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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식인론'의 등장은 대대적인 캠페인이나 거시적인 정책방향 또는 교육지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신지식인론 등장의 실제적인 뜻은 그 동안 몇 가지 담론들로 분산되어 있던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체계가 이제 미래관, 사회관과 사회조직원리에서 인간관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일관되고 총체화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신자유주의의 교육 패러다임 역시 시장원리 도입에서 교육방법론, 교육적 인간상의 제시에 이르는 전반적 체계를 이루게 되었다. 특히 신지식인이 인간 형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신지식인론 등장의 가장 실질적인 의미는 <신자유주의교육 패러다임의 총체화>에 있다고도 하겠다. 신지식인론의 등장과 신자유주의와 진보교육의 패러다임

신지식인론의 등장과 신자유주의와 진보교육의 패러다임

천보선(책임연구원)

 - 지금 김대중정권은 21세기 새로운 이념적 인간형으로 '신지식인'이라는 상을 제시하면서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캠페인의 와중에서 어느새 '신지식인'은 국가발전전략과 교육지표로까지 등장하였다.

 - '신지식인론'의 등장은 대대적인 캠페인이나 거시적인 정책방향 또는 교육지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신지식인론 등장의 실제적인 뜻은 그 동안 몇 가지 담론들로 분산되어 있던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체계가 이제 미래관, 사회관과 사회조직원리에서 인간관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일관되고 총체화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신자유주의의 교육 패러다임 역시 시장원리 도입에서 교육방법론, 교육적 인간상의 제시에 이르는 전반적 체계를 이루게 되었다. 특히 신지식인이 인간 형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신지식인론 등장의 가장 실질적인 의미는 <신자유주의교육 패러다임의 총체화>에 있다고도 하겠다.

 - 신자유주의는 자신의 이념과 교육 패러다임을 체계화하면서 이데올로기적 지배를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다. 지식사회론을 매개로 한 신지식인 논의를 통해 신자유주의는 '생존을 위한 지식경쟁'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상당정도 각인시키고 '경쟁력있는 인간 형성'의 문제를 교육의 중심 문제로 부각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 이러한 상황에서 이제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체계화, 교육 패러다임의 총체화에 맞서 진보적 사회역사관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제출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진보교육 역시 사회역사관과 인간관, 지식관 그리고 그에 기초한 총체적인 패러다임을 제출해야만 신자유주의교육에 체계적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다. 어찌 보면 그 동안 급격한 변화, 수세적 힘관계, 이론적 한계 등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해서 그 동안 미루어져 왔던 총체적인 진보교육 패러다임 정립의 과제가 오히려 신자유주의로부터 강제받기에 이른 것이다.

 - 그렇지만 당장에 새로운 진보교육 패러다임을 구체화하기에는 커다란 한계가 있다. 아마도 적지 않은 논의 과정과 시간을 필요로 할 터.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진보적 교육 패러다임의 정립'을 주제로 하는 '담론 형성의 시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진보적 교육진영의 집중적 관심과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 글은 향후 담론 형성을 위한 출발로서의 문제제기이다.

 - 이 글은 세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지난 본 연구소 창립 심포지엄에서 다룬 바 있었던 교육지표로서의 신지식인의 문제점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고, 다음으로 신지식인론을 매개로 나름의 일관된 틀을 갖추게 된 신자유주의의 교육 패러다임의 체계를 살펴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보교육 패러다임 구성을 위한 향후 논의와 관련하여 몇가지 문제제기를 담았다.

Ⅰ. 신지식인 교육이념의 등장과 그 본질

1. 교육지표로서 '신지식인'의 등장

  ◆ 담론으로서의 신지식인론

 - 신지식인에 관한 논의는 물론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새로운 인간형의 문제로 주로 집중되지만 단지 그것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신지식인론은 정보사회론(지식사회론), 새로운 지식관 등과 결합된 신자유주의의 전체적 담론의 한 부분이다. 신지식인론의 대강1)을 요약하면,

  "도래하는 21세기는 지식이 사회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의 원동력이 되고 국가와 기업의 흥망성쇠가 창조적 신지식의 존재 여부에 따라 판가름나는 지식기반사회이다. 지식기반사회는 높은 차원의 지식 창조로 끊임없이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여나가는 신지식인이 핵심을 이루는 사회이며 우리는 국제경쟁에서의 생존과 경쟁력의 우위 확보를 위해 창조적 지식기반국가로 거듭나야한다. 창조적 지식기반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신지식인의 양성이 필수적이며 그를 위해 사회전체의 변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육의 전면적 변화가 요구된다."  신지식인이란 '지식을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능동적으로 창출하는 사람', '기존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상으로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개선, 혁신하는 사람2)'으로 개념화되었으며 지식기반사회에서 의미있는 지식은 항상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살아있는 지식'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누구나 신지식인이 될 수 있다'는 구호아래 '전국민의 신지식인화'를 국가적 지표로 설정하고 있다.

 ◆ 교육지표로의 등장

 '신지식인론'은 지식기반사회와 지식기반국가 등의 개념과 짝을 이루면서 몇차례의 공식적인 정부 입장, 정책 방향의 발표 등을 통해 거시적인 국가발전전략으로 승화되어 왔고 또한 한국교육이 추구해야할 핵심 지표로 자리잡았다.

 '창조적 지식기반국가 건설을 위한 정책 과제에 모든 국민의 적극적 참여를 촉진하고 신지식인을 발굴, 우대할 필요가 있다3).'(경제대책 조정회의)

 '4500만  국민이 모두 신지식인이 될 필요가 있으며, 예산운영 방향도 국민을 신지식인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김대중, 1999년 기획예산위 국정개혁 보고회의에서)

 '지식기반사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 지식기반사회는 신지식인이 정치, 경제, 사회 및 문화 활동의 핵심을 이루는 사회입니다.'(창조적 지식국가 건설을 위한 교육발전 5개년계획 시안 중 '계획의 배경과 기본방향'에서)

 교육부문에서 '신지식인 양성'이 핵심적 지표로 등장한 것은 교육발전5개년계획안을 발표하면서 부터이고 이후 현정권은 새물결운동, 브레인코리아21 등을 펼쳐 이를 전면화시켜 나가고 있다. 현정권은 신지식인 양성을 위한 교육의 역할을 * 학생들의 신지식인적  기본소양 함양 * 평생학습사회의 구현 * 신지식인 우대의 사회적 분위기 확산 등으로 꼽았으며4) 새로운 교육과정의 개발, 통신 및 멀티미디어 환경의 대대적 확충 등 전국민의 신지식인화를 추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 중이다.5)

 ◆ 신지식인론의 신자유주의적 본질

 어찌보면 생소한 개념이기도 한 신지식인론이 98년말 처음으로 공식화6)된 이래 이렇듯 순식간에 국가발전전략과 교육정책의 핵심지표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신지식인론이 기본적으로 현재 김대중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정당성을 보강해주고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민 동원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신지식인론은 지금까지 세계화와 무한경쟁, 구조조정 등의 협소한 모습으로 비쳐져 왔던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수준을 사회역사관과 인간관의 수준으로 까지 확대, 심화시키면서 이념적 공세를 펼쳐 나가는 데 일정한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7)

 이러한 신지식인론에는 자신의 신자유주의적 본질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신지식인 담론을 주도하는 힘이 주로 정부와 자본, 보수학자와 언론 등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이나 사람들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점,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및 교육재편과 전혀 대립되는 면 없이 정책적 연속성, 정합성을 지니면서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점은 정황적으로 그러한 사실을 말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한경쟁구조의 사회, 경제적 가치에 따른 지식과 인간의 재단, 성공지상주의 등의 핵심적 개념과 내용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관점과 일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신지식인론은 신자유주의에 의해 채택된 공세적인 동원 이데올로기로 규정된다.

 - 신지식인론의 등장과 확산과정은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총체화, 체계화, 세련화과정이며 그를 둘러싼 논쟁과정은 현단계 신자유주의와 노동, 민중의 정책적, 이념적 대립이 구조조정 등의 문제를 넘어서서 이제 세계관과 인간관 등의 문제로 확대, 심화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2. 교육이념으로서 신지식인론의 문제점

 (1) 엘리트주의 교육관

 교육이념으로서 신지식인론이 지니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은 엘리트주의 교육관으로서 결코 대중적 공교육의 이념이나 지표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점은 신지식인상이 좋으냐 나쁘냐에 대한 논란을 떠나 대중적 공교육에 대한 기본 관점의 문제로 가장 치명적인 결함이다.  

 물론, 신지식인론에서는 누구나가 신지식인이 될 수 있다면서 전국민의 신지식인화를 내세운다. 그러나, 전국민의 신지식인화란 허구적 신화일 뿐이다. 정부나 대표적 신지식인론자인 김효곤 등이 말하고 있는 신지식인의 모습, 즉 '사물지, 사실지뿐만 아니라 방법지를 체득하고 지식의 생성, 저장, 활용, 공유 과정에 필요한 정신 자세, 습관, 기본 능력을 갖추고 실천을 통해 지속적으로 가치를 창조해 나가는 21세기형 인재8)'로서의 신지식인은 그야말로 상당한 지식 수준과 능력, 매우 철저한 자기관리를 해나가는 고도화되고 긴장된 사람으로 결코 도달하기 쉽지 않은 인간형이다. 그러나 허구성의 본질은 단지 신지식인이 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의미 자체가 치열한 경쟁구조 속에서 다수의 패배자와 낙후된 사람들을 전제로 하는 '상대적' 개념이라는 데에 있다.

 신지식인론의 원형을 제공하고 있는 피터 드러커는 '지식노동자'에 대하여 "마치 중세에서의 '기사'나 자본주의의 '부르조아'처럼 지식사회의 가장 중심"이며 '리더쉽의 집단'으로서 자신의 비젼, 안목, 정보 등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는 능력과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데9) 이는 결국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지 못한 채 관리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수 많은 사람들을 전제로 한 새로운 엘리트 집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신지식인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가'라는 의미도 마찬가지로 전문적이지 못한 다수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더욱이 정부 주도의 신지식인 켐페인에서 소위 신지식인 모델로 선정된 사람들의 다수가 어떤 분야에서 입지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신지식인의 실질적 의미가 '치열한 경쟁구조속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경쟁에서 승리해 나가는 엘리트'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정부와 신지식인론자들은 신지식인이 소수의 엘리트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숨긴 채 한편으로는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사탕발림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신지식인이 되어 뉴 밀레니엄을 스스로 주도해 나갈 것인가. 아니면 지식소작인으로 부림을 당할 것인가10)'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으면서 사회와 교육 전체를 '신지식인 양성 체제화'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엘리트주의 교육관은 '수월성'의 추구와 '편향되고 왜곡된 창의력'의 강조, 경쟁기제의 도입과 교육자원의 불평등한 분배라는 교육 패러다임으로 연결되며 이는 결국 교육과 학교 서열화, 그에 따른 입시교육의 심화, 나아가 교육의 불평등을 확대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 파편화되고 물신화된 인간형

  '신지식인'은 어떤 명분과 수사를 덧씌운들 교육적으로 결코 바람직한 인간상이 아니다.

 교육은 올바른 사회, 역사의식과 풍부한 문화적 소양, 그리고 정당한 노동능력을 갖춘 '총체적 인간' 형성을 지향해야 하며, 또한 그를 위해 각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측면의 인간적 소질과 능력을 개발해 나갈 수 있는 교육원리를 지녀야 한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만 풍부하고 인간적인 삶의 조건과 능력을 갖출 수 있으며 교육은 모든 사회 구성원의 그러한 풍부한 삶의 형성에 복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노동의 세분화와 전문화는 총체적 인간 형성의 기반 위에서 결합되어야 한다. 이러한 총체적 인간 형성의 교육이념은 갈수록 사람들의 생활이 분절화되어가고 물신숭배가 팽배해지는 현대사회에서 더더욱 절실하다. 그런데 신지식인론에서는 총체적 인간 형성의 교육 이념과 원리를 오히려 거꾸로 돌리면서 비교육적이고 반역사적인 인간상을 이념형으로 내놓고 있다.

 첫째, 신지식인은 분절적이고 파편화된 인간상이다.

 신지식인론은 특정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강조한다. 전문성의 강조 그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총체적 인간 형성과 사회역사의식 등을 전제로 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일반적 지식의 가치를 폄하함으로써11) 전문성만 습득한 파편화된 인간형을 제시하는 것이 문제다. '무엇이든 한 가지만 확실히 잘하면 된다.'는 식의 분절적 인간 형성의 관념을 유포하며 게다가 자기 분야에서의 최고를 강조하고 사람들을 치열한 경쟁에 내몰아 분절성의 심화를 더욱 부추긴다. 한 분야만을 알고, 특정한 분야에서만 실천해 나가는 인간은 결코 우리가 지향해 나가야 할 바람직한 인간형이 아니다. 그것은 기형적 인간 형성이며, 그만큼 인간의 가치를 왜소화하는 것이다. 한 사회에서 전문가들은 반드시 필요하고 또한 전문가들은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지향해 나가야 하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한 전문성의 지향 역시 총체적 인간 발달, 풍부한 삶의 형성의 기반 위에 있어야 한다.

 신지식인론의 분절적 인간상은 그들의 교육패러다임에서 외국어 등의 조기교육의 확대, 기초 및 교양 교육의 방기, 수월성의 강조 등으로 연결되고 있다.

 둘째, 신지식인은 물신주의적 인간상이다.

 신지식인론은 지식의 생산성, 부가가치를 중시한다. 또한 경쟁에서의 승리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한다. 신지식의 개념 자체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식'이기도 하다. 신지식인론의 이러한 관점은 신자유주의의 극단적 상업주의, 물신주의가 지식과 인간에 대한 가치판단에까지 이른 것임을 보여준다. 김효근 등이 제시하고 있는 사실지, 사물지, 방법지 등의 구분도 결국은 경제적 가치에 따른 새로운 지식 서열화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서 신지식, 신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 제반의 인간적, 해방적 가치와 지향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거세, 배제시키고 있다. 사실 인간적, 해방적 가치와 신지식인의 핵심 요건인 지식의 생산성, 부가가치라는 경제적 가치는 온 인류를 무차별적 경쟁의 전쟁터로 내모는 신자유주의에 있어서는 모순, 충돌되는 가치이기도 하다.

 '지식이 곧 돈.'이라는 세계은행 스티글리츠 부총재의 말처럼 결국 신지식인이란 치열한 경쟁구조에 파묻혀 오로지 경제적 가치를 지향하면서 생산의 중심이 되는 '신지식'을 갖추고 '지속적으로 가치를 창조해 나가는 21세기형12)' 신자유주의 인간형인 것이다.

  셋째, 신지식인은 삶의 여유와 풍부화가 없는 고통스런 인간상이다.

 신지식인은 치열한 경쟁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나가야만 하는 기계적 인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신지식인은 이론적 지식뿐만 아니라 문제해결에 필요한 노하우를 체득하고 지식의 생성, 저장, 활용, 공유과정에 필요한 정신자세, 습관, 기본능력을 갖춰 부가가치를 높여나가는 사람13)'

'어떤 분야에서든 자기의 일과 관련된 지식을 끊임없이 체득하고 공유하며 이를 부가가치 창출로 연결시킬 줄 아는 사람'14)

'끊임없이 개선, 개발, 개혁해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능력' - 피터 드러커

'각 조직에 있는 개개인들은 꼼꼼하게 메모하고 경험과 지식을 전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15)'

  소위 지식기반사회의 치열한 경쟁구조를 전제한다면 신지식인은 오직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혹은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최고가 된 사람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인간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삶의 여유, 삶과 자신의 인간적 가치를 확대하려는 지향이나 과정은 조금도 허용되지 않는다.

 Ⅱ. 신자유주의 교육 패러다임의 체계화

 ◆ 신지식인론과 신자유주의 교육 패러다임의 체계화

 - 앞서 말했듯이 신지식인론의 등장은 신자유주의가 자신의 인간관을 드러내고 교육적 인간상을 제출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신지식인론 등장의 진정한 의미는 그을 통해 신자유주의가 자신의 교육 패러다임을 일관된 관점과 체제로 비로소 체계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

 - 이전까지 신자유주의교육은 주로 시장논리와 경쟁기제 도입 등 교육의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열린 교육이나 새물결운동 따위로 나타나는 교육원리와 방법론의 변화, 창의력과 자기주도적 학습 등의 강조로 나타나는 교육방향은 신자유주의교육과 무언가 연관된 듯 하면서도 마치 별개의 과정인 것처럼 비춰지기도 하였다. 실제로 이 때문에 많은 혼란을 야기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신지식인론의 등장으로 신자유주의 교육은 '지식사회'라는 사회역사관/ '신지식인'이라는 교육적 인간상/ '지식기반국가'라는 국가발전전략/ '신지식인양성'이라는 교육의 역할/ 신지식인양성을 위한 교육방법론으서 '열린 교육', '창의력과 수월성'의 강조, '개별화와 자기주도적 학습'/ 그리고 그러한 교육체제의 운영원리로서 '시장논리와 경쟁기제' 도입이라는 일관되고 총체적인 교육 패러다임을 갖추게 되었고 분리된 것처럼 보였던 것들이 분명한 결합구조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 신지식인론의 등장으로 신자유주의교육은 그 동안 미처 말하지 못해 왔던 내용들을 채우면서 흩어져 있던 원리와 방향들을 하나의 일관된 체제로 묶을 수 있게 되었지만 우리에게 있어서도 그 동안의 혼란이나 애매함을 벗어나서 신자유주의 교육 패러다임의 실체를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그들이 추구하는 교육변화의 방향이 무엇인지, 그들이 말하는 창의력이 어떤 창의력인지, 도대체 그들이 무엇을 향한 열림인지 명확해진 것이다.

1. 사회역사관

(1) 지식경쟁사회론

 1) 구성 체계

 - 신자유주의의 사회역사관은  '앞으로의 사회는 고도로 발달한 생산력하에서 로봇이 모든 일을 대신하고 인간은 놀고 먹는다'는 따위의 장미빛 미래학16)과 '정보화 담론'과 '세계화 담론' 등으로 구성되는 지식경쟁사회론17)으로 대표된다.

 - 지식경쟁사회론은 21세기 미래사회로 나아가는 새로운 사회경제체제로 정보화사회 또는 지식사회 등을 제시한다. 정보화사회, 지식사회는 지금까지와 달리 노동과 자본이 아닌 지식과 정보가 생산의 결정적 요소가 되는 사회이며 지식과 정보의 경쟁력이 치열한 경쟁구조 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관건이 된다고 주장된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경제체제로서의 정보화사회, 지식사회는 이미 시작되고 있으며 향후 미래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각각의 사회와 국가는 지식기반국가로 거듭나야하고 개개의 기업과 사람들은 그러한 사회에 걸맞는 능력과 규범, 문화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고 한다.

 2) 지식경쟁사회론의 반인간적, 반공동체적 본질

 1. 물질주의, 생산력주의의 사회역사관

 - 지식경쟁사회론은 극단적인 물질주의, 생산력주의에 기반한다. 물질적 성장을 추구할 뿐 아니라 인간의 지식마저 생산성이나 부가가치, 경쟁력 따위의 물질적 가치로 평가하는 지독한 물질주의이며 생산력의 발달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생산력주의이다. 그들이 말하는 지식사회란 생산의 관건이 된다는 지식의 경쟁을 축으로 끊임없는 생산력 발달을 추구하는 멈추지 않는 전차와도 같다. 가속적인 물질적 성장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과 모순, 자연 파괴에 대해 그들은 말하지 않거나, 부수적인 파생물로 치부하거나, 생산력의 발달이 그 모든 문제들을 치유할 수 있다는 근거없는 믿음을 갖는다.

 2. 무한 경쟁의 정글 사회

 - 세계화 담론에서 표현되듯 전지구적 범위의 치열한 무한경쟁 사회를 그리고 있다.

 - 신자유주의자이자 대표적인 지식경쟁사회론자인 드러커가 말하는 '치열한 경쟁속에서 변화와 위험이 항상적으로 도사리고 있고, 지식의 경쟁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기업과 국가는 살아 남을 수 없는 사회'가 바로 지식경쟁사회인 것이다.

 - 치열한 경쟁사회가 인간적이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지만 더 높은 물질적 성장을 위해 경쟁은 치열할수록 좋은 것으로 본다. 약육강식의 정글 사회 아닌 사회상은 상상조차 하지 않으며 다만 사람들에게 각고의 노력으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아슬히 살아남기를 권고한다.

 3. 항구적 자본주의체제를 꿈꾸는 자본중심적 역사관

 - 지식경쟁사회론에서 그리는 미래의 사회경제체제는 물론 자본주의체제이다. 지금의 사회경제체제가 자본주의라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다. 그러나 때때로 미래사회를 그린 가상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자본주의가 아닌 전혀 다른 공동체적 사회경제체제를 그리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고도로 발달한 생산력 하에서는 생산력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식경쟁사회론은 무한경쟁을 통한 끊없는 물질적 성장을 강조하고 전제함으로써 자본주의의 항구화까지 그리고 있다.

 4. 숙명론적, 비주체적 역사관

 - 모든 인간들을 반공동체적이고 비인간적인 경쟁에 내모는 정글사회가 결코 사회역사의 발전이고 교육의 지향이 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지식경쟁사회론은 그에 대한 어떠한 가치판단도 지워버린 채 단지 그것이 역사적 필연이고 모든 인간에게 부여되는 숙명임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정글사회에 대한 숙명론적 시각은 역사발전 주체로서의 인간을 부정하는 몰주체적이고 운명론적인 시각이다.

 - 또한 그런 의미에서 매우 반교육적인 이념이기도 하다. 설사 현 시대가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의 시대라 하더라도 사회역사관과 교육이념 만큼은 공동체적이고 인간화된 사회를 지향해야 하며 또한 현 시대의 가장 큰 문제인 물신주의와 비인간화 경향을 극복해 나갈 의지를 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2) 자본 투자와 노동력 공급 기지로서의 국가

 - 신자유주의의 국가관은 크게 두가지 흐름으로 나타난다. 작은 정부론과 국가경쟁력 강화론이다. 작은 정부는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이고, 국가경쟁력 강화론은 오히려 국가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것으로 얼핏 보아 상충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본과 신자유주의에 있어 이 두가지는 결코 상충되지 않는다. 규제 완화, 복지와 공공 영역의 축소 등으로 나타나는 작은 정부는 자본 활동의 자유와 시장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고 기업 구조조정, 교육개혁 등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전개되는 노력은 자본 투자 조건과 노동력 확보를 위한 것이다. 개방화나 노동시장 유연화 같은 경우는 작은 정부론과 국가경쟁력 강화론이 일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의 국가관은 자본에 대해서는 작은 정부를,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는 적극적 정부를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신자유주의의 국가관이 작은 정부론으로 대표되어 왔지만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그보다는 시장 확대와 투자 조건의 확보라는 자본의 요구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한 '자본 종속화'가 본질적으로 더 타당한 규정이 될 것이다.     

 - 국가의 역할과 관련하여 국가경쟁력 강화 이데올로기는 철저히 극복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국가경쟁력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에 우리의 대항을 가장 무디게 만드는 지점 중의 하나이다. 무차별적 구조조정, 실업의 양산, 노동조건의 강화, 교육에 대한 시장논리 도입은 반대하면서도 많은 경우 국가경쟁력 강화 이데올로기는 쉽게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을 넘지 못하는 한 노동자, 민중은 각개 격파당할 수밖에 없으며 논리적으로도 수세를 면할 수 없다. 우선, 국가는 그 자체가 생산 단위가 아닌 바에야 결코 실질적인 경쟁력 단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경쟁력의 실질적 의미는 '자본 유치력'이다. 금융 개방으로 투자가 용이하고, 기업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교육개혁으로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이 풍부할 때 자본 유치력이 증대된다. 현 정부가 지금 죽어라고 하고 있는 일들이 이런 것들이다. 그러나 오히려 자본 유치, 특히 그로 인한 초국적자본의 지배 강화는 경제 단위로서 국가의 지위를 허물어뜨려 나간다.

 'IMF위기에 노출된 외화 부족은 무분별하게 우리 기업들을 외국 기업에 인수, 합병되도록 했다. 금융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자동차산업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업체들이 외국인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사실상 우리 경제는 제2차산업혁명시대의 상품생산을 위주로 하고 있고, 제3차산업화분야에서 인력 개발에 첫걸음을 디디려고 하고 있으나. 이러한 첨단 분야 인력들의 대부분이 외국 기업에 흘러가버리면 우리 산업은 거품만 남지 않겠는가.'18)

 1980년대 초반부터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왔던 뉴질랜드 같은 경우는 지금 현재 자국 기업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결국 신자유주의의 국가경쟁력의 실체는 초국적자본의 구미에 맞는 상품시장, 자본시장, 노동력시장으로의 탈바꿈일 뿐.

 - 신자유주의 국가관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국가의 역할이란 결국 자본 유치를 통한 고용 확보의 노력 뿐이다. 그러나 20대 80사회라는 개념에서 보이듯 충분한 고용 창출은 불가능하며 이마저도 초국적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경우 엄청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 요컨대 신자유주의의 지식경쟁사회론과 국가관은 지극히 자본중심적인 사회역사관이다. 끝없는 물질적 성장을 사회역사의 가장 기본적인 방향으로 놓는다는 점에서, 비인간적인 경쟁구조를 더더욱 심화시키는 사회상을 그린다는 점에서, 인간적, 사회적 모순과 위기에 대해 애써 눈감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거기에는 인간과 공동체가 없다. 인간의 지식마저도 생산성으로 평가받고 경쟁의 도구로만 쓰인다. 사회적 평등이 진전되지 않는다면 지식경쟁사회는 더 높은 생산력하에서 20대 80사회보다 더한 1대 99사회가 될지도 모른다.

 3. 인간관

 - 신지식인론에서 보이듯 신자유주의는 엘리트적인 경쟁적 인간상을 제시한다. 그러나 신지식인론은 신자유주의적 노동구조속에서 자본이 요구하는 '핵심노동자'상일 뿐이다. 20대 80사회에서의 20일 뿐이다. 그들은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소수의 지배자와 80에 해당하는 다수의 주변인들이 그들이다.

 - 소수의 지배자란 결국 자본, 특히는 독점자본과 초국적자본이다. 그들은 지식경쟁사회에서 자본을 토대로 지식과 기술을 독점적으로 장악한 강력한 지배세력으로 군림할 것이다.

 - 다수의 주변인은 버려지는 인간이 될 수도 있다. 다수의 인간은 사실상 지식경쟁과는 무관한 주변노동이나 20을 위한 서비스에 종사하거나 아니면 그야말로 노동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버려진 상황에 놓일 터.

 - 신자유주의의 인간관은 세가지 측면을 지닌다. 첫째, 이념적 인간상으로서 경쟁적, 물신적, 몰주체적 인간관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서 신지식인상에서 다룬 바 있다. 둘째, 사회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서 적자생존의 인간관이다. 능력있는 자만이 살 권리가 있고 생존의 능력 또한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패배자와 낙후된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책임이다. 셋째,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서 고립적 인간관, 엘리트 중심적 인간관이다. 치열한 경쟁과 분절화된 생활구조 속에서 인간적 유대와 공동체적 집단 범주는 그다지 필요치 않다. 또한 이 사회는 지식경쟁을 해나갈만한 능력있는 자들의 사회로서 신자유주의에 있어 '인간'의 문제란 이들 엘리트들만의 문제이며 같은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패배자나 낙후된 사람들은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 신자유주의의 엘리트 중심적인 인간관의 문제는 이야기가 좀 더 필요하다. 신자유주의는 그 속성상 인간과 인간, 계급계층간의 단절을 추구한다. 극단화된 상업주의의 개별화 전략, 자본의 분할 지배 전략은 사람들의 집단을 더욱 잘게 쪼개면서 계급계층간의 단절 뿐 아니라 세대간의 단절까지 낳고 있으며 각 개개인들을 집단 범주를 매개하지 않은 채 직접 자본운동에 포섭해 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주변인들, 노동자, 민중에 대한 배타성이다. 개별적 수준에서 직접 자본운동에 포섭하게 된 마당에 집단적 범주로서의 이들 서민이나 하층민들은 더 이상 배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며 다만 귀찮고 불편한 존재가 될 뿐이다. 그 결과 이들은 이제 관심과 사고의 대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예컨대 미국의 뉴욕이나 LA같은 대도시에서는 '버림받은 게토'와 '성벽화된 요새19)'라는 단절된 계층적 거주 공간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버림받은 요새는 더 이상 유효한 노동력으로 간주되지 않는 하층민들의 집단 거주지이며 성벽화된 요새란 다른 계층의 접근을 불허하는 부유층과 초국적 엘리트들의 성역화되고 있는 거주지를 의미한다. 성벽화된 요새와 버림받은 게토의 양극화는 신자유주의의 20대 80사회, 소수의 핵심노동과 다수의 주변노동으로의 양극화 구조 속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현상, 공간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도 서울 강남 일부 등 일정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러한 현상이 성벽화된 요새에 사는 사람들, 즉 사회적 지배 집단과 엘리트들이 주변인들에 대해서는 관계와 사고를 단절한 채 오직 자신들간의 관계, 자신들만의 문제에만 관심을 두게 된 사실을 문화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활환경과 노동과정에서 주변인들과의 접촉 기회는 점점 없어지고 이제 이들 부유층,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곧 인간 전체의 문제로 간주하게 된다. 이같은 엘리트 중심적 인간관은 신자유주의의 인간관에 그대로 반영된다. 장미빛 미래는 자신들의 유토피아이며 지식경쟁사회는 자본과 기술, 능력을 기초로 자신들이 지배하고 주도하는 사회이다. 신지식인이라는 어차피 소수일 수밖에 없는 새로운 개념의 엘리트를 이념적 인간형으로 내건 것도 마찬가지이다. 신자유주의는 치열한 지식경쟁의 바깥에 서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사회인지, 또 누구에게나 공통된 인간적 모습은 어떤 것인지 전혀 말하지 않으며 관심조차 없다. 다만 생존해 나가려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협박을 해대고 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에게 있어 인간이란 소수의 지배집단과 엘리트만을 의미하는 것이며 버림받은 게토처럼 주변인들은 버림받은 인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의 평등성과 사회적 책임은 내동댕이쳐졌으며 오직 몇몇 엘리트를 잘 키우는데 관심이 있을 뿐이다. 사회경제적 조건, 문화적 조건이 열악한 학습자, 수학능력이 뒤처지는 학습자에 대해서는 어떠한 배려나 관심도 두지 않는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비록 자본이 필요로 하는 순치된 노동력 양산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모든 아동을 교육대상으로 삼았지만 이제 신자유주의는 일부의 아동만을 교육의 대상으로 설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4. 교육관과 교육 원리

 (1) 교육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 신자유주의에 있어 교육이란 경제의 도구에 불과하며, 교육 자체도 시장원리가 관철되어야 할 경제적 영역이다.

 - 처음에는 교육부문의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하더니 신지식인론에서는 아예 교육을 경제의 종속적 위치로 놓고 논의를 시작한다. '지식경제'로 나아가기 위해 교육시스템을 전면 개혁해야 하고, 교육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적 인간인 '신지식인' 양성 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한다.  신지식인론의 '일과 학습의 경계 해체'와 '학교와 기업의 파트너쉽20)'은 이러한 교육의 경제 종속을 전제로 삼으면서 제기되는 것이다. 일과 학습의 경계해체는 본래적 의미로서의 종합적 인간발달을 위한 학습과 노동의 통일이 아니며 학교와 기업의 파트너쉽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기여가 아니라 경제에 종속된 교육의 항상적인 필요 노동력의 재생산 관계일 뿐인 것이다.

 교육내용 역시 자본 지배가 직접적으로 강화된다. 교육내용의 중심을 이룰 '신지식'이란 이미 자본의 상품 논리에 의해 걸러지고 가치판단된 것일 수밖에 없으며 신지식인적 소양 역시 자본이 요구하는 품성과 태도, 자질에 불과하다.

(2) 지식관

 - 신지식에 대한 논의에서 보이듯 생산성과 부가가치, 경쟁력 따위의 경제적 가치로 지식의 가치를 매긴다. 지식의 물신화이며 따라서 인간 자체의 물신화이다.

 - 경제적 가치에 따른 새로운 지식 서열화를 추구한다. 사물지, 사실지, 방법지 등의 논의는 부가가치에 따라 지식을 서열화하려는 시도의 한 형태이다.

 - 신자유주의의 신지식관에 따라 인문, 기초과학의 폄하, 해방적 지식의 배제가 나타난다.

 -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창의력도 지식의 생산성, 부가가치의 창출에 중심을 두는 개념이다.

(3) 교육원리와 과정, 교수-학습 방법론

 - 신지식인으로 개념화되는 경쟁적 인간형과 핵심노동자 군을 효과적으로 양성하는 방법론과 교육과정을 추구한다. 능력주의, 경쟁주의, 전문성 등을 내세우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창의력을 강조한다. 우수안 엘리트 양성을 추구하는 수월성은 모든 것에 연관된 핵심적 원리로 자리한다. 또한 신지식인의 요건이 되는 자기주도적 학습력을 강조하고 지속적인 부가가치 창출하기 위해 평생학습 패러다임을 제출한다.21)

 - 엘리트 집단이 효과적으로 배출되면 되기 때문에 일(一) 대 다(多) 학습조직, 평준화 교육, 강의식 교육 등 전반적 상승을 추구하는 교육방법론이 '획일성'이라는 비난하에 부정된다. 대신에 개별 교육과정과 자기주도적 학습, 수준별 교육과정등이 주된 것으로 추구된다. 그리고 컴퓨터를 매개로 한 교육관계의 재편을 추구한다.

 - 신자유주의교육관의 중요한 지점 중의 하나는 교수-학습 방법론이 '자발적 학습자'를 전제로 하여 전개된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다양한 상태와 조건으로 인해 실제의 교육장면에서 부딪치는 가장 큰 문제는 사실 학습자의 자발성 여부이지만 수월성 교육, 엘리트주의 교육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몇몇의 자발성만 북돋고, 그 능력을 한껏 키워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 열린 교육의 실체는 수월성 교육이다.

 1) 수월성의 원리 - 학교 서열화, 입시 교육의 심화, 교육 불평등의 심화

 신지식인 교육 패러다임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수월성에 대한 강조이다. 말로는 누구나  신지식인이 될 수 있다고 하고, 또한 온 국민의 신지식화를 명분으로 사회적 총동원체제를 갖추어 나가지만 신지식인은 몇몇밖에는 그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 새로운 엘리트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교육의 수월성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수월성의 강조는 결국 소위 신지식인적 자질과 생산성 정도에 따라 학습자를  나누고, 차별화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지식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더욱 높여 나가기 위해 선발되어진 '예비적 신지식인'이나 이미 '신지식인'으로 형성된 엘리트  집단에 교육적 지원을 차별적으로 확대해 나갈 수밖에 없으며, 그로써 교육 격차는 더욱 벌어져 나간다. 급작스럽게 추진되고 있는 브레인코리아21이 바로 신지식인으로의 발전 가능성에 따라 교육 지원을 차등화하는 수월성 패러다임의 사례이다. 수준별 교육과정, 개별화 학습, 자기주도적 학습, 수행 평가론 등도 이와 관련된다.

 신지식인론의 이러한 수월성 패러다임은 노동력의 직접적 배출구조인 대학교육의 서열화와 불평등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며, 그에 따라 초중등학교에서의 입시교육도 더 치열해질 터. 다만 입시의 기준이 신지식인적 소양과  자질이 될 뿐이다.

 2) 부가가치 중심의 교육과정

 1. 기초교양교육, 기초학문의 토대 파괴

  신지식인론의 '신지식' 패러다임은 교육과정을 심각하게 왜곡시킬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 논리의 압박으로 기초 학문이 위기를 맞고 있는 마당에 경제적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볼 때 소위 신지식의 범주에 들기 어려운 인문학과 기초과학은 그 근간마저 흔들려 나갈 것이다. 초중등교육에서 실현되어야 할 기초교양교육 역시 일반 지식 따위로  그 서열이 폄하되어 점차 그 비중과 지위를 상실해 나갈 것이다.

 기초교양교육과 기초학문의 토대가 파괴되어 가는 상황에서 사회역사에 대한 가치관과 인간적 품성을 함양시켜 나가는 인성교육은 아예 설 자리 마저 잃기 쉽다. 그야말로 거의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꼼꼼하게 기록하는 습관22)' 따위의 부가가치 생산에 도움이 되는 태도로서의 인성 만이 교육될지도 모른다.

 2. 창의력의 편향된 강조와 창의력의 왜곡

 새로운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자질로서 '창의력'에 대한 편향된 강조와 왜곡도 신지식인 교육 패러다임의 한 부분이다. 기초교양교육과 인성교육이 비켜선 자리를 창의력에 대한 강조가 메우고 있다. 교육내용과 방법, 평가 기준으로서 창의력의 형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온갖 발명대회나 수행 평가, 열린 교육의 시도 속에서 다양하게 권장되고 모색되고 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형성해 나가는 자질과 능력'으로서의 창의력은 주체적 인간이 갖추어 나가야 할 자질과 능력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친 편향은 문제가 있다. 창의력에 대한 편향된 강조는 창의력이 형성되는 기반 자체를 약화시키기도 하고 여타의 교육적 가치나 지향을 왜소화한다. 창의력의 형성은 그 성격상 기초적 지식과 능력에 기반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기초교양교육의 기반 위에 서야하며 또한 창의력의 올바른  사용을 위해 인성교육의 기반 위에 서야 한다. 그런데 창의력에 대한 편향된 강조는 그 형성 기반인 기초교양교육과 인성교육의 약화를 초래한다. 신지식인론은 돈이 안되는 지식을 폄하함으로써 창의력을 특별히 강조하면서도 그 기반을 약화시키는 자기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창의력이란 고도화된 인간적 자질과 능력으로서 검증과 평가가 쉽지 않고 창의력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나 방법도 아직까지 교육학적으로 체계화되고 분명하게 정립된 부분이 많지 않다. 그런가운데 창의력의 편향된 강조는 어설픈 부작용을 낳기 쉽다. 창의력과 다양성을 함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던  소위 '열린 교육'의 무방향성은 '돌대가리 교육'이라는 혹평까지 낳고 있으며 비현실적 수행평가는 유명무실화되거나 아니면 수행평가를 위한 학원(한국의  사교육은 정말로 창의적이다!)까지 생겨날 정도로 기형화되기도 하는 실정이다.

 또한, 창의력에 대한 편향된 강조는 여타의 교육적 가치와 지향을 왜소화시킨다. 창의력은 총체적 인간 형성의 과정에서 지향해야 방향 중의 하나일 뿐이다. 창의력이 공동체성이나 주체성 등의 제 가치 보다 반드시 우위의 인간적, 사회적, 그리고 교육적 가치가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지나친 성장이 인류에게 위협을 가져다 주고 비인간적 경쟁구조와 분업의 세분화로 갈수록 파편화되어 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공동체성과 인간성의 회복>이야말로  으뜸의 교육적 가치를 부여받아야 한다.

 신지식인론의 창의력 패러다임이 지닌 더욱 큰 문제는 창의력 자체를 왜곡하는 데 있다. 신지식인론의 창의력이란 '새로운 부가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경제적 가치와 범주에 가두어 버리는 경향을 지닌다. 교육내용의 중심을 차지할 '신지식'이 그러하고 교육을 지배할 자본의 항상적 요구가 그러하다. 돈이 되지 않는 창의력, 자본의 지배를 뛰어 넘는 상상력은 성장 과정에서 거세될 것이고 관심과 상상력은 자본의 요구와 경쟁구조에 의해 규정되어 버릴 것이다. 예컨대 부가가치 창출에 몰두하는 신지식인 훈련만을 받은 사람이 과연 정글 사회를 뛰어 넘는 공동체적이고 평등한 세상을 꿈이나 꾸겠는가? 창의력 역시 얼마든지 기형화되고 가두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분야에 있어서는 놀라운 창의력을 지닌 사람이 다른 분야에 있어서는 아무런 대처 능력도 없는 경우를 얼마든지 발견한다.

 3) 자기주도적 학습 중심 - 교육 방식, 교육 관계의 변질

 신지식인론은 또한 '자기주도적 학습'이라는 교육방법을 패러다임으로 제시한다. 그것은 신지식인이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학습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 나가는 인간형이기 때문이다. 자기주도적 학습력은 신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필수 요건 중의 하나이며 초중등과정에서부터 자기주도적 학습을 통해 그러한 능력을 키워 나가야 한단다. 이제 교육은 자기주도적 학습이 중심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신지식인론의 자기주도적 학습 패러다임에는 교사에 대한 불신과 컴퓨터에 대한 신뢰가 짙게 배여있다.

 '이제까지 선생님들은 선생님이라기보다는 그저 가르치는 보조장 역할을 해왔을 뿐이다. 오히려 그런 역할은 인간보다도 컴퓨터가 더 잘해낼 수 있다. ..... 가령 초등학교의 읽고 쓰기, 수개념 익히기, 중등 학교의 외국어 및 역사 교육뿐 아니라, 의과 대학의 의학적인 진단이라든가 공과 대학의 엔지니어링 코스와 같은 것은 멀티미디어가 통합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스스로 효과적인 학습이 가능하다.  ........   학생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하나의 도구로 이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가르치는 교사가 될 수 있다. 즉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학습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독립적인 학습자가 된다. 아동들이 어리면 어릴수록 호기심이 많아 무궁무진하고 다양한 자료를 손끝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인터넷 등에  더욱 친숙해질 것이다. 따라서 컴퓨터는 그들을 재미있게 안내하고 지시할 수 있으므로, 학습 동기를 높이고 지속 학습 효과를 가질 수 있게 된다.' (허운나,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필요성과 교육 정보화, 정보화시대 교육의 선택, 대화출판사, 1997)

  여기서 자기주도적 학습이란 주제 학습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주제 설정에서부터 성취에 이르기까지 학습자 스스로 해나가는 학습과정을 말한다. 주체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자질과 능력으로서 자기주도적 학습력의 형성은 필요하며 또한 자기주도적 학습력을 신장하는 교육방법으로서 자기주도적 학습과정도 필요하다. 그러나, 신지식인론의 자기주도적 학습 패러다임처럼 주제학습과 교사에 의해 주도되는 교육과정을 폄하한 채 자기주도적 학습을 주된 학습과정으로 것에는 많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첫째, 학습자의 다양한 구성과 측면을 보지 못한 채 학습자 일반을 '자발적 학습자'로 전제하는 비현실적 관념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초중등교육과정에 있는 아동과 청소년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아이들은 노는 것을 더 흥겨워하며, '공부가 즐겁다'거나 하다못해 '힘들더라도 공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붙들기가 쉽지 않다. 매우 적극적인 모습에서부터 전혀 흥미와 의지를 지니지 않는 데 이르기까지 학습자의 자발성 수준은 다양하며, 또한 같은 학습자라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분야에 따라 자발성의 정도는 달라진다. 따라서 교육과정의 전개 자체가 학습자의 자발성 정도에 내맡겨지게 되고 교육 성취 정도 역시 자발성 여하와 정도에 따라 커다란 편차를 나타내게 된다. 특히나, 학습 의욕을 상당 기간 또는 지속적으로 지니게 되지 못하는 경우 문제는 매우 심각해질 수 있다. 실제로 교육과정에서 가장 크게 나타나는 문제 중의 하나가 학습과 교육관계에 대해 흥미와 의지를 갖지 못하는 학습자의 자발성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특정 분야만에 몰입하거나 특정 분야를 거부하는 편향된 자발성도 기형적 발달(신지식인론에서는 이를 전문성의 심화로 볼지도 모른다.)을 가져오게 되는 문제점을 낳는다.

 둘째, 자기주도적 학습과정은 학습자의 사회경제적, 문화적 배경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관심을 두게 되는 분야나 수준, 자기주도적 학습에 필요한 제반 정보나 지식에 대한 접근성 정도 등 많은 부분이 학습자의 배경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자기주도적 학습과정을 중심에 두는 경우 교육 성취에 대한 사회경제적 규정력이 더욱 커질 우려가 있다.

 셋째, 인격적인 교육관계가 지닌 다양하고 총체적인 교육적 의미를 극단적으로 왜소화하는 관점이 내포되어 있다. 컴퓨터는 결코 인간으로서의 교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 학습자의 다양한 자발성을 전제로 할 때 컴퓨터가 교사를 대체할 수 있다고 예시한 분야들 조차 실제로는 많은 부분 그것이 격려든 강제든 교사의 직접적이고 인간적인 역할을 필요로 한다. 인격적인 교육관계를 단순 지식의 전달과 방법지의 지도(자기주도적 학습과정에서의 교사의 역할로 설정된다.) 정도로 왜소화하는 관점은 '자발적 학습자'라는 전제와 연결되면서 컴퓨터를 매개로 '독립적인 학습자'상으로 전환된다. 독립적인 학습자 상은 사실상 기존의 교육관계나 교육구조를 벗어난 개념이며 신지식인론은 이 지점에서 대중적 공교육의 파기, 총체적 인간 발달의 이념 파기, 기초학문과 기초교양교육의 파기, 인성교육의 파기를 거쳐 교육 자체를 부정하기에까지 이른다. 실제로 일부  논자들은 아예 내친김에 사회적 조직과 제도로서의 교육을 과감히 전먼 부정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더 이상 "준비된 교육자"와 "학습자"의  이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스템으로서의  총체적 상황이 너무나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지식의  생산과  교육을 전담할 수 있는 집단이 별개로 존재하기 어려우며, 예컨대 아직까지 개발자들의 머리속에 있는 신상품과 아이디어를 다른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더 이상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라는 이분법을  가정하고 있는  교육이라는 개념은 지식혁명시대에 적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대신,  교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점진적 학습자이며, 교육현상이란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사람과 전문적으로 배우는 사람의 관계에서 벗어나  사람들끼리의 공유와 협조, 지원의 문제로 인식되어야 하는 것이다.' - 한승희, '신지식인 운동의 선결과제로서의 평생학습사회의 실현', 교육마당21 5월호, 1999

  4) 평생학습 - 평생의 고통

 신지식인론은 평생학습 패러다임을 제출하고 있다. 그러나 신지식인론의 평생학습은 인간적 삶의 확대와 풍부화 과정으로서의 평생교육이나 학습이 아니라 일생을 두고 지속되는 끊임없는 노동력 재생산만으로 위치지워 지는 평생학습이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해야 하는 신지식인의 상에서 이러한 평생학습 패러다임은 필연적으로 제기된다. 게다가 치열한 경쟁구조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동력과 지식을 계속 고양시켜 나가야 하는 매우 고통스럽고 긴장된 과정이다. 요즈음 이른 새벽에 외국어 학원과 컴퓨터 학원을 다녀야 하고 밤을 세워 논문들을 써내야 하는 중년 신사들의 고통스런 과정이 바로 신지식인론의 평생학습의 상인 것이다.

(4) 교육체제 운영 원리 : 시장원리와 경쟁 기제

 - 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충분히 논의되어 왔기 때문에 생략한다.

 III. 총체적 인간 형성과

민주적 공동체사회를 지향하는 진보교육

◆ 역사발전과 교육의 철학적, 인간학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 대안적 논의가 필요하다.

 - 신지식인론은 사회의 극단적인 경쟁구조를 전제로 이윤과 부가가치의 창출과 경쟁에서의 승리에 매진하는 편협하고 왜곡된 인간상과 그러한 집단이 지배하는 사회구조를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앞으로 우리들이 추구해야할 사회상과 진정으로 바람직한 인간형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지식인론이 교육 자체를 부정하는데 이르러서는 전면적 논쟁이 불가피하기도 하다.

 - 총체적 인간형성을 위한 교육 패러다임에 관한 본격적 논의는 뒤로 미룬다. 여기서는  공동체교육과 관련한 논의에 국한하여 몇가지 문제만 던지고자 한다.

1. 사회역사관과 교육이념의 유기적 관계

 - 교육의 역할은 총체적 인간 형성과 사회역사의 유지, 발전이다. 따라서 교육이념을 세우는 데 사회역사관은 중요한 핵심 지표의 하나다. 올바른 사회역사관과 결합될 때 교육이념은 비로소 개혁적이고 진보적일 수 있다. 더욱이 현재와 같은 사회적 위기와 혼란, 교육의 위기 속에서는  더더욱 중요하다.

 - 올바른 사회역사관의 재정립 문제 역시 현재는 '담론 형성의 시기'라고 생각된다. 급격한 사회변화로 인해 예전의 준거는 많이 무너져 내린 반면 새로이 정립된 내용은 매우 미미하다. 아마도 상당한 시일에 걸쳐 많은 문제제기와 논의과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일정한 윤곽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2. 21세기는 위기와 가능성의 시대이다.

 - 사회역사관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고 좋은 것인가?'라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가치론적 판단이 개재된다. 사회역사관의 정립은 그러한 가치론적 판단속에서 현단계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주요한 문제와 모순들에 대한 문제인식과 해결, 극복의 방향을 설정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논의는 '시대 규정'에 관한 문제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시대 규정에는 인간과 사회의 의미에 대한 가치 판단과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총체적으로 집약되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1) 인간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위기의 시대

 - 다가오는 21세기는 급격한 생산력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분명 '위기의 시대'이다. 그 위기는 인간과 사회 자체의 위기를 의미한다. 극단적인 물질주의와 상업주의, 경쟁의 심화 등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의 위기', 더 이상의 자정 능력과 유지 능력을 상실해 나가고 있는 '생태의 위기', 극단적인 빈부 격차와 실업 등으로 나타나는 20대 80사회의 '민중생존권의 위기', 독점의 심화와 초국적자본의 세계지배로 인한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위기', 각종 분쟁과 핵 위협으로 인한 '평화와 생존의 위기' 들이 전반화되어 인간과 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위험 사회'나 '불확실성의 시대'와 같은 경고성 담론들도 확산되고 있다.

 - 물론, 이러한 위기적 징후나 현상들이 어제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 동안 숨가쁜 성장과 경쟁 속에서 누적되어온 문제들이 이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정도의 비등점에 이르게 되었고 결국 인간과 사회 자체의 위기라는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단계에 이른 위기는 최근 '지속가능성의 위기'로 개념화되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한 인식과 실천의 전환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대인 것이다.

 2) 새로운 사회역사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가능성의 시대

 - 그러나, 다른 한편 21세기는 사회역사를 한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의 험난한 과정을 통해 이룩해 온 민주주의의 진전, 과학기술의 발달, 생산력의 증대는 인간의 삶과 사회를 한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 문제는 발달된 과학기술과 생산력이 어디에, 어떻게 쓰여지게 하는가의 문제이다. 지금까지 과학기술과 생산력을 발달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경쟁의 도구로 쓰여진 측면이 크다. 지식이나 창의력도 어떻게 하면 경쟁에서 이길까에 집중되어 왔고, 함께 나누고 잘사는 방법을 마련하는 데는 인색하였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인간의 지식과 과학기술, 생산력이 인간성과 생태의 회복, 평등한 삶의 질 향상, 민주주의의와 공동체사회의 실현 등 인간과 사회 스스로의 문제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지속가능성의 위기에서 벗어나 함께 잘사는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대 80이라는 개념은 한편으로 80%의 사람들이 주변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회가 아니라 노동 강도와 노동 시간이 20%로 줄어들면서도 더욱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객관적 토대가 이미 마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지속가능성의 위기인가 역사의 발전인가는 인간 스스로에 달려 있는 문제이다.

 3) 생산력주의의 극복이 출발점

 - 가능성의 시대를 열려면 무엇보다도 우선 맹목적인 '성장주의', '생산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23). 생산력주의는 본래의 목적이 되어야 할 삶의 질 향상, 민주주의의 실현에 의미를 두지 않고 생산력의 발달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다. 성공과 승리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쟁주의는 생산력주의의 또 다른 표현이다. 생산력주의는 생태파괴적 자연개발, 인간파괴적 경쟁구조와 상업주의, 물신주의 등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따라서 우선 생산력주의로부터 벗어날 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정당한 판단과 기준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극복과 발전의 방향을 마련할 수 있다.

 - 생산력주의는 경쟁주의, 물신주의, 기술주의24), 경제 중심적 세계관, 성공지상주의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생산력주의를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적 경쟁이 치열하면 할수록 생산력 경쟁과 물질적 성장에는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성과 자연생태를 파괴할 정도의 맹목적 경쟁과 개발을 부정한다면 일단 생산력주의에서 벗어나 제반의 사안들을 바라보기 시작해야 한다. 물론 생산력주의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문제의 해결 그 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단지 인간적, 공동체적 가치에서 문제들을 바라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는 출발점일 뿐이다.

 - 한편, 생산력주의를 극복하자는 것이 생산력이나 기술발달의 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맹목성에서 벗어나 생산력이나 기술발달이 모든 인간의 가치와 삶을 드높이고 풍부하게 하는데 쓰여질 수 있도록 바르게 위치지우자는 것이며 더 적게 성장하더라도 인간적 가치와 생태의 보전에 주력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태주의 등에서 제기하는 '지속가능한 사회'는 매우 긴요한 문제제기이다.

3. 새로운 시대 교육은 어떠한 사회를 지향할 것인가?

 1) 21세기 인류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주요 문제와 과제

 - 21세기를 맞이하는 한국사회와 인류가 안고 있는 주요한 문제들을 이것저것 짚어보자.

   ▶ 인간성 상실의 위기 : 극단화된 물신주의와 상업주의, 경쟁의 심화에 따른 인간적 가치의 하락, 인간관계의 파괴가 나타난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돈, 출세, 성공 등 물신적 가치가 의식과 실천을 지배한다. 사이버 인간의 등장, 호모비디오쿠스와 같은 분절적 인간형의 출현, 인간복제 등의 문제는 인간성 자체의 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이다.

   ▶ 민중생존권의 위기와 계급대립의 심화 - 실업, 빈부격차, 중산충의 몰락, 삶의 질 하락. 그에 따라 계급대립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과 무한 경쟁은 민중생존권을 더욱 위협해 나간다.

   ▶ 초국적 자본의 지배 강화 : 초국적자본은 이미 한국사회의 가장 강력한 지배세력중의 하나가 되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의 세계화속에서 초국적자본의 지배력은 더욱 강화되어 나갈 것이고 그에 따라 경제적, 문화적 식민화가 가중된다.

   ▶ 분단체제의 지속과 민주적, 민중적 통일의 과제

   ▶ 전인류적 문제의 등장 : 자연파괴와 자원고갈, 핵위협과 국제분쟁은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초국적 자본의 세계 지배도 빈부 격차의 세계화와 공동체 단위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로 인류적 문제의 범주에 속한다.

 - 결론적으로 인간성의 위기, 민중생존권과 공동체의 위기, 생태의 위기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2) 대안적 사회상으로서의 민주적 공동체사회

 - 지식경쟁사회론에 대항하는 사회상으로서 '민주적 공동체사회' 건설을 지향해야 한다. 아직까지 비록 추상적이지만 지식경쟁사회론과는 명백히 다른 사회조직 원리와 발전 방향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일정하게는 실천적 의미와 구체성을 마련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민주적 공동체로 나아가는 한국사회의 주요 방향과 과제들을 다음의 몇가지로 요약해 본다.

   ▶ 민중의 생존권과 사회적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 사회복지의 보장, 노동시간 단축과 분배의 확대,  교육권, 환경권 등의 제반 사회적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 민주주의의의 실현 : 사상의 자유, 노동자와 민중의 정치적 권리가 실질적이고 평등하게 보장되는 사회

   ▶ 통일된 민족공동체의 실현

   ▶ 인간성 회복과 삶의 질 향상

   ▶ 인류적 문제에 대한 공동 해결 :생태 위기의 극복, 핵과 전쟁 위협의 제거

 3) 민주적 공동체사회 건설을 위한 몇가지 논의

 민주적 공동체사회의 상을 구체화하고 실제로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는 사회조직원리와 발전 방향에 대한 재검토와 전환이 필요하다.

  ◆ '경제 성장'이 아닌 '사회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

 - 내포적 사회 발전은 외형적 경제 성장과 구별된다. 내포적 사회발전은 노동시간 단축과 소득의 확대, 여가와 문화 활동의 증대 등으로 나타나는 민중의 삶의 질 향상, 빈부 격차의 해소, 민주주의와 공동체적 관계의 증진을 이룩해 나가는 것이다.

 - 지식과 기술, 발달한 생산력은 이러한 내포적 사회발전에 모아야 한다. 생산력주의를 극복하고 생산력에 인간적 방향과 목적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경제 법칙이 사회 전반을 지배해 온 것에서 인간 스스로가 다시 경제를 도구화해야 한다.

 - 국가정책의 목표도 당연히 경제'성장률' 따위가 아닌 '삶의 질 향상'에 두어져야 한다. 성장률처럼 삶의 질과 관련된 객관적 조건들을 지표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도 삶의 질과 관련된 객관적 조건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는 성장보다는 '안정적 재생산'에 초점이 두어져야 한다. 경제의 안정성은 삶의 질 개선의 중요한 토대이다.

 ◆ 자연개발이 아닌 생태의 보존이다.

 - 당연하게도 더 이상 생태파괴적  개발이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생태파괴적 개발은 중지되어야 하고 이미 파괴된 생태의 회복에 많은 사회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 적어도 생태계 문제와 핵위협에 관한 한 우선적으로 전지구적 연대의 관점에 서야 한다. 많은 부분 선진국의 투자와 부담 확대를 강제해 나가야 한다.

 ◆ 지식경쟁이 아닌 지식의 공유와 협력이다.

 - 지식과 기술은 이미 이전 시대에도 경쟁력의 기초였다. 그런데 지금 지식과 기술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강조하는 것은 지식 전반을 상품화하면서 경쟁의 도구로 위치시켜 버리는 것이다.

 - 지식과 기술의 사적 소유와 독점은 구조화된 물신주의와 상업주의의 핵심적 지점 중의 하나이다. 사실 지적 소유권이라는 개념에는 뿌리깊은 생산력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지적 소유권의 문제도 경제적 권리가 아닌 사회적 명예로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본다.

 ◆ 시장영역의 확대가 아니라 공공영역의 확대가 필요하다.

 - 시장논리와 시장 영역은 이미 지나치게 과잉되어 있다. 인간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의 위기'의 근원은 시장의 과잉, 범람이다. 그런데 오히려 과잉을 넘어선 시장논리로의 사회적 전일화가 신자유주의에 의해 추구되고 있다.

 - 시장 영역은 확대가 아닌 축소, 공공성의 원리와 공공 영역의 확대가 필요하다.  

 - 시장의 무정부성과 탐욕에 대한 사회적 통제도 확대되어야 한다.

 ◆ 국가는 자본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도구이다.

 - 국가는 결코 경쟁력의 단위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동원을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재규정이 필요하다. 자본 경쟁을 위한 동원 체제로서의 국가가 아닌 민중의 삶을 보호하고 향상시키는 것이 국가의 기본 임무로 규정되어야 한다.

 - 국가의 역할과 관련하여 자본의 세계화가 지니고 있는 의미도 다시 파악되어야 한다. 자본의 세계화는 자본의 부정부성과 탐욕의 세계화이기도 하다. 국가는 이로 인해 가중되는 자본 침탈과 지배, 항상적인 금융공황의 위험성에서 사회구성원들을 보호하는 것을 자기 임무로  해야 한다.

 ◆ 자본의 세계화가 아닌 사회적 삶과 연대의 지구적 확대이다.

 - 초국적자본의 무차별적 탐욕과 무정부성은 이제 일국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에 대항하는 국제적 연대와 통제가 필요하다. 초국적자본에 대항하는 국제적 연대와 역통제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마치 생산에 대한 소비의 역규정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4. 민주적 공동체 사회 건설을 위한 교육의 역할과 방향

 1) 민주적, 공동체적 인간 양성을 통한 새로운 사회의 토대 형성

 2) 공동체 교육 이념의 정립을 위해

 - 이후 공동체교육의 내용을 채워 나가는 논의를 위해 우선 병렬적으로나마 구성 부분을 열거해 본다.

   ▶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권리의식,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태도 - 인권교육, 민주교육

   ▶ 타인에 대한 존중과 공동체적 규범의 체화, 연대의식 - 공동체교육

   ▶ 자연 친화적 태도와 평화 애호, 전인류적 의식 - 녹색교육(환경교육), 평화교육

   ▶ 민족 자주성과 통일의 지향 - 민족교육   

  3) 진보적 교육 패러다임의 정립과 관련하여 검토할 몇가지 문제들

 ◆ 창의력보다는 공동체성

 - 교육의 중심방향과 과제는 역사적, 교육적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달리한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물신주의가 만발한 조건에서 창의력보다 더욱 우선적인 교육적 가치는 공동체성의 형성이다.

 - 창의력 형성의 방향도 왜곡된 부가가치로서의 창의력이 아닌 진정한 주체성이라는 것으로 재규정되어야 한다.

 ◆ 획일성/다양성의 대립구도를 벗어나야 한다.

 - 파시즘이 후퇴한 지금 획일성/다양성의 대립구도는 이미 이전 시대의 교육구도이다.

 - 지금 현재 가장 중요한 교육적 문제는 계급, 계층간의 분리에 더한 세대간의 분리, 그리고 개인주의의 심화와  공동체적 규범의 해체에 따른 교육관계의 해체 현상이 시작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 여전히 부분적으로 교육의 비민주성 문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획일성/다양성의 대립구도로 현재의 교육상황을 바라보는 것은 그나마의 교육의 공공성과 평등성을 폐기하는 신자유주의 교육관에 물들기 쉽다.

 - 다양성 자체는 비가치적 개념이다. 다양성은 획일성이라는 개념에 상대해서만 의미있는 것이며 다양성이라는 이름하에 전개되는 각각의 실천과 분야는 다른 기준과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 교육권의 확대, 교육공공성의 원리를 확립해야 한다.

 - 신자유주의로 인해 민중의 교육권과 교육의 공공성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교육에 대한 사회적, 국가적 책임의 원리, 교육의 공공적 원리를 중심에 세워 나가는 것이 긴요하게 요구된다.

  * 일 대 다 교육관계, 대면적 교육관계를 기본으로 개별 학습, 모둠 학습, 매체의 도구적 활용을 결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 신자유주의는 <수월성>을 교육의 중심 원리로 채택하면서 집단적 교수-학습 조직과 교육과정, 대면적 교육관계의 우위를 전면 부정하면서 수월성 교육에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되는 개별 학습, 자기주도적 학습과정을 중심적으로 위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멀티미디어 등의 매체를 교육적 활용의 도구가 아니라 교사의 역할을 대체해 나갈 수 있는 장치로 믿으면서 인격적 교수-학습관계의 중요성을 부정해 나가기도 한다.

 -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교육의 다양성은 명분일 뿐이며 실제로는 또 다른 '중심원리'로의 대체를 강요한다. 예컨대 강의식 수업이나 선다형 지필 평가의 한계나 부분성을 극복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면 부정하면서 수행평가로의 완전 대체를 주장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최근 서울시 교육청은 수행평가에 대한 현장의 다양한 비판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2002년부터 선다형 평가 폐지와 수행평가로의 완전 대체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 다양성의 의의를 전제한다면 보다 실질적인 문제는 무엇을 중심 원리로 채택하고 여타의 원리나 방법들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해 우리는 집단적, 대면적 교육관계를 기본으로 여타의 학습과정과 방법을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모델을 주요하게 설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 전문화 / 직업기술 교육은 기초교양교육의 기반 위에서라야  튼튼히 선다.

 - 기초 교양교육의 폄하 및 조기 전문화교육, 조기 직업교육은 총체적 인간 발달을 어그러뜨리기 쉽다. 대학에서의 기초학문과 인문과학의 경시 역시 사회 전체의 총체적 학문 체계 형성에 문제를 야기한다. 당연하게도 전문화교육과 직업교육은 기초 교양교육 및 기초학문, 인문과학의 튼튼한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갈수록 사회가 분화되고, 노동이 세분화될수록 그리고 가정과 사회의 교육적 기능이 약화되어가는 조건에서 기초교양과 기초학문의 교육적 의의는 더 커졌다.
 주--------------------------
1) 신지식인론은 현재 형성 중인 담론이고 또 논자들마다 강조점과 내용에 있어 약간의 편차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담론을 주도하는 중심적 논의들은 '지식기반사회'와 '신지식' 그리고 '신지식인'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개념적 틀 속에서 기본적으로 동일한 관점과 내용적 맥락을 구성하고 있다. 신지식인론의 원형은 신자유주의자이며 경영학자, 미래학자인 피터 드러커의 '지식노동자론'에서 찾아지며, 한국에서의 본격적 논의는 수년전부터 방법지를 강조해 온 김효근 교수, 신지식인 운동의 전도사로 자처해 온 매일 경제 등의 보수적 경제 신문 등에 의해 전개되어 왔고, 현재는 김대중정권 자체가 가장 주도적인 담론의 형성자가 되고 있다. 여기서는 이러한 논의 전개의 흐름속에서 신지식인론을 다루고자 한다.
2) 제12차 경제대책 조정회의 자료, 1998,12,4
3) 제12차 경제대책 조정회의 자료 중, 1998,12,4 - 정부차원에서 신지식인 개념이 처음으로 언급된 회의였다. 이 자리에서 신지식인이란 '지식을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능동적으로 창출하거나 기존의 사고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상으로 일하는 방식을 혁신한 사람'으로 정의되었다.
4) '교육부문 신지식인 육성 및 홍보, 확산 방안', 1999,4, 교육부
5) 1999,4,7 경향신문, 한국일보 '신지식인 양성위해 교육환경 개선'기사
6) 98년 12월 제12차 경제대책 조정회의에서 처음으로 공식화되었다.
7) 따라서 이를 달리 본다면 신지신인론의 정립과 확신 과정은 그 동안 신자유주의와  민주적 시장경제론 사이에서 잠시 방황하던 척하던 김대중정권이 신자유주의 이념으로 전일적으로 무장해나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8) 김효곤, 신지식인, 매일경제신문사, 1999
9) 허운나,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필요성과 교육 정보화', 정보화시대 교육의 선택, 대화출판사, 1997
10) 뉴 밀레니엄 신지식인이 주도한다, '신지식인 시대', 매일경제, 1999
11)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일하는 시간보다는 일하는 방법이, 조직에 대한 일방적인 충성보다는는 자기 성취 욕구가, 일반적인 지식보다는 전문적인 지식이 더 중요하다.' - 매일경제 <책 다이제스트> '신지식인'
12) 김효근, 신지식인 81쪽, 매일경제신문사, 1999
13) '한국 신지식인 보고서', 매일경제, 1998, 12
14) 왜 신지식인인가, '신지식인 시대', 매일경제, 1999,4
15) 이석영, '지식기반사회를 열자', 내가 살고 싶은 나라, 국정홍보처, 1999년 여름호
16) 미래사회에 대한 모든 전망이 낙관주의인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지식경쟁사회론은 주로 장미빛 미래관에 근거하고 있는데 그래야만 현재의 위기와 고통, 모순을 무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17) 보통 그들 스스로는 정보사회 또는 지식사회, 지식경제, 신산업사회 등으로 표현하지만 관점의 핵심이 '경쟁'에 있다는 점에서 '지식경쟁사회론'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18)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정치경제학교수, 문화일보 99, 8, 11 칼럼 '세계화 비관적이다'에19) 게토(ghetto)는 흑인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슬럼가를 가리키는데 얼마전부터 중산층 흑인들이 빠져 나가면서 자생력을 상실하고 내부 응집력이 없는 주민들로만 구성되게 되면서 등장한 개념이 버림받은 게토이다. 예전에는 게토의 주민들이 그나마 하층노동력으로라도 간주되었으나 이제는 누구에게도 필요한 노동력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더 이상 착취의 대상도 사회계층도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버림받은 게토의 반대편에는 '성벽화된 요새(fortified citadel)'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성벽화된 요새란 초국적 엘리트 또는 부유층이 자신들의 지위, 생활양식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장벽을 형성하고 있는 요새화된 집단 거주지인데 비버리힐즈같은 부유층의 집단적 거주지가 대도시의 주요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20) 허운나,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필요성과 교육 정보화', 정보화시대 교육의 선택, 대화출판사, 1997
21) 신지식인 양성을 핵심적 교육지표로 내세우면서 교육부에서 제출한 주요 정책 방향과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기본방향 :
      * 평생학습사회 구현
      * 자기주도적 학습력 등 신지식인적 기본소양의 함양
      * 창의력 함양
    2. 추진 계획
     1) 초중등교육의 혁신
      *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함양 : 수준별 교육과정의 도입( 수준별 학급 편성, 수준별 이동 수업 등), 열린 교육의 확산, 독서 교육의 강화
      * 체험 학습 강화 : 현장 학습
      * 신지식인으로서의 교원의 교육력 신장 : 유인체제 구축, 능력 중심 승진제도 도입
      * 학부모의 건전한 교육관 고취 : 능력중심 교육관 형성,    
     2) 평생학습기반 구축
      * 지역평생교육센터, 원격교육(사이버 대학 등), 사내 대학 등
      * 직업교육훈련의 강화, 민간주도의 직업훈련 시장의 육성 등
      * 직업능력인증제 : 의사소통능력, 외극어, 수리, 정보소양, 문제해결, 대인관계, 문화이해능력 등 7개 분야의 직업능력인증제를 단계적으로 추진
      * 문하생학력인정제도의 도입
      * 학점은행제
         (제2의 건국을 위한 교육부문 신지식인 육성 및 홍보, 확산 방안, 교육부, 99년 4월)
22) 신지식인론자들은 '성공하는 비결 10가지'나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 7가지' 따위와 거의 유사한 내용으로 신지식인 지녀야 할 소양들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김효근은 성공적인 신지식인이 지녀야 할 마인드, 습관, 기본능력 등을 제시하고 있는데 마인드로는 시간지향적 마인드, 낙관적 마인드, 결단적 마인드, 도전적 마인드 등등을 , 습관으로는 시간활용습관, 자기계발 습관, 메모 습관 등등을, 기본 능력으로는 상황판단력, 정보기술 활용 능력, 응용력, 창의력 등등 많은 것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중 나쁜 것은 하나도 없지만 부가가치 생산에 인간이 갖추어야 할 품성들을 종속시키고 그럼으로써 또한 왜곡, 변질, 축소시켜 버린다. 일례로 타인관리 습관 등의 개념은 경영적 차원에서나 등장하는 개념이지 인간 형성의 차원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