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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 현장에서> 오만과 편견

2020.08.17 02:28

진보교육 조회 수:75

현장에서> 오만과 편견



오만과 편견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영희(진보교육연구소 회원)

 

코로나19가 전 세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상황이 극으로 치닫지 않고 통제 범위 안에 있음에 안도하고 천만다행으로 감사하다. 그럼에도 코로나 팬데믹에서 교사로 살아가기라는 주제의 글을 쓰려고 하니, 지금 이런 모습으로는 보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했던 내 얼굴을 결국 어쩔 수 없이 반강제로 거울 앞에 앉혀져 마주하고 인정해야 하는 기분이다. 뼈아픈 뒷북과 패배의 역사다. 오만했던 나의 교사 전문성, 그리고 내가 가졌던 편견과 관성의 결과들이다. 지우고 싶어 감춰버린 일기장을 열어보며 지난날들의 자취가 아프고 또 아프다. 방학을 맞이하며 찜찜하고 아쉬움 가득했던 마음을 글쓰기를 통해 내려놓을 수 있을까?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어둠을 딸과 함께 체험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어둠 속에서 나는 수많은 나의 편견들을 만났고, 그 뒤에 감춰져 보지 못했던 진실을 보았다. 편견으로 오해하고, 또 꿈꾸며 상상했던 것에 비해 허무하기도 한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또렷하게 남는 아이의 웃음소리, 그리고 나에게 베푸는 진심에 가슴이 먹먹했었다. 엄마로서 아이의 사춘기를 잘 참고 견뎌내고 있다는 오만함과 아이의 특성을 걱정했던 내 편견을 깊이 반성하는 기회가 되었다. 코로나19를 겪는 동안 어둠 속 혼돈과 두려움 속에서 허우적대며 나는 교사로서 부끄러운 치부와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고, 가장 소중한 교육적 가치를 뒤늦게 더욱 통렬히 확인하기도 했다.

 

2020년의 2월 무렵, 새 학년 시업일을 앞두고 코로나19는 학교를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깊은 터널로 인도하는 듯했다. 뉴스에서 보게 되는 연 이은 개학 연기 소식과 일방적인 교사 순환 복무, 홀로 부각되는 돌봄, 부적같은 학교 방역, 구세주로 떠오르는 온라인 교육 등, 관련되어 나오는 교육부의 발표에 위기감은 고조되었고,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과 함께 다시 고개 드는 비민주적인 통제, 상명하달의 분위기에 대한 반감이 고기압과 저기압의 충돌처럼 소용돌이 쳤다. 그것은 교사 소통방에서 뿐만 아니라 내 속에서도 휘몰아쳤다. 내가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지, 교육부와 싸우는지, 관리자와 싸우는지, 내 자신과 싸우는지여기저기서 온라인 수업이라 외치는 구호에 벌어지는 동상이몽, 철밥통 교사로 비난 받던 치욕스러움, 학생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 파악에 긴장되던 하루하루, 학부모들의 아우성에 느껴지는 연민과 공포, 그럼에도 아이들이 없어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지는 간사한 마음과 그것을 질책하며 무엇이라도 제작하여 아이들과 소통하고 교육해야 한다는 채찍질, 어쩔 수 없는 시기에 편안하게 가지 않았다고 우리 안에서 터져 나오는 원망의 소리와 피로감만큼 쌓이지 않는 아이들의 학습이 허리케인이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쓸어버렸다.

 

온라인이 희망이라면 이 또한 열심히 배워서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책을 녹여내고 핵심적인 학습 내용으로 재구성하고, 서로에게 마음을 담아 편지쓰기로 우체통이란 상징물을 두어 연결고리를 만들고, 서로에게 자신을 알리고 소개하는 영상 릴레이, 동학년 교사들과 함께 아이들과의 만남을 염원하며 노래와 연주 영상 만들기, 전화통을 붙잡고 아이들과 나누었던 학습 피드백과 안부를 묻는 대화등교개학을 앞두고 학교 방역을 위해 철저히 준비했던 개인학습물품들간소화된 입학식의 서운함을 덜어주고자 손수 토끼탈 쓰고 도왔던 1학년 등교맞이등교하는 날 알았다. 신기루처럼 나의 환상이었음을서로에게 존재하지 못한 채 이런 교육활동이 아이들에게 현실로 닿을 수 있다는 건 나의 일방적이고 오만한 착각이었다는 것을모래 위의 성처럼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건 내 5번 척추뼈의 자리와 등교를 앞두고 병원신세를 지게 되어 놓친 몇 차례의 소중한 만남이었다.

 

방역의 굴레는 등교 개학을 준비하며 들떴던 내 마음을 굴복시키기에 충분했다. 자가진단과 여러 차례의 발열 검사로 감염자가 학교로 들어오는 걸 원천봉쇄해야 한다. 학생 발열 시 매뉴얼과 등교 제한,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않은 듯한 자리배치와 방역을 최우선으로 염두하고 계획하는 교육활동 등이 감염 발생 시 지게 되는 책임감과 학생 감염이 그의 가족의 감염이라는 비극적 상상으로 이어져 내게 어마어마한 무게의 짐을 지웠다. 학교를 내 세상으로 만들던 돌봄 학생들도 달라진 분위기에 제한된 장소로 들어가고, 건물 곳곳의 휴게 장소에는 출입 제한 띠가 둘러쳐졌다. 동시에 내 마음에도 그런 것 같았다.

 

우린 만나게 되어 있었다.” 허리디스크가 터져 병원신세를 지는 동안 애타게 기다리며 주고받던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의 문자에 힘입어 아까운 네 번의 만남을 놓친 후 우리는 만났다. 그 때 보았다. 낯선 얼굴들, 풀려버린 눈과, 삐딱하게 걸터앉은 자세, 두려움 가득한 눈빛, 나 하나를 응시하는 아이들을 보고 어이쿠야!”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듯 공중분해 되어버린 원격수업의 잔해가 아이들의 텅 빈 교과서와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모습 속에 고스란히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학부모와 상담하며 수화기 너머 들려오던 절규에 가까운 한숨의 정체를 한꺼번에 확인하는 듯했다.

그렇게 등교하고 알았다. 함께 하는 시간과 공간의 소중함, 그것 없이는 안된다는 것을감염이라는 두려움 속에서도 만남은 절실함과 희망이었다. 만남을 통해서 비로소 나는 아이들의 선생님이 될 수 있었고, 아이들은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 존재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빠르게 안도감과 생명력을 되찾는 듯했지만 다시 방학이었다. 아이들에게 방학을 고하며 우린 서로 마냥 기쁠 수만은 없었다.

 

팽이 돌리기 놀이하자고 친구들 명단을 줬다.

이 애들은 여기 없어요!” 한 아이가 외쳤다.

오늘 함께 공부한 애들이라고 설명했지만,

우린 서로 어리둥절~@@

서로의 이름을 물으며 놀고 나서야, “, 맞구나!”

식판을 두고 투명 가림막 너머 서로의 맨얼굴을 확인하며 미소가 번졌다.

아이들에게 존재한다는 건 그런거구나!

존재하지 않은 건 거짓과 같은 것인가보다.

<온라인 교육 유감 5>

 

짧은 등교일에 절실했던 것은 회복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삶의 에너지를 회복하고 배움의 의욕을 보이며, 나와 같은 존재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서로 말 걸어주고, 함께 놀자고 하는 것, 네 생각을 궁금해하고 내 생각을 말하고 싶은 것이 세상에 단단히 발붙이고 서야 배움과 교육이 있다. 작은 것 하나도 함께 살피고 대화하며 해내보고, 눈 마주치며 표정으로 몸짓으로 대화로 제곱수로 폭발적인 상호작용을 해야 사람답게 자연스레 배울 수 있다.

 

분식집에 들러 내가 사 갈 김밥 말기를 기다리는 동안 한 아이가 와서 나를 만졌다. 유령인지 사람인지 확인하듯 공기를 훑으며 지나가는 손이 나에게 닿을 때 눈빛이 빛났다. 여러 차례 손끝이 내게 닿는 동안 아이와 함께 오신 할머님은 아이를 말리고 소리치고 혼내셨다. 나는 따뜻한 미소로 아이에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아이는 확신했을까? 2학기에 우리는 확신할 수 있을까? 오만함이 가득한 일방적인 교육, 존재하지 못해 편견과 거짓을 낳는 온라인 교육, 방역 공포 교육의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에게 온기가 느껴지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먼저 세우고 싶다. 서로에게 존재한 다음 또 서로에게 배움을 일으켜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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