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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5호 (2017.07.12. 발간) 

 

[일제고사를 넘어!]

그게 그렇게 쉬운 거였어?

전교조 - 일제고사 폐지를 쟁취하다!

 

박수영_일제고사 관련 해직교사, 현 세명초 교사

 




 

   나는 휴직중이다.

   늦게 얻은 딸내미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합법적이고 여유로우며, 다소 사치스러운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에 주변 사람들은 다들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고 있고, 난 은근히 이를 즐기는 중이다.

   그렇기에 세상에 넘치는 많은 뉴스들은 예쁜 딸아이의 웃음과 애교 뒤로 무심히 흘려보내는 희미한 배경 같으며, 긴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많은 동지들에게 그저 미안한 마음만 가끔 들 뿐이지 이미 관심은 무뎌질 대로 무뎌져버렸다.

   그런데 2017614. 그날은 무심히 드려다 보고 있는 핸드폰 창으로 일제고사가 폐지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솔직히 첫 마음은 심드렁한 느낌.

   

   그도 그럴 것이 박근혜정부가 들어오면서 초등학교에서는 이미 일제고사가 폐지되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내 기억 속에서 일제고사는 남의 일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다 곧 지인의 축하 전화를 받았다. 드디어 일제고사가 폐지되었다고. 그동안 너무 애썼다고. 너무나 감격스러운 날이라고. 축하 전화를 해 주신 분은 중등 선생님이신데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제고사 폐지 투쟁에 앞장 서셨고, 그로 인해 많은 아픔을 당하셨던 분이다. 사실 일제고사 폐지와 관련된 축하를 받자면 내가 아니라 그 선생님이 받아야 하는 것인데도, 일제고사 폐지 소식을 듣고 2008년 일제고사로 해직되었던 선생님들이 먼저 떠올랐다는 그 선생님.

 


갑자기 두 번째 마음이 들었다. 미안함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던 싸움, 누군가는 끊임없이 고통 받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싸우고 있었던 그 일을 난 너무 쉽게 잊고 있었으며,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저녁이 되었다.

   아내는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다. 퇴근 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일제고사 폐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게 그렇게 쉬운 거였어?”

   대통령이 바뀌니 교육부가 눈치를 보고 10년을 싸워왔던 일제고사가 하루아침에 폐지가 되는 것을 보며 한 말이다.

   이 말에 맞장구를 치며 그러게. 교육부 관료들의 영혼 없음은 알아줘야 해.” 하며 교육부를 맘껏 비웃어 줬다.

 


그런데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세 번째 마음이 찾아 온 것이다.

   과연 일제고사 폐지가 대통령이 바뀌어서 그런 것일까?

물론 어떤 정책의 최종 결정자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밝히고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누군가의 움직임이 없었더라면 과연 대통령은 이런 결정을 하려 할까?

   200810. 일제고사의 폐해와 문제점을 일찌감치 간파한 전교조는 대대적인 반대 행동을 조직한다. 그러나 이미 결정된 정부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기엔 전교조는 너무나 힘이 없다. 통상적으로 이런 정책이 서구 유럽에서 일방적으로 추진되었다면 아마도 교원들의 파업을 불러 일으켰으리라. 그러나 여기는 대한민국. 전교조와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인식한 대다수의 교사들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저 소극적인 저항을 조직하는 방법 말고는.

   그 때 전교조는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체험학습을 조직했다. 시험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인정하며, 전국의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 놓고 서열을 매기는 행위에 대해 동참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 봐도 참으로 단순하며 소극적인 저항 방식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전국의 모든 교사들이 시험을 거부하고 잘못된 정책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조직했어야 할 것 같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그래서 현장에 있던 일개 교사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일제고사에 대한 응시 선택권을 보장하거나 시험을 거부 했을 때 할 수 있는 체험학습 안내, 체험학습도 불가능 하다면 별도의 시험 대안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정도를 알려주는 것 밖에 없었다.

   이것이 다였다. 그런데 이것이 명령불복종’, ‘품위유지 위반’, ‘성실의 의무 위반이란다. 그래서 파면, 해임이란다.

 

일제고사1.jpg


   일제고사 당일 조선일보를 통해 일제고사 거부 교사라는 제목으로 해임, 파면 등 중징계가 예상된다는 보도를 접하며 참으로 씁쓸해 하던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시작은 이랬다.

   같은 이유로 나를 포함한 9명의 교사가 파면, 해임을 당했고, 강원도에서 학력고사 거부로 4명이 파면, 해임 당했다. 13명의 교직 퇴출.

   교사에게 교단을 떠나게 하고 2년을 넘게 길거리를 방황하게 만든 그들의 행위. 이에 맞서 그 추운 겨울 눈 쌓인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추위와 소음을 견디며 진행한 100여일의 노숙투쟁을 비롯한 매시기 교육청 앞 노숙투쟁과 그 많은 교사와 시민들의 무수한 집회, 일제고사 때마다 반복되는 학생들의 체험학습 진행과 무단결석. 돌이켜 보면 피눈물 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뻔히 파면과 해임이라는 징계가 예상됨에도 나도 징계하라는 그 무모한 저항의 연속이었다.

   “나의 안위보다는 일제고사로 고통 받는 제자들의 안위와 이미 해고된 동지들의 안위가 더 앞섰던 바보들의 저항. 20093월 일제 고사 때는 서울 11, 울산 3, 전남 3, 경북 1명 등 18명의 전교조 교사들이 정직 1~3개월의 중징계나 경징계에 해당하는 견책·감봉 1개월 등의 징계를 받았다. 이후로도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은 많은 동지들과 학생, 시민들의 저항은 계속된다.

일제고사가 폐지되기까지 전교조와 조합원, 시민들의 엄청난 고통과 희생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대통령 개인의 의지에 의해 그게 그렇게 쉬운 거였어?”라는 말을 듣기에는 너무 억울한 마음이 든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일제고사로 인해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고 감사해야 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일제고사2.jpg


 

그래서 마지막 마음.

그저 동지들께 고마운 마음뿐이다.


   일제고사 폐지와 해고된 동지들의 복직을 위해 쏟아지는 눈을 맞고 추위와 싸우며 함께 집회를 하던 동지들, 그 추웠던 겨울밤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노숙투쟁을 함께 했던 동지들, 더위와 모기, 소음으로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뜬눈으로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농성을 함께 하던 동지들, 일제고사의 폐해를 알리고 폐지를 외치며 전국을 돌아다니며 함께 집회를 열던 동지들, 그 무엇보다 정의로움을 위해서는 짚을 지고 불길로 뛰어드는 바보 같은 동지들이 있었기에 일제고사가 폐지되었다고 확신한다.

 

   일제고사 폐지는 이명박근혜의 많은 적폐중 하나를 해결한 것이다. 이제 막 작은 산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전교조 앞에 놓인 산은 첩첩 산중이다.

   그 높은 산 하나하나를 오르는 데는 많은 노력과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올바른 철학과 원칙을 바탕으로 보다 살만한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언저리에는 항상 사람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해본다.

   “지금 한국 교육의 운명과 전교조의 운명을 등에 업고 자신을 희생하는 많은 동지들, 수많은 이유로 교단을 잠시 떠나있는 동지들. 부디 조금만 더 힘내시고 견디시라 감히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길은 우리가 닦는다. 그 앞에 동지들 있음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진보교육 65호_일제고사_그게 그렇게 쉬운 거였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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