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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사회개혁과 새로운 대학교육체제

2001.02.08 16:12

이종구 조회 수:1327 추천:1

사회 개혁과 새로운 대학 교육체제

사회 개혁과 새로운 대학 교육체제

                                   이 종 구(성공회대, 사회학)

(※이 글은 학술계간지 '경제와 사회' 99/가을호에 실린 것을 필자의 양해를 구해 다듬어 옮겼음.)

1. 들어가는 말

  ....(앞머리 생략)....
  대학개혁을 밀고가는 정책 입안자들은 <학부제>를 들여오면 대학생들이 지나치게 잘게 쪼개진 지금의 '학과 /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에게 필요한 강의를 스스로 골라 공부할 수 있으니 대학 안에서도 교육서비스의 손님인 학생을 존중하는 풍토가 자리잡히고, 시장 원리에 따라 사회 수요가 있는 학문 위주로 교과목/교원이 재조직화되는 효과가 생겨난다는 점을 부르짖어왔다.  또, 세계적으로 뛰어난 연구자를 길러낼 몇몇 명문 대학원을 집중 육성하게 되면 지식집약적 산업에 기반을 가진 한국 경제가 대외(對外) 경쟁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내세웠다. 이러한 정책 당국의 구상은 2002년부터 전면 실시될 '수행평가'에 터한 신입생 선발, 신입생 모집 단위 넓히기와 전공 인정 학점 줄이기, 예상대로 서울대가 지원액의 절반 넘게 차지한 BK21 사업 따위로 대부분 실현되어 나갔다. 이 정책들은 '개혁'의 한 부분이라는 명분을 갖고 실천되었고, 신문/방송에서 힘껏 밀어준 덕분에 일반 시민들도 어쨌든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하지만 언론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아서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런 정책에 대한 반론도 거세게 일고 있다. 학교 황폐화를 불러온 정책 당국과 사학 경영자의 책임은 외면한 채 일선 교사/교수들의 부담/책임을 늘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비판이 일어났다. 한 가지 예로, 고교 교사 일인당 학생숫자가 줄어들지 않은 형편에 학생 개인에 대한 <수행평가>가 제대로 치러지리라 주장을 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대학에서도 학생 개인의 선택권을 넓히는 '학부제'를 실시하려면 수강 신청자가 줄더라도 대학의 학문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필요할 때는 '강좌'를 유지하거나, 인기 과목에 수강 신청이 몰릴 경우는 인건비가 올라가더라도 분반(分班)을 해서 교육의 질이 낮아지지 않게 배려할 환경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 허나, 사학 경영자의 비리(非理)가 늘 신문을 수놓는 형편 아닌가. '학부제'가 인기 없는 과목을 걷어치워서 경영 수익을 올릴 절호의 기회라고 여길 가능성을 사학 경영자에게 열어줄 수도 있음을 새겨 둬야 한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생길 영역은 'BK21 사업'에서처럼 선발/집중 원칙에 터하여 몇몇 명문대만 키우면 국가 경쟁력이 올라갈 거라는 정책 기조이다.

  이런 정책이 자꾸 판을 치면 '대학 서열화'를 정부가 공인하는 셈이 되어 한편으로 입시 경쟁을 불붙이고 딴편으로 몇몇 명문대 출신 엘리트의 네트워크가 사회적 자원 배분과정에 지배력을 더욱 높일 가능성이 커진다. 논리면에서만 보아도 대학에 대해 서로 엇갈리는 정책을 한꺼번에 밀어붙이니까 과연 무엇이 개혁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현 정권이 밀고가는 '대학 정책'에 비판 여론이 높아지지 않는 까닭도 살펴보는 게 좋겠다. 아마도 모든 집안의 걱정거리인 '대학입시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고, 사(私)교육비를 들이지 않아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잠깐이라도 품을 수 있기 때문이겠지. 또 "IMF 체제에서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면 좋은 대학을 만들어 뛰어난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명분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더구나 온국민이 실업(失業)과 파산의 고통을 겪고 있는데 '대학 교수'만은 <무풍지대>에 있어 달라지지 않으니, '고통 분담 차원'에서라도 능력주의 인사관리 원칙을 들이밀어 무능한 사람은 솎아내야 한다는 주장에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엄청나게 높아 보인 '교수직'을 친근한 연예인, 바둑기사, 프로스포츠 선수, 정치인에 얻게 되었다는 신문 보도가 잇따른 것도 무엇인가 달라지고 있으며 잘 돼 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선거를 겨누어 '여론'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집권당 정치인 처지에서 보면, 지금의 대학개혁 정책은 2002년 입시가 눈앞에 닥치기 전까지는 인기 관리에 도움을 준다. 더구나 비판 세력을 '집단 이기주의자'로 몰아붙이면 외환 위기가 닥치고부터 스트레스가 쌓인 대중의 마음을 시원히 달래주는 효과도 생긴다.

2. 개혁과 대학에 대한 담론의 혼란

  한국인끼리 여럿 모여 앉아 '대학 개혁'에 대해 군소리 늘어놓다 보면 왜 순식간에 격정과 혼란에 빠져들고 일방통행의 혼자말이 마구 흐르는 것일까? 이는 아무래도 한국의 대학이 통합된 구조를 갖고 있지 않고, 개별 구성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므로 한 곳에서 조그만 변화가 일어나면 대뜸 일파만파(一波萬波)로 커질 수 있고, 거꾸로 아무리 큰 변화 요인이 생겨도 복잡한 체계 안에서 효과가 상쇄되어 흐지부지되는 일이 예사로 일어나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대학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세히 뜯어보지 않으면 실효성 있는 정책대안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앞엣것의 본보기로 요즘 몇 년간 펼쳐지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나 신문사의 대학 평가 때문에 대학 곳곳에서 일어난 야단법석과 그 결과를 떠올릴 수 있다. '전화번호부'만큼 두꺼운 평가보고서와 발전계획을 만드느라고 벌인 법석잔치와 들어간 돈은 엄청난 것이었다. 온사회에 알려지지도 않는 '대학 평가 작업'을 위해 온나라 교수들이 모임 갖고 호텔방 합숙작업하느라 들어간 시간/노력을 죄다 교육/연구에 쏟았다면 그 얼마나 유익한 성과가 나왔을 것인가?  해마다 봄이 되면 겨우 몇 억 원의 정부 보조금을 얻으려고 글쓴이들도 믿지 않는 '교육개혁 보고서'를 써내고는 그 결과에 울고웃고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기회비용이 막대하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 억울해 하지 않는다.

  뒤엣것의 본보기로는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 밀어닥친 '글로벌리제이션'이라 떠드는 물결 가운데서 해외 지역연구 발전이나 국제대학원 프로그램을 위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갔지만 기존 대학 내부의 '학과 이기주의'에 휩쓸려 건물 몇 채와 교수 정원 몇 자리 늘리는 것으로 끝나가고, 교육/연구 기반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사실을 짚을 수 있다. 이공계에서도 지역마다 전공을 특성화하여 지방대학을 발전케 하려는 정책이 몇 번 밀고나오기는 했지만 온나라 대학이 브랜드에 따라 서열화된 형편에서 아무리 우수한 시설과 교수진을 마련해도 의욕 있는 학생이 꾀지 않으니 다 '도루묵'이었다.

  '대학 개혁'이라는 말이 혼란을 일으키는 까닭의 상당 부분이 여기서 드러난다. 신자유주의를 맹신하는 분들은 쫓겨날 염려 없어 게을러진 교수들에게 연구 실적 평가를 통해 '시장의 채찍'을 휘두르고, 입학은 힘들지만 등록금만 내면 너끈히 학사 학위를 받는 대학생들은 '엄격한 학사 관리'로 공부시키며, 공부 잘하고 똑똑한 인재만 골라 대학원에서 용돈 받고 공부하게 해주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고 여긴다. 과연 이것이 한국의 현실에서 대학의 연구/교육 기능을 키우는 데에 가장 주된 조건인지도 한참 따져야 할 일이지만, 여기에도 '부분적인 진실'이 들어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결국 이런 주장은 요컨대 "개인이 부지런해지면 전체가 잘 된다."는 뜻이다. 딴 말로 옮기자면, 여기에는 "시스템도 잘 만들어가고 있고, 경영자/정책 당국자는 제대로 하고 있는데 교수/학생이 시원치 않으니 능력주의 관리 원칙을 들여와 채찍과 당근을 내둘러 이끌면 21세기형 지식기반 사회가 어렵잖게 이룩될 거라는 판단이 깔려 있는 셈이다.

  딴편으로, 비판의 눈길을 감추지 않는 '민교협'을 비롯한 교수 단체들도 지금 한국의 대학이 부실(不實)하다는 점은 두말않고 동의하지만 그 원인 진단은 다르다. 이들이 진단하는 문제의 근원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이어지는 설명은 생략함)

  이처럼 평행선을 달리는 두 대학개혁론은 "응용학문과 기초학문, 어느 것이 우선이냐?"는 물음에 대한 관점의 차이라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응용과 기초 학문의 경계가 과연 뚜렷이 갈라지느냐는 것이다.

  예를 든다. '과학자'라는 직업 집단은 과학의 제도화(=연구소/대학)가 이뤄지면서 나타난 근대사회의 산물이다. 이 제도화는 꼭 산업발전이나 군사기술 개발을 위한 조직이 필요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도 정비'를 통한 과학/기술 발전은 근대 사회제도나 정신문화의 발전과도 긴밀히 엮여 있다. '대학의 자율성'이 존중된 것도 눈앞의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꾸준히 연구할 환경이 실용적 목적을 위해서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요즘 '첨단 과학기술'로 불리는 생명공학, 정보과학, 초전도체 개발 같은 경우만 봐도 '기초/응용' 구분이 흐릿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인터넷과 멀티미디어 발달로 시간/공간이 압축되어 생활세계를 급격히 바꾸고 있는 형편에 한국 정부도 21세기 지식기반산업으로 주목하는 정보통신산업의 경쟁력은 내용물의 소재가 되는 창작물을 만들어낼 '문화적 저력'과 연계돼 있다.

  따라서 '응용학문에 집중 지원한 여파'로 기초학문도 자원을 나눠받을 수 있다는 논리도 생긴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기초가 부실하면 응용학문의 발전 자체가 '병목'에 걸릴 것이라는 면을 살펴야 한다. 따라서 '두뇌한국 21' 계획에서 내놓은 특정 분야와 몇몇 명문대에 대한 집중 지원을 통한 '불균형 성장방식'이 효율적이냐, 아니면 '저변 넓히기'가 더 중요하냐는 문제나, '학부제' 추진과정에 나온 "사회적 수요가 적은 전공을 왜 유지해야 하느냐"는 논란은 과연 투입하는 자원만 늘리면 연구/교육 수준이 올라갈 만큼 한국 대학의 구조/기능이 정상적이었더냐는 물음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이 물음은 대학 안에 '비능률/낭비'가 구조화돼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4년제 대학 대부분이 기본 조직구조로 '축소판 서울대'랄 수 있는 종합대학체제를 짜 놓았다. 이것은 여러 단과 대학으로 이뤄져 있고 단과대학의 구성 단위는 '학과(學科)'이다. 대학 본부는 모두 특성이 다른 단과대학, 학과를 '통일된 기준'에 의해 관리한다. 물론 이 기준은 교육부의 지침과 행정 지도에 맞아떨어지게 돼 있다.

 '학사 관리'만 봐도 여기에서 갖가지 모순이 드러난다. 실기 실력이 중요한 예/체능계 학생도 교양 학점을 얻기 위해 문과계 학생들과 같은 강의실에서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시험을 치러야 하는 일도 드물지 않으며 오히려 교수들이 학점을 줄 때에 형평을 맞추려고 고민해야 한다. '학부제'를 실시하면서 전공 인정 학점을 한 가지 기준에 의해 축소했으니까 많은 연습이 필요한 어학계 학과나 현장실습 경험이 중요한 사회복지계통 학과는 졸업시킬 학생들 자질문제를 심각하게 걱정하면서도 보조금, 대학평가 순위에 매달려야 하니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런 고민은 유학이나 대학원 진학의 기회가 한정돼 있고, 당장 산업현장에 취업 나갈 비명문대 이공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생겨난다. 수량 지표에 터해 교수업적 평가기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도 개별 전공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고 똑같은 기준을 모든 교수에게 들이대는 데서 나온 결과이다. 이에 대해 이공계에서 통용되는 SCI에 실린 건수를 갖고 세계 100등 안에 드는 한국대학이 몇 개 안 되니 큰일났다는 식의 발표가 이어지고 이것이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 지지'를 이끌어내는 슬로건으로 쓰이는 게 손꼽히는 사례이다.

  그러나 대학의 의사결정과정에서 '하향식 획일적 통제'만이 문제는 아니다. 각 단위에서는 이해관계가 다른 탓에 전체 이익보다는 개별 이익을 꾀할 염려가 크다. 개별 학과는 자기 발전을 위해 학생정원, 교수, 지원 인력, 공간/설비, 연구비를 비롯해 자원을 얻으려고 대학 안에서 경쟁을 벌인다. 대학 본부는 서로 엇갈리는 학과들의 요구를 조절/통합하는 의사결정기능을 떠맡는 기구이다. 그러나 의회 같은 여론 수렴기구가 없는 한국의 대규모 종합대학 체제에서는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대학본부의 위원회나 처/실장을 거치면서 합리적으로 합쳐지리라 기대할 수 없고 대부분 말썽 없고 무난한 쪽으로 의사결정이 내려지게 마련이다. 이는 교육부와 재단, 민선 총장의 지지세력, 산학협동이나 국책 사업으로 자원획득 실적이 높은 학과/단과대학의 뜻을 존중하여 학내 정치가 원만하게 이뤄지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과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거나 기존 학과의 이익을 해칠 걱정이 있는 새 사업을 벌이거나 조직을 새로 짜는 일, 다시말해 구조 조정이나 리엔지니어링이 처음부터 곤란하게 된다.

  학부제를 통한 개혁의 허구성을 가장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종합대 안에 있는 '축소판' 종합대학인 사범대학과 농과대학이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일 것이다. 이런 형편에서는 지적인 도전, 혁신이 이뤄지기 어렵다. 가장 치명적인 피해는 새 학문분야를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계속 기술혁신 속도가 빨라지는 이공계는 물론이요, 급격한 사회문화 변동을 해석하고 이에 맞서야할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도 대학이 지식 생산을 이끌 능력을 잃어버리는 셈이다. 따라서 대학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더구나 이런 자원의 획득/배분을 둘러싼 갈등은 학내 권력관계의 재편이라는 정치적 쟁점으로 바뀌기 때문에 연구/교육의 본래 임무에 충실하려는 교수보다는 경영관리 능력을 발휘하고 인맥이 두터워 해결사로 진가를 발휘하는 교수가 존경 받고 대학 안 핵심적 결정권을 갖게 된다.(가령 이수성 전 서울대 총장)   심지어 '두뇌한국 21'  사업 공모 제안서에도 사업단장을 맡을 자격으로 '연구실적' 이외에 <개혁의지와 경영관리능력 소유자>까지 규정돼 있다.

  그러나 대학 안 민주화운동에서도 이런 대학의 기능 정상화 문제는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요즘 등록금 문제를 꺼낸 학생운동이나 처우 개선에만 발언하는 직원노조는 말할것없고, 교수들의 운동도 한편으로는 부당한 교수 재임용 탈락이나 경영자 횡포(...자산 횡령 따위) 및 정부의 권위주의 정책과 싸우다보니 대학 내부에는 눈길 돌릴 여유가 없었다. 80년대 후반부터 사회민주화 흐름을 타고 여러 대학에서 '총학장 직선제'를 비롯한 교수의 의사결정과정 참여가 '더러' 이뤄지긴 했으나 대학관리구조 자체에는 아직 부분적으로만 의견이 나오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서울대 하나라도 세계 명문으로 만들려면 특별법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몇몇 교수들이 대안을 발표하고 있다. 대학서열 혁파(강준만), 인문학의 복권(강내희), 직업주의와 아카데미즘에 터한 연구분위기 쇄신(이종구), 학내 의사결정과정의 민주화(유초하)... 반면 정부의 집중 육성대상이고 기업과 결합도가 높은 이공계, 경영학 쪽에서는 대학체제에 대한 이의제기가 나오지 않으며, 그저 명문대/비명문대, 서울대/비서울대, 국립대/사립대 간의 재정 불평등만 짚고 있을 뿐이다.

3. 대학 체제의 재편 방향

 (-앞엣 대목 생략-)

  대학의 임무를 '지식의 생산/전파'라 한다면, 개인의 적성, 재능이 긴요한 <예/체능 분야의 분리>부터 검토해야 한다. 이 분야는 '국립 예술학교' 같은 전문교육기관에서 맡는 게 효율적이다. 대학 안에서도 '전문 연구자 양성'을 목표로 삼는 기초학문분야(인문, 사회, 자연과학)와 '전문직업인'을 기르는 응용학문분야(공학, 의/약학, 법학, 경영학)도 떼놓는 게 바람직하다. '종합대학'은 기초학문분야를 중심으로 짜고, 응용학문분야는 KAIST나 포항공대 같이 '특성화된 대학'에서 맡으면 저마다 나름의 목표에 걸맞는 쪽으로 발전하기가 쉽다. 물론 두쪽이 한데 있으면서 상승효과를 나타냄도 바람직하달 수 있으나, 이 길이 가능하려면 종합대학에서 '의사결정 권한'을 밑으로 분산하고 중앙에서는 조정/통합기능을 더 굳히는 서로 모순된 요구를 풀어낼 <관리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 현실에서는 한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걸림돌이 되기보다는 각방살림하여 저마다 크는 게 낫다.

  '대학의 직업교육 기능'도 다시 살피자. '전문대'나 '직업교육기관'이 잘할 부분까지 넘보아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90년대에 '사회복지 계통'의 학과들이 급속히 늘었는데 정책이나 경영관리 같은 기능이 필요한 구상적 업무 담당자와 일선에서 서비스를 전달하는 실무자 양성이 구분이 안 되니까 겉으로 보아 취업률은 높으나, '직장 정착률'을 보면 사정이 영 딴판이다. 요즘 대학 지원자 중에 인기가 높아 정원이 늘어나는 '신문방송학 계통'도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 신문기자나 PD는 학사학위 소지자(所持者)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전공에 문이 열려 있고 실무 인력(人力)은 오히려 언론기관 부설 교육기관에서 길러내는 경우가 많다. 외환위기 이후 안정된 직장으로 '교사 직업'이 매력을 얻고 있으나 종합대학에서는 '사범계 학과'를 해체하고 교직 훈련과정과 교육에 대한 연구조직만 남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조치만 실행에 옮겨도 막대한 예산을 아낄 수 있고, 새 사회 수요에 맞는 전공을 설치하는 개혁이 앞당겨질 수 있다.

  4년제 대학에서 지금 같은 교양교육이 남아 있어야 할 까닭이 있을까? 대학 교양과정에서 베푸는 느슨한 외국어 교육으로 고교 졸업때에 견주어 과연 실력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도 의문이지만, 철학이나 역사 같은 딴 교양과목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고교 교육이 정상화되면 지금 대학 교양과목의 많은 부분이 필요없는 것이고 전공교육이 충실히 이뤄지면 이에 필요한 어학이나 기초학문은 본인이 알아서 이수하게 되는 것이다. 교양 학점을 이수하느라고 보내는 시간에 차라리 전공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 대학에서 '적성 발견'을 위해 방황할 시간을 준다는 취지를 가진 '학부제'는 전문교육을 대학원이 맡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교육기간의 연장과 비용 증대를 불러온다. 이는 대입 제도와 고교 교육의 문제점이 낳는 비용을 위쪽으로 떠넘기는 현실 도피일 뿐이며 한국에서는 자원의 낭비다. 무턱대고 명문대에 붙고 봐야 한다는 고교의 대입 지도방침이 미덥지 않으면 '복수 전공이나 협동과정 이수'가 실제로 가능하게끔 시스템을 정비하는 선에서 대학교육내용의 충실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대학이 맡을 영역을 이처럼 규정하면 혹시 모처럼 대중에게 열린 대학을 다시 몇몇 엘리트의 아성으로 만드는 복고주의라 비난할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저 체면 때문에 젊은 시절 4년을 대학가에서 헤매고 다닐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게 문제해결의 바른길이 아니겠는가? 흔히 정치가들이 떠벌이듯이 누구나 대학에 들어갈 수 없어서 입시 과열이 생긴 게 아니라 서울대와 몇몇 명문대를 나오기만 하면 실력보다 훨씬 높이 대접받는 프리미엄을 차지하는 '학벌 연고주의' 때문이다. 이것을 깨뜨리고, 한편으로 지금의 방송대학 같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원격교육과 사회교육 기반시설에 투자함으로써 정규대학에 진학하려는 수요를 미리 줄이고 대중의 지식축적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공공재'의 성격을 띤 대학의 운영 주체에 대해서는 '공교육화'를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현정부는 시장원리와 경쟁으로써 좋은 대학을 선별해 남기자는 논리를 펼치고 있으나, 이는 해방 이후 지금껏 누적된 불공정 경쟁의 결과를 자본으로 갖고 있는 기득권층을 보호하는 궤변일 뿐이다. 지금의 국/공립대부터 공공성에 터하여 운영해야 하며 기초학문분야와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한 몇몇 응용학문분야(공대의 일부, 의대)를 맡게끔 역할을 규정해야 한다. 그리고 명문대 동문(同門) 자격을 부여하고 이익 당사자끼리 네트워크를 이루게끔 마당을 깔아주는 갖가지 특수대학원과 사회인 교육과정은 과감히 문패를 떼낼 필요가 있다. 사립대, 기업연구소, 국책 연구기관이 맡을 수 있는 기간 짧은 연구과제를 해내고 결과물을 명문대의 권위로 '포장'해 주는 '산학협동'이나 '정책연구'도 국/공립대는 삼가는 게 좋다. 이는 대학원생과 젊은 연구자들이 아까운 시간/열정을 단순하고 소모적인 작업에 낭비하는 일이 멈춰야만 지식 창조 환경이 생겨날 것이니까.

  모든 국민의 근심거리인 '입시 문제'를 풀려면 세금으로 꾸리는 <국/공립대부문이라도 통합 운영해> 대학간 격차를 없애고 장벽을 낮추는 길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길로 갈 경우, 입시에서는 일단 전원(全員)을 공통 기준으로 뽑고 학생의 희망을 존중하여 면접/서류 전형으로 캠퍼스/전공을 결정하면 된다. 특정 캠퍼스/전공에 너무 몰려 경쟁이 과열되는 경우는 '추첨제/ 선착순제'를 적용해도 괜찮다. 학생이 속한 대학이 아닌 곳에서 수강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제한하지 말고, 학점을 서로 인정해 주면 '대학별 사회위신의 격차'가 급속이 줄어든다. 각각의 캠퍼스를 여건에 따라 전공별로 특성화하고 학생, 교수, 시설을 네트워크 개념으로 운영하면 '지역간 교육기회 격차'가 줄어들고 종합대학 구색을 갖추려고 시설/교수/책이 모두 빈약한 학과를 여러 곳에 흩어놓아 모두 부실해지는 낭비를 미리 막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파워엘리트의 결속을 단단히 해주는 기반인 '학벌'의 재생산을 막아내므로 더 개방된, 능력주의에 터한 사회질서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사립대의 자율성도 나름의 재원과 합리적 경영관리능력을 갖출 수 있으면 공공적 기능을 발휘하므로 존중되어야 한다. 사립대가 공공성 확보에 기여하는 프로그램을 벌일 경우에는 공적 재정 지원을 받아야 한다. 사립대의 개성을 살리게끔 학사 운영에 대한 교육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하지만 설립자와 재단이 학교법인을 사유화하지 못하게 제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8월 교육관계법 개정이 보여주듯이 현정권은 이와 반대되는 입법조치를 펴고 있으므로 갈등의 소지가 커지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회를 비롯한 정책의사결정기구에 사학재단쪽 인사가 '과잉 대표'돼 있어 생기는 공공재의 사유화 현상은 대학 개혁이 사회의 총체적 개혁과 직결돼 있다는 사안의 민감성을 반영하고 있다.

  교육/연구 기능의 통합/조정이라는 면에서 <대학 연구소를 내실화할 길>을 찾아야 한다. 한국의 대학은 그동안 선진국에서 생산한 지식을 그저 '전달하는' 교육기관으로 구실했을 뿐이어서 대학원과 연구소 부분은 빈약했다. '두뇌한국 21' 입안자들은 그저 소모성 인건비 제공에만 주력했지 연구개발 수준을 높일 '인프라스트럭츄어 형성'이 시급하고 이는 눈에 보이는 건물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기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지금의 '대학 연구소'는 '지입제 택시회사'나 '매장 임대형 백화점'이라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은 구조를 갖고 있어, 아무리 좋은 연구를 해도 '결과 보고'만 하고 나면 연구팀과 자료가 흩어지고 약간의 간접 관리경비와 기자재만 남으므로 무형의 지식과 노하우 축적이 이뤄질 수 없다. 교수도 관심 분야를 연구하기 이전에 연구조직과 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연구비'를 찾아다녀야 하므로 역량을 소진하기 마련이다. 한국의 대학은 박사학위를 갓 딴 젊은 연구자들을 동원하여 교육/연구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들도 머지않아 마찬가지로 소모되어 실력이 아니라 직급/보직에서 만족을 느끼는 점잖고 체통 있고 무슨 일에나 식견 높은 '자문'형 학자로 변신하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꽤 높다. 만일 대학도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교수의 외부 연구비 획득 실적이나 사회활동 경력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더욱 높아지면 '대학의 자체 붕괴'가 빨라질 가능성도 지울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대학이 이런 人才 소모형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연구기반의 충실화를 위해 연구소가 실질 기능을 떠맡을 수 있도록 투자하여 정비하고, '전임교수 배치'와 '예산 배정'이 이뤄져야 한다. 충분한 예산/조직을 가진 '거점 연구소'를 특성화하여 입지 여건에 맞는 대학에 분산 배치하고 공동 이용시설로서 활용하는 네트워크화를 실시함으로써 전국의 교수가 갖고 있는 연구 역량을 한껏 활성화할 길이 열린다. 여기에는 '학과'가 중심이 된 대학 체제에서 해낼 수 없는 새 학문분야나, '학부제'가 퍼질 경우에 거취문제가 생길지 모를 기초학문분야 교수가 제 구실을 해낼 마당을 마련한다는 뜻도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