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탈감정사회 감정 없는 인물들

 

타라(문화연구분과)

 

2020년에도 여전히 감정을 다룬 책들이 넘쳐난다. <감정의 발견>, <이기적 감정>, <감정회복력>, <감정의 미래>, <감정화하는 사회>로부터 <그림책으로 읽는 감정수업>, <아이를 위한 감정의 온도>,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내 감정에 잡아먹히지 않는 법>까지.

2013년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필두로 <모멸감>, <분노사회>, <혐오와 수치심> 등 주로 부정적 감정을 제목으로 단 책들이 등장한 게 2014, 2015년 무렵이었고, 그 이후 감정은 한국사회의 주요 화두로 다양한 영역에서 조명되고 있다. 초기의 책들이 낱낱의 감정들을 철학적으로 검토하며 개념화하거나 특정 감정들을 중심으로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작업에 치중했다면 현재는 다친 감정의 치유나 효과적인 내 감정 다루기가 주를 이룬다. 독자를 불편하게 하던 감정 저서들이 사라진 자리에 말랑말랑한 감정 관리 책들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탈감정사회> 저자인 메스트로비치의 말을 빌면, 현재 우리는 마치 안전벨트처럼 감정벨트를 차고 다니고 있다. 잘 정비된 기계처럼 감정이 순조롭게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감정벨트를 장착하고 내 감정의 드러냄을 조율하느라 애쓴다. 게다가 그 감정이란 것도 진정 내 것인지 아니면 조작되고 생산된 기계적 감정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진짜 감정과 가짜 감정이라는 구별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감정의 진정성을 잃어버렸다고나 할까? 미디어로 송출되는 감정 이미지들의 범람과 일터에서의 감정 피로도 속에서 그저 불필요한 에너지를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을 뿐이다. 제법 오래 전, 사람 관계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감정의 격돌과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허우적대던 기억이 있다. 당시의 팽팽했던 신경과 곧추섰던 세포의 감각이 문득 떠오르는 걸 보면 감정이란 건 그리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가 보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02.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680pixel, 세로 453pixel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22.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67pixel, 세로 189pixel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04.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640pixel, 세로 427pixel

최근 텔레비젼 드라마에는 감정이 없는무감정증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비밀의 숲(tvN)>의 황시목 검사, <악의 꽃(tvN)>의 금속공예가 도현수, <싸이코라도 괜찮아(tvN)>의 동화작가 고문영, 그리고 <앨리스(SBS)>의 박진겸 형사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모두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감정 인지 능력이 미흡한 인물들이다. SF판타지 형식을 차용한 시간 여행물인 <앨리스>의 박진겸 형사를 제외하면 이들은 모두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감정 기능이 미발달하거나 상실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무감정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이 2020년 들어 부쩍 유행하고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러한 현상에서 감지되는 사람들의 감정의 흐름 혹은 감정의 구조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는 어떤 현실을 반영한 것인가? 이 글은 자못 크고 연구가 필요한 이러한 물음들에서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화제성과 시청률이 높았던 드라마들을 감정이 없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스케치하듯 서술하는데 그칠 개연성이 높다.

 

감정 기능의 제거

<비밀의 숲> 1화는 16부작으로 20176~7월에, 2화는 20208~10월에 방영되었다. 주인공 황시목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외톨이 검사로 감정 없는 인물의 원조 격이다. 베테랑 연기자 조승우는 무표정한 얼굴, 흔들림 없이 직시하는 눈동자, 말끔한 양복과 꼬마 병정 같은 단정한 자세, 절제된 언어 사용으로 황시목이라는 무감정 캐릭터를 멋지게 재현해냈다.

서부지검 형사 3부 소속 검사(1)인 황시목은 어릴 적 뇌섬엽(insular)이 과도하게 발달하여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명과 두통에 시달리다가 뇌섬엽 절제 수술을 받는다. 그 후 감정 기능이 제거되어 공감 능력이 결여된 인물이 된다. 뇌섬엽은 숨어있는 대뇌피질로 감각, 감정, 자율신경의 감각을 받아들이고 전두엽과 연결하는 기능을 하는 부위이다. 즉 인체로 들어온 정보에 대해 내부 장기들의 느낌을 감지하며, 이에 따른 기억의 경험을 불러내어 배고픔이나 통증, 탐닉 등 주관적인 감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7.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70pixel, 세로 186pixel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23.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59pixel, 세로 194pixel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에 따르면 행복, 슬픔, 공포, 분노 등의 느낌이 일어나면 뇌섬엽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그런데 의학적으로 볼 때 뇌섬엽을 제거한다고 고통이나 불안, 슬픔, 욕망, 기쁨, 쾌락 등의 감정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최근 뇌과학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뇌는 경계가 모호한 신경계의 다발이며 신경 전달 물질들과 그들 간 네트워크의 다양한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뇌의 특정 부위를 절제함으로써 황시목과 같은 인격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허구적 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각기능이 제거된 검사라는 특이한 인물의 등장과 그의 행보에 시청자들은 공감하고 폭발적으로 반응한다. 감정이 제거된 황시목은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반면 인지능력은 뛰어나다. 일반적으로 이런 인물형을 우리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지닌 소시오패스(sociopath)로 규정하는데, 황시목이 바로 그런 소시오패스적 인물인 것이다, 그들은 감정이 담긴 사회적 신호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대신 전략적이고 지적이고 대담하다. 따라서 기존 드라마에서 이들은 주로 범죄자로 등장해왔다. 그런 점에서 황시목은 분명 새롭고 독특한 인물형이다.

감정 기능이 제거된 탓에 황시목은 검칠 집단 내부의 관행과 그곳에서 습득한 것들에 대해 감정적 공유가 어렵다. 그는 오로지 단서에 의존하여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냉철한 이성과 기억력, 추론 등 인지 기능이 극대화된 그는 검찰을 내부에서 혁파할 히어로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뒤얽힌 소수의 특권층이 모든 권력을 장악한 부패사회를 투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드라마에서 이런 인물이 호출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한국사회의 검찰, 재벌, 언론, 정치 간의 오랜 유착과 적폐가 황시목 같은 인물이 아니고서는 감히 균열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공고하고 특권적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인물의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정의라는 걸 구현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의 반영인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내용을 다룬 2화에서도 검찰, 재벌, 언론, 경찰 간의 이해관계에 의한 공모와 사건 은폐라는 서사 구조는 여전히 등장한다. 이창준이라는 복잡하고 굵직한 문제적 인물이 없어서인지 또는 정경유착의 핵심 고리인 정치 영역이 비어서인지 확실히 2화는 1화에 비해 스케일이 작고 서사가 약하다. 그러나 여기서도 모든 시작은 밥 한 끼라던 이창준의 말처럼 안면과 인맥은 특권 집단의 접착제다. 그리고 무감정한 황시목에게는 이러한 관계의 끈끈함이 먹히지 않는다.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드라마는 부패사회를 일소하고 공공선을 실현하는 인물로 무감정증 주인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무감정증 인물의 등장은 유독 감정노동의 피로도가 높은 한국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공적인 장에서도 사적인 인간관계 영향력이 막대하고 서열과 위계에 따른 감정서비스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일상의 문화가 여전히 잔존하는 현실 말이다. 밥과 술을 나누면서 쌓인 정이 공정성의 발목을 잡고, 공공성을 허문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회식보다는 혼밥과 혼술을 즐기고 관계에 매이지 않는 자발적 아싸(아웃사이더)가 늘어나고 있다지만 여전히 직장 스트레스의 태반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감정 문제이다. 이럴 때 황시목 같은 류의 인물은 감정 소모로 지친 사람들에게 대리 만족을 선사한다.

구인구직 플랫폼인 사람인(saramin)의 최근 조사 자료에 따르면 직장 내에서 스스로를 자발적 아싸 라고 답한 직장인이 44.1%에 이른다. 그들은 자발적 아싸가 된 이유를 업무만 제대로 하면 된다거나 워라밸 등 나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관계나 소속감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무감정증 캐릭터는 자발적 아싸가 되기를 원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의 감정 구조를 그대로 담고 있다. 게다가 황시목 검사는 특권층임에도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공적인 업무를 그저 묵묵히 수행한다. 그가 매력적인 인물로 다가오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무감한 황시목이지만 감수성이 풍부하고 정의로운 한여진 형사와 수사를 공조하면서 희미한 감정의 온기를 보이기도 한다. 삭제되었던 감정이 다정다감한 동료 조력자와의 관계에서 회복되는 것인가? 드라마는 인간의 느낌이나 감정이란 게 관계 속에서 생성되고 발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다만 황검사와 한형사 라는 인물 관계가 보이는 쿨함에도 불구하고 냉철한 이성의 남성과 따뜻한 감성의 여성이라는 구도는 전형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의 전도는 드라마 <싸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이루어진다.

 

감정 기능의 미발달

<악의 꽃>에서 도현수는 연쇄살인범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범죄자라는 오해와 사이코패스라는 낙인 속에서 불행한 시간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마을사람들에 의해 살인자의 피를 이어받은 비정상적인 존재로 규정되고, 이장이 주관하는 굿판에 귀신이 씐 자로 불려 나가 희생양이 되곤 한다.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이장을 죽인 누나의 죄를 대신한 채 도망자가 된 도현수는 우여곡절 끝에 백희성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이어간다. 이런 환경에서 청소년기를 지나온 도현수는 스스로를 반사회적 인격 장애, 곧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기쁨, 슬픔 등의 감정이나 공감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유튜브를 보며 끊임없이 학습하고 모방해야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13.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59pixel, 세로 792pixel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5.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89pixel, 세로 267pixel

 

그런데, 도현수의 무감정증은 사회적 편견과 낙인에 의해 폭력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기댈 곳 없는 아이는 공동체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거짓 소문에 대한 해명을 포기한 채 스스로를 유폐시킨다. 타인들이 온통 적으로 느껴지는 상황에서 아이는 생존을 위해 자기의 감정을 억압하고 삭제하기에 이른다. 자기 방어 기제와 살인자 아비에 대한 부채감이 뒤엉킨 상황에서 제 감정이란 걸 돌아볼 여유도 없다.

그런 그에게 진솔한 사랑으로 사건의 진실을 쫓는 데 투신하는 아내 차지원 형사는 잃어버린 그의 감정을 일깨워주는 조력자다. 그녀는 도현수에게 가슴에 차오르고 마음이 먹먹해지는 것들이 사랑과 연민임을 가르쳐주고 다독여준다. 드라마는 감정 없는 인물이 생겨난 발생적 원인을 다루며 주인공이 상처를 극복하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감정의 복원에 주목한다. 감정은 타인과의 온전한 관계 안에서 생성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엘리트 계급 백희성과 그 부모가 오히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소시오패스이고, 아비의 죄에 짓눌려 타인에 대해 경계하고 섬뜩한 눈빛을 표출하곤 하는 도현수는 오히려 타인을 해칠 수 없는 보통의 인간이다. <악의 꽃>은 감정기능이 억제된 채 어른이 된 도현수의 삶을 통해 편견과 혐오가 난무하는 한국사회의 실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집단의 왜곡된 시선이 멀쩡한 사람을 괴물로 만들 수 있음을 직시하게 한다. 그런가 하면 억압되고 미발달된 감정도 믿을만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복원될 수 있다는 희망의 서사를 전한다.

<싸이코지만 괜찮아>의 고문영 역시 감정기능이 미발달한 무감정증 인물이다. 잔혹 동화 작가인 그녀는 사이코패스 어머니의 그로테스크한 양육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악의 꽃>살인자 아비-아들이라는 구도가 이 드라마에서는 살인자 어미-관계로 치환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감정증 인물이 나름의 생존 전략으로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다가 신뢰할 수 있는 조력자를 만나 감정을 복원하게 된다는 서사는 동일하다. 그런데 고문영이 자기를 고립시키는 방식은 도현수와 다르다. 그녀는 세상의 평판과 명성이란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거침없이 돌직구를 날리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함으로써 이를 실현한다. 이러한 차이는 그녀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어미의 살인 행위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사실에서 비롯될 수 있다. 고문영은 도현수와 달리 유년 시절의 음울하고 괴이한 기억은 갖고 있지만 비교적 죄의식에서는 자유로운 것이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15.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68pixel, 세로 188pixel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19.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80pixel, 세로 480pixel

매혹적인 외모에 도도한 눈빛으로 힘을 행사하려는 상대를 향해 찰진 욕을 한웅큼 쏟아내는 고문영에게 시청자들은 찬사를 보낸다. 완전한 젠더 역전에다 중저음의 음색으로 속사포처럼 터져 나오는 그녀의 말에 우리는 통쾌함 마저 느낀다. “닥쳐. 이 고라니 새끼야!” 내일 현실에서 만나게 될 혹은 오늘 나에게 갑질하던 그를 향해 딱 저렇게 퍼부어줘야 하는데……. 그녀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숲 속 고성에 홀로 사는 얼음 마녀로 등장한다. 그 배경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인물이지만 쿨멘탈에다 멘탈갑인 그녀는 차갑고 냉소적인 이면에 본질을 보는 예리한 시각과 판단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자못 귀찮아하면서도 못돼먹은 이들의 편견과 폭력에 움츠려든 약자 꼴이 보기 싫어 그들을 혼내주고 개망신을 준다. 드라마는 고문영의 무감정증을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강자들의 악행과 비열한 행위에 대한 응징에 십분 활용한다. 따라서 여기서도 인물의 감정 없음은 단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강점으로 부각된다.

고문영이 감정을 회복하는 과정은 독특하고 흥미롭다. <악의 꽃>에서 차지원은 도현수에게 무한한 사랑으로 그의 죽은 감정에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순결하고 지고지순한 존재이다. 그에 반해 정신병동의 보호사인 문강태는 고문영의 감정 복원에 있어 중요한 조력자지만 동시에 그 역시 고문영에 의해 억압된 감정이 분출되고 상처가 치유된다는 점에서 그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다. 게다가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형 상태도 고문영의 감정 수업에 꼭 필요한 또 하나의 인물이다. 고문영, 문상태, 문강태라는 결핍을 가진 세 인물은 각자 자기의 처지에 따라 서로에게 감정을 표출하고 그 감정을 인지하면서 성장해간다. 이 과정에서 그들 모두는 서로에게 안전핀이자 조력자이다. 이 드라마가 저조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웰메이드 작품으로 평가받는 까닭은, 감정은 없고 식욕만 남은 좀비아이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이 인간적인 만남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주체가 되어가는 여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진짜 감정을 찾아서

<싸이코지만 괜찮아>는 어른을 위한 판타지 동화들을 곳곳에 배치한다. 드라마 전체를 갈무리하듯 제시하는 <진짜 진짜 얼굴을 찾아서>에는 입꼬리만 웃는 표정의 가면을 쓴 가면 소년과 텅 빈 몸통을 가진 깡통 공주, 종이 박스를 뒤집어 쓴 박스 아저씨, 그리고 사악한 그림자 마녀가 등장한다. 마녀는 소년과 공주를 납치하여 다시는 행복한 얼굴을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저주와 함께 그들을 두더지굴에 가둔다. 박스 아저씨는 좁은 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용기를 내어 박스를 벗어 던지고 그들을 구해낸다. 엉망이 된 아저씨의 얼굴을 보고 깔깔거리던 가면소년의 가면이 떨어지고, 깡통공주를 둘렀던 깡통도 깨져버린다. 웃다가 진짜 얼굴이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 속 나레이터의 구술이 이어진다. “결국 마녀가 훔쳐간 건 이들의 진짜 진짜 얼굴이 아니라 행복을 찾으려는 용기였답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16.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80pixel, 세로 366pixel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18.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80pixel, 세로 366pixel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17.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80pixel, 세로 366pixel

 

혹실드는 직장에서 감정을 감추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표정과 행동을 하는 행위를 김정노동이라 정의내리고, 승무원, 간호사, 교사, 경찰 등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거짓된 태도를 취하도록 요구받는지를 연구했다. 내면의 감정과 외부 상황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감정노동자들이 대응하는 방식은 분노를 아예 느끼지 않도록 감정체계를 바꿔 기계가 되거나 겉으로만 웃는 연기를 하거나 연기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거부는 곧 실직을 의미하므로 그들은 대개 겉으로만 웃는 연기를 택한다. 그리고 직업과 자아의 분리를 통해 자기의 진짜 감정을 지키려고 애쓴다. 직장에서 연기하는 자아는 진짜 나는 아니라고 믿으며 이런 자기 분열을 통해 자존감을 지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이런 노력으로 인해 감정 노동자들은 우울증, 스트레스, 신체적 소진에 빠지게 된다.

얼핏 보면 감정과잉으로 보이기도 하고 그런가하면 문화적 냉각으로 보이기도 하는, 감정이 빈번하게 거론되는 이른바 감정 활황 시대이다. 감정이 사회적으로 조직되고 자본에 의해 관리되고 임금을 얻기 위한 노동으로 변형되는 세상이다. 갑과 을이 누리는 감정 표현의 자유가 천지 차이인 한국사회이다. 그런 현실을 목도하면서 그리고 나 스스로 감정노동을 하면서 살고 있어서인가? 나는 오늘도 이 드라마라는 허구세계가 주는 안전함에 기대어 감정 없는 인물들의 활약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최근에 읽은 감정 관리 책자에서는 감정의 온도를 낮추고 마음을 진정해서 이성적 사고에 필요한 공간을 마련하라고 권한다. 그렇게 하면 진짜 감정과 만날 수 있을까? 확실한 건 개별적인 치유만으로는 탈감정사회의 노련한 감정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없다는 거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 78-담론과 문화> 안녕, 클리토리스!^^ file 진보교육 2020.11.15 99568
16 78-현장에서> 교육공무원 호봉정정 및 임금 환수 조치는 학교 교육 노동자에 대한 또 다른 차별 file 진보교육 2020.11.15 1113
15 78-현장에서> 가짜 실시간 쌍방향 수업: ‘줌’이 안 되는 11가지 이유 file 진보교육 2020.11.15 261
14 <번역> 심리학에서 도구적 방법 file 진보교육 2020.11.15 196
» 78-담론과 문화> 탈감정사회 감정 없는 인물들 file 진보교육 2020.11.15 166
12 78-담론과 문화> 뽕짝 권하는 사회 file 진보교육 2020.11.15 91
11 <기고> 저출생/고령화 시대와 교육의 변화 file 진보교육 2020.11.15 90
10 78-담론과 문화> 결정론적 세계관의 기초 : F=ma 이해하기 file 진보교육 2020.11.15 88
9 <78호 권두언> 미래교육의 향방을 좌우할 관건적 시기가 도래했다. file 진보교육 2020.11.15 77
8 78-특집] 교육혁명의 의의와 현 시기(2020~2022) 과제. file 진보교육 2020.11.15 71
7 78-책이야기] 죽음, 죽음 아님에 대해 생각하기 file 진보교육 2020.11.15 69
6 78-특집] 팬데믹-대선 국면과 교육 변화 file 진보교육 2020.11.15 67
5 [만평] 9화-코로나19 일기 '97년생 김교사' file 진보교육 2020.11.15 64
4 78- 담론과 문화> ‘올해 읽을 시 여섯 편과 11월 읽는 시 한 편’ file 진보교육 2020.11.15 64
3 78-특집] 미래교육 大戰이 시작되다 file 진보교육 2020.11.15 64
2 78-담론과 문화> ‘싹 없는 진보’가 타산지석 file 진보교육 2020.11.15 63
1 78-현장에서> 초등 돌봄 교실 약사(略史) file 진보교육 2020.11.15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