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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들

 

딸기(진보교육연구소 회원)

 

교과전담 선생님과 함께하는 미술 수업이 끝나고 적막했던 교실의 평화를 깨뜨리듯이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로 돌아온다. 갑자기 한 아이가 내게 다가오더니 울먹이며 말을 한다.

선생님, 미술시간에 000가 저를 때렸어요. 그리고 모둠 애들이 계속 저를 놀리고 괴롭혔어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해진다. 이 친구는 지방에서 우리 학교로 전학 온지 얼마 되지 않는 여자친구인데 5학년 2학기가 다 끝나갈 무렵에 전학을 와서 새로운 학교에서 친구 사귀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가뜩이나 적응도 어려운 상황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모두 자리에 앉히고 사건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혹시 오늘 은희(가명)가 선생님한테 한 말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 누가 얘기해줄 수 있을까?”

평소에 착실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여자 친구 한명이 손을 든다. 이 친구는 은희가 처음 전학 왔을 때도 살갑게 대해주어 은희가 그나마 마음을 붙이는 유일한 친구다.

과학이나 미술시간엔 출석번호 순으로 모둠을 하는데 은희네 모둠엔 은희 빼고 나머지 세명이 남자애들이예요. 그 애들이 과학시간이나 미술시간에 은희한테 심부름 다 시키고, 쓰레기 몰아주고, 놀리고 그랬어요.”

들어보니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 000이 은희를 때렸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000은 자기가 뭐가 잘못이냐는 듯 억울한 얼굴로

때리긴 때렸는데 미술선생님이 사과하라고 해서 사과했어요.”라고 항변했다.

그러자 사건의 피해자인 은희가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은희는 감정에 북받쳤는지 한참을 울고 나서 자신이 겪은 일을 눈물섞인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은희 말에 따르면 과학과 미술시간에 같은 모둠인 세명의 남자친구들이 집단적으로 은희가 하는 말에는 무조건 , 아니야같은 말로 놀리거나 비난하고, 실험도구를 챙기거나 뒷정리를 하는 등의 역할을 모두 자신에게 떠밀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묽은염산이나 수산화나트륨같은 화학약품들을 먹어보라고 하고 못 먹는다고 하면 쫄보라고 부르며 놀렸다고 한다. 심지어 000은 같은 모둠도 아닌데 자기네 모둠의 그 세 남자아이들과 친하다는 이유로 자기네 모둠에 와서 이들과 함께 은희를 놀리고 오늘은 때리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000은 학년 초에도 특별한 이유없이 우리반 한 여자친구의 뺨을 때려서 문제를 일으킨 전력이 있던 친구였다.

미술선생님이 사과하라고 하니까 미술선생님께 오히려 대들고 씩씩거리면서 나한테 와서 작은 목소리로 짧게 미안하고 갔어요.”

은희가 긴 울음 끝에 토해낸 이야기에 아이들이 모두 숙연해졌다. 나 또한 마음이 착잡해졌다.

선생님은 이것을 학교폭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떤가요?”

모두가 수긍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갈등의 화약고가 된 학교

 

오늘 우리 반에서 일어나선 안되는 일이 일어났어요. 전학 와서 아직 우리학교에 낯설고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괴롭히는 일은 누가 봐도 분명한 학교폭력입니다. 그것도 한 두번이 아니라 교과시간마다 몇 주에 걸쳐 지속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봐요. 선생님이랑 교실에서 수업할 때는 다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는데 교과 선생님들과의 수업시간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점은 선생님에게 더욱 실망스럽네요. 솔직히 오늘 선생님은 여러분들에게 매우 실망했습니다. 친구가 저런 어려움을 겪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인지 모두가 반성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각자 오늘 은희의 이야기를 통해 느낀 것, 생각한 것들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모두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은희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남자 애들은 여자애들을 놀리면서 우쭐함을 느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가해학생들이 모두 남자 친구들이라 교실 내 성별간 차이나 차별에 민감한 아이의 이야기였다. 사실 5학년 아이들은 차이에 민감해지고 이성 간에 호기심도 커지면서 속으로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겉으로는 오히려 내외(?)를 하는 분위기가 있다. 자연스럽게 어울려 놀고 건강하게 교류하면 좋을 텐데 여자애들은 어떻고 남재애들은 어떻다는 식으로 일반화해서 구분 짓고 적대하며 개인의 문제를 그 집단의 문제로 확대해석해서 비난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나 한 모둠 안에 남자아이들이 수적으로 우위를 점하게 되면서 그동안 여자친구들에게 당했던(?) 분풀이를 하거나 자신들의 힘을 과시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는 단순히 사춘기 아이들의 일시적인 현상일수도 있으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의 한 형태인 구분 짓기 문화에 더하여 오랜 기간 학교와 사회에서 성별에 따라 다른 처우를 받고 그에 대응하는 방식을 각자 발달시켜 온 역사가 반영된 복잡한 문제이다. 대체로 여자 아이 3명에 남자 아이 1명이 함께하는 모둠에서는 그 한명의 남자 아이가 약간 기죽어 있는 것 외에 아무런 문제가 안 생기는 반면 여자 아이 1명에 남자 아이 3명이 함께하는 모둠에서는 모둠활동 결과도 미흡하고 이번 사건과 비슷한 류의 문제가 자주 생긴다는 점에서 분명히 생각해볼만한 여지가 있다.

가해자들이 우리반에서 쎈(?) 애들이라 아무도 못 건든다. 하필 은희가 전학생이라서 함부로 대한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우리 학교는 3년전 개교를 했으니 지금 5학년 학생들은 모두 전학을 온 아이들이다. 게다가 인근의 군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부모님의 근무지를 따라 이사를 다니느라 초등학교 5년 동안에만도 무려 6번 이상 전학을 다닌 아이들도 있었다. 1년에도 몇 번씩 전학을 다니다보니 안정적으로 교우관계를 맺거나 학습에 집중하기 어려울뿐더러 학교와 교사에 대해서도 쉽사리 신뢰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전학을 다니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초반에는 부적응하고 소외도 겪을 텐데 그 과정이 고스란히 상처로 남아 위기상황에 몰리면 불쑥불쑥 드러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하거나 곤란한 상황에서 발표를 해야 할 때면 유독 전학을 많이 다닌 아이들이 전학생을 시키라고 나에게 권하곤 했다. 실은 우리 모두 전학생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긴 했지만 나는 이런 행동이 아이들의 상처와 무관하지 않을거라 짐작했다.

지역적으로도 새롭게 형성된 신도시지역이라 지역주민들 간에 공동체 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학교에서 아이들 간에 벌어지는 작은 다툼도 부모들 간에 큰 갈등으로 번져서 일이 어렵게 꼬이는 것을 수차례 목격했다. 대부분의 신도시에서 이런 주민들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이 학교라고들 했다. 자녀의 성공을 통해 신분상승을 하거나 계급을 재생산하고 싶은 욕망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학교에서 내 아이를 건드는 그 누구도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최근의 학교폭력위원회에서 다뤄지는 사건들의 속살을 보면 자녀에 대한 뒤틀린 욕망을 바닥에 숨겨둔 채 표면적으로는 자존심에 상처가 난 부모들의 복수혈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계층 상승의 욕구를 실현시킬 수 있는 장이 학교였다면 지금은 여러 갈등과 욕망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충돌하는 갈등의 화약고가 된 느낌이다.

,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하고 사악한 존재인가. 아이들과 이야기들을 나눌수록 나의 마음은 더욱 씁쓸해졌다. 인권과 평화를 중요하게 여기며 교실에서 항상 약자의 편에 선 학급운영을 하기 때문에 우리 반에선 왕따도 없고 큰 학교폭력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던 나의 오만함도 회초리를 맞는 시간이었다. 내 얄팍한 인권의식과 엉성한 민주주의가 사정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나름 열심히 해왔고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3월도 아니고 12월에 결국 또 제자리였다. 수업도 하기 싫고 아이들도 미워졌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 교사들은 대부분 자존감에 심각하게 상처를 받는다. 상처는 무기력을 낳고 절망은 증오를 낳는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 많은 전학생을 만나면서 전학생이 한명 올 때마다 다시 3월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언제나 이런 복잡하고 힘든 상황에서 내가 할 일은 멋지게 문제를 해결해내는 게 아니라 그저 아이들과 함께 이 시간을 버티는 것일 뿐이라는 교사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화해보다 먼저 정의를

 

그리고 무겁고 긴 이야기 끝에 아이들도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 이유가 은희의 눈물 때문인지, 나의 무서운 훈계(?) 때문인지, 여러 아이들의 공감과 지적 때문인지, 아이들이 가진 양심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한 우리는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함께 의논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피해자를 보호하고 우리 교실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먼저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동안은 교실에서 일주일마다 제비뽑기로 짝을 정하고 과학시간이나 미술시간에는 출석번호대로 모둠을 구성했는데 당분간은 은희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선생님이 정해준대로 모둠을 구성하고 교과시간에도 그 모둠 그대로 수업을 받기로 했다.

아이들은 우리 모두 은희가 그런 일을 당하고 있는데도 몰랐고 보고도 도와주지 못했으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은희에게 사과하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편지 같은 걸 쓰자고 했다. 그런데 무조건 사과만하고 끝내선 안된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지난번에도 000은 친구를 이유 없이 때리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사과하고 다시는 안하겠다고 했지만 이번에 이런 일이 또 일어났잖아요. 그냥 사과만 한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중요한 지적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같은 전범 국가인 일본과 독일의 태도를 예로 들어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다시 생각해보자고 하였다.

미안하다고 말하기 전에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행동이 먼저 변해야 해요. 진심으로 반성하고 변화하려고 노력할 때 사과도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가해 학생들은 앞으로 몇 일간 놀이시간에 선생님과 상담을 하거나 글을 쓰면서 반성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 부분은 약간 응보적 처벌의 의미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을 책임감 있게 견디는 것도 반성하는 이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피해자의 고통을 똑같이 겪을 순 없겠지만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면서 성실하게 자신을 반성해 낼 수 있다면 가해자인 아이들에게도 의미없는 시간만은 아닐 것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이라는 것이 응보적 처벌 위주의 생활교육과 반대에 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만으로 해결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한 대 맞는 것보다 더 뼈아픈 반성을 필요로 하는 과정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진실된 반성없는 화해란 얼마나 공허한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나를 포함한 많은 교사들이 아이들이 싸우거나 갈등이 생기면 서로의 잘못을 확인하고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라고 일러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가벼운 경우 효과적인 방법일수 있지만 반복적이거나 갈등 관계가 있는 상황에서 그건 해결이 아니라 봉합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으면 사과하지 말라고 말한다. 거짓 사과가 더 나쁜 거라고 일러준다. 그리고 둘 다 각자의 관점에서 잘 못한 점이 있다하더라도 누구의 잘못이 더 크고 나쁜지 사회적 관점에서 판단하게 한다. 나는 이것은 정의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이런 갈등을 겪으면서도 성장을 멈추지 않으려면 무엇이 더 정의로운 방법인지, 무엇이 진정한 화해인지 가치판단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가해학생들에게 이 모든 과정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했다. 평소 같으면 아침 일찍 등교해 운동장에서 신나게 축구를 하다가 수업시간에 겨우 헐레벌떡 교실로 오던 활달한 친구들이라 다른 아이들이 다 노는 중간놀이시간마다 이어지는 상담과 글쓰기에 많이 속상해서 오히려 반항이라도 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도 하였지만 기특하게도 군소리 하나 없이 나의 처분(?)에 따라 고분고분 행동했다. 나중엔 시키지도 않았는데 점심시간에도 내 책상 옆에 앉아서 자기 할 과제를 하거나 아침에도 축구를 하지 않고 교실로 바로 와서 차분히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이 시간동안 가해학생들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누군가를 때린 아이들한테 왜 때렸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화가 나서라거나 장난으로 라고 답을 한다.

그럼 아빠나 선생님한테도 장난치고 싶거나 화가 나면 때려야겠네? 근데 너흰 그러지 안잖아.”

아무리 화가 나도 무서운 사람은 때리지 못한다. 때려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때리는 거다. 그러니까 장난으로나 화가 나서라는 말은 만만해서라는 뜻이 된다. 아이들은 미처 자기가 생각하지 못한 자신의 진심이 들킨 마냥 얼굴을 붉힌다.

 

 

복수보다는 사랑과 우정을

 

미안한 마음을 담아 편지도 쓰고 가해 학생들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도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이 문제가 진짜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질문에 한 녀석이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훌륭한 답을 했다.

우리반 친구들 모두가 소외되는 친구없이 잘 지낼 때요.”

이런 멋진 생각을 해낸 친구가 있어서 속으로 너무 고마웠다. 모두가 그 친구의 말에 깊이 공감하여 우리는 이 사건 해결의 최종 목표를 피해자의 회복뿐만 아니라 우리반 모두가 소외 없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으로 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어 7가지 약속을 정했다. 그 약속을 잘 지키기 위한 각자의 다짐도 모두가 보이는 곳에 써 붙였다. 약속 중의 한가지인 친구들에 대해서 험담을 하지 않기 위해서 그동안 미운 마음이 있었거나 화가 난 마음이 있었던 친구에 대해 글로 화풀이를 하고 그것을 찢어 버리게 했다. 미워하는 상대방에게 직접 전해줄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그 결과가 화해와 용서보다는 미움이 커질 것 같아서 찢어 버리는 것으로 화풀이를 대신하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학교가 복수를 가르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대신 아무리 생각해도 속상한 일은 직접 가서 말로 하기로 했다. 어떤 친구가 지난번에 떡볶이집에서 빌려간 1400원 꼭 갚어.”라는 말을 용기있게 해서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고마웠거나 미안했던 친구에게는 정성껏 편지를 써서 직접 전달하기로 했다. 이때는 모두가 한명씩 차례대로 친구들이 다같이 지켜 보는데서 전달하고 위풍당당 행진곡처럼 웅장한 배경음악까지 깔아줬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였던 아이들이 피해학생에게 편지를 써서 전하는 모습에 약간 뭉클해지기도 했다.

아이들이 일으킨 문제라 계속 아이들 탓을 해왔지만 실은 배려없는 교실 환경을 만든 주범(?)은 나였다. 전학 온 친구가 아이들이랑 친해지려면 놀 기회를 많이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도 문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랑 비밀친구 놀이를 하기로 했다. 모두가 한명씩 비밀친구를 뽑고 일정기간동안 몰래 그 친구를 돕고 선물이나 편지도 전해주다가 나중에 공개하는 놀이다. 아이들은 이 놀이를 하는 동안 학교에 오자마자 사물함을 열어보는 등 오랜만에 학교 오는 것을 설레어했다. 수업 틈틈이 놀이를 하고 체육시간에는 아이들이 원하는 활동을 위주로 수업을 구성하기로 했다. 그래서 점심 먹고 오후 수업시간을 이용해 자전거로 동네 한바퀴를 도는 활동을 하거나 날씨나 학내 체육 공간의 부족으로 교실체육을 할 수 밖에 없는 날에는 교실에서 할 수 있는 게임들로 교실 올림픽을 열기도 했다. 게임 종목을 정하고, 팀을 짜고, 교구를 준비하는 것도 모두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회의로 결정하고 나는 진행을 도왔다.

학년 초에 너무 소란스럽고 어수선해서 한동안 하지 않았던 아이들끼리 하는 학급회의도 정기적으로 다시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학년 초보다는 매우 성숙한 자세로 진지하게 회의를 해서 내가 그동안 아이들을 너무 믿지 못했구나 하는 반성을 다시 하게 됐다. 화장실이 자주 더러워지는 문제로 회의를 했는데 아이들이 캠페인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고 1단계로 포스터를 그려서 화장실에 붙이고 2단계로는 직접 교실을 돌아다니며 켐페인을 하자고 했다. 그리고 꼭 포스터는 대칭도형을 이용해서 그려야 하니까 수학시간에 그리자고 했다. 이런 영특한 녀석들!

 

 

교육이 가능한 공동체

 

아이들과는 그럭저럭 이야기도 충분히 나누고 해결의 실마리도 얻었지만 나에게는 관련 아이들의 부모님을 상대해야 하는 또 하나의 숙제가 남아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사안이 발생하면 학교는 수세적인 입장에서 학부모들의 이해를 구하는 편이지만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학부모들을 이 문제의 해결에 끌어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문제 상황과 우리 학급에서 아이들과의 다모임을 통해 만들어 낸 약속과 해결을 위한 단계적 노력들을 상세히 글로 써서 모든 아이들의 부모님에게 가정통신문으로 보냈다. 그리고 이 사안을 접한 부모님들의 말씀을 받아 글로 써오게 했다. 다행히 가정에서도 잘 지도하겠다’,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돕겠다’, ‘아이들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겠다는 등의 따뜻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아이들에게도 부모님들이 써준 말씀을 다같이 공유하면서 우리 학급의 공동체 모두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학부모들도 단지 내 아이의 입장과 이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약간의 객관적인 입장에서 모두가 우리의 아이들을 함께 키운다는 마음으로 교육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참여를 독려했다. 이제 이 문제의 해결은 단순히 학교와 교사의 일이 아니라 모든 학부모들이 함께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사안의 전 과정을 모두에게 공개함으로 인해 피해 부모는 해결을 위한 교사의 의지를 확인하고 좀 더 안심하는 것 같았고 가해 부모들은 조금 더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교사와 부모가 모두 같은 목소리로 교육을 하게 되니 아이들에게 교육효과도 확실히 높았던 것 같다.

 

 

불가능한 꿈과 용기

 

요즘 학교마다 학교폭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회적으로 관심도 높고 경찰에 변호사까지 학교에 와서 학교폭력 해결에 손을 보태고 있지만 피해는 줄지 않고 상처받은 아이들과 애먼 담당교사들만 죽어나고 있다. 나는 운이 좋아서 이정도 상황에서 마무리가 되었지만 여기에 다른 변수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지금 이 이야기의 결말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사회는 교육에 반영되고 교육이 다시 사회를 재생산하고 있는 지금의 구조에서 학교와 아이들이 병들어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같기도 하다. 그래도 교사로서의 마지막 책임감을 잃지 않고 용기내서 말한다면 적어도 학교에서는 차별, 증오, 폭력, 복수와 같은 고통 속에서도 정의, 우정, 사랑, 용서와 같은 언어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아직도 어리석어서 이제 학교가 아닌 어느 곳에서도 배우기가 어렵게 된 이런 언어들이 살아서 꿈틀대는 학교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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