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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5호 (2017.07.12. 발간) 

 

[권두언]

쿠르드족과 한국 민중운동

 





   인구 3천만 명이 넘는 세계 최대의 나라 없는 민족이 있다. 소아시아의 쿠르디스탄이라는 산악지역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이다. 성경에도 등장하는 유서 깊은 민족이지만 수천 년 간 자신들의 나라를 가져 본 적이 없다. 목축을 하면서 부족 단위로 고립되어 생활하거나 페르시아, 아랍, 투르크 등 중동 지역을 차지했던 여러 나라들의 지배를 번갈아 받아왔다. 그러면서 독립 국가의 꿈을 키워왔다. 결국 1차 대전 때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약속 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독립은커녕 강대국들의 이해타산으로 지금의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으로 갈갈이 찢겨 버리고 말았다. 그 후 쿠르드족을 분할 통치하는 나라들은 자국 내 쿠르드족을 억압하면서 인근 국가의 쿠르드족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다. 걸프전 때는 미국을 도왔으나 전쟁이 끝난 후 마찬가지로 배신당한다. 이처럼 쿠르드족은 이해 당사국들의 달콤한 약속을 믿고 그들을 위해 함께 싸웠다가 쓰라린 배신을 당해 온 참담한 역사를 갖고 있다. 지금도 독립 국가 건설을 향한 희망을 가지고 시리아, 이라크 지역에서 IS와의 전투에서 가장 열심히 싸우고 있다. 이번에는 그들의 꿈이 이루어질까?

 

   쿠르드족과 한국 민중운동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왠지 동병상련의 연민이 든다. 쿠르드족이 외세에 당해 온 배신의 역사를 한국 민중운동이 당해 온 배신의 역사와 비교한다면 너무 과한 것일까? 앞서서 열심히 싸웠으나 나중에 너무 쉽게 배반당한 것은 똑 같다는 생각이다. 감언이설로 진격을 멈추게 한 다음 외세의 힘을 빌어서까지 동학 운동을 압살했던 조선왕조가 그러했고, 개량과 친일로 돌아섰던 3.1 독립 운동의 지도자들이 그러했고, 해방군으로 열렬히 환영받았던 미군정이 그러했고, 이승만이 그러했고, 그 뒤의 위정 세력들이 다 그러했다.

 

   오래된 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최근의 한국 현대사에서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자유주의세력의 배신은 아직도 아프다. 87년에는 민주정부 수립의 열망을 배신하였고, 기어이 수립된 자유주의 정부는 민주주의 실현에 대한 약속을 배신하였다. 김대중 정부는 IMF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속절없이 받아들였고, 노무현 정부는 아예 신자유주의 정부임을 자처하면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신자유주의 적폐를 양산하고 비정규직 시대를 활짝 연 주범이 바로 자유주의 정부들이었다. 쿠르드족이나 한국 민중운동이나 아쉬울 땐 활용하고 볼일이 끝나면 참 배신하기 쉬운대상이었던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김대중 정부는 그래도 처음이었고, JP라는 수구세력과의 연합정부였고, IMF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라도 있지만 노무현 정부의 배신은 사실 핑계거리도 없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노무현 정부 시절 민중운동이 허약한 민주정부의 발목을 잡았다고 잘못 기억한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은 노무현 정부가 민중운동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고 뒤통수를 쳤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정권을 잡자마자 삼성과 미국에 굴복하고 귀족노조’, ‘초심론운운하면서 민주노총, 전교조 등 민중운동을 비난하였다.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기반이 약해서라고 생각한 한국 민중은 탄핵 철회를 이끌어냈고 과반수 의석을 몰아주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임기 동안 그 어떤 유의미한 민주적, 민중적 권리 실현을 이루지 않았다. 몰아준 과반의석으로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에 매진했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노무현은 나중에 회고록에서 대세로 잘못 알고 신자유주의를 수용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고백하기도 하였다. 잘못된 인식이 문제였던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이 땅의 민중과 민중운동을 어디 갈 곳 없는 집토끼로, 정치적으로 하찮게 여겼기 때문이다. 아무리 구애를 해도 결코 오지 않을 수구세력의 10분의 1만큼도 중시하지 않았다. 민중운동은 수구세력과의 대결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새 정부의 탄생에 기여했지만 너무 쉽게 배신당했다.

 

   10년 만에 다시 자유주의 정권이 수립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제2의 노무현 정부가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자유주의세력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 때와는 역사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제 신자유주의 헤게모니는 상실되었으며 무엇보다 촛불항쟁을 계기로 수립된 정권이다. 그래서 적폐청산과 민중생존권과 민주적 권리 실현의 정책 방향은 당연하며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합법화, 최저임금 1만원 실현등에 벌써부터 수구세력의 눈치를 본다. 눈치를 보아야 할 세력은 수구세력이 아니라 이 땅의 노동자, 민중과 민주노총, 전교조 등 민중운동 세력이다. ‘1년만 기다려 달라는 그들의 말은 정당하지 않다. 당장 생존권이 문제인 사람들에게 1년은 미룰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이다. 약속한 것을 실현하기 위한 실무적, 행정적 준비를 위한 시간을 달라하면 조금은 수긍할 수도 있다. 그러나 1년 뒤도 여소야대 등의 조건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의 1년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1년이 아니라 일단 뒤로 미루고 보자는 1년이다. 아마도 그들 중 일부는 민중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지방선거에 오히려 불리하다고 계산하는 모양이다. 민중의 요구를 그런 식으로 계산하는 것도 문제지만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귀결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것은 틀린 계산이다. 6.30 사회적 총파업은 일부 자유주의 세력의 염려나 비난과 달리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 개혁을 추진하고자 한다면 민중 투쟁은 오히려 도움이 되고 힘이 된다.

   쿠르드족이 당해 온 배신, 한국 민중운동이 당해 온 배신의 근본 요인은 그 만큼의 독자적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촛불 항쟁 이후의 새로운 조건에서 민중운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최소한 지금까지 당해 왔던 배신을 당하지 않을 만큼의 정치적 힘, 나아가 민중의 권리를 전면적으로 실현할 만큼의 정치적 힘을 마련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번 회보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에 대한 분석과 대응방향,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논란 및 향후 담론투쟁 지형을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적 견인의 관점에서 다루어 보았다. 그리고 수학교육의 의미와 목적을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 제기하는 글도 제출해 보았다. 일제고사 폐지를 맞이하여 그동안 싸워왔던 일제고사 해직교사와 학부모회 활동가의 글을 실었다. ‘담론과 문화’, ‘현장에서는 여러 훌륭한 기고로 이번 호에도 풍성하게 구성되었다. 진보교육운동의 전망을 열어 나가는 진보교육에 더욱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대한다





진보교육 65호_권두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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