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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호흡하는 음악

 

 

송재혁 (법외노조탄압 해고자)

 

 


AD=After Disease

 

아는 동생이 베토벤 5번 교향곡은 누구 연주를 좋아하느냐는 글을 올렸다. 코로나로 인한 위협 앞에서 느끼게 되는 인류의 무력감을 음악으로나마 떨치고 싶었을 게다. “진정 다른 세계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 반, 걱정 반이예요. 아니 실은 걱정이 더 큰. 폭풍전야 같은 불안함이 있어요. 세상이 어디로 갈까요?” 나도 모르겠다. BC(Before Christ)‘Before Corona’, AD(Anno Domini)‘After Disease’의 줄임말이며 AD의 원년은 2020년이 될 것이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코로나로 미래교육이 미리 왔다고 호들갑 떨며 문재인 정부가 조성한 어쭙잖은 미래교육의 환상에 코드를 맞추었다. 교육 4단체(국가교육회의, 교총, 전교조, 시도교육감협의회)가 공동 주최한 2020428일 포럼에서는 코로나19로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면서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미래교육의 방향을 모색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코로나를 교육개혁(?)’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모양새다. 하지만 전대미문의 온라인 개학이 야기한 교육계의 삼라만상을 보니 코로나19로 교육퇴행이 가속화되지 않으면 다행일 판이다. ‘온라인 수업이 미래교육이라면 코로나 시국에 유행하는 온라인 짜깁기 연주회도 미래음악일까? 어려운 시기마다 고개를 내밀곤 하는 과도한 미래 담론의 허구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이전에도 진정한 교육개혁의 방향과 원칙은 늘 존재해왔다. 자본과 권력이 그것을 번번이 용납지 않았을 뿐이다. 촛불혁명으로 사회와 교육의 새 판을 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조차 박차버렸다. 앞으로 언젠가 온라인 개학이 등교 개학으로 바뀌게 되면 온라인 수업 따위는 정리하고 지연된 교육을 회복하는 한편, 자명하기 짝이 없는 교육 현실의 문제를 보다 과감한 행보로써 해결해 나가면 될 일이다. 교육도 그렇지만 경제야말로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노동계에서도 문재인 정부 판 뉴딜 정책이나 재벌의 사내유보금 회수 등 경제 위기를 돌파할 굵직한 대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자본과 권력이 자기 과오를 코로나로 은폐하면서 경제 위기를 기회 삼아 노동자와 민중을 대대적인 공격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 내부의 주체적 역량일 것이다. 전교조를 포함하여 많은 노동조합에서 자기 사업장 조합원의 이익부터 챙기려는 조합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새로운 사회를 향한 노동자의 연대를 부차적으로 여기거나 아예 부정해버리는 풍토라면 노동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전교조 내부 선거에서 등장했던 충격적인 선전 문구마따나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기조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기린아, 쿠렌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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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 베토벤 교향곡 5. 테오도르 쿠렌치스(Teodor Currentzis) 지휘, 무지카 에테르나(MusicAeterna). 2018년 녹음(SONY)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은 클래식의 대명사로서 식상할 정도로 유명하다. 너무 많이 들어서 더이상 새로운 연주가 가능할지 의문이 들 정도다, 새로운 녹음이 나와도 새롭다는 느낌을 갖기 어렵다. 고클래식(www.goclassic.co.kr)의 디스코그라피에 등록되어 있는 베토벤 5번 음반이 무려 342종이다. 이 중에서 몇 개를 골라내는 것은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예측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럼에도 우열과 상관없이 인상적인 연주를 골라보라면 퍼뜩 3개 정도 떠오른다. 우선 최근의 것으로 테오도르 쿠렌치스(Teodor Currentzis)가 지휘한 무지카 에테르나(MusicAeterna)2018년 녹음이다. 쿠렌치스는 요즈음 클래식계에서 가장 핫한 지휘자 중 한 명이다. 그의 파격적인 음향 세계는 기존의 무겁고 둔중한 연주 스타일에 익숙해진 감상자에게 악곡을 새롭게 보는 충격을 선사한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나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비창’, 말러의 교향곡 6비극적’, 모차르트의 레퀴엠 등 그가 내어놓았던 연주에서 번뜩였던 새로운 해석을 기대한 입장에서는 이번에 나온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이 그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음악미학자 한슬리크(Eduard Hanslick)를 연구한 이미경 교수가 강연에서 말했던 것처럼, 베토벤 5번 교향곡은 너무나 촘촘하고 빈틈없이 정교하게 짜여진 곡이라서 주관적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그만큼 적은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많은 연주들에서 듣지 못했던 소리가 도처에서 빛을 발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무지카 에테르나의 첫 내한공연이 지난 47일과 8일에 있을 예정이었으나 공연이 임박한 316일 취소되고 말았다. 코로나가 남긴 문화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쿠렌치스와 무지카 에테르나의 연주 스타일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악단의 규모를 줄여 가볍고 날렵한 사운드를 추구하는 경향은 존 엘리엇 가디너, 호르디 사발,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파보 예르비 등이 일찍이 선보였다. 이러한 경향의 연주들은 분명 매력적이며, 베토벤 시대의 연주 양식과 사운드를 재현함으로써 당대의 시대정신을 변형이 적은 상태로 체험하게 한다는 강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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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 지휘계의 기린아, 테오도르 쿠렌치스(Teodor Currentzis)

 

 

나치와 푸르트뱅글러

 

신학자 카를 바르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간은 베토벤을 통해 신에게 얘기하지만 신은 모차르트를 통해 인간에게 대답한다.” 모차르트를 칭찬한 말인데, 정작 내게는 베토벤에 꽂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베토벤은 확실히 이 아니라 인간이었고, 당대의 정신을 교향곡으로 웅변한 연설가였다. 그의 육성이 오늘날에 던지는 메아리를 느끼고자 할 때 현대적인 연주 경향은 다소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구관이 명관이라고 다시 낡은 연주들을 들춰보게 된다.

 

독일 낭만파 지휘의 거장이었던 빌헬름 푸르트뱅글러(Wilhelm Furtwängler, 1886.1.25 ~ 1954.11.30.)는 웅변가 베토벤의 연설을 생생하게 전하는 독보적인 메신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남긴 베토벤은 이후 그 누구의 연주와도 다른 면이 있다. 그는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을 240여 회나 연주했다고 하며, 녹음도 여러 종을 남겼다. 그 중에서 2차대전 중이었던 19436월 베를린 필하모니와의 실황 녹음은 베토벤의 영혼이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생생한 연주를 담았다. 독일 파시즘이 동부 전선에서 패색을 비출 무렵에 이뤄진 녹음이다. 그는 나치즘 패망 이전에 스위스로 망명했지만 전범 재판에 오르게 된다. 베를린 필하모니의 유태인 단원들을 보호하려는 노력 등이 인정되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한동안 연주 금지를 당해야 했다. 그의 과거 전력을 염두에 둘 때 전쟁 시기의 베토벤 교향곡 5번이나 9번 같은 연주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지금도 가끔 고민스럽다. 그의 전쟁 중 녹음은 그 이전이나 이후에 남긴 녹음에 비해 다이내믹의 진폭이 더 크고 극적 대비나 긴장감이 더 강렬하다. 이것이 나치즘의 광기인지, 나치즘에 대한 분노인지 확언할 수 없으나, 이 또한 한 시대가 반영된 모습으로 볼 수 있겠다.

 

나치즘이 등장한 후에도 독일에 남아 음악 활동을 지속했던 한 위대한음악가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는 여전히 논쟁 지점이지만, 그가 남긴 위대한 음악 유산은 지금도 계속 을 갈아입으며 출반되고 있다. 2019년에는 베를린 필하모니의 자체 레이블에서 푸르트뱅글러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남긴 라디오 녹음들을 새롭게 리매스터링한 22장의 음반을 내놓았다.모노럴 녹음의 한계는 여전하지만 기존에 출반되었던 것에 비하여 음질이 좀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베토벤 5번 교향곡의 19436월 실황 연주도 담겨 있는데, 이 전집이 매우 비싸므로 고클래식(www.goclassic.co.kr)의 다운로드에서 아주 저렴하게 파일을 내려받는 편이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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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 베를린 필하모니 자체 레이블로 2019년 새롭게 출반된 푸르트뱅글러의 1939~1945년 라디오 녹음(22)

 

 

제국의 오케스트라

 

1943년 연주에서는 3악장에서 4악장으로 쉼없이 이어지는 부분(attacca)을 숨이 넘어갈 정도로 확대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가 남긴 다른 녹음과 비교해도 가장 길게 늘여 놓았다. 가히 암흑에서 광명으로넘어가는 장면으로 손색이 없다. 베를린 필하모니의 어두운 과거를 양심적으로 조명한 제국의 오케스트라-베를린 필하모니와 민족사회주의(Das Reichsorchester - Die Berliner Philharmoniker und der Nationalsozialismus’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그 배경음악으로 이 부분을 사용했다. 4악장의 일출로까지는 가지 않고 3악장 마지막의 여명만을 사용한 탁월한 선곡이다. 엔리크 산체스 랜쉬가 감독한 이 다큐멘터리에는 푸르트뱅글러의 나치 시대 연주 모습과 당시를 회상하는 베를린 필하모니 단원들의 다양한 인터뷰가 담겨 있다. 심지어 나치 정권의 국가대중계몽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의 연설 장면마저 볼 수 있다. 표지에는 나치 깃발 아래에서 지휘하는 푸르트뱅글러의 모습이 담겨 있다. 블루레이는 한글자막을 제공하지만, DVD에는 한글자막이 없음에 유의하여 구입해야 한다


베를린 필하모니는 이제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고 새로운 길로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이후로 독일인이 아닌 외국인에게 지휘를 맡겨 왔는데, 영국인 사이먼 래틀(Simon Rattle)에 이어 작년부터는 유태인인 키릴 페트렌코(Kirill Petrenko)가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다. 독일 정통 음악 중심주의에서도 벗어난 지 오래이며.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연주 양식도 종종 선보이곤 한다. 훌륭한 음질과 화질은 갖춘 디지털 콘서트홀을 통해 모든 공연을 공개하고 있으며 지난 3월 코로나 사태가 한창일 때에는 1개월 간 무료로 개방하기도 했다. (www.digitalconcerthall.com) 이제 베를린 필하모니는 더 이상 독일의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세계의 오케스트라라는 이미지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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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 다큐멘터리 제국의 오케스트라(Das Reichsorchester). 엔리크 산체스 랜쉬(감독). 2012(ARTHAUS 블루레이). 표지의 지휘자는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암흑에서 광명으로

 

우리는 여느 때처럼 암흑에서 광명으로가는 길목에 다시 서 있다. 또다시 암흑으로 가느냐, 광명의 새길로 가느냐는 우리의 주체 역량에 달려 있을 것이다. 요즈음 노동자 진영 내부를 들여다보면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절대선은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조합주의나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있거나 심지어 다른 노조와 일전을 불사할 각오로 노조를 조직하는 병적 징후마저 보인다


1차 대전 패전으로 나락에 떨어진 독일에서 나치즘의 선동이 먹혀 시민들의 지지로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을 때 당근과 채찍이 있었다. 사회민주당, 공산당, 노동조합 등에 대한 활동 금지 조치와 아울러 민족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 NSDAP, Nazi)’의 하부 조직으로서 독일 노동전선(Deutsche Arbeitsfront, DAF)’이 결성되었는데, 이른바 어용노조였다. 여기 가입하면 기존 노조의 자산은 승계하고 채무는 승계하지 않게 했다고 한다. 그 결과 90% 가량의 노동자가 노동전선에 가입하게 되었고 기존의 노동자 운동은 궤멸하게 된다. 불경기나 공황이 파시즘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주변의 흐름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경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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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 베토벤 교향곡 5. 3악장에서 4악장으로 넘어가는 부분의 악보

 

 

운명인가 혁명인가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베토벤 5번 교향곡 음반으로, 헤르베르트 케겔(Herbert Kegel)과 동독의 드레스덴 필하모니가 일본 동경 선토리홀에서 19891018일 연주한 실황 녹음을 들고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는 무거운 연주다. 큰 돌을 가파른 언덕 위로 굴려야 했던 시시포스의 신화를 연상케 한다. 형벌을 내린 신에게 시시포스가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형벌을 즐기는 것이었단다. 4악장이 시작될 때 금관의 찬란한 --팡파르는 인상적인 루바토로 확장되어 있지만, 승리의 도취감 속에 열광해야 할 4악장의 마지막 순간조차 장조가 단조로 들리는 듯하다. 베토벤 5번 교향곡에 곧잘 붙이는 운명이라는 제목은 베토벤이 붙인 표제가 아닐 뿐 아니라 공식적인 것도 아니다. 이 곡은 연주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될 수도. ‘혁명이 될 수도 있는데, 헤르베르트 케겔의 연주에는 운명이라는 부제를 붙여야 할 것 같다


5번 연주가 끝나면 지휘자가 앵콜곡을 소개하는 나직한 목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J. S.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 중 아리아(Air), 일명 ‘G선 상의 아리아가 연주된다. 느리고 느린 연주로, 마치 케겔의 유언처럼 들린다. 이 연주가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1989119일 동독과 서독 간의 자유 왕래가 허용되면서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시작하였고, 1990103일 동독의 다섯 개 주가 서독으로 편입되었다. 동독 몰락과 통독 이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지휘자 케겔은 19901120일 스스로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혁명4악장 피날레가 소련 당국의 압박에 따라 억지로 쥐어짠 승리의 흉내내기라는 식의 세간의 비평을 의식한 듯, 1986년 이 곡을 녹음할 때 악보에도 없는 튜블러 벨까지 동원했던 케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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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 베토벤 교향곡 5. 헤르베르트 케겔(지휘), 드레스덴 필하모니의 일본 동경 선토리홀 1989.10.18. 실황 녹음(NHK, ALTUS)

 

 

오월 합창단

 

이번 코로나19가 개인적으로 안겨 준 가장 큰 재앙은 오월 부활하다공연이 무산된 것이다.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여 올해 516() 19,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연주회를 열기로 했다. 첫 번째 연주 예정곡은 프롤로그.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 그날이 오면으로, 문승현의 그날이오면에 말러의 교향곡 3번의 6악장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을 결합하여 구자범 지휘자가 편곡한 버전이다. 2016416일 비가 쏟아지는 광화문 광장에서 있었던 세월호 2주기 추모제에서 유로기아 합창단과 첼로 합주단의 반주로 연주되었던 곡을 이번에 관현악 반주로 새롭게 편곡한 것이다. 그리고 말러의 교향곡 2부활을 김상봉 교수가 5.18 정신에 비추어 10년 전에 우리말로 번역했던 가사로 노래할 예정이었다. 지휘자는 구자범, 솔리스트는 소프라노 오미선, 메조 소프라노 김선정이 맡을 예정이었으며, 이를 위해 오월 오케스트라오월 합창단이 일반 시민들로 구성되었다.

 

2010517, 5.18 30주년을 기념하여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말러의 부활이 우리말로 처음 연주될 때 전교조 서울지부 합창단이 시민합창단에 참여했었다. 이번 40주년 무대에도 함께 하고자 지난 220일 서울지부 집행위원회에서 사업을 승인받아 조합원과 시민이 함께하는 스물여덟명 규모의 합창단을 구성하였고 심사위원단으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다. 실력이 검증되지 않는 우리 합창단이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전교조라는 이름의 가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후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자 공연 장소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으로 옮기고 청중 없이 공연하여 방송으로 송출하는 방안이 마련되었다. 오케스트라는 무대에서, 합창단은 비어있는 청중석에서 개인 간격을 벌려 서서 연주함으로써 도청 분수대를 둘러섰던 40년 전 광주 시민들의 모습이 연주회장에서 재연될 참이었다. 그러나 서울지부 합창단 단원들이 사비를 모아 합창단 전용 피아노를 구입하기로 했던 날, 서울시와 세종문화회관은 코로나 관계로 공연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첫 연습도 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끝난 것이다. 민주항쟁의 정신과 평등세상을 향한 꿈을 저마다의 가슴에 부활시키고자 기획된 것이었지만, 사실 가슴 속에는 해고자로서 피폐해져 가는 삶을 부활시킬 에너지를 얻고자 하는 사심도 들어 있었는데, 합창단을 나름 열심히 준비해왔기에 상심도 그만큼 컸다. 과거의 클래식 음악을 현재의 사회적 맥락으로 부활시키는 기념비적인 공연은 다음 기회를 기약하게 되었다.

 

우리말 연주가 안겨주었을 감동에는 못 미치겠지만, 청소년들이 연주한 독일어 공연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소프라노 미아 페르손, 메조 소프라노 안나 라르손, 영국 국립 청소년 합창단, 그리고 엘 시스테마가 낳은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교향악단의 연주다. 베네수엘라 출신인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했다. 영국 로열 앨버트홀에서의 2011BBC 프롬스 실황 영상인데 음질과 화질이 모두 좋다. (유튜브에서 ‘Mahler Symphony No.2 Simon Bolivar Symphony Orchestra Full HD’로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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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 5.18 40주년 기념, '오월 합창단과 관현악단'에 의한 말러 교향곡 '부활' 우리말 연주회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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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 말러 교향곡 2'부활' 영상. 구스타보 두다멜(지휘),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교향악단, 영국 국립 청소년 합창단. 영국 로열 앨버트홀 2011BBC 프롬스 실황(스틸 컷)

 

 

내게 들린 것을 당신도 들을 수 있다면

 

미래란 현재의 문제를 은폐하는 신기루에 불과할지 모른다. 미래는 그저 과거와 현재의 연장일 뿐이니. 중요한 것은 늘 현재다. 미래를 파는 모호하고 무책임한 미래 담론이나 현재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허구적 미래 이데올로기에 매몰되고 있지 않은지 점검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교육에 매달리면 교육의 미래가 없듯이, ‘미래음악에 매달리면 음악의 미래가 없을지 모른다. 과거의 음악 유산을 끊임없이 현재적 맥락에서 해석하여 사회적 소통 공간에 내어놓는 일은 새로운 창작 못지않은 창의적 음악하기(musicking)’이다. 이때 과거와 현재를 미래와 의미 있게 연결짓는 고리는 사회적 맥락에서 늘 새롭게 재해석하는 관점일 것이다. 이로써 미래 예술의 한 축이 형성될 것이며, 과거와 현재 작품의 불멸성은 시대와의 끊임없는 호흡을 통해 미래로 이어질 것이다.

 

2018년 한국에 있는 이란 난민과 아들이 추방 위기에 놓였을 때 그 학생이 다니는 학교의 전교조 조합원 선생님께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이를 간접적으로 돕기는 했지만 정작 버젓한 입장문 하나 내지 못했던 것이 늘 마음 한구석에 부채로 남아 있다. 당시 여론이 난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어서 내심 공격을 우려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배우 정우성이 출연한 난민을 옹호하는 공익광고를 우연히 보고 부끄러움마저 느꼈다. 그가 난민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달라며 쓴 책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한편 생각해보면, 여기저기서 음악에 대한 글 조각들을 남겨온 이유도 내게 들린 것을 당신도 들을 수 있기를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음악에 대하여 공감 또는 비공감에 도달하려면 실제로 그 음악을 반드시 들어봐야만 한다


앞서 소개했던 지휘자 쿠렌치스의 내한 공연이 취소될 때 무지카 에테르나의 운영진과 단원 명의로 나온 입장문은 유감 표명에 이어 이렇게 마무리되어 있다. “음악은 초월하고 치유합니다.(Music transcends and music heals.). 더 밝은 미래에 우리 음악을 당신들과 나누게 되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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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 정우성 저,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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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원고-200429수-시대와 호흡하는 음악-송재혁.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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