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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코로나19 시대, 학생자치는 어디에?



코로나19 시대에 학생 자치는 어디에?

 

김성보(마장중)

 

코로나가 기지개를 펴기 시작하자 학생들은 관리 대상으로 전락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해 왔던 것들은 전부 예방 수칙 위반사항이 되어 버렸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작년 12월 말에 학생회장 선거를 치르고 2월 중에 학생위원회(학생회 집행부서장) 인선을 끝냈다. 그러나 2월 중순 졸업식부터 학생 자치는 너무 쉽게 사라졌다. 원래 신임 학생위원들이 졸업식에 찾아온 하객 안내를 하며 졸업식 후 폭력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운동장에서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며 선배들을 축하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자율동아리 댄스부였던 졸업생은 졸업식 자축 공연을 하며 중학교의 마지막을 멋있게 마무리해야 했다. 학급별로 학생들이 스스로 제작한 학교 생활 갈무리 영상이 나오면 환호와 웃음과 탄식이 있어야 했다.

33일 신입생 상견례 자리에서 전교생에게 인사했어야 할 학생위원회는 4월 말에서야 조용하게 임명장을 전달 받았다. 교실 반칸 규모의 학생 회의실은 폐쇄된 후 아직 사용을 못한다. 학생 체육부장이 사회를 봤던 육상 경기도 없어졌고, 댄스 버스킹과 치어리딩 공연도 없어졌고, 리더십 캠프도 없어졌고, 수련회와 테마여행도 없어졌다. 학생위원회 공동체 활동도 없어졌고, 학생회장의 최대 공약이었던 아이스크림 번개 매점도 못하게 되었다. 탈의실 환경 개선은 두 번째 공약이었는데, 탈의실이 폐쇄되었다.

 

학생수가 줄어드니 교사를 줄이겠다는 교육부는 여전히 교육을 경쟁과 선별의 틀 속에서 바라보는 것 같다. 학급당 학생수를 줄여서 안전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당장 추진해도 모자랄 판에 경쟁과 선별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2차 산업시대 과밀학급을 유지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경쟁과 선별이 중심이 된다면 학생 자치는 장식품처럼 취급당할 가능성이 크다. 경쟁의 스펙 중 하나가 되거나 시간 낭비가 될 터이다. 경쟁(競爭)이라는 단어는 다투다는 뜻의 한자 두 개가 모인 말이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경쟁 교육이 일상화된 공간에서 학교 폭력이 사라질 리 없다.

미래를 준비하는 학교는 협력적 문화 속에서 학생의 발달이 중심되는 틀을 잡아야 한다. 교직원에게는 또 다른 틀이 있겠지만, 학생들에게서 협력적 문화가 자리 잡을 제도적 틀은 학생회일 것이다. 학교 폭력이 사라지려면 학생 자치가 비약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학교 상황은 살피지 않고 여론 눈치 보며 등교 지침과 수업 일수를 정해 온 교육부에 대한 실망이야 일찍부터 있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민주시민교육과를 두고 있는 자칭 진보교육감들은 5월 쯤에 학생자치에 대한 방안도 제시할 줄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앞에 열거한 것처럼 실종이다.

기다리다 못해 6월엔 온라인 학생대의원회의를 개최했다. 공약 이행 계획, 사업 계획, 참여 예산 사용 계획 등을 의결했다. 안타깝게도 학생들은 그 동안 온라인 수업에 수동적으로 참여해 왔기 때문에 온라인 회의를 주최할 도구도 없고 방법도 모르고 있으니, 교사가 기술 지원팀 역할을 해야 했다. 학생회에도 도구가 필요하다. 또한 온라인 쿠폰형태로도 예산 집행이 가능하도록 방법을 만들어 줘야 한다. 대의원 회의에서 사업 계획을 이야기했으나 대부분 ‘2학기에 정상 등교가 가능하다면이라는 가정으로 된 것들이라 사실 쓸모가 없다. 학생대의원들에게 회의 후 제공했던 간식은 학교 앞 햄버거 가게와 합의해서 학생회가 쿠폰을 제작하여 나눠주고, 등교하는 기간 중에 쿠폰을 들고 가면 햄버거를 한 개씩 받는 것으로 했다.

아이스크림 번개 매점을 열지 못하므로, 올해는 간단한 퀴즈를 내서 전교생이 모두 응모하도록 하고 방학 앞 학년별 마지막 등교일에 학생회가 일괄 아이스크림을 제공하기로 했다. 작년에는 아이스크림 판매로 수익금을 내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사용했는데, 올해는 성금은 만들어지지 않겠다.

못하게 된 댄스 버스킹을 고립된 예술인들처럼 각자 영상을 찍어서 한 데 모아보는 방식으로 하는 것은 어떤가 제안했지만, 동아리 학생들은 서로 교감도 없고 연습도 없고 대열도 없고 관중도 없이 혼자 추는 춤이 군무가 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러다간 전통 있는 자율동아리가 없어질 판이다. 춤 하나만 생각해봐도 온라인이 대면 활동을 대체한다는 것은 궁여지책이거나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쪽인데, 온라인 교육을 마치 미래 교육으로 포장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작년까지 배움 중심 실험 실습으로 수업 시간 대부분을 채워왔던 나는 올해 수업이 망했다고 생각한다. 실험, 실습이 없는 과학은 대체 무슨 수업인가? 예술 체육은 더 곤란한 상황이다. 체육의 경우 혼자하는 근력 중심 활동을 동영상 보고 각자 집에서 해 보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유행처럼 번진 것이 저글링인데, 우리 학교 체육 선생님은 난 저것만은 하기 싫다고 버티다가 다르게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결국 저글링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최대한 많은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학생회의 힘을 빌어 저글링 챌린지를 진행 중인데, 일주일 찔끔 등교하는 것으로는 유행을 만들기 역부족이다. 참가자에게 마구 뿌리려고 산 초코 간식이 산더미처럼 남겠다.

 

코로나 시대에 학교는 겨우 연명하고 있다. 이 상태를 뉴 노멀이라고 우기면 교육은 고사할 것이다. 안전한 등교가 가능하도록 특단의 조치들이 필요하다. 학생 자치가 없는 상태가 미래교육이 되어선 안 된다. 학생들이 모이는 것이 예방수칙 위반으로 취급받지 않아야 한다. 협력적 문화가 꽃 필 수 있도록 교육부와 교육청의 방침에 학생회 활동 지원 대책이 포함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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