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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의 미국생활 적응기

 

낡고 오래된 도시, 필라델피아 재생 프로젝트

 

한송(진보교육연구소 회원)

 

나는 목포에서 나고 자랐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목포 차 없는 거리(지금의 구시가지)가 내게는 최고 번화가였다. 학교가 일찍 끝나는 토요일엔 일부러 ‘차 없는 거리’에 나가서, 코롬방 제과점에서 생크림빵을 사 먹고, 할 일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당시 목포의 소문난 얼짱들을 구경하고 국제서림 2층 한적한 곳에 앉아 새 책들을 뒤적거리곤 했다. ‘뒷개’라고 부른 목포 북항은 어둠의 거리 같아서 자주 가진 않았는데, 그래도 대반동 바닷가는 자주 갔다. 해가 지는 풍경은 ‘헤밍웨이’라는 카페에서 봐야 좋았고, 여름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는 기타를 메고 노래하는 가수의 노랫소리를 배경음악삼아 사람들은 술잔을 기울였다.

더 어렸을 때 엄마 심부름으로 자주 갔던 곱슬이 작은 할아버지 집은 저 멀리 산꼭대기에 있던 것처럼 보이던 성골롬반 병원 올라가는 길에 있었다. 돌계단을 따라 마치 계단식 논처럼 작은 골목길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는데, 골목 양쪽으로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곳이었다. 병원 옆에 있던 성당의 흙벽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 제법 재미있어서 그 돌계단과 골목길들을 무던히도 다녔었다. 어른들은 그곳을 ‘마래부쉬’라고 불렀다.

방학 때면 해남에 있던 외갓집에 가는 금성호를 타려고 ‘선창’을 자주 갔다. 늘 그 곳은 비릿하고, 늘어선 횟집과 낚시장비들과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활기가 있었다.

광주에서 대학 4년을 보내고, 다시 목포로 와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영국에 갔다가, 서울로 옮겨 다시 교직생활을 하고, 그러면서 서울살이를 11년을 했다. 서울은 그래도 여전히 잘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회 끝나고 생선구이에 막걸리 한잔하고 했던 ‘피맛골’은 사라지기 직전에 경험했다. 종로를 행차하는 양반들을 피하려고 들어오는 길인데, '말을 피하는 길'이라는 이름이라는 피맛골의 유래도 유쾌했고, 골목 사이에 아무렇게나 붙어있던 작은 식당들과 간판들이 그 동안 살아온 사람들의 온기와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채 따뜻하게 품어주던 피맛골만의 특별함이 좋았다. 그 멋진 피맛골을 헐고 세워진 고층 빌딩 통로에 간판만 내건 피맛골이 파괴한 것은 오래된 건물만이 아닌 것이다.

미국으로 오기 전, 목포에 들렀다. 많이 변하긴 했어도, 목포 ‘차 없는 거리’와 ‘선창’과 ‘마래부쉬’는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었다. 주민들이 말하는 구도심 상권이 죽은 탓인지, 시에서 진행하는 도시재생 사업 때문인지 마구 잡이로 헐어버리지는 않는 듯 했다. 전에는 못 보고 지나쳤던 ‘차없는 거리’에서 개항시절부터 존재해왔던 근대문화유적이 보존이 되고 있고, ‘선창’과 ‘마래부쉬’는 시간이 멈춰버린 듯, 그냥 그렇게 있었다. 이제는 영화세트장에서나 봄직한 풍경인데도 인위적인게 아니라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 오묘했다. 현대적인 건물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세월이 만들어낸 그 분위기는 따뜻하면서 다정하기도 했으나, 을씨년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서글픈, 그런 복잡한 감정을 울컥 일으키는 곳이었다. 개발논리에 치우쳐 오래된 것은 무조건 밀어버리고, 말쑥하고 매끈한 현대적 빌딩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도시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켜켜이 쌓아 올려진 이 희노애락이라니.

 

 

 

<1980년대의 기억 속 풍경이 아직도 그대로인 목포의 ‘마래부쉬’>

 

오래된 도시, 필라델피아

 

필라델피아는1682년에 영국 출신 퀘이커 신자인 윌리엄 펜이 창설하였는데, 그 후 미국 독립의 중심이 되었으며, 자유의 종을 비롯하여 독립에 관련이 있는 많은 유적이 있다. 1787년에는 헌법이 기초되고, 1790년부터 10년 동안은 연방의 수도였다. 현재는 미국 제2의 항구도시로서, 국내 각지의 항구로부터의 수입이 많다. 주요 수입품은 석유·조당(粗糖)·철광석·양모·면화 등이고, 수출은 석유 정제품·설철(屑鐵)·석탄·기관차 등이다. 제조업 ·상업·금융업의 중심이고, 산업은 전통적인 출판업이 유명하다. 많은 공원·극장·교회·교육·자선시설·병원 등이 있으며, 동부의 예술 중심지이다. 주변에는 비옥한 농업지대가 있다. - 위키피디아

 

우연히 1910년 경의 필리 시내 중심부 그림을 봤다. 시내에 위치한 8번가와 마켓 스트리트는 2018년의 그것과 다르지만 비슷했다. 그러고보니, 필라델피아가 참 오래된 도시이고, 그 흔적들이 도시 곳곳에 남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910년 경의 필라델피아와 구글맵 스트리트 뷰로 본 2017년의 마켓 스트리트>

 

필라델피아 주택들은 대개 1910년에서 20년대에 지어진 집들이다. 헐어버리지 않고, 내부를 수리하고 고쳐서 지금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내가 사는 이 집도 1925년에 지어진 집이고, 지금은 벽돌로 막아놓은 벽난로 주변의 나무장식은 조금은 부서진 형태로 그 멋스러움을 보여주고 있다. 집 보러 다닐 때 봤던 여러 집들은 버틀러 계단(butler’s stairs)이라 불리는 과거 노예들이 이용하던 집안 부엌 옆에 숨겨진 계단이 아직도 있었다. 집 근처 침례교회를 비롯한 많은 종교시설들은 1800년대에 지어졌다고 오래된 벽돌에 새겨져 있다. 1740년에 세워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UPenn) 안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뭐 말할 필요도 없다. 1700년대 도시 초창기,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의 거리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앨프레스 앨리(Elfreth's Alley)에 가면 1728년부터 1836년까지 지어진 32개의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도시의 명소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앨프레스 앨리, 골목길>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오래된 건물과 거리들이 다 마냥 좋은 상태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1924년에 지어진 필라델피아의 대표적 지방 신문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Philadelphia Inquirer) 본사 건물은 2011년 이 신문사가 이사 간 이후로 비어있는 상태이다.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이렇게 웅장하고 멋진 건물이 비어있는 곳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호텔로 쓴다느니, 경찰서가 이곳으로 이전한다는 소문은 있으나 아직 이곳은 비어있다. 1880년대에 지어진 프랭크포드 초콜릿 공장(Frankford chocolate factory)도 2007년 베트남식 테마를 지닌 다용도 건물로 바꾼다는 계획으로 문을 닫은 이후 아직까지 비어있는 상태다. 1902년에 지어진 필라델피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Philadelphia Metropolitan Opera House)는 극장으로, 서커스장, 영화관, 교회를 거쳐 곧 콘서트장으로 다시 재개장할 예정이란다. 이 밖에도 필리에 버려진 건물들은 많은데 이들을 허물기 보다는 어떤 형식으로든 재생시키려는 이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왼쪽부터,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프랭크포드 초콜릿 공장,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다시 숨쉬는 필라델피아의 도시건물

 

The rail park

 

지난 6월 14일에는 필리에 기차길 공원(The rail park)의 일부가 개장했다. 뉴욕의 하이라인(High-line)처럼 이제 쓰지 않은 기차길에 공원을 만든 것이다.

1800년대 석탄광산 산업으로 시작된 필리 도시 산업은 운하, 철도, 도로의 건설을 이끌었으며,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에 공장 노동 수요로 수천명의 이민자들이 도시로 유입되면서 도시는 성장했다. 이 필라델피아 전성기에 수많은 석탄과 사람들을 싣고 날랐을 철도길이 오래 세월동안 녹슨 상태로 도시 길바닥 위에 방치 되어있던 것을 2010년부터 필리 센터시티와 시민단체가 구상하고 이후 8년 동안 환경과 실행가능 타당성 조사, 디자인 연구와 주민 공청회, 온라인 설문 등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기차길 공원이 탄생했다. 총 4.8km(3마일) 예정된 이 공원은 이제 그 1/4인 Phase 1 구역만 오픈했으나, 아직 개장되지 않은 풀들이 무성한 기차길을 보고만 있어도 이제 도시를 가로지를 이 녹색지대가 너무 기대가 된다.

<The rail park. 아직도 진행 중인 공원, 아래는 완성된 구간>

 

디바인 로레인 호텔 (The divine lorraine hotel)

 

1893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원래 럭셔리 아파트였다가 1900년에 로레인 호텔로 바뀐 후, 1948년 디바인 평화 운동(the Divine Peace Mission Movement)을 이끌던 디바인 목사가 이 건물을 취득한 후, 1999년 문 닫기 전까지 호텔이자 약 50년간 지역 사회의 시민 인권과 사회복지 운동, 개신교 행사의 센터이기도 했다. 그 이후로 이 건물은 텅 빈 상태로 사람들은 빈 건물안에 들어가 그래피티를 그리기도 하고, 흉물이 된 건물 안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예술가들은 폐허를 배경으로 작품 활동을 했단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뒤, 2016년 말 이 건물은 다시 디바인 로레인 호텔이라는 명칭은 그대로, 그러나 아파트로 다시 살아났다. 옛 모습과 명성을 간직한 채 새 생명을 얻은 이 건물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 따뜻한 보금자리 공간이 된 것이다. 638시간에 걸쳐 그래피티들을 지우고, 4,167 갤런의 페인트를 칠했으며, 642개의 유리 창문을 다시 끼우고, $9,987,456의 밀린 세금을 내고 이제는 101개 세대의 아파트로 태어났으며, 현재는 91개 세대가 찼고, 10개는 아직 주인을 기다리고 있단다. 밤에 보이는 붉은 네온 사인이 참 정겹게 느껴지는 건물이다.

<디바인 로레인 호텔, 왼쪽 위부터 전성기 시절의 호텔 홀, 흉물이었던 시절, 지금의 모습>

 

박 빌딩(Bok Building)

 

이제 사우스 필리의 명소가 된 이 곳은 원래 1938년에 지어진 공립 기술고등학교였다. 석회암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특이한 건축양식으로 이미 1986년에 미국국립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에 등록이 된 곳이다. 2013년 이 학교가 폐교가 되고, 학생들은 인근 학교로 흩어지면서 잠시 비어있다가 2014년 경매를 거쳐 지금의 장소로 탈바꿈되었다. 비영리 단체와 자영업자들의 사업공간으로,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으로,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상주하는 공간, 1층에는 아침부터 밤 9시까지 반려견과 마음껏 함께 할 수 있는 개 공원(dog park)이 마련되어 있다. 매해 여름이면 학교 옥상은 석양을 즐기기에 아주 좋은 루프탑 바(bar)로 한시적으로 개장한다. 매주 일요일이면 이 곳은 반려견과 아이들도 함께 입장 가능하여 가족이 함께 주말을 보내기에 참 멋진 곳이 되었다.

<Bok high school 간판이 그대로인 Bok 빌딩과 옥상위의 Bok bar>

 

웨스트 로프트(West Lofts)

 

이 곳은 도시재생 프로젝트 중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었던 곳이다. 1912년에 설립된, 스쿠쿨 강의 서쪽(Schuylkill river)에서는 최초의 고등학교인 웨스트 필리 고등학교(West Philadelphia High School)가 2011년에 현대적인 건물로 이전하면서 한 동안 빈 건물로 방치된 곳이었다. 한 때 5,500명에 육박하는 학생들로 꽉 차, 자연스럽게 새 학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1926년과 1935년에 학생들을 분산할 수 있는 고등학교 2개가 나란히 개교하면서 콩나물 교실이 해소되었다고 한다. 이 곳 또한 1986년에 미국국립사적지로 지정이 되면서 보존이 결정이 되었으나 2011년 학교가 더 작은 부지로 이전하면서 황폐한 빈 건물로 남아 지역흉물이 되었다. 깨진 유리창에 그래피티, 그렇지 않아도 학교괴담에 친숙한 그 공간은 참 무섭게 다가왔다. 그러다, 2016년 필라델피아 교육청은 개발업자에게 학교 건물을 팔고, 그 곳은 268세대의 아파트로 바꾸기로 결정이 되었다. 2017년부터 시작된 공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집 근처라 자주 지나다니는데, 건물의 외부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내부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공사가 완료된 곳은 입주가 이미 시작이 되어 이 오래된 건물은 다시 숨을 쉬게 되었다.

 

<왼쪽 위부터, 방치시절 전 웨스트 필리 고등학교 입구, 빈 교실자리에 자리한 복층구조의 스튜디오, 학교체육관을 개조한 아파트 헬스장, 학교 보일러실을 개조한 아파트 카페>

 

세월을 견뎌낸 것은 그것이 나무가 되었든, 사람이든, 건물과 거리이던 간에, 그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겉으로 표출이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아쉽게도 다 걷어내고, 새롭고 깔끔하게 지어내기만 하면 좋은 줄만 알았던 시절이 참 길었다.

필라델피아 거리를 걸으면서 오랜 시간을 아우르는 건축물들이 주는 특별함을 느껴본다. 모든 건물이 고풍스럽고 멋진 것만은 아니다. 방치된 건물들 뿐만 아니라,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녹슬고, 허물어 진 상태로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국은 아쉽게도 복고가 트렌드가 되면 각 지자체가 다 똑같이 판박이처럼 인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버리는데, 이곳은 그 낡은 각각의 거리가 가지고 있는 그 특별함을 간직한 채 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다시 내 고향 목포로 돌아가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면, 이 도시들이 품어왔던 그 역사와 사람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 거리와 건물과 문화가 융성해져 더 다채로운 모습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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