쳐 큰 타격을 받아나가고 있으며 시애틀라운드는 시장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미 상당히 세계적으로 보편화, 고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장주의의 정치경제적 헤게모니 만큼은 여전히 막강하다. 현실의 정치, 경제, 대중문화 흐름에 대한 시장주의의 주도권은 전혀 줄지 않고 있다. 보다 실제적인 대립과 논쟁, 논의는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총체적 인간과 민주적 공동체 교육의 정립은 이 같은 시대적 상황과 교육적 역할에 교사와 교육운동이 실천적으로 대응해 나감을 의미한다.

2) 총체적 인간 발달과 민주적 공동체 건설의 기본 방향

인간과 공동체의 위기에 맞서 우리는 총체적 인간 발달과 민주적 공동체 건설을 지향해야 한다. 총체적 인간 발달은 더 이상 분절적, 개별적, 물신적 인간이 아니라 제반의 인간적 가치가 전면적으로 실현되는 공동체적 인간의 형성 및 그러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며 민주적 공동체는 더 이상 분열과 대립, 해체와 생존의 위기가 아닌 다 함께 잘 사는 인간화된 사회가 될 것이다. 현단계에 있어 민주적 공동체로 나아가는 한국사회의 주요 방향과 과제들을 다음의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0 민중의 생존권과 사회적 권리의 보장 : 사회복지의 보장, 노동시간 단축과 분배의 확대,  교육권, 환경권 등의 제반 사회적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0 민주주의의의 실현 : 사상의 자유, 노동자와 민중의 정치적 권리가 실질적이고 평등하게 보장되는 사회

0 통일된 민족공동체의 실현

0 인간성 회복과 삶의 질 향상

0 인류적 문제에 대한 공동 해결 :생태 위기의 극복, 핵과 전쟁 위협의 제거

총체적인 인간과 민주적 공동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기본적인 실천 과제와 방향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에 입각한 구체적이고 풍부한 내용과 상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논의 과제가 될 것이다. '인간과 공동체의 진정한 의미와 방향은 무엇인가' 라는 주제는 한편으로 매우 철학적이고 복잡한 문제이며 아마도 인류역사와 같이 할 영원한 주제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공동체 자체를 위기로 몰아 넣는 주요 문제들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 판단과 실천은 가능하며 또한 절실하다. 현재 인간과 공동체라는 본질적 주제속에서 우리가 합의하고 실천해야 할 지점은 '최소한'의 인간적 가치와 본질, 생존, 공동체의 원리이다. 이 시대 인간과 공동체가 최대의 화두가 될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그 '최소한의 것'의 것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대적 위기에 맞서 우리는 최소한의 인간적, 공동체적 가치와 원리에 합의할 수 있는 다양한 세력과 요소를 결집해야 하고 또한 결집할 수 있다. 민중주의, 생태주의, 시민사회론 등 시장(제일)주의를 옹호하지 않는 모든 다양한 관점 역시 함께 해야 한다. 위기에 비한다면 그 차이는 너무도 작은 것이며 위기 극복을 위한 실천 속에서 융화되어 나갈 수 있다. 반면에 최소한의 인간적, 공동체적 가치와 원리에 대해서조차 대립적인 관점과 행동들에 대해서는 가열찬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2) 생산력주의와 무정부적 자유주의의 극복이 출발점  

 * 인간의 물신화, 파편화, 개별화와 공동체적 위기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과 관점이 결집해 나가고 총체적 인간과 민주공동체 교육을 세워나감에 있어 제기되는 관점상의 핵심적인 문제는 시장주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명한 반대이다. 그러나 인간과 공동체를 위기로 몰아 넣는 시장주의의 폐해에 대해서는 그 동안 충분히 지적되어 왔지만 여전히 사람들과 우리로 하여금 시장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요소와 관점들이 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지점이 생산력주의(성장주의)와 (무정부적)자유주의의 두가지라고 생각된다. 생산력주의와 (무정부적)자유주의는 모두 시장주의를 직접 내세우지는 않지만 치열한 경쟁을 필수적인 것으로 하거나 개별성을 중시함으로써 논리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시장주의를 옹호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총체적 인간 발달과 민주적 공동체 건설을 지향해 나가기 위해서는 이 두가지 요소, 관점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1) 생산력주의의 극복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올바른 방향 수립은 우선 맹목적인 '성장주의', '생산력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 정보사회론, 신지식인론 등 모든 시장주의적 조류의 근본에는 물질적 성장과 경쟁에서의 우위를 우선적 가치로 내거는 생산력주의가 내재되어 있다. 생산력주의는 본래의 목적이 되어야 할 삶의 질 향상, 민주주의의 실현에 의미를 두지 않고 생산력의 발달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다. 생산력주의는 생태파괴적 자연개발, 인간파괴적 경쟁구조와 상업주의, 물신주의, 핵 위협 등 인간사회가 안고 있는 주요한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뿐만아니라 시장주의와 경쟁구조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가장 핵심적 근거이기도 하다. 생산력주의의 뿌리는 상당히 깊고 현실적, 논리적 근거 또한 막강하다. 예컨대 인간과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많은 경우 '경쟁력강화' 논리에 무기력하게 굴복하는 상황7)들이 바로 생산력주의의 막강함을 잘 보여준다. 경쟁력강화 논리는 생산력주의의 또 다른 표현으로서 이미 물질적 성장을 우선적 가치로 놓은 개념이며 그를 받아들일 경우 시장과 경쟁구조의 효율성을 옹호하고 인간 및 공동체적 가치를 부차화할 수밖에 없게 된다. 생산력주의는 경쟁주의, 물신주의, 기술주의8)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며 인간과 공동체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부차화하는 모든 이념과 관점들의 근본에 박혀 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생산력주의를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는 시장주의의 논리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시장원리가 전면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생산력 경쟁과 물질적 성장에는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성과 자연생태, 공동체를 파괴할 정도의 맹목적 경쟁과 개발을 부정한다면 일단 생산력주의에서 벗어나 제반의 사안들을 바라보기 시작해야 한다.

 한편, 생산력주의를 극복하자는 것이 생산력이나 기술발달의 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맹목성에서 벗어나 생산력이나 기술발달이 모든 인간의 가치와 삶을 드높이고 풍부하게 하는데 쓰여질 수 있도록 바르게 위치지우자는 것이며 더 적게 성장하더라도 인간적 가치와 생태의 보전, 공동체성의 확대에 주력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기존의 '성장과 경쟁' 패러다임에서 '분배와 공유'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바로 그런 의미이다.  

2) 자유주의의 시장주의적 본질  

현재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이념적 극복 대상은 자유주의이다. 기존의 반독재투쟁과정에서 자유주의는 파시즘에 대항하는 하나의 사상적 조류였으나 신자유주의라는 시장주의의 전면화 이후에는 그에 입각한 제 정책과 흐름을 옹호하는 것으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의 등장 이후 신자유주의에 동화된 부분과 신자유주의와 구별하고자 하는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전자의 경우야 신자유주의로 규정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실천적인 이념적 검토가 무엇보다 필요한 부분은 후자이다. 그러나 이역시 신자유주의와 동일한 시장주의적 본질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신자유주의가 자유주의의 시장주의적 본질을 가장 극대화한 것에 불과하기도 하다.

 크게 볼 때, 자유주의는 시장주의와 동일한 맥락을 지닌다. 자유주의의 역사를 고전적 자유주의 - 케인즈적 자유주의 - 신자유주의로 바라보는 것은 그같은 맥락에서 내려지는 규정이다. 그러나 시장주의적 본질은 동일하지만 각 유형의 자유주의의 강조점은 역사적 시기마다 달랐는데 고전적 자유주의는 자본과 개인의 전적인 자유를 강조하였고 케인즈적 자유주의는 자본의 궁극적 자유를 위한 사회적 보완을 강조하였으며 신자유주의는 다시금 자본과 개인의 전적인 자유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내용적으로 동일하나 역사적 상황의 차이에 따라 실제적으로 자본의 자유에 중심이 놓여진다. 이에 반해 한국적 상황에서 형성된 자유주의 역시 고전적 자유주의와 마찬가지이나 파시즘적 지배구조 아래에서 주로 개인의 자유에 강조를 두어 온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전면화 이후 한국적 자유주의(?)는 사상적 혼란을 거치면서 사실상 내용적으로 동일한 신자유주의에 동화되거나 자본의 자유에 대한 강조와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강조 차이에 착목하면서 자신을 신자유주의와 구별하고자 하는 부분으로 분화되고 있다. 그러한 혼란은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에 대한 혼란에서처럼 교육운동에서도 보여졌다.

 그러나 현 시대에 있어 신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자유주의의 객관적 토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 경쟁으로 치닫는 정글자본주의가 만연하고 국가의 해체를 추구할 정도로 자본의 지배력이 전일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자유주의의 '개인의 자유'는 신자유주의의 '자본의 자유'에 전적으로 복속된다. 애초에 자본과 개인의 전적인 자유가 한덩어리였듯이 개인의 자유는 자본의 전적인 자유의 전제 조건이며 실현 조건이다. 자유로운 소비자와 자유롭게 쓸수 있는 노동력이야말로 자유로운 자본운동의 조건인 것이다. 현재 자유주의가 강조하는 개별성, 자율화, 다양성이 실제는 비공동체적 개별성과 시장적 자율과 다양성으로 귀결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공동체와 민중의 권리를 강조하지 않은 채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도 대립한다. 고전적 자유주의의 자유도 노동자와 민중의 민주적 권리와 대립하였으며 선거권과 같은 노동자의 민주적 권리의 상당 부분은 케인즈 시대에 이루어진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둘은 이론적으로는 자유로운 개개인이 네트워크를 통해 통합된다는 환상적 '정보사회론'을 정당하고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데서 결국 결합된다. 개념적으로는 신자유주의가 자유주의의 일부이다. 신자유주의도 자신을 자유주의라고 말하지 결코 '신자유주의'라고 말하지 않는다. 초국적자본 조차도 '완전한 자유'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를 부정(?)하는 자유주의가 신자유주의의 한 구성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자유주의가 신자유주의이기 때문이다.

 총체적 인간발달과 민주적 공동체를 지향해 나가는데 있어 자유주의의 극복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인간과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함에 있어 자본과 개인의 무차별적 자유에 대한 일정한 사회적 통제와 제약, 규범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공공적 기능 역시 오히려 강화되어 나가야 한다. 만약 어떤 자유주의자가 인간과 공동체의 위기에 대응하여 자본에 대한 일정한 통제와 공공영역의 확대를 말한다면 그는 더 이상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물론 사회적 통제와 국가의 공공 기능의 강화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더욱 늘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교육적 재화에 대한 소비자 선택권(?)에 대한 일정한 제약이 민중의 교육권과 교육민주화와 공공성 확대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3) 세계적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

총체적 인간교육과 민주적 공동체 교육 이념은 현대 사회의 보편적 상황에 입각하여 제출되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적 지향과 교육이념은 세계적 보편성에 기반하면서도 한국적 특수성에 터해야 한다. 자본의 세계화 시대에 있어 세계적 보편성의 문제는 한국의 많은 구체적 현실을 구성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적 상황 속에서 특별히 강조되거나 나름으로 제기되는 문제들이 있다.

 0 인권과 민주주의 :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조건에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는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특히 민주화없이 시장원리 도입으로 치닫는 교육적 상황에서 교육민주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와 방향이다. 민주적 공동체는 민주주의의 과제와 방향을 특별히 강조하기 위함이다.

 0 민족자주성과 통일 : 외세의존적 상황이 지속되고 초국적자본의 지배가 강화되는 조건에서 분단 현실이 엄존하는 한국적 특수성은 민족의 자주성과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교육적 과제와 방향을 중요한 것으로서 제기한다.

 0 교육공공성 : 교육이념 및 원리와 관련하여 교육의 공공성 역시 한국적 상황 속에서 특별히 강조되어야 할 방향이다. 많은 나라에서 교육공공성이 시장주의에 의해 위협받고 있지만 한국적 상황에서는 더욱 큰 폐해로 나타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보장 정도가 매우 허약하며 높은 교육열 시장원리에 더육 크게 왜곡되기 쉽기때문이다. 미비한 교육공공성을 확립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9)

4. 총체적 인간 교육과 민주적 공동체 교육

(1) 총체적 인간 교육의 원리

 총체적 인간 교육은 전면적 인간 발달을 지향하는 것이다. 전면적 인간발달이란 다양한 방면의 소질과 능력의 최대한의 개발, 노동능력뿐아니라 인문사회적 교양과 문화적 소양의 형성, 자기자신에 충실할 뿐만아니라 타인과 공동체, 자연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는 인간 형성을 의미한다. 즉, 인간적 의미를 지닌 다양한 영역의 소양과 능력을 고루 그리고 최대한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총체적 인간 교육의 핵심 개념은 '총체성'과 '인간화'이다. 총체적 인간 교육은 갈수록 파편화, 고립화, 개별화되어가는 인간상을 극복하자는 것이며 인간적 가치를 하락시키는 물신주의, 경쟁주의, 상품화에 대한 반대이다. 또한 인간에 내재된 총체적 인간성을 발현해 나가자는 것이다. 총체적 인간 교육은 기존의 지식 중심의 교육도 반대하지만 현재의 교육변화를 주도하는 시장적 관점과 원리들 즉, 교육을 오로지 노동력 형성 기제로만 바라보려는 관점, 특화된 부가가치형 인간형을 교육적 인간상으로 제시하는 관점, 기초교양과 인문사회학을 폄하하는 교육과정, 통일적 연관없이 추구되는 시장적 다양성 등과도 명백히 대립된다.

 총체성이란 다양한 부분과 영역이 하나의 전체적 통일을 이루는 상태 또는 통일적 연관을 지닌 다양한 구성 부분을 의미한다. 그리고 튼튼한 기초에 자리잡은 심화와 세분화, 더 높은 발전을 지향하는 기초를 의미한다. 다양성과 통일성, 기초와 심화의 결합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총체적 교육은 다양한 방면의 지식과 소양을 고루 갖춘 인간 형성을 도모하는 것과 그러한 총체적 인간 발달을 돕기 위해 교육이 다루는 영역을 통일적 연관하에 다양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튼튼한 기초 형성에서 발전된 심화로 나아가는 교육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총체성이 형태적 개념인 반면 인간화는 가치적 개념이다. 주로 물신주의적, 경쟁주의적 인간관, 가치관과 대립된다. 그러나, 총체성과 인간화의 문제는 서로 연관된다. 총체적일 때 비로소 인간적 의미가 제대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총체적 인간성' 혹은 '인간적 총체성'은 바로 그러한 의미이다.

1) 총체적 인간형의 추구

 다양한 방면의 소양과 지식, 덕목을 고루 갖춘 총체적 인간 형성을 추구한다. 총체적 인간은 시장주의의 분절적, 고립적, 물신적 인간형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전면적 발달을 추구하는 교육적 인간상이다. 인간발달의 총체성은 다음을 의미한다.

 첫째, 인간적 덕목의 총체성이다. 지, 덕, 체, 예 등의 인간적 덕목을 고루 갖춘 인간형, 지식과 가치관, 노동능력 그리고 문화적 소양을 고루 갖춘 인간형을 지향한다. 분절적 인간형과 대비된다. 둘째, 관계의 총체성이다. 다양한 인간관계와 사회조직, 공동체, 자연과 연관을 맺으면서 상호작용을 전개하는 인간형이다. 고립적, 개별적 인간형과 대비된다. 셋째, 인간적,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고 아는 것을 실천하는 인간상이다. 물신적, 파편적 인간형과 대비된다. 넷째, 튼튼한 기초와 다른 영역과의 연관하에서 심화된 발전으로 나아가는 발전과정이다. 총체적 인간 발달은 결코 전문화, 심화된 발달과 대립하지 않는다. 다양한 소양과 능력, 관심의 개발, 튼튼한 기초 속에서 자신의 주된 영역을 심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예컨대 올바른 과학기술의 개발도 정당한 사회역사 의식에 기초해야 하듯이 진정한 전문성, 심화는 총체성 하에 이루어질 수 있다.  

2) 교육이 다루는 영역의 다양화

 총체적 인간 발달을 도모하기 위해 교육이 다루는 영역을 다양화한다. 지식 중심의 교육과정을 탈피하여 지, 덕, 체, 예를 고루 포섭한 교육과정을 구성해야 한다. 특히 시대적 상황 및 사람들의 생활양식의 변화와 관련하여 공동체적 윤리, 기초 교양, 대중문화, 노동 및 자연과의 유대 등 새로이 중요해진 영역들을 교육적으로 포섭해야 한다. 또한 영역의 다양화 속에서 개개인이 지닌 잠재적 소질과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계기와 기회들이 효과적으로 주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역의 다양화는 무차별적인 교육과정의 세분화, 차별화와는 구별된다. 시장주의에 의해 주도되는 교육과정의 다양화는 인간적 가치 형성을 총체화하는 다양화가 아니라 여전히 지식 중심 교과의 세분화, 차별화에 불과하다. 복선형 교육과정도 총체적 인간 형성과는 거리가 멀다. 총체성을 추구하는 교육과정은 오히려 기존의 지식 위주 교과를 단순화하면서 비중을 줄이고10) 인간생활에 새로이 중요해진 영역들을 포섭하는 것이어야 한다.

3) 기초교양의 중시

 총체적 발달과 진정한 심화발전은 다양한 영역의 기초가 튼튼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총체적 인간 형성의 교육과정은 튼튼한 기초교양교육을 중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특히, 초중등교육은 기본적으로 기초교양 교육과정으로 자리매김된다. 과목의 지나친 세분화, 비기초교과의 조기 교육, 선택과정의 방만한 확대, 복선형 교육과정의 도입에 반대해야 한다.

4) 가치교육과 인성교육의 중시

 가치관과 인성교육의 중요성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특히 강조되어야 한다. 철학적 수준으로 가치관 교육이 상승되어야 하며 인성교육 프로그램과 방법도 확대, 고도화되어야 한다.

5) 대면적 교육관계를 중시

 몇몇 정보사회론자들은 멀티 매체를 이용한 새로운 교육관계의 형성을 부르짖는다. 원격 교육, 컴퓨터를 이용한 자기주도적 학습 등 매체를 매개로한 교육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내친 김에 <학교의 해체>를 떠드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컴퓨터를 매개로 한 교육관계 형성이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며 학습효과도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교사와 학생이 직접 만나는 대면적 교육관계의 총체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교육적 과정은 지식 전달만이 아니라 다양한 지적, 정서적, 가치론적 상호작용 과정이며 매우 다기한 국면을 포함하는 과정이다. 이 같은 교육과정의 총체성은 매체를 통해서는 명백한 한계가 있으며 오로지 인간과 인간이 직접 만나는 대면적 교육관계를 통해서만 담보될 수 있다. 총체적 인간 교육은 대면적 교육관계를 기본으로 하며 컴퓨터 등의 매체는 일정한 상황과 주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육적 수단으로 본다.

(2) 민주적 공동체 교육의 원리와 방향

1) 공공적 원리에 입각

우선은 교육 자체를 공동체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즉, 교육의 성격과 기능, 방향과 내용을 사회공동체의 관점에서 규정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적 관점에서 교육, 특히 학교교육은 명백한 '공공 영역'이다. 교육이 공공 영역이라는 사실은 교육이 국가적, 사회적 책임하에 보장되어야 하는 사회적 권리로서 누구에게나 충분하고 공평하게 제공되어야 하며, 특정한 세력이나 지배집단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적 논의를 통한 민주적 과정에 의해 움직여 나가야 하며, 다수 민중과 전체 사회구성원의 이해와 요구에 복무하는 방향과 내용을 지녀야 함을 의미한다. 그것이 교육의 공공적 원리이다. 교육의 공공성은 영역의 공공성(국가적, 사회적 공공기제), 절차와 방법의 공공성(민주적 논의와 절차), 방향과 내용의 공공성 모두를 추구하는 것이다. 현단계에 있어서는 무상교육의 확대, 교육기회의 평등 보장, 교육환경의 지속적인 개선, 교육내용의 국가 독점 폐기, 교육실천의 자율성 확대, 총체적 인간 형성을 위한 교육의 다양성 확보, 공동체성의 정립 등이 중요한 과제와 방향으로 제기된다.

2) 학교의 민주적, 공동체적 조직화

다음으로는 교육구조, 특히 학교의 공동체성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학교의 공동체성은 보다 바람직한 교육 실현을 위해 교사 간, 교사와 학생 간, 그리고 학생 간의 협력적 교육관계를 형성하고 민주주의를 확대, 실현해 나가는 것이다. 특히 교육민주화의 실현은 공동체적 조직화의 핵심과정이다. 민주화는 공동체 형성의 전제조건이자 기본 토대이며 진정한 민주주의는 공동체적 조직화와 사실상 동일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교사의 권리 확대 및 자율성 확보, 교육 자치와 학생자치의 확대가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학교의 민주적, 공동체적 조직화를 위한 것으로서 작은 학교, 소규모 학급 등의 교육환경 개선도 중요한 과제이다. 거대학교, 과밀학급은 교육관계를 형식화, 협애화, 익명화함으로써 협력적, 전면적 교육관계를 가로막게되는 주요 조건이 된다. 학교를 작게 할 때만이 민주적, 공동체적 교육관계의 형성이 가능하다.

3) 민주적, 공동체적 가치와 규범 교육의 강화

교육방향 및 과정에 있어서는 민주적, 공동체적 가치와 규범을 형성해 나가는 교육의 강화가 요구된다. 갈수록 개별화, 비공동체화, 탈규범화되어가는 추세와 그를 조장하는 사회적 여건에 대한 교육적 대응이 중요하게 제기된다. 학급운영의 조직화, 이미 있는 프로그램의 내실화, 새로운 공동체 프로그램의 다양한 개발 등이 필요하며 공동체적 가치를 함양할 수 있는 교과과정의 재구성도 필요하다.

4) 집단적 교육과정과 개별적 교육과정의 결합

집단적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하면서 개별적 교육과정을 결합한다. 교육 여건상 학교는 집단적교육관계를 기본으로 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교육단위로서의 학급은 민주적, 공동체적 조직화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집단 교육만으로의 전일화는 아이들의 다양한 교육적 상황과 괴리되기 쉽다. 그렇지만 또한 지나친 개별화교육 중심은 민주성과 공동체성 함양에 긍정적이지 않으며 수월성 교육으로 흐르게 된다. 따라서 집단적 교육과정 형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개별적 교육과정을 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별적 교육의 결합방식은 집단적 교육과정 속에서 개별 지도를 병행하는 것(소인수 학급이 중요하다.), 보충 및 심화학습, 특성화교육과정을 일정하게 배치하는 것 등이 가능하다.

5) 공동체적 주제 교육의 강화

공동체의 운명과 관련된 주요한 주제들에 대해서는 교과로의 포섭 등 특별히 강화될 필요가 있다. 물론 단지 주제학습에 그쳐서는 안되며 자연친화적 교육환경 조성 등 교육적 관점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몇가지 주요한 주제 및 방향은 다음과 같다.

0 인권과 민주주의교육

0 생태, 자연친화교육

0 민족동질성 회복과 통일교육

0 인류애, 평화 교육

덧붙이는 글

1. 문제제기의 목적과 관련하여

-우선 간략하게나마 신자유주의 교육 패러다임과 이 글에서 제기하고 있는 교육 방향, 원리를 비교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된다. 과도한 단순화로 인한 문제점은 감안해주길 바란다.


진보 교육

신자유주의 교육

기본 관점

민중의 교육적 이해와 요구
총체성과 공동체성(공공성)의 원리

자본의 이해와 요구
경쟁력 추구와 시장 원리

사회상

민주적 공동체

지식기반사회

교육적 인간상

총체적 인간(전면적 인간발달)

신지식인(지식노동자, 신인류 등)

지식관, 발달
원리

인간적 가치, 기초 중시
총체성의 원리

부가가치 중심, 조기 전문화
경쟁, 개별화 원리(구성주의 등)

교육과정

공통과정 중시
총체적 다양성 추구
집단교육 중심 개별지도의 결합
대면교육 중심

선택과정 중시
시장적 다양성 추구
개별화교육 추구
원격, 매체 교육관계의 확대 추구

주요 교육문제에 대한 파악

국가적 책임 미비, 자본 편향적 내용 민주화, 교육자치 미비
개별화, 비공동체화
지식 중심, 입시위주
거대학교 과밀학급
대학서열화, 인문학의 위기 등

국가중심적 비효율성
교사 질 저하, 선택권 및 경쟁 미비 집단적 획일성
수월성 상실
교육정보화 미비
대학경쟁력 미비 등

이 글의 목적은 총체성과 공동체성을 교육이념의 핵심 방향과 원리로 자리매김하자는 데 있다. 다시말해 제반의 사회적, 교육적 현실과 사안을 바라보는 중심적 기준으로 삼자는 것이고 또한 이에 대해 교육과정과 방법에 이르기까지 논의를 심화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만약 이 같은 문제제기가 정당하다면 예컨대 총체적 인간 발달의 교육학이라는 형태로 이론적 체계를 심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할 때 비로소 보다 실제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2. 방향의 추상성과 현실성

- 총체성과 공동체성에 대해 추상적이라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추상적이라는 것과 비현실적, 비실천적이라는 것과는 구별해야 한다. 큰 범주에서 주어지는 방향이나 원리는 어차피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교육이념과 기본 원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 같은 문제제기는 비현실적, 비실천적 개념이 아니냐 라는 문제제기로 재해석된다.

 어떤 추상적인 방향이나 원리가 '구체성'을 획득하는 것은 현실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얼마나 설명하고, 실천적으로 적용가능한지에 달려있다. 예컨대 '지식기반사회'나 '신지식인' 등도 개념 자체는 매우 추상적인 것이지만 현실사회의 정보화추세를 표현하는데 많이 쓰여지고(그것이 정당한 개념이든 아니든) 교육과정의 변화 등 실제적인 정책에 적용됨으로써 구체성을 획득한다. 사실 어떤 방향이나 원리와 관련된 개념의 구체성 획득 여부는 많은 부분 현실적 적용가능성을 좌우하는 '힘'의 문제이다. 똑같은 말을 쓰더라도 권력을 가진 자들이 쓰면 구체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권력이 없는 자들이 쓰면 추상적인 것에 그친다. 힘없는 자들이 제기하는 개념의 구체성은 당장의 실현가능성보다는 실천적 의의에 의해 좌우된다. 극복하고자하는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고 극복의 방향이나 대응원리로서 얼마나 유용한가의 문제이다. 그점에서 본다면 적어도 공동체성은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다. 이미 광범한 실천적 의의를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의로서의 '공동체주의'의 공동체와 개념적 혼란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소수의 개념일 뿐 많은 사람들이 그와 다른 '가치지향'의 의미로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이제 중요한 것은 '공동체성'이라는 의미를 얼마나 올바로 설정하고 내용을 채워나가는 가의 문제가 된다. 총체성 역시 그것이 과연 인간적, 교육적 가치로서 얼마나 의의가 있고 대안적 교육과정과 방법론의 중심원리로까지 적용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그점에서 교육적 가치와 원리로서의 총체성의 의미는 이미 철학적으로 검증되어 왔으며 또한 상당히 보편화된 개념이라고 본다. 문제는 그 동안 교육학적 적용과 심화에 나태하고 무능했던 우리의 노력에 달려있다.

3. 공동체성의 계급적 의의에 대하여

 - 시론을 제출하고 일정한 논의를 겪어보니, 예상과는 달리 총체성의 추상성에 대한 문제제기보다는 오히려 공동체성의 '계급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대두되었다. 공동체성은 계급적으로 매우 애매한 기준이며 전체주의적 속성으로 악용되거나, 소공동체주의로 왜소화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11) 그러나 이에 대해 그 같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성의 문제는 계급적 차원에서도 매우 커다란 의의를 갖게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공동체성은 이미 실천적으로 민중의 이해와 요구를 표현하는 중심적인 가치지향으로 등장하였으며 또한 그것 자체가 객관적 모순구조의 일정한 반영이라는 것이다. 교육은 물론이고 분배와 실업해소, 생태, 의료 등의 각종 복지, 핵과 평화, 생명공학, 대중매체 등의 제반 문제들 속에서 공동체성 혹은 공공성이 가장 유력한 판단 및 분석 기준이 되고 있다. 그에 따라 공동체교육, 국가의 공공 기능 강화, 생태공동체와 같은 대항 및 지향개념들이 등장한다. 이 같은 상황들은 우리의 현실속에서 공동체성의 문제가 자본/민중 간의 객관적 모순구조를 실제로 드러내는 지점이 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 공동체성의 문제는 단지 모순구조를 실제로 드러낸다는 차원을 넘어 현단계 자본/노동(민중)의 가장 중심적 대립 지점을 형성한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의 전면화 이후 자본(신자유주의)/노동(민중)의 대립구조는 아주 단순하게 명료화되면서 확대되었다. 이제 예전과 같은 단계론적 모순구도 파악은 불필요하며 타당하지 않다. 다만 자본/노동(민중) 간의 주요 대립내용과 지점이 무엇이며 이해, 요구를 같이하거나 달리하는 세력분포는 어떠한가의 문제일 뿐이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이해와 논리를 숨김없이 드러내면서 사회적 모순을 심화시켜 나가고 있고, 중산층의 몰락에서 보이듯 대립구도를 전계급계층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대립구도를 전계급계층으로 확대해 나가면서도 지배를 영속화하려는 그들의 무기는 '경쟁과 분열'과 '개별화'이다. 그들이 만들어 나가는 대립구도 자체도 반공동체적이며 지배방식도 반공동체적이다. 이점에서 전영역 및 전계급계층으로 확대된 자본/노동(민중) 간의 대립을 가장 첨예하게 드러내면서도 제반 문제를 포괄할 수 있는 것이 공동체성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우리의 요구는 사회적 수준의 공동체성 강화(평등, 분배, 복지, 민주주의, 생태, 통일, 평화 등)로 집중될 수 있으며 그것은 국가공공성의 확대, 시장에 대한 민중적, 민주적 통제의 확립 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

 셋째, 그러한 이유로 공동체성은 신자유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중간층을 포함한 전민중의 연대를 묶을 수 있는 가장 주요한 방향이 된다. 설사 공동체에 담는 함의가 일정하게 다르다 할지라도 공동체적 지향 자체는 전계층적 연대의 핵심적 고리가 된다. 그것은 마치 파시즘 치하에서 '민주'의 의미가 저마다 약간씩 달랐지만 반독재전선의 핵심고리였던 것과도 같다. 지금은 신자유주의로 표현되는 자본의 파괴적인 반공동체적 속성이 전 계급계층과 분야에 걸쳐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사실 공동체성의 계급적 의의에 대한 파악은 모순구조에 대한 과학적 논의에 기초하기 보다는 이미 벌어지고 있는 실천적 현실에 대한 '사후 인식과 승인'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지만 실천적 현실만큼 정확하고 풍부한 것은 없다고 확신한다. 앞으로 신자유주의 이후의 모순구조 변화에 대한 심화된 논의들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현단계 한국교육 및 신자유주의교육의 모순구조에 대한 체계적 논의 역시 당연히 이루어져 나가야 할 것이다.

4. 마지막으로

 앞으로 많은 부분에서 진보교육이념과 원리 정립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러할 때 신자유주의의 교묘하고도 막강한 논리와 힘을 극복하고 우리의 실천을 제대로 한 데 모을 수 있다. 이 시론이 그 같은 논의에 불을 당기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주--------------------------
1
) 정책적 이데올로기라는 차원에서 볼 때, 지식기반사회나 신지식인이라는 말 자체의 생명력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정권이 바뀔 경우 특히 신지식인이라는 구호성 표현 자체는 사그러질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담긴 사회상과 인간관, 지식관은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가 유지되는 한 함께 지속될 것이다.  
2) 부의 축적이 정보와 권력의 독점으로 연결되고, 나아가 유전공학 발달의 혜택까지 독점하게 됨으로써 부와 권력, 우수한 유전자를 보유한 '가진' 인종과 그렇지 못한 '못가진' 인종으로 구별되어 나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3) 물론, 이러한 위기적 징후나 현상들이 어제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 동안 숨가쁜 물질적 성장과 경쟁 속에서 누적되어 온 문제들이 이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정도의 비등점에 이르게 되었고 결국 인간과 사회 자체의 전면적 위기라는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4) 신자유주의의 신지식인론은 '무엇이던 한가지만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파편화된 인간형을 오히려 다양성이라는 이름하에 부추키고 있다.
5) 2000년 신년을 맞이해 동아일보에서 벌인 국민의식조사에서는 일반 국민들이 '공동체성' 회복과 고양을 가장 중요한 국가적, 사회적 과제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온 바 있다. 이러한 결과는 여론조사의 오류나 의도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공동체'의 문제가 이미 최대의 현실적 주제가 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6) 시장주의, 신자유주의에서는 교육의 중심 역할을 거의 오로지 노동력의 형성, 배출 기능으로만 보고자 한다. '지식기반사회론', '신지식인론' 등에서 제기되는 교육 담론 등은 거의 전적으로 질높은 노동력의 문제, 부가가치형 인간 형성의 문제에 집중한다.
7) '생산력주의로부터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자!'라는 것이 새삼스런 이야기도 아니고 많은 경우 우리는 생산력주의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산력주의는 성장과 경쟁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체제의 현실적 근거와 압도적 헤게모니로 우리를 압박하고 지배하고 있다. 무한 경쟁과 무한 성장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국가경쟁력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지 못하고 '지식기반사회론' 따위를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 그것을 입증한다. 교육에 대한 무차별적인 시장원리 도입은 반대하면서도 교육경쟁력이나 국가경쟁력 따위의 개념을 속절없이 수용하거나 수세적으로 대응한다. 아마도 현대사회에서 모든 사물과 실천에 대한 핵심적 판단 기준과 변화방향이 되는 것이 생산력주의가 강조하는 '경쟁력'이라는 개념일 것이다.
8) 기술발달이 역사발전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며 인간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궁극적으로 기술발달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기술맹신주의를 의미한다.
9) 다른 한편 교육기회의 형식적 평등(적어도 중등교육까지는) 만큼은 상당히 진전되어 있기도 하다. 그것은 교육에 대한 높은 사회적 욕구를 제한적으로나마 형식적 기회 평등으로라도 무마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공공성을 확대해 나가는 우리의 실천 방향은 형식적 평등을 넘어 교육기회의 실질적 평등으로 이전시켜 나가는 한편 교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보장을 높여 나가는 것이 된다. 그러할 때 높은 교육열은 오히려 교육공공성을 확장해 나가는데 유리한 사회문화적 기반이 될 수 있다.
10) 단순화, 비중 축소의 기준은 인간적, 생활중심적 가치이다. 지식 중심적 관점의 유지 속에서 교육과정의 다양화는 지나치게 많은 교육내용과 방만함으로 귀결된다. 인간적, 생활중심적 가치 기준에서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반드시 필요한 수준과 심화된 수준으로 구분해 나갈 때 총체성을 추구하는 과정이 방만해지지 않을 수 있다.
11) 총체성의 경우는 중심 원리로서의 복원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바라보거나 아니면 추후의 논란거리로 넘긴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