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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2호 (2016.10.21. 발간)


[서평]

비고츠키 아동학 강의- 연령과 위기

(L.S.비고츠키 지음, 비고츠키연구회 옮김)

   

손지희 (증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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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01412월에 발간한 진보교육55호에서 이 책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책을 소개한 바가 있습니다. [비고츠키 아동학 강의- 성장과 분화]가 그것입니다. 당시 정식 출간이 되기도 전에 비고츠키연구회에서 마무리 작업 중인 한국어 번역 원고를 얻어서 읽고 기쁜 마음에 소개 글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기쁜 마음으로 소개 글을 쓴 이유는 비고츠키 저작치고는 매우 쉽다는 것이 그 첫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환경과 유전이라는 교육학의 오래된 난제를 명쾌하게 다루고 있어서였습니다. 비고츠키의 이론과 사상이 널리 퍼지는데 결정적인 걸림돌은 그의 저작 특유의 난해함에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던 차에 아 이 책이라면 비고츠키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좀 쉽게 읽고 같이 세미나를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올해 초 이 저작의 후속편인 아동학 강의- 연령과 위기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5년 넘게 고된 번역 노동을 쉬임 없이 해오고 계신 비고츠키연구회 선생님들께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언어의 장벽을 허물어 한국어로 옮겨주시는 덕에 험악한 21세기 한국 교실에서 교육노동의 의미를 찾아가며 아이들의 발달적 변화를 드문드문이나마 발견하며 살아가는 교사들이 있다는 사실에 힘을 얻으셨으면 합니다.

연령과 위기옮긴이 서문의 마지막 문장을 옮겨봅니다.

 

새들은 날개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사람은 오직 발달되지 않은 뇌만을 가지고, 그러나 고도로 발달된 사회적 상황 속으로 태어난다. 인간은 오직 고도로 발달된 사회적 상황 속에서만 날 수 있으며, 어린이는 극단적이고 위험스러운 심리적 확장과 주기적 추락 속에서만 배울 수 있다.” (연령과 위기 옮긴이 서문 중)

 

  어린이는 태어나는 그 순간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는, 양육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약하디 약한 존재입니다. 그런 어린이가 걷게 되고 말을 하게 되고 나아가 개념적 사고를 하는 청소년으로 자라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은 결코 꽃밭을 거니는 것처럼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제법 어른에 가깝게 성장한 청소년과 어른을 앞에 두고 이런 생각을 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비고츠키는 어린이의 이러한 발달의 동력은 바로 이미 고도로 발달된 사회적 상황에 그가 처하게 되면서 시작되고 그 사회적 상황을 견딜 역량을 지니지 못한 자신과의 모순 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발달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체로 예정되어 있는 것인양 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은 걷게 되고 말을 하며 유아적이고 유치한 사고를 벗어나 사회적인 공감도 하고 제법 그럴 듯한 생각을 하며 글로 자신을 표현하고 함께 더불어 노동활동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표면적인 결과에 불과합니다. 발달이란 결코 혼자 좌충우돌하며 이룰 수 없는 사회적 과정이며 정해진 경로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순탄한 과정만도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연령과 위기를 통해 우리는 발달의 역동성을 보게 됩니다. 그것을 비고츠키는 구조와 역동이라는 모순적 개념을 가지고 조화롭게 펼쳐 보입니다.

 

  『연령과 위기는 다음과 같은 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장 아동학의 연령 개념

2장 연령의 문제

3장 신생아의 위기

4장 유아기

51세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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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가운데 2장이 가장 흥미를 끕니다. 2장은 3개의 절로 다시 나뉩니다. 이 글에서는 2장의 내용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어린이 발달에서 연령기 구분의 문제


  첫 번째 절은 어린이 발달에서 연령기 구분의 문제를 다룹니다. 생애 주기를 모종의 기준에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나누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관습과도 같습니다. 아마도 과학적인 구분이 없었을 시기에도 가시적인 특징으로 어린이와 성적 성숙기의 청소년이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도 나왔을 것입니다. 언제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언제 결혼을 하는 것이 좋은 지에 대해 사회통념이라는 것이 생겨나 사람들은 그에 따라 살곤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생애주기를 구분하는 것이 사회적 관습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며 이것이 아동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실천적인 문제와도 연관된다고 비고츠키는 강조를 합니다. 비고츠키는 연령기 구분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이것저것 살피면서 교육학적 명명법의 맹점을 꼬집습니다.

 

오늘날까지 교육 단계에 따라 유치원 연령기, 초등 학령기 등으로 개별 연령기를 부르는 교육학적 명명법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시기 구분은 이론적 토대가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적용하기 어렵다. 나라마다 다른 공교육 단계의 차이와 (자본주의 체제 하의) 같은 나라 안에서 계급에 따른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문화화와 교육의 단계는 아동 연령기에 따라 구성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아동학은 이 단계들에 근거하여 아동기를 각 연령기로 나눔으로써, 교육학에서 요구되는 시급한 교육학적 질문들 언제 교수-학습을 시작해야 하는지, 교수-학습 단계는 어떻게 확립되어야 하는지 등 에 대한 분명한 답을 제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동학 자체가 현재의 교육학적 실천들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연령과 위기, 50)

 

  새겨들을 수밖에 없는 지적입니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아동학은 어린이 발달에 대한 과학입니다. 아동학적 연령기준이 아닌 교육실천을 기반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현재의 발달을 고려하지 않은 교육에 다름 아닙니다. 너무나 당연한 문제제기임에도 우리는 발달을 기준으로 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발달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전무한 사람들이 교육정책을 좌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널리널리 보편화되어 어린이의 발달의 주기와 리듬을 무시한 채 속진교육, 선행학습으로 오히려 발달을 그르치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비고츠키의 기여는 연령기 규정의 기준과 위기적 시기를 연령기에 포함시켰다는 점에 있습니다.

  연령기를 규정하는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비고츠키에 따르면 발달은 무엇보다 선행 단계에 없던 새로운 것의 끊임없는 출현과 형성을 통한 인격 형성 과정입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어린이 발달의 신체적 측면과 심리적 측면의 통일, 어린이가 각 발달 단계를 거침에 따른 사회적인 것와 개인적인 것의 통일로 특징지어지는 변증법적 발달 과정에 대하 유물론적 이해로 인도됩니다. 이 관점에서는 구체적인 어린이 발달 시기 혹은 연령기를 규정하는 기준으로는 신형성이외에 다른 것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음이 명백하다고 비고츠키는 주장합니다.

  한편 발달의 시기를 구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이행의 역동성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고 비고츠키는 강조합니다. 연령과 관계된 변화들은 매우 급격하고 위기적(위기적 시기)으로 일어날 수도 있고, 혹은 점진적이고 안정적(안정적 시기)으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위기적 시기를 연령기 구분의 체계 속에 포함시키기를 주저했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존재해야 하는 필요성조차 의심했으며 병리적인 것으로 간주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위기적 연령기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인격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필연적이기까지 합니다. 위기적 시기에서의 발달은 진화적 경로보다는 혁명적 경로를 닮아 있으며 단절과 전환의 연령기이고 따라서 급격한 위기의 형태를 띱니다. 양육하기 어렵고 교육하기 힘든 시기를 부모로서 교사로서 대부분은 경험합니다. 아무리 손이 덜 가는 아이일지라도 상대적으로 힘든 시기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위기적 연령기입니다. 어린이가 처한 발달의 사회적 상황, 그리고 그 사회적 상황과 어린이가 맺는 관계가 늘 평화로울 수는 없습니다. 발달의 과정에서는 늘 건설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과거의 토양 위에 순조롭게 쌓여가는 누적적인 과정도 아닙니다. 어린이는 새로운 과업에 직면하고 과거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건설적인 발달 과정 대신 이전 단계에서 형성되어 소멸하고 시들어 쇠퇴하는 과정이 전면에 나타나고 그것이 위기적 연령기의 어린이를 구별해 줍니다. 그런데 이 시기의 어린이는 잃는 것만큼 새로 얻지 못합니다. 그는 어제까지만 해도 줄곧 자신의 모든 활동에 주된 영향력을 행사하던 관심사에 흥미를 잃습니다. 얼마 전까지 어린이의 시간과 주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활동 자체가 꽁꽁 얼어붙은 듯 보입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어린이 발달의 위기적 시기들 중의 하나를 청소년기의 동토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처럼 위기적 연령기는 부정적으로 보이며 아이는 완고해보입니다.

  이 시기는 일종의 전환기와도 같습니다. 이 시기를 경유한 어린이는 이전의 어린이와 다른 인격체입니다. 새로운 연령기로의 이행은 항상 이전 연령기가 저무는 것으로 표시됩니다. 발달에서 새로운 것의 출현은 필연적으로 낡은 것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퇴화와 역발달 과정, 낡은 것의 소멸이 바로 위기적 연령기에 집중됩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발달의 파괴적인 작업은 오직 인격의 새로운 특성과 부분의 발달을 위한 필요에 응답하는 정도로만 일어납니다. 모든 연구자들은 7세의 위기와 관련하여 이 연령기에 부정적인 증상과 더불이 커다란 성취가 나타남을 주목하였습니다. 어린이의 자주성은 증대하며 다른 어린들과 맺는 관계가 변합니다. 작업 중에 진리를 밝히려는 독립성이 증가합니다. 신생아, 1, 3, 7, 13, 17세의 시기가 바로 급격한 변화가 마치 사회 혁명과도 같이 짧지만 격렬하게 진행되는 시기라고 비고츠키는 규정합니다.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사춘기를 안정적 연령기에 포함시킨다는 사실입니다. 비고츠키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흔히 성적 성숙기 즉 사춘기는 통상적으로는 온통 부정적이고 반항적이며 어른의 말을 듣지 않는 완고함에 위험천만한 위기의 시기로 간주하곤 합니다. 하지만 비고츠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3세의 위기를 경유한 사춘기 청소년은 매우 거대한 성취를 이루며 이 시기는 4년에 이를 정도로 결코 짧지가 않으며 매우 건설적인 시기입니다.

 

안정적 연령기 속에 사춘기를 포함시키는 것은, 이 연령기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으로 볼 때, 또한 이 시기를 고등 종합이 거대하게 증가하는 청소년 발달 시기로 특징짓게 하는 모든 것으로 볼 때, 필연적인 논리적 귀결이다. 이는 성적 성숙의 시기를 표준적 병리’(홈 부르거)와 심각한 내적 위기로 환원시키는 이론들을 비판한 소비에트 아동학으로부터 따라 나오는 필연적인 논리적 귀결이다.” (연령과 위기, 90)

 


  그리고 18~25세 사이의 연령기인 청년기는 어린이 발달의 후기라기보다는 성숙 연령기의 초기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비고츠키는 주장합니다. 별도의 설명은 없지만 안정적 시기인 사춘기가 끝나지 않았을 때 17세의 위기를 집어넣은 것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이제 성인으로서의 첫출발을 앞두고 있는 사춘기의 끝무렵에 닥치는 필연적 위기 국면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짐작이 됩니다. (비고츠키 시대의 소비에트 청소년들은 17세에 학교를 떠나 취업을 할 것인지 2년 더 공부하고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고 합니다.)

  비고츠키는 [어린이 발달에서의 연령기 구분]을 아래와 같은 형태로 생각해 볼 수 있다면서 이 절을 마무리합니다.


신생아의 위기 (전위기적 국면, 위기적 국면, 후위기적 국면)
유아기(2개월~1)
1세의 위기 (전위기적 국면, 위기적 국면, 후위기적 국면)
초기 유년기 (1~3)
3세의 위기 (전위기적 국면, 위기적 국면, 후위기적 국면)
전 학령기 (3~7)
7세의 위기 (전위기적 국면, 위기적 국면, 후위기적 국면)
학령기 (8~12)
13세의 위기 (전위기적 국면, 위기적 국면, 후위기적 국면)
사춘기 (14~18)

17세의 위기

 

  비고츠키의 연령기 구분은 우리 시대, 우리 사회와 딱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비고츠키가 강조한 대로 신형성’(그리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발달의 과정에서 출현하는 새로운 것이 신형성입니다. 옹알이, 입말, 글말, 쓰기, 개념적 사고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합니다.)이 연령기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어야 함은 분명해보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신형성의 출현하는 연령기의 특유의 구조와 역동을 이해해야 올바른 교육과정 구성과 교수-학습 실천이 가능할 것입니다. 올바른의 의미는 비고츠키교육학에서는 바로 발달을 이끄는이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연령기의 구조와 역동


  두 번째 절은 연령기의 구조와 역동을 주제로 합니다. 이 절에서는 1권에 등장했던 환경의 문제를 다시 한 번 되짚습니다.

 

과학으로서 아동학을 이론적, 실천적으로 연구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연령기의 역동에서 환경과 그 역할의 문제에 대한 잘못된 답이 지금까지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어린이 발달에서 환경의 역할을 이해함에 있어 환경을 어린이 외적인 것으로, 발달의 배경으로, 객관적이고 어린이의 존재와 무관하며 그 존재 자체로 어린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조건의 집합으로 간주하는 데 잘못이 있다.... 각 연령기의 초기에는 우리가 해당 시기의 발달의 사회적 상황이라고 부르는, 그 연령기에 완전히 고유하고 특정하며 유일하고 독특하며 되풀이될 수 없는 관계가 어린이와 환경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특정 연령기 발달의 사회적 상황은 해당 시기의 발달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동적 변화의 출발점이다. 그것은 형태와 경로를 전적으로 결정하며, 이를 따름으로써 어린이는 더욱 더 새로운 인격의 특성을 획득한다. 어린이는 자기 발달의 주요 근원인 환경으로부터 그것(인격적 특성)을 추출하며, 이 경로에서 사회적인 것이 개인적인 것이 된다.”

 

  어린이의 의식의 변화는 특정 연령기에 고유한 사회적 삶의 형태를 기반으로 일어나며 이 때문에 신형성의 성숙은 결코 초기에 일어나지 않고 언제나 특정 연령기의 끝에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 다음이 더 중요합니다. 비고츠키는 사회적 상황에 지배받는 어린이에서 그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이어갑니다.

 

그러나 일단 어린이의 의식적 인격에서 신형성이 일어나면, 이는 바로 그 인격의 변화를 초래한다. ... 자신의 인격 구조의 변화를 겪은 어린이는 이미 완전히 다른 어린이이며, 이전 연령기의 어린이 존재와는 본질적 형태에서 다를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이다.”

 

우리는 연령기 기본 법칙의 설명에 다다른다. 그 기본 법칙에 따라, 특정 연령기에 어린이의 발달을 추동하는 바로 그 힘이 모든 특정 연령기 발달의 기반 자체의 거부와 파괴를 필연적으로 이끌며, 내적 필연성에 따라 발달의 사회적 상황의 소멸, 발달 시기의 끝, 후속하는 고등한 연령기로의 이행을 결정짓는다.”

 

  발달의 사회적 상황과의 관계 속에서 신형성을 획득한 어린이에게 있어서 이제 발달의 사회적 상황은 소멸되고, 다른 시기로 이행을 합니다. 이는 존재와 의식의 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의 진술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마르크스는 자신의 의도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어린이는 발달의 사회적 상황 속에서 의식 구조의 변화를 겪고 신형성을 획득합니다. 하지만 의식 구조의 변화를 겪은 어린이가 기존의 환경과 맺게 되는 관계는 달라집니다. 어린이의 의지가 타인과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힘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연령기의 문제와 발달의 진단


  세 번째 절은 연령기의 문제와 발달의 진단을 다루는 절로서 비고츠키의 가장 유명한 개념인 근접발달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현대교육학에서 가장 관심을 기울인 만큼 많은 글이 쏟아져 나왔고 연구도 활발하게 되었습니다만, 비로소 이 절을 통해 그 진위를 파악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연령기 구분의 기준을 확립하고 연령기를 구분하였지만 각 어린이의 발달을 진단할 수 없다면 실천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비고츠키는 어린이 발달 연령기의 진단을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것이 왜 중요한가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이것은 아주 흔한 실천적 질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언제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것이 좋은지 언제 외국어 학습을 시작하는 것이 좋은지 결정하려면 당연하게도 어린이의 실제적 발달 수준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아동 발달에는 특정 과목을 교수-학습하기 위한 가장 유리한 시기가 존재합니다. 어무 이른 것도 너무 늦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각 기능, 각 과목의 학습의 최적기는 제각기 있습니다. 한 살짜리 어린이는 읽기와 쓰기를 배울 수 없으며 10세에게 문해를 가르치는 것은 너무 늦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비고츠키는 이야기합니다.

  비고츠키는 실제 발달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발달을 진단하는 데 가장 우선적이고 기본적인 과업”(연령과 위기, 107)임을 인정하면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첫걸음일 뿐입니다. 실제 발달 수준은 이미 지나간 시기로부터 온 발달의 산물일 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지를 알려주기보다는 과거에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더 잘 말해줄 뿐입니다. 물론 이것이 필수적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적절”(비고츠키는 불충분이 아니라 부적절이라고 표현합니다.)합니다. 진정한 발달 진단은 완료된 발달 주기, 즉 열매 뿐만 아니라 성숙기에 놓인 과정들까지도 포함할 줄 알아야 한다고 비고츠키는 강조합니다. 이것이 발달 진단의 두 번째 과업입니다. “현재 여전히 미성숙하지만 성숙 과정의 시기에 있는 것을 규정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두 번째의 과업을 위해 비고츠키가 사용하는 개념이 근접발달영역입니다. 비고츠키는 기존의 어린이의 지적 연령의 표준을 결정하는 검사의 전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기존의 검사는 어린이가 과업 해결의 과정에서 유도 질문이나 안내 지침을 받는 등 주변으로부터 약간의 조력이라도 얻어서 해결한 것을 어린이의 정신 발달에서 철저하게 배제하는 관습이 과연 옳으냐고 문제제기합니다. 오로지 어린이 혼자서 어떠한 도움도 없이 독립적으로 해결한 것만을 어린이의 발달의 지표로 삼고 독립적이지 않은 과업 해결을 어린이 정신에 대해 어떠한 의의도 갖지 못한다는 믿음에 반기를 듭니다. 이에 대해 비고츠키는 지적 모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일갈합니다.

 

그것은 지적 모방이 모방하는 정신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 기계적인 자동 활동일 뿐이라는 이제는 낡고 아무 의미 없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쾰러는 영장류에 대한 실험을 통해 동물은 자신의 고유한 능력의 영역 내에 있는 지적 행위들만을 모방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확립했다.”(연령과 위기, 115)

 

  마찬가지로 다양한 발달 단계의 어린이들이 모든 것을 다 모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린이가 지적 영역에서 홀로 행동하도록 두었을 때 할 수 있는 것보다 언제나 더 많은 것을 모방의 도움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지적 모방 능력은 무한하지 않고 어린이 정신 발달 경로에 따라 엄격히 규칙적으로 변화한다는 것, 즉 각 연령기의 단계마다 어린이의 실제 발달 수준과 연관된 고유한 지적 모방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본다.”(연령과 위기, 117)

 

  어린이의 지적 모방 가능성에 대한 논의로부터 비고츠키는 발달교육의 원리가 발로 협력임을 도출해냅니다. 인간의 학습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드러냅니다.

 

우리는 어린이가 혼자가 아니라 성인이나 다른 어린이와 함께 협력할 때에 수행하는 특정 유형의 모든 활동에 모방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이 용어의 의미를 심화한다. 어린이가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배울 수 있는 것, 그리고 안내에 따라 혹은 유도 질문이나 어려운 지점에서 도움을 받는 협력을 통해 수행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우리는 모방의 영역으로 다룰 것이다.” (연령과 위기, 118)

 

  비고츠키는 어린이가 지적 모방 영역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결정함으로써 성숙하고 있는 과정을 규정하는 과업을 해결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협력과 안내를 통해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어린이는 내일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연령과 위기, 118)

 

  근접발달영역은 바로 이러한 미성숙하지만 성숙 중인 과정의 영역 전체로 구성됩니다. 오늘날의 근접발달영역은 내일의 어린이의 실제적 발달 수준이 됩니다. 사회적 환경은, 어린이가 점차 획득하게 될 인간 고유의 모든 인격적 특성의 원천, 즉 어린이의 사회적 발달의 원천을 구성하며, 이는 그 최종 형태와 최초 형태의 실제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속에서 일어납니다. 어린이 인격의 내적 개별 특성 발달의 직접적인 원천은 타인과의 협력(가장 넓은 의미에서의)입니다. 근접발달영역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따라서 협력의 원칙에 의거해야 합니다. 이런 진단 원칙은 교수-학습의 문제와 실천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언제 가르치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해 이제는 근접발달영역의 개념에 따르면 교수학습의 최적기에는 하한선(너무 이른 것은 무의미) 뿐만 아니라 상한선(너무 늦은 것도 무의미)도 존재한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하한선만을 고려한다면 뭐든지 무조건 늦게늦게 학습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니까요.

  비고츠키에 따르면 교수-학습은 어린이의 사회적 발달의 가장 일반적 법칙 중 하나인 이상적 형태와 초기(원시적) 형태 간의 상호작용의 특수한 사례입니다. 그리고 교수-학습은 언제나 성인과 어린이의 이런저런 협력의 형태로 일어납니다. 또한 교수-학습은 이미 성숙한 과정이 아닌 성숙 중인 과정에 의존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근접발달영역을 규정하는 것은 교수-학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실천적 문제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비고츠키는 진정한 진단이란 무엇인가를 언급합니다. 기침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그 질병을 기침으로 진단하고 두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그 질병을 두통이라고 진단하는 것이 진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현재 한국 교육에서도 실천적 가치를 지닐 수 없는 불편한 도구들이 진단과 능력평가라는 명칭으로 포장되어 교사와 학생들을 괴롭힙니다.

  스스로 창공으로 날아오를 수 있을 만큼 날개가 자라고 비행법을 익힐 수 있을 때까지 돕지도 않고 자꾸 날 수 있냐고 한 번 해보라고 절벽에서 떠미는 것이 우리 교육제도의 현주소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교사들은 아이들이 혼자서 창공을 향해 날아갈 수 있을 때까지 얼마든지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고츠키를 함께 공부한다면 교사들의 도움 없이 결코 아이들이 혼자서 날 수 없는지를 더 많은 교사들이 더 명확히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새들은 날개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사람은 오직 발달되지 않은 뇌만을 가지고, 그러나 고도로 발달된 사회적 상황 속으로 태어난다. 인간은 오직 고도로 발달된 사회적 상황 속에서만 날 수 있으며, 어린이는 극단적이고 위험스러운 심리적 확장과 주기적 추락 속에서만 배울 수 있다.” (연령과 위기 옮긴이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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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현장에서] 기간제교사로 살아가기 - 기간제 교사임을 밝히지 마라? file 진보교육 2016.07.04 1342
152 [담론과 문화] 윤주의 육아일기 - #24. 아픈 아이를 돌보며. file 진보교육 2016.07.04 851
151 [담론과 문화] 타라의 문화비평 - '마을' 전성시대 file 진보교육 2016.07.04 619
150 [담론과 문화] 정은교의 몽상록 - 정세교육과 낱말공부 file 진보교육 2016.07.04 973
149 [담론과 문화] 송재혁의 음악비평 - 제창이 아니라 합창, 하모니의 에너지! file 진보교육 2016.07.04 671
148 [논단] 비고츠키 현장노트 "경계선 아이" (1) file 진보교육 2016.07.04 839
147 [특집] 2. 교원의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 방향 file 진보교육 2016.07.04 543
146 [특집] 1. 전교조운동과 교육노동운동의 전망과 투쟁방향 file 진보교육 2016.07.04 449
145 [권두언] 부당해고를 뚫고 전진하는 전교조, 교육의 미래이다. file 진보교육 2016.07.04 371
» [서평] 『비고츠키 아동학 강의 Ⅱ - 연령과 위기』 file 진보교육 2016.10.19 730
143 [열공] [리얼 유토피아] file 진보교육 2016.10.19 721
142 [사회변혁이론 고찰]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을 위하여(2) file 진보교육 2016.10.19 7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