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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준비 3호 비판이냐 지지냐

2001.02.08 14:33

정은교 조회 수:1450 추천:4

비판이냐, 지지냐

비판이냐, 지지냐

정은교(연구실장)

내가 사는 동네 한 분이 전화를 걸어 왔다. "선생님! '새교육 공동체' 지부를 만들고 있습니다. 와서 거들어 주시지요." 지금은 바쁘니, 다음에 연락 달라고 발뺌하는 말로 전화를 끊었지만, '국민정부'의 교육개혁에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도리일 듯 싶었다. 비판할 것이냐, 지지할 것이냐?

한겨레신문을 뒤지니 이해찬 교육부 장관의 신년 인터뷰가 실려 있다. 그는 곧 교육개혁 5개년 계획안을 '그린페이퍼'로 내서 올 상반기 중에 확정하겠단다.

인터뷰한 기자는 제목을 '시장원리 도입해 교육개혁 이루겠다'는 말로 뽑았다. 기자가 묻는다. "당신은 영국의 신자유주의 모델에 주목하는 것 같은데, 딴 편으로 '공동체 교육'도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신자유주의를 실천하려는 게 아니다. 유럽에선 노동당 같은 개혁정당들이 잘못된 정책을 펴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 탓에 신자유주의가 생겼다. 그런데 우리는 '개혁'이 발붙일 틈도 없었고, 오히려 완고한 보수주의 탓에 국가경쟁력이 떨어진 거다. 교원노조 인정, 정년단축, 재정효율성 높이기는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고전적 자유주의에 가까운 개혁이다."

'정년 단축' 문제를 둘러싸고 전교조 안에서 잠깐 논란이 일었던 것으로 들었다. "완고한 교육관료들을 물갈이할 좋은 기회인데 찬성해야 하는 거 아니냐. 수구세력과 대결하느라 힘들어하는 이해찬을 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냐?" '국민정부' 출범 때에 유상덕은 새 정권에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면서 참여하는 자세'로 관계를 맺자는 요지의 글을 썼다. "김대중 정권은 노자간에 이해조정 구실을 하는 조합주의 국가를 지향한다. 정권이 자본을 편들지 않게 하려면 <정부정책 결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즉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강화하자!"

뒤엣 얘기부터 따져 본다. 우리는 정부 정책이 바람직한 것이면 찬성하여 힘 실어주고, 그렇지 못하면 반대하여 그 방향을 바꿔내야 한다. 이것이 상식이다. 군부독재 때는 반대할 일밖에 없었다. 민간정부 들어서는 찬성할 일도 더러 생긴 게 사실이다. '때로는 찬성, 때로는 반대'- 이것이 '비판적 지지'라면 '비판적 지지'도 틀린 말이 아니다.  

문제는 "정부 정책 결정에 적극 참여하자!"는 주장에서 풍겨나는 뉘앙스와 말의 맥락! 예전엔 우리가 그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불법 시비'를 무릅쓰고 전교조 단체를 만들어냄으로써 '쫓아내든지 인정하든지' 선택하라고 압박하는 식으로 강력하게 참여했다. 저항이든, 지지든 다 정치참여이니, 새삼스레 '참여하자!'고 되뇌일 까닭이 없다.

그의 속뜻은 '제도권'에 참여하자는 얘길까? 제도권 참여를 막은 것은 정권 쪽이었다. (합법) 노조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제도권 참여 아닌가. 이 얘기도 새삼스럽다. '새교육공동체'같은 데 들어가 '국민회의'정권과 좀더 적극적으로 제휴하자는 게 속뜻 아닐까?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강화하자'는 말은 '제휴'를 정당화하려고 보태는 말일 뿐, 그가 구태여 '참여'를 들먹이는 건 '비판적 지지'에서 '지지'쪽에 무게를 두자는 메시지렸다.

이 말이 공감을 사려면 현정권이 '노동'쪽을 더 편들거나, 적어도 중립을 지켜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현정권이 '노사정위원회'라는 제도적 타협기구를 만든 것은 인정해줄 일이지만, 이는 정리해고를 밀어붙이는 데 따르는 마찰을 덜기 위한 반대급부였지 공정한 '고통분담'을 이뤄낸 게 아니었다!

'비판적 지지(또는 참여)'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말이다. 현실에서는 '(주로)비판하는 쪽에 서느냐' '(주로)지지하는 쪽에 서느냐' 두 갈래가 있는 것이지, 그 둘을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경우는 없다. 사안 하나 하나를 두고는 더러 찬성도 하되, 기본 방향성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와 그 반대 경우가 있을 뿐.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 할까?

이해찬은 자신이 '신자유주의'를 마구 내세우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은 얼마쯤 맞다. 신자유주의 정책(가령 '연봉제')이라는 게 대중의 저항을 많이 불러일으키는 것이라서 금세 도입하기 어렵다. 교육부문에선 '예고편'만 방영했을 따름. 신자유주의 논자들(김기수,박부권)은 아직도 교육부문에 자유시장의 원리가 뿌리내리려면 한참 멀었다고 꼬집는 형편이다.

입시 관리의 국가 독점은 크게 바뀌지 않았단다. '비전2002'에 내세운 시장 논리는 '담임 선택제'뿐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렇지만 그가 "신자유주의자가 아니오!" 부인한 것은 이 개념이 대중에게 무언가 부정적인 것으로 비치고 있음을 의식해서가 아닐까. "영국 노동당의 잘못⇒국가경쟁력 약화" 운운함은 바로 신자유주의의 논리 아니던가. 또, 고전적 자유주의와 (영미의) 신자유주의는 그 사상 골격이 별로 다르지 않다. "세상을 온통 시장판으로 만들자!" 문제는 강남의 귤이 강을 건너면 '탱자'로 바뀌듯이, 18세기에 사회진보의 기관차였던 자유주의가 21세기로 넘어가는 지금엔 퇴행의 걸림돌 구실만 할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자유주의자일뿐,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라는 논증은 설득력이 없다.

우리는 김대중 정권이 지향하는 '기본적인 방향성'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민주적 시장경제론'을 이념으로 내세우는 바, '민주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것까지야 진보라 해도, 이들의 '민주'란 기껏 '관치(官治)를 탈피해 시장규율 뿌리내리자'는 한정된 뜻일 뿐, '실질적 민주주의의 진전'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세계화'를 적극 찬양하거나, 적어도 '순응해야 할 현실'로 여기지만, IMF 국가부도사태는 관치경제의 악폐와 섣부른 시장개방이 합작하여 빚어낸 것이다. 우리는 '관치의 악폐'를 떨쳐내는 한도에서 시장규율의 도입에 찬성하지만, 한편으로 백성의 복지를 위해 시장논리/세계화 논리는 통제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해찬 교육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실제'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떨칠 수 없다. '교육비전2002'에 들어있는 문제의식만큼은 진실된 것이겠지. 허나, '(눈먼) 경쟁'을 부추겨서 무언가를 얻겠다는 신자유주의의 발상은 위험천만하다. '관치'의 악폐를 시정한다지만, 교육계나 정치판이나 깡보수 기득권세력이 여전히 주름잡는 형편에 무능/부패가 얼마나 시정될지도 의심스럽다. 가령 정년단축과 교장 경력연한을 (25⇒20년으로) 줄이는 따위로 권위적 학교문화가 과연 혁신될까?  역대 정권이 집요하게 굳혀 놓은 '대학 서열화 구조'를 단호히 깨지 않고서 '입시 개혁'이 얼마나 진전될까? 자칫하여 '관치와 시장논리의 악조합(惡組合)'이 개혁을 기형화하는 것은 아닐까?

교사들더러 '신자유주의의 쓴 약'을 받아들이라고 충고하는 교육학자들이 있다. "사립학교를 대폭 늘려야 한다. 그래야 공립학교도 산다!" 그래, 우리는 나라 살림이 강제하는 이런저런 불이익들을(봉급 삭감 따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고, 앞으로도 노사 교섭에서 수긍해야  할 부분이 생기겠지.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하자는 대로 '공교육의 축소'를 순순히 다 받아주는 것은 턱도 없는 일이다. 그네들은 그래야 학교도, 경제도 살아난다고 부르짖겠지만, 길게 보아, 다 같이 살 길은 그네들 요구를 물리칠 때만 열리는 것 아니겠는가. 노동조합을 짓누르고 이른바 '영국병'을 고쳐야 살 길이 열린다고 일찍이 영국의 대처 여사가 소매 걷어 부쳤지만 대처의 신자유주의 처방이 영국 자본주의의 침체를 막는 데 무력했음을 떠올리자. 새 패러다임을 이뤄내지 않고서는 지금의 세계적 위기가 걷히지 않는다는 것이 곳곳에서 입증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