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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6호 (2017.10.16. 발간)



[열공!

진보교육학교 1기를 마치고


 

윤선영(진보교육연구소 회원)







 

글을 시작하며...

 

세미나의 내용 중에서 현재까지도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감명 깊은 부분을 중심으로 글을 써보았다. 짧은 기간 동안 너무 많고 어려운 내용이 한꺼번에 들어왔고 또 빠져나갔기 때문에 현재 내 머리와 마음에서 정리된 것은 거의 없다. 스터디가 끝난 지 3개월이 되어가므로 내용에 오류가 많을 것이다. 나에게 영향을 준 부분과 그에 대한 생각을 중심으로 기술했다. 이 글은 굉장히 주관적이고 자의적이며 거의 의식의 흐름 수준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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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학교 1기에 참여하여...

 

진보교육학교 1기에의 참여는 4월 중순 갑자기 제안 받았다. 애초에 참석하실 예정이었으나 지회일로 바쁘셔서 참여가 어려워진 다른 두 분의 선배님을 대신해서 급작스럽게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관심 있는 교육철학 분야에 대해서만 아주 조금씩 책을 읽고 있었고, 그 와중에 비고츠키를 만나서 더 깊게 공부하고 싶었는데 어려워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비고츠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들었다. 어렵고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각오는 했다. 아는 것은 없지만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마음으로 참가했다. 세미나는 주로 비고츠키, 교육사회학, 교육사상사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비고츠키만 공부할 줄 알았는데 더 넓고 깊게 공부하게 되었다. 이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솔직히 2주에 1번 세미나 날까지 거의 모르는 내용 일정량을 읽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오랜만의 공부고 사전 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라 문장하나하나 이해하기가 불가능하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발제를 맡은 부분은 다른 분들께 피해가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읽고 정리했다. 발제를 하지 않을 때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그냥 건너뛰기도 하고 미처 다 읽지 못하고 갈 때도 있었다. 그래도 빠지지 않고 세미나에 참석해서 선생님들께서 하시는 발제나 발언들을 들으며 빈 곳을 조금이나마 더 채울 수 있었다. 가만히 듣기만 하기 보다는 나름대로 끊임없이 내 생각과 비교하고 대조하려고 노력했고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발언하기 쉽지 않았지만 기회가 되면 한 마디라도 발언하려고 노력했다.

 

교육사회학(교육과 사회변혁)

 

교육사회학 주제 중 나에게 가장 깊은 생각거리를 준 주제는 교육과 사회변혁이었다. 학부 때 교육사회학 중 계급재생산에 대한 내용은 접한 적이 있어 익숙했다. 하지만 사회변혁에 대한 내용은 접해본 기억이 없어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다. 한창 4차 산업혁명이다, 촛불 혁명이다, 크고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과연 내가 이 사회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교사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 계속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에 대한 해결의 씨앗을 사회변혁 부분 특히, 프레이리와 그람시에서 얻을 수 있었다. 프레이리의 사회 속 억압자와 피억압자에 대한 설명과 인류애, 사회변혁을 위한 방법으로 그람시의 기동전(機動戦)과 진지전(陣地戰)에 대한 설명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프레이리


나는 그동안, 이 한국 사회에서는 왜 이토록 악이 강한가에 대해 고민하고 비관하곤 했었다.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는 그런 나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다. 페다고지 1, 4장을 읽으며 우리 사회만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 어쩌면 인류 역사 내내 악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했고 인류는 그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투쟁하며 지금까지 진보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 자신을 진보를 향한 인류의 오랜 싸움의 과정에 속해있는 한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억압자와 피억압자 모두에 대한 프레이리의 인류애도 느껴졌다. 이를 통해 비관적인 시선이 사라지고 긍정적인 시선과 지금의 난관을 견디고자 하는 힘을 얻었다.

 

교육을 통해 피억압자와 억압자를 모두 인간화해야한다는 프레이리의 접근도 마음에 들었다. 그 동안은 교사로서 나에게 공교육은 피억압자에게 당연히 필요한 것이었지만, 소위 억압자(의 자녀들?)에게도 당연히 필요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항상 작은 의문이 있었던 것 같다. 입시라는 상황에서는 공교육은 사교육으로 얼마든 대체될 수 있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어떤 정당성을 가지고 접근할 것인가에 대해 확신이 없었는데 확신이 생겼다. 현재 억압자로써 소유욕에 의해 비인간화된 그들을 인간화하기 위해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중심 역할은 공교육이 해야 할 것이다.

 

프레이리의 설명은 피억압자들과 피억압자들을 해방하려고 하는 지도부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유용한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실제로 억압자들에게는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지도부의 교육으로 피억압자들이 모두 의식화된다 한들, 불합리한 사회구조가 저절로 변화될 것 같지가 않았다. 반대화적인 방법으로 억압자가 된 이들을 교육으로 인간화 하는 것은 피억압자들을 인간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일 것 이다. 피억압자들은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비인간화를 깨닫게 되면 자연스레 인간화 될 가능성이 높지만 억압자들은 피억압자들과 같은 방식으로는 인간화가 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억압자들의 인간화의 방식은 피억압자들을 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 되어야 할 것 이다.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새로운 길을 내어준 사람이 그람시였다.

 

그람시


사회변혁을 위한 방법으로써 그람시의 기동전(機動戦)과 진지전(陣地戰)에 대한 설명이 또 하나의 단서가 되었다. 나는 기동전을 사회 운동, 진지전은 학교 교육으로 이해해보았다. 나는 교사로서 진지전(학교 교육)은 항상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동안은 그것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프레이리의 해방 방식 역시 진지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동전이 필요하다. 내가 기동전(사회 운동)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었나 반성하게 되었다. 기동전 없는 진지전이 얼마나 힘을 받아 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나 역시 교사로서 역할에서 더 나아가, 이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시민으로써 행동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삶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큰 변화가 생겨야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소위 윌리스의 귓구멍이들과 같은 사람이었던 나는 순응하는 데만 익숙해져 있었다. 현실에 반항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이 학생의 미덕이라 믿었다. 물론 아마 순응하지 않고 반항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그 미덕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엄청나게 빠르고 다양하게 변하고 있는 사회 속에서 내 어릴 적 미덕이 지금도 유효할까 생각해보면 아닌 것 같다. 그때도 아주 유효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더 유효하지 않다. 나에게도, 학생들에게도 현재에 걸맞은 생각과 행동이 필요하다.

 

문득 나는, 기동전과 진지전으로 분류하는 방식을 불의(不義)를 대하는 나의 방식에도 적용해보았다. 나는 불의가 나쁜 것을 알고 불의를 스스로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그리하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지극히 진지전의 입장이라고 봤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다른 이의 불의에 저항하고 싸우는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더 나아가 그것에 저항하는 태도가 우리 사회를 변혁하는데 더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둘은 함께 가야 하지만 나에게 불의를 저지르지 않는 것불의에 저항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로 다가온다. 나에게 불의를 저지르지 않는 것불의에 저항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것 같다. ‘불의를 저지르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에서 더 나아가 불의에 저항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렵게 느껴질까?

 

이번에는 이론실천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 둘은 함께 가야 한다. 그런데 내 삶을 되돌아보면 나는 이론에만 치우쳐 살았던 것 같다. 지극히 방어적이고 소극적이다. 머리로는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과연 내가 얼마나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떤 책에서 앎과 삶이라는 단어는 ?에서 반치음이 사라지면서 갈라져 나온 것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과거 조상들에게 앎과 삶은 분리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앎과 삶은 닮아야 한다. 나는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가? 앞으로 과연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 것인가?

 

 

비고츠키


세미나에 참여한 후로 사회와 교육에 대한 나의 생각에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그러면서 교육 내용, 방법 등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방향을 제시하고 촉진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 비고츠키일 것이다.

 

교육사상사 중 피아제와 듀이를 다시 살펴보면서 나도 알지 못한 사이에 내가 얼마나 구성주의와 경험주의에 젖어 있었는가 깨달았다. 나는 철저하게 피아제와 듀이의 이론에 근거하여 아이들을 가르쳐왔다.(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러던 와중에 몇 년 전 비고츠키의 협력의 개념과 방법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아주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비고츠키에 대한 깊은 공부도 없이 아주 단순하게 협력이라는 방식만 넙죽 따와 구성주의적인 교실 상황에 적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협력을 통해 교실 내 학급살이와 배움의 과정에서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협력의 가치를 깨달았지만 이 상황이 굉장히 아이러니하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쉽지는 않겠지만 교실에서 진정한 협력의 실천을 위해서는 내가 구성주의에서 문화역사적 이론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해야 한다.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이 사회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데 과연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고민 끝에 나는 잠정적으로, 바람직한 사회 질서를 세우기 위해 주변과 연대하여 싸울 수 있는 사람을 기르고 또, 내가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나의 결론은 비고츠키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비고츠키가 자유의지를 지닌 문화역사적 주체를 형성하는데 교육의 기본 목표를 둔 것이 그렇다. 문화역사적인 바탕 속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바람직한 사회 질서를 세우기 위해 연대하여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이번 세미나는 비고츠키를 공부할 준비하기였다. 앞으로 비고츠키를 깊이 공부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고 살짝 맛보는 자리였다. 그래서 이 세미나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이론가는 비고츠키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글 속에 더 많이, 길게 담을 수가 없었다.

 

그러한 와중에 이 세미나를 통해 얻은 한 가지 중요한 비고츠키 관련 수확은 내가 추구하는 인간상과 비고츠키 인간상의 접점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제 비로소 진정한 비고츠키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가 구성주의에서 문화역사적 이론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비고츠키의 이론에 대해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고츠키 이론의 원조인 마르크스, 변증법적 유물론 등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갈 길이 너무 멀다. 하지만 조급하거나 무리하면 아예 그 길을 걷지도 못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큰 기대나 목표 없이 그냥 천천히 털레털레 길을 걸어보려 한다.

 

글을 마치며...

 

귀한 배움의 자리를 마련해주신 진보교육연구소에 감사 말씀을 전하고 싶다. 사실, 나에게는 단순한 공부에서 더 나아가 비관에서 조금은 벗어나 긍정과 희망을 얻을 수 있었기에 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더 많은 분들이 이 배움의 자리에 함께해서 같이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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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6호_열공(93~96).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