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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7호(2017.01.04. 발간)


[담론과 문화] 한송의 미국생활 적응기

시애틀에 가다

 

한송(진보교육연구소 회원)

 


 



 

   대학시절에 잘 가던 카페 한 켠에 큼지막이 걸려있던 영화 포스터. 싱글즈(Singles),

   1992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를 나는 2004년이 되어서야 보게 되었고,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고, 이 영화의 배경이 된 도시가 시애틀이고, 그렇게 시애틀은 내게 미국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다. 미국에 온지 일 년이 넘었지만,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던(?) , 드디어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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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싱글즈>

 

   친구의 결혼식이 10월 중순에 시애틀에서 있었던 것이다. 필라델피아 집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디트로이트를 경유하고, 시애틀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 미국 동부 끝에서 서부 끝으로 온 셈이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쓰고 픈, 그 곳은 이미 늦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보여주고 있었다.

 

   시애틀은 에메랄드 시티라는 별칭에 걸맞게 바다와 호수, 그리고 산으로 둘러싸여 자연이 만들어 준 터전에 인간은 숟가락 하나 올려놓고 이곳을 도시라 부르는 것 같았다. 마침 비까지 내렸다 막 멈춘 상태라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어도 그것마저도 청명했고, 차가운 기온에 가을색을 입은 울긋불긋한 나뭇잎들은 더욱 선명했다. 고개를 돌리면 태평양 바다가 보이고 (저기로 쭉 가면 한국 우리 집일 테고), 여기서 북쪽으로 3시간 정도 운전하면 캐나다 밴쿠버, 로키 산맥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시애틀 언저리엔 해발 약 4400미터에 이르는 만년설로 덮힌 레이니어 산이 있고, 여기서 태평양을 타고 북쪽으로 가면 알래스카가 나오겠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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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360도 파노라마,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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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호수와 녹지로 가득한 시애틀과 레이니어 산(Mt. Rainier)>

 

 

시내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

 

   시애틀 교통카드를 소지한 친구는 한명, 나머지 4명은 교통카드 미소지자. 교통카드를 모든 버스 정류장에서 파는 게 아니라 일단, 우리는 그 한명의 교통카드로 5명 버스비를 해결하기로 하고, 처음 버스에 오르는 사람부터 교통카드를 긁고, 그 다음 사람에게 교통카드를 패스하는 식으로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4명 째 긁는 데 버스 운전기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너네 도대체 뭐하는 거니?’라며 여기는 교통카드로 한 사람만의 운임만 지불할 수 있다고 했다. 당황한 우리는 이미 버스 안에 자리 잡은 친구들을 부르며 주섬주섬 현금을 찾기 시작하는데, 이 버스기사님, ‘몰라서 그랬으니 이번엔 그냥 타는 것으로 하자하며 쿨하게 자리에 앉으라고 하신다. 우와, 이 동네, 참 너그럽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30여 분을 가는데,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 각자 갈 길 가는 사람들일 텐데도 스스럼없이, 마치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인양 대화를 하는 것이다. 바깥은 빗방울 떨어지고 찬바람이 날리는데 버스 안은 참 훈훈했다. 미국 북동부인 뉴저지, 뉴욕 출신인 친구들도 모두 한마디씩 거든다. 이 도시 분위기 좋다고.

 

   2017년 미국 연방의 최저임금이 7.25 달러이고, 내가 살고 있는 펜실베니아 주를 비롯한 많은 주가 7.25 달러를 고수하고 있을 때, 시애틀이 속한 워싱턴 주는 무려 11달러이다. 50개 주에서 가장 높은 최저임금이다. (워싱턴 D.C 12.50 달러, 그러나 이는 주가 아니라 특별구 이므로 제외). 그러나 워싱턴 주가 11달러일 때, 이 시애틀이라는 도시는 15달러의 최저임금을 지급한다. 물론 임금이 높아도 주거비가 싼 편은 아니지만, 필라델피아에서 보다 사람들 표정이 밝고 여유로운 것은 임금과 관련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시애틀은 강력한 친환경 정책을 시행하는 곳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시정부의 정책과 시민들의 참여로 대중교통 이용과 자전거, 보행 인프라가 생활 곳곳에 자리 잡혀 있음을 짧게 머무는 동안 실감했다. 녹지를 조성하고, 연료를 하이브리드로 바꾸고, 음식물 퇴비화를 포함해 자원-쓰레기 재활용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그래서 시애틀은 공기청정도, 친환경 건물, 녹지 공간, 에너지 재생, 에너지 절약, 쓰레기 재활용, 교통, 수질 분야에서 고르게 높은 점수를 얻어 미국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도시로 선정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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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주택가에 있는 한 커뮤니티 가든 

- 신선채소밭은 물론, 음식물 퇴비통과 양봉까지 동네를 중심으로 한 도시농업이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녹아있다. >

 

   시애틀에 머무는 5일 동안, 정말이지 나는 거리를 걷는 사람들 중 일회용 플라스틱 백을 든 사람을 한명도 보지를 못했다. 간간히 황토색의 종이 쇼핑백을 든 사람들을 보았을 뿐이다. 필라델피아에 살면서 엄청난 양의 일회용 제품들을 쓰면서도 재활용엔 심드렁한 사람들을 많이 봐왔고, 마트 쇼핑을 하면 비닐 백에 물건 한두 개만 담고 다시 새로운 비닐 백으로 물건을 담는 데다, 유리병 제품이라도 담을 때는 비닐 백을 두 개 겹쳐 쓰고, 이 모든 비닐 백 대부분이 무료라 무서울 만큼 비닐 백 천지인 필라델피아와는 너무나 비교되는 지점이었다.

 

 

시애틀 거리에 널브러진 자전거들

 

   시애틀을 오가며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가지 장면. 자전거들이 거리 곳곳에 널브러져있다. 곱게 세워져 있기도 하고, 바닥에 누워 있기도 하고, 통일된 색깔들로 봐서는 개인용 자전거는 아닌 듯한데, 어째 자전거들이 저리 널브러져 있는 고.. 하던 차, 시애틀에 함께 간 친구 중 한명이 ‘lime bike’라는 앱 링크를 보내주며, 다운 받으면 자전거를 2회 무료로 탑승할 수 있단다. 앱 다운로드. 그리고 보니, , 자전거 대여(공유) !

 

   도시 무인 자전거 대여(공유) 서비스 제도는 세계 곳곳에 퍼져있다. 서울만 해도 따릉이’, 뉴욕의 시티 바이크(Citi Bike)’, 런던의 산탄더 사이클(Santander Cycles)’, 바르셀로나의 바이싱(Bicing)’, 필라델피아의 인디고(Indego)’ 등 이러한 자전거 공유 제도는 이제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도시에서 자전거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고자 자전거 전용 도로를 만들고, 손쉽게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는 무인 대여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사실 내게는 아직 자전거 전용도로만 잘 만들어져 있어도 감동이다.

 

   여담이지만, 사실 몇 년 전 여름방학 중 어느 날 집에 있던 내게 존경하는 선배님께서 친히 전화를 하셔서, 마로니에 공원에서 학벌철폐, 대학평준화를 위한 집회가 있는데, 전국을 돌며 이곳 서울에 와서 마무리를 하는 자리니 꼭 함께 하자는 말씀이셨다.

 

   ‘, 꼭 가야죠.’

 

   푹푹 찌는 더위에 전국을 돌며 대학 평준화를 위해 강행군하며 올라오신 여러 선생님들께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한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집회가... 자전거 선전전이었던 것이다. 자전거에 학벌철폐, 대학 평준화 깃발을 꽂아 마로니에 공원에서 광화문까지 내달리며 서울 시민들에게 우리의 주장을 알리는 것이다. 자전거를 탈 줄은 알아도 한강공원에서 타는 정도라, 따로 자전거 전용 도로 없이 서울 시내 도로에서 차와 함께 달려야 하는 부담감이 너무나 컸다. 다행히 집회 신고를 해놓은 덕인지 자전거 대열이 지나는 차선 한 개는 통제가 되는 상태로 선전전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뒤처지고 말았고, 대열이 지나간 차선은 통제가 이내 풀려 차들이 내 옆을 빠른 속도로 지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를 부른 선배님이 일부러 나와 속도를 맞춰 함께 가주기는 하셨으나, 나는 서울 한 복판에서 자전거를 탔던 그 기억이 조금 과장하면 공포스러웠다.

 

   시애틀은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고, 운전자들도 저 멀리서 보행자가 보이면 속도를 이내 멈추고 양보하는 보행자 중심으로 사고하는 도시이다. 사실, 살고 있는 필라델피아도 서울에 비하면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춰져 있고, 운전자들이 보행자 중심, 자전거 우선으로 운전하는 터라 여기서는 내 자전거를 장만하여 종종 타고 다닌다. 아무튼,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들이 갖는 이러한 공통점 말고도 시애틀의 자전거 공유 제도는 특별한 지점이 있었다.

 

   다른 도시들의 자전거 대여 서비스가 접결속장치(docking station)가 사용되어, 자전거를 대여하고 반납하는 장소가 지정되어 있는 반면, 시애틀의 자전거 대여는 그 지정된 장소가 없는 것(Dockless bike sharing)이 특징이다. 자전거 대여자들은 육안으로 거리에 널브러진 자전거를 발견하여 확보하거나 스마트폰 앱으로 찾아낸 다음, 요금(30분에 1달러)을 지불하고 코드를 스캔하거나 타이핑하여 잠금을 해제한다. 반납할 때는 뒷바퀴에 달려있는 잠금장치를 수동으로 잠그고 원하는 아무 곳이나 두면 되는 것이다. 필라델피아에 살면서 인디고라는 자전거 대여 서비스를 알고는 있었으나 실제 이용하는 사람을 본 것은 손에 꼽는다. 필라델피아도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문화라 자기 자전거를 가지고 있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자전거 대여, 반납 장소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번거로운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시애틀에서는 거리 곳곳에서 이러한 대여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나도 직접 자전거를 대여하여 시애틀 거리를 다녔는데, 이렇게 편한 시스템이라니. (물론, 자전거 헬맷을 꼭 착용토록 하는 시 규정과는 달리 이러한 대여 자전거는 헬맷까지 대여하는 것이 아니라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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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곳곳에 방치(!) 되어 있는 대여(공유) 자전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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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대여 앱으로 근처에 주차된 사용가능한 자전거 찾기>

   도시 안에서 자전거 이용이 보다 쉽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인데, 자전거 공유 회사들이 도로 점유 권리 댓가로 대당 15달러씩 시애틀에 보상금을 납부하여 이들 자전거는 도시 아무 데나 적방치될 수 있다고 한다.

 

   숙소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앱을 통해 근처에서 사용가능한 자전거를 찾아 대여한 뒤, 시애틀 서쪽으로 흐르는 운하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면,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지나가는 배들 통행을 위해 열리는 타이밍을 만나게 되면,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다리가 열리고 닫히는 광경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운하가 바다와 맞닿아 있는 곳까지 갔다가, 바다가 시작되는 곳에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 조용히 바닷물 흐르는 소리에 귀도 기울이기도 했다. 자전거와 함께 한 시애틀, 환경친화적인 그 도시가 너무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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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가다 잠시 벤치에 앉아서>

 


필라델피아의 친환경 자전거 사업

 

   다시 필라델피아로 돌아와 도시 안의 자전거를 둘러봤다.

 

   출퇴근하는 자가 자전거들, 플라스틱 바구니를 뒤에 달고 식품 협동조합에서 장보는 힙스터 자전거들, 자전거 대여 서비스인 인디고’, 그리고 또 다른 목적을 가진 자전거들.

 

   커다란 주황색 수레를 뒤로 달고 다니거나, 초록색 큰 가방 뭉치를 실고 다니는 자전거들. 이들은 ‘Wash Cycle Laundry’라는 세탁회사이다. 2010, 우리 동네 웨스트 필리에서 시작된 이 회사는 자전거로 세탁물을 픽업하여 세탁 후 다시 집으로, 회사로, 가게로, 호텔 등지로 배달하는 업체로, 최근에는 필라델피아 뿐 아니라 워싱턴 D.C 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지역 사회에서는 친환경 업체로 평가 받을 뿐 아니라, 마약 중독자, 홈리스, 감옥 출소자 등, 한번 사회 바깥으로 밀려났던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사회로 재진입하는 기회를 주는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받는다. 게다가 이 회사 홈페이지 문구는, <We promise it will be as pleasant as a bicycle ride. - 자전거를 타는 것만큼이나 즐거울 것임을 약속합니다!> 이다. 자전거를 사랑하는 이들이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일자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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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이용한 세탁업체 >

 

   작년 필리에 도착하고 한달 반 후, 웨스트 필리의 오래된 소방서 건물을 개조한 ‘Firehouse Bicycles’에서 산 나의 중고 자전거. 자전거를 사고 난 다음 날, 필라델피아 서쪽 끝에 있는 콥스 크릭(Cobbs Creek) 공원으로 페달을 밟고 신나게 가다 공원 언저리 바위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흑인 동네에 동양인 여자애가 자전거 옆에 놓고 혼자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혹은 걱정되었는지, 지나가던 흑인 할머니께서 학생들 하교하면 스쿨버스들이 끝도 없이 다니니, 교통이 혼잡해지기 전에 조심히 집에 들어가라며 손 흔들어 주시던 일이 벌써 일 년이 넘었다.

 

   아직도 트롤리 트랙이 깔린 도로에 자전거 도로가 붙어 있으면, 자전거 바퀴가 트랙에 처박힐까 전전긍긍하지만, 아직 자동차가 자전거보다 더 편한 내게 자전거를 더 이용하는 것만으로 친환경 업체를 이용하는 윤리적소비와 지지를 하는 것으로 현실화 하는 작은 몸짓이 된다고 믿고, 오늘도 나는 자전거를 타고 트롤리 트랙을 가로 질러 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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