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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츠키교육학의 관점에서 본 과정중심평가

: 과정중심평가는 어린이·청소년의 ‘역량’ 발달을 이끌 수 있는가?

 

손지희 (진보교육연구소 비고츠키교육학실천연구모임)

 

 

1. 과정중심평가로 무엇이 달라졌을까?

 

2019년의 1학기말. 평가가 집중되는 시기인 학기말 특유의 분주함과 고단함, 그리고 스트레스까지. 애들은 많이 바빠 보이고 선생님들도 이것저것 하느라 정신이 없다. 날도 더운데다가 학기말에 집중된 수행평가로 애들은 짜증이 많아지고 예민하다. 수행평가에 필요한 자료출력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는 담임들도 덩달아 정신이 없다. 지필시험도 여전히 치른다. 과목에 따라서는 서논술형 비중이 대폭 늘어서 부담스럽다. 교사라고 편할 리 없다. 답안지를 일일이 들여다보며 ‘일관성’ 있게 채점해야 하는 건 큰 일거리다.

먼저 지필평가. 올해부터 과정중심평가가 시행되면서 지필고사를 보는 과목수도 반영비중도 줄었다. 하지만 지필고사로 인한 부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숙명여고 사태 이후 정기고사 관리는 더 번거롭고 까다로워졌다. 이해할 수 없는 협박성 지침도 내려온다. 정답이 없는 문제는 재시험을 보라, 서논술형 문항의 모든 유사정답은 해당 양식에 기록해서 고사 후 다시 결재를 받고 성적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라 등... 고사관리 담당교사는 학기 초 과목별 평가계획 수합 업무부터 시작해서 고사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관리자들도 협박성 지침을 전달하며 당부를 거듭한다. 시험 보는 과목수도 횟수도 줄었지만 몇 퍼센트를 반영하든 교사들은 출제하랴 채점하랴 진도 나가랴 동동거리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비중은 적어도 평가요소로 엄연히 유지되고 있으므로 부담을 안 가질 수 없다. 학원에서 주로 이 준비를 시킨다.

수행평가. 하필 시험이 임박했을 때 각 과목의 수행평가는 집중되어 버린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라! 얼마나 아는지 보다 뭘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모토로 평가개혁의 핵심 정책으로 수행평가를 도입한 지도 20년가량 되었다. 교사들도 요령이 제법 생겼고 이래저래 걸리는 게 많아 못해봤던 활동도 ‘평가’를 무기 삼아 시도한다. 아이들의 산출물이 기대 이상이어서 놀라고 대견할 때도 물론 있다. 그런데 수행평가 확대는 과연 한국 교육평가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대안이 되고 있는가? 얼마 전에 청와대게시판에 고등학교 수행평가를 줄여달라는 한 교사의 청원 글이 화제가 되었다는 사실로부터 현실이 결코 아름답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교육청 지침에 따라 100퍼센트 수행평가만 하는 과목이 생겼다. 아이들 입에서 “차라리 시험을 보는 게 낫지”라는 말까지 나온다.

수행평가는 개별평가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모둠활동으로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버스 탄다’는 말이 있다. ‘무임승차’하는 아이들을 비난하는 말이다. 게임 용어인 ‘버스 탄다’로 변천한 것인데, 한 모둠의 모든 아이들이 우수하고 성실할 리는 없으니 모둠원 중 한둘은 죽어나는 경우가 많다. 한 과목도 아니고 여러 과목의 조별 산출물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아이들은 수행평가로 인한 고통이 더 크다. 모둠활동을 통한 협력적 상호작용은 한낱 꿈이고 반목과 갈등이 아이들 사이에 피어오르기도 한다. 그럴 듯한 모둠별 산출물에 흡족해 할 일만은 아닌 것이다. 모둠 편성 자체가 난항인 경우마저 있다. 과제로 부과하지 말라고 아무리 외쳐봤자 소용없다. 지필고사까지 치르는 과목들은 진도도 나가야 한다. 수행평가 과제를 세월아네월아 시간 줘가며 수업시간에 오롯이 하도록 하기는 힘들다. 시설도 자원도 뒷받침이 안 된다. 평소에 하는 활동을 점수화하면 그만일 테지만 한편으로 교사로서의 욕심이 그렇지 않기도 하다. 다양한 활동을 가급적 해보고 싶은 마음. 이해할 수 있다. 그냥은 하지 않을 것들을 ‘평가’를 무기로 시킬 수 있으니까. 나무랄 수만은 없는 일이다.

교사의 평가권이 습자지처럼 얄팍하고 내신이 걸린 마당에 수행평가는 시비꺼리가 된다. 학생과 학부모가 평가 결과에 수긍하지 못할 가능성은 언제든 있다. 점수에 불만을 갖는 학생과 사이가 틀어지고 심지어 직접 항의를 받아 곤욕을 치룬다. 이러다 보면 점수화하기에 좋은 것을 선호하게 된다. 그러면 다시 원점...

서논술형 평가 확대. 객관식은 저급하고 서논술형은 고급지다 여기기 쉽다. 서논술형이 뭔가 더 확실하게 평가할 수 있을 거라 여긴다. 찍어서 맞춘 건지 풀어서 맞춘 건지 오리무중이니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답안지가 더 확실하게 학습자의 능력을 보여준다고 여기거나 더 고차적인 능력을 요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방식만 놓고 단순 비교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서논술형 강제 확대 정책으로 직행해도 좋을 만큼의 교육적 효과가 있긴 한 걸까?

 

그런데, 이 모든 평가방식을 포괄하는 과정중심평가가 ‘시험지옥’으로 지칭되던 대한민국 학교 풍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 교사별 과정중심평가는 한국교육에서 시험으로 통칭되는 평가의 문제점을 극복은커녕 완화조차 못하고 있다. 교사별로 평가한다? 여전히 점수화해서 줄을 세워야 하고 교사별이라는 수식어가 붙인들 개별 교사의 평가 자율성이 보장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실, 교사별 과정중심평가는 학교현장의 평가와 관련된 산적한 문제보다는 꽤 거창하고도 낭만적인 모종의 ‘교육적 지향’과 관련되어 강제적, 일방적으로 시행되는 정책이다. 그렇기에 평가방식을 넘어서서 보다 넓은 차원의 내용을 ‘담론투쟁’을 해야 하는 문제이다.

과정중심평가정책을 추동하고 떠받치고 있는 중심적인 근거는 세계 각국 국가교육정책의 중심지위를 차지한 ‘핵심역량’ 개념이며 이를 근거로 최근 한국 교육계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신학력’ 개념이다.

 

2. ‘신학력’ 논의와 과정중심평가

 

21세기 교육과정 개혁에서 가장 큰 화두는 새로운 학력으로서의 핵심역량이다. ‘핵심역량’이 21세기 세계 각국 교육개혁의 가장 큰 화두가 되기까지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경제관련 기구인 OECD이다. 역량관련 논의는 본래 직업교육이나 경영학 분야에서 직무나 업무의 성공적 수행능력과 관련된 개념으로 사용되다가 1997년부터 시작된 OECD의 DeSeCo프로젝트를 통해 학교교육에로 확산되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규명하고자 한 것은 종래 삶을 위한 ‘기초 기능’(basic skil)으로 간주되었던 읽기, 쓰기, 셈하기를 넘어서서, 개인의 성공적이고 책임감 있는 삶을 이끄는데 있어서, 그리고 사회가 현재와 미래의 도전에 직면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소경희, 2017, 『교육과정의 이해』 p160). ’DeSeCo프로젝트를 통해 OECD는 인간의 핵심역량을 3개 영역, 9가지로 제시하였으며 지식의 양을 평가하는 대신 지식으로 할 수 있는 skill을 강조했다. 다만 최근의 역량 논의에서는 역량을 단순히 ‘사고 기능’ 이나 ‘비판적 기능’과 같은 개별적인 낱낱의 기능들(skill)과 동일시하는 것은 흔한 오해에 지나지 않으며, 역량은 행위를 이끌기 위한 지식과 기능, 태도, 가치, 동기 모두가 통합된 것이라고 논점이 다소 바뀌었다(소경희, 앞의 책, p161).

OECD는 미래사회 핵심역량 도출에 머무르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가 <The OECD Education 2030 Project>를 전개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OECD는 핵심 역량을 기르기 위한 교육과정, 교수·학습법, 평가시스템 등 미래사회의 교육패러다임을 앞서 제시하고자 하였다. <The OECD Education 2030 Project>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도록 하는 교육’을 새로운 교육의 방향으로 제안한다.

OECD의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된 미래사회 핵심역량에 대한 논의는 많은 나라의 교육과정 정책에 영향을 미쳤는데, 한국에서는 2015개정교육과정에 ‘핵심역량’ 개념을 전면 반영했다. 교육당국은 핵심역량을 중심 기조로 한 2015교육과정 실현의 관건을 새로운 ‘평가방식’ 도입에서 찾기 시작했다.

 

역량 기반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등의 역량 기반 교육 실천을 위해서는 역량의 개념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정립하고 교육내용의 본질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교육 내용(지식)과 실천 능력(역량) 사이의 연계성 탐색, 그리고 올바른 역량 평가의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함. (김경희 외, 2019,『새로운 학력 지표 구성 및 측정 방안 연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새롭게 도입된 소위 ‘핵심역량’을 키우기 위해 새로운 학생평가체제가 필요한데, 그 중심이 바로 ‘교사별 과정중심평가’인 것이다. 교육청에 따르면, 과정중심평가는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에 기반 한 평가계획에 따라 교수‧학습 과정에서 학생의 변화와 성장에 대한 자료를 다각도로 수집하여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평가”이다.

서울지역의 경우 ‘2015 개정교육과정’ 적용에 따른 ‘과정중심평가’ 교원 역량 강화 연수가 2018년 여름 방학부터 시작되었다. 강제연수까지 불사하며 강행되고 있는 과정중심평가는 역량중심으로 교육패러다임을 재편한다는 것을 목표로 시행되는 정책이다.

한편, 핵심역량이라는 개념이 제기된 이래 역량에 대한 이해는 대체로 진전된 듯하다. ‘총체성’을 인간 역량의 중요한 속성으로 이해하기 시작했고 학습을 통해 변화, 발달한다는 것을 역량의 속성으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역량은 지식, 기술, 태도, 가치, 동기 등의 구성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내적 구조를 갖는 총체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역량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역량의 속성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해야 한다. 역량의 속성에 대해 관련 학자들은 우선, 역량은 학습가능하며 발달적이다, 둘째, 총체성을 갖는다, 셋째, 수행으로 나타난다. 넷째, 맥락을 갖는다, 다섯째, 개인적인 능력이면서 동시에 개인 간 상호작용이 강하다는 속성(김경자 외, 2015; 온정덕 외, 2015)에 대체로 동의한다. 이러한 속성은 역량이 지식과 기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이며 역량을 단순히 지식과 기능의 합으로 이해하는 것은 역량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김경희 외, 2019,『새로운 학력 지표 구성 및 측정 방안 연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하지만, 결과로서 눈에 보여 지는 역량에 대한 정의는 발전하였을지 몰라도 역량이 발달하는 과정은 암흑상자이다. OECD든 역량중심 교육과정 주창자든 과학적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역량에 대해서 경제적 논의가 아닌 교육적 논의를 하는 것이라면 그 중심에는 발달이 있어야 한다. ‘발달’을 중심적으로 다루어야 마땅함에도 아직까지는 가장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형편이다.

사리에 맞는지는 따져봐야 하겠으나, 한국에서의 역량 논의의 중심은 ‘평가’이다. 역량이 어떤 학습과정을 통해 발달하는가 보다는 사전에 도출하여 정의 내린 몇 가지 ‘핵심역량들’을 새로운 평가양식을 통해 이끌어내려는 시도가 주된 관심사이다.

 

새로운 학력관이 추구하고자 하는 성장을 위한 교육은 지식의 습득에 국한되지 않고 지식을 넘어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기 지식화하여 공감하고 표현하는 역량까지 포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역량은 지식, 기술, 태도, 가치, 동기 등의 구성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내적 구조를 이루는 총체적 구조 속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좁은 의미에서의) 지식 중심의 교육과정에서는 역량을 분절적 구조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즉, 역량 중심 교육 흔히 역량의 하위 구성요소들을 범주화시키고 분할하여 나열하고, 이에 따라 각각의 역량에 대하여 학생의 수행을 처방하거나 그 도달 수준이나 여부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위에서 정리한 역량의 세 가지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한계다. 여섯 개로 제시한 역량을 역량이 아닌 각각의 기능을 키우고 평가하는 접근들 또한 흔히 볼 수 있다. 역량을 기능으로서 다루는 모습은 교과 지식의 학습과 느슨한 관계로 다루는 학습과 평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제대로 다룬 역량은 교과 지식과 기능, 그리고 정서와 태도는 서로 분리될 수 없도록 총체화된 상태다. 예컨대 국어 교과에서 키우고자 한 의사소통 역량은 국어과 지식과 기능 그리고 태도를 아우르는 경험의 상태를 일컫는다.

역량 평가는 배운 내용을 얼마나 잘 기억하고 회상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둔 전통적인 평가와는 다르다. 즉, 역량 평가는 결과를 작 기억하고 회상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문항에서 제시하는 바를 해결하기 위해서 문항의 맥락에 맞게 지식, 정보, 기능을 동원하여 자주적으로 구성하고 총체적으로 발휘하는 ‘과정(process)’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역량 평가는 ... 학습자가 과제 해결에서 그 맥락에 맞게 지식, 정보, 기능 등을 총체적으로 동원하고 자주적으로 구성하여 발휘하는 ‘과정(process)’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러한 역량 기반의 교육적 흐름은 인지적, 정의적, 사회적 측면에서 학습자의 균형적 성장을 전제하고 있으며 글로벌 사회에서는 다각도의 교육적 노력을 실천하고 있음. 따라서 인지, 정의, 사회적 측면에서의 균형적인 성장과 발달이 학교교육의 목표와 결과여야 하며 이는 기존의 학력으로 축소된 학교교육 성과와는 구별되어야 함. (김경희 외, 앞의 글에서 발췌, 재배치)

 

학습자가 보유한 지식의 양을 측정하는, 그들이 보기에 ‘기억’ 외의 별다른 역량을 요하지 않는 전통적 평가와는 다른 평가가 새로운 학력 측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 역량중심 교육과정의 평가 논의의 출발점이다. 총체적 성격을 지니는 신학력의 중심인 핵심역량을 측정하려면 이에 걸맞는 평가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은 새로운 학력 측정을 목표로 삼는 과정 중심의 역량평가 논의는 학교교육이 어떤 결과를 산출했는지 반드시 측정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새로운 학력을 측정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평가는 전통적 평가에서 도모하지 못한 일을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과정에 초점을 두는 평가를 통해 지식보유량 측정에 머무르는 전통적 평가로는 도모할 수 없는 총체화된 역량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사실 현재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교사별 과정중심평가는 7차 교육과정 시기 수행평가가 도입된 이래 한참동안 시행된 평가방식과 사실 다르지 않다. 그런데 기존의 평가와 달라야 한다고 강조하고 주장만 하고 있는 셈이다. 전통적 평가와 다른 새로운 평가여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아 밀어붙이다 보니 교사를 닦달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기존 평가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교사들이 새로운 평가를 실천할 역량이 없기 때문이고 따라서 ‘새로운’ 과정중심평가 실현을 위해 강제연수라도 시켜야 하는 것이다.

평가정책을 통해 새로운 학력을 창출하려는 시도가 모든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짐작컨대, 평가가 교육과정을 쥐락펴락하는 한국교육의 특성을 인식하고 평가를 모종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는 의도가 난리법석 평가정책 시행의 배경에 있을 것이다. 평가가 교육과정을 좌우하는 것이 결코 올바르지 않음을, 평가는 교수-학습과정의 일부여야 함을 모든 교육평가 이론서에서 표방하고 있을 지라도 현실적으로 교육을 바꾸는 영향력 있는 기제는 평가라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가정책을 발판으로 새로운 학력, 총체적 역량을 발달시키는 교육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발상은 과연 과학적으로 타당한 것이며, 이러한 의도는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가? 교사들을 동원해서 강제로 하루 꼬박 연수하면 “암기·서열 중심의 평가를 지양하고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력 및 문제해결력 등 핵심역량을 키워줄 수 있는 학생평가 체제로 개선” 될 수 있을까?

 

3. 비고츠키교육학의 관점으로 본 평가와 발달

 

역량 문제부터 살핀다. 핵심역량은 총체성, 발달적 성격에 대한 인식, 상호작용의 역할 중시 등 비고츠키의 ‘고등정신기능’ 개념과 언뜻 같아 보인다. 비고츠키 이론을 직접 참조한 부분도 있겠지만 아마도 인간의 역량이라는 동일한 대상에 대한 서로 다른 탐구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나타난 외적 유사성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인간 고유의 정신기능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 동일한 탐구대상에 대한 서로 다른 탐구일지라도 도출된 결과는 충분히 비슷할 수 있다.

그러나, 핵심역량과 고등정신기능 개념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서 동일하지 않으며 특히 각각을 기반으로 한 구체적인 교육실천의 양상에 있어서 전혀 다르다.

학교교육과 관련, 비고츠키교육학에서는 평가를 역량발달의 기제로 여기지 않는다. “훌륭한 교수-학습은 어린이 청소년의 발달을 이끈다”고 강조할 뿐이다. 평가의 기능이나 방식에 대한 간단한 언급조차 찾기 어렵다. 심지어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한다는 힌트조차 주지 않는다. 어린이청소년의 발달을 이끄는 실천가로서의 교사의 몫일 뿐이다. 협력과 모방을 중심기제로 한 교수-학습의 과정에서 교사가 아동과의 상호작용과 관찰을 통해 아동의 내적 잠재력과 내적 변화를 마치 탐정이나 의사처럼 진단하는 것이 중요할 뿐 발달을 ‘시험문항’이나 ‘수행평가 과제’ 등 측정도구의 몫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새로운 평가든 전통적 평가든 교사와의 상호작용을 배제하는 평가는 발달보다는 현재적 상태를 측정하고 학습자 발달에 대한 현재적 정보만을 부분적으로 제공하는 도구로 만족해야 한다. 이러한 이론적 사실과 상관없이 역량중심교육과정의 과정중심평가는 평가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전체 교육의 과정에서 평가에 과도하게 거창한 지위를 부여하며 평가방식이 새로워야 함을 지나치게 강요한다.

현행 과정중심평가의 중핵인 수행평가는 교수-학습을 통한 발달적 변화가 아니라 평가과정에서 학생들이 뭔가를 해내기를 기대하고 그것을 점수화한다. 학습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적 변화를 유발해야 할 교사의 역할을 평가도구가 대신하게끔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없던 것이 생기면 좋을 텐데 이미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죽어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교사는 가르칠 필요도 없이 매시간 뭔가 제시하고 평가만 주구장장하면 된다. 발달을 이끄는 자가 아니라 점수 매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학습자의 산출물이 교수-학습의 결과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할 수 있었던 것을 외재화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모둠의 산출물의 경우 누가 한 것인지 개개인이 어떤 발달을 이루었는지 더더욱 불분명하다. 이것은 7차 교육과정에서 시작된 구성주의의 진화된 버전에 다름 아니다. 아이들을 평가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교사들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평가가 교수-학습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교수-학습의 대체물로 삼을 때 더 심해질 수 있는 현상이다.

고등정신기능의 총체성과 역량의 총체성. 유사성은 수사에서 멈춘다. 신학력 논의에서 역량의 총체성은 변증법적 의미의 총체성은 아니다. 현상적 파악의 결과일 뿐이다. 창의력이나 문제해결력 등 미래사회 핵심역량으로 선별된 것들을 보아하니, 한 가지가 아니라 이런 저런 기능이 함께 필요한데 딱히 각각의 기능들이 기계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정도의 인식이다.

비고츠키이론의 공헌은 총체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인간의 정신기능과 뭔가가 얽혀서 발현된 결과를 지각, 주의, 기억, 생각의 기본적 구성요소로 나누고 다시 그것의 총체적 결합과정과 결정적 매개를 설명했다는 것에 있다. 그런데 핵심역량 논의에서는 결과만 있을 뿐 구성요소들로의 분석과 이들이 결합하는 과정에 대해 해명하지 못한 채 곧바로 교육실천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것은 곤란한 결과를 낳는다. 실제 발달의 과정과 다른 교육적 목적을 연령과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강조하게 되기 때문이다. 발달의 각 시기별로 정신발달을 선도하는 기능의 존재와 역할을 비고츠키교육학은 제시한 바 있다. 예컨대, 15세 청소년의 발달을 모든 정신기능에 앞장서서 이끄는 중심적 기능은 지각이 아니다. 비고츠키교육학에 따르면 ‘사고’이다. 그리고 학령기 어린이의 발달의 최전선에 서는 것은 주의와 기억이다. 따라서 미취학 아동, 학령기 어린이, 사춘기 청소년 등의 각 발달시기의 특성과 무관하게 미래사회 핵심역량이므로 시종일관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을 강조한들 실제의 발달 과정과 맞지 않으므로 원하는 결과는 성취할 수 없다.

또한 지각, 주의, 기억, 사고 각각을 주요정신기능을 ‘총체적인’ 핵심역량에 비해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문제다. 핵심역량에서는 지식을 기억하는 것을 수준 낮은 것이라고 치부한다. 읽기, 쓰기, 셈하기는 핵심역량 발달을 이끌지 못한다고 단정짓는다. 과연 그럴까? 지식을 암기하는 것은 그 지식을 밖에서 안으로 이전시키기만 하는 과정이 아니다. 하나의 개념을 기억하는 것은 주어진 문장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항상 그 이상의 발달적 의미를 함의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글씨의 모양을 흉내 내어 재생하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3R로 대표되는 전통적 교육의 외적 활동들은 내적기능의 형성으로 연결되었다. 그래서 전통적 교육, 낡은 교육으로 조롱받는 이런 ‘단순한’ 방식의 수업과 평가를 경험한 세대들도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사회적 연대를 하고 각종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물론 의도치 않은 결과였을지 모른다. 낡은 것으로, 없애야 할 것으로 당시에도 치부되던 전통적 교육과정의 교과중심체제와 문법, 산술, 글쓰기 등의 아주 오랜 전통을 갖는 활동들이 갖는 발달적 의의를 비고츠키는 간파했다. 이는 외적 활동과 내적 기능을 구분하고 그 관계를 탐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핵심역량 논의에서는 역량과 역량을 이끌어낼 만한 활동 사이의 구분과 내적 관계 설정이 없다보니 교수-학습과 평가에 있어서 모두 문제해결력이나 창의력을 기르는 별도의 방법을 도출하려 든다.

‘명탐정 코난’은 난제를 항상 기가 막히게 해결한다. 그런데 꼬마의 모습을 한 코난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 상당한 지식을 섭렵한 상태이고 이를 동원해서 사건을 해결해나간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지식 습득 과정은 코난의 고등정신기능의 발달과정이었을 것이며 그것을 기반으로 코난은 추리력과 의지적 실천이라는 고차적 행위를 모종의 사건이라는 맥락 속에서 발현한다. 그런데 핵심역량 논의에서는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과정평가’라는 마법을 통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현실적으로, 이론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예전에 비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지식을 실용적 측면에서만 파악하는 경제적 관점이 바탕에 깔려 있기에 미래사회에 쓸모없을 지식을 교과서를 통해 열심히 가르질 이유가 그들에게는 별로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시대가, 맥락이, 상황이 바뀌어도 실용적일 역량에 집착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식이라는 매개 없이 역량은 형성될 수 없으며 모든 지식이 실용성과 항구적인 내용타당성으로만 평가될 일도 아니다. 적어도 교육의 맥락에서는 그러하다.

 

4. 평가담론의 방향 전환

 

서열화 지양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과정중심평가는 그래도 미덕이 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서울시교육청의 일방적 지시로 2월에 전 학교에서 실시된 과정중심평가 교내연수에서 취지니 방식이니 교무부장의 장황한 이야기를 듣다가 그러면 이제부터 점수화를 안 해도 되는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그런데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평가의 서열적 기능은 지양하지만 점수는 매겨라?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뭔가 취지가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새로운 정책에 대한 교사의 이해 부족과 평가전문성 결여에 있지 않다. 여전히 점수화를 해야 하고 평가가 ‘아이구 참 잘 해냈구나’ ‘함께 이런 걸 해서 네가 이렇게 새로운 걸 할 수 있게 되었어’라고 칭찬하거나 ‘아직 이 부분은 선생님이란 같이 공부해보아야 되겠구나’라고 피드백하는 걸로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참 좋을 텐데, 점수를 매기고 그 점수로 서열화를 하고 그나마 아이들을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인 평가. 평가의 기능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그런데 방식만 바꿔라? 교사별로 해라?

현 시기 평가에 대한 담론제출과 투쟁의 집중점은 무엇이어야 할까? 평가의 민감성 문제여야 한다. 모든 문제는 아닐 지라도 현재 학교교육의 상당한 문제는 평가에 대한 ‘민감성’을 없애면 해소가 된다. 역시 관건은 입시다. 평가에서의 민감성을 없애는 것에서 더 나아가 발달을 지향하고 교수-학습의 일부로서 녹아있는 평가 패러다임을 제출하며 핵심역량의 평가논의에 맞불도 놓아야 한다. 다행히도 일제고사를 계기로 평가패러다임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당시의 성과도 적지 않다. 과정중심평가를 계기로 오랜 만에 소개해본다.

새로운 평가패러다임은 ‘발달의 관점’이 출발점이며 학습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평가가 자연스럽게 결합되느냐가 관건이라고 본다. 그래서 가르치는 자가 평가하는 것이 발달의 관점에 부합한다는 점을 전제하고자 한다. 발달의 관점에서 본다면 ‘서열을 매기는 일’은 매우 우스운 일이다. 발달 단계가 다를 경우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고 발달 단계가 같다면 불필요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협력의 차원에서 본다면 점수 경쟁은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협력 그 자체가 가장 효과적인 학습 과정인데 점수 측정을 통해 서열을 매기고 비교하는 것은 협력 자체를 파괴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1) 새로운 평가 패러다임의 방향

 

발달 중심의 질적 평가

교육에서 가장 근본적인 의제는 ‘발달’의 문제이다. 교육은 인간 발달을 지향하는 것이며 인간적 발달은 사회적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발달은 지식의 양적 누적이 아니라 ‘고등정신기능’이라는 인간적 역능의 인지적, 정서적, 실천적 발달을 의미한다. 교육의 목적을 인간적 발달에 두면서 고등정신기능의 질적 변화 과정에 주목할 때 교육평가에 대한 관점은 완전히 새로워진다. 즉 지식의 양적 측정과 서열화가 아니라 고등정신기능의 발달 상황과 과정에 대한 진단에 초점을 두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기능의 구체적 발달 상황을 서술하는 질적 평가 방식으로 나타난다.

비고츠키 교육학은 인간발달 과정을 발달단계에 따른 고등정신기능의 양적 성숙과 질적 비약의 과정으로, 정신기능을 인지적․정서적․실천적 측면의 결합으로, 소통과 협력을 통한 상호작용과정으로 보면서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발달을 추구한다. 이 같은 논의에 기반하여 발달단계에 걸맞는 정신기능을 설정하고, 그 기능의 출현․성숙․내면화의 국면과 인지적․정서적․실천적 측면을 바라보면서 그러한 기능들이 협력을 통한 상호작용과정에서 어떻게 실현되어 나가는가를 관찰하고 평가할 수 있다. 발달 기능 중심의 진단과 개선 방향의 제시라는 질적 평가가 체계화될 수 있는 것이다.

 

발달의 가능성을 중시하는 미래 지향적 평가

잠재적 발달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개념화한 것이 비고츠키의 근접발달영역 개념이다. 근접발달영역은 교사나 동료와의 관계 속에서 출현, 발전할 수 있는 잠재적 발달 가능성을 의미한다. 인간의 발달 가능성을 현재의 인지능력만으로 판단하고 고정화해선 안 되며 교육은 근접발달영역의 창출을 통해 미래의 꽃을 피워나가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비고츠키가 근접발달영역이라는 개념을 통해 분명히 하고자 했던 것은 교육이 현재 상황보다는 앞으로의 발달 가능성과 잠재력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현재 수준 측정’에만 골몰하는 기존의 평가관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다. 미래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진단이야말로 평가의 주요 영역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근접발달영역이라는 개념은 이미 많은 교사들의 실천에서 매우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교육실천은 기본적으로 발전 가능성에 입각해서 행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이미 알거나 잘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모르거나 못하는 것을 상황과 단계를 고려하여 익힐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모든 형태의 교육은 가능성 속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교육의 본질에서 본다면 가능성과 잠재력에 대한 진단이야말로 교육실천과 직결되는 평가 영역인 것이다.

 

개별학습자 만이 아니라 집단적 관계와 과정 평가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평가의 주요 대상은 개별학습자의 발달 상황만이 아니라 동료 간에 형성된 관계와 상호작용 과정 그리고 교사-학생집단 과의 상호작용 과정도 중요한 평가 대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가장 주요하고 효과적인 학습과 실천이 집단의 협력의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하는 가는 개별 학습자에 대한 평가 지점이 될 수 있지만 집단 전체의 관계형성과 협력과정, 교사와의 상호작용 과정을 평가하는 것은 교수-학습 과정을 개선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며 필수적이다.

 

관찰과 대면 중심의 지속적(역동적) 평가

발달 상황과 가능성에 대한 진단의 주요한 방법론은 ‘지속적 관찰’과 ‘상호작용을 통한 역동적 파악’이 된다. 발달 과정과 가능성에 대한 파악을 한 두 번의 시험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학습과정과 과제 수행과 협력과정에 대한 지속적 관찰과 구체적 대면(이야기하기, 질문하기 등)이 필요하다.

발달 상황은 한 지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역동적으로 변화되기 때문에 관찰과 평가 지점 역시 역동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상호작용 과정에서의 역동적 평가는 중간에 한 번 쯤 쪽지시험을 보는 기존의 ‘형성 평가’ 개념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지속적인 관찰, 대면, 대화와 결합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이다. 그를 통해 발달 상황과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질적 평가가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소통을 통한 협력적 평가

평가의 방법론과 관련하여 관찰, 대면 외에 제기되는 것이 협력적 평가이다. 교사 일방만이 아니라 설정된 목표, 진행 과정 등에 입각하여 학습자와 소통하면서 함께 평가하는 것이다. 협력적 평가는 진단 내용에 대한 구체성과 동의의 수준을 높일 수 있으며 앞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와 방향에 대한 주체적인 목표 의식을 훨씬 강화할 수 있다. 일부 북구 교육에서 개별학습자별로 교육과정을 설정하고 평가하는 과정은 ‘협력적 평가’ 방식을 수반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협력적 평가의 대상에는 개별학습자의 발달 상황만이 아니라 ‘교수-학습 프로그램’도 포함되며 어떤 주제학습이나 협력학습 등에 대한 어떤 점이 좋은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하는 소통을 통해 개선,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2) 새로운 교육평가 패러다임의 의의

 

학습자에 대한 구체적이고 분명한 진단과 교육적 처방

발달 기능이라는 분명한 지표를 기준으로 관찰과 대면을 통해 지속적으로 진단해 나간다면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교육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음은 자명하다.

 

교육실천의 전문성 강화

‘발달단계에 입각한 고등정신기능’이라는 분명한 지표를 가지고 지속적인 관찰, 대면, 소통을 해나간다면 교육노동의 전문성 역시 크게 함양될 수 있다. 지금처럼 막연한 관찰을 통해 ‘00는 심성이 착하며 머리가 좋다’식의 이해가 아닌 ‘00는 현재 소그룹 상호작용이 발달할 단계인데 1대1 대화는 잘하지만 여러 명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아직 미숙하다’는 관찰 결과는 훨씬 구체적이며 학습자와 학부모에게도 실질적 도움이 된다.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관찰 등을 진단할 경우 학습자의 발달 상황에 대한 이해는 훨씬 구체화, 체계화, 전문화된다.

 

교수-학습 과정의 지속적 변화, 발전 추구

기존의 교육평가는 개별학습자 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교수-학습의 상호작용 과정에 대한 논의와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비고츠키 교육학의 평가 패러다임에서는 협력 학습 과정에 대한 개별 학습자의 상호작용은 물론이고 집단적 과정 자체가 진단, 평가의 대상이 됨으로써 교수-학습 과정에 대한 지속적인 변화, 발전의 추구가 가능하다.

 

교육적 본질의 추구

‘인간발달의 지향’ ‘가능성, 잠재력의 중시’ ‘협력적 과정’ 등의 핵심적 평가 지표들은 매우 본질적인 교육적 가치, 지향과 일치한다.

 

교수-학습 과정과 평가의 통일

관찰, 대면, 소통 등의 평가 방법은 교수-학습 과정과 일상적으로 결합되는 것이다. 그것은 발달 과정이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기 때문이다. 진단, 평가가 일상적으로 교수-학습과정과 결합된다고 해서 시도 때도 없이 시험을 보거나 직접적 평가를 남발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 관찰과 소통을 통해 개별학습자와 학습집단의 상황을 진단하면서 능동적으로 교수-학습과정에 반영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평가 지상주의와는 명확히 대립되며 평가는 교육적 실천과 교수-학습을 개선하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협력하는 인간, 발전지향의 인간

비고츠키 교육학에 따르면 인간은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발전을 지향하는 본질을 지니며 자신과 집단에 닥친 위기와 모순을 협력을 통해 해결하려는 본질을 지닌다. 해결해야 할 새로운 과제의 등장은 아동, 학생들에겐 새로운 위기이자 모순이며 인간은 그 같은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본질적 지향을 지닌다. 그리고 새로이 등장한 과제에 대해 아동과 학생들은 같이 고민하고 노력하면서 해결해 나간다. 협력은 새로운 위기와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며 발전의 경로이다. 학습자를 인간자본으로 바라보며 대상화하고 상호 경쟁으로 파편화시키는 경쟁적, 정태적 인간관을 ‘협력하는 인간’, ‘발전지향의 인간’이라는 관점이 대신하게 된다.

 

10년 가까이 지났으나 평가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는 아직이니 내용적 유효성은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상대평가는 틀린 것이다, 서열화를 지양해야 한다, 평가는 교사별로 이루어져야 한다 등이 평가담론에서 자리잡게 된 것은 그간의 성과이기도 함을 잊지 말자. 부가적 업무가 아니고, 평가로 인생이 좌우되는 민감한 것이 아니고, 발달을 이끄는 교수-학습을 돕는 부분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위 내용 그대로 담론투쟁에 나설 수는 없다. 다만, 위와 같은 내용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를 토대 삼아 평가 담론이 다시 정립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핵심문제만 피해가고 있는 낭만적이지만 비교육적인 평가담론에 교사들이 함께 나서 맞불을 지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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