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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공동체의 위기와 학교붕괴(2)

2001.02.08 15:39

천보선 조회 수:1327 추천:1

이 글은 교실위기 현상의 성격과 관점의 문제를 다루었던 '공동체의 위기와 학교붕괴(1)'에 이어 교실위기를 몰고 온 제 요인과 교육운동의 기본적인 대응방향의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글이다. 많은 동지들의 건설적 의견을 바란다. 특히 대응방향의 문제에 있어서는 '시론'적 수준에 불과한 것이므로 진전된 논의와 비판을 통해 실천적으로 풍부하고 심화된 내용으로 수정, 보완되기를 기대한다. 공동체 위기와 학교붕괴(2)

공동체 위기와 학교붕괴(2)
< 교실위기의 요인과 공동체교육 강화의 관점에서 본 대응방향 >

천보선(책임연구원)

1. 시작하는 몇 가지 말

1) 이 글은 교실위기 현상의 성격과 관점의 문제를 다루었던 '공동체의 위기와 학교붕괴(1)'에 이어 교실위기를 몰고 온 제 요인과 교육운동의 기본적인 대응방향의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글이다. 많은 동지들의 건설적 의견을 바란다. 특히 대응방향의 문제에 있어서는 '시론'적 수준에 불과한 것이므로 진전된 논의와 비판을 통해 실천적으로 풍부하고 심화된 내용으로 수정, 보완되기를 기대한다.
2) 이번 글에서는 지난 번에 사용하였던 '학교붕괴'라는 표현 대신에 '교실위기'라는 개념을 쓰고자 한다. '학교붕괴'라는 선정적 표현이 사안의 심각성을 제기하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현상의 실체를 정당하게 드러내는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동안의 논의 과정의 볼 때, 학교붕괴라는 불명확하고 과장된 표현이 가져 올 수 있는 문제점들 - 사안을 지나치게 확대하고 위기의 지점을 엉뚱한 데까지 몰고 갈 수 있는 - 이 일정하게 나타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많은 교사의 분노를 자아내었던 이진경 칼럼의 경우도 현상의 실체를 잘 모른 채 '학교붕괴'라는 과장된 표현에 대한 나름의 주관적 판단과 분석을 가하면서 행한 실수일지도 모른다.(현상의 성격 규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빼더라도 그가 파악한 '학교붕괴' 현상은 실제와는 매우 다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실수들은 실수로 끝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논의를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나간다. 학교의 해체나 축소, 시장원리의 확대를 주장하는 대부분의 논의들 역시 이진경처럼 현상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정당한 논의를 위해서는 올바른 개념 설정이 필요하다.
3) '공동체의 위기와 학교붕괴(1)'을 제출한 이후 교실위기에 대한 논의 지형에 일정한 변화가 있어 왔고 이 논의가 지닌 실천적 의의도 더욱 커졌다고 생각된다. 현재 교실위기 현상을 둘러싼 논의의 주요 대립 전선은 정작 신자유주의가 아닌 (무정부적)자유주의와 민중적 관점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으며 교육운동의 통일된 인식과 힘있는 대응을 위해 사실상 신자유주의의 편을 들고 있는 (무정부적) 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실천적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교육황폐화를 넘어서서 교육을 시장화시키면서 외국 자본까지 몰려들 태세를 취하고 있는 현재와 같은 교육 위기 속에서 교육의 공공성과 민중의 교육적 권리를 옹호하지 않는 한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와 실천적으로 다를 바 없다.

 현 시대에 있어 신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자유주의의 객관적 토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도 스스로를 자유주의라고 규정한다. 새로운 자유주의가 바로 신자유주의 아닌가. 다만 자신을 신자유주의와 다르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가 많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구별하고자 하는 자유주의가 문제의식의 출발점이 다르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인정된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자유가 출발점이고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가 출발점이다. 그러나 개별화와 공공 영역 및 각종 사회적 공동체의 해체가 촉진되는 정글자본주의의 시대에서 자유주의의 '자유'는 신자유주의의 '자유'에 전적으로 복속된다. 이 둘은 이론적으로는 자유로운 개개인이 네트워크를 통해 통합된다는 환상적 '정보사회론'을 정당하고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데서 결국 결합된다. 자신을 신자유주의자라고 말하는 신자유주의자는 없다. 초국적자본 조차도 '완전한 자유'만을 이야기한다. 신자유주의를 부정(?)하는 자유주의도 큰 흐름에서 본다면 신자유주의의 일 구성 부분이다. 사회의 주요한 대립이 독재/반독재 간의 대립에서 신자유주의/민중의 대립으로 옮아 간 이제 민중의 이해와 요구에 입각한 관점의 재정립과 공유가 매우 중대한 과제로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생각된다.(자유주의는 적지 않은 경우 여전히 주요 문제를 독재/반독재의 대립선상에서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함으로써 자신의 견해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교실위기를 둘러싼 논의는 교육운동에 그러한 과제를 당장의 문제로서 실천적으로 던져주고 있다.

2. 교실위기 현상의 요인과 계기

 * 교실위기 현상은 반공동체적인 문화 요소의 확산이라는 사회문화적 조건과 잘못된 교육개혁의 오류가 직접적인 계기로 결합하면서 증폭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교실위기 현상에는 여러 차원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여러 차원의 요인들 중 어느 특정한 하나만을 중심으로 보고자 하는 경향들이 존재한다. 어떤 논의에서는 소위 정보사회로의 변화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고, 어떤 논의에서는 문화적 변화로, 또 일부에서는 교육개혁의 오류로 교실위기 현상 전반을 설명하고자 한다. 원인에 대한 이 같은 다기한 진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각기 나름대로 일정한 설명력을 지닌 여러 요인들에서 어느 하나를 주된 것으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강요한다. 이 때문에 저마다의 취향이나 관심에 따라 각기 다른 선택을 하게 되고 결국 인식과 실천 방향의 공유를 어렵게 만드는 문제점을 낳고 있다. 이런 혼란은 조건이 되는 요소와 계기가 되는 요소를 구분하지 않은 채 병렬적으로 놓고서 그 중에 가장 주된 요인이 무엇인가를 끄집어내고자 하는 논의 방식에서 연유한다고 생각된다. 이 같은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교실위기 현상의 원인, 요인을 진단함에 있어 현상을 둘러싸고 있는 '조건'과 현상을 촉발시킨 '계기'를 구분하면서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문화적 조건은 교실위기 현상의 기본적 성격과 흐름을 규정하는 요인이 되며 교육 내적, 외적 제 정책과 사건들은 교실위기 현상의 구체적 양상과 속도를 규정하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조건으로서의 사회문화적 요인과 계기로서의 잘못된 교육개혁의 오류는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요인이 되는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결합하여 진행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1) 교실위기 현상의 사회문화적 요인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변화는 교실위기 현상을 낳는 기본 조건을 형성한다. 교실위기 현상의 주요한 측면들 - 학교와 수업, 교사에 대한 의의와 권위 부여의 약화, 개별화, 소비와 욕구 지향적 태도, 비공동체, 탈규범적 모습, 기존 한국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의 적나라한 표출 등 - 을 규정한다. 사회문화적 변화의 여러 측면들 중에서 교실위기 현상과 주로 맞닿아 있는 것은 정글자본주의, 천민자본주의, 카지노자본주의 등으로 지칭되는 현대자본주의사회의 반공동체적, 소비지향적 속성이다. 현대자본주의의 이러한 속성들은 비단 학교의 위기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위기, 공동체문화의 위기, 인간본질의 위기, 생태의 위기 등 사회전반적 위기를 몰아오고 있는데 교실위기 현상은 이 같은 사회공동체 전반적 위기의 대표적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정글자본주의의 반공동체적, 소비지향적, 분열적 속성은 그에 조응하는 사회구조와 노동력 구조, 시장원리와 이데올로기, 문화적 요소와 흐름 등을 통해 사회적 수준에서 조직화된 교육과정으로서의 교육공공성을 뿌리부터 뒤흔든다. 사회구조의 측면에서는 '쓸모 없는 것', 시장원리와 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는 '비효율적이며 획일적인 것'으로 공교육에 대한 공격이 가해지고 있으며 문화적 측면에서는 '재미없고 억압적인 곳'으로 치부되는 한편 여러 가지 비공동체적, 소비지향적 문화 요소를 확산시켜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교사-학생 간에 이루어지는 집단적 교육과정 실현을 어렵게 하고 있다.

1) 계급계층과 노동력 구조의 양극화

① 노동력구조와 학교체제와의 괴리

 교실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 중의 하나는 양극화되어 가는 사회와 노동력구조에 있다. 사회와 노동력구조의 양극화는 노동력 배출이라는 학교의 기능과 연관되면서 학교와 교육실천의 의의와 역할을 약화시키는 제 관념의 기초 조건으로 작용한다. 이전과 달리 자본의 세계화 시대, 신자유주의 시대가 몰고 오는 노동력 구조는 더 이상 절대다수에게 질 높은 공교육이 수행되는 것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20대 80사회로 대별되듯 자본의 세계화 속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의 하나가 계급계층과 노동력구조의 양극화 현상인데 이러한 양극화 속에서 자본과 지배세력에게 중요한 것은 이제 절대다수의 그럭저럭 쓸만한 노동력이 아니라 부가가치의 생산성이 높은 20의 뛰어난 핵심노동력이 된다. 따라서 교육과 관련하여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20을 뛰어난 엘리트로 잘 키워내는 구조이지 100의 교양있는 시민을 키워내는(비록 한번도 제대로 된 적은 없지만) 구조가 아니다. 결국 그들에게 모든 사람들에 대한 교육을 국가가 책임져야만 하는 기존 공교육제도는 더 이상 쓸모 없는 것이 된 것이다.1)
 반면 20대 80사회의 노동력구조는 민중에게도 사회경제적 진출과정으로서의 학교의 의의가 약화된 것으로 다가선다. 학교는 더 이상 학력에 상응하는 직업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아닌 것이다. 학교를 나와도 실업의 위협은 냉혹한 현실로 존재하며 전공과 노동과의 연관성은 점점 더 떨어진다. 소수의 직종과 전공만이 높은 연관성을 지닌다. 일부의 견해에서는 학교교육과 노동력구조와의 연관성을 더욱 높이는 것이 학교의 위기를 벗어나는 방안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노동력구조 자체가 소수의 교육받은, 혹은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생산성이 뛰어난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학교를 통해 보장해줄 수 있는 것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20대 80의 구조에서 80의 주변노동력이 얻게 되는 직업의 많은 부분은 전공 혹은 학력과 별 상관없는 것들로 구성된다. 갈수록 늘어나는 주변적 서비스직종들이 그런 것들이다.

 이처럼 양극화되어 가는 노동력구조는 자본과 지배세력, 민중 모두에게 있어 노동력의 형성, 배출 기제로서의 공교육의의 의의가 저하되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양극화된 노동력 구조와 노동력배출 기제로서의 학교체제와의 괴리는 교실위기 현상의 근저를 이룬다.2) 교실위기 현상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학교와 수업의 의의, 교사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관념의 객관적 기초가 되는 것이다. 한편 노동력구조와 학교체제와의 괴리는 교실위기 현상의 근본적 조건이 되는 동시에 공교육의 축소와 교육시장화라는 자본과 지배집단의 대응방향을 규정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공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고 20대 80에서의 '20'만을 놓고 본다면 시장화된 교육 속에서라야 비로소 의미가 충만하고 '교실위기'에서 벗어난 질 높은 교육이 수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력과 사회구조의 양극화는 적어도 정글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조류가 지배하는 현재로서는 하나의 뚜렷한 사회적 추세임에 분명하다. 교실위기 현상이 공교육 자체의 기초를 위협한다는 의미심장한 사실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교육공공성과 민중교육권을 수호하려는 의식적인 실천으로 극복하지 않고 흘러가는 추세에 내맡길 경우 교실위기 현상은 필연적으로 공교육 축소와 교육시장화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같은 추세에 대해 두 가지 방향에서 대응해야 한다. 우선은 양극화되어 가는 사회구조와 노동력구조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선 안된다는 것이다.3) 양극화 구조를 인정해 버리고 나서는 공교육의 의의와 민중의 교육적 권리를 부정하는 제 관념과 시도를 결코 막아낼 수 없다. 좀 더 평등하고 공동체적인 민주사회 건설은 현단계 우리 운동의 가장 기본적 방향이기도 하다. 둘째, 지금까지 병렬적 나열해 왔던 공교육의 두 가지 역할 즉, 노동력의 형성, 배출 기능과 총체적인 인간적 가치형성과 자아실현이라는 두 가지 역할에 대해 좀 더 '중심'적인 교육적 역할로서 후자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교육 본래의 중심 역할을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고 공교육의 위기적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방향이기도 하다. 자본과 지배세력의 입장에서처럼 공교육의 중심적 역할을 노동력의 배출이라는 것만으로 바라본다면 양극화된 노동력구조에서 공교육의 의의는 정말로 축소된 것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물론 교육과 경제와의 연관성, 노동력 형성, 배출 기제로서의 공교육의 역할을 부정할 순 없지만 인간적 가치형성과 자아실현이라는 본연의 목표와 방향이 이제는 교육의 진정한 중심문제로 나서야 하는 것이다. 또한 '노동력 형성'의 문제도 적어도 중등교육까지는 소수가 아닌 모든 사람들의 전반적 노동능력 향상에 초점이 두어져야 한다. 그것은 결국 총체적인 인간적 가치 형성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 백년 동안 쌓여 온 공교육(중등교육까지)의 '교양교육', '시민교육'의 일반적 목표는 오히려 우리의 튼튼한 명분과 근거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 양극화된 사회구조는 반드시 극복해 나가야 하지만 그 이전에라도 양극화 추세에 대항하여 총체적인 인간교육을 내세우는 것이 현재 교육공공성과 민중교육권을 지킬 수 있는 우리의 방향이다.

② 계급계층간 격차의 심화와 고착화

 노동력구조의 변화나 시장 영역으로서의 요구 외에도 양극화되어 가는 계급계층구조의 고착화도 교육공공성을 뒤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배세력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세대간 전수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양극화구조의 고착화는 지배세력으로 하여금 존재적 우월의식, 타계급계층과의 소통 단절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나아가 생활 양식의 공간적 분리까지 낳고 있는 실정이다.4) 이러한 양극화의 심화, 고착화 속에서 지배엘리트에게 공교육은 매우 불합리하고 불편하며 나아가 부당하기까지 한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자신들은 공교육을 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더 좋은 교육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데 사는 방식이 전혀 다른 민중과 똑 같이 취급받으면서 학교에서 제공하는 값싼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매우 불합리하고 불편한 것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노동자에 불과한 교사에게 귀한 아이들이 체벌까지 받는 다는 것은 정말로 참기 어렵다. 다만 학력제도와 입시제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보낼 뿐이다. 그러나, 이제 이들은 그 동안의 침묵(?)에서 벗어나 공교육의 부당함(?)을 지적하면서 적극적으로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교실위기와 관련하여 계급계층간 격차의 심화와 고착화는 두 가지 차원에서 영향을 미친다. 우선 지배집단이 갖는 우월의식, 단절의식 자체가 값싸게 제공되는 학교와 교사의 권위를 비하시키는 관념적 요소로 작용한다. 부촌 지역에서의 일부 학부모나 아이들의 권위 부정적 태도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다음으로 더 중요한 것은 이제 이들이 값싼 공교육을 부정하고 나서면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공교육에 대한 본격적 공격과 그 파급력이다. 그렇지 않아도 문제가 많은 공교육에 가해지는 본격적인 공격들은 학교와 교사의 의의와 권위의 기반을 상당히 허물어뜨려 나간다. 그러나 값싼 공교육에 대한 이들의 공격은 빈약한 재정투자의 확대나 공교육의 전반적 질 향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받을 교육구조를 분리시키고, 하나의 상품으로 선택할 수 있기를 원한다. '수요자 선택권'이 바로 이들의 모토이다. '교육상품에 대한 소비자로서의 선택권'을 보장받기 위한 지배집단의 요구는 교육을 상품으로 보고자하는 시장적 관점과 그대로 연결되며 엘리트 교육과정의 수립과 분리라는 형태를 통해 양극화된 노동력구조와도 밀접하게 결합된다.

2) 시장원리와 이데올로기

 공교육을 침탈하려는 자본과 지배세력의 요구는 시장원리에 입각한 공교육의 매도와 대대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로 나타난다. 그들은 공교육이 매우 비효율적이고 획일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경쟁과 시장원리의 도입을 통해 '효율성'과 '수월성',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교육에 대한 자본과 지배세력의 매도는 당연히 학교와 교사의 역할과 의의, 권위를 상당히 떨어뜨리는 이데올로기적 조건으로 작용한다. 세계화론, 정보사회론, 신지식인론 등 신자유주의로 연결되는 각종의 이데올로기들에는 거의 대부분 공교육의 역할과 의의를 격하하는 관념들이 개입되어 있다. '뭐든지 아무거나 한가지만 잘하면 된다'는 신지식인론이나 '정보 네트워크의 발달 속에서 학교와 교사의 할 일은 적어지고 있다.'는 류의 정보사회론 따위가 그런 것들이다. 이들은 변화하는 사회를 쫓아가지 못한다는 식으로 교사를 무능하고 나태한 존재로 취급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공교육과 교사에 대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공격은 직, 간접적으로 교실위기로 연결되는 일정한 관념적 조건을 형성한다.

3) 반공동체적인 소비와 단절의 문화

 교실위기는 주요하게는 교사-학생 간의 집단적 교육과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문화적 현상으로 나타난다. 교실위기가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앞서 살펴 본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조건들은 근본적이기는 하지만 주로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반면 가장 직접적이고 광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왜곡된 대중문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중매체를 통해 소비와 욕망 중심의 문화상품이 범람하고 있으며 반공동체적이고 비소통적인 '단절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데 교실위기 현상에서 나타나는 자기중심주의, 욕구 중심, 의사소통의 단절 등의 제 요소는 이러한 문화적 조류에 의한 영향이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교실위기 현상과 연결되는 대중문화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몇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있어 : 개별화, 비소통화, 익명화

 * 세계 또는 공동체에 대한 태도 : 탈가치화, 탈규범화

 * 행동양식의 변화 : 상품화, 물질주의, 소비와 욕구 중심

 왜곡된 대중문화 혹은 현대자본주의의 반공동체적 문화 요소가 아이들의 의식과 행동양식에 영향을 미침으로서 교실위기 현상을 야기하게 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 된다는 점은 이미 많은 논의들에서 지적되어 왔으며 또한 대부분 공감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세한 언급은 생략한다.(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대응을 위해 필요한 보다 과학적인 분석은 추후의 과제로 돌린다.) 그보다는 이 같은 문화적 요인을 어떻게 바라보는 가의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첫째, 교실위기의 주요 요인이 되는 현대자본주의의 반공동체적, 소비지향적 문화 요소를 우리는 극복해 나가야 할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일부 논의들에서는 교실위기 현상을 문화적인 것으로 보면서도 정작 기본 요인이 되는 문화 요소들에 대해서는 선악의 판단을 회피하거나 별다른 근거 없이 아예 정당한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컨대 교실위기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바라보면서 '사회문화와 아이들이 변하는 만큼, 교육과 학교가 변해야 한다'는 처방에는 이 같은 경향이 내포되어 있다. 얼핏 말 자체는 그럴 듯 하지만 이러한 처방은 교실위기와 연결되는 반공동체적, 소비지향적 문화 요소를 전적으로 승인하고 나아가 촉구하기까지 하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물론, 우리가 승인해야 하는 변화의 내용도 있지만 교실위기 현상과 반공동체적 문화 요소를 기본적으로 이 같이 대해서는 안된다.) 공교육의 해체, 축소, 시장적 재구조화냐 아니면 공교육의 강화, 민주적, 공동체적 재구조화냐라는 대립의 핵심은 어쩌면 이 지점에 있다.

 둘째, 교실위기를 야기하는 이 같은 문화적 흐름을 필연적 대세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반공동체적, 소비중심적 문화적 조류를 세대차로 단순화시키는 시각에는 이 같은 판단이 깔려 있다. 반공동체적, 소비중심적 문화적 조류를 우리는 필연적 대세가 아니라 단지 대중문화 영역과 대중매체를 상업적으로 지배하는 문화자본의 현재적 헤게모니로 바라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 특히나 아이들에게 있어서 조차 체화되고 승인된 문화적 조류나 요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신세대 문화가 상업적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에 대한 비판은 갈수록 늘고 있으며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는 아이들에게서도 이에 대한 비판의식을 적지 않게 엿볼 수 있다. 대세론은 비관주의의 나락으로 우리를 내몬다. 문화자본의 무차별적인 상업주의를 부분적이나마 통제할 수 있는 힘과 명분을 조금이라도 확보한다면 현재와 같은 헤게모니는 상당 정도 약화시킬 수 있다. 그 자리를 공동체적 문화 요소와 흐름이 차지하도록 해야 한다.

 * 지금까지 교실위기와 관련된 사회문화적 요인들을 살펴보았다. 양극화되어 가는 사회와 노동력구조, 경쟁과 물질 중심의 이데올로기, 소비와 욕망 중심의 대중문화는 서로 연결된 사회문화적 현상이다. 그것들은 정글자본주의의 반공동체적, 분열적, 소비지향적 속성의 각기 다른 차원의 모습들이다. 결국 교실위기는 현대자본주의의 왜곡된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왜곡성을 극복해 나가는 관점에서 바라봐져야 한다. 그러나 또한 공교육과 교육본질의 수호와 강화라는 차원에서 보다 직접적인 대응이 필요하기도 하다. 특히 교육공공성을 위협하는 이데올로기와 왜곡된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대응과 개입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2) 학교붕괴 현상의 확산, 증폭의 조건과 계기들

 교실위기가 사회구조적 요인에 의한 반공동체적 문화 현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한국교육의 현실 속에서 걸러지기는커녕 매우 빠른 속도로 증폭되어 온 것에는 여러 가지 계기와 교육내적 조건이 작용하였다.

 1) 교육개혁의 오류

 교실위기 현상을 촉진, 증폭시킨 가장 중요한 정책적, 교육적 계기는 신자유주의교육으로 치달은 잘못된 교육개혁의 전개이다. 이때는 이미 '신세대'문화로 지칭되는 새로운 문화적 조류와 요소가 대중문화 영역에서 문화자본의 헤게모니하에 강력하게 등장하기 시작한 때였다. 신세대문화 전반을 싸잡아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개인주의와 소비주의라는 경계해야 할 측면이 주요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의 영역 확대 및 상업주의 심화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사회적으로도 경쟁과 계층양극화의 심화, 생태위기의 심화, 공동체문화의 해체 등이 진행되고 있던 터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교육개혁의 방향은 미처 이루지 못했던 교육민주화와 교육환경 개선의 과제를 완수해 나가는 한편,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적 양극화와 경쟁, 개별화, 소비주의의 만연 속에서 총체적이고 공동체적 인간 형성을 위한 교육체제를 마련해 나가는 것이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의 교육개혁 과정은 이 같은 과제와는 정반대로 추진되었고 교실위기 현상의 증폭과 연결되는 여러 가지 부작용과 오류로 점철되어 왔다.

 첫째, 교육부 스스로 교육과 학교교육의 의의와 역할을 떨어뜨리는 관념과 원리를 대대적으로 도입, 유포시켜왔다. 교육을 서비스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수요자중심이라는 경제 원리 도입 등등이 그런 것들이다. 앞서 지적했던 학교교육과 교사에 대한 시장원리와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교육당국 스스로가 앞장서서 대대적으로 전개해왔던 셈이다.

 둘째, 열린교육으로 대표되는 개별화교육 중심 교육과정을 급격하게 도입, 확대함으로써 아이들의 개인주의, 탈규범화 등을 촉진, 증폭시켰다는 점이다. 오히려 공동체성 강화의 교육적 과제가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기 시작한 조건에서 교육개혁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갔던 것이다. 열린교육 이후로 교실위기가 닥쳐오기 시작했다는 일선 교사들의 진단은 이 점에서 전적으로 정당하다. 물론, 획일적, 주입식 교육은 당연히 극복되어 나가야 할 문제이나 그것이 집단적 교육과정 자체를 부정하고 개별적 교육과정만이 선이다라는 식으로 전개되어선 안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개별적 교육과정의 급격한 확대 도입이 '튀는 것이 좋다'라는 식의 자기중심적 문화 요소의 확산 과정과 결합되면서 그 부작용은 더욱 증폭된 형태로 진행되었다. 집단적 교육과정과 개별적 교육과정의 문제는 이론적으로 좀 더 심화된 논의를 필요로 하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두 교육과정은 열린교육론에서처럼 적대적(열린교육론에서는 집단적 교육과정을 획일적, 주입식 교육으로 매도하고 개별적 교육과정은 자율적, 창의적 교육으로 등치시킨다.)인 것이 아니라 결합, 통일되어야 할 과정으로 바라보면서, 학교교육에서는 집단적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개별적 교육과정을 함께 결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집단적이던, 개별적이던 공동체적 지향과 결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교육개혁 과정에서 진행된 모습은 교육적 지향 조차도 '개별성'을 중심에 놓는 적대적 개별화 교육과정 중심이었던 것이다.

 셋째, 잘못된 교육개혁의 와중에서 교사를 개혁의 대상으로 몰면서 교사집단에 대해 가해던 이데올로기적 공격과 권위 실추, 통제권의 박탈 등이다. 이 점은 교실위기 현상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교사들이 거의 무방비 상태로 아무런 대응책을 강구하기 어려웠던 가장 직접적인 계기였다. 이 부분은 그 동안 충분히 지적되어 왔던 터라 상술은 생략한다.

 넷째, 교육개혁이 비현실적이고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앞서 지적한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업적주의적 잦은 제도와 정책 변화가 나타났는데 이 과정에서 학교교육의 안정성과 적합성을 적지 않게 뒤흔들고 그에 따라 학교와 교사에 대한 믿음을 상당히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2) 파시즘적 억압성의 잔존과 낙후성

 신자유주의 교육재편 과정은 사회문화의 변화 속에서 요구되었던 교육적 과제와는 정반대로 나갔으면서도 교육민주화와 교육환경 개선의 과제는 방치한 채(요즘은 이마저도 거꾸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행되었다. 이 때문에 기존 한국교육의 권위주의적 억압성과 낙후성, 열악한 교육환경은 그대로 잔존되어 있어 왔고 이 같은 모순들 역시 교실위기 현상이 증폭되는 하나의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학교교육에 대한 광범한 불만을 누적시키는 한편 새로이 제기되는 문제와 상황에 대한 대응력을 떨어뜨리는 조건이 된 것이다. 예컨대, 비현실적인 지나친 규제, 아이들과 충분히 소통하기 어려운 거대학교, 과밀학급, 평가와 교육과정의 괴리, 학생회의 자율적 권한과 참여의 미비 등 여러 가지 비합리적이고 비민주적인 요소들이 교실위기 현상을 증폭시키는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3) 교실위기 현상 그 자체도 하나의 심화 요인이다.

 사람들은 어떠한 현상에 직면하여 그 나름대로 대응하기 마련이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도 마찬가지이다. 교실위기 현상에 대한 개별적 대응은 극복의 방향보다는 그것에 적응하거나 오히려 심화시키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조차도 교실위기 현상이 지속되면서 익숙해지는 가운데 개별화, 비공동체화, 탈규범화되어 나간다. 학부모도 걱정을 하는 동시에 학교와 교사를 더욱 믿지 못하게 된다. 교사 역시 점차 교육적 신념과 행위를 포기해 나간다. 따라서 교실위기 현상의 지속, 심화를 일정한 수준에서나마 중지시키고 개선하려는 직접적이고 조직적인 대응이 시급하게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 같은 노력은 우선적으로 단위 학교에서의 의식적이고 집단적인 대응을 마련해 나가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3. 교실위기 현상의 극복 방향

(1) 교육공공성의 수호, 확장

 * 교실위기 현상은 미시적으로는 아이들이 수업을 싫어하고 교사의 지도가 잘 먹히지 않아 나타나는 학교교육의 파행현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학교라는 형태로 조직화된 공교육 자체의 위기이다. 그것은 교실위기가 학교나 수업의 어떤 측면 - 실상을 제대로 모르는 자유주의자들이 이야기하듯 과도한 억압이나 획일성과 같은 측면 - 에 대한 거부나 회피5)라기 보다는 학교를 통해 주어지는 집단적 상황과 규범, 학습실천 자체에 대한 회피와 부적응의 성격이 강하고 어떠한 형태로든 공교육은 학교처럼 집단적 상황을 매개로 학습실천을 조직화하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6) 이 같은 공교육의 위기 상황을 맞이하여 우리는 기본적으로 교육공공성의 수호하고 나아가 확장한다는 관점에서 교실위기 현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공교육이 아니고서는 민중교육권과 총체적이고 공동체적인 교육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공교육을 통한 교육공공성의 확장만이 잘못된 교육제도와 과정, 교육환경을 개선함으로써 교실위기 현상을 극복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1) 교육공공성의 의의

 학교에 대한 편협한 인식 중의 하나가 오로지 억압과 지배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지배'와 '권리'의 두 측면을 같이 가지고 있다. 학교는 자본과 지배세력에게 있어 순치된 노동력을 형성하고 이데올로기적 지배를 확고히 해 나가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또한 민중에게 있어서도 사회경제적 처지와 상관없이 교육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틀거리인 것이다. 학교의 형성과정 자체도 자본과 민중 양 쪽의 요구가 결합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오히려 학교제도의 강화, 확대 과정은 교육권을 확장해 나가려는 민중의 지난한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다. 물론 자본과 지배세력은 교육내용과 선발제도, 여러 가지 제도적, 문화적 장치를 통해 교육권에 대한 일정한 양보 속에서도 교육에 대한 지배와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켜 왔다. 그렇지만 또한 이에 맞서 교육 내용과 과정을 공공화시키려는 민중의 노력 역시 지속되어 왔으며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교육의 자율성7)과 정치적 중립성8)'이다. 유럽에서의 교육공공성의 일정한 진전들은 그러한 성과들을 의미한다.

 교육공공성은 교육권을 보장받고 확장시켜 나가는 것, 그리고 내용과 과정에 있어 지배로부터 벗어나 중립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진정한 자아실현과 사회적 모순 극복의 과정으로 위치시키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무상교육의 확대, 교육기회의 평등 보장, 교육환경의 지속적인 개선, 교육내용의 국가 독점 폐기, 교육실천의 자율성 확대, 총체적 인간 형성을 위한 교육의 다양성 확보, 공동체성의 정립 등 모든 사람을 위한 교육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공공성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민중에게 있어 오직 교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보장, 내용과 과정에 대한 공적 논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그 방식은 교육의 공적(사회적) 조직화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형태는 어떻든지 국가적, 사회적 수준에서 조직화된 집단적 교육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름이야 어떠하든 '학교'와 같은 형태 말고 어떤 것이 가능하겠는가?

 지금까지의 문제는 학교라는 형태 자체보다는 그 속에서 실현되어 나가야 할 교육공공성이 제대로 실현되어 오지 못한 것에 있다. 아무리 문제가 많다고 해서 학교와 공교육 자체의 의의를 부정해서는 안되며 문제의 해결은 오직 공공성의 실현으로서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갈수록 양극화, 개별화, 상품화되어가는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 맞이하는 교실위기 나아가 공교육 자체의 위기를 우리는 바로 교육공공성의 수호와 확장이라는 방향 속에서 극복해 나가야 한다.

 2) 교실위기는 밑으로부터 나타나는 교육공공성의 위기

 교실위기 현상은 교육공공성이 밑으로부터 위협받는 현상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정글자본주의의 전반적 속성이 교육공공성을 위협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수백년 동안 쌓아온 최소한의 공공성이 제도적으로 상당히 견고하기 때문에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학교와 공교육의 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신자유주의의 의사시장정책은 공교육의 견고함에 따른 일종의 타협이다. 그러나 정글자본주의의 해체적 속성은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에 의해 상대적으로 헤게모니 장악 정도가 더욱 뚜렷한 문화적 영역을 통해 자신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교실위기 현상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교실위기라는 밑으로부터의 위기가 터지자마자 공교육을 허물어뜨리려는 흐름과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사실 교실위기 현상의 위험성은 그 자체보다는 그에 따른 파생적 행위와 대응들, 이를 빌미로 한 자본과 지배세력의 공세에 있다고 할 것이다. 공교육의 운명을 걱정하면서도 사람들은 돌아서면 내 아이라도 맘놓고 보낼 수 있는 '좋은 학교'나 교육구조를 찾기 마련이며 교사 역시 소외와 고통에서 벗어나 나름의 교육활동을 행할 수 있는 곳이나 방법을 찾기 마련이다. 이 같은 대응들은 필연적으로 학교를 서열화시키고 사교육을 더욱 확대시킨다. 결국 미국이나 영국처럼 더욱 망가진 다수의 학교와 교실위기 상황을 훌륭히 벗어난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학교는 쪼개지고 교육시장화는 촉진된다. 차터스쿨이나 홈스쿨링을 대안으로 제시하거나 공교육을 부정하면서(대안교육론에는 공교육을 부정하는 흐름과 그렇지 않은 두 흐름이 있다고 보여진다.) '대안 교육'을 제기하는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대응이다. 그들에게는 천만의 아이들과 절대 다수의 민중에게 교육권을 보장해줄 수 있는 방도가 전혀 없다. 이 와중에 자율화와 다양성을 명목으로 시장원리 도입을 확대하려는 자본과 지배세력의 공세는 더욱 본격화되고 있다. 초국적자본은 아예 교육시장의 문호를 개방하라고 몰아치고 있다. 일부 선진적인(?) 자들은 서슴없이 학교를 해체하라고도 한다. 이 같은 상황이 교실위기와 연결되는 공교육의 총체적 위기 상황인 것이다.

 이들은 학교의 축소, 시장적 재구조화가 교실위기의 해결방안이며 교육의 억압성과 획일성을 극복해줄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더욱 강력한 지배와 통제를 가져 온다. 각각의 교육단위가 사회적 통제와 국가적 책임에서 벗어날 때 더욱 획일화되고 극단적인 입시위주교육으로 흐르고 비공동체적 교육과정이 될 수밖에 없음은 지금의 사교육을 본다면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또한 자본과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적, 품성적 지배 역시 더욱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관철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2) 교육의 민주적, 공동체적 재구조화로 나아가야 한다.

* 교실위기 현상 극복의 전망이나 방향과 관련하여 유럽의 차별성은 의미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교실위기 현상이 범세계적 현상이면서도 유럽에서는 문화적, 교육적 현상으로서의 교실위기 현상이 나타나지 않거나 상당히 완화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영미일이나 우리나라와 달리 정글자본주의의 사회문화적 폐해와 신자유주의 교육원리의 관철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이다. 사회 양극화와 소비지향적 대중문화의 범람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하며 또한 그 같은 현상들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대응도 상대적으로 더욱 활발한 편이다.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 역시 그에 대한 강력한 저항 때문에 자본과 권력의 지속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용이하게 관철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유럽의 사회문화적 전통이 다르고 유럽 역시 정글자본주의의 폐해에 자유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유럽적 상황이 그대로 우리의 모델이 될 수는 없겠지만 영미나 우리나라와 비교하여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첫째, 교실위기 현상의 사회문화적 조건을 형성하고 있는 정글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조류, 소비지향적이고 왜곡된 대중문화가 반드시 극복 불가능한 필연적 대세는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유럽에서도 신자유주의의 힘은 상당하지만 유럽의 상황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정당하고 올바른 것이 아니라면 현재 아무리 대세처럼 보이고 막강한 힘을 갖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극복해야 하고 또한 극복 가능한 것이다. 둘째, 교실위기 현상의 기본적인 극복 방향을 시사해준다. 우선은 교실위기 현상을 가중시키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방향을 바꾸어 내는 한편 왜곡된 대중문화에 대한 대응력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궁극적으로는 양극화되는 사회구조의 개편도 지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향은 교육의 공공성 나아가 사회 전체의 공공성을 견지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의 극복 전망은 우리의 사회문화적, 교육적 조건에 맞게 대응 방향을 마련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에 달려 있다. 한국적 상황에서 민주주의 함양과 교육환경의 개선은 유럽에서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높은 교육열과 교육실천에 대한 전통적 권위 부여 등은 나름의 사회문화적 조건이기도 하다. 정글자본주의의 사회문화적 폐해와 신자유주의 교육에 대항하는 기본 원칙 속에서 우리의 상황에 맞는 실천 방향 설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하 추상적이나마 기본적인 대응 방향과 병렬적이지만 몇가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과제들을 제출해본다.

1) 학교의 민주적, 공동체적 재구조화

 교육공공성을 수호, 확장하는 가운데 교실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우리의 기본 방향은 공교육체제의 민주적, 공동체적 재구조화로 설정된다. 이전의 억압적 체제로 돌아가서도, 지금의 교육정책을 지속하는 것이 되어서도 안된다. 민주적 재구조화는 교육주체의 자율성과 주체성, 권리를 확대해 나감으로써 기존 한국교육의 관료적 억압성과 획일성, 낙후된 교육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고 공동체적 재구조화는 갈수록 개별화, 소비주의로 흐르는 문화적 요소와 협력과 연대의 필요성이 커지는 사회적 조건에 조응하여 함께 사는 가치 지향과 태도를 형성할 수 있는 교육관계와 교육과정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 될 것이다. 또한 민주적, 공동체적 재구조화 속에서 집단성과 개별성, 통일성과 다양성, 자율성과 규범 등 자칫 대립적으로 흐르기 쉬운 방향들을 통일적으로 결합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0 교육관계의 회복 : 교실위기 현상 속에서 빚어지고 있는 교육관계의 위기를 극복하고 협력적, 인격적 교육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교사 권위의 재정립, 소통적 교육환경 마련, 교사, 학생의 자율성 강화가 필수적이다. 소통적 교육환경 조성을 위해선 무엇보다 거대 학교, 과밀 학급 해소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익명성이 해소되고 집단적 교육과정 속에서도 개별 지도를 결합하는 것이 가능하다.

 무너진 교사의 권위 역시 재정립되어야 한다. 어떤 글에서 교사의 권위는 '인격적 존경심에서 학습자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부여하는 것'이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 의미는 '인격적으로 훌륭한 교사만이 권위를 부여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므로 교사들이여 인격 도야에 매진하라'는 것으로 다가왔다. 물론 교육자가 인격적 품성과 태도를 지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러나 존경심과 권위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본다. 교사의 권위는 마치 스포츠경기에서의 심판이나 재판에서의 판사의 권위와 동일한 성격의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권위란 어떤 과정을 책임지고 이끌어 나가기 위해 필요한 '권한'을 행사하는 데 있어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종의 사회적 관념이자 합의라는 것이다. 누구나 스포츠경기 진행함에 있어 심판의 권위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심판 개개인의 인격과는 무관하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권한 행사의 자격이 있는 가의 문제이다. 만약 심판이 게임의 룰도 잘 모르고 오심만을 일삼는다면 권위는 땅에 떨어질 것이지만 경기를 공정하게 이끌어갈 지식과 판단력이 있다면 마땅히 경기를 진행하는 심판의 권위는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심판의 권위는 두 가지 장치에 의해 보장되고 재생산된다. 자격의 부여에서부터 경기를 진행할만한 능력과 요건을 갖춘 사람을 선발하는 것과 끊임없이 심판의 권위 부여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재생산하는 것이다. 명백한 오심을 한 경우에도 해설자는 '일단 심판의 권위를 인정해야만 경기의 룰이 산다'고 주장하며 많은 사람들도 이에 동의한다. 교사의 권위 역시 교육과정을 진행할만한 능력과 요건이 있다면 당연히 정립되어야 한다. 지금 현재 교사의 권위가 위협받고 있는 것은 교육과정을 진행할만한 자격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권한 행사의 정당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관념이 크게 상처를 받은 때문이다. 이점에서 교사의 권위 실추에 대한 책임은 앞장서서 교사를 짓밟은 교육부에 상당히 두어진다. 권위가 일종의 사회적 관념이자 합의라는 점은 또한 집단적 대응과 사회적 공론을 통해 다시금 세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 교사의 자율적 권한 확대 : 학교운영과 교육과정에 대한 자율성이 확대될 때, 진정한 교육주체로 서고 상황과 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갖출 수 있다.

>> 학생자치의 확대와 규범의 재확립 : 민주성과 공동체성을 통일적으로 함양시킬 수 있는 것이 학생들의 집단적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학생 자치를 확대하고 학교운영의 일 주체로 학생들의 참여가 이루어져 나가야 한다. 집단적 자율성이 신장될 때, 교실위기를 야기하는 개별적 요소들은 아이들 스스로의 주체적 과정을 통해 일정하게 걸러질 수 있다. 학생자치의 확대 속에서 공동체적 규범 역시 재확립되어야 한다. 규범의 제정 과정에서부터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고 합의하는 것이 되어야 정당하게 지켜질 수 있다. 교실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현장 실천의 가장 주요한 방향이다.

>> 공동체 프로그램의 강화, 확대

>> 선발제도 및 교육과정의 재편 : 한국교육의 고질적 병폐인 입시위주 교육을 벗어나기 위해선 대학의 서열적 구조를 폐기해 나가야 한다. 대학서열구조를 놔둔 채 입시제도만을 손대는 것은 아무런 해결 방안도 될 수 없다. 무시험전형을 공언한 2002년 대입에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것임은 눈에 선하다. 무시험전형의 애초 의도와는 거꾸로 고교등급제, 자격수능제가 도입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입시위주교육은 여전한 채 사교육비는 전혀 줄지 않고 있다. 향후의 선발제도 개선은 반드시 대학서열구조의 폐기와 연계되어 논의되어야 한다.

 민주적, 공동체적 재구조화의 핵심은 그 같은 방향에 입각한 교육과정의 정립에 있다. 경쟁과 시장원리, 개별화 교육과정을 대폭 확대하는 7차교육과정은 즉각 중단되어야 하고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

>> 대안교육의 공적 조직화 : 학교교육과정을 민주화, 공동체화의 방향에서 정립하면서 다양성과 현실적 적합성을 제고해 나간다 하더라도 일반적 학교교육에서 포괄하기 어려운 아이들은 있기 마련이다. 특수한 교육과정이나 실험적 교육과정을 국가적, 사회적 수준에서 제대로 조직화하는 것도 어렵다. 이 같은 영역에서 대안교육은 지금처럼 뜻있는 몇몇 독지가들과 헌신적인 교사들에 의해 추진되는 상황에서 벗어나 국가적, 사회적으로 지원 받으면서 나름의 교육적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공동체의 위기에 대한 사회적 연대의 강화

 >> 연대 : 교실위기의 근원은 사회공동체 자체의 전반적 위기에 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교실위기 현상을 극복하고 나아가 공동체사회를 건설해 나가기 위해서는 정글자본주의의 폐해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전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더욱이 초국적자본의 지배가 강화되고 있는 자본의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는 연대의 폭은 국제적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최근 시애틀 라운드에서 보여졌던 NGO의 범세계적 연대투쟁은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국제 연대의 필요성과 가능성의 새 장을 열어제친 쾌거였다. 특히나 교육을 공공 영역에서 끌어내리고 상품시장으로 전락시키려는 초국적자본의 교육시장 개방 압력이 드세지는 상황에서 교육부문의 국제적 연대는 더욱 중요하다. 시애틀 라운드에서의 연대투쟁에서도 교육분야는 농산물, 환경 및 노동분야와 함께 핵심 쟁점 중의 하나였다.

 >> 대중매체 : 교실위기 현상과 연결되는 가장 직접적인 지점이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의 영역이다. 아이들에게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학교보다 더 큰 상황에서 이제 더 이상 대중매체는 교육 외적 영역이 아니다. 대중매체의 공적, 교육적 성격과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주체의 개입과 민중적 통제의 강화가 필요하다.

3) 교육과정투쟁은 시급한 핵심 사안이다.

 앞서 민주적, 공동체적 교육과정의 정립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지만 교실위기 극복을 위한 핵심 사안으로 7차교육과정에 대한 투쟁의 필요성은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교육개혁의 내용과 방식이 전반적으로 교실위기 현상을 야기해온 바 있지만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시행에 들어가 2002년부터 전면 시행될 예정에 있는 7차교육과정은 교실붕괴 현상의 극복은커녕 훨씬 더 심각한 수준으로 교실위기 현상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7차교육과정은 교실위기의 계기로서 지적되고 있는 수요자중심 원리, 개별화 교육과정을 더욱 확대한 것으로 고교2-3학년에 대학처럼 교과선택권을 전반적으로 부여하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하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이 의미하고 있는 바는 매우 심각하다. 기초교양교육의 중요성이 크게 하락한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7차교육과정은 학급제도의 폐기, 계약직의 확대와 교사간 경쟁기제의 도입, 학교간 차별화와 그에 따른 고교입시의 부활, 사학의 선발권 확보 및 자본의 교육진출 확대 등과 필연적으로 결합된다. 결국 경쟁과 개별화가 더욱 심화되는 가운데 공동체적 장치는 더욱 축소되며 교육불평등마저 심각한 방식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만약 조만간 7차교육과정의 방향을 틀어내지 못하고 자리잡게 만든다면 교실위기 현상의 가속화와 교육시장화로의 재편은 정말로 막아내기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개별화의 길로 들어선 것을 다시 통합하기는 매우 지난하며, 또한 이 과정이 가장 중심적 투쟁 주체인 교사대중의 존재 조건을 변화시킴으로써 투쟁 동력을 크게 약화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7차교육과정의 중단과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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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같은 상황은 자본과 지배세력이 '교육 평등성'을 폐기하고 교육권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축소하면서 '수월성'을 기치로 내거는 것으로 연결된다. 한편 자본과 지배세력에 있어 교육에 대한 공적 책임을 벗어버리는 순간 교육은 전혀 새로운 의미로 자본에 다가서기도 한다. 하나의 커다란 상품 시장인 것이다. 과잉 축적된 자본의 일부를 진출시키고 새로운 상품들을 개발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공교육의 영역을 축소하는 것이 더욱 필요해지고 공적 원리 대신 경쟁과 시장원리를 도입해야 한다. 교육을 하나의 시장 영역으로 보는 자본의 요구는 교육을 '서비스상품'으로 보는 관점, 시장원리의 도입으로 연결된다.
2)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근대적 학교체제'의 한계란 사실은 양극화된 노동력 구조와 국민교육으로서의 학교체제와의 괴리를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이 내세우는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로의 변화는 실제로는 부분적 변화를 전체적인 것으로 일반화한 것이며 설사 생산체제의 변화가 상당한 정도로 진전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적, 공적 교육과정으로서의 공교육제도를 부정하는 근거로 될 수는 없다.
3) 신지식인론은 양극화되는 사회구조를 정당화하면서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경쟁적 인간상을 제시하는 이데올로기이고, 환상적 정보사회론은 생산력의 발전이 모든 인간들에게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식으로 그러한 양극 사회를 미화하는 이데올로기이다.
4)  이 같은 자본과 지배세력의 이해 변화는 교육에 대한 공적 책임을 벗어버리는 순간 교육은 전혀 새로운 의미로 자본에 다가서기도 한다. 하나의 커다란 상품 시장인 것이다. 과잉 축적된 자본의 일부를 진출시키고 새로운 상품들을 개발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공교육의 영역을 축소하는 것이 더욱 필요해지고 공적 원리 대신 경쟁과 시장원리를 도입해야 한다. 교육을 하나의 시장 영역으로 보는 자본의 요구는 교육을 '서비스상품'으로 보는 관점, 시장원리의 도입으로 연결된다.
5)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는 개념 설정부터 다시 해야 한다. 그 정도라면 교실위기나 학교붕괴가 아닌 '입시위주교육의 파탄' 정도가 적당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이 상황을 대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6) 그런 차원에서 의미를 더욱 확장한다면 사실은 교육 자체의 위기일 수도 있다. 일부 정보사회론자들은 벌써부터 '학교없는 세상' 차원이 아닌 '교육없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7) 지금 신자유주의에서 말하는 교육의 자율성은 본질적으로 지배로부터의 자율성이 아니라 자본의 직접적 지배를 위한 민중적 통제로부터의 자율성에 불과하다.
8) 학교제도가 지배질서를 경제적, 문화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교육사회학의 이론적 성과들은 다만 학교제도에 내재된 지배의 측면을 밝히고자 했던 것이지 '권리'로서의 의의조차 부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파시즘의 오랜 교육지배 속에서 우리는 지배의 측면만을 보는데 너무 익숙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