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담론과 문화> 코로나 교단일기



코로나 교단 일기

 

붉은 돼지 (진보교육연구소 회원)

 

 

학교를 옮겼다. 코로나19가 창궐했다.

황당했다. 징글징글한 중3 업무의 피날레로 2월 졸업식을 준비하던 중 코로나 사태 발발. 으아... 바이러스마저 나를 괴롭히는구나아!!

교장, 교감 샘은 내심 강당 졸업식은 안 했으면...’하는 눈치였고 학생들은 방학 내내 공연 연습 열심히 했는데 어쩔!?’ 이러고 있으니. 결단을 내려야 할 위치에 있던 나로서는 한편으로는 유난시럽기는...”이 와중에 공연을 굳이 해야 하나라는 마음이 뒤엉켰다.

3학년 샘들과 협의를 거쳐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별 일 있겠어?’라는 안일한 마음이 컸다. 외부인 참석은 금지하고 학생들과 선생님들만의 졸업식을 강당에서 거행하기로 했다. 작년 안내문을 그대로 사용도 못하고 이러저러해서 졸업식에 오실 수 없으니 부디 양해를... 부터 시작해서 입간판 만들고 어쩌고 저쩌고. 추가로 생긴 일이 많았다.

보건 선생님의 걱정이 가장 컸다. 졸업식장에 아이들이 들어오는데 마이크를 잡고 한참을 말씀하신다. 나는 속으로 .. 빨리 하고 보내야 하는데싶은 생각 밖에 없었다. 이 지겨운 3학년 업무 빨리 끝내고 다른 학교로 떠나 버리잣!

보건 선생님의 노심초사는 아무 소용이 없이 아이들은 엉엉 눈물을 쏟아 내고(너희들 학교를 싫어한 게 아니었던 거야?), 부둥켜안는 등 여기저기서 석별의 정을 나누고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입장하면서 나눠준 마스크는 애저녁에 얼굴에 없었고 교문 밖에서는 학부모들이 이제는 좀 들어가서 사진이라도 찍게 해달라고 아우성이라 지킴이 선생님이 애를 먹었다. 운 좋게 탈 없이 졸업식은 끝났고 5년간 미운 정 고운 정 들어버린 A학교에서의 교직생활도 막을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 학교 교직원연수에 참석했다. 낯가림이 조금 있는 나는 마스크 쓰고 얌전하게 이틀을 학교에 갔다. 며칠 후 전 국민에게 숫자 31이 각인되었다. 이래저래 정들 일 많았던 전 학교 샘들과 식사 자리도 따로 가질 수 없었다. 밥 한 번 먹자고 할 분위기가 도저히 아니었다. 후다닥 짐만 챙기고 말았다. 새로운 학교 선생님들? 한 학기가 끝난 지금 나는 절반 쯤 밖에 모른다.

 

내가 니 담임이다

학교를 옮기면서 구상이 조금 있었다. 으레 학교를 옮기면 새롭게 다짐도 하고 그러니까. (나는 순환근무가 좋다. 한 학교에서 4년만 근무했으면 좋겠다. 5년은 길다. 초빙이다 전입요청이다 뭐다 해서 순환근무가 사실상 무너진 상태인데 다시 순환근무의 원칙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큰 학교 작은 학교, 가난한 지역, 잘 사는 지역 골고루 경험해봐야 선생이 되지.)

이번에는 자기소개서 양식도 비고츠키 개념을 갖다가 자기진단 방식으로 만들어보고~ 애들이랑 학급행사는 뭘 할까나? 올해도 생파는 매월 하는 걸로 할까? 이 학교 애들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등등. 그래도 맘껏 게으름 피우며 TV뉴스와 기사로 코로나19 사태를 접하며 개학을 기다리다가.. (뭐 엄청나게 기다린 건 아니다. 직장인에게 직장보다는 집이 월등히 좋은 거 아님?) 개학이 연기되었다는 소릴 들었다.

3월 재택근무 중 뜨문뜨문 출근을 하는데, 출근 일에 학교에 갔더니 3학년 부장이 애들한테 연락은 해보셨냐고 묻는다. “아니요” (속마음 : 왜 해야 돼? 아직 학기 시작한 것도 아닌데. 난 이 애들을 1도 모르는데? 어색해!)

내 아이들이라는 의식이 전혀 없었다. 애들은 더 하겠지. 어떤 선생인지 궁금하긴 할 테지만 우리 담임쌤이라는 마음이 있을 리가. 그런데 연락을 하라고? 문자로 간단하게 건강상태라도 체크해 보란다. 얌전히 그랬다. (속마음 : 하기 싫어. 안 할 거야)

그래도 고민이 되었다. 성의 없어 보이면 안 되는데? 할까? 말까? 생활기록부, 연락망 등을 참고하여 기초자료를 만든 후에 학생들 대신 보호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1/3은 통화가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그래도 반갑게 받길래 이 사태를 같이 걱정했다. 어쩔 수 없으니 조심하면서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다 같이 시작이 미뤄지는 것이니 이럴 때 좀 쉬게 해 주시라고. 애들보다 학부모 목소리를 먼저 듣다니 이런 적 처음이야! 어지간한 문제가 아니고서는 학부모와 통화하기를 꺼려하는 편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사태는 생각보다 길~어 졌고 갑자기 온라인 수업을 하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원격 조종 수업

처음에는 벌을 받나 싶었다. 그동안 교재 연구, 수업 방법 개선에 아무런 시간 투자 안 하다가 온라인 수업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마침 신규선생님과 같은 학년 수업을 하게 되어서 공유와 협의를 위해서라도 안 쓰던 지도안(매운 간략하나 진행 시나리오 정도?)까지 작성했다.

처음에는 생각이 많았다. 살살 할까 쎄게 할까. 그래도 선생은 선생인지라 어떻게든 아이들 참여를 유도할 방법을 찾느라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다. 결국은 실시간 원격조종이 가능한 방법이 과제를 부여하고 댓글참여를 유도하는 쪽으로 했다. 처음에는 좀 먹히는가 싶더니 이내 학생들이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실시간 수업이 안 되니 이렇게라도 라는 생각이었지만 한 학기가 끝난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실시간으로 했어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참여율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거였겠다 싶다. 처음에는 유튜브 등등을 열심히 찾아서 그나마 괜찮은 영상을 링크 걸고 일일이 필기할 내용을 이미지로 탑재하고 테스트를 매 시간 하고 지루할까봐 신청곡도 올려주고 했다. 하지만 5월로 접어들면서 이런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원격수업으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재생률을 딱 한 번 한 학생 때문에 확인해봤다가 기분만 나빠졌다. 애들이 미워질까봐 다시는 확인해보지 않았다. 이게 아이들 잘못도 아니거늘.

그렇다고 해서 원격 수업이 원래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으니 니가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게 당연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와중에 힘들 텐데 모든 영상을 다 보고 과제를 다 이행하는 아이들이 대단해 보였다. 그 아이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참여하지 않아도 할 수 없지 봐줄게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한 학기 종료 무렵 참여와 비참여의 비율은 64 정도로 추정된다.

 

너희들을 아는 줄 알았어

등교수업이 재개되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선생님들마다 설렘 1 걱정 99였다. 그래도 다들 원격 수업 때 미진한 부분을 보충하리라 벼르고들 있다가! 3주 간격 등교 방침에 이건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하지만 어쩔 수 없지가 되었다.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니까.

평가의 위력을 깨달았다. 수행평가의 개념이 도대체 뭔지도 의아했다. 과제 평가 인지 과정 평가인지 다들 수행 과제 소화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년수업을 나눠 맡는 처지인지라 진도를 맞추기도 힘들고 해서 결국 진도는 나가다가 실패하고 두 번째 등교수업부터는 단원평가와 점검으로 때웠다.

그래도 애들을 보니 반갑고 좋았다. 하지만 어색함은 한 학기가 지난 지금도 가시질 않는다. 매일 만나는 것이 아니니 쓴 소리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지속적 지도가 보장되지 않으므로 냅두게 된다. 그것보다도 나는 저 아이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닌데 함부로하는 것만 같다. 어쩌다 만나는 아이들이기에 감정 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 와중에 진학을 앞두고 있는 학년인지라 몇 명은 면담을 했다. 마스크 쓰고. 한 아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엄마는?’이라고 물어봤는데 돌아가셨어요그래서 너무 깜짝 놀랐다. 아이고 내가 큰 실수를....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선생님들과도 교류할 일이 거의 없어서 사전정보도 너무 없었다. 밴드 메시지로 문자로 통화로 그래도 소통했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착각이었다. 나는 이 아이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어떤 아이는 목소리 한 번 듣지를 못했다. 얼굴은 당연히 모른다. 졸업앨범 사진 찍을 때 수업이 비는 틈을 타서 잠깐 가서 몇 아이들 얼굴을 보며 어머 상상했던 얼굴이 아니구나하면서 속으로 신기해했던 기억밖에 없다.

 

8월초. 교육부는 2/3 등교지침을 발표했다. 한 교실에 바글바글한 상황은 그대로인대 등교일수만 늘어난 것이다. 왜 우리는 같은 상황에서 다른 꿈을 꿀까?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서로에게 묻고 싶은 말일 듯.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 권두언> 아이들의 '미래' 망치는 교육부의 '미래교육' file 진보교육 2020.08.17 114
21 특집1-1] 코로나19 언제까지? file 진보교육 2020.08.17 347
20 특집1-2] 코로나 시기 학교교육/코로나 이후 학교교육 file 진보교육 2020.08.17 127
19 특집1-3] 하반기 교육정세와 교육운동의 방향 file 진보교육 2020.08.17 86
18 특집1-4] 지속가능한 대면수업을 위한 교원수급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file 진보교육 2020.08.17 89
17 [만평] 난중일기 8화 file 진보교육 2020.08.17 52
16 특집2-1] 팬데믹 초등교육과정 제안 file 진보교육 2020.08.17 83
15 특집2-2> 팬데믹 시기, 중학교 교육과정 재구성 file 진보교육 2020.08.17 76
14 특집2-3] 감염병 대유행 시기, 고등학교 비상 교육과정 운영 file 진보교육 2020.08.17 65
13 번역> 행동심리학의 문제로서 의식 file 진보교육 2020.08.17 7509
12 담론과 문화> 파멸의 질주를 멈춘 소녀, 나우시카의 후예들 file 진보교육 2020.08.17 111
11 담론과 문화> 코로나로 인한 동물전시산업의 쇠퇴와 동물인권에 대한 단상 file 진보교육 2020.08.17 55
10 담론과 문화> 미숙한 아이들의 <인간 수업> file 진보교육 2020.08.17 94
9 담론과 문화> 디지털 성폭력과 청소년 성교육 file 진보교육 2020.08.17 176
8 담론과 문화> 예의와 윤리 file 진보교육 2020.08.17 59
» 담론과 문화> 코로나 교단일기 file 진보교육 2020.08.17 62
6 현장에서> 오만과 편견 file 진보교육 2020.08.17 75
5 현장에서> 코로나19 시대, 학생자치는 어디에? file 진보교육 2020.08.17 103
4 현장에서> 현재 돌봄을 넘어 전체 사회가 함께하는 돌봄으로 file 진보교육 2020.08.17 100
3 현장에서> 기초학력 보장에서 개별교육 지원으로 file 진보교육 2020.08.17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