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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7호 (2018.01.04. 발간)


[담론과 문화] 송재혁의 음악비평

 ‘1917을 떠나보내며

 

송재혁 (2016 해직교사)

 

 




   10월 혁명 100주년, 윤이상 탄생 100주년, 박정희 출생 100주년이 막을 내리기 직전이다. 뭔가 떠들썩할 것 같았던 한 해가 아쉬울 정도로 허전하게 지나버렸다. 러시아혁명에 대한 재조명의 불빛은 희미하기만 하고, 윤이상의 음악은 공연장에서 예년보다 홀대받았으며, 아버지 왕국의 재건을 시도한 딸은 옥에 갇힌 채, 역사 개념 가득한 한 해가 몰역사적으로 저물어간다. 자본 대신 노동자농민이 주인 되는 꿈, 보편과 특수를 조화시켜 모국의 음악을 충만케 하는 꿈, 다카키 마사오를 조국 근대화의 영웅으로 부활시키려는 꿈은 각기 꿈으로만 남았으니, 답답함, 아쉬움, 안도감이 복잡하게 교차한다.

 

 

100년의 꿈

 

   10월 혁명 100주년에 출생 100주년 맞은 박정희의 딸을 쫒아냈으므로 올해의 역사성을 멋지게 기념하는데 촛불혁명으로 충분했다고 토닥거려도 좋을 것인가? 또 다른 권력이 또 다른 방식으로 민중을 노골적으로 기만하기 시작했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인 각성은 미약하기만 하다. 우리의 시민혁명은 그 불완전성과 한계로 이미 바닥을 드러냈으므로, 2017년은 촛불혁명의 원년이 아니라 발생연도로 역사책에 축소 기록될 참이다. 지난 7, 베토벤 교향곡 3영웅’ 2악장 장송행진곡을 들으며 촛불혁명에 대한 미련을 시대의 무덤 속에 넣어버렸을 때, ‘혁명의 배신과 시대의 소음이라는 소음 수준의 잡글에서 촛불혁명을 퇴행을 멈춘 또 하나의 퇴행이라 단정했다. 너무 섣부른 표현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후회가 없다.

 

   러시아 정부조차 러시아혁명을 기념하지 않은지 오래다. 2005년부터 10월 혁명 기념일은 폐지되었고 대신 국민통합의 날이라는 국경일이 생겼다고 한다. 세계를 뒤흔든 20세기의 대사건은 오늘날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일까? 혁명의 가능성은 자본의 지속가능성 앞에 무릎 꿇었는가? 인간성과 민주성을 보존하면서도 억압, 착취, 불합리, 불평등을 제거하는 민주적인 사회주의는 성취 불가능한 꿈일런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뇌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음악 들을 시간이 된 것이다.

 

   베토벤 9번 교향곡 코랄이 연말의 고정 레퍼토리로 반복되는 것은 참으로 식상하다. 진보교육 2008년 봄호 오늘의 베토벤에서 9번 교향곡을 합창이라 하지 않고 굳이 코랄이라고 지칭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 위대한 교향곡의 혁명적 성격은 거세되고 오로지 축제적인 성격만 부각된 지 오래다. 베토벤이 예술을 통해 웅변하려 했던 정신의 고갱이는 우스꽝스럽게 박제화되어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춘희)’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수준으로 전락했다. 그리하여 감동 없는 세리모니가 연말마다 반복되는 모양새인데, 특히 일본과 한국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복식투쟁 돌입과 레닌그라드

 

   생애 처음으로 48시간 넘게 먹는 것을 멈추었던 단식투쟁의 고통이 121510일 만에 끝나자 어지럼증과 무기력을 동반한 더 한 고통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다음 날 꼭 가고픈 연주회가 있어서 흔들리는 다리로 예술의 전당을 향했다. 토요일 오전에 열리는 연주회 시리즈의 올해 마지막 회였는데, 연주곡은 단 하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이었다. 아마도 다른 연주자라면 의당 베토벤 9번이나 그 비슷한 곡을 골랐을 것이다. 그런데 최희준 지휘자와 KBS 교향악단은 의외의 선택을 했다. 더군다나 연말에 피 뚝뚝 흐르는 레닌그라드라니! 이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 지휘자는 연주 후 마이크를 잡고 전쟁교향곡에는 평화의 메시지도 녹아있다는 말로 선곡 의도를 굳이 밝혔다. 평범하다 못해 진부해진 송년음악회의 관행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연주회였다.

 

   그 충격 때문은 아니지만 주말 내내 탈진 상태를 면치 못했다. 잠시 단식 이야기를 보태자면,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과 경찰 연행에 항의하는 단식 외에는 자발적으로 곡기를 끊은 경험이 전혀 없다. 고작 48시간이 최고 기록이었는데, 그 정도만 굶어도 소신이 흔들리는 게 자각되었던 창피한 기억이 떠오른다. 48시간이 지나자 국가보안법은 아니더라도 체제 수호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하는 법은 필요한 것 아닐까하는 망측한 생각이 들었다. 새천년 초입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묵비 행사와 단식 48시간이 임박하자 경찰은 급한 마음에 유치장 창살을 전기톱으로 잘라내더니 우리에게 식사를 제공하면서 진술을 간곡히 청해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쇠고기 무국을 들이미는 것 아닌가? 맑은 오징어국과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국이어서 하마터면 먹고 투항할 뻔했다. 올해 111일 법외노조 철회, 노동기본권 보장, 교원평가성과급 폐지를 위한 총력투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도중에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은 수능 일정을 흔들었을 뿐 아니라 우리 투쟁 일정도 흔들어 놓았다. 위원장단과 시도지부장들은 단식을 중단했다가 다시 해야 했다. 두 번째 단식투쟁에는 박근혜 정권의 법외노조 탄압으로 2016년 해직된 교사들도 함께 하게 되었다. 겨우 10일이었지만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나니 그동안 단식투쟁을 의연하게 수행해 온 노동형제자매들의 위대함 앞에 진정으로 고개 숙여졌다. 단식이라는 투쟁 방식이 구태의연하며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관성적인 비판을 가벼이 내뿜는 분들은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직접 단식농성 해보고 나서 그 입 여시라!

 

   지난 1210일 암 투병 중 57세를 일기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신 고 윤종관 민주노총 전북본부장께서는 어떤 투쟁 방식도 좋지만 단식만은 하지 말라는 충고를 남기셨다고 전해진다. 자기 심신을 해치는 투쟁 방식을 삼가야 한다는 것은 나의 일관된 소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직이 토론과 회의를 거쳐 자기 생각과 다른 결정을 내리더라도 함께 하는 게 원칙이라는 것 또한 중요한 소신이었기에 이번 단식을 피할 길은 없었다. 일하며 단식하기는 예상보다 더 힘들었다. ‘스포욱스퍼슨이 말 다르고 행동 다르다는 말을 외부로부터 듣고 싶지도 않았다. 덕분에 몸무게가 9킬로그램이나 줄었는데, 고통의 10일을 견디게 해 준 것은 총력투쟁의 의지(^^)’와 더불어 음악이 주는 힘이었다.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작은 오디오가 거구의 허기를 많이 달래주었다. 물론 음악이 밥 먹여주지는 못한다. 부재가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우듯, 삶에 있어 먹는 즐거움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지를 깨달은 것이 이번 총력투쟁 단식농성으로부터 얻은 지극히 사적이고 비공식적인 교훈이자 성과다. 여하튼 단식보다 더 어려운 복식에 돌입한 첫날, 나치 독일에 맞서는 러시아 민중의 결사항전의 의지를 리얼리즘으로 생생하게 담아낸 교향곡 레닌그라드를 듣게 된 것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었다.

 

 

초인적인

 

   ‘레닌그라드의 일부는 전장의 한 복판에서 작곡되었고 동부전선의 공방이 한창 치열했던 19423월에 초연되었다. ‘대조국전쟁으로 인해 파르티잔과 민병을 포함해 소련군 1060만 명이 전사했고 민간인 피해는 1500만에서 최대 2500만 명에 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 교향곡을 대강 아름답고 멋지게 다듬어낸 연주는 오히려 듣기에 거북할 수 있다. 사실주의 작품은 사실적으로 연주해야 정석이다.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와 소련 국립교향악단은 이 곡의 정곡을 찌르는 해석을 펼쳐놓는다. 그 어떤 연주도 이처럼 노골적이지 않다. 스베틀라노프는 1968년과 1978년에 소련 국립교향악단과, 1995년에는 헤이그 주재 관현악단과 녹음을 남겼는데 셋 다 출중한 연주로 보인다. 1968년 음반에는 투박한 녹음을 바탕으로 강철같은 연주가 담겼고, 1978년 음반에는 울림이 더 풍성한 녹음을 바탕으로 얼음같은 연주가 담긴데 비해, 1995년 음반에서는 뛰어난 녹음 위에 사골국같은 연주가 펼쳐진다. 너무 우려내어 희미해진 뒷맛까지 담겼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세 개의 기록은 한 지휘자가 남긴 해석의 변천사이자 대조국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천사로 다가온다. 스베틀라노프는 피날레의 마지막음 을 초인적으로 길게 연주한다. ‘음으로 맺어지는 음악은 1도 화음 속에 있더라도 끝남을 선언하지 않고 계속 가려는 미련을 강하게 남긴다. 뭔가 더 간곡히 설득하려는 느낌도 준다. ‘레닌그라드교향곡과 마찬가지로, 1905년 봉기를 그려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1905의 마지막 음도 단조 기준으로 이다. 질주하다 멈추지만 또 다른 질주를 예고하는 음인데, 이 교향곡의 마지막 부분이 그려낸 대로 1905년 혁명은 멈추지 않고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전진했다.

  

 


그림 1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 지휘,

USSR 국립 교향악단(1968년 녹음)-Melodiya, Scribendum

 

 

그림 2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 지휘,

USSR 국립 교향악단(1978년 녹음)-Melodiya, Scribendum

 

 그림 3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 지휘,

헤이그 주재 관현악단(1995년 녹음)-Pony Canyon

 

 

2017년 통과의례, 12‘1917

 

   올해가 특별하게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베토벤의 코랄교향곡 대신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2번 ‘1917을 듣는 것이 역사적인 한 해를 마무리하는 통과의례로 적절할지 모른다. 오간 두르얀(Ogan Durjan)이 지휘한 동독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Gewandhausorchester Leipzig)가 남긴 1967년 녹음이 최우선으로 추천할 만하다. 아쉽게도 현재 음반으로 구할 수 없으며 레코드판을 복각한 음악파일이 알음알음 전해지고 있지만, 다행히도 유튜브에서는 들을 수 있다. 올 겨울 쇼스타코비치에 본격적으로 입문하시려는 분들에게는 20157월 진보교육에 소개했던 교향곡 전집 영상이 유용할 것 같다. ‘1917을 포함해 그의 교향곡 15곡과 협주곡 6곡이 모두 담겨 있다. 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유서 깊은 마린스키 극장 관현악단합창단이 2013년과 14년 파리의 살 플레옐(Salle Pleyel)’에서 연주한 기록이며, 지휘자의 육성 해설도 포함되어 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중에는 성악이 등장하는 곡들이 있다. 그 텍스트에는 혁명 뿐 아니라 유태인 문제, 삶과 죽음의 부조리에 대한 성찰 등이 반영되어 있는데, 러시아어 가사의 우리말 완역을 그동안 찾아볼 수 없었기에 이 전집물은 한글 자막 처리만으로도 크나큰 가치를 지닌다. 노동자 혁명을 단호하게 외치는 가사를 여과 없이 자막으로 접하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DVD와 블루레이로 구할 수 있다.

 

 

그림 4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21917-오간 두르얀 지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동독, 1967년 녹음)-Philips


  

 그림 5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과 협주곡 전집 영상-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

마린스키 극장 관현악단합창단(2013~2014년 녹화)-Arthaus (블루레이, DVD)

 

 

‘100년의 비밀

 

   바쁜 척 엄살 부리면서도 볼 것은 빠뜨리지 않고 챙긴 한 해였다. 전화번호조차 1917번인 구자범 지휘자가 혁명 100주년을 놓칠 리 없다. 지난 316일 목요일 저녁, 군산 예술의 전당에서 ‘100년의 비밀이라는 음악회가 열렸다. 구자범 지휘, 군산시립교향악단의 연주여서 만사 제치고 군산으로 향했다. 예매한 표를 찾고 어슬렁거리다 군산시향 상임 백정현 지휘자와 마주쳤다. 구자범 선생이 부산에서 은거하고 있을 때 그를 지지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했던 분으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어 구면이었다. 지휘자실로 불러 좌석을 더 좋은 자리로 바꿔주시더니 저녁 식사 때가 되자 새우 등 군산스러운음식이 나오는 식당으로 손수 안내해주셨다. 서둘러 식사비를 내려고 하시는 것을 만류하자 돌아온 답변은 구자범 선생님 친구는 곧 저의 친구입니다였다. 이런 환대를 받고 좋은 분들을 알게 된 것 역시 결국 전교조 덕분이다. 전교조 주관 음악 연수 만들다가 구자범 지휘자를 알게 되었고, 구 지휘자 덕에 백정현 지휘자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연주회 포스터의 ‘1917’ 숫자는 참으로 재미있는 도안이다. 숫자 안에 작은 글씨로 ‘100’, ‘1917’, ‘구자범이 빼곡히 박혀있다.

 

 

그림 6 : 구자범 지휘, 군산시향 연주회 ‘100년의 비밀포스터 (2017.3.16.)

 

 

탐탐, '사고'와 '연주'의 경계에서

 

   이 날 연주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2‘1917에는 지휘자의 개성 있는 곡 해석이 묻어 있었다. 1악장 혁명의 페트로그라드’는 출발부터 대단히 무겁고 각별했다. 저음현의 유니즌으로 연주되는 첫 테마와 도입부는 처연하고 구슬프게 연주되기도 하고 단호하고 저돌적으로 연주되기도 한다. 구자범 지휘자는 이 부분에서 민중의 절절한 요구와 술렁이는 동요, 그리고 저항으로의 결집을 함축하여 꾹꾹 누르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연주 도중에 우리 악기 징과 비슷한 모양을 한 탐탐(tamtam=gong)이 큰 소리를 내며 넘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나중에 구 지휘자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리허설 중 지휘자는 탐탐 연주자에게 최대한 과격한 연주를 주문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힘차게 내리치자 자빠졌던 것이다. 레닌과 함께 봉기를 준비하던 볼셰비키는 1024일 군함 오로라의 호포를 신호 삼아 행동에 돌입하여 무혈혁명을 달성했는데, 이것을 묘사한 부분, 3악장 오로라에서 4악장 인류의 새벽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탐탐이 꽈당 넘어간 것이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따라서 연주 사고’라기보다는 구 시대의 몰락과 새 시대의 개벽을 극적으로 표현한 의도되지 않은 연주’라 하겠다. 연주회 후 인사를 나누기 위해 기다리던 중 그 탐탐 연주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참으로 절묘한 연주이자 의미 깊은 사고였다며 위로해드렸다.

 

   쇼스타코비치는 1958년 교향곡 11‘1905을 발표한 데 이어 196112‘1917을 내어놓음으로써 혁명 2부작을 완성했고, 이 무렵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다. 이것이 비겁한 행위였는지 소신에 따른 결단이었는지는 쇼스타코비치의 전 생애에 걸친 행적들에 대한 평가와 마찬가지로 불분명하다. 그러나 음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교향곡 12번을 혁명의 맥락으로부터 떼어내려는 시도는 굉장히 억지스러운 것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을 굳이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편향에 따른 강박으로 볼 수 있다. 4악장의 피날레가 어느 날 이렇게 들리기 시작했다. 현의 상증조는 민중의 계속적인 혁명에 대한 요구를 형상화한 것이고, 금관의 하강조는 스탈린의 반혁명 탄압을 형상화한 것일까? 상증조의 현과 하강조의 금관을 조합해 반복하는 패턴은 사적유물론의 형상화일까? 반복되는 음형은 결국 화려한 장조 1도 화음의 총주에 묻히고 팀파니의 일격과 함께 으뜸음 로 단호히 마무리된다. 이것으로 혁명은 끝났는가? 사회주의 실험은 100년도 못 되어 완전히 실패했다고 단정해도 좋은가?

 

 

그림 7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2‘1917’ 1악장 '혁명의 페트로그라드'의 첫 테마

 

 

윤이상, '남'과 '북'의 경계에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윤이상의 작품도 이 날 함께 연주되었다. 어느 곡 하나 대강 끼워 넣는 법이 없는 구자범이다. 그런데 연주된 실내교향곡 2자유의 희생자들에게는 음반으로도 나와 있지 않고 유튜브에도 올라 있지 않아서 이 날 현장에서 처음 들어야 했다. 윤이상의 작품들이 대체로 난해하지만 이 곡은 특히 듣기가 어려웠고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반면 실내교향곡 1번은 잘 들리는 편이다. 알렉산더 리브라이히가 지휘한 뮌헨 실내 관현악단의 연주를 추천할 만하다. 리브라이히는 평양에서 음악대학 교수로 일한 경력이 있으며 윤이상 음악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2002년에는 청소년 관현악단인 도이체 융에 필하모니를 이끌고 평양과 서울에서 안톤 브루크너의 장대한 걸작인 교향곡 8번을 연주했었는데, 평생 기억될 연주회 중 하나로 내게 남아 있다. 리브라이히는 2009년 다시 내한하여 뮌헨 실내 관현악단과 함께 윤이상의 실내교향곡 1번을 연주했다. 끝나고 음반의 내지에 지휘자의 사인을 받아두었다. “평양 가보셨지요? 저도 가봤습니다.” “리얼리?” “오늘 연주 참 좋았습니다. 앵콜곡은 처음 들어보는데 무슨 곡인가요?” “베르너 피르히너가 작곡한 이별(Abschied)’이라는 곡입니다.” “사인하시면서 옆에 써주십시오.” 그 후 피르히너의 이별이 담긴 음반을 찾아내느라 고생이 많았다. 어디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모차르트 반사(Mozart Reflexionen)’라는 먼지 쌓인 현대음악집 음반의 수록 곡목에서 이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그림 8 : 윤이상, 실내 교향곡 1-알렉산더 리브라이히 지휘,

뮌헨 실내 관현악단-2008-ECM




그림 9 : 위 음반의 내지에 받아 둔 지휘자 알렉산더 리브라이히의 사인 (2009.3.31. LG아트센터)

 

  

   독일에 거주하는 친구가 몇 달 전 고국을 방문했을 때 선물로 받은 다큐멘터리 윤이상, 남과 북의 경계에서(Isang Yun Inbetween North Korea and South Korea)’도 좋은 정보로 가득하다. 윤이상의 음악 세계 뿐 아니라 북한의 음악계 내부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등 세계 곳곳의 음악 현장을 영상에 담아 온 마리아 슈토트마이어의 작품으로, 주독 북한 대사관, 통영 국제음악제 주관 단체 등의 협조를 받아 북한과 남한에서 촬영했다. DVD의 표지 모양이 의미심장하다. 공간을 분단하는 첼로의 네 줄은 분단의 철조망이면서 동시에 이를 녹여 낼 음악의 힘이다. 내지의 디자인도 재미있는데, 한쪽은 빨강색, 반대쪽은 파랑색이며 앞뒤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인쇄되었다. 제작을 함께 한 텔레비전 ZDF가 분단국가를 경험한 독일의 회사이므로, 동병상련의 감각이 지독히 공정한디자인으로 구현된 것 아닌가 싶다. 2015년에 나온 이 영상 자료에는 한글 자막이 포함되어 있으며, 국내에 수입되지는 않았으나 알라딘 같은 곳에서 해외 주문을 통해 구할 수 있다.

  

 

그림 10 : 윤이상, 남과 북의 경계에서

(Isang Yun Inbetween North Korea and South Korea)-2015-Accentus (DVD)

 

 

자기만 아는' 음악에서 모두가 아는' 음악으로

 

   탄생 100주년이어도 고국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윤이상 선생을 전교조 신문 교육희망은 잊지 않고 기억했다. 어린이를 위한 윤이상, 끝없는 음악의 길과 청소년을 위한 윤이상, 세계현대음악의 거장을 펴낸 박선욱 시인이 올해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삼인)을 내어놓았는데 이에 대한 서평이 12월 중순 발간된 신문에 실렸다. MBC 해직 PD인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이 쓴 글이다. 윤이상은 음악보다도 삶의 궤적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박선욱 시인이 탄생 100주년에 맞추어 펴낸 이번 책은 음악가에 대한 평전으로서 엄밀성이 다소 떨어질지 모르나 윤이상 선생을 본격적으로 이해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경우 윤이상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나 윤이상의 음악을 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의 음악은 들어도 들어도 여전히 멀리 있다. 앞으로 열릴 100년에는 윤이상의 음악이 모국에서 널리 연주되고 사랑받을 수 있을까? 이른바 음악 전문가들의 대중적인’ 작업이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 윤이상의 음악을 '자기만 아는' 음악에서 '모두가 아는' 음악으로 만드는 것 역시 전문가의 몫이라 하겠다

   

 


그림 11 : 박선욱 저,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

 

 

전어와 연어

 

   ‘1917을 떠나보내야 하는 시점에서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역시 이 한 몸 다 바쳤던(?) 총력투쟁이다. 이번 연가투쟁은 적폐 청산을 게을리 하는 청와대를 촛불광장으로 호출하기 위한 전교조의 따끔한 일침이었다. 한 해 동안 분노를 일으킨 일도 많았는데, 청와대가 노동계를 초청한 만찬에서 전어를 준비했다는 뉴스가 떠오른다. 그리고 청와대 초청을 거절하고 전어를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속사정도 따져보지 않고 민주노총을 몰아붙였던 보수와 짝퉁진보 각계의 분별없는 태도가 지금도 마음에 밟힌다. 당시 썼던 한 입장문의 제목을 노동계가 집 나간 며느리인가로 잡았다가 주변의 만류로 고쳤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자유의 공간에서 다시금 분명히 기록하거니와, 전어 찾아 돌아와야 할 사람은 촛불광장에서 나가버린 며느리 또는 사위로서 청와대다. 그런데 어쩌랴, 광장에는 전어가 없고 연어가 있다. 시대의 퇴조를 거슬러 촛불광장으로 끝없이 회귀하는 연어와 같은 귀한 존재가 전교조와 민주노총이다. 이와 별개로, 지금 전어가 간절히 먹고 싶어진다. 꿀꺽~

 

   “아홉 교사를 버리지 않고, 전교조 육만 교사가 법외노조의 험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름다운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선생님다운 선택이셨다는 겁니다. 정의로운 일에는 때로 번민과 고통이 따르는 법이지만 바른 길이면 그 길로 가야지요. 교단에서 가르치는 일 못지않은 큰 가르침을 거기서 얻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이런 시대에!” 이철수 판화가의 작품 ‘9/60,000’의 글귀다. 한심한 선택을 했다는 일각의 조롱에도 우리가 이 길을 꿋꿋이 갈 수 있는 이유를, 그리고 전교조가 가지고 있는 크나큰 자부심의 근거를 대변해주는 글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그림 12 : 이철수 판화 ‘60,000분의 9’


 

 

그림 13 : 맛있는 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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