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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일그러진 유토피아

2001.02.08 15:23

박영진 조회 수:1437 추천:1

이 글은 '정보화사회'라는 담론이 진행되면서 보여주는 일그러진 현재의 초상화를 그린 글입니다.'정보화 사회'의 이론적 배경에 대해 풍부하게 서술하지 못하면서 감히 제출하게 된 것은 정보화의 유행과 이에 따른 문화, 경제, 정치의 외형적 변화는 오고 있다는 판단이 있기 때문입니다.비록 이러한 외형적 변화가 자본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이행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위기에 대한 두려움과 미래의 대안적 희망을 바라는 우리에게 절묘하게 결합되어 대안아닌 대안으로 비춰지고 있는 듯 합니다. 교육운동을 고민하는 분들 또한 '정보화'의 담론을 피해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담론이 가지는 여러가지 효과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일그러진 유토피아

일그러진 유토피아

박영진(교육정보화분과, 연구원)

"만일 인류가 끝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만일 어제의 문명이 이미 뿌리뽑혔음을 인정하고, 대신 새롭게 승인된 문명속에서 새로이 재편성할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라진 옛 세대의 표현대로 '수치감 속에서 학대당하며 사는 삶'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V.포레스테 >  강수돌 [작은풍요] 중에서

1. 현실은 미래의 거울

  몇몇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미래는 지금처럼 전쟁과 분열의 사회가 아닌 화합과 평화의 사회가 될 것이라고. 굶주림, 자연재해, 대형사고 같은 갖가지 재난에서 해방될 수 있으며, 지구촌 어디든 독재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는 민주주의 사회가 꽃피리라고....

  영명하신(?) 과학기술 덕분에 그리 된단다. 지구 자원이 한정돼 있다는 한계도 과학기술 덕분에 돌파해낸단다. 굶주림이야 눈부신 유전공학이 해결해줄 터이고, 웬만한 자연 재해도 정보기술의 발달로 정확한 예측과 대비가 가능하단다. 특히 컴퓨터와 뉴미디어의 출현, 극소전자 공학의 등장으로 지구촌을 거미줄처럼 엮는 통신망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권력이 분산되고 민주주의가 단걸음에 속진하리란다.   

  과연 그럴까? 세상 온갖 이데올로기에 '속아만 살아온' 백성들이 이제는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과학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꼭 복지와 휴머니즘을 가져다줄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이다.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이야기 하나 :

한 가정이 있었다. 그 식구들은 추운 겨울을 보내기 위해 날마다 열심히 나무를 베어 땔감을 준비해야 했다. 그러다 세상이 달라져서 '난로'를 구하게 되었다. "휴, 앞으론 나무 베기 고역에서 벗어나겠구나!" 하는 안도감도 잠깐, 그뒤로는 난로에 들어갈 연료를 사야 했지. 연료비 벌기 고역에서 허덕이기는 예나제나 마찬가지였단다.

  이 동화의 이야기처럼 과학기술의 발전이 '삶의 질'을 실속있게 높여내지 못한 사례는 하고많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문명을 낳고, 생산력을 높였지만, 새로운 문명이라는 것이 반드시 인간의 얼굴을 띠지만은 않았으며, 모든 사람이 커진 파이에서 제 몫들을 누린 것도 아니었다.  

  뉴스에서, 광고에서, 틈만 나면 꽹가리처럼 시끄럽게 내지르는 담론이 있다.

  "제군(諸君)이여. 우리는 목하(目下) 산업혁명 만큼이나 중차대한 미래의 갈림길에 서있노라. 정보화 사회라는 갈림길에!"

 "컴퓨터와 정보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서 비롯된 정보통신혁명은 정치·경제·사회·문화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이론과 지식의 비중이 커진 과학기술의 시대이므로, 물질적 보상보다는 정신적 만족과 자아실현의 기회가 중시된다.

이제는 전쟁과 분열이 아닌 평화의 시대로 접어들고, 인간존중, 공생주의, 환경주의 등 새로운 이념이 등장하면서 미래에는 평화와 협동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정보화, 지구화, 국제화로 인해 국가 개념이 퇴색하고 이에 따라 문화적 정체성 문제가 새로 부각하여 민족개념이 새롭게 조명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다양성이 존중되며, 정치적으로도 참다운 민주주의가  성큼 도래할 것이다."

  정보화 사회론에 의하면 우리더러 숨가쁘게 달려 근대화 과정을 무사히 끝낸 대가로 이제 '풍요로운 잔치상'을 맞이할 준비를 하란다. 근대화의 과정을 너무 숨가쁘게 달려온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아직도 청산해야할 잔재, 풀어야할 과제들이 많다. 우리에게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은 바로 근대화의 모순을 해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지금 진행되는 정보화는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고 있지 못하다.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발전이 불평등사회인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현실은 미래를 반영한다. 이전보다 정보화가 진척되었지만, 20대 80의 사회-빈익빈 부익부사회-는 더욱 심화되고 있지 않는가? 또한 정보화가 전 지구적인 연결망을 확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 이윤축적을 위한 국가단위의 경쟁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공생주의, 인간존중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했지만, 정보화는 개개인의 경쟁을 통한 능력주의와 생산력 우선주의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공생주의와는 무관하다. 정보화의 정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소유할수 있도록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많이 가진자와 그렇지 않은자로 분할하는 잣대일 뿐이다.

  18세기에 산업사회로 재편될 무렵, 생계수단인 토지에서 내쫓긴 농민들이 한창 생겨나던 공장에 미처 흡수되지 못하고 거지떼나 도적떼, 부랑자가 되어 떠돌아다니자, 부르조아들이 '부랑자 처벌법1)'을 만들어 이들을 무자비하게 공장에, 산업사회체제 속에 갖다처넣었지. 아니 폭력적으로 편입시켰지. 오늘날 정보화의 과정 또한 노골적인 겉모습을 띠진 않았어도  폭력적 재편이란 점은 진배없다.  실업률 증가와 고용불안 사회에서 정보화에 대한 지식과 기술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고 공생을 위한 정보생산이 아니라, 자본의 이윤추구의 무한한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발버둥쳐야하는 현실이 그렇다. 새천년도 이런 현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리라.

2. 과연 정보사회는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한 대안인가?

  정보사회의 일반적 정의는 정보와 정보통신 기술을 중심으로 많은 정보가 생산·유통되는 사회 즉, 주된 인간활동이 정보 및 통신기술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는 사회이고 이러한 과정으로 옮아가는 곳을  정보화 사회라고 한다.2)

  일반적인 정의 외에 정보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두 가지 기준으로 나뉜다.3) 테크놀로지와 사회변동의 관계를 파악하는 시각에서, 기술이 사회변동을 촉발하는 순수한 동력인가?(기술 결정론적 입장) 그렇지 않은 사회변동의 독립변수인가?(사회 구조론적 입장)의 대립된 담론이 있고, 사회체제의 연속성 시각에서 산업사회와 정보사회는 과연 다른가, 정보사회는 자본주의와 다른 구성체이냐는 질문을 놓고, 정보기술의 발달이 인간사회의 경제, 정치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이로 인해 사회의 질적인 변화가 발생한다고 보는 '단절론'과 정보사회는 현 자본주의의 사회의 한 발전형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연속론이 대립한다.

  기술결정론은 기술이 사회변동을 촉발하는 주요한 동력이라 본다. 사회구조론은 기술결정론에 대한 비판을 담은 것으로 기술의 영향력을 인정하긴 하지만 사회변동의 독립변수 쯤으로 간주할 뿐, 사회적 맥락을 강조하는 것이다. 정보사회를 장미빛 미래로 보느냐, 여전히 극복해야할 사회현상으로 보느냐는 논란은 단절론과 연속론의 맥락에서 많이 일어났다.

  정보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중에 주로 단절론을 옹호하는 대표적 학자들로는 앨빈 토플러, 다니엘 벨, 피터드러커 등이다. 이들은 다가올 미래의 사회가 현재와는 질적으로 틀린 새로운 사회가 될 것이며, 우리들이 맞닥뜨린 혁명적 변화를 인류 역사의 가장 근본적인 변화 중 하나로 보고 특히 정보, 또는 지식으로 인해 산업구조는 물론 경제구조, 정치구조 등 인류가 근대 이후 이룩한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변하게 됨으로써 이전의 사회와 확실히 구분될 것이라고 한다.4)

  그러나 정보사회에 대한 비판론자들은 정보사회가 정보의 양의 증가, 통신기술발달로 인해 이전의 산업사회와 다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여전히 자본주의를 지속하고 있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단절론과 연속론 자체라기보다는 이러한 주장들의 효과이다. 현재 정보화의 진행과정에서 주로 단절론의 목소리가 컸고, 정보화의 가치가 전국민적인 이데올로기적 힘을 발휘하고 있다.

  첫째는 자본주의 모순의 은폐이다. 단절론과 연속론의 주요대립은 자본주의의 극복이냐 유지이냐에 있다. 단절론은 자본주의의 많은 문제점들이 정보사회가 도래하면 해결 될 것이라는 태평스런 낙관론에 빠져있다. 그러나 정보화가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보자체가 생산물일 수 없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노동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설혹  정보자체가 상품이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노동력 없이 상품이 될 수 없을뿐더러, 정보상품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직접 필요한 생산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생산물의 유통과 분배에  주로 관여하게 된다.5)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병폐인 불평등의 문제는 정보화로 인해 가속화 될 수밖에 없다. 정보기술이 대중화된다 하더라도 이는 산업사회에서 공장노동의 대중화를 위해 대중교육이 요구되었던 것처럼 정보시스템의 대중화를 위해 정보기술이 요구되는 것이지 자본주의사회가 유지되는 한 정보기술의 서열화와 정보의 독점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둘째는 경쟁의 일상화이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래 경쟁논리의 전면화는 불가피했지만, 정보사회에서는 더욱 심각해진다. 정보화가 진행될수록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여가시간이 늘어날 것이라는 팔자좋은(?)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일상에서 정보화가 진행되는 덕분에 일상 그 자체가 자본의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되었고, 이에 따른 경쟁도 심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정보의 양이 마구 팽창하고, 정보의 전달속도가 빨라지면서 어제 쓸모 톡톡했던 정보가 오늘은 청과물시장 바닥을 나뒹구는 배추껍데기처럼 천덕꾸러기로 전락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인지 아닌지 판단할 여유도 없다. 남과 다른 정보를 수집해야하고 남을 이길 수 있는 정보를 찾아내야 한다. 정보화 덕분에 이제 직장에서뿐만이 아니라, 휴식을 누려야할 가정에서도 이러한 경쟁은 지속될 뿐이다.

  셋째는 근대성6)에 대한 새로운 전환이 아닌 부정이다. 정보사회는 이전의 사회와 단절된 사회이기 때문에  산업사회로 대표되는 근대성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근대적인 공동체성, 노동관계, 교육관계, 삶의 방식, 근대적인 문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정보화에 따른 문화, 정치, 경제, 사회적 관계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게 된다. 정보사회와 문화, 정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연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물론 정보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 과 후의 문화양식이나, 세계관, 인간관계에 큰 변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옛 사회에 대한 도매금의 부정에서 출발하면 오랜 전통으로 보존돼온 귀중한 정신적/문화적 유산들을 소각장으로 떠나보낼 수 있다.

  예컨대 정보화가 진행되면 '종이'라는 근대적 유물은 사라질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정보화이후 종이의 소모량이 더욱 늘었다는 보고도 있을 뿐만이 아니라, 때로는 종이로 된 인쇄물이 더욱 값나갈 수 있다. 또한 사이버 문화가 대중화되어 가고 있다는데, 아직까지 세대를 초월하여 대중화되지도 않았지만, 긍정적인 문화현상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7)

  이러한 현상은 교육부문에서도 심각하게 드러나는데, 정보기술이 교육효과를 높여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인간 대 인간, 교사 대 학생의 관계를 정보기술이 온통 대신할 수 있노라 맹신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넷째는 정보통신기술의 만능주의이다. 정보통신기술은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역할을 할 때만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화는 인간사회를 발전시키기 데 보조적 구실만 할 뿐이라 봐야 한다. 어떤 학자는 이제 통신을 통해서 '인간'까지도 전송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는데, 정신나간 소리이다. 물론 이 학자는 인간을 끊임없이 분해하여 인간에 대한 모든 데이터가 통신을 통해 전송될 수 있다는 이야기겠지만, 인간은 인간 그 자체일 뿐이다. 오히려 인간을 정보로 취급한다는 것이 더 문제이다.

3. 정보사회론자들의 실수

1) 정보와 지식이 생산성 및 권력의 원천이다 ?

앨빈 토플러는 제3물결의 정보화사회는 지식과 정보가 권력의 핵심이 되는 사회이며, 새로운 부(富)의 창출 체제는 바로 이 초 기호적인 데이터, 정보 및 지식의 교환에 의존하게 되어 지식의 교환 없이는 새로운 부가 창출되지 못한다고 보았다. 피터 드러커나 존 나이스비트등의 미래학자들도 약간의 개념차이가 있을 뿐 정보나 지식이 정보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며 정보화경제 사회에서는 노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식에 의해서 가치가 평가된다는 이들의 주장은 일맥상통하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이 말하는 정보란 무엇일까?

  '정보'란 여러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자료와 과학지식들로 주로 구성된다. 이러한 정보는 저술이나 연구에 소요되는 시간이라는 형태로 혹은 통신과 교육매체에 의한 금전적 보수라는 형태로 그 대가가 치러진다. 그리고 정보는 사회간접자본의 일부를 형성하며 지식이 발명이나 사회설계를 통하여 자원의 변형에 적용되는 어떠한 체계적 형태로 될 때 노동과는 다른 형태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게된다. 이러한 정보가 인간에 의해 구현되고 창조되며 개선될 때 이를 '지식'이라는 용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8)

  그러나 이러한 정보의 개념 또한 역사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정보는 의미가 있는 것이며 주제가 있는 모든 것9)이기에 여지껏 정보나 지식이 없었던 시절은 없었다. 오히려 정보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는 의사소통, 다양한 형태의 인지활동을 포함하여, 인지된 사실들을 재료로 하여 창의적으로 조합, 재구성하는 행위 또는 행위를 통한 결과물 따위다.10) 따라서 미래학자들이 주장하는 정보란 정보의 경제적 가치, 생산되는 규모 또는 단순히 주위에 나도는 상징의 양의 증가로 파악하면서 정보증가를 사회 변화의 척도로 보는 것은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정보는 그냥 존재하되 어떻게 선택하고 구조화하느냐의 가치와 경로가 문제이고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정보사회는 정보자체가 가치를 이룬다기 보다는 자본주의적인 생산 양식 속에서 어느 부분을 이루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네그리는 '자본의 정보적 재구조화는 실질적 포섭을 심화하면서 적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사회적 수준으로 옮겨놓는다.'고 했다.

  이는 정보화 사회론자들이 말하는 정보가 부 창출의 원동력이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생산력주의가 정보를 조직·구조화하여 자본의 무한증대에 활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11)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정보와 지식이 생산성의 원천이 아니라, 여전히 노동이 생산성의 원천이며, 정보가 생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여내는데 기여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정보의 조직 및 재구조화역시 노동에 근거한다고 본다.

  다만 정보화 되어 가고 있는 추세속에서 정보를 조직하는 노동이 이전의 사회보다 강조되고 있다고 본다. 또한 권력의 문제에 있어서도 정보가 권력이 원천이라기 보다는 정보를 독점하는 자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정보가 독점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12) 이는 정보사회 역시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하기 보다는 오히려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13)

2) 정보화 시대에는 노동의 변화가 일어난다 ?

  정보사회가 되면 지식과 정보라는 새로운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율적인 종업원이 등장하게 되어 노동자의 상호 교환성이 낮아지고 중요기능을 개인 자신이 보유하기 때문에 저마다 따로 회사와 협상할수 있는 지위로 향상된다고 한다. 또한 단순한 반복적 노동에서 점점 창의적이고 지적인 형태로 변화해감에 따라, 노동규범은 통제와 노동착취에서 자율적인 것으로 바뀐다는 것이 미래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다니엘 벨은 정보경제 성장의 확대로 제조업 노동자들의 비율이 줄어들고 서비스노동이 주류를 이룰 것이다라고 단언하기까지 한다.

  정보화가 진척된 노동은 얼핏보면 더럽고 위험한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파편화되고 불구화된 노동을 더욱 불구로 만들어 노동자가 전체 생산과정에 대한 이해를 도저히 할 수 없게 만들뿐만이 아니라, 단 1초도 길다하고 급속히 움직여야 하므로 노동강도 강화, 스트레스 증가, 그리고 견경완 장애나 시각장애, 두통, 생리이상등과 같은 새로운 직업병까지 퍼뜨린다.14)

  또한 정보화는 노동력의 대체가능성이 확산됨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몇몇 아이디어뱅크에 해당되는 핵심 두뇌인력을 제외하고 대부분 노동자들은 노동인력 감소로 인한 고용불안에 노출되어 서 노동자 지위의 향상을 엄두도 내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렇듯 정보기술의 도입은 사회를 소수의 핵심 노동자층과(주로 남성노동자들에 해당함)과 다수의 주변부 노동자층(단순기술직, 단순사무직, 임시직-주로 여성노동자들에 해당함)으로 첨예하게 갈라놓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 밖에도 시간, 공간, 국경의 한계를 초월하는 정보화의 특징으로 인해 자본이 포괄적인 정보망의 구축을 통하여 범지구적으로 모든 사업체의 생산성이나 경쟁력을 기민하게 비교하여 노동자들을 무한경쟁궤도에 몰아넣는다든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정보통신망을 통해 익명으로 회사에 보고하게끔 유도하는 통제방식들의 유행 따위를 볼 때 정보화는 20대 80의 사회에서 80의 노동자들을 경쟁사회로 끌어들이고 자연스럽게 통제하는 데만 효과적일 따름이다.

3) 정보화시대에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정보화 사회론자들은 대체로 정치변화의 문제를 직접민주주의(또는 참여민주주의)가 확대되는 맥락에서 논의한다. 즉 정보화 시대의 정치체계의 특징은 원격민주주의이며, 이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전자투표, 사이버 공간에서의 여론광장, 정치, 행정 정보의 효과적인 전송등을 실현시킴으로써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일반시민의 참여가 이루어지는 실천과정을 말한다.15)

  앨빈 토플러는 대의민주제도의 위기를 지적하면서 정보사회는 결정해야할 양이 갈수록 증대하고 복잡, 다양해지기 때문에 그만큼 정치적인 결정의 부담이 무거워진다고 한다. 따라서 사회체제속에서 결정의 부담이 확대되는 동안 민주적인 참여는 필연적인 진화라는 것이다.

  존네이스빗은 1970년대 미국에서 국민투표와 국민발의권의 행사가 유례없이 늘어나면서 정치에 서 참여의 시대를 열었으며, 이를 통해 식견있고 교육수준이 높은 시민들이 원하는 정치적 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토플러와 네이스빗은 미래의 정보사회에서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이유를 그 바람직함과 가능성 및 필요성의 차원에서 제시하고 있다.

  정보화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은 비단 이들뿐만이 아니다. 많은 시민운동단체들도 정보화 사회에 대한 별 비판없이 정보기술에 대한 맹신이 팽배하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정보사회의 원격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많은 방법중에 하나일 뿐이지, 이를 두고 민주주의의 확산이라 여기는 시각은 참으로 한가롭다.

  과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소외되는 자 없이 모든 사람이 자율적으로 서로의 관계를 형성하는 정치이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의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절차/방법만 담지할 뿐  민주주의의 내실까지 보장해 주지 못한다.

  그런데 원격민주주의는 대의제를 극복하는 방법이라기 보다는 대의제의 한 모델일 뿐이고, 원격민주주의를 통해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해서 탈정치화되고 정치에서 민중이 소외되는 현상을 근본적으로 혁파할 수는 없다.

  이는 마치 대중문화와 대중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본다. 대중문화는 대중이 참여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지만, 대중문화속에 대중주체는 없는 것과도 같은 이유이다.

  원격민주주의는 사안에 따라서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수렴이 이루어 질 수도 있지만, 정치관계의 질높은 교류가 한계를 가질 뿐만 아니라, 정보의 집중과 조작에 따른 비민주성의 위험도 안고 있다. 미디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일 수 있는 '정치의 대중조작과 연예화(演藝化)'의 강화가 그대로 원격민주주의에 반영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즉, 연예인들의 경우 그들의 실체보다는 대중이 보고 싶은 것만 노출되듯 원격정치는 진지한 정책적인 논쟁이나 사안을 무시하고 정치가들의 외향과 스타일의 중요성을 부각시킬수도 있다. 또한 정보의 양이 늘어난 오늘날 결국 이러한 원격민주주의도 정보의 선택의 문제와 연관될 수 있기 때문에 정보의 독점이 존재하는 한, 권력자들의 속임수에 민중이 놀아날 수 있다.

4. 정보화 환상뒤에 숨어있는 위험 (일상, 문화, 교육, 삶 그 자체의 위기)

1) 정보통신기술의 독점과 불균등 분배

  지금 벌어지는 정보화의 가장 큰 위험은 정보통신 기술의 불평등 분배이다.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같은 직종에서 소득이 더 높다는 통계치가 있다. 또한 여성들의 인터넷 사용이 많아졌지만, 아직도 인터넷은 남성들의 거친 언어가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16)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교육정보화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정보화의 불평등 분배가 해결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현재에는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할되지만, 정보기술은 멈추지 않기 때문에 기술소유에 따른 불평등은 끄떡없이 지속되리라 보인다. 모든 사람이 점점 난해해지는 고난도의 기술을 다 따라 배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정보통신기술의 독점도 심상치 않은 문제다. 현재 인터넷 콘텐츠의 90% 이상이 영어로 만들어지고 있다. 과반수를 넘는 호스트가 미국 안에 있다.  인터넷상에서의 미국의 독점은 이미 최초의 출발자라는 특권적 위치를 넘어서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미국의' 인터넷이 되어가고 있다. 국가간의 독점뿐만이 아니라, 인터넷상에서 많은 독점적 사이트가 개설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아마추어들과의 논쟁에 진력이 난 전문가들이 자기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제한적인 뉴스그룹을 이용하거나 회원제를 선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쓸만한 웹사이트는 신용카드에 의한 결제가 아니면 이용할 수 없는 금단의 구역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2) 감시와 통제강화

  웹스터와 로빈스는 오늘날 정보통신 기술이 현대인의 모든 활동 흔적과 기록을 전자적인 감시상태 아래 남김으로써 기존의 테일러리즘을 생산현장뿐 아니라 전 사회적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켰다고 하여, '사회적 테일리즘'이라 이름짓고 있다고 한다.17)

  웹스터와 로빈스의 말처럼 이미 한국도 감시와 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버스를 타면 손톱만큼 크기의 감시카메라가 운전석을 주시하고 있다. 생산현장에서는 노동하는 동안의 감시뿐만이 아니라 의견수렴을 가장한 '동료 고발하기' 코너가 유행이라고 한다.

   000영화에서는 누명을 쓴 어떤 사내가 FBI추적을 받게 되는데, 이 사내가 지나간 곳은 몇 분도 안되서 FBI요원들이 들이닥치곤 한다. 이렇듯 정보화는 성역이 없다. 인간의 모든 것을 정보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전자주민카드'의 전단계인 '주민등록증 갱신'도 정보화로 인한 감시와 통제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주민등록증 갱신은 전자주민카드를 도입하려다 시민들의 저항에 한발 뒤로 물러나 실시하는 정책이다. 전자주민카드와 같지는 않더라도 10손가락 지문이 모두 컴퓨터에 입력되기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갱신한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정보가 노출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3) 교육가치의 위기

  자본주의는 노동력을 재생산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다.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교육 내용의 변화가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다. 그러나 변화의 요구는 예상보다 심각하다. 정보와 이론적 지식이 강조되는 허구적 이데올로기로 인해 교육의 진정한 가치들이 훼손되고 있다.

  공교육은 동등한 교육기회 실현으로서 의미가 큰 것이고 따라서 정보기술의 대중화를 위한 정보기술교육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정보사회를 찬양하는 사람들이나 정부는 정보기술 교육을 넘어 정보사회에 대비한 새로운 인간형을 요구하고 있다.

  '신지식인 양성정책'은 창조적 지식인을 요구하는데, 이 내용은 총체적이고 균형적인 인간형보다는 전문적이고 창조적인 인간형에 더 값매기는 교육가치를 함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육관계에 있어서도 교사와 학생의 인간관계보다는 지식전수의 교육관계에 더욱 중심이 실려있다.

  '정보화'는 교육가치의 으뜸자리에 놓일 수 없다. 미래의 어떤 풍파에도 당차게 견딜 온전한 사람됨(全人)을 키우는 게 여전히 교육의 주된 목표 아닌가. 사회가 파편화돼 가는 시대에는 더구나 사람들과 또 자연과 더불어 상생(相生)하며 살아가게 돕는 교육이념이 간절해진다. 그런데 경쟁논리와 능력주의만 부추기는 '교육정보화'는 무너지는 교실에 아무런 버팀목이 돼주지 못한다

4) 비자본적 영역의 자본화

  정보사회는 문화상품이 날개 돋히는 사회라고들 한다. 강수돌은 [작은풍요]에서 정보사회에 문화산업이 화두가 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로 인해 서로가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폭이 매우 좁아질 뿐만 아니라 예사로 거짓을 일삼게 된다는 사실이다. 현실에서 대부분의 광고는 과장이나 허위로 뒤덮이고 있다. 유행은 소비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기보다는 약점을 감추고 그럴싸한 부분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이바지한다....(중략) 소비자는 생산자들이 노동과정에서 어떤 고통을 겪는지, 원료가 어디서 와서 어떻게 쓰이는지 도통 모른다. 이러한 분리는 정보와 문화가 상품이 되어가는 현실에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데, '정보사회'와 '문화산업'이라는 이 시대의 화두가 그 단적인 사례들이다."

  농경사회에서는 일과 삶과 놀이가 분리되지 않았다고 한다. 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분리가 진행되었는데, 근대에 와서는 비자본적인 영역까지 상품화 되어가고 있는 경향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문화상품이다.

  그런데 문제는 문화상품이 대중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낙관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강도가 강화되면서 드링크제가 날개돋힌 듯 팔리는 현실이 즐겁지만은 않은것처럼 말이다. 문화상품이 미래의 주요한 산업전략이 될것이라는 전망은 그만큼 삶의 휴식조차도 상품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다.

  여유가 없는 삶, 놀이를 잃어버린 삶이 과연 가치있는 삶일 수 있을까?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나닌 대가는 휴식을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는 역사의 굴레를 만들어 놓을뿐...

5. 대안적 유토피아를 위하여

  헌천년? 아니 새천년은 위기의 시대이다. 인간, 자연, 지구 모두가 위험수위에 놓여있다. 지금 살아있는 자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대안적 미래를 고안해야 한다. 그러나 정보사회는 우리에게 대안이 돼 주기에는 턱도 없다. 정보사회가 질적으로 단절된 새로운 사회가 아니기도 하지만, 정보사회의 가치로는 위험수위를 낮출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정보화담론의 무분별한 희망과도 불평등을 구조화하는 자본주의와의 결별도 시도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역사속에서 여지껏 한번도 인간을 인간답게 대접해 주지 않았고, 자연을 온전히 돌봐주지도 못했다. 이제는 인간을 인간답게, 자연을 자연답게 구성해낼 새로운 가치가 필요하다. 정보화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제대로 활용해야한다. 그리고 그 활용의 주체는 바로 우리가 되어야 한다.

 학창 시절, 학생회 선거때에 보았던 문구가 생각난다.
 "단절의 꿈이 역사를 밀어간다"
 이제 우리는 모순된 자본주의적 가치와, 왜곡된 정보화의 가치와 단절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주--------------------------
1
) 산업혁명 당시 영국에서는 나이가 많아 노동을 할 수 없는 거지는 '거지면허증'을 받지만, 건강한 자가 유랑할 때는 그를 결박하고 피가 나도록 치며, 두 번째 걸리면 한 쪽 귀를 베었다. 그래도 거듭 유랑하면, 사형에 처하였던 피의 입법이다. 이러한 '유랑죄'로 사형을 받은 사람이 무려 7만 2천여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강수돌(1999), [작은풍요]
2) 서강대 정치학과의 강정인 교수는 '정보사회'와 '정보화사회'라는 용어를 구별시켜 정보사회로 가는 이행기를 정보화사회라고 정의한다.
3) 김해식(1997) '정보사회의 자리매김',
4) 제3의 물결로 널리 알려진 앨빈 토플러는 시대구분의 방법으로 '부창출의 체게의 변화'라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그에따라 인류의 역사를 '제1물결은 농업혁명시대, 제2물결은 산업혁명의 시대, 제3물결은 정보혁명의 시대'로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피터드러커의 구분은 전환이라는 단어를 이용하는데, 1차전환은 도시의 형성, 활판 인쇄술의 발명, 종교개혁등으로 맞이하게 된 르네상스시대이고 증기기관의 완성으로 산업혁명을 더욱 촉진시킨 2차전환을 지나, 현재는 지식사회로의 이동인 진행중인 3차전환의 시대라고 설명하며, 지식사회로의 이동은 탈자본주의 사회로의 이전을 뜻하며 지식자체가 자원인 사회를 뜻한다고 한다.다니엘 벨은 탈산업사회라는 용어를 제시한 학자이다. 그는 전반적 시대구분을 하지 않았지만 이전의 산업사회와 구분되는 정보사회상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산업구조와 산업조직에 큰 변화가 올것이라고 하며 이의 역할로 역시 정보아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5)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뒤에서 하겠다.
6) 여기서 표현한 근대성은 정보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의 시점을 표현한 말이다. 학술적으로 근대성에 대한 의미규정과는 다름을 밝혀둔다.
7) 이에 대해서 다음호에 교육문화분과에서 제출할 예정입니다.
8) 여기서는 정보와 지식의 관계에 대한 미세한 논의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9) Frank Webster(1995) [정보사회이론]
10) 권오혁(1995)'정보의 본질과 특성', 한국공간환경연구회엮음
11) 이에 대해 김주환은 정보사회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적인 한 양태를 일컫는 개념이며 생산물이 커뮤니케이션 노동-즉, 교환의 정보적 조건의 생산은 상품가치 생산의 필수적인 한부분이며, 이러한 정보적 조건을 생산하는것-에 의해 상품으로 재생산되고 소비된다고 이야기 한다. 이는 정보가 직접 생산물을 만드는 생산원료가 아니고 생산물을 부가가치의 상품으로 재생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기여하고 있다는 의미로 파악된다.
12) 이에 대한 언급은 4번텀에서 다룰 에정이다.
13) 쉴러는 오늘날의 '정보폭발'은 대부분 자본주의의 냉혹한 행진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14) 강수돌(1999) [작은풍묘], 이후출판사
15) 정보화 사회의 정치과정의 변화와 민주주의에 관한 연구
16) 수잔C.헬링, [컴퓨터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성과 민주주의]
17) 강수돌(1999)[작은풍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