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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학력 지원 내실화 방안”의 현황과 문제점

 

검은 별(진보교육연구소 회원)

 

“한 아이도 놓치지 않고 기초학력 책임진다.”

 

2019년 3월 28일(목) 교육부 보도자료 “기초학력 지원 내실화 방안”의 핵심 슬로건이다. 멋지고 좋은 말이다. 그런데 왠지 익숙하다. 2002년 미국 공화당의 부시도 2015년 민주당의 오바마도 비슷한 말을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중앙일보 기사(2019.04.02.) “미국엔 ‘낙오 학생 방지법’…학력 미달 방치하면 교장 내쫓거나 폐교”에서 일부 찾아 볼 수 있다. 제목에 드러나듯이 이 기사의 방점은 “방치하면 내쫓겠다”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는 학력 저하를 숨길 수 없습니다. 부모에게 결과를 감출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학력이 저조한 학교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2002년 1월 미국 오하이오주 해밀턴 고교를 찾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 앞에 섰다. 24분의 연설이 끝난 뒤 그는 ‘낙오 학생 방지법(NCLB·No child left behind)’에 서명했다. (위 기사 인용)

 

‘절대’라는 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NCLB의 핵심은 모든 학생이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다. 기준 미달 학생이 많으면 주 정부에 지원하는 예산을 삭감했다. 학력이 계속 향상되지 않는 학교는 교장이나 교사를 해임하기도 했다. 심지어 수년간 학력 미달이 개선되지 않은 학교는 폐교까지 할 수 있는 강력한 법이었다. (위 기사 인용)

 

멋있는 말은 부시가 다하고 책임은 학교(교장, 교사)에게 지라는 것이다. 부작용은 예견된 것이었다.

 

NCLB는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어졌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기초학력의 기준선이 주 정부마다 제각각이었고, 한번 ‘나쁜 학교’로 낙인찍힌 곳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결국 2기 오바마 정부는 2015년 NCLB를 수정한 ‘모든 학생 성공법(ESSA·Every student succeeds act)’을 내놓았다. 부진한 학교를 벌하기보다 지원을 통한 개선 기회를 주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시험을 의무적으로 치르고 결과를 공개한다는 NCLB의 기본 골격은 유지했다. (위 기사 인용)

 

그럼에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단다. 그리고 부시보다 착한 오바마는 ‘벌’보다 ‘지원’에 초점을 둔 ‘모든 학생 성공법’을 내놓았단다. 그리고 친절한 설명을 덧붙인다. “그래도 시험은 의무적으로 치르고 결과는 공개한다.” 예견된 미국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고 우리나라는 시행착오까지 그대로 따라 하려는 듯이 보인다.


사실 이번 ‘기초학력 지원 내실화 방안’을 자세히 보면, 이전의 일제고사에 대한 국민적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대놓고 일제고사식 진단평가 부활을 주장하지 않으며(평가방식은 학교자율?), 맞춤형 지도를 언급하는 등 ‘지원’에 방점을 둔 부분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 시도, 학교의 ‘책무성’ 강화 운운하며 지원보다는 성과에 따른 압박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사교육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학습지로 유명한 회사 눈높이는 “2020년부터 기초학력평가가 부활한다”며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학부모를 다그치고 나섰다.

 

4월에는 좋은교사운동에서 “현장 중심의 기초학력 지원 체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기초학력 지원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좋은교사운동은 기초학력을 둘러싼 논쟁보다는 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방치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찾아서 지원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6월에는 국회에서 ‘기초학력 보장법’이 발의되었다. 발의된 안의 내용을 보면 3월 교육부 ‘기초학력 방안’에서 제시한 방향과 많은 부분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다.

 

제2조(정의) 1. ‘기초학력’이란 초중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학교의 학생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 교육과정을 통하여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성취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을 말한다.

제3조(국가 등의 책무)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기초학력 보장을 위한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③ 학교의 장은 학생들의 기초학력 보장을 위하여 특별한 학습지원이 필요한 교과의 수업에 보조인력을 추가로 배치할 수 있으며, 보조인력의 역할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7조(기초학력진단) ① 학교의 장은 학습지원대상학생을 조기에 발견하고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학생별 기초학력수준 도달 여부를 진단하는 검사를 실시할 수 있고, 그 결과를 학생의 보호자에게 통지할 수 있다.

② 그 밖에 기초학력진단검사의 내용 및 실시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또한 이에 발맞추어 시도교육청에서도 관련 대책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세종시교육청은 2019.8월 정례브리핑을 통해 “배움이 즐거운 기초학습 안정망 구축 계획”을 발표했고, 서울시교육청도 2019.9월 “2020 서울학생 기초학력 보장 방안”을 발표했다. 특히 이 방안에는 일제고사 부활을 연상시키는 “초3, 중1 모든 학생 기초학력 진단검사 실시”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전교조와 참학, 평학 등 학부모 단체를 망라한 서울교육단체협의회(서울 지역 30개 시민단체)는 서울시교육청의 ‘기초학력 보장 방안’ 반대를 선언한다. 반대 성명의 핵심은 ‘줄 세우기’와 ‘낙인효과’ 등 부작용을 유발하는 일제고사일 뿐인 초3, 중1 대상의 기초학력 진단검사 철회였으며, 읽기 쓰기 셈하기나 국어 영어 수학 등으로 정의해 놓은 기초학력 개념의 재검토와 배움이 느린 학생에 대한 원인 분석과 배려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지원정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논란과 공방 속에서 몇 가지 검토할 점이 떠오르고 있다.

첫째, 기초학력 정의 문제가 있다. 6월 발의된 기초학력 보장법에는 ‘기초학력’이란 ‘학교 교육과정을 통하여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성취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이라고 되어있다. 예컨대 2019년 중학교 3학년 과학과 성취기준별 성취수준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필자의 과목 때문에 주요 진단 검사 과목인 국어, 영어, 수학에서 뽑지 못했으나 많이 다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성취기준

성취수준

과9154. 전류가 흐르는 직선 도선 주위에 생기는 자기장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다.

직선 도선 주위의 자기장의 모양, 방향, 세기 모두를 설명할 수 있다.

직선 도선 주위의 자기장의 모양, 방향, 세기 중 두 개를 설명할 수 있다.

직선 도선 주위의 자기장의 모양, 방향, 세기 중 하나를 말할 수 있다.

 

최소한이니까 상중하 중에 ‘하’를 만족시키면 된다는 것으로 보인다. 각각의 성취수준을 충족하는 지를 모두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지필검사로 한꺼번에 테스트하고 모종의 기준(?)을 통해 몇 점 이하면 기초학력 미달 등으로 판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난이도 조절에 따라 기초학력 미달 수가 크게 변할 수 있다. 정의는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새로운 학력지표를 구성해서 측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기초학력 미달 원인에 따라 기초학력 외에도 기본학력, 학습부진, 느린학습자, 학습장애, 경계선 아이, 난독증 등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또한 여기저기서 다양한 진단도구가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무엇을 측정하는지, 정확히 측정하는지 알 수가 없다.

 

둘째, 낙인 문제가 있다. 현재 발의된 기초학력 보장 법안들은 기초학력 미달 학생과 특수교육 대상 학생을 분리하고 있지만, 난독증, 학습장애 개념에서 보듯이 일부 겹치는 영역이 있어 누가 어떻게 지원을 해야 할지 논란이 있다. 실제로 미국은 특별한 교육적 지원이 필요한 모든 학생을 특수교육 대상자로 삼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보다 특수교육 대상의 범위가 넓고 실제 대상자도 많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 기초학력 미달로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는 학생들을 미국에서는 특수교육에서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특수교육은 생물학적 장애를 중심으로 미국보다 협소하게 특수교육 대상자를 선정해왔기 때문에,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특수교육에서 담당하거나 개입할 경우 새로운 낙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물론 특수교육 담당 여부와 관계없이 ‘기초학력 미달’이라는 꼬리표 자체가 낙인이며, 이 낙인을 피하기 위한 학부모들의 노력이 사교육과 연결되는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셋째, 학습권 보장인가 강요인가? 교육의 문제를 권리의 문제로 보면서 등장한 학습권(학생의), 수업권(교사의? 학생의?), 교육권(교사의? 국가의?) 개념이 분명하지 않다. 미국의 NCLB나 ‘한 아이도 놓치지 않고 책임진다’는 슬로건은 언뜻 들으면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와 권리를 보장한 듯이 보이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국가의 책무를 빙자한 국가의 강요로 보이기도 한다. 기초학력을 강제로 보장해 준다고 하면서 오히려 사교육을 추동하는 모순이 존재한다.

 

넷째, 공부를 부정하는 분위기와 모순된다. 사실 현재 교육정책은 많은 부분 공부를 부정하고 있다. 최근 학령기 학생 수 감소에 따른 학생 모집의 어려움 때문인지, 특성화고등학교의 경우 특별전형이 비정상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성화고 입학 전형에는 중학교 내신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일반전형이 있고, 성적은 전혀 보지 않고 자기소개서와 면접 등을 중심으로 선발하는 특별전형이 있다. 시기 상 특별전형을 일반전형 보다 먼저 실시하기 때문에, 학생 확보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교가 많아지면서 모집정원의 대다수를 특별전형으로 뽑는 학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실제로 공부를 안 해도 된다고 홍보하기도 하고, 자기소개서 예시를 직접 제공해주는 학교까지 생기고 있다. 대입 학종의 일부도 마찬가지다. 공부는 필요 없다. 그리고 최근 정부에서 도입하려고 하고 있는 고교학점제는 하고 싶은 공부만 하라는 것에 가깝다. 싫으면 안 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계속 주고 있다. 이 상황에서 기초학력 미달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교사들의 의식이다. 학습부진학생 지원 체제에 대한 초등교사들의 의견을 기반으로 한 논문을 본 적이 있다. 주관적으로 요약하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다수 선생님들은 현재 지원 방식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육의 어려움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기초학력 업무는 어렵고 힘들어 직접하고 싶어 하지는 않으며, 지원 없이 책무성만 강조할 것이라는 등 정부 정책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기초학력에 문제에 대한 이러한 공방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말 표집으로 진행되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전수 조사로 전환되면서, 전교조는 일제고사 저지투쟁을 광범위하게 진행하였다. 그 영향인지 2010년 “학습부진아,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주제로 학습부진아 살리기 운동 정책 토론회가 열린 적이 있다. 자료집을 대충 훑어만 보아도 지금 논란이 되는 대부분의 주제들이 이미 그 당시에 논의되고 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료집 목차 중 일부를 소개한다.

 

V. 대안

1. 우선순위와 목표의 정확한 설정 및 교육과정 혁신

1) 우선순위의 정립

2) 기초학력의 정의 재정립

3) 교육과정의 혁신

2. 특별지원교사 투입 및 예산 확보

1) 특별지원교사

2) 필요 예산

3) 학습부진아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3. 학교 시스템의 개선

1) 정밀한 진단과 맞춤형 처방

2) 새로운 책무성 구조 정립

3) 행정 잡무 감축

4. 지역사회 자원과의 결합

5. 실천적 대안

1) 수업 혁신

2) 나머지 공부

3) 또래 튜터링

4) 지역아동센터 연계

5) 퇴임교사 교육봉사

6) 실천선언문

 

하지만 2019년 3월 교육부의 “기초학력 지원 내실화 방안”은 2010년의 논의에서 별 진전이 없어 보인다. 거의 대부분의 내용을 다시 재탕하고 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반복되는 이유는 결국은 학생들 학업성취도(국영수 시험 성적)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기초학력 지원 내실화 방안”에는 “2018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라는 붙임 자료가 있다. 거기에 있는 다음 표를 보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전수에서 표집으로 재전환된 이후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다시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수학의 성취도가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8년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 수학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중학교 11.1%, 고등학교 10.4%에 달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원인이야 어쨌든 결국 국어, 영어, 수학 시험 성적이 나쁘니 올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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