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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5호 (2017.07.12. 발간)


[담론과 문화]

한송의 미국생활 적응기

한송의 미국생활 적응기

 

한송_진보교육연구소 회원

 

 




<담론과 문화> 꼭지의 다른 분들의 깊은 사색과 성찰이 난무하는 글들을 읽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진보교육의 글들을 읽고 많이 배우고, 어쩌면 이 분들은 이렇게 생각의 폭이 넓고 깊을까 감탄도 많이 했던 터다. 그래서 스스로 위로한다. “그래도잠시 가볍게 쉬어가는 글들도 나쁘지 않을거라고. 나의 미국생활 적응기가 그런 쉼표의 역할을 하리라 곱씹어 보면서 2탄을 시작한다.

 


1. 미국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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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SSD Commonwealth Secondary School Diploma 졸업식장 대기실에서>

 

3월에 시작했던 GED(General Educational Development 미국 고등학교 졸업장 취득 과정)67일 마지막 과목인 수학 시험을 끝으로 마무리했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4과목 시험을 무사히 합격하고 628일 시에서 주관하는 졸업장 수여식에서 졸업가운을 걸치고, 빛나는 졸업장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어느 졸업식보다 뜨거웠고 감동적이었다. 백 명이 넘는 졸업생들이 무대 중앙을 차지하고, 졸업생들과 함께 했던 선생님들과 교육기관 관련 분들이 그 옆에 자리를 했으며, 참석한 가족들과 친구들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졸업식 축사를 맡은 분들은 졸업생들과 가족들을 번갈아 보며 나의 삶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 ‘배움으로 다시 일어선다는 의미’, ‘어려운 과정을 이겨낸 당신들이 자랑스럽다등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졸업생들과 참석자들은 큰 소리로 대답과 추임새를 넣으며 때로는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졸업생 대표 5명의 이야기 또한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웃음과 박수와 격려를 자아냈다. 한 졸업생은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선생님 한분을 무대 중앙에 불러 감사의 말과 함께 뜨거운 포옹을 나누기도 했다. 진정으로 축하하고 축하받는 자리였다.

 

수많은 한국 분들이 이곳에서 석·박사를 해내고, 그밖에 포닥(Post doctoral researcher 박사 후 연구원) 과정 등을 해내고 있는 이 와중에, 내게 누군가 물었다. 미국 고등학교 졸업장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처음에는 영어공부가 목적이었고, 그러다 시작하게 된 GED 과정. 순탄치 않았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제 성인이 되어 학업의 길로 되돌아온 미국 친구들과 수업을 함께 듣는다는 것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물론 내가 참석한 3개월의 수업기간 동안 절반의 학생들이 도중에 그만두었다. 담당 선생님은 이들이 십대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인데 안 온다고 잔소리하기도 어렵다 하시고, 수업 도중에 거친 친구들끼리 말싸움이 일어나 (영화에서 듣던 거친 영어를 마구 들음) 다들 긴장하기도 했지만, 몇몇 친구들은 아주 성실하게 참여했다.


십대에 아들을 낳고 이제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며 엄마로서 삶의 모델이 되고 싶은 Sasha, 7살에 눈앞에서 엄마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을 당한 후 30년 넘게 스스로 살아내야 했던 Sakinak, 젊었을 때는 먹고 사느라 배우지 못하고 예순이 다 되어서야 배움의 욕구를 충족 중인 Cynthia,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기본급이 너무 낮아 손님들이 주는 팁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멕시코 출신의 Miguel, 캄보디아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고 이 역시 10대에 출산한 Savoun 등 이들에게 고등학교 졸업장은 무척이나 의미가 있고 그 만큼, 그들은 갈망했다. 이들에게 나는 (이미 수차례 영어 공부하느라 수업을 듣는다고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타국에서 대학까지 마친 사람이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시 미국 고등학교 과정을 들어야 하는 매우 불공정한 처지에 있는 사회적 약자였다.


그러다 이제 나도 그들과 함께 졸업장을 진짜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들 사이에서 난 그저 영어 공부하는 중이야 라는 한가한 소리를 하기가 더 이상 미안해졌고, 그들과 같은 길을 함께 걷는 동무이고도 싶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GED 시험에 도움이 되는 책을 서로 공유하고, 집에서 공부하다가도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사진을 찍어서 묻고 답하며 알아가고, 그러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사사로운 주말을 보냈던 이야기도 하며, 짧지만 돈독한 동지애를 나눴다. 시험날짜는 개인별로 자기 상황에 맞춰 신청하여 보는 관계로 다 시험날짜도 다르고 과목도 다르지만, 실제로 시험을 보러가는 날이면, 어찌 그걸 또 기억하고 아침부터 격려의 문자를 보내고, 시험 후엔 축하도 해주면서 나에게도 다시 돌아온 고등학교 생활이었다. 비록 졸업은 나와 Savoun만 하게 되었으나 꾸준히 자기 길을 걷는 그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나에게 이 졸업장은 개인적인 성취를 넘어선 이 미국 친구들과 함께 이뤄낸 과정이며, 거리를 걷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들도 거쳐 왔을 이 보편적인 경험을 나도 했다는 (과도한 설정의) 공감대 형성이라고나 할까? 또한, 스스로를 포기했다 생각했던 이들이 다시 자신을 찾아가는 데 전환점이 된 이 과정을 나는 옆에서 살포시 숟가락만 얹어 함께 했다는 게 영광스럽고, 그들의 인생에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2. 미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내가 GED 수업을 받은 곳은 Center for Literacy(CFL)라는 비영리단체이다. 3GED 수업을 시작할 즈음, 그곳에서 내게 SW CDC(Southwest Community Development Corporation)에서 진행되는 ESL 수업에 보조교사로 자원봉사를 추천했고, 나는 Janice 수녀님과 함께 수업을 하게 되었다.


이 영어 수업은 작년 10월부터 Center for LiteracySW CDC 두 단체가 연계하여 진행하는 지역주민 교육 프로그램의 하나로, 주민들은 SW CDC 건물에서 CFL 영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SW CDC의 취업, 부동산, 보험, 에너지, 어린이 방과 후 활동 등 다방면에서 상담과 도움을 받는다.


SW CDC가 위치한 곳은 말(Southwest) 그대로 필리의 남서쪽에 자리한 이민자 동네이며, 오래전부터 흑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이자 현재 내가 거주하는 West Philly보다 더 열악한 지역이다. West Philly도 그렇지만, 주변 공립학교들은 10점 만점에 1점 평가를 받고(현지인들은 1점도 후하다고 함), 이들 공립학교 중 여러 학교가 사설기업이 위탁하여 운영하는 차터스쿨(Charter school)로 운영이 되고 있다. 길거리 가게 곳곳에 저소득층에게 지원되는 푸드 스탬프(EBT카드 -Electronic Benefits Transfer)를 받는다는 문구가 붙어있는 곳이다.

 

내가 참여하는 수업은 가장 낮은 단계의 ESL 수업이다. 등록된 인원은 25명 정도지만, 실제 수업에 나오는 인원은 14명 정도. 대부분이 아프리카 이민자들인데, 나이지리아, 콩고, 소말리아, 기니 등 이름이 익숙한 지역 외에도 처음 들어보는 나라에서 온 이민자 분들도 계시다. (그 나라를 모르는 게 왠지 미안해서 다시 묻기도 어려워, 아직까지 그 나라이름을 모른다는... 이 글을 쓰면서, 용기 내어 다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성장한 나라와 문화를 소개하고 함께 알아가는 건 훌륭한 일이니.) 이밖에 남미, 중동, 그리고 최근에 합류한 베트남에서 오신 중년의 부부까지 이제 더 다양한 문화적, 언어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교육기관의 수업을 난생 처음 받아 보는 분, 알파벳부터 서툰 분, 모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았으나 영어가 너무 어려우신 분, 나이지리아나 자메이카처럼 모국어가 영어인 분, 모국어가 영어지만 문자 교육이 안 되어 있는 분, 돌볼 어린 아이가 있어 띄엄띄엄 나오시는 분 등이 섞여있어, 수준차이가 많이 나고, 각자의 모국어에서 오는 억양이 뒤섞이어, 처음 내겐 이 분들의 이름을 옳게 발음하는 것부터, 이 분들의 영어를 듣고 이해하는 것이 큰일이었다.


게다가 담당교사인 Janice 수녀님은 오늘 수업할 내용을 당일 아침에 알려주시는 느긋한 성격이시라, 초반엔 내가 가지고 있는 눈치란 눈치는 총동원하여 수업보조도 하고, 그러다 가끔 수업도중에 수녀님이 내게 교재를 쓱 내미시며 이 부분은 니가 한번 해볼래?’ 혹은 수준별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을 내게 갑작스레 맡기면, 수업활동을 즉석해서 짜고, 다음 활동은 뭘 할지 동시에 계획하느라 좀 고생을 했다. 한국에서 담임을 하면서 화장실도 다녀올 틈 없이 여러 일들을 동시 처리하는 혹독한 생활 속에서 쌓은 경험이 빛이 났다고 할까. 또한 영어전담으로 원어민 교사와 수년을 함께 수업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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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르치는 ESL 수업>

 

점차 적응이 되면서 이 분들의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고, 수업하면서 미국과 각자의 나라의 문화적 차이와 언어적 차이, 사는 이야기 등이 곁들어진 수업이 계속되면서 이 학생 분들과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생활 속에서 꼭 필요한 지식을 배워야 한다는 수녀님의 철학아래, 이름을 말하는 법부터 주소와 소셜 시큐러티 넘버’(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개념), 올바른 식생활, 미국 화폐 사용을 위한 수 연산까지 두루두루 섭렵했다. 영어가 전혀 되지 않은 베트남 이민자 부부와의 의사소통이 큰 문제였던 것도, 그 분들이 중국어를 하는 중국계 베트남인 걸 알게 된 내가 학창시절 배웠던 한자와 어설픈 중국어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이후로 그 두 분은 유독 나를 반가워하신다는.


Janice 수녀님도 초등교육을 전공하신 분으로 오랫동안 이민자 교육에 헌신하신 분이다. 지금은 곧 일흔을 바라보는 연세지만, 그 분의 말씀 뒤편에 느껴지는 열정과 패기는 젊은 사람 못지않다. 몇 년 전에 찾아온 암을 극복하고 이제 건강해지셨다며, 수업자료가 가득 담긴 큼지막한 돌돌이 가방을 끌고 6km를 걸어서 다니신다. 또 수년전 한국에서 온 수녀님과도 5년을 함께 사셨다며, 그 한국 수녀님이 여기서 석사과정을 하시는 동안 도와줬던 이야기며, 그 분의 졸업을 축하하는 깜짝 파티를 기획하여 열어줬다는 이야기, 내가 한국을 가면 꼭 그 한국 수녀님을 만나서 안부를 전해달라는 참 유쾌하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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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인 Janice 수녀님>

 

CFL은 필라델피아 시와 민간기업의 후원을 받아 운영되는 비영리기구라, 학습자의 필요에 맞게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여기도 성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곳이었다. 영어 프로그램이 분기별로 진행되는 데, 그 세션의 시작과 끝에 평가가 있다. 영어 수업 참여자가 시작할 때 보는 평가의 점수와 세션이 끝날 때 보는 평가의 점수에 진전이 없으면 후원이 줄어드는 것이다. 수업 참여자의 출석률과 공공도서관의 회원카드를 만드는 것 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요소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


따라서, 수녀님은 수업에 참석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참석을 독려하고, 중간에 들어온 새로운 학생들의 현황을 파악하여 기록하는 것은 물론, 개개인마다 치러지는 평가의 채점과 보고까지 도맡아 하는 1인다역을 하고 계신다. 시내에 위치한 CFL 본부에서는 이런 행정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Learning Coach가 있어 교사는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면 되지만, 이곳 필리 남서쪽 SW CDC에 파견(?) 나와 있는 수녀님은 그 역할을 혼자 하는 것이다. 또한 CFL 본부에 필요한 각종 기자재와 교재 요청을 끊임없이 해야 하며, 그 요청이 받아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이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는 자료들이 함께 제출되어야 하는 구조이다. 재정적인 부분이 후원에 기대고 있는 터라 프로그램의 결과에 상당히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많은 스트레스를 부르는 요인이었다. 이번 세션 마무리 평가 후, 수녀님이 웃으며, 아무래도 곧 잘릴 것 같다는 농담 아닌 농담에 한국에서 겪은 학교평가와 성과급이 오버랩되며 씁쓸해졌다.

 

처음 화이트보드 하나에 책상과 의자만 덩그렇게 놓여있고, 비가 오면 천정에서 비가 줄줄 새던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것은, 그간 컴퓨터와 인터넷, TV 모니터와 실물 화상기를 사용하는 수업에 익숙한 내게 좀 암울했다. 영어가 익숙치 않은 학습자에게 말로 하는 설명에 보여주는 설명이 들어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할 무렵, 수녀님이 빔 프로젝트를 이용하여 수업이 가능하겠냐고 물으셨고, 나는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다.


그 동안 두 번의 천정 공사가 이루어져 이제는 더 이상 비가 새지 않고, 이동형 화이트보드 한 개가 추가되고, 수녀님이 근처 학교에서 더 이상 쓰지 않게 된 헌 컴퓨터들을 기증받아와 옆방에 컴퓨터 교실이 만들어졌다. 시에서 인터넷을 지원해주었고, 이제 학습자들은 웹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졌다. 물론, 우리가 수업하는 교실은 여전히 인터넷이 되지 않지만, 이 얼마나 큰 발전인가.


보조교사인 나에게 부여된 수업 활동이 더 많아졌고, 나는 일주일 한번 수업을 위해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고, 동영상을 다운 받고, 학습지를 만드는 익숙한 일이 다시 손에 익어갔다. 거기에 한국에서 초등학생들과 했던 각종 게임 활동까지 추가하니, 성인 학습자들도 아이들처럼 너무나 즐겁게 참여했다. 늘 영어를 배우는 입장이고, 배워도 끝이 없는 게 외국어이며,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그 답답한 마음을 누구보다도 이해하는 터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한국에서 온 보조교사인 내가 하는 수업이 이민자 학습자들에게 다가갔던 모양이다.


수녀님께서 지켜보시고는 학습자들이 내게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다 편안해하고, 참여가 더 적극적으로 변화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게다가 빔 프로젝트로 각종 사진자료들이 들어간 컬러풀한 파워포인트까지 사용하게 되니 훨씬 다채로운 수업이 되었다며 수업장면들을 찍으시고 기록으로 남기셨다. 내가 수업을 하는 동안 수녀님이 필요한 학생들을 따로 불러 행정적인 업무(개인현황 파악, 평가 등)도 처리할 수 있게 되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하시니 나 또한 흐뭇한 마음으로, 수업이 있는 매주 목요일이 가장 좋아하는 날이라 말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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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하우스 수업 후>

 

613일은 SW CDC의 오픈 하우스 날이었다. 일 년에 한번 있는 오픈 하우스 행사는 지역 주민들을 포함하여, 단체의 후원자들과 시 관계자들까지 참석하여, 그 동안의 과정과 성과를 보여주고 설명하는 중요한 날이다. 원래는 필라델피아 시장도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오픈 하우스 행사를 며칠 앞두고 근처에 시의원이 방문했다 칼을 든 괴한에게 공격당한 사건이 있어서인지, 시장은 참석하지 않기로 했단다.


그 곳에서 수업을 하는 나와 Janice 수녀님에게도 CFL을 대표하여 영어수업을 공개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 동안 후원받은 각종 기자재들을 두루 사용하여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버라이어티한 수업을 계획하고 준비하며, 수업 공개의 날이 다가왔다.


늘 사용하던 교실은 행사장으로 비워줘야 했고, 더 작은 교실로 옮겨서 수업을 하는 가운데 참관자들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는데, 본인이 Mr. Westova라는 분이 들어오며 자기소개를 하고는 교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참관을 시작했다. 그 동안 수녀님은 방문자들의 안내를 맡고, 나는 빙고게임을 하며 수업 분위기는 무르익고, 참관자들에게도 수업 참여의 기회를 주는 등 말 그대로 순조롭게 진행이 되는 와중, 늘 그렇듯, 중요한 순간에 잘 작동되던 컴퓨터와 빔 프로젝터가 먹통이 되어 버렸다. 당황스러운 순간에 다행히도 Mr. Westova씨는 웃으며, 늘 필요한 순간에 기계들이 도움이 안 되더라는 말을 던지며, 내가 기계들을 손보는 동안 학생들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한참이 지나도 컴퓨터는 복구가 되지 않았고, 준비됐던 활동들은 못 했지만, 다른 활동들로 대치하여 수업을 이어나갔다. 참관하던 Mr. Westova씨는 내게 CFL 본부에 있는 자기 사무실로 꼭 한번 찾아오라며 교실을 나갔고, 그 뒤로, 컴퓨터실로 이동하여 인터넷을 이용한 영어 수업을 진행을 했고, 시에서 나왔다는 교육부서 담당자는 이를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모든 활동이 끝나고, 참석한 주민들, 학생들과 관계자들이 준비된 다과를 함께 하며, 오픈 하우스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한편, 나에게 사무실로 한번 찾아오라는 Mr. Westova씨는 과연 누구인가. 나중에서야 그 분이 CFLCEO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 분은 나의 수업이 흥미로웠다며, 내가 GED 수업을 받았던 선생님과 러닝 코치들을 통해 이미, 내가 한국에서 수년간 교사였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CFL에 큰 도움을 주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의 나의 계획을 물었다.


나는, 진심을 다해, 한국에서도 가르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사회가 변화하는데 작은 부분의 역할을 한다는 것에 감사했다,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이 가르치는 일이 미국에 온 수많은 이민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는 행운이라고 이야기했다. 그와 이야기할 땐 몰랐는데, 이렇게 쓰고 보니 오글거리는, 이 진부한.. 그러나 진실이었다.

 

이제 기다리던 여름방학을 맞이하는 우리 선생님들, 건강하고 행복한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 모두들 존경하고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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