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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기획] 3. 수학교육의 재구성

2017.07.18 14:55

진보교육 조회 수:531

[진보교육] 65호 (2017.07.12. 발간)


[기획]

3. 수학교육의 재구성

 

붉은 돼지(중학교 수학선생)

 

 




1. 애물단지

 

   무학년학점제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개편한다는 이야기가 한창인 지금, 근거로 유독 많이 거론되는 교과가 수학이다. 고등학교 교사인 이기정은 무학년 학점제로 전환해야 하는 불가피한 근거로 수학을 콕 집었다.

 

작년(2011)에 저는 서울의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했습니다. ...사실 저희 반 학생들 상당수는 이미 오래 전에 수학 공부를 포기했습니다. 학생에게 전적인 선택권이 주어졌다면 저희 반 학생들 상당수는 3학년이 될 때 수학을 단 한 시간도 수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2학년이 될 때도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학교의 교육과정에 따라 할 수 없이 높은 단계의 수학수업을 이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대부분 엎드려 잘 수밖에 없었습니다. 열심히 들어보았자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거의 없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학생이 선택의 자율성을 갖는 것입니다. 현재의 내신제도에서 학교에게만 자율성을 주면 국··수 시간이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수의 학생을 위해 다수 학생을 들러리 노릇 시키는 짓이라고 비판해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학교는 상위권 학생 위주로 교육과정을 편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무학년 학점제를 도입하게 되면 상위권 대학을 지향한 소수 학생을 위해 다수 학생이 들러리 노릇하는 현상은 현저히 줄어들 것입니다.

무학년 학점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소수의 학생이 손해를 보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동안 엉망인 수업분위기에서 그 소수의 학생도 사실은 희생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아예 공부를 포기하고 떠들거나 잠자는 학생이 절반 넘게 존재하는 상황에서 소수의 학생들은 또 얼마나 제대로 된 수업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자신의 학습단계에 맞는 수업을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면 수업시간에 떠들고 잠자는 학생들은 현저히 줄어들 것입니다. 교사들이 잠자는 학생을 그대로 두는 일도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사실 지금의 교실에서는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잠자는 학생을 깨우기가 참으로 곤란합니다. 깨우지 않는 것이 합리적일 때가 많습니다. 자는 학생을 깨워봤자 어차피 수업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오히려 장난치고 떠들겠지요. 어차피 교사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은 학생들이 깨어나 떠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잠을 자주는 것이 수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 물론 이것은 수학시간에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영어시간에도 국어시간에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수업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아이들이 잠을 자는 경우가 수학시간에 제일 많을 뿐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학교의 보편적 현상입니다.

 

   수학을 공공의 적 취급하는 이야기를 접하면 수학교사인 나는 괜히 울컥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수학교육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그냥 넘길 수도 없다. 사실 남일 같지 않다. 일반계 고등학교 수학선생님 입장에선 반 이상이 수포자고 엎드려 자거나 떠드는데 차라리 듣고 싶은 애들만 모아 수업하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굴뚝같을 법도 하다. 특목고, 자사고, 고교선택제로 고등학교 서열화가 진전되면서 공립일반계 고등학교의 수학 수업은 더욱더 난관에 봉착하였다. 실업계와 인문계로 구분하던 과거에는 이른바 공부 못 하는 아이들이 실업계로 빠져서 인문계 고등학교 수학 수업이 지금만큼 힘들지 않았다. 공부 못하고 출결 안 좋은 하위권 학생들이 특성화고에 진학하지 못해 일반계고로 어쩔 수 없이 진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못 알아듣는 수업시간을 가만히 버티고 있지 못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완전취학에 가까울 정도로 고등학교에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일반계고 수학 수업의 조건 이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이런 조건에도 수학 교육과정은 어렵고 양이 많으며 수능시험은 더 어렵다. 수학 선생이 풀지 못할 문제까지 출제된다.

   중학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 수준이 제각각인 아이들이 한 교실에 모여 있다 보니 수업이 힘들다고 토로하곤 한다. 잘 하는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수업이 의미가 없고 못 하는 아이들은 가르쳐도 모르기 때문에 수업이 소용이 없다. 그래서 흔히 중간 수준에 맞추어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 중간이 어디인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 중위권의 성적을 가진 아이들? 중간에 맞춘다 해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상위권과 하위권을 버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못하는 애들 붙들고 있자니 진도가 급하다. 반복해서 설명하고 가르칠라 해도 아이들이 가만히 있어주면 고마운데 수업을 방해하고 엎드리고 딴 짓 하니 골이 아플 밖에. 그래도 교사들은 꾸역꾸역 교과서를 따라 진도를 나간다. 다루어야 할 양은 항상 많고 교과서 내용은 무조건 가르쳐야 하며 정기고사 범위에서 빼서는 안 된다는 강박 때문이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7차 교육과정을 기점으로 수학은 당연히 수준별 수업을 해야 하는 과목이 되어 버렸다. 국가교육과정에서 그렇게 못을 박아 버렸다. 7차 도입 초기에는 수준별(성적 순)로 반을 편성해서 이동수업을 하는 것이 강제사항이었다. 당시엔 보통 3개 반을 묶어 상, , 하 세 수준으로 나누어 수학시간만 되면 같은 반 친구들이 헤어져 다른 교실, 다른 반 아이, 다른 선생과 수업을 했다. 19981학년 하반 아이들에게 함수단원을 가르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수업에서의 실패와 좌절은 이후에도 수도 없이 많이 겪었지만 그 때 일이 또렷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정상적인 수업진행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프는커녕 좌표평면에 점조차 찍지 못하는, 일일이 개별지도가 필요한 아이들 40명이 모여 있는 상태에서 수업을 하려니 에어컨도 없던 시절 땀은 줄줄 흐르고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이런 학습 집단 구성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가르칠 수가 없었고 아이들도 당연히 제대로 배웠을 리가 없다. 몇 학교를 거쳐 2015년 새로 가게 된 학교는 교과교실제 운영학교였다. 전 학년이 수학 수준별 이동수업을 했다. 교과 내 사정으로 수업 배분을 하다 보니 3학년 하반을 두 개 맡게 되었는데, 10명 정도의 아이들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수학 교사로서 추구하던 모든 것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너희만 포기하냐? 나도 포기한다!’ 입 밖으로 한 마디도 그런 말을 뱉지는 않았지만 20년을 넘게 수학을 가르쳤지만 너무나 힘이 들었다. 억지로 끌고 가보려고 했지만 걸핏하면 지각하고 공부 좀 할라치면 팔에 깁스하고 나타나고 화장 때문에 생지부 선생님과 갈등 겪다가 수학 시간에 울고... 어떤 아이는 멘탈이 비정상이고.. 생활 자체가 불안정한 아이들만 모여 있는 그 교실에서 수학교사로서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수준별 이동수업도 어지럽게 얽힌 수학교육의 매듭을 푸는 답이 아님은 상당 기간의 고통을 통해 입증되었다. , , 하로 나눌 경우 상반은 수업이 확실히 편하지만 사교육을 통해 이미 선행이 된 아이들은 학교수업을 무시한다. 상반에 이런 아이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그 내에서도 수준 차는 있다. 심화과정을 하자니 다 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교과서대로 하자니 애들이 까분다. 중반은 가장 편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애매하다. 소극적인 학습자들이 많다. 성적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간. 수업을 하다보면 속이 터진다. 대답도 잘 안하고 자신감 없이 축 쳐져 있다. 하반은 말할 필요도 없다. 수학만 못하는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리적, 행동적 문제를 가진 아이들이 많다. 희한하게도 이런 아이들끼리 모여 있으면 평소 교실에서 하지 않던 행동까지 한다. 선생이 바로 앞에 있어도 느닷없이 싸우고 울고... 초등학생 같다. 그나마 수준별 수업에 대한 지침이 점차 융통성이 생겨서 여러 형태 중 선택하여 하는 것이 가능하다. 강사비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이동수업을 하더라도 하위그룹만 소수로 편성하거나 2개 반을 묶어서 3개 반으로 나누어 학습 집단 규모를 줄인다. 지난 학교에서는 강사비가 지원되지 않는다는 소식에 수학교과 협의회를 통해 이동수업을 아예 하지 않았다. 아무 문제없었다. 수준별 이동수업을 하지 않으니 일도 많이 줄었다. 학급당 학생 수가 30명 안팎으로 줄었다는 것도 큰 몫을 했다. 학습 집단의 규모가 수업을 좌우하는 중대한 요소라는 뜻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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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학에 대한 인식

 

수학은 괴로워

   수학이라는 과목에 대한 인상과 견해들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학교를 다녔다면 누구나 수학을 배웠을 터이고 시수도 많은 과목 중 하나라 꽤 많은 시간을 수학과 함께 보냈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누구나 수학에 대한 학교교육의 경험을 통해 나름의 견해를 가지게 된다. 보통은 부정적이다. 부모가 되어서는 자녀의 수학성적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인생의 상당 시간을 수학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이 한국사회에 우글우글한 셈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은 수학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한다. 중간고사를 보고 스승에 날에 찾아와서는 수학 너무 어려워요. 포기하려구요라고 하고 간다.

   일반고 과학중점학급에 간 아이는 고등학교 시험문제가 너무 어렵다며 중학교에서도 시험문제를 어렵게 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고등학교에서 너무 입시 위주로 하는 것에 불만은 있었지만 현실은 현실. 고등학교에 적응하려면 어려운 시험을 중학교 때부터 접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르치고 있는 중3 아이는 중간고사가 끝나고 학원 선생님이 인근 학교 시험문제들을 비교하면서 우리 학교 시험을 가장 쉽다고 했다면서 쉬운 시험문제 때문에 깔보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한다고 했다.

   ‘학교 시험은 쉬워야 한다는 지론을 그 아이들 앞에서 펼쳤지만 쉬운 시험을 아이들은 반기면서도 내심 불안해 한다는 걸 확인했다. 쉬운 시험으로 점수가 잘 나와 수학 잘 하는 줄 착각했다가 고등학교 가서 경쟁력 떨어질까 두려운 것이다. 어려운 문제에 적응된 아이들하고 경쟁하는 게 벌써부터 걱정인 모양이다. 그런데 시험이 어려우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될까? 극소수의 학습자들은 그럴 지도 모르지만 수학을 포기할 틈을 엿보고 있는 다수의 학습자들은 수학을 포기할 핑계를 찾게 될 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괴로워하는 것은 수학 그 자체보다는 수학 시험인 것 같았다.

 

한 번 놓치면 따라잡기 힘든 과목이다

   수학은 단계적 성격이 강하다. 덧셈 다음에 뺄셈, 곱셈 다음에 나눗셈, 곱셈공식 다음에 인수분해, 일차식 다음에 이차식 등등.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중학교 때의 기본 계산 기능들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등장을 한다. 그래서 앞의 과정을 놓치면 뒤의 과정을 따라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다른 교과목에 비해 수학은 앞을 모르면 뒤를 하기가 유독 힘들다. 성취도가 낮은 학습자, 느린 학습자는 거의 모든 과목을 잘 못하지만 수학은 아예 손을 놓게 되기 쉽다. 그 중에서도 초4, 1, 1은 수학을 많이 포기하는 학생이 급증하는 시기로 이야기된다.

왜 수학 학습 부진아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다른 과목도 못할 것이 분명한데 유독 수학 수업이 힘든 이유가 무엇일까. 재미가 없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재미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수학만큼은 신경 써서 챙기려고 한다. 수학성적에 민감하다. 국어는 망쳐도 별로 혼나지 않지만 수학 망치면 혼난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은 종종 한다. 물론 선행학습, 조기학습은 챙길 여력이 있는 부모에 한해서다. 뒤처지지 않는 것을 넘어 남들보다 잘 하려면 조기학습, 선행학습은 불가피하다고 여긴다. 미리미리, 남보다 앞서 공부해야 학교 시험에서 실패하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 대학 입시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것이 상식처럼 통용된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선행학습, 조기학습을 많이 하는 추세지만 수포자는 늘어난다고 아우성이고 고등학교 수학교사들은 인수분해조차 모르는 아이들을 놓고 난감해한다. 세간의 인식처럼 앞서서 미리 미리 하는 것이 과연 수학 학습에 효과적인 것일까?

 

학교 수업만으로는 안 되는 과목이다

   매우 성실한 학습자인 한 중2아이는 연립방정식 활용 서술형 문제 형성평가 점수가 기대에 못 미치자 곧바로 학원 가야겠어요라고 말했다. 10문제 중 8문제는 교과서에 있는 문제였고 이미 풀었던 것들이었다. 나머지 2문제가 문제였던 것이다.

   수학은 사교육을 많이 하는 과목이다. 수학, 영어는 사교육비 투자 우선 대상이다. 기술이나 사회 성적 떨어졌다고 당장 학원으로 달려가지는 않는다. 수학은 다르게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들도 학원 다니는 덕에 그나마 수학 성적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학교 수업만으로 안되는 게 사실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어떤 조치든 취해야 옳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조치는 본질을 외면하고 미봉책만 가득했다. 방과 후 학교, 부진아 지도, 수준별 이동수업 등이 이런 일들 때문에 나온 조치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사교육비 상승은 수능과 같은 고난이도 변별용 시험 때문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수능이 폐지되지 않으면 수학 교육이 정상화될 수가 없다. 수능이 폐지되어도 대학이 서열 체제라면 다른 변별 장치를 필요로 할 테니 수능폐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저는 수학머리가 없나 봐요

   시험이라는 도구로, 성적이라는 잣대로 아이들의 수학적 능력을 실제보다 대체로 저평가한다. 지금의 수학시험은 학습자들을 능력별로 변별하라는 요구에 휘둘리고 있다. 변별력을 중시하면서도 A, B, C, D, E로 등급을 나누어 저성취자가 많이 나오면 문제를 삼는다. 방법은 간단하다. 문제를 매우 쉽게 내면 된다. 그런데 100점이 많이 나와도 문제를 삼는다. 이렇게 쉬워서 되겠냐고. 학교 시험도 수능처럼 상위 1%를 가려내는 표준화 시험이 되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이런 시험에서는 절대 다수가 실패자가 된다. 그런데 교육과정까지 왜곡하는 어려운 시험이 원인인데도 가 문제의 원인으로 탈바꿈한다. ‘나는 수학머리가 없나봐...’

   대부분의 부모들은 성적 말고는 자녀의 수학적 능력에 대한 정보가 없고 실질적으로 파악할 도리가 없다. 수학 교사도 마찬가지다. 왜 이 아이가 수학을 못 하는 지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 하나하나 들여다볼 틈이 없다. 아이들도 대체로는 자신의 수학적 능력을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고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인다.

   수학은 어려운 학문이 맞다. 지금 논의하는 대상은 전문가들의 수학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누구나 배워야 하는 학교수학이다. 수학하는 머리가 따로 있는 것이고 그 아이들만 학교수학교육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학교에서 모든 아이들에게 가르칠 이유가 없다. 수학머리를 선천적으로 타고난 아이들만 가려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수학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학교 교과목이었으며 세계 모든 나라의 학교에서 수학은 전 학년에 걸쳐 배우게 하고 있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헤치는 것은 수학인가, 시험인가?

 


3. 교과서와 시험

 

   수학교과서는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활동과제가 모두 문제풀기이다. 다른 과목 교과서는 이렇게 문제가 많지 않다. 수학교과서는 소단원별로 주요 개념이 먼저 나온다. 물론 탐구하기 등으로 간단한 문제 상황과 활동과제가 나오고 곧바로 용어의 정의로 넘어간다. 뒤따라서 예제, 문제, 예제, 문제의 순서로 여러 유형의 문제들이 이어진다. 개념 설명은 매우 적고 문제는 그에 비해 너무나 많다. 개념 설명도 설명이라기보다는 정의된 개념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에 가깝다. 매우 간단하다. 이를 테면 3학년 첫 단원에서 제곱근(루트)이 등장한다. 간단하게 사전적으로 제곱근은 무엇이라는 정의가 등장하자마자 이와 관련된 문제가 주루룩 나온다. 제곱근의 성질이 뒤를 잇고 다시 문제가 주루룩 나온다. 중간 중간에 박스도 있다. 내용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다른 단원도 마찬가지다. 특히 1학년 함수 단원은 그 정도가 심해서 마치 용어 사전을 보는 느낌이다. 당연히 아이들에겐 어렵고 가르치기도 지친다. 허탈한 것은 수많은 용어가 등장했고 사용하면서 문제를 풀었지만 2학년이 되어서도 좌표가 뭐예요?’라고 묻는 아이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묻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교과서 자유발행제가 되면서 출판사마다 욕심을 부리는 것인지 나라에서 시킨 것인지 문제수도 많고 예제, 문제 외에 단원 마무리 부분에는 새로운 설명을 필요로 하는 심화문제들까지 다채로운 꼭지명을 달고 등장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창의력, 의사소통을 강조하여서인지 의사소통, 창의력, 생각활동 등의 이름을 단 문제들이 소단원마다 등장한다.

   수학교과서의 양과 내용은 과거에 비해 감소되었다. 중학교 수학의 경우 2009개정 교육과정(말로는 학습량 20프로 감축이라는데...)부터 1학년의 집합, 2학년의 근삿값 단원이 통째로 없어졌고, 도형에서는 증명 부분이 약화되었다. 증명이라는 용어를 설명이라는 말로 대체했고, 정의, 정리 등의 용어는 아예 빠졌다. 정리라는 용어가 교과서에서 사라지다 보니 3학년 2학기 첫 단원인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피타고라스 정리라고 자를 빼는 사태가 벌어졌다. 고유명사처럼 했다는 것인데... 무엇을 뺄지 고민하다가 용어 몇 개 빼고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뺄 수는 없으니 이상한 작명법이 생겨버렸다. 3학년 말의 원 단원에서는 원과 비례가 삭제되었다. 닮음을 이용해야 하는 비교적 어려운 내용이었는데 학년말 부담이 확실히 줄었다. 삼각비도 앞부분으로 가서 마지막에 흐지부지될 일은 없어졌고. 성에 차지는 않지만 개선은 개선이다.

   양과 난이도 적정화는 예전부터 기다려왔기에 환영 입장이었고 수업 부담이 약간이나마 줄어들어 좋았지만 막상 집합이 없고 근삿값이 없고 증명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진 교과서를 보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왜냐하면 개념은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09개정 교육과정으로 양이 조금 줄었다 해서 수업이 눈에 띄게 원활해진 것은 아니다. 진도에 약간 여유가 생기기는 했지만 아이들의 학습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 학습부담의 근본적 원인은 시험에 있기 때문이다. 익힘책까지 있던 7.5차 교육과정보다는 한결 낫지만 학습 부담은 의미 있게 줄었다고 볼 수 없다. 시험문제의 난이도가 상승하면 내용을 줄여도 학습부담은 줄어들지 않는다. 학생들이 겪는 수학공부의 고충은 내용 이해보다는 문제풀이에 있기 때문이다.

   수능에는 수학교사도 풀지 못하는 문제가 출제되기도 한다. 나는 수능문제 풀어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교직 초반에는 좀 들여다봤는데, 첫 장 빼고는 풀기는커녕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수학교사도 풀지 못할 문제를 국가기관이 시험에 출제한다는 사실이 어불성설이다.

   문제 풀이 위주의 수업을 할 수 밖에 없게 구성된 교과서는 개념 습득을 방해한다. 개념들은 그에 맞는 활동을 해야 이해할 수 있고 익힐 수 있지만 개념 정의 확인하고 읽어보고 문제 풀고 끝난다.

   문제풀이는 중요한 활동이지만 모든 단원과 모든 학년에서 문제를 푸는 활동을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는 것은 곤란하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여러 가지 고차적 정신 기능들이 숙달될 수는 있겠지만 12년 동안 내용과 난이도만 달라질 뿐 계속 반복되는 문제 풀이 위주의 수업은 제한적으로만 수학적 기능을 숙달하게 될 뿐이다. 다 잘 따라오면 괜찮은데 문제 풀이 과정에서 많은 아이들이 낙오를 한다. ‘수학 극혐!’ 하는 아이들도 생긴다.

   수학교과서는 <수학의 정석>처럼 내용 약간 문제 엄청 많이로 구성해야만 하는가? 수학교육을 정상화하려면 교과서의 개념설명과 문제가 차지하는 비율부터 뒤집어야 한다.

 


4. 수학교육의 재구성

 

   앞서 지적한 대로 수학 그 자체보다 문제 위주로 구성된 교과서로 진도를 나가고 수업보다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좌절을 맛보며 사교육기관의 문을 두드린다. 사교육에 지치고 선행학습으로 교과서 문제는 시시한 아이들과 학습결손이 심한 느린 학습자가 공존하는 교실에서 교사는 고민에 빠진다. 분명한 것은 수능과 문제풀이 위주의 교육과정이 수학교육을 망치고 있는 주범이다. 변별력을 필요로 하는 대학서열체제가 원흉이다. 수학은 죄가 없다!

   수학은 문제 풀이 스킬을 위한 과목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개념의 획득이다. 연령과 발달에 맞는 수학 활동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인식을 넓혀가도록 도와야 한다. 무엇보다도, 인간세상은 이미 수치로 가득하다. 정신없이 문제풀이만 하다 보면 남는 게 없다. 남는 건 언제나 개념이다. 그리고 관찰하기, 도형 그리기, 문장을 식으로 바꾸기,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양을 비교하기, 수학적 기호를 읽기, 표로 나타내기, 계산하기 등의 외적 활동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내면으로 파고들어가 고차적 행동체계와 심리체계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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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적 개념을 일상적인 개념들과의 연관 속에서 파악하도록 교과서와 교과활동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수학은 인류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형식논리성과 추상성이 유난히 강할 뿐, 실재와의 관계 속에서 수학 개념들은 존재하며 나아가 수학적 개념들은 서로 연관된 체계를 이루고 있다. 더하고 빼고 나누고 곱하는 일상의 흔한 활동은 수학 교수-학습을 통해 체계적으로 개념으로서 다루어지고 비로소 일상의 개념들은 어린이 청소년의 의식적 파악의 대상이 된다. 거꾸로 수학교과를 통해 습득한 개념은 구체적 대상들을 추상화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거리, 크기, 넓이, 추위, 더위, 길이, 대략, ~까지, 이상, 이하, 미만, 초과 등 일상에서 흔히 쓰는 낱말들은 수와 수학적 기호들을 통해 양적 표현과 인식이 가능해지며 수와 수학적 기호를 통해 구체적 대상물이 없어도 상황을 표현하고 생각할 수 있으며 점, , , , 삼각형, 사각형 등의 도형은 사물을 추상화하여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초중등 수학교육을 통해 기르고자 하는 수학적 능력은 수학자의 그것이 아니다. 특별한 것일 이유도 필요도 없다. 수학은 이라는 범주를 대상으로 하는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서 수학적 능력은 인간 보편의 능력이기도 하다. 구체적 수 세기에서 시작되는 어린이의 수학 활동은 산술적 사고를 거쳐 청소년기에 대수적 사고의 문 앞에 서게 된다. 현재의 문제풀이 위주의 수학교육과 고난이도 시험은 수학자를 기르지도 못하면서 다수의 자존감을 좀먹을 할 뿐이다.

   한 교실 안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놓고 보면 수학적 능력에 엄청난 개인차가 있는 듯이 보인다. 어떤 아이는 수학에 관한 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보이지만, 그 아이의 과거에 견주어 보자. 아이는 물건을 한 개 씩 세지 않고 덩어리로 모아서 셀 수 있으며 구체적 사물이 눈앞에 없어도 크고 작음을 따질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수학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수한 중1학습자는 입체도형을 평면에 그리는 것을 어려워하지만 평범한 중3 학습자는 비교적 능숙하게 그것을 한다. 문제 위주의 수업과 평가는 아이들의 수학적 능력을 저평가하게 만든다. 비고츠키는 자유의지를 자기행동과 생각을 스스로 통제하는 인간 보편의 심리기능으로 다루었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자유의지 역시 다른 정신기능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관계를 토대로 발달한다. 비고츠키는 철학적, 사변적 논의로 치우쳐 신비화된 자유의지를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 덕에 자유의지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하는 인간의 보편적 심리기능으로 재정립되었다. 수학적 생각과 기능 역시 어린이 청소년의 성장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고 이를 숙달한다. ‘타고난 능력에 좌우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비과학적 신비화이다. 수학적 기능은 타고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터득되지도 않는다. 체계적인 교수-학습을 통해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여러 단계를 거치며 발달한다.

 

   수학은 인간고유의 고차적 심리기능 형성에 기여를 할 수 있는 교과이다. 비고츠키는 수 개념을 교육받은 사람이 대체로 가질 수 있는 양에 대한 관념이라고 했다. 수 개념을 통해 비로소 양에 대한 구체적인 지각의 한계로부터 인간은 해방될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수 개념을 통해 엄청나게 작은 것도 엄청나게 큰 것도 상상할 수 있으며 표현도 할 수 있다. 아주 먼 과거도 아주 먼 미래도 가늠해볼 수 있다. 구체적 사물이 없어도 여러 가지 양을 자유롭게 다루고 계산하고 비교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언어체계 속에서는 구할 수 없는 미지수를 수학적 기호를 활용하여 쉽게 구할 수도 있으며 거리, 속도, 길이, 넓이, 부피 등 범주 간의 관계를 수식으로 나타내어 일반화할 수도 있다.

 

구체적, 시각적 사고와 비교해서 개념적 사고가 실재(현실, reality)를 인식함에 있어서 가져오는 새로운 요소material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는 ''에 대한 개념적 인식과 지각의 차이에서 가져올 수 있다.

'수 개념'은 교육받은 사람이 대체로 가질 수 있는 양에 대한 관념이며 직접적 지각에 기초한 수 이미지는 원시부족에 널리 퍼진 양에 대한 관념이다. 아주 어린 아동은 이미지에 기초하여 수를 지각한다. 주어진 대상들이 이루는 무리의 형태와 크기 등 구체적 지각에 기초한 수에 대한 관념으로서 이는 개념이 아닌 '이미지'이다.

개념적 사고로의 이행과 함께 수 개념이 등장하면서 어린이는 순수한 구체적인 수적 사고에서 해방된다. 이미지로서의 수를 이제 수 개념이 대체한다. 수 개념과 수에 대한 이미지를 비교하면, 얼핏 보기에 심상 속에 포함된 구체적 내용의 풍부함에 비해 개념이 담는 내용에서의 상대적으로 극도의 빈곤함이라는 형식 논리의 전제를 정당화하는 듯 보인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개념은 구체적 지각에 적합한 점들을 배제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 지각이나 그저 눈여겨보는 것으로 완전하게 접근할 수 없는 수의 측면들을 인식할 가능성을 열어 준다.

예컨대, "7"이라는 개념은 복잡한 수 체계 속에 포함되며 체계 속에서 그것의 특정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리고 이 개념이 발견되고 처리될 때, 이 개념과 개념 체계의 나머지 간에 존재하는 복잡한 연결과 관계가 존재하게 된다. "개념은 실재(현실)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체계화한다." 구체적으로 지각된 자료들은 연결과 관계로 이루어진 복잡한 체계 속에 포함되며, 그 연결과 관계는 단순한 이해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수의 여러 속성들은 그것을 개념으로서 생각하기 시작할 때만이 명료해지며 (새로운 차원의) 지각이 가능해진다. 개념적 사고에서는 (양의 표상인) 수의 질적 특성을 밝힐 수 있다. 93의 제곱이며, 93으로 나누어진다. 이처럼 (개념으로서의) "9"(수 체계 속에서) 자신의 명확한 위치를 점유하며, 다른 수와의 명확한 관계 속에서 위치한다. 나누어짐, 다른 수들과의 관계, 더 단순한 수들로부터 구성되는 등등의 이 모든 것들은 수 개념을 통해서 만이 드러난다. 이처럼 개념으로서의 수는 수에 대한 풍부한 이해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비고츠키 영문판 선집 52, ‘청소년기 개념형성과 생각발달)

 

   얽혀 있는 매듭을 어떻게 풀까? 학점제는 매듭을 푸는 것이 아니라 매듭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수포자가 양산되고 엎드려 자는 애들이 절반을 넘으니 고등학교에서 수학 교과 자체를 없애라고 차라리 솔직히 말했으면 좋겠다. 포기해도, 없애도 좋은 것이라면 그러라고 하고 싶지만 그들이나 나나 그럴 수 없음을 안다.

   수학교육의 문제는 한국교육의 민낯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시험문제를 쉽게 내고 교과서의 문제들을 과감히 덜어내는 것에 불과하지만, 수학교육이 바뀐다는 것은 한국교육이 바뀐다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진보교육 65호_기획_수학교육의 재구성.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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