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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2018 5학년 수업나눔을 돌아보며

 

서울위례별초 박연정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껏 역사를 한 번도 가르쳐본 적이 없었다. 수시로 교육과정이 개정되면서 초등 역사교육이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편성됐다가 5학년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5,6학년에 걸쳐 나누어 가르치게 되기까지 역사교육에 대해서는 국정화교과서 반대 이슈 외에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올해 5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드디어 역사수업을 하게 되었다. 여름방학 때부터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평소에 역사에 관심도 없고, 역사책 하나 제대로 읽지도 않은 나 같은 사람이 역사수업이라니... 5학년 역사수업 때문에 미리 선행학습을 할 만큼 역사공부를 걱정하는 아이들이나 학부모들보다도 정작 가르쳐야할 내가 더 걱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역사수업을 부담스러워하는 게 나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우리 학년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처음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5학년 아이들의 역사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어려움을 우리학교의 수업나눔(자율장학)을 통해 조금은 극복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내가 경험한 이제까지의 장학은 연구하는 교직 문화 만들기와 교사 전문성 신장이라는 목표는 갖고 있었지만 방법적으로는 수업공개가 유일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 수업공개는 관리자들에겐 동료교원 평가를 위한 형식적 절차로 활용되거나 교사들에겐 1년에 한번 교사라는 직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이벤트성 행사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간의 수업공개는 수업을 위한 공개라기보다는 공개를 위한 수업이었기 때문에 공개하는 반 아이들만을 특별히 남겨서 수업을 하거나 평소에 교사가 자신 있는 과목이나 주제로 잘 짜인 연극처럼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무리 수업 공개를 해도 동료교원들 간에는 형식적인 수준의 피드백만 주어지고 정작 중요한 수업 연구와 전문성 신장은 개인의 몫으로 남겨졌다. 자율이라는 이름이 붙어서 흔히들 자율장학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진심으로 나의 전문성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 효과는 미비하고 부담만 남은 자율장학을 어찌 할 것인가.

 

우리학교에서는 이런 자율장학을 개선해보고자 수업공개보다는 학년 공동연구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개인의 연구가 아닌 동학년 교사들과의 공동연구와 협력의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다.

 

첫 번째로 노력한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싶은 자율장학을 만드는 것이었다. 꼭 해야 하는 게 아니라는 전제가 있어야 그럼 왜 하지?’라는 질문이 생겨난다. 누군가 정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왜 하는지, 어떻게 할지를 의논할 수 있었다. 교사가 전문성을 신장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책을 읽기도 하고, 연수 듣기를 통해 배우기도 한다. 그런데 똑같은 책을 읽고 같은 연수를 들어도 그것을 수업으로 풀어낼 때 어떤 반은 잘되고 어떤 반은 잘 안되기도 한다. 그 미묘한 차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직접 수업을 보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오랜 논의 끝에 수업 공개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것만큼 좋은 공부의 기회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수업공개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수업공개를 잘못 운영해 온 것이 문제라고 인식하고 수업공개를 연구의 한 과정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노력은 수업공개를 제대로 하는 것이었다. 평가의 관점을 지우고 공동연구라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그전까진 평가였고 일종의 행사였기 때문에 수업공개를 할 때 그나마 자신 있는 과목이나 주제를 선택해왔다. 그러나 공동연구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내가 잘하는 과목, 자신 있는 주제에 국한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어려워하는 과목, 좀 더 고민되는 주제에 도전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이런 배경 덕에 우리학년 선생님들과도 오랜 논의 끝에 우리가 제일 어렵게 느끼는 과목인 사회과의 역사수업으로 공동연구를 하자고 의견을 모을 수 있었다.

 

학교 전체적으로 교사들의 연구하는 문화를 장려하고 지원하기 위해서 업무지원팀의 수업시수 경감을 위한 강사 배치 예산을 이용해 교사들이 자율장학기간동안 다른 반의 수업을 볼 수 있도록 강사를 고용했다. 비록 한 묶음 정도의 시간이지만 내 수업 걱정 않고 다른 선생님 수업을 맘 편히 볼 수 있는 시간은 교사들에게 학교가 수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구나하는 책임감과 동시에 수업하는 교사를 대우하고 배려해주는 구나하는 존중의 경험을 하게 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학교의 의사결정 구조가 민주적이고 교사의 자율권이 최대한 보장되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이렇게 딱 두 가지 노력으로 우리는 많은 변화를 체험했다.

많은 초등교사들이 수업을 준비하면서 제일 많이 찾는 곳이 아마 대부분 인*스쿨일 것이다. 교실에 고립된 교사들이 그나마 기댈 수 있는 아이디어 창고 같은 곳이다. 나도 한동안 참 많이 이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공동연구가 활발해지면 더 이상 그런 파편화된 자료들은 의미가 없어진다. 이미 교사들 하나하나가 훌륭한 자료들이므로 자기가 가진 것을 꺼내놓으면 된다. 그리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멋진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것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여러 반에서의 시행착오들을 거쳐 정선된 수업계획으로 다듬어진다. 우리 학년에서도 처음에 역사를 보는 관점과 수업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사람마다 달라서 의견을 모으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런데 의견을 모으는 것에 목표를 두지 않고 여러 가지 상충된 의견을 듣고 서로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처음엔 의견을 빨리 모으고 싶어서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회의가 지지부진한 것 같아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그래, 역사가 원래 이런 거지’,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게 우리의 역사교육의 목표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여러 이야기가 오갈수록 논의가 풍성해짐을 느꼈다. 이 때 처음에 라는 관점을 가지고 수업을 계획하시던 선생님과 상반되는 라는 관점을 가진 선생님이 오랜 논의 끝에 주말을 지나고 다시 만났을 때 서로의 수업 계획이 완전히 바뀌어있는 것을 알고 모두가 한참을 웃었던 재밌는 일도 있었다. 특별히 좋은 아이디어나 수업계획이 없어도 이렇게 다양한 관점과 철학이 논쟁적으로 이야기되는 과정에서 교사들은 스스로를 성찰하고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우리의 수업공개는 평가받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수업을 잘 보여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짜인 대로 완벽한 수업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게 되면서 연극공연처럼 수업준비를 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우리 반의 문화와 수업상황들을 보여주게 된다. 수업을 참관하는 사람들도 교사개인의 수업기술(?)에 대한 평가의 관점이 아니라 학년 공동연구의 과정과 노력에 관심을 갖고 수업을 바라보게 된다.

 

평가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고 진짜 공부하고 노력하는 수업연구가 가능해지면 대부분의 교사들은 도전하기를 시작한다. 그전까진 부끄럽고 속상해서 우리반의 모습을 다른 선생님들한테 보여주기를 꺼려하던 교사들도 내 교실을 열고 함께 머리 맞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한번으로 부족한 것 같으면 두 번, 세 번도 열어서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우리 반의 문제 상황을 공유하고 함께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노력하게 된다. 실제로 우리학년 선생님 중에 3년차 신규선생님도 올해 3번이나 수업공개를 하면서 우리 반에 와서 제 수업을 보고 저 좀 가르쳐주세요.”라는 말을 전교의 선생님들께 메시지로 보내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후배들의 이런 모습은 모두에게 자극이 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처음엔 수업을 잘해보자고 시작한 연구지만 결국엔 교사 개인의 전문성 신장보다 더 귀한 교사간의 동료애와 협력적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교사들이 평소에 자존감인지 자존심인지 모를 것들로 무장한 채 자신의 교실에 성을 쌓고 옆 반이랑 교류하기를 어려워하다가도 수업을 열고 교실을 열어 함께 고민하며 울고 웃는 시간을 가지면 마치 큰 전쟁을 함께 치른 전우처럼 끈끈한 우정이 생긴다. 그리고 내 반, 네 반이 아닌 우리학년 전체가 내 아이들처럼 느껴진다. 이런 정인지, 신뢰인지 같은 것들이 쌓이면 교사가 학교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의 상당부분이 해결될뿐더러 굳이 교원평가 따위로 교사의 자존심을 긁지 않아도 서로간의 허심탄회한 조언을 통해 교사의 전문성을 자발적으로 신장시킬 수 있다. 교사가 이렇게 배운 협력의 가치와 기능이 교실의 아이들에게도 이어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는 우리 학교의 학년공동연구 핵심은 공동체의 회복과 동료애에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모두들 우리 학교의 자율장학 시스템을 들으면 부러워한다. 특히나 교사들보다도 열정(?) 가득한 교장, 교감선생님들이 더욱 그렇다. 웬만한 학교의 교사들이 부담스러운 거 싫어하고 온갖 방법과 제도를 들이밀어도 이만큼 스스로 열심히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스로 열심히 할 수 있는 이유는 딱 두 가지. ‘민주성지원이다. 교사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고 그 의견대로 결정하며 어떤 조건 없이 최대한의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만 하면 교사들의 자발성은 조금씩 살아난다. 이런 시스템은 특별한 예산이나 환경이 필요한 것이 아니어서 어느 학교든지 지금당장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잘 안될까? 핵심은 교사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일부에선 잘난교장, 교감들이 교사들의 수업에 이런저런 코칭을 서슴지 않으며 수업과 교육과정 재구성에 교사들의 억지 열정을 강요하기도 한다. 잘하든 못하든, 결과가 어떠하든 교사의 자율권이 보장되려면 교사를 믿어야 한다. 학급에서 아이들의 자발성이 살아나고 아이들의 인권과 자유가 존중되는 교실을 만들려면 정말 미워죽겠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믿어야 한다. 이건 말이 쉽지 정말 어려운 일이라... 다들 쉽게 실패하고 만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 권위주의적인 학교문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진정한 협력과 민주성을 일구는 것은 지난한 시간동안 자신과의 싸움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학교에서 몇 년간 이러한 자율장학을 경험하면서 실은 나조차도 믿지 못했던 교사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다.

우리 학교에서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교사들은 평가 대신 허용과 격려가 주어지고 정답은 아니어도 해결을 고민할 동료가 있을 때 조금 힘들어도 안락함보다는 성장과 도전을 선택했다. 아마도 누구나 좋은 교사가 되고 싶고 열심히 교단에 서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그것이 인정되고 격려 받지 못하는 환경과 구조 때문에 자꾸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것 같다.

학년공동연구를 하는 기간에 우리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들 거의 매일 퇴근시간을 훌쩍 넘어서까지 회의하고 토론하고 수업준비를 했다. 그것도 내일 내 반 공개수업을 위한 게 아니라 옆 반의 공개수업을 위해서 그러고 있다면 짜증이 날 법도 하다. 한창 연애도 하고 이것저것 놀기도 바쁠 20대 후배에게 이렇게 매일 늦게 퇴근하니 힘들지 않냐고 물었는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 힘들긴 한데... 그래도 전 운이 좋아요. 여긴 마치 ‘EBS 교육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것 같은 비현실적인 학교예요. 제가 이런 데서 근무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이 후배 말에 따르면 다른 학교에 근무하는 자기 또래의 친구들은 대부분 어리다는 이유로 과도한 학교 업무에 시달리며 학년협의에서조차 수업에 대한 고민이나 학급의 문제를 꺼내기 눈치 보이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래서 업무는 업무대로 수업이나 학생, 학부모상담은 그것대로 혼자 끙끙대며 해내느라 늘 바쁘고 피곤해서 좋은 선생님 되는 것은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친구들도 우리 학교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부러워한다고 했다.

누구나 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잖아요. 다른 친구들처럼 업무로 힘든 것보다는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힘든 게 더 낫죠.”

 

교사는 자격증을 받고 임용이 되면 교단에 설 수 있지만 그 순간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처럼 완성형의 상태가 아니다. 교사는 교단에 서는 순간 시작되어서 교단을 떠날 때까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한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경험과 노력에 의해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일들과 달리 좀 특별한 점은 아무리 경험이 쌓인다고 해서 쉽사리 다른 노동자들처럼 숙련된 상태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경력이 쌓일수록 관성에 의존해 수업하게 되고 아이들과의 소통에서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한다.

옆 반에 경력 20년이 넘는 선배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 오기 전에 교직을 그만두려 했었다고 한다. 늘 하던 대로 아이들 대하고 수업해왔는데 시대가 변하고 아이들도 변하면서 본인이 하던 방식과 언행들이 어느새 고루한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변화무쌍하게 살아 움직이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쫓아가기가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학교에 와서 이런 자율장학과 살아있는 교직문화를 경험하면서 본인도 성장하고 있고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열심히 성장한 덕에 앞으로 좀 더 교사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그 선배님의 이야기에 나도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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